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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여성-작가-다큐멘터리-영화-삶-예술

Writer: 백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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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개봉을 목표로 마지막 작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김윤신 다큐멘터리 중 일부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백지숙이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은 걱정 섞인 반응을 보였죠. 일리가 없는 우려는 아니었습니다. OTT와 스트리밍 서비스 강세에 따라 사람들은 영화관을 점점 더 찾지 않고 있는데다 영화는 그에게 익숙한 영역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가 모험을 택한 건 어떤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여성작가 140여 명이 참여한 «팥쥐들의 행진»은 분명 무척 뜻깊은 전시였지만, 아쉽게도 전시가 끝난 후 어디에서도 참여한 여성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부재를 직접 채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주식회사 모은 발 프로덕션, 그 첫 프로젝트로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입니다. 모은 발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공원에서 두 발을 모아 쇠구슬을 던지는 놀이 ‘페탕크’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페탕크는 얼핏 보면 쉽고 재밌는 놀이 같지만, 발을 모은다는 건 그만큼 섬세함과 집중력을 요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모은 발 프로덕션이 준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도 그렇습니다. 그 미학적 의미에 비해 너무 쉽게 잊어지는 국내 여성작가를 흥미로우면서도 섬세한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죠. 김윤신, 김명희, 노원희, 윤석남···. 백지숙이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의 서막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을 만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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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다큐멘터리 촬영 모니터링. 화면에는 김윤신 작가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수양딸이 된 김란 관장의 모습이 담겼다.

어디서 시작해도 좋겠다.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재직 당시 조각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기획할 때 전시와 함께 영화가 제작되었으면 했다. 이중섭과 박수근 외 그 시대 다른 작가의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고, 특히 권진규는 조각가로서 더욱 입체적인 영화적 접근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접촉해 본 영화감독 등 영화계 인사는 영화화 가능성에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명필름의 이은 대표는 극영화를 제작하려면 아카이브와 평전, 다큐멘터리 영화가 먼저라는 실행 경로를 제안했고, 이에 권진규기념사업회 허경회 대표가 평전 집필과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후원으로 응답했다. 곧이어 책이 출간됐고, 다큐멘터리는 현재 제작 마무리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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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 전시 홍보 사진.

권진규, 자소상, 1968, 테라코타, 20 × 14 × 19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혹은 이런 경험도 주효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2000년대 중후반까지 대안공간 네트워크의 핵심에 있었던 인사미술공간이 2007년 광화문의 미로스페이스에서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 30여 점을 단 사흘 동안 상영한 적이 있었다. 미술관 화이트큐브의 영상 스크리닝이나 모니터 상영과 달리 블랙박스 영화관의 온전한 극장적 경험은 짧지만 강렬했고, 지금까지도 내 몸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한참 오래전인 20세기 말, 여성 큐레이터 다섯 명이 장기간 준비 끝에 예술의전당에서 «팥쥐들의 행진»을 개최했다. 미술관 1, 2관과 로비에 역사전과 기획전 형태로 조성한 이 전시는 김경란과 풍물패 쟁이의 열림굿으로 시작됐고, 이희호 여사가 개막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팥쥐를 위한 쌈지락파티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같은 장소에서 여성영화제의 일환으로 여성영화 다시 보기 프로그램이 기획됐지만, 정작 참여 여성작가 140여 명의 목소리나 얼굴이 담긴 영화나 영상, 평전이 나왔다는 기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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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마지막 기획전과 함께 25년간 활동을 마치며 폐관한 인사미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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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슬기와 민에게 의뢰한 인사미술공간 웹사이트. 출처: 슬기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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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미술제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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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부터 2018년까지의 글 40편을 시간순으로 담았다.

『본 것을 걸어가듯이』, 백지숙, 미디어버스, 2018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 미술관 관장 임기를 마감한 후 2년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몇 가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미술계 주요 현역은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일 텐데, 그다지 생산적인 효과가 없을 거라고 경고했다. 누군가는 영화 한 편 제작하는 예산이면 전시 몇 개를 열 수 있을 텐데 하며 오히려 전시 기획을 독려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작가는 엉뚱하게도(?) 내 허영심을 탓하기도 했다. 마침 한국의 미술관에는 본격적으로 관객이 몰리는 반면에 온라인 스트리밍 강세 속에서 영화는 거의 사양 사업으로 전락하고, 영화에 관한 공적 지원이나 인프라도 나날이 쇠약해 가고 있던 터라 실제로 일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컸다. 무엇보다 미술 기관 작업에 더 할 일이 많을 텐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영화 제작에 시간을 낭비하려 하느냐는 진심 어린 조언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활동과 그렇게 다른 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동료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시절 리서치했던 아트엔젤Artangel을 소환하며, 원래 프로덕션에 관심이 많았다며 나 대신 변 아닌 변을 해 주기도 했다. 대안공간에서 비엔날레, 미술관으로 연결되는 여러 기관을 세팅할 때도 매번 예상치 못한 도전과 난관 못지않게 보람도 컸던 만큼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며 자신을 독려해 본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우선은 작명부터 하기로 했다. 당시 서로 존대하는 친구에게 쓴 이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새벽에 잠이 깨서 회사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다 프랑스 여행할 때 동네 공원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쇠구슬치기 하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아시겠지만 페탕크라고, 컬링과 유사한 놀이입니다. 거기서 연상되는 여러 지점이 있어서 찾아보니 어원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은발’이라고 합니다. 두 발을 모으고 무거운 쇠 구슬을 치는 게임이라서. 실은 나이 들면 남편과 이 놀이하고 살자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사 오려니 너무 무거워서 못 사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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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탕크Pétanque 놀이의 축이 되는 쇠공

이렇게 시작한 모은 발을 위해 인미공에서 같이 일했고, 공연계 핵심 인사지만 미술인을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정순민 전 아르코 극장장을 모은 발 프로덕션 공동 대표로 끌어들였다. 구립합창단과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그였지만, 월정사 템플스테이 숙고를 거쳐 모은 발 참여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2024년 말 주식회사 모은 발 프로덕션은 자본도 직원도 없이 법인 등록을 마쳤다. 그러곤 곧바로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 기획안을 작성해서 작가와 프로듀서, 감독, 후원자,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모은 발 프로덕션 웹 페이지. 디자인과 개발은 민구홍이 함께했다.

예술가로서 진실하게 사는 삶이 어떻게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

해외 여성작가를 다룬 레퍼런스 영화와 다큐멘터리, 평전을 찾아보니 예상보다 많기도 했지만 예상보다 적기도 했다. 한국 상황에 비하면 많았고, 백인 남성 ‘마에스트로’에 견주면 턱없이 적었다는 뜻이다. 힐마 아브 클린트Hilma af Klint의 경우, 평전이 잘 나와서인지 평전을 기점으로 소설과 극영화, 그래픽 노블, 다큐멘터리가 일종의 콘텐츠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루 살펴보기 좋았다. 힐마 아브 클린트의 한두 작품을 그룹전에서 본 적은 있지만, 대규모 회고전은 클린트의 생애에 관한 텍스트를 먼저 본 후에야 관람했다. 만약 전시를 먼저 봤다면 클린트의 인생에 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의 추상화가로 미술사에 기록되는 칸딘스키에 비해 작품의 재료나 밀도 혹은 화면의 완성도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런 차이 자체가 당시 작가의 삶과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각성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작품을 미술사 정전대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이끼바위쿠르르의 30대, 50대 여성 작가들이 70대 노원희 작가와 나누었다는 대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림 재료로 언제나 ‘최소한’을 사용하는 작가적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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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7일 정순민 대표가 구글챗으로 이끼바위쿠르르의 전시에 노원희 선생님과 동행했다며 전시 초청장을 보내왔다. 뉴욕과 제주, 서울 등 이동이 많은 모은 발의 구성원은 구글챗 덕분에(?) 서로의 여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의 극영화를 처음 본 곳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40년 이상 살며 작업을 하고 있는 송현숙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송현숙은 앞서 말한 «팥쥐들의 행진»에 초대되었던 작가다. 학고재에서 여러 차례 열린 개인전과 스푸뤼스 마거스Sprüth Magers 뉴욕 갤러리 개인전 등을 여러 해 따라다녔지만, 작가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함부르크에서가 처음이었다. 높은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고, 마당 한쪽에는 양봉하는 벌통이 놓여 있던 그의 작업실을 조만간 한 번 더 방문할 예정이다. 다음에는 그가 제작한 템페라 회화나 영화 말고 꿀단지처럼 숨겨져 있는 자전적 드로잉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오래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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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송현숙 작가 작업실에 걸려 있는 사진, 송현숙 작가와 어머니, 2026년 4월 8일 필자 촬영

비행기 안에서 본 ‹Leonora In The Morning Light›(2025)에는 레오노라 캐링턴이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함께한 에피소드가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전쟁과 피란을 거쳐 스페인 정신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하는 등 고난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작가가 94세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레오노라 캐링턴의 그림은 최근 국내에서는 2025년 프리즈 기간에 일부 소개되었고, 소설 『나팔귀』(2022)가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잘 알려진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가 그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서 본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백발의 할머니가 담배에 관한 열정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가로로 긴 그림이 유독 많았던 것도 그의 정신세계와 맞물린 환상적 서술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잠시 상상했다.

룩셈부르크 뮤지엄 레오노라 캐링턴 전시 영상

비비언 수터Vivian Suter와 그의 어머니이자 화가인 엘리자베스 윌드Elisabeth Wild의 과테말라 작업실과 거주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 ‹Vivian’s Garden›(2017), 카셀 도큐멘타가 커미션한 이 작품을 나는 2023년 빈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윌드 회고전에서 볼 수 있었다. 식민과 자연, 모녀 관계, 동식물과 인간의 여러 관계를 밝은 빛과 깊은 어둠으로 조망한 이 작품은 전시와는 다른 결로 작가들과 감독의 일견 평화롭지만 복잡한 속내를 헤아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미술 전시에서 작가의 삶은 보도자료 속의 짧은 이력이나 전시장 한쪽의 보조적인 영상으로 혹은 관련 강연이나 심포지엄에서 미술사적 맥락으로 따로 제시되어 왔다. 작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평가는 별개로 이루어졌고, 작품 독해를 방해하지 않도록 작가의 정보를 조심스럽게 다루어 왔다. 작가의 성격이나 태도, 취미, 가족사는 좋건 나쁘건 이름이 지워진 채 극적 소재로 은밀히 거론되어 오거나 기껏해야 뒷담화 소재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정치적 행동주의의 파고에서도 살아남은 이런 관점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바뀌었다. 작가가 작품 못지않게 중요해졌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작가에 관한 다각도의 아카이빙 작업이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에서 주도하고 있는 작가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제대로 안착하면 이를 기반으로 하는 2차 저작물 생산이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지역의 몇몇 전시에서는 이미 작가 다큐멘터리 영상이 칸막이 없이 ‘동등한’ 작품으로 전시되기 시작했다는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디서 시작할 수 있나?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내장한 작가 천경자를 우선 타진했으나 이미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테레사 학경 차(차학경)는 서울에서 조만간 아카이브 전시를 계획 중이라 들었으나 영화화에는 몇 가지 선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 작가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의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이 생존 작가를 주체로 하듯이 살아 있는 작가의 목소리를 더 늦기 전에 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듯싶었다. 이에 출판사 안그라픽스가 여성작가 평전 시리즈 출간을 결심하며 큰 힘을 실어 주었다. 마침 혜성같이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김윤신 작가가 있었다. 2023년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김윤신 개인전 «더하고 나누며» 개최 직후 세계가 화답한 결과였다. 김차섭 작가와 부부이자 동료 화가로 활동해 온 김명희 작가는 남편의 작고 이후 기념사업회를 조직하는 등 김차섭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전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2021년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 기증한 이 부부 작가 아카이브는 깊이 묵혀 두는 대신 다양하게 발효할 것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 그룹 ‘현실과 발언’의 유일한 여성작가 노원희는 뜻밖에 아들 박재경이 기록한 사진 작업을 발견하면서 모성의 신화와 함께 사회 진보를 감아 넣는 시선을 확보한다. 당대의 페미니스트 윤석남 작가는 점차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1,025마리 개의 이야기를 생태의 곁으로 확장하며 질문을 던진다. 이제 개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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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다큐멘터리를 기록하는 전명은 작가의 기록 사진(2025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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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6일 뉴멕시코 현지 촬영 중 강사라 피디가 보내온 사진, 뉴멕시코 풍격을 담고 있는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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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희, ‹자화상›, 1995, 캔버스에 콜라주·아크릴릭, 65.5×91cm,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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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1025: 사람과 사람없이(1,025: With or Without Person)», 아르코미술관, 2009

그리고 또 누가 있나?

사실 너무나 많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직 너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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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7일, 갤러리현대 김명희 개인전 오프닝에서 장우진 감독과 김명희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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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백지숙은 평론과 기획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방송국 구성작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전시기획과 미술, 문화평론 활동을 했다. 2000년대에는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에서 일했으며,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기도 했다. 2010년부터 2023년까지는 아뜰리에 에르메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예술감독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모은 발 프로덕션(pieds-joints.kr) 공동대표이다. 저서로는 『본 것을 걸어가듯이-어느 큐레이터의 글쓰기』(미디어버스, 2018)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