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코너를 기획하는 일은 언제나 백지 위에 조심스럽게 첫 점을 찍는 일과 같다. 비애티튜드의 지면에 새로운 음악 연재 코너를 더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가장 먼저 우리가 세상을 그리고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에 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음악에 어떤 방식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까? ‘새로운 음악을 시의성 있게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어보자.’라는 막연한 제안에서 출발한 신규 연재 코너의 윤곽을 그려가는 과정은 결국, ‘왜?’라는 질문을 붙잡고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소리를 감각하는 영점을 다시 맞추는 일이 되어 갔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은 첫 화면만 보더라도 늘 숨이 가쁘다. 매일 자정이 지나면 새로운 음악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알고리즘은 쉴 새 없이 그 음악을 들려준다. 약간은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수많은 음악을 계속해서 들이미는 이 거대한 파도는 심지어 정교하기까지 하다. 각자의 청취 이력과 저장 내역을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기존에 들었던 곡이나 좋아하는 음악가의 정보를 토대로 금세 재생 목록에 이질감 없는 다음 곡을 슬쩍 밀어 넣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 추천은 음악 취향처럼 아주 창의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에서조차 너무나 자연스럽게 먹혀든다. 정말로 한낱 인간이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알고리즘을 이길 확률은 점점 낮아지는 것만 같다. 그런데도 왜 ‘굳이’ 대중음악을, 그것도 매달 발매되는 ‘신보’를 ‘지금’ 다루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애티튜드는 더 많은 사람이 각자의 재미있는 아티스틱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기 바란다. 그 발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작가와 브랜드 곁에 머물며, 그 이면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매거진이다. 그렇기에 효율의 문법을 비켜가는 비애티튜드가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빠르게 휘발되는 대중음악 시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그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어쩌면 커다란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스포티 파이 홈 화면
하지만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새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다. 역 설적으로 누군가는 그 빠른 흐름 한가운데 뛰어들어 단단한 닻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매체에서 신보를 소개하는 일의 의미는,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유행의 최전선 을 선점하거나 트 렌드를 좇는 데 있지 않다. 왜냐하면 앞서 말 했듯 이미 그런 작 업은 정교한 알고리즘을 갖춘 플랫폼에 따라 효과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너무 빠르게 휩쓸려 지나 갈 뻔한 동시대 창작자의 땀과 고 민을 세심하게 곁에 붙잡아두고자 한다. 특히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신보 더미 속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쉽사리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음악에 조금 더 귀를 기 울이고 싶다. 예컨대 실험적인 노이즈와 최신의 방법론을 구사하는 전자음악처럼 많은 이가 관심을 두기 어려운 마이 크로 장르의 음악을 비롯해 오롯이 음악가 개인이 DIY로 제작해 유 통 구조상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음악까지, 다 양한 이유로 놓치기 쉬운 새로운 음악을 조금 천천히 경청하려 한다.
그렇게 오랜 고 민 끝에 탄생한 코너의 이 름은 ‹12/7› 이다. 이 타이 틀 옆에는 “12 인치 앨범 과 7인치 싱글 , 나란히 놓인 두 신보를 함께 들어 봅니다”라는 짤막 한 이정 표를 달아 둘 예정이다 .
직관적이면서도 은유적인 이 설명을 통해 비애티튜드가 음악을 대하는 깊은 애정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바이닐 시절, 음악가가 구축한 하나의 완전한 세계와 긴 서사를 대 변하는 앨범 은 대 체로 12 인치 크기의 판에 담겼고, 짧고 강렬 한 메시지나 실험적인 시도를 포착 한 싱글 은 보통 7인치 크기의 판에 담겼다.
우리는 매달 무수히 발매되는 신보 중 단 두 개의 작 품만 골라낼 생각이다. 하나는 긴 호흡 으로 세계 관을 묵묵히 구축해 낸 12 인치의 ‘앨범 ’이고, 다른 하나는 짧지만 예리하게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들려주는 7인치의 ‘싱글’이다. 거시적인 호흡 과 미시적인 찰나를 나란히 올려두고, 그 두 가지 양태의 음악이 서로 맞닿 으며 또 다른 재미를 듣고 읽는 이에게 주기 위함 이다.
덧붙이면, 다 양성을 위한 나 름의 선정 규칙 을 하나 정했다. 앨범 을 국내 음악가의 작 품으로 선정했다면 싱글은 반드시 해 외 음악가의 작 품으로 고른다. 혹은 반대로 해 외 음악가의 앨범 을 다 룬다면 국내 음악가의 싱글을 페어링한다. 언어와 문화, 씬(scene)의 규모 등은 모 두 다르다 해도 동시대라는 시간 축 위에 놓인 음악가는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는 듯하다. 정말 이 제는 영미 권의 대중음악 씬과 국내 대중음악 씬 사이의 시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 니까 말이다. 그 러나 동시에 여 전히 각 씬은 특유의 분위 기를 형성 하며 고유한 특색을 들려주기도 한다. 닮음과 차이 사이의 교차를 느슨하게나마 느 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씬의 두 음악을 소개해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00 한 분위 기의 곡’과 같은 제목의 플 레이리스트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다정하고도 치밀하게 직조된 비애티튜드만의 큐레 이션을 선보이고자 한다.
밴드캠프 홈 화면
«암페어Amfair 2023»,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2023, 사진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미약한 연대를 위해
글을 담아내는 레이아웃과 화면의 디자인 역시 이런 사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콘텐츠의 가장 마지막, 독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CTA(Call to Action) 버튼 구성에도 비애티튜드만의 고집스러운 태도를 담았다. 애플뮤직이나 멜론 같은 거대 스트리밍 플랫폼의 링크를 최상단에 두면 가장 편리하겠지만, 우리는 밴드캠프 (Bandcamp)처럼 음악가를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는 플랫폼이나 뮤지션이 직접 운영하는 판매 링크를 최우선으로 제공하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구매 유도를 넘어선 창작자를 향한 작은 연대의 방식이다. 미약하게나마 음악 산업의 불균형적인 구조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소리를 빚어내는 음악가가 계속해서 다음 장면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지하려고 한다. 그들의 지난한 노동과 독립적인 창작 환경에 정당한 가치를 지급하고자 안내하는 것이야말로 비애티튜드가 매체로서 동시대 음악을 소개할 때 지녀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믿는다.
또한 어렵게 고른 1장의 앨범과 1개의 싱글 외에도 비애티튜드 매거진의 구성원들이 각자 열변을 토하며 어필했지만, 아쉽게 상세히 다루어지지 않은 신보를 모아 플레이리스트의 형태로도 공유하고 싶다. 세상에는 우리의 좁은 지면으로 미처 다 껴안지 못할 만큼 훌륭한 소리가 매일 태어나고 있다. 이는 차트의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방에서 혹은 작은 작업실에서 묵묵히 소리를 깎고 다듬는 수많은 창작자를 향한 우리의 작은 응원이다. 비록 긴 글로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트랙을 재생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치열한 작업이 누군가의 일상에 가 닿기를 바란다. 이 목록이 독자에게 뜻밖의 반짝이는 발견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더할 나위 없겠다.
비애티튜드에서 선보일 플레이리스트. 현재는 에디터 J가 최근에 즐겨 들었던 국내/외 곡을 일부 담아두었다.
마지막으로 연재 콘텐츠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매달 발행일 기 준 1주일 전까지 발매된 수많은 신보를 살피고 선별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매끄러운 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거 칠고 낯선 소리의 숲을 직접 헤쳐 나가야 하기 때 문이다. 누군가는 굳이 그 렇게 품을 들여 피곤하게 음악을 들어야 하느 냐고 묻겠지만, 음악가가 소 중히 품어온 소리를 최대한 놓치지 않기 위해 비애티튜드는 기 꺼이이 집 요한 탐색을 감내하기로 한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가 단순히 신보를 소개하는 창구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스 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음악에 담긴 마음을 섬세하게 함께 짚어보는 공 간이 되기를 바란다. 고심 끝에 건져 올린 동시대 음악가의 소 중한 작업은 매 월 마지막 화 요일 독자들의 곁에 조용히 또 때로는 강렬히 놓일 것이다. 5월 , 비애티튜드 매거진에서 첫선을 보일 ‹12/7› 코너를 통해 낯선 사운드가 각자의 공 간에 울려 퍼지며, 미처 만나지 못했을뻔한 음악의 이면을 새롭게 비 춰주는 시 간이 모두에게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Photo by Oleg Ivanov
Writer
비애티튜드 매거진은 재미있는 아티스틱 라이프스타일이 시작되는 곳이다. 주목받는 작가와 브랜드의 신선한 콘텐츠로 독자를 찾아간다.
비애티튜드 매거진은 아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만한 콘텐츠를 발행한다. 아티스트의 진솔한 이야기와 작업 철학, 고유한 삶의 방식을 매력적으로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