밈 원정대: 한국 인터넷 밈의 시조새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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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비애티튜드»의 새로운 에세이 필자인 김경수 님이 한국 인터넷 밈에 대한 연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무척 익숙해 보이지만 실상 파고들면 끝없는 세계가 펼쳐지는 인터넷 밈을 찬찬히 살펴보려면 그 기원부터 후루룩 훑어야겠죠? 경수 님의 놀라운 능력에 힘입어 «비애티튜드» 독자를 위해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깔끔히 정리해 보았어요. 한국 인터넷 밈이 지금의 황금기를 맞이하기까지 겪은 여러 시대적 상황과 고유한 특성, 기본 어휘 등을 이해하며 기초를 탄탄히 쌓기에 이번 에세이만큼 효과적인 한 방은 극히 드물 겁니다. 한 마디로 두고두고 모셔놓고 읽을 만해요. 그럼 우리 함께 한국 인터넷 밈의 시조새를 잡으러 떠나 볼까요.

영화비평가지만 부끄럽게도 이소룡보다 싱하형의 존재를 먼저 접했다. 또 이소룡을 안 다음에도 그 둘이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출처를 알게 되었을 때, 이야말로 짤방의 재미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나. ‹메이플 스토리› 게임 카페에서 퀘스트 공략을 검색하던 중 낯선 게시물을 발견했다. 제목이 이상했다. ‘개웃긴 싱하형 모음집’이라니. 호기심을 못 참고 살짝 클릭했다. 처음으로 인터넷 밈을 접한 순간이었다. 우는 듯 찡그린 듯 묘한 표정을 지은 한 남성의 사진이 등장했다. 싱하형이었다.

그는 “형왔다!!”라는 강력한 첫 문장을 시작으로 “9초도 11초도 아닌 정확히 10초에 한강 굴다리로 텨와라.”라든지 “야 이 새퀴들아 존내 맞는 거다.” 등등 현란한 말빨을 자랑했다. 나는 곧장 홀려버렸다. 이윽고 스크롤을 내리니 원본을 가공한 짤방이 등장했다. 부처님, 유희왕 카드, 당시 유행하던 영화 포스터를 비롯해 온갖 곳에 싱하형 얼굴이 출현했다. 한강 굴다리와 10초, 존내 맞는 거다 등의 캐치프레이즈는 합성 사진의 뉘앙스에 따라서 적절히 변형됐다. 매 이미지가 웃겨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한동안 내 머릿속은 싱하형 차지였다. 학교 수학 시간에 싱하형을 노트에 그리다 걸려서 혼나기도 했다. 그런 싱하형을 시작으로 나는 당시 유행하는 짤방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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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의 유명한 악플러 싱하의 첫 등장을 알린 게시물이다. 사실 싱하형은 싱하라는 유저가 횽왔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말투에서 딴 이름이므로 싱하라는 원본과 거리가 있다. 악플러인 싱하는 잘 기억되지 않고 싱하형이라는 인터넷 밈만 남은 것이다. 나는 이를 자정 작용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인터넷 밈은 무엇인가?’, ‘왜 그리도 나를 웃게 했던가?’ ‘왜 싱하형과 “내가 고자라니”라고 외치는 심영에게 홀렸을까’라는 질문은 내가 평생 답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인터넷 밈으로 먹고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욱 치열히 대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인터넷 밈의 기원을 뒤적거리며 그 명과 암을 살피는 일은 필수일 테다.

심영의 “내가 고자라니! 를 처음 본 순간에 고자의 뜻도 몰랐고, 이 짤의 원본인 ‹야인시대› 64-65화를 본 적이 없다. 그저 심영의 절규가 웃겨서 매일 반복해 보았다. 나중에야 심영이 공산주의자인데다가 진짜로 고자가 된 것이 아니라 김두한이 라디오에 서 한 허풍을 작가가 한 차례 더 부풀려 만든 것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잊기가 힘들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 밈으로 ‘여겨지는’ 게시물은 (놀랍게도) 실존한다. ‘복숭아맛’이라는 유저가 2001년 7월 17일 디씨인사이드(이하 디씨)에 올린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이다. 비슷한 형태의 게시물이 이전에도 존재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서버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사정만으로도 시대를 강타한 전설적인 글의 원본이 언제든 사라진다. 그래서 살아남는 존재가 가장 강하다. 성지로 등극하기 때문이다. 해당 글은 언뜻 보기에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판매하는 평범한 게시물이다. 아직 디씨가 중고 카메라 커뮤니티로 불리던 시절, 디씨 회원들이 중고 카메라를 판매할 때 쓰는 글의 스타일을 흉내 냈는데, 막상 게시물을 클릭하면 먹다가 남은 과자 사진이 나왔다. 사진 한 장만 바꿨을 뿐인데 중고 카메라 판매 글은 과자 판매 글이 되었고, 이후 인터넷 밈의 기원으로 회자되면서 성지 순례의 대상으로 신분이 격상했다. 지금이야 흔하디흔한 드립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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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를 카메라에서 과자로 바꾸었을 뿐인데 이만큼 재밌어질 수 있다니. 이처럼 사소한 장난이 축적되다가 유머 게시판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디지털카메라 동호회가 한국 인터넷 문화의 성지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무엇보다, 이 게시물은 ‘낚시’라는 형식을 유행시켰다. 제목과 내용 사이의 아이러니가 특징인 낚시는 오직 인터넷에서만 제대로 기능한다. 모든 텍스트는 제목과 내용 간에 긴장을 지닌다. 책이라면 제목과 목차가 내용을 적절히 압축해 출간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다르다. 제목을 클릭해야만 다음 링크로 넘어가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제목과 내용 간에 별다른 연관성이 없으면 그대로 낚시를 당할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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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는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의 엄숙한 분위기를 부수는 장난이었다. 동호회 성격을 띤 과거의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주제에 어울리는 내용만 논해야 했다. 이런 진지함에는 불필요한 잡담을 막는 순기능뿐 아니라 역기능도 있다. 제목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 게시물에도 불필요한 내용을 적어야만 했다. 이런 강요와 제약을 피하는 우회로가 ‘짤방(짤림방지용 사진)’이다. 내용이 시답잖고 별것 없더라도 게시물 꼴은 갖췄으니 제재하지 말라는 일종의 저항이나 다름없었다.

낚시용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밈 중 하나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나도 여러 차례 당했고, 동시에 애용하던 방법이다. ‘유명 아이돌 멤버 A 씨, 일반인과 열애 인정.jpg’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있다고 치자. 웬만한 돌부처가 아니고서는 마우스 커서를 클릭하지 않을 인내심이 없다. 그리고, 짜잔. 예수님이 제자 베드로에게 “이제부터 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아동 만화 한 컷이 등장한다. (자매품으로 ‘도라에몽 낚시 짤방’이 있다.) 실제 원본이 『만화로 보는 어린이 성경』이다. 예수님 입에서 낚시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지, 화가 치밀기 보다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아이러니가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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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낚시는 저질스럽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유통하는 데에도 한몫 제대로 했다. ‘낚일 만한’ 제목의 게시물에 ‘낚인’ 사실을 알리는 짤방을 매칭하지 않고, 아주 평범한 제목에 고어, 포르노, 욕설 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붙이는 것이다. 나 또한 이를 통해 고어나 포르노 이미지를 조우하곤 했다. (굳이 사례를 들진 않겠다.) 그때는 이 모든 것을 ‘엽기’라는 미명 아래 용납하던 시절이었다. 폭력적인 콘텐츠와 음란물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지금은 당시 유행하던 수위의 이미지를 올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낚시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소셜미디어 속 바이럴 마케팅에서 애용하는 카드 뉴스를 보자. ‘요즘 논란’ 운운하는 제목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면 ‘찍먹vs볶먹’ 따위의 별것 아닌 사건이 펼쳐진다. 이와 반대로 커플 썰을 평범하게 풀다가 마지막 장에 급작스레 남성용품 광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조회수만 오르면 뭐든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이라지만 지극히 옹졸한 행태로 계승됐다.

낚시와 더불어 인터넷 밈의 또 다른 원초적 특성으로는 재생과 정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20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어도비에서 서비스를 종료한 파일 형식, 플래시(.swf)를 기억하는지? 플래시는 게임,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 개인이 창작한 B급 감성의 2D 콘텐츠를 동시다발적으로 퍼뜨리며 작금의 인터넷 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한 주인공이다. 플래시로 유통된 콘텐츠 중 허무송은 재생과 정지가 짤방의 기원임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라는 가사를 “아빠가 출”로 줄여 유저를 당황시키고, “엄마가 안아”를 “엄마가 안 와”로 바꿔 노래 ‘뽀뽀뽀’를 동심 파괴의 장본인으로 만든다. 특히 “아빠가 출”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대목에서 영상 속 남성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는데, 싱하형이 탄생하는 논리가 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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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애니메이션은 그때만 해도 뮤직비디오의 대안으로 기능했다. 동요도 뮤직비디오가 있어야 더 어린이에게 잘 불렸으므로 동요를 기반으로 한 플래시 뮤비가 많이 제작되었다. ‘당근송’, ‘숫자송’ 등이 그 사례다. ‘허무송’은 이러한 –송 시리즈의 반발로 등장한 것이다. 2004년 즈음 웃대의 한 유저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하형의 이미지는 사실 이소룡이 출연한 ‹용쟁호투(龍爭虎鬪)›(1973)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탄생했다. 이소룡의 극 중 캐릭터가 여동생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며 그의 몸을 짓밟고 서는 장면이다. 그런데 얼굴에 울분이 가득한 영상을 정지하는 순간, 이소룡의 표정은 급작스레 우스꽝스러워진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표정의 발명은 마치 허무송의 가사를 멈출 때의 허무함과 당혹감을 괴상한 표정으로 그려내는 일과 유사하다. 인간이 실제 지을 수 있는 표정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싱하형 같은 짤방은 비언어적인 소통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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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제작된 이소룡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미국 영화. 미국 전역에 쿵푸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림사 무술인 리(이소룡)가 여동생을 죽인 숙적 한(석견)에게 복수한다는 내용. 스파이 장르의 플롯 공식을 따다가 만든 영화로 지금까지도 홍콩 무협 영화의 대표작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움짤은 이런 면모가 발전한 경우다. 영상을 초 단위로 잘라 음성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성 영화 시대의 제스처와 닮았다. 축구 감독 최강희의 모습을 담은 움짤은 “아 식빵 무지 달다! 이거 팬케이크 아냐?”라는 감탄사로도, “이게 왜 경고야. 파울이구먼!”이라는 항의로도 읽힌다. 몸짓과 입 모양 등으로는 피사체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모호함이 깃들었다. 오직 움짤을 가져다 쓰는 사람이 그 뜻을 결정할 뿐이다. 이는 당시 인터넷 밈 문화를 만들던 청년 세대와 이어진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요즘 말로 ‘갓반인’이 되지 못한 그들은 쓰고 남은 존재, 즉 잉여로 호명됐다. 잉여 인간이 인터넷 공간에서 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진화한 게 짤방과 움짤이다. 이들은 지금도 일상 속 자질구레하고 잉여로운 순간을 가장 정확히 공유하는 제스처적 소통 방식으로 건재하다.

마법의 짤이라 불리는 이 움짤은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이 2016년 K리그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와 FC서울이 경기를 벌이는 중 득점 찬스가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탄생했다. 원본에서는 사실 소리가 삽입되어 있다. “아, 정말 미치겠네! 왜 그걸 안 차? 라고 따지듯 말했다지만 원본에서 육성이 잘 안 들려서 헷갈린다. 원본이 뭔들 움짤이 재밌으면 그만이다. 영화에서도 관객의 상상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지점이 있듯이 말이다.


이쯤에서 인터넷 밈에 대한 특성을 종합해 보자. 우선 특정 유저들이 짤방과 움짤 등을 활용해 온갖 합성 소스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일정한 규칙이 통용되는 세계관을 구축한 후, 여기에서 각자 독립적인 상상으로 합성 소스를 재창조하는 행위가 바로 인터넷 밈이다. 이때 재창조는 이른바 ‘드립’이라 부르는 디씨식 농담 코드에 기반한다. 애드리브의 준말로 즉흥적인 농담을 뜻하는 드립은 디씨 갤러리에 글이 올라올 때 최대한 빨리 웃긴 농담을 댓글로 달아서 베댓(베스트 댓글)이 되려는 경쟁에서 유래했다. 촉박한 마감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탄생하듯 드립은 개인의 창조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예측불가능한 유쾌함을 안긴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무의식에 깔린 저속하고 비윤리적인 말까지 여과 없이 끌어낸다. 여성, 소수자 등 타인에 대한 혐오를 그대로 드러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드립과 이에 기반한 인터넷 밈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모두 지닌다.

하지만 여기에 절망으로 대응하는 건 성급하다. 짤방이 인터넷 밈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화되는 경우도 많다. 짤방의 기원이 입에 못 담을 만큼 더러울지라도, 대중의 손을 거쳐 세계관이 형성된 이후에는 원본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사라지곤 한다. 드립 또한 특정 세계관에 머무를 때 수많은 창조의 원천 역할을 맡는다. 그러니 원본의 출처를 의심하고 조심하는 일이 필요할지언정 늘상 진지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밈은 원본 짤방을 다시 한번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스스로 풍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기 때문이다. ‹야인시대›를 활용한다고 조폭을 미화하는 게 아니다. 유저에게는 합성 소스로 활용가능한 ‘그 무엇’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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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일리가 있구먼!

여기서 잠깐! 이제 한국 인터넷 밈의 시조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겠다. 미안하다. 사실 이거 말하려고 지금까지 어그로 끌었다. 2019년 6월 19일 오후 1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프레스로 일하는 중 우연히 상황주의자라는 아방가르드 운동 집단이 1973년 만든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라는 괴상한 영화를 접했다. 한국과 홍콩의 합작 영화 ‹정도›(1972)를 ‘전용’했다는 소개 글에 끌렸다. 사실 전용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근데 영화를 보는 동안 싱하형을 처음 접했을 만큼이나 배가 아프게 웃었다.

원작 ‹정도›의 배경은 한국이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한국인과 검도를 수련하는 한국인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의 장르와 플롯은 전형적인 무협 영화에 가깝다. 상황주의자는 여기에 무단으로 프랑스어 더빙을 덧입히고 원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선전 자막을 달았다. 어린아이 두 명이 체 게바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대화를 나누고, 연인과 보내는 마지막 밤에서 정치적 노선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다. 일본인 검도인은 오가는 곳마다 X 표식을 치면서 “노동은 자유를 만든다!” 윽박지른다. 감독의 장난으로 평범한 무협 영화는 혁명이 무엇인지 논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가득한 프로파간다 영화로 변신했다. (TMI지만 박정희 체제 때 벌어진 일이라 원작 영화의 제작자가 영문도 모른 채 심문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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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1972)는 한 홍 합작 영화로, 홍콩에서는 ‹당수태권도›로 개봉했다. ‹정도›의 감독은 강유신, 각본은 유일수이며, 홍콩 영화 ‹당수태권도›의 감독은 도광계와 예광으로 알려져 있다. 캐릭터는 모두 중국어를 하는데, 배경은 왜인지 경복궁인 이 이상한 영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1973)로 전용당하기 전 원본부터가 이상하다.

영화를 이렇게까지 바꾼 동인은 아까 잠시 언급한 전용(détournement)이다.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가 제안한 개념인데, 그는 세상을 언어의 쟁탈전이라고 본 듯하다. 그는 세상의 수많은 단어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만 봐도 힐링, 인문학 등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단어가 그 희생양이 되지 않았던가. 돈벌이 수단이 된 단어를 탈환하라고 촉구한 드보르는 광고나 영화 등을 뒤집고 도둑질하는 것을 일상 속의 혁명이라고 보았다. 그를 추종하던 상황주의자가 ‹정도› 같은 장르 영화를 도둑질하고 인물의 제스처를 어거지로 해석한 방법은, 신기하게도 요즘 인터넷 밈이 창조되는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 1970년대 소비주의 사회에 저항하던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가 펑크록 등 후대 하위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실제 그 에너지가 인터넷 밈으로 이어졌기 때문일 테다. 다만 그 루트를 여기에 더 쓰면 머리가 복잡하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내가 인터넷 밈에 매혹당한 까닭은 이런 ‘어거지 부리기’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매끈함은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조금이나마 심기에 거슬리는 사람을 모두 차단하며 믿고 거른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에 비해, 인터넷 밈은 매끈함에 저항한다. 믿고 걸러진 것들이 펼치는 향연이 곧 인터넷 밈이다. 인터넷 밈을 제작하는 기법을 살피면 더욱더 명확해진다.

초기 인터넷 밈은 주로 누끼따기로 제작했다. 누끼는 다른 소스와 합성해도 원본에서 대상을 자른 흔적을 그대로 지닌다. 누더기를 기운 듯 완벽하지 않은 느낌이 도리어 정감을 준다. 더욱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잘려 나온 존재들이 동일한 배경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야말로 진정한 MCU(Meme Cinematic Universe)다.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영상도 마찬가지다. “내가 고자라니!”라는 장면에서 시작해 이제는 ‹야인시대›의 영상 전반을 광범위하게 합성 소스로 활용하는 인터넷 밈 ‘심영물’을 보라. 심영물 제작자는 ‹야인시대›에 나온 다른 대사의 음성을 음절 단위로 떼고 조잡하게 이어서 새로운 대사를 만든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말을 생성하는 걸 업계 용어로 ‘조교’라고 한다. 전문가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며 최대한 매끈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인터넷 밈은 이를 거부한다. 조교를 통해 무엇을 짜깁기했는지 선명히 드러날수록 더욱더 큰 인기를 누리기 때문이다.

영상 속 세 고양이는 각자 출처가 다르다. 해피캣이 기쁨에 찬 상황에 등장하자, 이와 반대로 맨날 우는 바나나캣이 더해졌다. 이같은 방식으로 각자의 역할이 생기고 역할놀이가 시작된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가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는 이 밈이야말로 타자와 공존하는 사회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어쩌다 보니 자꾸 심영물 타령을 하는데, 사실 이미 옛것이 됐다. 인터넷 밈은 늘상 진화한다. 지금은 푸바오를 중심으로 한 바오네 가족이 인기 계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바오네 가족은 송영관/강철원 사육사(조부모), 아이바오/러바오(부모), 푸바오, 후이바오, 루이바오로(손자)까지 3대에 걸친 가족 서사가 핵심이다. 활동적인 푸바오에게는 푸질머리(푸바오+성질머리), 푸쪽이(푸바오+금쪽이), 아이바오에게는 아여사, 러바오에게는 러부지, 러스타 등 여러 별명이 더해진다. 이렇게 캐릭터와 저마다의 역할이 생기면서 인터넷 밈은 끊임없이 풍성해진다. 여기에 유튜브 시리즈 ‹전지적 할부지 시점›에 올라오는 푸바오의 일상, 푸바오 팬이 용인에서 직접 공수한 푸바오 사진으로 유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바오네 세계관을 계속 확장한다. 그럼으로써 공급자-생산자-소비자로 이어지는 대안적인 예술계가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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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바오가 인기를 얻게 된 계기가 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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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모두가 제 나름대로 예술과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밈은 21세기판 역할극이다. 남극 곳곳을 탐험하는 조종사이자 세상 모든 어린이의 우상인 뽀로로 선생님(2003~)은 말씀하셨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인터넷 밈이 아니었다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노는 법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인터넷 밈 특유의 독특하고 매혹적인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매끈해지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인터넷 밈의 미학은 매끈하지 않은 것을 차례대로 나열해 제작 과정을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행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약을 빨고 만들었는지, 얼마나 쓸데없는 노력을 가미했는지 여부가 작품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이 땅에서 진정 ‘노오력’이 인정받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소셜미디어의 유머 계정처럼) 출처가 불분명한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보기 좋게 결합하는 광경은 솔직히 고깝다. 출처가 분명한 소스를 이질적으로 조합한 인터넷 밈이 훨씬 더 윤리적이고 미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무척 정치적이지 않은가. 단일하지 않은 수많은 정치적 목소리가 평등하게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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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제일… 좋아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단행본으로 나올 채비를 마치고 있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월간 «디자인» 대전환: 월간을 벗어던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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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요즘 불황에 신음하는 한국 영화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단연 ‹서울의 봄›입니다. 개봉 6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300만명을 넘겼어요. 영화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일어난 신군부의 쿠데타를 소재로 삼는데요.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언론 통폐합을 단행했답니다. 그때 폐간 통보를 받고 수많은 매체가 사라졌지만, 3개월 만에 복간된 잡지가 있었습니다. 서슬 퍼런 시대에 발행인이 청와대로 편지까지 보내며 살린 주인공은 바로 월간 «디자인»입니다. 1976년 창간해 시대적 조류에 맞춰 리뉴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월간 «디자인»이 이번에 큰 사고(?)를 쳤습니다. 이제 한 달이라는 루틴에서 벗어나 일, 주, 격주, 월. 분기를 아우르며 콘텐츠 발행과 각종 서비스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인데요. 그 뒤에는 ‘디자인플러스Design+’라는 웹사이트와 긴밀히 조응하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대전환이 존재한답니다. 2024년 1월 지면 리뉴얼부터 완료한 월간 «디자인»의 최명환 편집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과연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까요? 궁금하신 분은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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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디자인부터 표지와 판형까지 리뉴얼한 첫 번째 결과물인 2024년 1월호.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월간 «디자인»(이하 «디자인»)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는 최명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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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월간 «디자인» 최명환 편집장. 사진: 윤선웅(에스플러스튜디오)

최근 «디자인» 리뉴얼 이야기에 앞서, 편집장님의 과거를 잠시 알아볼까요?

저는 2012년 객원 기자로 «디자인»과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그렇게 쭉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21년 4월호 판권부터 편집장이라는 바이라인으로 출현하며 올해 4년 차를 맞았습니다.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어색한 적은 처음이에요. 저희가 서로 안 지 10년이 넘었잖아요.

제가 객원 기자일 때 종현 씨는 인턴 기자였고, 이듬해 함께 «디자인» 기자로 입봉한 사이죠.

그래서 «디자인» 편집장님과 입사 동기라고 밖에서 자랑한단 말이에요.

허허. 제가 그다지 자랑할 만한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요.

전혀요! «디자인» 하면, 1976년 창간해 지령 500호가 훌쩍 넘은 레거시 매체이자, 편집부가 탄탄한 디자인 전문지로 유명한 걸요. 이런 매체의 편집장은 무슨 일을 하나요?

기본적인 업무는 다른 곳과 비슷할 것 같아요.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부를 관리하죠. 디자인이란 주제에 깊게 파고드는 전문지라서 콘텐츠를 기획할 때 편집장과 기자가 의견을 주고받는 관계가 남달라요. 디자인 또한 외부 업체에 맡기지 않고 내부에 있는 아트 디렉터 및 디자이너와 상의한다는 면도 독특하죠.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종합 디자인 전문지의 편집장이란 이유로 국내 디자인 산업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요.

03, 월간디자인

1976년 창간한 월간 «디자인»은 우리나라 디자인 역사를 반추하는 거대한 아카이브나 마찬가지다.

04, 월간디자인-창간호

월간 «디자인» 창간호 표지.

예를 들어 어떤 걸까요?

공공기관의 디자인 심사에 참여하거나, 어떤 기업의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컨설팅하거나, 사업 타당성에 대한 의견을 내는 등의 일이에요. 기자로 일할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편집장이 되니까 수행해야 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종현 씨와 저는 내부자였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했지만, 바깥에서는 «디자인»이 공공성을 띤 매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오랜 시간이 축적되면서 디자인계의 공공재가 됐다고 할까요. 그래서 제 능력이나 장점과는 별개로, «디자인» 편집장으로서 이런저런 할 일이 부여되는 것 같아요.

05, 월간디자인, 코리아-디자인-어워드Korea-design-award

월간 «디자인»은 자체적으로 ‘코리아디자인어워드’를 운영 중이다.

‘한국 유일 종합 디자인 전문지’라는 아우라가 무척 강력하네요. 이런 정체성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시대가 바뀌면서 세상 모든 물건과 활동에 디자인이란 라벨을 붙이고 있잖아요.

이번 리뉴얼을 진행하면서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는 여러 전문가를 모시고 간담회를 진행했는데요. 그때 종현 씨가 말한 지점을 동일하게 짚는 분이 계셨어요. 세상 모든 게 디자인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된 시대에 «디자인»이 무엇을 다뤄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었죠. 그런데 저희가 다루는 대상을 스스로 제한할 수 없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요.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디자인이라고 말하면 나름의 무언가를 지칭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건 디자인이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근데 지금은 디자인하지 않는 것도 디자인 전략의 일부라고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마치 온 세계가 디자인으로 둘러싸인 느낌이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제한을 두어야 하는지 고민해 봤는데, 이미 세상이 변한 걸요. 예전에는 프로덕트 디자인 하면 자동으로 제품을 떠올렸지만, 요새는 스타트업에서 만드는 다양한 서비스를 가리켜 프로덕트 디자인이라고 칭하잖아요. 결국 «디자인»이라는 매체의 숙명은 사회가 디자인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게걸스럽게 포용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어요. 이런 판단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시대적인 상황이 그렇게 짜이고 있으니까요. 

그런 관념이 이번 리뉴얼 때 확립된 건가요?

이를 공식화하고 가시화하는 무대가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이미 그전부터 저희는 이게 디자인인지 아닌지, 어디까지 디자인으로 봐야 하는지 고민하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이걸 디자인이라고 말하면 이것도 다뤄봐야겠다, 저것도 디자인이라고 말하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자연스럽게 보폭을 넓히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디자인의 범주를 따지면서 결과물에 집중하다 보면, 디자인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획, 마케팅, 유통 등 다양한 프로세스를 도리어 간과하고 축소할 수 있겠더라고요.  

대표적인 예가 요즘 유행하는 팝업 스토어 같아요. 겉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면모가 성공 비결처럼 다가오지만 그 본질은 뚜렷한 목적 아래 기획, 마케팅, 디자인, 시공, 홍보 등이 정교하게 맞물린 협업의 산물이잖아요. 디자이너의 매직 터치만 우길 수 없죠. 팝업 스토어에 대해 크레딧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가 굉장히 많아졌으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프로젝트의 앞단, 윗단까지 더욱더 확장해서 다뤄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제가 «디자인» 리뉴얼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중앙에는 디자이너가 있고, 그 바깥 부분을 따라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존재하는 장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요. 이들은 저희 «디자인»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층이면서도, 동시에 저희가 취재하는 대상이기도 해요.

06, 월간디자인

월간 «디자인»이 다루는 범위는 비단 디자이너에 국한되지 않는다.

흥미롭네요.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어요. 중앙에 있는 디자이너와 바깥에 있는 이해 당사자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넓게 보면 모두 디자인에 참여하는 창작자 같아서요.

그런 의문도 이해되어요. 결국 디자이너를 구분하려면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직업군을 상정해서 바라보았을 때 아직 세상에는 디자이너로 여겨지는 집단이 존재하고, 이런 도식이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입장에서 지금까지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기획자와 마케터처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는 창작자에 대한 관심을 이제라도 차차 넓혀야 하는 당위성을 느끼는 거죠.

누구나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직업군으로 인정받는 전문적인 디자이너는 따로 존재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비록 그 경계가 점점 명확성을 잃어가고 있지만 사회적 통념 아래 디자이너에 속하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그와 긴밀히 협업하는 창작자들, 이해 당사자들까지 함께 다루는 게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성이라고 보면 되려나요?

그렇습니다. (짝짝)

저희 대화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게요. (웃음) 잡지를 리뉴얼한지 한 달이 넘었는데 내외부 반응은 어떤가요?

보통 업계에서 농담 삼아, 리뉴얼해서 좋은 소리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하는데요. 그래서 지금 잘 가고 있는 건지 오히려 걱정이 들기도 해요. 비판적인 목소리나 중립적인 의견보다 ‘좋은 것 같다’라는 느낌적인 반응이 많이 들리거든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 좋아진 것 같고, 콘텐츠도 탄탄해진 것 같다는 의견을 듣다 보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약간 불안해요. 최소한 몇 개월은 더 기다려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최근에 인스타그램으로 리뉴얼에 관한 설문을 진행했는데요. 정돈되고 간결한 느낌이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어요. 밀도 있는 구성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고요. 다만, 여백이 부족해 조금 답답해 보인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이런 피드백을 경청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선해 보려고요. 인스타그램 주요 사용층 때문인지 설문에 참여한 분들 절대다수가 20~30대인 점도 흥미로웠어요. 특정 연령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과정에서 매체 또한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이번 리뉴얼은 꽤 이른 감이 있어요.

2020년 2월호가 가장 근래에 감행한 리뉴얼이었죠. 당시 지령 500호를 맞이했거든요. 제호부터 콘텐츠까지 완전히 바꾼 경우였죠. 제호는 영어 대신 한글을 크게 쓰고, 콘텐츠는 당시 잡지계의 흐름 중 하나인 ‘원 이슈one issue’, 즉 하나의 이슈를 정해 특집을 준비하며 좀 더 탄탄하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방향을 취했어요.

07, 월간디자인

지령 500호를 맞이해 전격적으로 리뉴얼한 2020년 2월호. 한글 제호 디자인이 화제를 모았다.

그때 굉장한 화제를 모았죠. 파격적인 변신 후 사람들의 호응도 좋았다고 들었어요.

사람들 각자가 하나의 미디어로서 정보를 발신하는 게 시대적으로 완전히 정착하는 상황에서 매달 종이로 나오는 월간지가 지니는 물리적, 시간적 한계를 인정해야 했어요. 세상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을 바에는 큐레이션의 날을 더 날카롭게 세우고 깊이 있게 파고드는 전략으로 바꿨죠. 그런데 이 또한 장단점이 있었어요. 이슈에 따라 사람들이 반응하는 감도가 매우 맹렬하더군요.

예를 들면요?

2023년 2월호 ‘케이팝 디자인 아나토미’가 대표적이에요. 시장 반응이 엄청나게 빠르게 와서 순식간에 매진이 됐어요. 그때 일본에 있는 독자가 정성스러운 편지와 함께 책 좀 구할 수 없겠냐고 연락할 정도였어요. 당시 저도 두 권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권을 국제우편으로 보내드렸죠. 2020년 10월호 ‘100개의 숍, 100개의 디자인’, 2022년 4월호 ‘2022-23 CMF 디자인 사전’, 2023년 3월호 ‘그래픽 디자인 교육에 관한 11가지 질문’ 등도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요. 근데 이런 상황이 늘 벌어지지 않는 게 문제죠. 저희도 매체이기 때문에 흥미는 떨어져도 디자인계에 의미 있는 주제를 파고들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가 오면서 콘텐츠에 대해 좋고 싫음의 편차가 심해지니까 대중의 눈치를 자꾸 보게 돼요. 게다가 리뉴얼 효과가 영원할 수도 없고요. 호평이 잦아드는 걸 시장에서 감지할 수 있으니까요.

08, 월간디자인

2023년 2월호 ‘케이팝 디자인 아나토미’, 2023년 3월호 ‘그래픽 디자인 교육에 관한 11가지 질문’.

그럼 이번 리뉴얼의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리뉴얼에서 제일 중요한 건 당위성이잖아요.

지금 가시적인 결과물이 잡지로 나와서 여기에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사실 리뉴얼의 핵심은 지면이 아니에요. 새로 구축 중인 웹사이트가 가장 중요한 파트입니다. 이미 훌륭하게 리뉴얼했던 잡지를 다시 바꾼 이유도 웹사이트와 효과적으로 조응하기 위한 마중물을 만들기 위해서예요.

«디자인»을 위한 독립적인 웹사이트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URL이 어마어마하던데요?

design.co.kr이라는 URL을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죠. 근데 이게 «디자인» 전용 웹사이트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여기를 통해서 «디자인»의 지면 콘텐츠뿐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 콘텐츠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거예요. ‘디자인플러스Design+’라는 이름으로요. 한 달에 한 번 지면으로 다가가는 «디자인»의 관성을 깨고 365일 독자와 함께 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게 디자인플러스의 목표이자, 이번 리뉴얼의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일간, 주간, 격주간, 월간, 분기간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그 중 월간에 해당하는 서비스가 «디자인» 발행이에요. 일간은 매일 업데이트하는 디자인 관련 콘텐츠이고요. 이 두 가지 서비스를 뼈대 삼아 나머지 서비스를 기획 중이죠.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가 긴밀하게 맞아떨어져야만 해서 비교적 이른 시점에 잡지를 다시 리뉴얼하게 되었어요.

월간디자인, 디자인플러스

이번 월간 «디자인» 리뉴얼은 디지털 서비스 ‘디자인플러스’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듣다 보니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웃음) 이건 리뉴얼을 넘어 트랜스포메이션, 즉 대전환에 가까워 보여요. 어쩌다가 이런 큰 결심을 하게 됐을까요?

결국 시대적 흐름이 큰 역할을 했어요. 혹시 그거 아세요? «디자인» 디지털 버전을 유료로 구매하는 비중이 의외로 커요. E-매거진 형태로 상당히 많이 팔리고요. 밀리의 서재 같은 독서플랫폼에서 «디자인»을 보는 사람도 많아요. 종이 잡지 시장은 불황이지만, 콘텐츠에 대한 니즈는 건재하고, 콘텐츠의 가치에 대한 폄하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조심스레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 «디자인» 콘텐츠를 비롯한 디자인 관련 소식들을 자체 플랫폼에서 효과적으로 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거예요. 더불어 단순히 콘텐츠를 발신하는 행위를 넘어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여러 액티비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붙이려고 해요.  

10, 월간디자인, e매거진

월간 «디자인»은 E-매거진 매출이 점점 오르는 추세다.

«디자인»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변신인 듯해요. 웹사이트는 아직 오픈 준비 중이던데요. 지면 잡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해 주실래요?

전체 리뉴얼 계획 중 현재 완료한 결과물의 예시는 매달 발행하는 잡지죠. 참고로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 모두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에서 리뉴얼 작업을 맡았어요. 결과물에 한정한다면, 일단 가장 큰 변화는 판형을 바꾼 거예요. 저희가 500호 리뉴얼할 때부터 책과 잡지의 중간에서 움직이겠다고 천명하면서 콘텐츠의 구성을 바꿨는데요. 막상 콘텐츠를 담는 틀, 즉 지면 잡지의 판형이 과연 현재 상황에 적합한지 의문을 품고 있었어요. 지금까지의 판형은 시각 정보를 잘 보여주는 데 특화됐거든요. 디자이너가 작업 중 레퍼런스가 필요할 때 «디자인»을 뒤적거리며 아름다운 디자인 작업을 찾는 순간이죠.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요. 아름다운 이미지와 멋진 해외 스타 디자이너의 작품을 넣어도 전처럼 반응이 잘 오지 않아요. 독자가 원하는 게 시원시원한 시각 경험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자 한 가지 이슈에 집중해 정보를 효과적으로 응축하는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가 줄일 수 있는 마지노선까지 판형을 최대한 줄여보았죠. 디자이너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독자들이 랩톱laptop과 함께 핸디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사이즈를 표방하면서요.

11, 월간디자인

이번 리뉴얼은 20여년 유지한 판형까지 바꾸는 승부수를 뒀다.

그리고 보니 판형은 진짜 바뀐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써놨는데, 이번 변경이 19년 11개월 만이에요. (웃음) 스토리텔링에 집중하자는 의견에 따라 콘텐츠도 손봤어요. 일단 특집은 건드릴 부분이 없었어요. 아직 동시대적인 니즈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관성적으로 꼭 넣어야만 했던 섹션에 대해서는 마음을 조금 놓기로 했죠. 오히려 내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디자인 프로젝트 섹션과 뉴스 섹션을 합친 거예요.

12, 월간디자인

드디어 그 좁은 페이지에 깨알처럼 들어가던 뉴스가 해방되는 건가요?

맞습니다. 원이슈에 집중하다 보니 저희가 놓치는 게 있었어요. «디자인»의 강점 중 하나인 동시대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디자인 소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이 뼈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디자인 프로젝트와 뉴스 섹션을 합쳐 명칭은 디자인 프로젝트로 정하고 저희가 한 달 동안 수집한 다양한 디자인 소식 중 편집부 나름의 기준에 따라 선정한 30~40개 남짓의 프로젝트를 좀 더 깊이 있게 소개하기로 했어요. «디자인» 본연의 성격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13, 월간디자인

콘텐츠 면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인 디자인 프로젝트 섹션.

혹시 새로 바뀐 디자인 프로젝트 섹션에서 눈여겨볼 만한 새로운 시도가 있나요?

크레딧을 보강하려고 해요. 이제 디자인 프로젝트에 디자이너 이름만 쓰기엔 곤란한 경우가 많아졌어요. 기획자, 개발자, 협력사, 시공사, 공장 등 프로젝트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이해 당사자도 함께 표기하려고 노력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CMF에 관련한 정보도 더 확충하고 싶고요. 이건 정보의 불균형과도 관련 있어요. 디자이너 혹은 브랜드 입장에서는 밝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매체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발굴하고 취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프로젝트 멋있어요’ 칭찬만 할 게 아니라, 해당 프로젝트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싶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참고가 될 수 있는 정보를 충실하게 담아주고 싶어요.

전 세계에서 나오는 최신 디자인 프로젝트가 셀 수 없이 많은데요. 이 중 30~40개를 고르는 게 가능할까요?

이건 모든 매체가 직면하는 문제점인데요. 공공성, 혁신성, 신선함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요즘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를 보면 심미성을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닐까, 걱정이 들거든요. 그래서 심미성 또한 중요한 기준이라고 봐요. 이런 포인트를 두루두루 다루면서 프로젝트 이면에 담긴 의미가 과연 독자에게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실제 지면에서 볼 때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플러스가 더욱더 중요해요.

14, 월간디자인

디자인 프로젝트 섹션을 통해 월간 «디자인»이라는 매체가 디자인을 바라보는 면면을 엿볼 수 있다.

‘기승전디자인플러스’네요? (웃음)

잘 아시겠지만, 웹 디자인,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등 지면에서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디자인 영역이 있어요. 서비스 디자인이나 리서치 프로젝트처럼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이미지 몇 장으로 그 가치를 전달하기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요. 만약 이런 소식이 지면에만 갇히지 않고 웹사이트에 소개된다면 독자가 훨씬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디자인플러스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어요. 저희가 독자 제보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하거든요.

독자 제보라면 해외 온라인 매거진에서 진행하는 방식으로요?

정확히 말하면, 외국과는 좀 달라요. 거기는 주어진 포맷에 맞춰 글과 자료를 올리면 편집부가 알곡을 고르고 약간의 윤문을 더해 아티클로 발행하는데요. 저희는 제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설기 때문에,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보낼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려고 해요. 가끔 모르는 분이 제 회사 이메일로 디자인 프로젝트를 보내시곤 하는데, 그런 분에게 굉장히 좋은 서비스가 될 거예요. 그리고 디자인플러스에는 «디자인»뿐 아니라 «디자인프레스»도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답니다. 자세한 건 아직 비밀입니다!

디자인플러스가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점이 이해돼요. 근데 아직 대망의 잡지 제호와 표지 디자인 바꾼 얘기를 못 들었네요. 인터뷰가 온오프라인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잡지 제호와 표지 디자인은 일상의실천이 맡았고, 이와 비슷한 톤으로 디자인플러스 웹사이트를 디자인하고 있으니까 결국 인터뷰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표지 디자인에서는 정보의 위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기존 표지는 한글로 크게 ‘디자인’이라는 제호가 존재하고 그 뒷배경으로 이미지가 크게 들어가고, 볼륨 숫자와 특집 제목을 작게 노출하는 게 전부였어요. 이미지 측면에서는 훌륭했지만, 정보를 좀 더 명확하고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위부터 칸칸이 내려오면서 제호 및 날짜, 볼륨 숫자와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등 기본 정보가 펼쳐지고, 특집 제목과 그달의 주요 인터뷰와 주목할 만한 기사 정보까지 넣어서 좀 더 텍스트로 명확하게 콘텐츠를 표기하는 방향으로 바꿨어요.

15, 월간디자인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은 표지에서 정보의 위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16, 월간디자인

월간 «디자인» 표지 디자인 기본 공식.

일상의실천

“제호의 경우 보편적인 의미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근대적 의미의 디자인이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현대 타이포그래피 역시 그로테스크 서체의 활용과 함께 정립되었다는 역사에 착안해 헬베티카, 유니버스 등 전통적인 모더니즘 서체의 골격을 기반으로 하되 알파벳 g, n에 부분적인 변주를 주었습니다. 일반 명사인 ‘Design’의 보편성을 유지하며, 동시대에 통용되는 형식적인 실험을 담아내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는데요. 양장점으로 활동하는 로만 서체 디자이너 양희재 씨와의 협업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합이라는 난제를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커버는 시스템 구축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타이틀과 매거진의 기본 정보, 특집 기사, 서브 인덱스 등의 위계를 정립하고 동일한 간격을 설정해서 독자가 정보를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또한 호마다 특집 기사를 정해진 그리드에 따라 배치해 2단, 3단의 구성이 용이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17, 월간디자인, 일상의실천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왼쪽부터) 김경철, 권준호, 김어진

설명을 들으면서 표지를 보니까 확실히 전보다 특징이 명확하네요. 이런 위계가 마치 웹사이트 설계 구조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건 디자인플러스와의 연계 때문인가요?

정확해요. 일상의실천 쪽에서도 표지 디자인을 하면서 웹사이트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부터 얘기해줬어요. 범용적인 템플릿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셈이죠. 그런 면에서 한글 제호를 영문 제호로 바꾼 까닭도 다 연결돼요. 한글 제호가 무척 매력적이었지만, 이 제호를 웹사이트에 가져온다면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한계점이 존재하더군요. 영문과 한글 제호를 함께 표기하는 것도 고민해 봤지만, 아무래도 추후 사용자의 범용성을 생각했을 때 영문이 주는 이점을 무시하기 힘들었어요. 내부적으로, 그리고 일상의실천과도 계속 얘기하다가, 결국 그렇게 판단을 내린 거죠.

18, 월간디자인

리뉴얼 첫 호 표지의 메인 그래픽은 일상의실천이 작업했다.

19, 월간디자인

표지에 적용한 다양한 그래픽 시안들. 매달 책등에 다른 색을 적용해 소장하는 맛을 의도했다.

이제 «디자인» 지면 리뉴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이렇게 꼼꼼한 계획이 결과물로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요. 기대한 만큼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세요?

아직 섣불리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날 거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처음에는 저항감이 더 클 수도 있고요. 익숙함이란 게 무섭잖아요. 게다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과 실제 유저가 사용하면서 느끼는 경험 사이에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판형만 해도 독자 옆에 계속 붙어있고 싶어서 핸디하게 만든 이유도 있지만, 그 저변에는 관리 문제도 있어요. 이제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수납공간이 줄어드니까 잡지를 모은다는 게 굉장한 부담이 됐어요. 게다가 종현 씨도 «디자인» 판형을 잘 아시잖아요. 가로가 약간 길어서 책장에 넣으면 자기 혼자 튀어나오면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하하. 판형은 정말 잘 바꾼 것 같아요. 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결국 이번 «디자인» 대전환은 어떡해서든 독자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큰 역할을 했네요.

맞아요. 365일 붙어있어야죠. (웃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보여주고 싶은 디자인도 계속 있는데 이걸 한 달 간격으로 꾹 참아야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방식, 다양한 주기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법을 개발하는 게 디자인플러스의 주요 목표예요. 그래서 주간으로는 뉴스레터 서비스를, 격주간으로는 팟캐스트까지 고려하고 있답니다. 이와 관련해서 조직 구성을 더 보강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고요. 아까 말한 크레딧 같은 경우는 지면 문제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디자인플러스에서 소화하고 싶어요. 지면에 QR 코드를 넣어서 웹사이트와 연동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할 거고요.

20, 월간디자인

월간 «디자인» 콘텐츠는 디자인플러스를 통해 일간과 월간을 넘나들며 독자와 만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게 아닐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일단 디자이너보다 디자인 프로젝트에 드라이브를 더 강하게 거는 것 같기는 해요. 예전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디자이너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디자이너를 칭찬하는 기사만 쓸 수는 없잖아요. 디자인 프로젝트에 집중할 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리뉴얼에서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디자인플러스에서 제공하는 주요 서비스 중 하나가 바로 디자이너 DB랍니다. «디자인»에 나온 디자이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그들과 관련한 정보와 기사를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 건데요. 만일 일상의실천이 작업한 프로젝트가 지면에 소개되면 QR 코드를 통해 디자인플러스 내 디자이너 DB에 접속해서 그동안 쌓인 일상의실천에 대한 정보를 모바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독자는 디자이너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도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해 핵심만 표현할 수 있겠죠. DB는 내부적으로 계속 의논 중이라 아직 뭐라 말하기엔 시기상조 같아요. 다만 리뉴얼 얘기가 나올 때부터 저희 발행인님의 가장 큰 ‘관심사’라는 점만 밝힐게요…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디자이너 DB가 꼭 성공하길 기원할게요! 그럼, 디자인플러스 서비스를 오픈하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큰 프로젝트이다 보니 순차적으로 오픈할 것 같아요. 일단 일일 콘텐츠와 제보 서비스는 1/4분기에 선보일 예정이고요. 나머지 서비스 또한 올 하반기에 무사히 공개하면 좋겠습니다.

디자인플러스가 염두에 두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을까요?

최소한 한국의 디자인 소식들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영양가 있는 플랫폼으로 여겨지면 좋겠어요. 분량과 속도를 어느 정도 커버한다는 가정하에, 매 순간 주목해야 할 디자인 프로젝트를 여기서 손쉽게 볼 수 있다는 대중적인 인식이 생기는 거죠. 잡지사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넘어 다양한 액티비티가 일어나는 커뮤니티로 거듭나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월간디자인, 디자인플러스

디자인플러스 로고 간략화 버전.

이민형 디자인하우스 디자인사업부문장 겸 디자인프레스 대표

“총 6년간 ‘네이버디자인’을 기획·운영하면서 디자인 정보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크다는 사실을 트래픽 등 객관적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디지털로 정보를 전달하는 여러 방식을 실험하며 경험치도 쌓았죠. 이제 더 늦기 전에 매개자로서의 역할과 방식을 재정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집과 발행의 완전한 대전환은 아직 힘들지만, 몇 가지 프로세스만 개선해도 동시대에 훨씬 적합한 효율적인 매개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긴 거죠. 이번 모험은 ‘«디자인»이 현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디자인»과 네이버디자인을 운영한 멤버가 오랜 기간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결과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매체를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매체가 기존에 화두로 삼던 ‘디자이너 프로모션’을 ‘디자이너와 비즈니스 간의 매개자’로 재정립하며, 48년째 축적 중인 DB를 디자인계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단박에 바꾸는 건 욕심이죠. 이번 환골탈태는 오는 12월에 마무리될 거예요. 말 그대로 대전환의 한 해입니다.”

22, 월간디자인, 디자인플러스, 이민형

이민형 디자인하우스 디자인사업부문장 겸 디자인프레스 대표.

그럼 «디자인» 편집장으로서 올해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요?

지금 준비하는 것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게 가장 크고 중요한 목표예요. 더 이상 일을 벌이기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잘 이행하고, 내부의 디테일을 잡아가는 거죠. 편집장이 되고 나서 제 존재를 알리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독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고 모더레이터도 맡고 그랬는데요. 이제는 새롭게 바뀐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대망의 마지막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부탁드릴게요.

음. 뭐라고 해야 하죠? «비애티튜드»만큼 «디자인»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웃음) 디자인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국한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아요. 디자인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알아가는 걸 교양처럼 간주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기본 교양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를 찾아주시면 감사합니다. 참고로 «디자인»은 한 권에 1만 5000원으로 배달 음식 한 번만 참으면 된답니다.

23, 월간디자인

월간 «디자인» 2024년 2월호 ‘트렌드 히치하이커를 위한 팝업 스토어 안내서’.

Interviewee

최명환은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편집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디자이너로서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자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 진학했다가, 디자인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일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다양한 매거진에 객원으로 참여하며 2013년 월간 «디자인» 기자로 정식 합류했고, 지금까지 디자인 전방위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2021년부터 월간 «디자인»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 디지털산업계 최대 행사인 ‘앤어워드A.N.D.Award’,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예디자인 스타상품 개발, 한국실내건축가협회에서 주관하는 ‘골든스케일베스트디자인어워드’ 등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와 함께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아티스트를 위한 새해맞이 꿀팁 10

박재용, 라이언-오슬링
Report

박재용, 라이언-오슬링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후회도, 미련도 집어 던지고, 새로운 한 해를 기분 좋게 맞이하는 준비를 다들 하고 계시겠지요? ‘현대미술 설명서’를 연재하는 박재용 님 또한 이런 니즈에 부응해 예술 및 미술계에서 일하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새해맞이 액티비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셨답니다. 이름하여, 아티스트를 위한 새해맞이 꿀팁 10!!! 재용 님의 오랜 노하우와 위트를 촘촘히 엮은 아티스트 맞춤형 새해맞이 권장 꿀팁이 벌써 궁금하시다고요? 아티클에서 차근차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01, 박재용, 라이언-오슬링
02, 박재용, 라이언-오슬링

지난 1월 1일 오전 7시 26분. 새해 첫 일출과 함께 한국의 2024년 또한 드디어 개막했다. 물론 그전부터 소셜 미디어의 타임라인에는 2023년 한해를 회고하는 포스팅이 멈추지 않았으며, 1월 1일 신정 당일에는 휴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해의 다짐을 선언하는 의지가 끊임없이 탄생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따뜻한 이불을 덮어쓰고 감귤류 과일을 까먹으며 다양한 플랫폼에 ‘좋아요’와 댓글을 남기고 있을 미술, 예술계의 여러분이 한 해의 시작을 좀 더 즐겁고 생산적으로 보낼 만한 몇 가지 꿀팁을 준비해 보았다. 무척이나 간단한 활동들이니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 보길 바란다. 일부는 초급, 중급, 고급 단계로 나누어 세심하게 제안했고, 심화 활동도 존재한다. 그럼, 올 한 해도 다이내믹한 성장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

✓ 꿀팁 1: 각종 기금에 선정된 예술인과 프로젝트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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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웹사이트에 접속해 보자. 주소는 www.arko.or.kr이다. 메뉴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메인 화면에는 친절하게 배너가 떠 있다. ‘2024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 지원심의 결과발표’를 확인해 보자. 본인이 활동하는 영역을 클릭해 어떤 사람과 프로젝트가 선정되었는지, 더불어 심사위원은 어떤 말을 남겼는지도 한 번 쭉 살펴보자. 2024년도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에는 총 7287건이 신청했고, 그 가운데 우리는 선정된 1006건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박*용’처럼 형식적으로 익명 처리된 이름을 살펴보며 선정자를 추측할 수도 있고, 사업명을 체크하며 어떤 내용의 프로젝트가 펼쳐질지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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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 지원 관련 배너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웹사이트

한 해의 시작을 기금 선정 결과 열람과 함께 시작하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연말까지 정산을 마쳐야 하는 지원 사업 선정 결과가 겨울이 끝날 즈음에 발표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블랙리스트’ 논란이나 202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예술감독 재심의 논란 등을 겪으면서 심사 결과 발표가 빨라졌을 뿐 아니라 이제는 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서울문화재단 등 전국 각지에 산재한 100여 개의 기초지역문화재단 대부분은 2024년도 지원사업 발표를 아직 완료하지 않았다. (참고로 서울문화재단은 2023년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과 청년예술지원사업 공모 내용을 당해 1월 13일 금요일에 발표했다.)

기금 선정 목록에서 혹시나 내가 아는 동료나 스치듯 이야기를 나누었던 프로젝트의 제목을 보게 된다면,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진행을 기원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나누어 보도록 하자. 참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금 결과 발표 게시글은 모바일 접근성이 좋지 않으니 PC 앞에 정자세로 앉아 열람하도록 하자.

심화 활동.

만일 지원사업에서 낙방했다면, 선정된 예술인이나 프로젝트, 그들이 선정된 지원제도를 살펴보면서 앞으로 자신의 활동으로 지원금 신청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궁리해 보자. 다만, 기금을 받았다고 무조건 ‘뛰어나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하도록 하자.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 웹사이트나 정책연구관리시스템(www.prism.go.kr)에서 ‘예술’이나 ‘문화’를 키워드로 각종 정부 용역 연구 보고서를 열람하면서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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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용역 연구 보고서 중 ‘예술’ 키워드 검색 결과 © 정책연구관리시스템 웹사이트

✓ 꿀팁 2: 미술, 예술계의 아주 가까운 미래를 그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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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를 박차는 것조차 기가 빨리는 새해 초, 올 한 해 열릴 전시나 행사를 한 번 훑어보는 것도 좋다. 현대 문물의 발전에 힘입어 이제 누워서 휴대전화를 깔짝거리기만 해도 많은 게 가능해졌다.

초급

검색 엔진에 ‘2024년 전시’를 키워드로 넣고 돌려보자. 주요 미술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취합해 만든 다양한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차분히 열람을 지속하다 보면 특정 기관과 갤러리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24년도 예정 전시 기사를 쓰려면 보도자료가 선행적으로 배포되어야 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려면 주최 측에서 2024년 일정을 확정해야 하고, 미리 일정을 확정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작년 후반에 계획이 나왔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체적인 계획만큼이나 기금 선정 발표도 미리 이뤄져야 하니…

중급

국내를 넘어 해외로 관심을 넓혀보자. 미국의 «Artnet», 영국의 «The Art Newspaper», 홍콩의 «Art Asia Pacific»을 비롯해 다양한 국제 예술 매체에서 셀 수 없이 많은 ‘Exhibitions to see in 2024’를 살펴볼 수 있다. 이르게는 지난해 12월 초에 게재한 ‘2024년에 볼 만한 전시’ 기사를 통해서 매체별로 선정한 주요 전시와 함께 안테나를 세울 만한 작가 및 주제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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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S TO SEE 검색 결과 © Art Asia Pacific 웹사이트

고급

매체들이 앞다투어 생산하는 ‘볼 만한 전시 목록’을 소비하는 대신,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미술관이나 미술 공간에서 열리는 새로운 전시들을 직접 살펴보는 건 어떨까? 아쉽게도 한국의 많은 미술 관련 기관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장 업데이트가 늦게 되는 메뉴가 바로 ‘예정 전시’ 부분이다. (2024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웹사이트의 ‘예정 전시’ 메뉴에 업데이트된 전시는 «한국 근대 자수(가제)» 하나 뿐이었다. 2024년도 신규 전시 목록을 언론에 발표한 1월 9일 이후에도 상황은 동일하다. 이 글이 발행됐을 때는 부디 다양한 전시로 꽉꽉 채워지길 기원한다.)

심화 활동.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관이 배포하는 보도자료 원본에 접근해 보자. 예를 들어 서울시립미술관은 웹사이트 첫 페이지 아래쪽 ‘뉴스와 공지’를 클릭하고 ‘보도자료’ 섹션에 들어가면 2023년 12월 15일에 게시된 ‘서울시립미술관 2024년 주요 전시 공개’ 포스팅을 열람할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은 게시글에 첨부된 [보도자료]_서울시립미술관_2024년_주요_전시_공개(수정).hwp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국내외 미술관 웹사이트를 오가는 과정에서 ‘비교체험 극과 극!’도 가능한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이나 영국 테이트 미술관 웹사이트의 ‘What’s On’ 메뉴를 클릭하면 2024년 열리는 모든 전시를 낱낱이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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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2024년 주요 전시 공개’ 포스팅 © 서울시립미술관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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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2024 전시 아카이브 페이지 © MoMA 웹사이트

✓ 꿀팁 3: 미래만 보지 말고, 과거도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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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해 미래만 바라보는 대신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좋은 활동이다. 때마침 한국 문화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과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장관을 하던 분이 재임 중이다. 그렇기에 과거 살펴보기는 올 한 해를 시작하기에 꽤나 적절한 활동이 아닐까 한다. 미술 분야에 한정해 이야기해 보면, 과거의 흔적을 차분하게 살필 수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있다. 먼저 대학로 아르코 아트 센터에 자리하고 있는 ‘아르코아카이브’를 추천해 본다. 2009년부터 자료를 차곡차곡 축적 중인 이곳에 들러 10년 전인 2014년 1월을 기점으로 미술 관련 매체가 지금까지 어떤 내용을 특집으로 삼았는지 살펴보며 현재 상황과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디지털도서관’에 들러 과거를 풍미한 각종 전시 도록을 살피는 것도 좋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에 약간이라도 진실이 담겨 있다면, 새해를 맞이해 돌아보는 과거 기록에서 눈앞에 놓인 미래에 대한 단서를 찾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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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도서와 아카이브’ 섹션에서 확인 가능한 컬렉션 중 일부 © 국립현대미술관 웹사이트

심화 활동.

2023년 평창동에 개관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와 연구자에 관한 소장 자료를 검색 및 열람할 수 있는 ‘컬렉션’으로 제공한다. 이곳에서 아카이빙한 소장품을 검색한 뒤 열람을 위해 직접 방문해 보자. 의지 몇 방울만 있다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시간의 틈을 넘어 미래의 낯선 이와 연결되는 미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전경 © 서울시립미술관 인스타그램

✓ 꿀팁 4: 미술이 놓인 세상을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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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가끔 예술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 너머에는 더욱더 거대한 현실 세계가 존재한다. 새해를 맞아, 우리 자신과 미술·예술을 둘러싼 이 세계의 쟁점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자. 스스로 추구하는 예술과 삶, 활동의 위치와 의미가 세상과 맺는 맥락을 파악해 보는 것은 자기 객관화에 큰 도움이 된다.

초급

검색 엔진에서 ‘2023년 사건·사고’ 검색하기. 검색 결과 상위 페이지에서는 나무위키의 ‘2023년/사건·사고’, KBS가 보도한 ‘사건·사고로 얼룩진 2023년’,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1만을 향해 달려가는 ‘‼한눈에 보는 2023년 월별 사건·사고 총정리!!’ 같은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더불어 ‘2023년 주요 이슈’, ‘2023년 돌아보기’처럼 검색 키워드를 살짝만 바꿔도 좀 더 다양한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중급

한국어 자료에서 외국어 자료로 범위를 넓혀 보자. 이때 유용한 키워드는 ‘Year in Review’다. 정말 여기저기서 자료가 튀어나온다. 특히 각종 이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기로 유명한 «Vox»가 2023년 전 세계 주요 이슈를 7분 길이로 요약한 영상을 우선 추천해 본다.

«Vox» ‘2023, in 7 minutes

구글이 발표한 ‘2023년 전 세계 및 국가별 인기 검색어 통계’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선정한 ‘2023년 주요 사건’ 등도 유의미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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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인기 검색어 중 일부 © Google

고급

온라인발 정보의 홍수에서 의미 있는 ‘신호’와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소음’을 분간하기란 쉽지 않다.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여러 분야의 잡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23년 마지막 호와 2024년 첫 호를 함께 펼치길 추천한다. 혹시 『트렌드 코리아』 2024년이나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서 매년 발간하는 『세계대전망』 2024년 판 한 권만 사서 보는 게 훨씬 간편하다는 의문이 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럴 경우, 2024년 판보다는 2022년 판이나 2023년 판을 사보는 게 어떨까? 세 번째 꿀팁, ‘미래만 보지 말고, 과거도 살펴보기’의 일환으로 말이다.

심화 활동.

나를 둘러싼 범위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사와 함께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겨보아도 좋겠다. 매년 조금씩 쌓는다면 꽤나 가치 있는 나만의 기록으로 남지 않을까?

✓ 꿀팁 5: 제목은 잘 알지만, 실제 읽거나 살펴보지 않은 책과 자료에 접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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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놓고 읽지 않아 깨끗하게 먼지만 쌓인 책, 이름만 듣고 자세히 보지 않았던 자료나 작품 살펴보기는 아직 바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새해 초에 하기 딱 좋은 활동이다. 지난해 누군가의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나 전시 서문에서 계속 마주친 철학자의 이름이나 오며 가며 스치듯 들었던 이론서 따위가 있다면, 새해를 맞이해 한번 도전해 보자! 예컨대 애나 로웬하웁트 칭Anna Lowenhaupt Tsing이 쓰고 노고운이 번역한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현실문화연구, 2023)같은 책 말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네마프NeMaf’처럼 실험적인 성향의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을 살펴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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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로웬하웁트 칭의『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응용 활동.

혹시 ‘무엇을 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출판인 42명이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책’과 같은 자료를 참고해도 좋다. 누군가 추천했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는 생각은 위험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특정 작품과 책, 자료 등을 중요하다고 여기며 회자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의견을 형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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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IN의 ‘정부의 퇴행 속에서도 등불처럼 빛난 올해의 책들 [2023 행복한 책꽂이] 에서 소개된 책 중 일부.

✓ 꿀팁 6: 몸과 마음의 건강을 점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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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창작을 지속하는 힘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나온다. 따라서, 내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새해 시작을 맞이해 시도할 만한 여러 활동 중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모든 국민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국민체력100’을 통해 비용 없이 체력을 측정할 수 있다. 전국 69개소에 있는 ‘건강생활지원센터’에서도 무료 건강 상담을 제공한다. 몸만큼 중요한 마음의 건강을 점검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예술인 복지카드가 있다면,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제공하는 ‘예술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 심리상담은 예술인 복지재단 외에도 서울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등 지역 문화재단 차원에서도 진행하고 있으니, 본인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해당하는 문화재단 웹사이트를 꼼꼼히 확인해 보도록 하자. 더불어,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으로 변하는 성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TCI검사도 추천한다. 대부분의 심리상담센터에서 진행하는데, 다만 비용이 조금 든다. 하지만, 검사 결과에 대한 전문가의 해석을 듣는 것은 무척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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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복지재단에서 제공하는 ‘예술인 심리상담’ 관련 내용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웹사이트

✓ 꿀팁 7: 통장 잔고 및 재정 상황 점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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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창작을 위한 준비는 건강한 신체만으로는 부족하다. 본인의 재정 상황 또한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당신에게 창작만을 통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면, 나는 그것이 ‘가스라이팅’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삶 앞에 예술 없고, 생활 앞에 예술 없다. 창작의 에너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그런 점에서,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해 보아도 좋겠다. 창작 활동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둘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60세가 되어 퇴직 연금을 수령할 때가 될 즈음 본인의 체력이 지금과 똑같지는 않다는 사실은 확실하니까 말이다. 스무 살의 내가 한 달에 5만원씩 연금저축계좌로 모으며 쌓기 시작한 S&P500 추종 ETF가 60세를 맞이할 미래의 예술인(나)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활동 자금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양한 사정으로 개인사업자등록증이 있는 창작자라면 중소기업중앙회가 운영하는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하는 것도 좋다. 이 공제금은 소상공인의 사회적 안전망 마련과 퇴직금 마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니, 창작자 역시 개인사업자등록증이 있다면 제도의 혜택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 꿀팁 8: 평소 궁금하던 잠재적 동료에게 연락해 보기

22, 박재용, 라이언-오슬링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연락받을 때 생각보다 따뜻하게 반응한다. 새해를 맞아 평소 흥미롭게 지켜보던 잠재적 동료들에게 상냥한 안부 인사를 보내는 건 어떨까? 무턱대고 인사하라는 건 아니다. 적어도, ‘당신의 어떤 작업을 이렇게 봤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정도로 최소한의 정중함을 갖춘다면 잠재적 동료로서 충분히 연락할 만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선생님’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분들에게도 (지나치게 격의 없는 태도는 아니더라도) 겸손하지만 진솔하게 연락하는 용기를 내봐도 좋다. 나이와 인종, 국적, 분야를 떠나 우리는 모두 예술 혹은 미술이라는 큰 카테고리에서 활동하는 잠재적 동료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메일을 쓰거나 메시지를 보낸다면, 이런 식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OOO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OOO에 관심을 가지고 OOO 작업을 하는 OOO입니다. OOO (선생)님이 OOO에서 OOO한 작업 OOO을 본 후 계속 아른거리다가 새해맞이를 틈타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 꿀팁 9: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23, 박재용, 라이언-오슬링

개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번 글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며 ‘미술인이 새해에 따뜻한 방에서 뒹굴면서 할 만한 일’을 추천받는 도중 한 동료가 이런 답변을 남겼다. “방에서 뒹구는데 또 뭐를 해요. 멀티태스킹을 과감히 포기하고 ‘마인드풀 뒹굴기’를 제안합니다.” 사실 현재 시대에 활동하는 미술인, 예술인은 이미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존재다. 누가 기금 선정되었는지도 봐야지, 올해 무슨 전시가 열릴지도 확인해야지, 사회적 현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지, 어려운 레퍼런스도 살펴봐야지… 이 와중에 소셜미디어에는 왜 다들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은 생략하고 멋들어진 결과물이나 전시 오프닝 소식만 뿅! 하고 올리는 건지…

새해를 맞이해 이 모든 자극에 대한 과도한 노출을 과감히 끊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 불 꺼진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대전화 화면을 무한 스크롤하는 건 휴식이 아니라 인지 자원과 감정을 소모하는 새로운 노동과 다를 바 없다. 굳이 마음챙김이나 명상처럼 심오한 행위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잠시만이라도 한 가지 활동에 집중해 내 시간을 싸보자. 휴대전화는 서랍에 집어넣은 채 종이책을 펼쳐 들고 30분 동안 읽어 본다든지, 디지털 기기 없이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해 볼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 꿀팁 10: 나의 2024년 그리기

24, 박재용, 라이언-오슬링

누가 뭐래도 새해를 맞이해 (누구나 매년 한 번쯤은 도전하는) 새해 계획을 하지 않고서 이번 글을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이번 2024년 계획을 세울 때에는 조금 다르게 시도해 보자. 내가 ‘이루고 싶은’ 일, 말하자면 일종의 ‘꿈과 희망’을 쓰는 대신, 나에게 ‘일어날 법한 일’, 그러니까 ‘예측과 예상’에 가까운 것을 적어 내려가는 거다. 즉, ‘OO문화재단 OOOO 기금 선정’이나 ‘OOO에서 전시하기’ 같은 선언적 목표를 제외하자는 말이다. 앞서 제안한 다양한 활동에 대한 꿀팁 중 몇 가지를 간단히 실행하는 과정에서 2024년 한 해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어렴풋이 그려질 것이다. 그 흐름에 서 있는 자기 모습에 근거해 현재 예측하고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을 파악해 보자.

만일 어떤 흐름에 놓인 모습이 스스로 그려진다면 자세히 살펴보길 권하고 싶다. 미술 혹은 예술, 그리고 이를 둘러싼 세계에서 나는 어떤 모습과 꼴을 갖추고 서 있는가? 나의 2024년을 그려보는 일은 곧 나만의 언어로 이를 기록하는 행동과 연결된다. 마치 한 두 해 전 발간한 『세계대전망』이나 『트렌드 코리아』를 다시 꺼내어 읽어보듯, 스스로 그린 2024년을 2025년이나 2026년에 다시 살펴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 된다고 확신한다. 모든 예상과 예측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추측과 희망으로 이뤄졌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스스로 얼마나 자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는지(혹은 그렇지 못했는지) 알아볼 기회가 되기도 할 테니까.

추신.

이번 ‘현대미술 설명서’ 아티클에 삽입한 일러스트레이션은 AI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라이언 오슬링(@ryan_ohsling) 님에게 글의 개요를 설명하고, 이미지 생성에 필요한 프롬프트에 힌트 혹은 영감이 될 만한 키워드와 상황에 대한 묘사를 제공한 결과물이다. 바쁜 연말 연초, 다소 촉박한 일정에도 작업을 흔쾌히 수락해 주신 라이언 오슬링 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다.

25, 박재용, 라이언-오슬링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의 장서광이자, 뉴오피스(@new0ffice)에서 일한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연구자, 교육자이며, 허영균과 함께 리서치 밴드 NHRB(@NHRB.space)의 프론트맨을 맡고 있다.

Illustrator

라이언 오슬링(@ryan_ohsling)은 AI를 통해 이미지와 영상을 생성하고 공유하는 AI 크리에이터다. 그는 AI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탐구하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지향한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고,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던 것을 완성하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세계관을 만들어 대중과 교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중이다.

영화관의 졸음을 사랑하는 법

김경수
Report

김경수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하는 «비애티튜드»의 에세이 코너. 2024년을 맞이해 새롭게 영입한 필자는 바로 인터넷 밈meme을 연구하는 김경수 님입니다. 작년 석사 논문으로 발표한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온라인에서 알음알음 굉장한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 기세를 몰아 올 2월에는 단행본으로 정식 출간될 예정이랍니다. 앞으로 매달 인터넷 밈과 엮어 우리 사회의 일면을 읽어줄 경수 님의 본업은 영화평론가예요. 짧디짧은 인터넷 밈과 최소 90분이 넘는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는 극과 극을 달리는 존재죠. 인터넷 밈이 선사하는 즉각적인 도파민에 길들다 보니 경수 님은 어느덧 영화관에서 졸음 마귀에게 시달리는 위기에 처했어요. 그런데 그는 이제 영화관의 졸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영화평론가가 대체 뭔 소리냐고요? 자세한 내막은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01_김경수

나는 ‘탕후루’와 ‘제로 콜라’를 동시에 비평하는 사람이다. 탕후루는 ‘인터넷 밈’이고 제로 콜라는 ‘영화’다. 탕후루와 제로 콜라가 동시에 유행하는 시대라니 다행이다. 아니, 오히려 좋다! 덕분에, 나 같은 혼종도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02_김경수

인터넷 밈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을 원본 삼아, 본체와 관련 없는 우스꽝스러운 제스처, 상황, 표정 따위를 추출한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특정한 상황이나 맥락에 적당한 제스처와 원초적인 감정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인터넷 밈을 사용한다. 이때 원본과 인터넷 밈은 이미 맥락에서 벗어나 서로 관련이 없어진다. 그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때 인터넷 밈 하나면 간단히 끝난다. 인터넷 밈은 재생 길이도 무척 짧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한가득 떠도는 밈을 보다 보면 시간이 훅 간다. 하나만 봐야지, 하다가 수십 개를 보고 결국엔 눈이 시려서 잠든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무엇보다 극한에 가까운 쾌감과 웃음을 만들기 때문에 그 속성은 매우 자극적이다. 마치 탕후루처럼 말이다. 

깨물어 먹는 순간 금세 혈당을 치솟게 하는 ‘혈당 스파이크’ 탕후루처럼, 인터넷 밈은 누군가의 뇌에 도파민을 때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석사 논문 주제로 인터넷 밈을 다루기로 마음먹은 후, 리서치를 위해 인터넷 밈을 수집하면서 내 뇌는 어느 순간부터 도파민에 절여졌다. 지금도 뱀술 속의 뱀처럼 도파민에 푹 담겨 있다. 그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나는 원래 제로 콜라, 즉 영화를 비평하기 때문이다.

03_김경수

영화는 곧바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매체가 아니다. 초반부터 감독이 설정한 빌드업을 성실히 따라가야 하이라이트에 이르러 마음 깊은 곳에서 카타르시스가 겨우 우러나온다. 게다가 빼어난 작품성도 필요하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온전히 충족할 때 비로소 도파민은 샘솟을락 말락 기지개를 켠다. 즉 영화로 도파민을 느끼려면 이렇게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뇌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자극적인 인터넷 밈을 갈망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이제 영화에서 롱테이크 장면이 등장하거나 잔잔한 일상이 묘사되는 순간, 내 뇌에는 비상이 걸린다. 졸음신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든 상세히 보고 기억하며 맥락화해야만 하는 영화평론가에게 이는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존재다.

04_김경수

최근의 경험을 고백하고 싶다. 아트나인에서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더 킬러The Killer›(2023)를 보다가 졸음 마귀가 찾아왔다. 킬러가 주인공이라는 말만 듣고 나는 곧장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했다. 감독이 과거 내놓았던 스타일리시한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2001)을 생각한 내가 바보일까. 영화 속 킬러는 “운명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 “공감은 금물이다. 공감은 나약함이다. 나약함은 약점이다” 등 그동안 쌓아온 나름의 철학을 중얼대며 20분 가까이 공유 사무실 위워크WeWork에서 표적을 기다린다. 그는 빅맥을 먹었고, 요가를 했고, 심박수도 체크했고…뭐…아, 졸면 안돼! 하필 이놈의 영화는 평론까지 청탁받은 귀한 몸이었다. 어느덧 영화관은 내 의지와 뇌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콜로세움이 되었다.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언정, 보통 우리가 방문하는 영화관은 사실 졸음에 최적화된 곳이다. 적당히 따뜻하고, 의자도 부드럽다. 그만큼 졸음에 알맞게 어두컴컴한 공간도 드물다. 태생적으로 극장이란 공간은 관객이 오로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그런 과정에서 관객의 불편을 줄이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할 수도 없는 영화관은 그래서인지 따뜻하고…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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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The Killer›(2023)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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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The Killer›(2023)

망했다. 족히 네 번은 기절한 듯하다. 영화 흐름은 대강 기억나지만 디테일을 놓쳐버렸다. 조각조각 흩어진 이미지가 머릿속을 부유하는데, 졸다가 꾼 꿈과 뒤섞이는 느낌까지 든다. ‘아아, 한 번 더 보아야 하나’ 좌절할 즈음, 혹시나 하고 유일한 희망인 다이어리를 펼치면 좌절은 두 배가 된다. ‘휴먼졸림체’로 쓴 글자 덩어리가 페이지마다 빼곡하다. 악필을 타고난 것도 억울한데, 쓰다가 말아서 알아볼 수 없는 글자 사이로 지렁이가 기어간다. 순간 나 따위가 영화 평론을 쓸 자격이 있는지 자문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은 어느덧 ‘내가 사람이기는 한가?’라는 실존적인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나를 철학자로 만든다. 내가 이러려고 인터넷 밈을, 아니 영화 평론을 쓰기로 마음 먹었던가… 왜인지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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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게다가 나는 그 영화를 혼자 본 게 아니다.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영화를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보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그녀는 한참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꼭 혀를 끌끌 차는 듯하다. 요즘 영화를 함께 보면, 여자친구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 같아도 속상할 테다. 꼭 봐야 하는 영화라기에 굳이 같이 왔더니, 정작 평론 쓴다는 인간은 졸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동안 연인은 하나로 연결되는 마법을 겪는다. 영화관이 시내에서 진행되는 현대적 데이트의 성지인 이유다. 공적인 공간인 영화관은 어두컴컴한 분위기로 연인 간의 은밀함을 고조하는 사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고로 영화를 보다가 조는 행위는 은밀함을 부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례나 마찬가지다. 더는 이를 반복하고 싶지 않던 나는 나름의 의지를 담아 각서를 썼다. ‘나, 김경수는 함께 영화를 보다가 세 번 이상 졸면 밥을 산다.’ 그리고 각서 쓴 다음 날 그녀에게 밥을 샀다. ‹더 킬러›를 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다 인터넷 밈에 절인 탓이라고 체념하는 순간이다. 결국 나는 그 영화를 혼자 다시 보았다.

08_김경수

그런데 영화관에서 조는 게 꼭 나쁜 걸까? 이왕지사 이렇게 된 바에 영화관의 일부로 적응하는 나에게 찾아오는 졸음을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분명 이 말을 접한 사람들은 ‘영화평론가라는 이가 무슨 막말이냐’라고 분기탱천할 듯싶다. 생각을 바꿔보면, 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가속화된 시대를 살아간다. 모든 감정을 한시라도 빨리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인터넷 밈은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한다. 영화는 가속화에 저항하는 감각을 기르는 도구다. 우리가 평소에 스치듯 본 것을 더욱더 길게 보도록 만든다. 카메라가 어떤 대상을 롱테이크로 포착하면 왠지 모르게 전보다 심오하게 대하게 된다. 그런 시선을 통해 평범한 일상은 고유한 의의를 부여받는다. 만일 킬러 영화를 보자마자 살인이 펼쳐졌더라면, 우리는 킬러도 현대 사회의 노동자에 불과하며, 그의 업무가 한없이 지루하다는 점을 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킬러의 일상을 이처럼 상세히 경험할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영화는 현시대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감각을 발명하고 있다. 동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지루하고 졸리다는 치명적인 결함은 오히려 내가 영화의 방법론을 더욱 사랑하도록 하는 핵심 요소다. 비록 네 번이나 졸았지만, 잠시나마 그런 영화를 보며 가속화된 나의 감각에 저항하는 일은 무척이나 뿌듯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명작은 나를 창의적으로 졸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관람객을 졸리게 할 수도 있구나’ 싶을 때 경탄을 느낀다. 졸지 않았다면 이토록 생경한 감각을 마주할 수 없다는 면에서, 졸음이야말로 도파민의 무한한 굴레에 갇힌 동시대인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도록 돕는 일등 공신인 셈이다.

지난 2023년 내가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2023)였다. 작년 5월에 본 후, 최근 다시 보았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무려 네 번이나 관람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졸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 뜨고 제대로 보지도 못한 영화를 최고의 영화라고 꼽을 자격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내게는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나른하고 졸리다. 감독의 그간 작품과 비교해 보아도 그러하다. 내레이터가 계속 쏟아내는 대사의 힘이 크다. 톤이 일정해 마치 자장가처럼 들린다. 게다가 인물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말한다. 잠시 졸았다가 깨어난 다음에도 여전히 나른하게 전개되는 터라, 혹여 내가 여전히 꿈속에서 헤매는 건 아닐까 착각을 줄 정도다. 이런 나른함이야말로 우리가 평소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영화 속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우리에게 휴가지에 머무는 듯한 감흥을 준다. 감독은 플롯에 상관없이 관람객이 유유자적하게 영화 속을 유영하길 바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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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2023) 스틸 이미지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우리의 졸음을 반긴다. 연극의 리허설 장면으로 끝나는 엔딩을 보자. 느닷없이 한 캐릭터가 일어나 급작스레 외친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모두가 최면에 걸린 듯 이 대사를 되풀이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는 내게 던지는 한 마디 위로였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영화관에서라도 도파민에서 해방되어 잠드는 경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하려고 105분을 달린 느낌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서 푹 자고, 꿈꾸는 듯한 감흥에서 헤매다 결말만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인터넷 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감독의 배려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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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무척 기묘하고도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엔딩의 연극 리허설이 등장하기 직전의 일이다. 주인공과 그의 아들이 대화하는 뒤편으로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멀리 원자폭탄이 터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둘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멍하니 쳐다본다. 방사능 낙진은 전혀 다가오지 않고 그 어떤 위기감도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보일 정도다. 나는 원자폭탄 터지는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우리는 창문의 이름을 딴 신비한 세계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컴퓨터의 ‘윈도Window’다. 윈도는 원자폭탄이 일상적으로 터지는 세계다. 그리고 영화는 그와 별개의 세계다. 감독은 마치 영화관이란 공간이 인터넷에서 반복되는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난 세계인 듯 그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아날로그 영화관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휴가지인 양 거기서 마음껏 졸음에 빠지고 저만의 꿈을 꾸라고 속삭인다. 진정한 ‘꿈의 공장(Dream factory)’이 알고 보니 여기에 있었다.

덧붙이는 말.

영화와 졸음의 상관관계를 극적으로 느끼고 싶다면 태국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메모리아Memoria›(2022)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 속 캐릭터가 15분 가까이 잠드는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도 자는데, 너는 안 잘 거니?’라고 물어보는 듯하다. 이는 한 여성이 어디선가 ‘쿵’ 하며 울려 퍼지는 미지의 소리를 접하는 영화의 플롯과도 맞물린다. 우리는 그가 접하는 소리의 실체를 예측하기 힘들다. 실상 우리의 삶은 백색 소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은 여성이 느끼는 소리의 충격을 관객과 공유하려 한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관람객을 졸음의 세계로 유도하는 일이다. 영화를 보다가 비몽사몽하며 온몸의 긴장이 나른해지는 무방비 상태가 펼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영화 속 캐릭터가 느끼는 미지의 소리에 진정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10분에 한 번 들리는 ‘쿵’ 소리는 우리의 몸 전체에 기이한 충격을 가한다. 영화 속으로 녹아들어 체험이 체화되는 순간이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단행본으로 기획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