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2-‹데드 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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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초밥이 사람을 잡아먹고, 심지어 나무에 매달려 짝짓기한 뒤 새끼까지 칩니다. 말도 안 되는 한 줄이지만 누군가에겐 바로 이 문장이 극장으로 향할 이유가 되죠.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에 이어 박동수 영화평론가가 두 번째로 소개하는 쿠소영화는 ‹데드 스시›(2012)입니다. 모형 초밥이 저렴한 CGI의 힘을 빌려 두 시간 내내 화면을 날아다니는데, 그 조악함에 화가 나기보다 이상하게 웃음이 먼저 터집니다. 이 황당하고도 유쾌한 에너지는 1990년대 일본 특유의 ‘V시네마’와 ‘특촬물’의 생태계에서 비롯됐죠. 쇠퇴해 가던 장르를 떠받치던 몇몇 영화인이 저예산의 한계를 고어와 스플래터로 돌파하며,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맘껏 펼쳐 낸 결과물인 셈입니다. 팔에 머신건을 장착한 여고생, 엉덩이에서 가타나를 뽑는 로봇 게이샤처럼 황당한 조합을 줄곧 선보여 온 감독 이구치 노보루 역시 이 생태계가 길러 낸 인물이기에 ‹데드 스시›가 탄생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날아다니는 식인 초밥 한 접시를 박동수가 어떻게 맛봤는지, 그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영화 ‹데드 스시› 스틸컷

사람도 먹고 새끼도 치는 초밥들

시외버스로 기숙사와 본가를 오가던 중고등학교 시절, 버스터미널에서 『씨네21』을 사서 읽는 게 하나의 루틴이었다. 『씨네21』은 주요 국제영화제 시즌마다 기자나 평론가들의 추천작을 소개해 준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그중 하나였고, 높은 수위 탓에 쿠소영화가 돼버린 장르영화를 찾던 내게 질 좋은 가이드가 되었다. 2012년 부천에서 상영된 ‹데드 스시デッド寿司›(2012)는 그렇게 접하게 된 작품이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기에 청소년 관람 불가인 이 영화를 영화제에서 볼 수는 없었다. 나중에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관람한 ‹데드 스시›는 그야말로 정신 나간 영화였다. 줄거리부터 범상치 않다. 초밥 장인의 딸 케이코는 여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초밥 요리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가출해 어느 료칸에 취직하지만, 그곳의 요리사는 손님을 봐 가면서 대충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한 제약회사 직원들이 료칸을 찾은 날, 케이코는 요리사가 대충 만든 초밥에 분노한다. 그와 동시에 회사에서 배신당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탄생시킨 식인 초밥이 료칸의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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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드 스시›가 상영된 2012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좌)와 ‹데드 스시› 포스터(우)

알고 보니 감독인 이구치 노보루는 이미 일본 장르영화나 쿠소한 영화를 찾아다니던 이들에겐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미 부천에서 상영되었던 히트작들이 있었다. 야쿠자에게 가족을 잃고 팔도 잃은 여고생이 머신 건 팔을 장착하고 복수한다는 ‹머신 걸片腕マシンガール›(2007), 1970년대 방영된 특촬 변신 로봇물에 관한 리메이크이자 애정의 표현인 ‹가라테 로봇電人ザボーガー›(2011) 등이 대표적이다. 두 작품만 봐도 독특하지만, 그의 커리어 전체를 바라보면 더욱 기상천외하다. 그는 나가이 고, 이토 준지, 우메즈 카즈오, 오시미 슈조 등 다양한 만화가의 작품을 영화로 옮겼고, 종종 비주류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삼은 아이돌 영화를 찍었다. 마스무라 야스조가 이미 걸작으로 만들어 낸 다니자키 준이치로 소설 원작의 영화 ‹만지卍›(2006)를 만들었으며, 그 당시 전 세계 호러 신예 감독을 끌어모아 만든 초단편 옴니버스 영화 ‹ABC 오브 데스The ABCs of Death›(2012)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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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이의 첫 V시네마 작품인 영화 ‹크라임 헌터 – 불릿 오브 레이지›의 VHS 커버(좌)와 도에이 V시네마 브랜드의 로고 이미지(우)

이 필모그래피가 보여주는 기묘한 궤적은 그의 뿌리인 일본 V시네마에서 기인한다. 1989년 도에이에서 ‹크라임 헌터 – 불릿 오브 레이지クライムハンター 怒りの銃弾›를 출시하며 함께 선보인 비디오용 영화 라인의 이름이었던 V시네마는 빠르게 히트상품이 되었다. 극장용 영화보다 훨씬 저렴한 제작비로 3만 개의 비디오를 판매할 수 있었다. 이후 도호, 다이에이, 닛카쓰, 쇼치쿠 등의 대형 영화사와 여러 소규모·독립 제작사도 비디오용 영화 시장에 뛰어들며, V시네마는 이들 전체를 통칭하는 용어로 여겨진다. V시네마의 주된 관객은 20~30대 남성이었고, 1980~90년대 쇠퇴기를 맞이한 일본 영화는 이들이 필요했다. V시네마의 주된 장르가 야쿠자, 도박물, 찬바라, 섹스, 고어, 스플래터, 특촬물, 학원물 등이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1970~80년대의 닛카쓰 로망 포르노가 그랬던 것처럼 V시네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신예나 일거리가 없던 이들에게 하나의 기회로 다가왔다. 제작비가 저렴했기에 최소한의 요구사항, 이를테면 액션이나 노출 장면 유무, 야쿠자·도박물 등 특정 장르로 연출하기 같은 요구만 충족한다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기회가 제공되는 셈이었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자리 잡은 구로사와 기요시나 아오야마 신지도 V시네마로 출시된 싸구려 장르영화를 통해 초기 경력을 쌓았다. 미이케 다카시, 나카타 히데오, 시미즈 다카시 등 J호러를 이끌었으며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는 장르영화 거장 또한 V시네마로 경력을 시작했다. ‹주온呪怨›(2000) 같은 히트작도 V시네마로 먼저 출시된 뒤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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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대로 ‹고지라›, ‹울트라맨›, ‹가면라이더› 그리고 ‹슈퍼전대› 시리즈의 첫 작품 ‹비밀전대 고레인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1975). 초창기 특촬물은 거대 괴수나 인간 크기의 괴인, 국내에선 ‘전대물’이라고 잘못 통칭하는 일본식 슈퍼히어로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대물은 슈퍼전대 시리즈와 그 아류작을 일컫는다. 가면라이더와 슈퍼전대 시리즈는 도에이 제작인 만큼 V시네마로 외전작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는 OTT 시대인 지금에도 ‘V-시넥스트V-Cinext’라는 이름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V시네마에서 ‘특촬’은 중요한 장르이자 비주얼 요소다. 특촬물이라는 용어가 알려주듯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기도 했다. 혼다 이시로와 츠부라야 에이지의 ‹고지라ゴジラ›(1954)에서 출발한 특촬물은 ‹울트라맨ウルトラマン›(1966~), ‹가면라이더仮面ライダー›(1971~), ‹가메라ガメラ›(1965~), ‹슈퍼전대スーパー戦隊›(1975~2026) 같은 시리즈와 캐릭터로 이어졌다. 물론 일본에서 특촬물이 항상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지라›는 점차 어린이 영화에 가까워지며 힘을 잃었고, ‹울트라맨›이나 ‹슈퍼전대›의 인기도 항상 일정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고지라› 시리즈를 주도했던 도호에서 점차 특촬물 제작을 줄여 나가자 일거리가 필요한 사람들은 V시네마로 향했다.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호러영화는 물론이고 ‹기니어피그ギニーピッグ› 시리즈(1985~1990) 같은 고어·스플래터 영화가 V시네마로 대거 제작되며 특촬물 제작 노하우가 필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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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아래로 영화 ‹머신 걸›, ‹로보게이샤›, ‹누이구루마 Z›의 스틸컷. 이구치 노보루의 다른 영화나 언급한 영화 속 다른 장면 스틸컷도 가져오고 싶었지만······ 심히 부적절한 이미지가 대다수라 고르고 골라 가져왔다.

이구치 노보루는 V시네마와 특촬물이라는 자신의 두 뿌리에 기울인 애정을 영화에 담아낸다. 대표작 ‹머신 걸›은 V시네마에서 종종 제작되던 여성액션물과 스플래터의 결합이었고, ‹로보게이샤ロボゲイシャ›(2009)는 거기에 찬바라까지 더한다. 찬바라ちゃんばら는 칼이 부딪히고 피가 흩뿌려지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를 어원으로 삼는 용어로, 사무라이나 자객이 등장해 칼싸움을 벌이는 작품 전반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훈련받은 로봇 게이샤 자객은 엉덩이에서 나온 가타나로 짱구의 엉덩이춤 같은 움직임을 선보이며 칼싸움을 벌인다. 게다가 이 로봇 게이샤는 하반신을 탱크의 무한궤도로 바꿔 도로를 달린다. ‹가라테 로봇›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젖(!)을 먹고 자라며 가라테를 수련해 오토바이와 합체한 로봇이 된다. 미소녀가 곰인형과 합체해 좀비를 찢고 다니는 ‹누이구루마 ZヌイグルマーZ›(2013)는 특촬을 기반으로 한 장르적 잡탕찌개 같은 면모를 확연히 드러낸다. 나름 정통(?) 호러영화인 ‹토미에: 언리미티드富江アンリミテッド›(2011)에선 이토 준지 만화의 기괴한 이미지를 스플래터스러운 특촬로 풀어 낸다. 이구치 노보루의 필모그래피에는 이 밖에도 괴기스러운 영화가 즐비하다. 다만 그것을 풀어 설명하는 일은 과하게 음지스럽기에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궁금한 분은 직접 위키피디아를 찾아보길 권한다.

이런 필모그래피를 지닌 감독이기 때문에 이구치 노보루는 부천영화제의 단골손님이었다. 최근에는 고어·스플래터 영화를 덜 만들기에 초청되지는 않지만, 그는 2010년을 전후로 거의 매년 부천을 방문하는 V시네마 출신 일본 감독 중 하나였다. 그의 여러 작품 중 ‹데드 스시›는 비교적 점잖은(!) 영화에 속한다. 깔깔 웃으며 다음 장면을 기대하기엔 과하게 더럽지 않고, 불필요한 노출이 가득하지 않으며, 특촬물을 비롯한 V시네마 장르에 관한 나름의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담뽀뽀タンポポ›(1985)를 따라 한 날계란 키스나 ‹가면라이더›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가져온 듯한 생선 괴인이 등장하지만, 이런 오마주는 몰라도 그만이다. 물론 ‹데드 스시›에도 잔혹한 장면이 즐비하다. 초밥이 료칸 손님들의 혓바닥을 물어뜯고, 아직 초밥으로 손질되지 않은 원물 오징어가 등장인물의 얼굴 가죽을 잡아당기며, 초밥에 목이 잘리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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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드 스시›의 한 장면. 참치 초밥과 새우 초밥이 새끼를 대량으로 낳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대체로 유쾌하다. 물론 고어 자체를 불쾌해하는 관객에겐 어렵겠지만, 식인 초밥이라는 당황스러운 소재와 어딘가 조악해 보이는 특촬물 특유의 비주얼은 잔혹함을 유쾌함으로 탈바꿈시킨다. 초밥집 앞 모형 음식 같은 질감의 초밥이 숨겨둔 송곳니를 꺼내 보이며 료칸 곳곳을 날아다니는 풍경을 보며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이처럼 ‹데드 스시›의 백미는 이런 잔혹한 장면이 아니다. 매미처럼 나무에 매달린 두 초밥이 짝짓기해 수백 마리의 (저렴한 CGI로 표현된) 새끼 초밥을 까는 순간, 군함초밥이 연어알을 대포처럼 발사하는 순간, 해산물이 아니기에 이지메를 당하던 계란초밥이 “케이코······ 간바레······!”라고 속삭이며 (식인 초밥들은 낄낄거리며 웃기도 하고 말도 한다) 다른 식인 초밥을 무찌르라고 응원하는 순간이 ‹데드 스시›의 핵심이다. 게다가 이 응원은 식인 초밥의 등장에 뒷전으로 밀렸던 영화의 진짜 이야기, 쿵후 영화를 방불케 하는 수련을 견뎠음에도 “역시 여자의 냄새가 생선 비린내에 섞이고 있어 초밥을 쥘 수 없다”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듣고 가출한 초밥 장인 지망생 케이코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케이코가 료칸의 엉터리 요리사에게 분노했던 것도, 생선회와 초밥을 식인 괴물로 변형시킨 이에게 분노하는 것도, 모두 결국 초밥에 관한 모욕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욕을 참지 못했다기엔 죽은 식인 초밥을 엮어 초밥 쌍절곤을 만들어 싸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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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드 스시› 스틸컷

영화 ‹데드 스시› 스틸컷

‹데드 스시›의 엔딩 크레딧에선 짧은 비하인드 영상이 등장한다. 낚싯줄이나 얇은 와이어에 생선회나 초밥 모형을 연결해 펄떡거리게끔 한 연출과 성룡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NG 장면 모음은 이런 영화를 만들 때의 즐거움과 볼 때의 즐거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촬영에 사용한 음식은 촬영 후 스태프가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라는 일본어 자막과 “이 영화 제작 중에는 어떤 스시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라는 영어 자막은 덤이다. ‘무슨 생각으로 식인 초밥 영화를 만든 거지?’가 아니라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도 즐겁고 재밌네!’라는 발상의 전환이랄까. 『미스터 초밥왕』과 특촬물의 괴인을 스플래터 장르로 비벼 낸 ‹데드 스시›는 쿠소영화의 어처구니없는 조합법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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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드 스시›의 엔딩 크레딧 이후 나타나는 문구. “촬영에 사용한 음식은 촬영 후 스태프가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라는 내용의 일본어 자막과 “이 영화 제작 중에는 어떤 스시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의 영어 자막이다.

지난 십여 년 사이 장르영화의 트렌드도 변했다. 일본 특촬물의 질감이나 V시네마의 저렴한 스펙터클 수요 자체가 줄었다는 생각도 든다. 부천영화제가 가져오는 영화나 관객이 찾는 영화의 성격도 많이 변했기에 ‹데드 스시› 같은 영화를 발견하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데드 스시›를 비롯한 이구치 노보루의 영화들은 쿠소한 즐거움을 주지만, 속된 말로 ‘빻은’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수십 명의 관객과 함께 만날 때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나는 올해도 부천에 ‹데드 스시› 같은 영화를 찾으러 간다. 마침 이 글이 올라오는 날은 부천영화제가 한창 진행 중일 때다. 올해도 폭염과 폭우를 뚫고 부천에 올 관객이 각자의 쿠소영화를 찾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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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박동수 평론가(@dsp9596)는 제3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비평상과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영화와 게임을 주로 다루지만 종종 미술이나 방송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료 평론가들과 함께 영화비평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크리틱›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명의 비평집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첫 단독 에세이 『쿠소필리아』(2026)를 펴냈다.

여성-작가-다큐멘터리-영화-삶-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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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백지숙_1

2027년 개봉을 목표로 마지막 작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김윤신 다큐멘터리 중 일부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백지숙이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은 걱정 섞인 반응을 보였죠. 일리가 없는 우려는 아니었습니다. OTT와 스트리밍 서비스 강세에 따라 사람들은 영화관을 점점 더 찾지 않고 있는데다 영화는 그에게 익숙한 영역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가 모험을 택한 건 어떤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여성작가 140여 명이 참여한 «팥쥐들의 행진»은 분명 무척 뜻깊은 전시였지만, 아쉽게도 전시가 끝난 후 어디에서도 참여한 여성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부재를 직접 채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주식회사 모은 발 프로덕션, 그 첫 프로젝트로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입니다. 모은 발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공원에서 두 발을 모아 쇠구슬을 던지는 놀이 ‘페탕크’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페탕크는 얼핏 보면 쉽고 재밌는 놀이 같지만, 발을 모은다는 건 그만큼 섬세함과 집중력을 요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모은 발 프로덕션이 준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도 그렇습니다. 그 미학적 의미에 비해 너무 쉽게 잊어지는 국내 여성작가를 흥미로우면서도 섬세한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죠. 김윤신, 김명희, 노원희, 윤석남···. 백지숙이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의 서막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을 만나며.

[essay]백지숙_2

김윤신 다큐멘터리 촬영 모니터링. 화면에는 김윤신 작가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수양딸이 된 김란 관장의 모습이 담겼다.

어디서 시작해도 좋겠다.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재직 당시 조각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기획할 때 전시와 함께 영화가 제작되었으면 했다. 이중섭과 박수근 외 그 시대 다른 작가의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고, 특히 권진규는 조각가로서 더욱 입체적인 영화적 접근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접촉해 본 영화감독 등 영화계 인사는 영화화 가능성에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명필름의 이은 대표는 극영화를 제작하려면 아카이브와 평전, 다큐멘터리 영화가 먼저라는 실행 경로를 제안했고, 이에 권진규기념사업회 허경회 대표가 평전 집필과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후원으로 응답했다. 곧이어 책이 출간됐고, 다큐멘터리는 현재 제작 마무리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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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 전시 홍보 사진.

권진규, 자소상, 1968, 테라코타, 20 × 14 × 19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혹은 이런 경험도 주효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2000년대 중후반까지 대안공간 네트워크의 핵심에 있었던 인사미술공간이 2007년 광화문의 미로스페이스에서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 30여 점을 단 사흘 동안 상영한 적이 있었다. 미술관 화이트큐브의 영상 스크리닝이나 모니터 상영과 달리 블랙박스 영화관의 온전한 극장적 경험은 짧지만 강렬했고, 지금까지도 내 몸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한참 오래전인 20세기 말, 여성 큐레이터 다섯 명이 장기간 준비 끝에 예술의전당에서 «팥쥐들의 행진»을 개최했다. 미술관 1, 2관과 로비에 역사전과 기획전 형태로 조성한 이 전시는 김경란과 풍물패 쟁이의 열림굿으로 시작됐고, 이희호 여사가 개막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팥쥐를 위한 쌈지락파티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같은 장소에서 여성영화제의 일환으로 여성영화 다시 보기 프로그램이 기획됐지만, 정작 참여 여성작가 140여 명의 목소리나 얼굴이 담긴 영화나 영상, 평전이 나왔다는 기억은 없다.

[essay]백지숙_4

2025년 6월, 마지막 기획전과 함께 25년간 활동을 마치며 폐관한 인사미술공간

[essay]백지숙_5

2007년 슬기와 민에게 의뢰한 인사미술공간 웹사이트. 출처: 슬기와 민

[essay]백지숙_6

여성미술제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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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부터 2018년까지의 글 40편을 시간순으로 담았다.

『본 것을 걸어가듯이』, 백지숙, 미디어버스, 2018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 미술관 관장 임기를 마감한 후 2년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몇 가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미술계 주요 현역은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일 텐데, 그다지 생산적인 효과가 없을 거라고 경고했다. 누군가는 영화 한 편 제작하는 예산이면 전시 몇 개를 열 수 있을 텐데 하며 오히려 전시 기획을 독려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작가는 엉뚱하게도(?) 내 허영심을 탓하기도 했다. 마침 한국의 미술관에는 본격적으로 관객이 몰리는 반면에 온라인 스트리밍 강세 속에서 영화는 거의 사양 사업으로 전락하고, 영화에 관한 공적 지원이나 인프라도 나날이 쇠약해 가고 있던 터라 실제로 일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컸다. 무엇보다 미술 기관 작업에 더 할 일이 많을 텐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영화 제작에 시간을 낭비하려 하느냐는 진심 어린 조언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활동과 그렇게 다른 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동료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시절 리서치했던 아트엔젤Artangel을 소환하며, 원래 프로덕션에 관심이 많았다며 나 대신 변 아닌 변을 해 주기도 했다. 대안공간에서 비엔날레, 미술관으로 연결되는 여러 기관을 세팅할 때도 매번 예상치 못한 도전과 난관 못지않게 보람도 컸던 만큼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며 자신을 독려해 본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우선은 작명부터 하기로 했다. 당시 서로 존대하는 친구에게 쓴 이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새벽에 잠이 깨서 회사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다 프랑스 여행할 때 동네 공원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쇠구슬치기 하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아시겠지만 페탕크라고, 컬링과 유사한 놀이입니다. 거기서 연상되는 여러 지점이 있어서 찾아보니 어원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은발’이라고 합니다. 두 발을 모으고 무거운 쇠 구슬을 치는 게임이라서. 실은 나이 들면 남편과 이 놀이하고 살자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사 오려니 너무 무거워서 못 사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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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탕크Pétanque 놀이의 축이 되는 쇠공

이렇게 시작한 모은 발을 위해 인미공에서 같이 일했고, 공연계 핵심 인사지만 미술인을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정순민 전 아르코 극장장을 모은 발 프로덕션 공동 대표로 끌어들였다. 구립합창단과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그였지만, 월정사 템플스테이 숙고를 거쳐 모은 발 참여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2024년 말 주식회사 모은 발 프로덕션은 자본도 직원도 없이 법인 등록을 마쳤다. 그러곤 곧바로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 기획안을 작성해서 작가와 프로듀서, 감독, 후원자,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모은 발 프로덕션 웹 페이지. 디자인과 개발은 민구홍이 함께했다.

예술가로서 진실하게 사는 삶이 어떻게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

해외 여성작가를 다룬 레퍼런스 영화와 다큐멘터리, 평전을 찾아보니 예상보다 많기도 했지만 예상보다 적기도 했다. 한국 상황에 비하면 많았고, 백인 남성 ‘마에스트로’에 견주면 턱없이 적었다는 뜻이다. 힐마 아브 클린트Hilma af Klint의 경우, 평전이 잘 나와서인지 평전을 기점으로 소설과 극영화, 그래픽 노블, 다큐멘터리가 일종의 콘텐츠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루 살펴보기 좋았다. 힐마 아브 클린트의 한두 작품을 그룹전에서 본 적은 있지만, 대규모 회고전은 클린트의 생애에 관한 텍스트를 먼저 본 후에야 관람했다. 만약 전시를 먼저 봤다면 클린트의 인생에 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의 추상화가로 미술사에 기록되는 칸딘스키에 비해 작품의 재료나 밀도 혹은 화면의 완성도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런 차이 자체가 당시 작가의 삶과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각성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작품을 미술사 정전대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이끼바위쿠르르의 30대, 50대 여성 작가들이 70대 노원희 작가와 나누었다는 대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림 재료로 언제나 ‘최소한’을 사용하는 작가적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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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7일 정순민 대표가 구글챗으로 이끼바위쿠르르의 전시에 노원희 선생님과 동행했다며 전시 초청장을 보내왔다. 뉴욕과 제주, 서울 등 이동이 많은 모은 발의 구성원은 구글챗 덕분에(?) 서로의 여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의 극영화를 처음 본 곳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40년 이상 살며 작업을 하고 있는 송현숙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송현숙은 앞서 말한 «팥쥐들의 행진»에 초대되었던 작가다. 학고재에서 여러 차례 열린 개인전과 스푸뤼스 마거스Sprüth Magers 뉴욕 갤러리 개인전 등을 여러 해 따라다녔지만, 작가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함부르크에서가 처음이었다. 높은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고, 마당 한쪽에는 양봉하는 벌통이 놓여 있던 그의 작업실을 조만간 한 번 더 방문할 예정이다. 다음에는 그가 제작한 템페라 회화나 영화 말고 꿀단지처럼 숨겨져 있는 자전적 드로잉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오래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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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송현숙 작가 작업실에 걸려 있는 사진, 송현숙 작가와 어머니, 2026년 4월 8일 필자 촬영

비행기 안에서 본 ‹Leonora In The Morning Light›(2025)에는 레오노라 캐링턴이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함께한 에피소드가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전쟁과 피란을 거쳐 스페인 정신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하는 등 고난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작가가 94세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레오노라 캐링턴의 그림은 최근 국내에서는 2025년 프리즈 기간에 일부 소개되었고, 소설 『나팔귀』(2022)가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잘 알려진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가 그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서 본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백발의 할머니가 담배에 관한 열정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가로로 긴 그림이 유독 많았던 것도 그의 정신세계와 맞물린 환상적 서술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잠시 상상했다.

룩셈부르크 뮤지엄 레오노라 캐링턴 전시 영상

비비언 수터Vivian Suter와 그의 어머니이자 화가인 엘리자베스 윌드Elisabeth Wild의 과테말라 작업실과 거주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 ‹Vivian’s Garden›(2017), 카셀 도큐멘타가 커미션한 이 작품을 나는 2023년 빈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윌드 회고전에서 볼 수 있었다. 식민과 자연, 모녀 관계, 동식물과 인간의 여러 관계를 밝은 빛과 깊은 어둠으로 조망한 이 작품은 전시와는 다른 결로 작가들과 감독의 일견 평화롭지만 복잡한 속내를 헤아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미술 전시에서 작가의 삶은 보도자료 속의 짧은 이력이나 전시장 한쪽의 보조적인 영상으로 혹은 관련 강연이나 심포지엄에서 미술사적 맥락으로 따로 제시되어 왔다. 작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평가는 별개로 이루어졌고, 작품 독해를 방해하지 않도록 작가의 정보를 조심스럽게 다루어 왔다. 작가의 성격이나 태도, 취미, 가족사는 좋건 나쁘건 이름이 지워진 채 극적 소재로 은밀히 거론되어 오거나 기껏해야 뒷담화 소재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정치적 행동주의의 파고에서도 살아남은 이런 관점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바뀌었다. 작가가 작품 못지않게 중요해졌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작가에 관한 다각도의 아카이빙 작업이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에서 주도하고 있는 작가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제대로 안착하면 이를 기반으로 하는 2차 저작물 생산이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지역의 몇몇 전시에서는 이미 작가 다큐멘터리 영상이 칸막이 없이 ‘동등한’ 작품으로 전시되기 시작했다는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디서 시작할 수 있나?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내장한 작가 천경자를 우선 타진했으나 이미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테레사 학경 차(차학경)는 서울에서 조만간 아카이브 전시를 계획 중이라 들었으나 영화화에는 몇 가지 선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 작가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의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이 생존 작가를 주체로 하듯이 살아 있는 작가의 목소리를 더 늦기 전에 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듯싶었다. 이에 출판사 안그라픽스가 여성작가 평전 시리즈 출간을 결심하며 큰 힘을 실어 주었다. 마침 혜성같이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김윤신 작가가 있었다. 2023년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김윤신 개인전 «더하고 나누며» 개최 직후 세계가 화답한 결과였다. 김차섭 작가와 부부이자 동료 화가로 활동해 온 김명희 작가는 남편의 작고 이후 기념사업회를 조직하는 등 김차섭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전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2021년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 기증한 이 부부 작가 아카이브는 깊이 묵혀 두는 대신 다양하게 발효할 것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 그룹 ‘현실과 발언’의 유일한 여성작가 노원희는 뜻밖에 아들 박재경이 기록한 사진 작업을 발견하면서 모성의 신화와 함께 사회 진보를 감아 넣는 시선을 확보한다. 당대의 페미니스트 윤석남 작가는 점차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1,025마리 개의 이야기를 생태의 곁으로 확장하며 질문을 던진다. 이제 개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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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다큐멘터리를 기록하는 전명은 작가의 기록 사진(2025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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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6일 뉴멕시코 현지 촬영 중 강사라 피디가 보내온 사진, 뉴멕시코 풍격을 담고 있는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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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희, ‹자화상›, 1995, 캔버스에 콜라주·아크릴릭, 65.5×91cm,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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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1025: 사람과 사람없이(1,025: With or Without Person)»(2009) 일부,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2025

그리고 또 누가 있나?

사실 너무나 많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직 너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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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7일, 갤러리현대 김명희 개인전 오프닝에서 장우진 감독과 김명희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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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백지숙은 평론과 기획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방송국 구성작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전시기획과 미술, 문화평론 활동을 했다. 2000년대에는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에서 일했으며,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기도 했다. 2010년부터 2023년까지는 아뜰리에 에르메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예술감독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모은 발 프로덕션(pieds-joints.kr) 공동대표이다. 저서로는 『본 것을 걸어가듯이-어느 큐레이터의 글쓰기』(미디어버스, 2018)가 있다.

有印良品 유인양품6-새축제운동

[BA]섬네일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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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완고한 풍경은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과거의 누군가가 절박하게 발명해 낸 기억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정우영은 끊어진 조선 사발의 맥을 이은 도예가 신정희의 사발에서 출발해 오늘날 한국 지역축제의 범람과 공동체 문화의 현주소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응시하죠. 특히 관공서의 성과 측정과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 사이에서 자율적인 동력을 잃어버린 지역축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봅니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이후 1,200여 개로 불어났지만, 정작 지역주민의 발길은 멀어지고 있는 대다수 지역축제의 상황 속에서 그는 고유한 역사를 품고 진화가 거듭돼 온 문경찻사발축제와 젊은 사기장의 현대적인 ‘양이잔’에 주목합니다. 정우영이 건네는 새축제운동의 제안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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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희의 사발들

도예가 신정희의 사발을 10여 점 갖고 있다. 경상남도를 근거지로 하는 신정희와 친교가 있던 외삼촌의 소장품들이 어머니를 거쳐 내게 왔다. 신정희는 임진왜란 이후 4백 년간 명맥이 끊긴 조선 사발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정밀한 재현을 위해 전국의 옛 가마터를 돌며 사금파리 1톤을 수집하고, 직접 만져보기 위해 한국에 없는 일본의 원본을 찾아 박물관, 미술관, 개인 소장가를 만나고 다닌 이야기는 전설적이다. 그가 찾던 것은 비파색이 나오는 정확한 조건 — 토양 성분, 유약 배합, 번조 조건이었다. 일본이 끌고 간 것은 도공만이 아닌 그 조건의 기억이었다. 한국의 전통은 발명에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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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성벽

태권도는 가라테 유단자들이 해방 후 각자의 도장을 차리고, 1955년 최홍희가 여기에 태권도라 이름 붙인 현대의 발명품이다. 지금의 한복은 한민족의 옷이 아니라 조선 초기와 판이하게 다른 19세기의 복식이 전통으로 고정된 것이고, 판소리는 1960년대까지 생존한 극소수 명창들의 기억을 채록하고 재구성한 결과다. 비극으로 점철된 20세기 한국사를 새삼 거론할 것 없다. 전통의 발명은 산업 혁명을 거치며, 정도는 다를지언정 어느 나라에서나 필연적이었다. 다만 지금 한국의 전통은 지방축제가 그 역할을 상당히 맡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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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찻사발축제는 문경새재도립공원 오픈 세트장을 사용한다.

신정희의 기예적 측면이 아닌 기능적 측면이다. 그의 헌신은 탁월한 작품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사발의 새로운 전통을 낳았다. 현대 사회에서 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은 전통에 관한 기능적 기여다. 하지만 한국의 지방축제는 기능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방정부가 예산을 쥐고 기획을 결정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사실상 그 전통의 소유자로 행세하는데, 축제가 끝나면 다 철거해 쌓일 수 없는 전통, 담당 공무원이 순환근무 때문에 떠나면 바뀌는 전통, 지역주민이 아닌 관광객을 위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지방축제에 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코로나 이후 1,200여 개, 증가율 37퍼센트에 이르는 양적 난립, 트로트 가수 공연, 미인대회, 먹거리 장터처럼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 방문객 수는 정체됐는데 소비액은 줄고, 지역주민 참여도도 주는, 지방 활성화는커녕 지방 소외가 그 논점이었다. 한국의 지방축제는 새마을운동에서 배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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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길을 닦고 지붕을 올리는 식의 집단 노동이었다. 한국 전통의 두레를 참조했다. 그런데 두레는 순서가 있을 뿐 결국 내 논 차례가 왔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깃발을 장대에 매단 ‘농기’를 통해 마을의 질서를 선언했다. 내가 남의 논에서 일하면 남도 내 논에서 일하는 질서였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에는 이 회전의 질서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계속 주고, 국가는 계속 받았다. 결과적으로 정부 지원이 끊기자 공동체 노동도 함께 중단됐다. 두레는 수백 년 동안 외부 지원 없이 작동했는데, 새마을운동은 10년 만에 동력을 잃었다.

외부 보상으로 내부 의무를 대체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하지만 두레 같은 자치조직을 만들자는 말은 결과에 가깝다. 한국의 지방축제는 93퍼센트의 비용을 국비와 지방비 등 공공 재원에서 조달하는데, ‘이 돈을 덜 소모적으로, 더 기능적으로 쓸 수 있지 않나?’라는 질문이 먼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의 지방축제는 무엇보다 지방정부를 위한 행사처럼 보인다. 지방정부가 내거는 지방경제 활성화’라는 ‘농기’를 다시 생각해 볼 만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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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요의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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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조금씩 진화 중인 문경찻사발축제 캐릭터 ‘차담이’

그중에서도 문경찻사발축제는 한국 지방축제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문경에는 찻사발의 정통성이 있다. 조선 후기 관요가 폐쇄되면서 도공들이 문경, 괴산, 단양 등 지방으로 흩어지는 민요 번창기의 중심지였으며, 망댕이가마와 발물레라는 고유한 가마 전통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데, 고려 시대 청자부터 조선 시대 분청사기와 백자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900여 년을 이어온 역사는 한국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 이 정통성에 더해, 문경새재도립공원 오픈 세트장을 축제 기간 각 도예가의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지역 경제의 기반에서 비롯해 높을 수밖에 없는 지역주민 참여도 등 여러 면에서 지속가능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문경찻사발축제에 ‘새마을 훈장’을 달고 싶은 뜻은 없다. 문경찻사발축제의 기획상품 ‘커피 사발’과 ‘우려나눔이’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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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출품된 우려나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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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출품된 우려나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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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출품된 우려나눔이

각각 2024년과 2025년에, 문경에 적을 둔 여러 도예가들이 참여해 자신의 관점으로 만든 찻사발들을 가리킨다. 이 역사적인 도예가들이 축제를 위해, 하나의 ‘농기’ 아래 함께했다. 한국의 전통을 갱신하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도지만, 도예가 각각의 차이에서 담보되는 다양성, 지방축제의 의무이기도 한 전통에 관한 기능성, 위에서 지시하는 변화가 아닌 아래에 권유하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현대의 지방축제라면 이런 기획이 필요하지 않은가 했다. 하지만 2026년에는 기획상품이 없었다. 물론 내부 사정이 있을 수 있겠으나, 두레에서 ‘농기’만큼 중요했던 것은 ‘농악’이 부여하는 일관된 리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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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요의 양이잔

2026년의 기획상품을 기대했다가 올해는 없다는 걸 알고 두루 둘러 보던 중 관음요의 양이잔이 눈에 들어 왔다. 관음요는 1730년대(추정) 1대 김취정에서 시작해 8대 김선식 사기장으로 이어지는 도자 명문가다. 9대 김민찬, 무형유산사기장 전수생이 전시관을 지키고 있었고, 양이잔은 그의 작품이었다. 양이잔은 몸체 양쪽에 손잡이 역할을 하는 귀(耳)가 달린 잔이다. 전국 시대부터 한나라 대까지 음주용 잔으로 크게 유행했고, 조선 초기에 전해져 양손으로 귀하게 받친다는 의미를 받아 유교 의례에 주로 사용했다. 이 양이잔의 둥글지 않고 각진 귀, 당당히 드러낸 미세 기포 흔적과 작은 점들, 청백에 가까운 표면이 좋았다. 이 현대적인 감각이 문외한에게도 보였다. 먹고 사느라 바빠 눈 돌리지 못할 뿐, 다들 좋은 것과 나쁜 것,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가려낸다. 어쩌면 지방축제 개혁은 사람들이 전통문화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관광객 유치, 예산 집행, 단체장 치적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줄은 모를 거라고 그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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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도립공원 내 새재계곡(조령천)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 『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

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1-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BA]섬네일
Report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결과적으로는 최악일지라도 때론 최선을 다한 것일 수 있죠. ‘쿠소(くそ)영화’에 관한 이야기예요. ‘똥’에 해당하는 일본어 욕설 ‘쿠소(くそ)’와 ‘영화’를 합친 이 표현은 쓰레기 같은 영화를 가리킵니다. 박동수 영화평론가는 쿠소영화를 ‘실패의 산물’로 규정합니다. 연기, 편집, 촬영, 기술, 각본… 다양한 구성 요소가 갖가지 이유로 실패하며 탄생한 조악한 영화라는 것이죠. 그 실패 위에서, 우리가 영화에 기대하는 익숙함을 벗어난 상상력을 재료 삼아 말도 안 되는 설정과 열악한 자원 속에서 어떻게든 착즙해 낸 최악이자 최고의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박동수가 첫 번째로 꺼내든 쿠소영화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2019)입니다. 아프리카, 쿵푸, 나치가 한데 뒤섞인 이 가나산 괴작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는 쿵푸영화의 간략한 계보와 브루스플로이테이션부터 산업이 부재함에도 영화를 만드는 아프리카의 창작 생태계까지 쿠소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배경을 살펴봅니다. 자본과 산업의 논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조악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낭만적인 쿠소영화에 관해 박동수가 전하는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2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아프리카의 쿵푸영화, 그런데 나치를 곁들인…

3년 전엔가, 여느 날처럼 트위터 타임라인을 뒤적이던 중 이 영화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African Kung-Fu Nazis›(2019). 눈에 흉터가 난 히틀러가 포스터 중앙에 있고, 쿵푸 마스터의 도복 비스름한 옷을 입은 아프리카인이 주인공 자리에 서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전범 아돌프 히틀러와 도조 히데키가 사실 살아남았고, 이들은 아프리카로 도망쳤다. 가라테 수련을 통해 히틀러는 타인을 세뇌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되고, 가나 국민을 가나-아리아인Ghan-Arian으로 만들어 제국의 부활을 시도한다. 어느 쿵푸 도장의 제자인 주인공 아대는 나치에 반발한 사부가 죽임을 당하자 외딴곳에 숨어 수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히틀러가 개최한 무술대회에 참가한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예고편

이 황당한 줄거리는 나름의 ‘근본력’을 갖추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쿵푸영화에 관한 애정과 오마주가 영화 전체에 빼곡히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쿵푸 도장을 습격한 나치 일당이 현판을 부수는 모습은 이소룡의 ‹정무문精武門›(1972)을 고스란히 차용한다. 일본군이 가라테를 배운 나치로, 이소룡이 주인공 아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아대는 수련이 부족한 인물이다. 그래서 ‹취권醉拳›(1978)의 성룡처럼 은둔 고수를 사부 삼아 수련을 이어간다. 이때 등장하는 사부의 의상은 ‹취권›의 원소전과 거의 비슷하다. 물론 술도 마신다. 히틀러 주최의 무술대회는 자연스럽게 이소룡의 마지막 걸작 ‹용쟁호투龍爭虎鬪›(1973)에서 따온 것이다. 이소룡이 범죄조직을 격파하기 위해 무술대회에 참가했듯이 아대는 나치와 히틀러를 박살 내기 위해 참가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대체 왜 쿵푸일까?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4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5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의 은둔 고수와 영화 ‹취권›의 원소전. 두 인물은 비슷한 모자와 헤어스타일을 공유하고, 비슷하게 생긴 술병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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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5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의 은둔 고수와 영화 ‹취권›의 원소전. 두 인물은 비슷한 모자와 헤어스타일을 공유하고, 비슷하게 생긴 술병을 사용한다.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6

대표적인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인 ‹브루스 리의 클론들The Clones of Bruce Lee›(1977) 포스터. 이소룡의 사망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어느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이소룡을 복제해 두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거룡Dragon Lee과 장일도Bruce Lai, 홍콩의 여소룡Bruce Le, 태국의 브루스 타이Bruce Thai 등이 동시에 출연한다.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7

영화 ‹브루스 리의 클론들› 스틸컷

1970년대 이래로 전 세계 액션영화는 쿵푸영화의 영향 아래 있다. 이소룡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후로 쿵푸영화계는 넥스트 이소룡을 찾는 데 혈안이 된다. 성룡도 그렇게 등장한 배우 중 하나였다. 다만 성룡은 쿵푸와 슬랩스틱을 결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다양성을 더한다. 이후 홍금보, 원표, 이연걸, 견자단 등의 스타와 함께 쿵푸영화의 전성기가 이어진다. 그와 동시에 신화가 된 이소룡의 이름을 따라 무수한 아류작과 짜깁기 영화가 등장한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Bruceploitation이라는 명칭으로 유통된 일련의 짝퉁 이소룡 영화에서는 홍콩뿐 아니라 대만과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무술가가 “브루스 어쩌고”나 “저쩌고 룡”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등장했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은 홍콩 무협영화, 한국의 권격영화, 일본의 찬바라 영화 등과 뒤섞여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유통된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정식으로 유통되지 못했다. 그 대신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은 해적판 필름의 형태로 낡아빠진 동시상영관에 유통되거나, 돈냄새를 맡은 사업가가 짜깁기한 판본이나 오역으로 가득한 더빙판으로 비디오 대여점에 유통되었다.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9

다큐멘터리 ‹영화의 사도들Apostles of Cinema›(2022) 스틸컷. 탄자니아의 영화향유 문화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DJ로 불리는 일종의 변사가 간이 상영관에서 라이브 더빙을 선보이는 장면(위)과 해적판 DVD 판매점의 모습(아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탄자니아지만, 우간다나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 지역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가나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이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가 향유되었다.

공식적인 배급망을 탄 것은 아니지만 필름보단 비디오로 유통되던 이 영화들은 가난한 노동자나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주된 유흥거리가 되어주었다. 제작부터 상영에 이르는 영화산업이 없다시피 한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본다. (국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비공식 상영관에서 해적판 영화가 상영되고, VJ나 DJ로 불리는 일종의 변사가 라이브 더빙을 선보이거나 해적판 DVD에 자체 더빙을 입혀 배포한다. 쿵푸영화뿐 아니라 발리우드 영화, 한국 드라마, 대만 청춘영화, 심지어 EPL이나 챔피언스리그 중계영상까지 같은 방식으로 유통되고 상영된다. 그 토양에서 아프리카의 비디오 키즈는 다양한 혼종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어느덧 ‘놀리우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나이지리아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 스타가 된 우간다의 ‘와칼리우드’가 그렇다.

사무엘 K. 응칸사의 첫 영화 ‹2016›(2010) 예고편.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의 대결을 다룬 이 영화는 당황스러운 CGI와 VFX로 점철되어 있다. 예고편의 화질이 좋지 못한 것은 원본 영화의 화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당황스러운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가 제작된 가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제작된 몇 편의 장편영화를 제외하면 거의 비디오 영화만 제작되어 영화산업이랄 게 부재한 나라다. 실제로 (유럽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는 북아프리카 국가를 제외하면) 아프리카 전체에서 ‘영화산업’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나라는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세네갈 정도니까 말이다. 산업이 없는 곳에서는 종종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가 등장하곤 한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를 만든 사무엘 K. 응칸사Samuel K. Nkansah도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인물이다. 닌자맨Ninjaman이라는 예명으로 제작사 ‘닌자 무비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그는 2010년작 ‹2016›의 예고편이 유튜브를 통해 바이럴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외계인 침공을 다룬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의 이미지를 가까스로 움직이는 열화판 CGI로 가져온 뒤 엉망진창의 폭발과 액션을 곁들인 괴작이다.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11

스키장에 여행 온 의대생과 나치 좀비의 대결을 담은 호러 코미디 영화 ‹데드 스노우›의 스틸컷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12

달의 뒷면에 숨겨진 나치 기지가 있다는 설정의 영화 ‹아이언 스카이› 스틸컷. 영화 속 나치 기지는 놀랍게도 하켄크로이츠 모양이다.

지구를 식민지화하려는 외계인의 침공을 소재로 삼았던 감독이 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소재가 나치의 부활이었던 걸까? 장르영화의 팬으로서 무수한 영화의 소재였던 나치가 다시 소환되는 것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나치는 그 이름만으로 혐오 대상인 만큼 무수한 SF, 호러, 코미디 영화에서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다(어떤 면에선 지금의 좀비가 지닌 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데드 스노우Dead Snow›(2009) 속 나치 좀비나, ‹아이언 스카이Iron Sky›(2012) 속 달 뒷면의 나치 기지 음모론 혹은 마블 유니버스의 ‘하이드라’ 같은 설정이 가능했다. 나치는 분명한 적이자 퇴치해야 할 해충으로 묘사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쿵푸로 마음껏 패고, 다방면으로 조롱해도 상관없는 대상이랄까. 영화의 공동연출자이자 히틀러 역을 맡기도 한 독일인 세바스티안 스타인Sebastian Stein은 ‘아프리카+쿵푸+나치’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두고 “히틀러를 비웃는 게 나치즘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응칸사 감독에게 익숙한 코드인 쿵푸와 나치를 빌런으로 설정한 액션영화를 결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13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의 무술대회 장면. 어설프게 쓰인 한자와 깃발의 만(卍)자, 화이트페이스 분장을 한 가나-아리아인의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어처구니없지만 단순한 반전의 묘미가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달까.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14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속 도조 히데키가 세뇌된 가나-아리아인과 행군하는 장면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는 ‘히틀러와 나치에 관한 조롱과 그에 관한 격파’라는 주제에 한없이 충실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깃발은 욱일기에 하켄크로이츠를 박아 넣은 파격적인 디자인 같지만, 사실 영화 안의 모든 문양은 ‘한자 만(卍)’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초기 할리우드 영화에서 문제가 되었던 블랙페이스는 가나-아리아인의 하얗게 칠한 얼굴로 반전된다. 히틀러의 아프리카 정복 목적은 단순히 술과 여자를 얻기 위한 것이다. 트워킹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디제잉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전체주의적 악당을 묘사하기 위해 나치의 방식을 모사했던 몇몇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속 웅장함과 달리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속 히틀러는 일관되게 한심하고 음흉하며 바보 같다. 이소룡이자 성룡이 된 아대는 식민지의 무술로 우스꽝스러운 제국을 무찌르는 쿵푸전사가 된 셈이다.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15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2African Kung Fu Nazis II›(2025) 공식 트레일러. 섬네일의 로봇은 거대화된 히틀러인 ‘아돌프 로보틀러’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강력한 쿠소함의 정체는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에 뒤섞여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라는 정직한 제목은 영화의 모든 것이다. 다만 영화의 마무리는 쿵푸가 아니다. 아대가 대회에서 도조 히데키를 격파하자 가나-아리아인의 세뇌가 풀려버린다. 이에 히틀러는 폭주를 시작한다. 아대는 세뇌에서 풀려난 군인에게 건네받은 권총을 들고 소총을 난사하며 도망친 히틀러를 추격한다. 총격전 끝에 아대는 히틀러가 엄폐물로 쓰던 도요타 자동차의 연료 탱크를 명중시키고 히틀러는 폭사한다. 그림판으로 어설프게 누끼를 딴 것 같은 히틀러의 머리가 바닥에 굴러다니며 사태는 끝난다. 어쩌면 이는 속편을 위한 발판일지도 모른다. 2025년 시체스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속편에서 히틀러는 로봇이 되어 짝퉁 괴벨스와 함께 되돌아온다. 새로운 주인공으로 무협영화 걸작 ‹외팔이獨臂刀›(1967)의 영향을 받은 외팔이 쿵푸전사이자 아대의 동생 아도가 등장한다. 스모 선수, 프로레슬러, 심지어 거대로봇 아돌프 로보틀러까지, 더욱 사이즈를 키운 속편은 쿵푸영화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 다양한 장르 간 이종교배를 실험한다.

영화산업이 없다는 것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악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말과도 같다.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로 제작부터 배급까지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진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하자 저예산 장르영화와 아류작을 양산했던 로저 코먼Roger Corman이나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에드 우드Ed Wood가 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돈의 논리 바깥에서 혹은 우리가 상업영화에 기대하는 개연성의 바깥에서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같은 영화는 가능해진다. 무엇이든 흡수하여 뒤섞을 수 있는 영화, ‘쿠소영화’는 그런 영화를 위한 이름이기도 하다.

[essay]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_17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Writer

박동수 평론가(@dsp9596)는 제3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비평상과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영화와 게임을 주로 다루지만 종종 미술이나 방송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료 평론가들과 함께 영화비평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크리틱›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명의 비평집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첫 단독 저서인 에세이 『쿠소필리아』를 준비 중이다.

有印良品 유인양품5-잡지적인 것

[BA]섬네일
Report

[ESSAY]유인양품5_1

휴간북스의 간판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디지털의 속도에 밀려 종이 매거진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충무로 인쇄 골목 한편으로 자리를 옮긴 ‘휴간북스’는 조금 다른 속도로 시간을 기록합니다. 많은 매거진이 고유의 영향력을 잃고 사실상 이커머스나 브랜드를 위한 광고 지면으로 전락해 버린 오늘날, 휴간북스는 잡지가 지닌 본연의 가치에 다시금 주목하죠. 그렇지만 휴간북스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진열하는 아카이브에 머물진 않습니다. 치밀한 큐레이션과 진정성 있는 협업으로, 단순한 정보 전달만이 아닌 ‘태도와 취향’을 통해 동시대 문화를 새롭게 엮어냅니다. 수많은 매체가 소리 소문 없이 멸종해 가는 시대, 휴간북스는 여전히 종이 매체의 가치를 긍정하며 ‘잡지적인 것’의 힘을 증언합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잡지의 가치를 책임감 있게 지켜나가는 휴간북스의 풍경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들여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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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히 들어찬 휴간북스가 취급하는 잡지들

휴간북스는 지난 2025년 12월, 매장을 성수동에서 충무로로 옮겼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세운상가 옆, 남으로 충무로, 북으로 을지로 사이의 마른내로, 흔히 ‘을지로 인쇄 골목’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성수동의 휴간북스가 실험적인 팝업에 가까웠다면, 충무로의 휴간북스는 머물 수 있는 공간이죠. 책과 잡지가 인쇄 골목의 역사와 환경에서 다시 읽히면서, 이제는 이 공간 자체가 휴간북스의 메시지라 생각해요.” 사진가이자 휴간북스의 디렉터 심재는 말한다. 휴간북스는 X의 팔로워 숫자처럼, 아직 있고 보이지만 문화적 영향력은 잃은 대상, 잡지를 취급한다.

ESSAY유인양품5_3

휴간북스 내부

요즘의 소비자 경향을 일컫는 단어 가운데 ‘필코노미Feelconomy’가 있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위해 지갑을 여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잡지는 필코노미의 관점에서 흥미롭다. 과거의 잡지는 필코노미의 정확한 예였다. 사람들은 『보그Vogue』를 사고 『보그』를 안 읽었다. 『보그』를 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소비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정체성 소비의 대체재가 넘쳐나는 데다, 잡지 스스로 정체성을 버렸다.

ESSAY유인양품5_4

휴간북스 내부

ESSAY유인양품5_5

휴간북스 내부

콘데 나스트Condé Nast의 이커머스 매출은 최근 4년 사이 5배로 늘었지만*, 2023년 전체 인력의 5퍼센트를 감원하면서 “편집과 크리에이티브 저널리즘 작업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이 계획의 방향”**이라 밝히고, 실상 2024년 4월 기준 『지큐GQ』, 『보그』, 『배니티 페어Vanity Fair』 등의 편집, 영상, 오디언스 개발 부문 직원 94명을 대기발령 상태에 두고 아카이브 작업을 시키며 방치하고 있다.*** 이커머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편집 조직은 오히려 줄인 것이다. 편집력이 아닌 과거의 유산,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이 당장 돈이 되기 때문이다. 잡지가 잡지이기를 포기하며 살아남았다.

*「Condé Nast is defining what commerce success looks like」, 『INMA』

**「Condé Nast Laying Off 5% Of Its Workforce, Citing “Volatile” Nature Of Digital Video Marketplace,  『Deadline』

***「Condé Nast Purgatory: Dozens of Staffers Marked for Layoffs Bide Time at “Central Editorial Group”, 『The Hollywood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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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간북스에서 배포 중인 『크랙 매거진Crack Magazine』

하지만 잡지가 기댈 곳도 필코노미다. 작은 규모와 그 편집력을 유지하는 잡지의 경우 여전히 컬트적인 지지를 얻는다. 『셀프 서비스Self Service』나 『판타스틱 맨Fantastic Man』이 대표적이고, 전문지에 가까운 촘촘한 관점으로 만드는 잡지는 여전히 매력적이어서 지금도 수없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파비언 배런Fabien Baron은 『더 토크스The Talks』와 가진 2026년 6월 인터뷰에서 균형 잡힌 관점을 말한다. “지금의 인쇄 매체는 정말 끔찍한 상태예요. 잡지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죠. 하나는 대형 미디어 잡지들로,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길을 잃었어요. 서비스도, 뉴스도 잃었어요. (중략) 다른 한편의 소규모 잡지들, 비주류 잡지들이 있는데 그들은 정반대예요. 놀랍고 예술적인 비주얼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인 패션 관점이 없어요. 흥미로운 기사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다소 난해해요. 한쪽 끝에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것, 다른 쪽 끝에는 난해한 것. 그 중간 어딘가에서, 글로, 이미지로, 개념으로, 디자인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아주 강한 관점을 가진 잡지를 찾기가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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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간북스의 ‘명예의 전당’처럼 보이는 디스플레이

심재는 지금 잡지가 처한 상황에 던지는 질문 같은 말로 잡지를 설명한다. “디지털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가 같은 속도로 소비돼요. 반면 잡지는 누군가의 시선과 편집, 시대의 공기, 종이의 물성까지 함께 남죠.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태도와 취향의 기록물이라 생각해요.” 기성 잡지에게는 지금 거의 순진하게 들릴, 그러나 그 본령에 해당하는 의견이, 잡지를 겪지 못한 세대, 그럼에도 잡지를 취급하는 세대의 서점 운영자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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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간북스에서 구매한 잡지 『멋진 문방구すごい文房具』

휴간북스는 잡지라는 과거의 유산을 다루지만, 그 방법까지 과거의 것은 아니다. 일종의 ‘매거진 바잉 트립’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데 그 과정까지 세세히 기록하고 공개한다. “어디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와 함께 발견했는지를 책의 일부”로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휴간북스에 있는 잡지는 좋게 말해 다양하고, 나쁘게 말해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기획의 부산물이라 보는 편이 합당하다. 매번 다른 기획으로 잡지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나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를 다룬 잡지를 모은 아카이브성 기획도 있었고, 90년대 『아이-디 재팬i-D Japan』이나 『더 페이스The Face』처럼 잡지를 중심으로 다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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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간북스가 브랜드 살로몬과 함께 만들고 배포 중인 『살로몬 매거진 –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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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몬 매거진 – 진도』와 마주보고 있는 스니커즈와 사진 작품

잡지는 브랜드와 분리될 수 없는 운명을 가졌지만, 휴간북스의 브랜드 협업은 광고 에이전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지금의 잡지와 다른 결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함께한 브랜드 마샬, 반스, 스톤 아일랜드, 나이키, 살로몬의 흔적이 지금도 공간을 구성한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살로몬의 경우, 『살로몬 매거진Salomon Magazine』의 첫 번째 이슈 ‘진도Jindo’를 함께 만들고 배포했다.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를 먼저 봐요. 좋은 협업은 브랜드를 주인공으로 남겨두면서도 문화적인 장면을 남기는 일이라 믿어요.” 그의 말에서, 어쩌면 지금 대부분의 잡지에 유일하게 없는 것은 책임감이 아닐까 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언론에 대한, 나아가 역사에 대한.

물론 휴간북스는 탄생한지 채 3년이 안 된 공간이고, “태도와 취향”은 한번에 쌓는 것이 아닌 오래 쌓는 것이다. 심재는 먼 미래의 계획을 밝혔다. 참으로 잡지적이었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에게 “그 시대의 감각은 휴간북스를 보면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가장 의미 있겠죠.”

[ESSAY]유인양품5_11

휴간북스 내부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 『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 

증상앤살리단길-순례자의 드라이브(Trieb)

[BA]섬네일
Report

[ESSAY]김지혜_1

영화 ‹살목지› © 쇼박스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스크린 속 공포가 스크린 밖 현실까지 점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괴담의 배경이 된 저수지 살목지는 어느새 “살리단길”이라는 별명이 붙은 핫플레이스가 되어 새벽마다 귀신도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의 방문 행렬을 맞이하고 있죠. 우리는 왜 굳이 으스스한 심령 스팟으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걸까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영화 로케이션 투어를 넘어 괴담을 능동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현시대의 고스트 투어리즘 현상을 짚어 봅니다. 김지혜는 프로이트의 운하임리히 개념에 착안한 피셔의 ‘으스스함’에 대한 정의, 그리고 상상력이 쇠퇴한 시대를 꼬집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시선을 토대로 이 기묘한 열풍을 읽어 냅니다. 단순히 유령을 찾으러 가는 길(Drive)이 아니라,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일상의 권태를 자본주의적 감각으로 소비하려는 우리 안의 기이한 충동(Trieb)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들여다보세요.

[ESSAY]김지혜_2

영화 ‹살목지› 포스터 © 쇼박스

증상앤더시티

증상앤더시티는 ‘도시’ 속 우리가 겪는 ‘증상’을 분석한다기보다 증상 속 우리의 향유가 얽혀 있는 틈새를 비추며, 나만의 예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생을 직조해 내는 고유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티스트·아트세러피스트로 정체화하는 저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통해 비스듬히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개인의 증상을 형성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내포한다.

“도시의 증상이면서, 도시가 증상이다.”

살목지가 살리단길이 되었다. 예산군의 저수지인 살목지는 예전부터 밤낚시꾼들 사이에서 괴담이 돌던 곳이었는데, «심야괴담회»에 소개된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리단길” 작명이 따라붙는 핫플 심령 스팟이 되었다. 귀문이 열린다는 새벽 1~3시 사이 살목지로 가는 차량 190대의 행렬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고, 살목지 드라이브 체험 블로그도 등장했다. 살목지에서 퍼 온 물 소분 나눔부터 반려동물 동반 가능 여부까지 생활 정보형으로 꼼꼼하게 챙긴 이 게시물의 댓글은 진짜 광기 혹은 양기라는 반응이 다수이지만, 몇몇 방문자는 댓글이 지워졌다거나 닉네임이 다르게 보인다는 제보로 괴담 확산에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누군가는 살목지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관람하고 정보를 찾으면서도 어딘가 으스스한 기운을 느끼는 저자와는 양기의 급이 다르다. 사람들의 출몰에 귀신도 질려 도망가겠다며 귀신의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밈도 등장할 정도로 살목지는 유명해졌고 현대식 자본주의 퇴마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결국 현시점 살목지의 야간 통행은 제한된 상태이다.

왜 사람들은 괴담에 몰입하고 심령 스팟에 찾아가는 것일까? 사실 공포물을 즐기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현실로 돌아왔을 때 안도하며 느끼게 되는 안전한 카타르시스이다. 일상적 권태에서 벗어나 강렬한 감각 경험을 원하면서도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소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살목지 순례 현상처럼 불안이 실제 장소로 옮아와 체험형 공포가 되면 현실에서의 안전함이라는 경계를 벗어나는 지점이 생긴다. 이에 상응하듯 최근의 괴담은 스크린을 벗어나 체험이 가능한 장소를 만드는 장치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여기에 SNS 후기 등이 미디어에 노출되면 괴담은 확산되고 장소는 관광화되어 더 매력적인 것으로 소비된다. 심령 스팟은 공포 그 자체보다는 이러한 집단적 정동이 전염된 장소의 체험 가능성으로 핫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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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장릉 전경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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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청령포 포구 © 국가유산포털

살목지 순례를 단순히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가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 관광 열기로 이어진 스크린 투어리즘의 사례로만 읽으면 현상은 납작해진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미적 체험과 휴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나 재난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여 역사적 비극을 애도하고 반성하며 교훈을 얻는 대안 관광의 형태이다. 이는 전쟁, 묘지, 식민지 역사, 홀로코스트, 재난, 감옥, 고스트 투어리즘 유형으로 분류된다. 살목지 순례는 이러한 분류 중 고스트 투어리즘으로 볼 수 있으며, 타 유형과 달리 즐거움 추구가 그 목적에 가깝다. 공포가 내부에서 안전하게 유통되는 감정 상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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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 Zero 전경 © Axel Houmadi

다만 공포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지역에 들러붙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민감한 문제이다. 아침 방송에 출연한 지역 주민은 살목지 성지순례로 아직은 지역 경제 활성화 같은 장점보다 밤중의 소음이나 공포 이미지 고착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포영화 ‹곡성›의 사례처럼 지역 이미지 실추가 우려될 때 지역과의 관련성을 지우지 않고 역발상 홍보로 전환한 경우도 있는 만큼(군수는 브랜드상을 받았다), 예산군도 충주맨식 지역 홍보 문법으로 발 빠르게 지역 홍보에 동참하고 있다. 현재 예산군의 유튜브에는 살목지를 “살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패러디한 영상이 올라와 괴담은 농담으로 중화 혹은 진화 중이다.

살목지 순례는 언캐니uncanny한 장소 경험의 소비로 볼 수 있다. 언캐니는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한 낯익은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감각인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영역이다. 영화 속 살목지의 공포가 시작되는 곳은 사실 실제 저수지라기보다는 로드뷰 화면이다. 심령 스팟으로 유명한 장소에 갔다가 괴이한 현상에 휘말린다는 내용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말 그대로 발견된 영상 속에 무언가 있다는 공포영화의 형식에 충실하다. 카메라 화면 안에 있어서는 안 될 형체가 포착되고, 내비게이션 속 있어야 할 경로는 끊겨서 같은 곳으로 계속 돌아오게 한다. 땅과 물의 경계가 모호한 저수지, 있던 장소에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돌탑,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없어야 할 것이 있는 풍경에서 오는 이 불편한 감각은 마크 피셔Mark Fisher가 정의한 으스스함일 것이다. 사실 영화 ‹살목지›에는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장면이 많고, 귀신도 점점 늘어나서 후반부로 가면 긴장감을 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너무 많은 귀신이 가장 덜 으스스한 것일 수도 있다.

케인 픽셀즈, ‹백룸The Backrooms(Found Footage)›, 2022

피셔는 언캐니가 공포영화 문법의 해석에 미친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그 속에 구겨 넣지 않고 구분하는 시도를 한다. 둘 다 외부 세계를 지각함으로써 내부 세계를 인지하게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기이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의 출현, 으스스한 것은 풍경 속 존재와 비존재에 관한 질문, 즉 부재의 실패나 현존의 실패이다.

데이비드 린치,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 2001

피터 위어, ‹행잉록에서의 소풍Picnic at Hanging Rock›, 1975

또한 피셔는 자본주의를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로 제시하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세계에서는 대안적 상상력이 쇠퇴하고 더 이상 새로운 미래가 없다는 확신이 팽배하면서, 모든 건(과거조차) 단순한 소비 상품이나 심미적 대상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정치·경제 체계뿐 아니라 개인의 무의식과 욕망, 현실 감각 자체를 지배해서 사람들이 냉소적이고 무기력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심령 스팟은 초자연적 현상의 증거라기보다 자본주의가 봉합하지 못한 감각의 틈새가 된다. 예측할 수 있는 상태로 반복되어 새로울 것 없는 일상 속 강렬한 감각은 점점 희소해지고, 심령 스팟은 강렬함을 소비 가능한 형태로 제공하는 장소가 된다. 즉, 희소해진 강렬함의 경험은 다시 자본주의의 소비로 귀결된다. (예컨대, 인터넷 커뮤니티의 살리단길 관련 게시글의 댓글 중 일부는 살리단길에서 핫도그나 떡볶이를 팔겠다는 농담을 담고 있다.) 영화 소비는 관광지 소비로 이어지고, 소비는 더 큰 소비를 낳는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팬픽 등 2차 창작으로 대표되는 참여문화에서 관객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콘텐츠의 공동 생산자로서 역동적 주체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살리단길의 순례자도 이 능동적 모델에 부합하는 듯하다. 영화 관람 후 실제 장소를 찾아가 후기도 쓰며 원전을 확장하는 공동 저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리단길의 순례자에게 살목지 귀신의 존재를 믿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진지하게 귀신을 믿는다면 두려움 때문에 새벽 3시의 차량 행렬에 동참하긴 어려울 것이고, 완전히 불신한다면 굳이 서울에서 예산까지 차를 몰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안 믿지도, 믿지도 않으면서도 가는 행위는 원작에 대한 애정과 몰입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냉소적 태도가 아닐까. (물론 사람들은 단순히 갈 곳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작품을 향한 애정과는 무관한 이동이 된다.) 순례는 믿음과 불신 사이 균열의 지점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고스트 투어리즘은 이 같은 이중 구조의 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된다.

[ESSAY]김지혜_9

루마니아 호이아-바치우 숲 © Pal Szilagyi Palko

드라큘라의 고향인 트란실바니아 지역에 있는 호이아-바치우Hoia-Baciu 숲은 세계에서 유령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곳으로 알려진 초자연 현상의 순례지 중 하나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을 투영하는 숲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도 개발업자가 아파트 단지 건설을 위해 벌목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자본주의는 어디에서나 리얼하다.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겸하는 NGO의 친환경(?) 투어 프로젝트에서는 드라큘라의 창조자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후손과 함께 숲의 신비를 밝히는 야간탐험을 기획하기도 한다.

[ESSAY]김지혜_10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Dracula』, 1897, Archibald Constable and Company

다시 살목지로 돌아오면, 앞선 순례자 블로거의 덤덤함 혹은 ‘아방함’은 믿음과 불신 사이에 놓여 있다. 순례길에서 고장 난 핸드폰 거치대나 꺼진 블랙박스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살목지의 물을 떠 와서 나눔을 위한 물품처럼 다루며 공포를 부정하듯 행동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기이한 모양의 나무와 자고 일어나니 생겨있다는 방바닥의 물 자국을 사진으로 전시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살리단길의 순례자는 공포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기 체험을 드라이브 후기로, 인증샷으로, 지도 앱 별점으로, 댓글로 제작해 유통하고 확산시킨다. 영화로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 후기, 그리고 유튜브로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공포를 소비하는 행위가 공포의 생산에 가담하는 행위로 전환된다.

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이 같은 괴담에서 파생된 현상의 이중 구조를 소설의 형식 자체로 실험한 작품이다. 인터넷 게시글, 편지, 인터뷰 기록 등을 콜라주한 페이크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괴담을 소비하는 주체가 괴담을 만들어 간다는 순환 구조는 모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 속 편집자는 파편화된 괴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실종되고,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 역시 저주에 가담하고 있다는 메타적 설정까지 덧붙였다. 괴담을 소비하려고 접근했다가 곧 괴담 전파와 생산에 참여하게 되는 구조로,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괴담 현상에 가담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괴담이 만들어진다.

살리단길 드라이브 블로그 글은 이 문법의 현재 진행형이다. 살아 있냐는 댓글과 스크랩은 늘어 간다. 또 하나의 괴담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모두가 목격한다. 방바닥의 물 자국은 괴담의 증거라기보다, 어쩌면 이 괴담이 독자의 방으로 혹은 일상으로 옮겨가면서 만들어진 메타 서사의 기록이다. 귀신은 이제 영화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가상의 공포는 현실의 장소를 점유했다. 괴담의 장소는 발견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 체험과 그 기록의 디지털화를 통해 새롭게 발명되는 중이다.

[ESSAY]김지혜_11

세스지,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2025, 반타

영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예고편

이렇게 사람들은 살목지에 귀신을 보러 가는 것이라기보다 귀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러 간다. 살목지의 순례자는 드라이브 겸 살목지로 향했다. 드라이브(drive)는 독일어 “Trieb”의 번역으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인간의 충동이기도 하다. 충동은 만족을 완결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운동이며, 증상의 형태로 반복된다. 살리단길을 향한 드라이브는 괴담의 공동 저자가 되려는 주체들의 드라이브(Trieb)다. 그곳에서 소비되는 것은 유령 그 자체가 아닌 유령을 끊임없이 현존하게 만드는 참여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령이 사는 곳은 이제 저수지라는 장소가 아니라 블로그와 스크린이라는 디지털 콘텐츠 속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Solaris›, 1972

Writer

김지혜 박사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로, ‘아트애즈테라피(artastherapy.kr)’를 운영하며 예술 치료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의 관점을 교차하고, 창작과 치유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연구 주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사회정의 미술치료와 반응작업 미술치료가 있다. 앞으로 미술과 음악, 문학, 무용 동작 등을 통합하는 예술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공미술, 전시,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자 한다. 저서로는 『치유로서의 미술』(글로벌콘텐츠, 2021)이 있다.

전일담

[BA]섬네일
Report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1

Photo by Eilon Paz for ‘Dust & Grooves’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새로운 코너를 기획하는 일은 언제나 백지 위에 조심스럽게 첫 점을 찍는 일과 같다. 비애티튜드의 지면에 새로운 음악 연재 코너를 더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가장 먼저 우리가 세상을 그리고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에 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음악에 어떤 방식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까? ‘새로운 음악을 시의성 있게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어보자.’라는 막연한 제안에서 출발한 신규 연재 코너의 윤곽을 그려가는 과정은 결국, ‘왜?’라는 질문을 붙잡고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소리를 감각하는 영점을 다시 맞추는 일이 되어 갔다.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2

2015 서울 레코드 페어 전경 © 서울 레코드 페어

왜 대중음악인가, 왜 하필 신보인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은 첫 화면만 보더라도 늘 숨이 가쁘다. 매일 자정이 지나면 새로운 음악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알고리즘은 쉴 새 없이 그 음악을 들려준다. 약간은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수많은 음악을 계속해서 들이미는 이 거대한 파도는 심지어 정교하기까지 하다. 각자의 청취 이력과 저장 내역을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기존에 들었던 곡이나 좋아하는 음악가의 정보를 토대로 금세 재생 목록에 이질감 없는 다음 곡을 슬쩍 밀어 넣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 추천은 음악 취향처럼 아주 창의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에서조차 너무나 자연스럽게 먹혀든다. 정말로 한낱 인간이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알고리즘을 이길 확률은 점점 낮아지는 것만 같다. 그런데도 왜 ‘굳이’ 대중음악을, 그것도 매달 발매되는 ‘신보’를 ‘지금’ 다루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애티튜드는 더 많은 사람이 각자의 재미있는 아티스틱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기 바란다. 그 발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작가와 브랜드 곁에 머물며, 그 이면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매거진이다. 그렇기에 효율의 문법을 비켜가는 비애티튜드가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빠르게 휘발되는 대중음악 시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그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어쩌면 커다란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3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스포티 파이 홈 화면

하지만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새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다. 역설적으로 누군가는 그 빠른 흐름 한가운데 뛰어들어 단단한 닻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매체에서 신보를 소개하는 일의 의미는,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유행의 최전선을 선점하거나 트렌드를 좇는 데 있지 않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이미 그런 작업은 정교한 알고리즘을 갖춘 플랫폼에 따라 효과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너무 빠르게 휩쓸려 지나 갈 뻔한 동시대 창작자의 땀과 고민을 세심하게 곁에 붙잡아두고자 한다. 특히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신보 더미 속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쉽사리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음악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싶다. 예컨대 실험적인 노이즈와 최신의 방법론을 구사하는 전자음악처럼 많은 이가 관심을 두기 어려운 마이크로 장르의 음악을 비롯해 오롯이 음악가 개인이 DIY로 제작해 유통 구조상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음악까지, 다양한 이유로 놓치기 쉬운 새로운 음악을 조금 천천히 경청하려 한다.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4

© Banfield,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2/7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탄생한 코너의 이름은 ‹12/7› 이다. 이 타이틀 옆에는 “12인치 앨범과 7인치 싱글, 나란히 놓인 두 신보를 함께 들어 봅니다”라는 짤막한 이정표를 달아둘 예정이다.

직관적이면서도 은유적인 이 설명을 통해 비애티튜드가 음악을 대하는 깊은 애정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바이닐 시절, 음악가가 구축한 하나의 완전한 세계와 긴 서사를 대변하는 앨범 은 대체로 12 인치 크기의 판에 담겼고, 짧고 강렬한 메시지나 실험적인 시도를 포착한 싱글은 보통 7인치 크기의 판에 담겼다.

우리는 매달 무수히 발매되는 신보 중 단 두 개의 작품만 골라낼 생각이다. 하나는 긴 호흡으로 세계관을 묵묵히 구축해 낸 12인치의 ‘앨범 ’이고, 다른 하나는 짧지만 예리하게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들려주는 7인치의 ‘싱글’이다. 거시적인 호흡 과 미시적인 찰나를 나란히 올려두고, 그 두 가지 양태의 음악이 서로 맞닿으며 또 다른 재미를 듣고 읽는 이에게 주기 위함이다.

덧붙이면, 다양성을 위한 나름의 선정 규칙을 하나 정했다. 앨범을 국내 음악가의 작품으로 선정했다면 싱글은 반드시 해외 음악가의 작품으로 고른다. 혹은 반대로 해외 음악가의 앨범을 다룬다면 국내 음악가의 싱글을 페어링한다. 언어와 문화, 씬(scene)의 규모 등은 모두 다르다 해도 동시대라는 시간 축 위에 놓인 음악가는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는 듯하다. 정말 이제는 영미권의 대중음악 씬과 국내 대중음악 씬 사이의 시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각 씬은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고유한 특색을 들려주기도 한다. 닮음과 차이 사이의 교차를 느슨하게나마 느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씬의 두 음악을 소개해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00한 분위기의 곡’과 같은 제목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다정하고도 치밀하게 직조된 비애티튜드만의 큐레이션을 선보이고자 한다.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5

밴드캠프 홈 화면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6

«암페어Amfair 2023»,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2023, 사진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미약한 연대를 위해

글을 담아내는 레이아웃과 화면의 디자인 역시 이런 사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콘텐츠의 가장 마지막, 독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CTA(Call to Action) 버튼 구성에도 비애티튜드만의 고집스러운 태도를 담았다. 애플뮤직이나 멜론 같은 거대 스트리밍 플랫폼의 링크를 최상단에 두면 가장 편리하겠지만, 우리는 밴드캠프 (Bandcamp)처럼 음악가를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는 플랫폼이나 뮤지션이 직접 운영하는 판매 링크를 최우선으로 제공하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구매 유도를 넘어선 창작자를 향한 작은 연대의 방식이다. 미약하게나마 음악 산업의 불균형적인 구조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소리를 빚어내는 음악가가 계속해서 다음 장면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지하려고 한다. 그들의 지난한 노동과 독립적인 창작 환경에 정당한 가치를 지급하고자 안내하는 것이야말로 비애티튜드가 매체로서 동시대 음악을 소개할 때 지녀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믿는다.

또한 어렵게 고른 1장의 앨범과 1개의 싱글 외에도 비애티튜드 매거진의 구성원들이 각자 열변을 토하며 어필했지만, 아쉽게 상세히 다루어지지 않은 신보를 모아 플레이리스트의 형태로도 공유하고 싶다. 세상에는 우리의 좁은 지면으로 미처 다 껴안지 못할 만큼 훌륭한 소리가 매일 태어나고 있다. 이는 차트의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방에서 혹은 작은 작업실에서 묵묵히 소리를 깎고 다듬는 수많은 창작자를 향한 우리의 작은 응원이다. 비록 긴 글로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트랙을 재생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치열한 작업이 누군가의 일상에 가 닿기를 바란다. 이 목록이 독자에게 뜻밖의 반짝이는 발견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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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티튜드에서 선보일 플레이리스트. 현재는 에디터 J가 최근에 즐겨 들었던 국내/외 곡을 일부 담아두었다.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8

Christian Marclay, ‹Record Without a Cover›, 1999, 12-inch vinyl record © 2026 Christian Marclay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9

Photo by Jack Barton

기어코 멈추어 서서

마지막으로 연재 콘텐츠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매달 발행일 기준 1주일 전까지 발매된 수많은 신보를 살피고 선별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매끄러운 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거칠고 낯선 소리의 숲을 직접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굳이 그렇게 품을 들여 피곤하게 음악을 들어야 하느냐고 묻겠지만, 음악가가 소중히 품어온 소리를 최대한 놓치지 않기 위해 비애티튜드는 기 꺼이 집요한 탐색을 감내하기로 한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가 단순히 신보를 소개하는 창구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음악에 담긴 마음을 섬세하게 함께 짚어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고심 끝에 건져 올린 동시대 음악가의 소중한 작업은 매월 마지막 화요일 독자들의 곁에 조용히 또 때로는 강렬히 놓일 것이다. 5월, 비애티튜드 매거진에서 첫선을 보일 ‹12/7› 코너를 통해 낯선 사운드가 각자의 공간에 울려 퍼지며, 미처 만나지 못했을 뻔한 음악의 이면을 새롭게 비춰주는 시간이 모두에게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ssay]비애티튜드_전일담_10

Photo by Oleg Ivanov

Writer

비애티튜드 매거진은 재미있는 아티스틱 라이프스타일이 시작되는 곳이다. 주목받는 작가와 브랜드의 신선한 콘텐츠로 독자를 찾아간다.

비애티튜드 매거진은 아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만한 콘텐츠를 발행한다. 아티스트의 진솔한 이야기와 작업 철학, 고유한 삶의 방식을 매력적으로 전달한다.

증상앤더시티-그리고 어떤 것은 불가능하지

[BA]섬네일
Report

[ESSAY]증상앤더시티4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어떤 죽음은 포름알데히드 속에 고정되고, 어떤 죽음은 공기 중에 천천히 흩어집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나란히 열리고 있는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와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묘하게 서로를 비추는 두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한쪽은 죽음을 박제하고, 다른 쪽은 소멸을 허용하죠. 그런데 정말 두 전시 모두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걸까요? 김지혜는 두 전시를 가로지르며 ‘왜 어떤 죽음은 전시되고, 어떤 죽음은 애도만 가능한가? 그리고 그 배치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의 권력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허스트의 냉소와 오만함이 스스로 실패하는 지점, 삭는 미술이 열어두는 가능성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SSAY]증상앤더시티4_2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2007, 은, 250 × 110 × 95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증상앤더시티

증상앤더시티는 ‘도시’ 속 우리가 겪는 ‘증상’을 분석한다기보다 증상 속 우리의 향유가 얽혀 있는 틈새를 비추며, 나만의 예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생을 직조해 내는 고유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티스트·아트세러피스트로 정체화하는 저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통해 비스듬히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개인의 증상을 형성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내포한다.

“도시의 증상이면서, 도시가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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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amien Hirst: Nothing Is True But Everything Is Possible (2026),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죄인›, 1988, 유리, 마감된 파티클보드, 비치 목재, 플라스틱, 알루미늄, 인체 해부 모형, 메스, 의약품 포장재, 137.2 × 101.6 × 22.9 cm © 국립현대미술관

두 죽음 사이, 두 전시 사이

“움직임은 일종의 삶을 암시한다. 그것들이 멈추는 순간 곧 부패하기 시작하고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전시 속 그의 말이다. 삶과 죽음을 대립시키는 이 진술을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전시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에 대응하는 두 층위로 나누어 보려 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죽음인가, 부패하는 것이 죽음인가? 허스트의 전시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전시에서는 유리장 안 포름알데히드 속에 움직임을 멈춘 상어가 보존되어 있고, 삭는 전시에서는 공기 중에 과일이 썩고 있다. 전시는 각각 죽음과 소멸을 말한다. 죽음을 고정하거나 소멸의 과정을 드러내며, 죽음을 구성하는 시간을 통제하거나 작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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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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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허스트가 ‘우리 시대의 많은 것을 말해 주는 증상적인 예술가’로 자리 잡은 시기는 이미 우리 시대가 아니다.

미술 시장과 권력을 비판하는 데서 시작되었을 그의 전시를 둘러싼 논쟁마저 전시의 일부가 되어 흥행을 뒷받침한다. 이런 현대미술의 증상은 반복되어, 그 자체로 현대미술이 되어 왔다.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라는 전시 제목이 함의하는 허스트의 냉소와 오만함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애도가능성grievability, 즉, 어떤 죽음은 처음부터 죽음으로 등록되지 않는다는 개념을 소환하게 한다. 이는 인간의 삶까지만을 경계로 설정하지 않는다. 어떤 죽음이 전시되고, 어떤 죽음은 애도가 가능한가? 왜 모든 생명은 동일한 정치적 가치를 갖지 않으며, 어떤 죽음은 인간종을 위해 도구화되는가? 어떤 죽음을 어떻게 기리고, 어떤 소멸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이 배치가 곧 권력이 된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독해하며 생물학적 죽음과 상징적·사회적 죽음이라는 두 죽음을 비교한다.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는 반역자가 되어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지만 왕의 명령으로 매장이 금지되었다. 안티고네는 국가의 법을 어기고 오빠의 장례를 치른다는 자기 욕망의 윤리를 지킨 대가로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동굴에 갇혀 상징적으로는 죽은 상태가 된다. 폐위되고 반역자로 몰려 죽은 단종과 그 시신을 수습하지 말라는 세조의 명을 어겼던 엄흥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연상된다. 이 두 죽음 사이Entre-deux-morts 공간, 첫 죽음은 완료되었지만, 두 번째 죽음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안티고네가 욕망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기에 빛나던 숭고한 공간을 허스트는 포름알데히드로 메워버린다. 그곳엔 정지된 죽음과 애도 불가능성만이 남는다.

허스트가 제시하는 죽은 상어, 나비, 해골은 죽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반복함으로써 점차 무디게 만드는 것이 된다.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후기 반복강박을 쾌락 원칙을 넘어서는 멈출 수 없는 충동으로 보았다. 해소되지 않기에 반복은 지속되며, 동일한 구조를 재생산한다. 그가 죽음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전시한 상어와 해골은 그저 형식이 되고, 그가 말하고자 했을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는 약화되어 결국 무력화되는 모순에 놓였다. 죽음은 보이지만,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허스트는 연작으로 작업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반복이라는 ‘끝없음’이 어떻게 죽음을 이론적으로 피하게 해 주고 죽음의 공포를 마비시키는지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작품인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죽음을 물신으로 뒤덮어 부인하고자 하는 페티시즘의 형태로,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 아니라 끝없이 반복되어 소비되는 다이아몬드라는 영원의 이미지로 고착된다. 허스트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에게 죽은 예술가를 위한 미술관인 테이트에서는 전시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후 세월이 지나 회고전을 열며 스스로 살아 있는 유물이 된 것을 즐기는 듯하다. 허스트의 영속화 집념은 자신의 스튜디오를 미술관 안으로 삽입해 박제하려는 욕망에서도 나타난다. 예술가의 현재 시간을 미술관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구겨 넣는다.

David Bowie, Damien Hirst and Julian Schnabel. 사진 Roxanne Lowit. 출처. artnet

[ESSAY]증상앤더시티4_7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백금, 다이아몬드, 인간의 치아, 17.1 × 12.7 × 19 cm,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허스트는 사후 200년간 작품이 생산되도록 노트 200권을 채우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죽은 뒤에도 작품을 제작할 권리를 판매하겠다는 것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불멸을 기획’하는 것이다. “죽음을 외면하려고 애쓰며 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더 큰 활력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꽃이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안타깝게도 그가 하는 모든 사회 실험에 가까운 행위가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려는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꽃은 시들기에 더 아름답다는 미적 판단은 별도로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쩌면 시신 안치소에서 시신과 찍은 자신의 사진 ‹죽은 사람의 머리와 함께›에서처럼 웃고 있는 것으로 가장했지만, 속으로 공포에 질려 있던 16세 시절의 외상을 반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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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 1991, 알루미늄에 사진 프린트, 57.2×76.2cm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London 2023

전시와 함께 배포된 작가 프로필 사진,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전시 포스터에 사용된 작품)에서 죽음의 물리적 실체인 상어는 보존의 실패로 부패되었고, 새로 포획·제작되어야 했다. 이 실패는 다른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동물은 알아서 잘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 생의 무상함을 사유하는 데 다른 종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왜 어떤 종의 죽음은 메멘토 모리를 위한 소재로 지정되었는가. 허스트가 ‹희생제물›을 만들고자 할 때 동물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작가의 불멸을 (명성과 자본까지) 생산하는 도구가 되어 생명이 배반당했다. 아쉴 음벰베 Achille Mbembe는 『죽음정치』에서 “주권은 누가 살아도 되고, 누가 죽어야 하는지를 지정하는 권력”이라고 하였다. 이 힘은 인종, 식민성, 종의 위계와 분리되지 않는다. 왜 어떤 파리의 죽음, 어떤 상어의 죽음은 이용될 수 있었나. 이 모든 죽음의 층위와 위계를 만드는 (특히 백인 남성의) 저자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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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제물›, 2009, 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철, 니켈, 황동, 고무, 채색 및 래커 마감된 MDF, 아크릴, 의료 및 외과용 기구, 물고기 뼈, 물고기, 포름알데히드 수용액, 195.6 × 375.9 × 50.8 cm, © 국립현대미술관

허스트의 등장 이후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비인간종 간 공생이 중요한 포스트휴먼 시대는 이미 도래했고 전지구의 관객은 더는 (여전히) 참지 않는다. 허스트가 유리상자 안에 파리의 죽음 생태계를 만든 작품 ‹천 년›에서 소머리만 제거 된 ‹백 년›이 독일 전시에서 동물권 단체의 항의와 시립 동물병원의 경고로 철거되거나 허스트의 베니스 전시 때 전시장 입구는 구조된 동물의 배설물 40kg으로 더럽혀졌다. 국내에서도 지난 4월 3일, 실제 동물의 죽음을 인간 중심의 미적, 개념적 장치로 도구화하는 작가와 그에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한 미술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성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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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1990, 유리, 철, 실리콘 고무, 채색된 MDF, 전기 해충 퇴치기, 소 머리, 피, 파리, 구더기, 금속 접시, 솜, 설탕, 물, 207.5 × 400 × 215 cm,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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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g drop outside the Palazzo Grassi in protest of Damien Hirst, Photographed by courtesy 100% Animalisti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규탄 성명서 게시물

90년대에는 센세이셔널했을 작품들이 동시대적이지 않다는 것은 인류세를 논하는 미술관의 다른 전시에서도 확인된다.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소위 불후의 명작들의 수장고인 미술관이 스스로 분해되는 작품의 전시를 통해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술의 형식을 탐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로 식물과 미생물이 썩고 발효하는 과정이 전시되고, 공생의 공동체도 그려보게 한다. 죽음의 주권을 허스트라는 저자성이 탈취한 앞의 전시와는 달리 이 전시는 소멸의 행위자성을 비인간종에게 부여하고 있다.

다만, 에드가 칼렐Edgar Calel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속 과일이 부패하자 미술관이 관리의 주체로 기능하는 지점이 생겼다. 칼렐은 돌로 제단을 만들어 과일과 야채를 올리고 과테말라 토착민 공동체의 영성과 의례를 보여준다. 앞선 테이트 모던의 전시에서 미술관은 칼렐의 작품이 소유의 대상이 아님을 인정하고 작품의 ‘보호자’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전시를 재방문했을 때, 한 달 반 전에 봤던 과일은 시간을 역행하듯 주름이 펴져 있었고, 미술관은 부패가 심한 과일을 주기적으로 교체한다고 설명했다.

폐기를 위임받은 미술관은 관리의 주체가 되었고, 삭는 미술에서조차 소멸의 시간이 정지되었다. 죽음의 물리적 실체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정작 부패가 진행되자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여 자연을 소거하고자 하는 허스트의 증상은 실은 현대미술의 숙명일까.

반면 유코 모리의 ‹분해› 속 에너지를 추동하는 전극이 꽂힌 썩어가는 과일은 한 달 반 전 전시를 보았을 때보다 삭아있었다. 허스트가 만든 유폐의 상자 속 죽음의 시스템이 아니라 소멸에서 생성까지 이어지는 에너지의 순환 시스템이야말로 죽음과 죽음 이후를 사유하게 하였다.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RBSC)의 소멸이 아닌 발효, 더 나아가 사회적 발효의 개념은 미술관의 작품 소장이라는 기능과 그에 따른 오래된 권위의 발효까지 사유를 확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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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칼렐,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중 일부, 사진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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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칼렐,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중 일부, 사진 김지혜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가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라면, 허스트의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는 특정 시대에 특정 저자의 것으로 한계 지어진 진실을 박제하려고 반복한다. 그리고 이 반복강박은 허스트의 시도에서처럼 실패하기 때문에 반복된다. 허스트는 타자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고착된 공간에 가두고자 하였다. 허스트의 메멘토 모리는 죽음의 필연성을 수용하는 성찰적 장치가 아니라 죽음의 위계를 생성하고 죽음마저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전유의 증상이 되었다.

하지만 메멘토 모리는 자신의 죽음은 끝내 알 수 없는 인간이 타자의 죽음과 소멸로 향하는 시간을 목격하며 사유하는 윤리적 응답이어야 하지 않을까. 허스트의 전시에서는 결국 시간을 공간에 가두는 기획, 즉 죽음이라는 시간을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정치에 가두려는 시도의 불가능성만 남는다. 진실은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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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초사람›, 2021-2025, 풀, 마끈, 가변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6 © 국립현대미술관

Writer

김지혜 박사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로, ‘아트애즈테라피(artastherapy.kr)’를 운영하며 예술 치료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의 관점을 교차하고, 창작과 치유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연구 주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다문화 사회정의 미술치료와 반응작업 미술치료가 있다. 앞으로 미술과 음악, 문학, 무용동작 등을 통합하는 예술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공미술, 전시,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자 한다. 저서로는 『치유로서의 미술』(글로벌콘텐츠, 2021)이 있다.

길을 잃기 위한 지도

[BA]섬네일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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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이준희는 매일 자신만의 지도를 그립니다. 하지만 그에게 지도는 목적지에 닿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꺼이 이탈해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에 우연히 다가가기 위한 정거장에 가깝죠. 이준희는 모험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에스키스를 두 손에 쥐고, 게임이나 만화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부터 중세 연금술과 점성술의 도상까지 접붙이며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시킵니다. 그래서 그에게 드로잉은 방향을 일러주는 이정표인 동시에 길을 잃는 모험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완전한 정의를 거부하고 규정된 언어의 이면을 살펴보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 헤매는 이준희의 탐험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함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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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제단›, 2026, 혼합재료, 가변크기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는 이준희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공상을 많이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머릿속에 있는 것을 화면에 옮기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자기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청소년기부터였지만, 미대에 들어가서 대학원까지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늘 ‘일단 조금만 더해볼까?’라는 생각을 연장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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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길›, 2025, 캔버스에 유채와 연필, 53.0×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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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미로에서 죽은-죽지 않는 거미», 공간 파도, 2024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경기도 김포에서 작업실을 쓰고 있습니다. 작업실이 신도시와 시골의 경계에 있는 건물에 위치해서 신기한 느낌이 있어요. 가끔 옥상에 올라가 노을 풍경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작업실 한쪽 벽에는 드로잉과 포스터가 붙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제가 좋아하는 책과 피규어가 있어요. 최근에는 디지털 피아노를 하나 들였는데 작업이 안 풀리거나 스트레스받을 때 코인노래방 가듯이 연주하는 용도로 애용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주로 이미지 면에서는 평소에 접하는 게임, 만화, 영화, 소설, 음악 등에서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핀터레스트에 중세 연금술이나 점성술, 천문학 관련 이미지를 검색해 살펴본 후 드로잉하기도 합니다. 대학원에서 이론 수업을 듣거나 관심사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다 보면 그리고 싶은 장면이 많이 생각나기도 해요. 저는 주로 드로잉에서 출발한 작업을 하는데, 드로잉 시점에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나 음악, 소설, 만화 등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드로잉북 안에 드러나게 돼요. 그래서 평소에도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즐기려 하고 있습니다. 주로 제가 보거나 듣는 어떤 한 부분에 꽂히면 그걸 혼자 드로잉하거나 이리저리 변형시켜 보며 제 작업에 빌려옵니다. 썩은 달걀을 먹고 장염에 걸린 사건을 토대로 거대한 알을 그린 ‹알의 저주›라는 작업처럼 일상적인 사건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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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의 원리›, 2025, 캔버스에 유채, 90.9×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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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간›, 2025, 캔버스에 유채, 97.0×193.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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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의 저주›, 2023, 캔버스에 유채, 116.8×91.0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보통은 드로잉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캔버스 회화를 그리기에 앞서 많은 양의 드로잉을 하는데, 이때는 특정한 의도 없이 즉각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적 이미지를 손이 가는 대로 드로잉북에 옮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드로잉 중에서 캔버스 화면에 확장시켜 그리고 싶은 이미지가 생기면, 좀 더 정밀하게 에스키스를 하거나 그 드로잉에서 이차적으로 해석하거나 부여할 수 있는 의미를 다른 레퍼런스와 결합해 확장하려 합니다. 또한 산책하면서 잡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 갑자기 그리고 싶은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걸 드로잉으로 옮긴 뒤에 캔버스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대략적인 색과 구성 등 어느 정도 에스키스로 쓸만한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토대로 회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에스키스로 존재하는 드로잉은 저에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지도처럼 느껴져요. 지도를 통해 초기에는 빠르게 전체 구조를 설정하고,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화면을 조정합니다. 하지만 지도는 당연히 실제 땅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길을 잃으며 작업합니다. 그날그날 본 장면, 작업실에 튼 음악, 날씨 등 외부 요소가 캔버스 위에 덧붙여지고, 그 안에서 헤매기도 하고 찾기도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일부는 전혀 다른 화면이 되기도 하고 일부는 계획한 화면이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완성을 위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을 저의 창작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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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회귀하는 암모나이트›, 2024, 캔버스에 유채와 스프레이, 112.1×112.1cm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에 했던 개인전에서는 ‘변신술’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미지 안의 기호가 서로 연결되며 의미를 변형시키고 작동하는 과정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나무가 타오르는 지도›에는 여러 가지 시각적 기호와 도상으로 보이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를 형태적·의미적 유사성 같은 느슨한 연결고리를 통해 자의적으로 접붙여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마치 지도의 궤적을 스스로 그려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보는 사람이 이미지간의 관계를 따라가며 의미를 생성할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또한 지점토로 만든 입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 작업을 저는 드로잉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덩어리를 따라가며 색과 선을 입히며 부담 없이 임하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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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타오르는 지도›, 2026, 캔버스에 유채, 162.2×22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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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술의 제단», 유영공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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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술의 제단», 유영공간, 2026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만족스러운 점은 화면 구성이 이전보다 다양해졌다는 점이고, 불만족스러운 점은 여전히 완성의 선을 잡는 것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해먹고 작업실에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갑니다. 엄청나게 바쁠 때와 엄청나게 게으를 때를 시소 타듯이 극단적으로 오가며 사는 것 같아서 요즘은 느슨한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요즘 특히 체력과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루틴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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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m, Boom, Boom, Boom!›, 2023, 캔버스에 유채와 스프레이, 53.0×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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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e›, 2023, 캔버스에 유채와 스프레이, 116.8×9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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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탄생하는 암모나이트›, 2023, 캔버스에 유채와 스프레이, 162.2×130.3 cm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평상시에도 뭔가가 고정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에요. 어떤 것을 완전히 정의 내리기보다는 늘 규정된 언어 이면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편이에요. 이런 태도가 작업에서도 드러나는 게, 형상과 서사가 두드러지는 화면을 완성한 뒤에는 곧바로 추상적인 제스처 중심의 작업을 시작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방향의 작업을 번갈아 진행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평소에도 하나의 관심사에 깊게 몰입했다가 비교적 빠르게 다른 것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있어요. 작업에서도 때마다 꽂히는 도상이 다른데, 한 소재를 중심으로 여러 연작을 진행하다가 이제 충분하다 싶으면 다른 소재로 떠나는 편입니다. 또한 저는 말할 때 다른 무언가에 비유하며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알레고리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작업에서도 그런 태도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오면 작업과 상관없는 일을 하거나 충분히 쉬며 숨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생각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편이라 몸을 움직이는 달리기나 악기연주처럼 생각을 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일과 다른 일정을 병행할 때 작업 시간을 확보하는 부분에서 고민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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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al Rings 1›, 2025, 캔버스에 유채, 45.5×45.5 cm / , 2025, 캔버스에 유채, 45.5×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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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2024, 종이에 연필, 색연필, 사인펜, 15×32cm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꾸준히 하는 것과 재밌게 하는 것이요. 이 일이 엄청 정직하게 보상이 오는 일은 아닌 만큼, 지속 가능한 작업을 어떻게 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어렵지만, 작업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혹은 쉽게 가지 않으려는 태도를 갖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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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 가는 태양›, 2025, 캔버스에 유채, 162.2×130.3 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재밌는 작업을 하는, 즐겁게 작업하는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처럼 작업을 지속하며 잘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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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이준희(@jooneelee)는 인간-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형상을 배역 삼아 현실적인 단상과 초현실적인 모티브가 결합한 변신술적 이미지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성스러움과 키치함, 우울과 기쁨 등 이질적인 요소를 화면 위에 충돌시키고 조화시키며, 그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유머를 연출하는 데도 관심이 있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변신술의 제단»(2026, 유영공간), 단체전 «UnHeavenly»(2025, SPACE INK), 단체전 «어느날: 먼 미래에서 온 이야기»(2025, 피비 갤러리) 등이 있다.

有印良品 유인양품4-일체유물조一切唯物造

[BA]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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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의 ‘붉은 커튼’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영화를 추천하면, “넷플릭스에 있어?”라는 질문이 돌아오곤 합니다. 이런 흐름 한편에서 묵정동의 한 귀퉁에는 영화를 소중한 ‘유물(遺物)’로 대접하는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어요. 공간 ‘유물론(唯物論)’은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소품을 판매하거나 영화를 상영하며, 운영자 문동명의 오랜 영화 사랑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붉은 커튼 너머 빼곡히 들어찬 오리지널 포스터와 팸플릿은 상품이기에 앞서 영화를 둘러싼 물리적 대상이 여전히 가치 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기도 하죠.
 정우영은 단순히 새로운 영화 공간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물론’의 풍경을 단서 삼아 우리가 영화라는 대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방법론을 제안합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영화와 관련한 경험까지 집어삼킨 지금, 역설적으로 영화의 물질성을 되짚어가며 영화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에 관한 유물론의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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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에 진열된 포스터들

유물론(唯物論)이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만큼 일반 상식이던 때가 있었다. 인게이지먼트가 ‘SNS 사용자의 콘텐츠 참여율’이 아닌 ‘사회/정치 참여’를 가리키던 냉전 시대였다. 유물론은 인간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지 않고 존재(물적 토대)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공산주의 진영의 인식론이었다. 그만 단어는 시효를 다했을지언정 진단은 살아남았다. 예컨대 빈곤을 개인의 나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보는 지금의 관점이 유물론의 유산이다. 그리고 지난 3월, 공간 ‘유물론’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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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붙어있는 영화 팸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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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붙어있는 영화 팸플릿

‹트윈 픽스›의 레드룸이 떠오르는 붉은 커튼이 문을 마주보고 있다. 나머지 세 개 벽면에는 영화 포스터가 가득하다. 바닥과 천장 모서리 곳곳에도 영화 팸플릿이 책갈피처럼 돌출 됐다. 하지만 홀린 듯 공간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문득 당황할 수 있다. 종목이 영화라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업태가 보이지 않는다. 안내문도, 제품 설명도, 가격표도 없다. 유물론의 대표 문동명은 말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드나드는 ‘만만한 갤러리’였으면 했어요. 권위 없이 구경하는 공간이랄까요. 찾아오시는 분께 보는 재미를 드리고 싶었어요. 제 소장품까지 여기저기 배치한 건 과시가 아니라 저도 이런 영화, 이런 이미지를 좋아한다는 고백이에요. 물건을 파는 곳이기 전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방에 들어온 기분을 느끼셨으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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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에 진열된 포스터들

한국에서 특정 분야를 상품으로 다루는 방식은 두 갈래다. 그 분야와 관련된 상품을 최대한 많이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 영화라면 영화 굿즈, 관련 서적, 음반, 포스터를 망라한다. 또 하나는 고졸한 취향을 전시해 그 가치를 강조하고 그만한 가격을 덧붙여 판매하는 것. 공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리가 있는 방식인데, 영화 분야에 서는 후자의 시도가 꽤 빈약했다. 영화가 대중매체라는 것에 너무 쉽게 매몰됐다. 그동안 한국에서 영화는 그 사망 선고가 가장 인기 있는 주제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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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에서 선보이는, 대표 문동명의 개인 콜렉션

그가 영화 매체 기자로 일하며, 또 해외 출장과 여행을 다니며 모은 영화 오리지널 포스터와 팸플릿이다. “품질이 좋을 가능성이 높고, 과거의 것일수록 절대에 가까워진다.”라는 믿음으로 오리지널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유물론에는 판매하지 않는 포스터와 팸플릿도 많다. 또한 업태가 소매업이 맞는지를 되묻고 싶을 만큼, 매주 영화를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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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에 진열된 포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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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루문› 공식 트레일러

오늘(3월 19일)은 영화 ‹블루문›의 상영이 있었다. 에단 호크가 ‘인생 연기’를 펼친 것으로 회자됐던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걸작이나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2차 시장으로 직행한 작품이다. 미국 팝과 재즈 스탠더드가 확립된 1920~50년대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 북 시대’에 대한 국내 관객의 부족한 이해, 한 공간에서 대사로 모든 것을 채우는 완고한 영화 형식 탓이었을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것, 근래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것, 모객이 될 만 한 것을 틀어요. 세 번째는 문 연 지 얼마 안 됐으니, 기왕이면 공간을 홍보하고 싶어서요. 가게가 어느 정도 알려진다면 마지막 기준은 버리고 싶고, 버려야 정말 귀중한 공간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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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의 사인이 담긴 ‹로제타›의 일본판 팸플릿

문동명의 이 관점 덕분이겠다. 유물론에서는 상품보다 작품이 먼저 보인다. 그는 “내가 팔게 될 것도 일종의 유물(遺物)일까?”하고 생각하다가 이 공간의 이름을 정했다. 영화가 유물인지 아닌지 명확히 답할 수 없는 시대다. 지금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할 때 가장 먼저 돌아 오는 말은 “넷플릭스에 있어?”다. 영화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가치 있는 뭔가”가 아니라 OTT에 없으면 그만인 매체다. 하지만 그는 꼭 회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정말 깊고 다양하게 영화를 보는 젊은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그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요.” 콜렉티오, 지하실 같은 대안적 시도가 온라인에서는 하나둘 이뤄지고 있는 지금, 유물론의 새로운 방법론이 반갑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 있어서 유물이 아니라,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아끼고 돌봐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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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시에만 나타나는 의자와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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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시에만 나타나는 의자와 스크린

다만 영화를 유물(遺物)로 접근하는 것은 단지 한 가지 제안이다. 예컨대 바이닐을 사는 사람이 음악을 더 사랑한다 말할 수 없고,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은 각자 다양하지만, 음악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실재적인 시도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이 유물(遺物)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유물론(唯物論)이다. 문동명은 말한다. “지금으로선 (유물론을 만든) 2026년이 제가 영화를 가장 좋아한 해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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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중인 팸플릿들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 『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