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미 해군이 생물병기를 개발했는데 어딘가 이상합니다. 상체는 늠름한 상어인데, 하체가 문어 다리라고요? 그 괴랄한 생명체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도 활개 치고 다닌다면요? 상어와 문어가 합쳐진 괴생명체가 해변을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며 피서를 즐기러 온 누군가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 머리통을 비치발리볼처럼 토스합니다. 맥락도 없이 튀어나온 이 장면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박동수가 이번에 소개하는 쿠소영화는 ‹샤크토퍼스›(2010)입니다. ‹죠스›가 만들어 놓은 공포의 템플릿은 반세기 가까운 시간에 숱한 아류작을 거치며 우스꽝스러워졌고, 끝내 상어는 문어와 뒤섞이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 변주의 한가운데에는 ‘한 푼도 잃지 않는 영화’를 원칙으로 삼았던 로저 코먼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상어가 어쩌다 바다를 벗어나 밈이 되어버렸는지, 그 이상하고도 즐거운 계보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샤크토퍼스› 포스터
8년 전쯤 국내 넷플릭스에 전설적인 쿠소영화가 업로드되어 있었다. 무수한 아류작과 짝퉁 블록버스터인 목버스터(mockbuster)를 만들어 온 영화제작사 어사일럼(The Asylum)과 쿠소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 싸이파이(SyFy)의 합작 ‹샤크네이도› 시리즈(Sharknado, 2013~2018)였다. 토네이도를 타고 날아온 상어가 LA를 습격한다는 이야기는 6편의 영화에 걸쳐 우주와 시간여행, 공룡과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괴상망측한 세계관으로 변모해 있었다. 며칠에 걸쳐 시리즈를 정주행한 뒤 더 많은 쿠소 상어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왓챠피디아나 IMDb 등에 ‘Shark’, ‘Jaws’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며 다양한 영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영화 중 하나가 ‹샤크토퍼스›(Sharktopus, 2010)이다. GIF 움짤로 먼저 접한 ‹샤크토퍼스›는 매혹적인 쿠소영화였다. 제목이 곧장 알려주는 것처럼 상어와 문어가 합체된 괴생명체가 등장한다. 문어 다리가 달린 샤크토퍼스의 활동 영역은 바다를 벗어난다. 해변의 바위 사이를 걸어 다니고 관광객이 몰린 계곡까지 침범한다. 어기적어기적 화면 위를 기어다니는 CGI 괴생명체가 풍겨오는 쿠소함은 쿠소 상어 영화를 찾던 나에게 강력한 매력 포인트였다.
‹샤크토퍼스› 속 샤크토퍼스의 본격적인 등장 장면(위). ‹샤크 스톰 2: 샤크네이도›(Sharknado 2 : The Second One, 2014)에서 날아오는 상어를 상대하는 아이코닉한 장면(아래). 어딘가 사람 옆얼굴을 닮아 언캐니밸리를 자극한다.
사실 상어만 한 쿠소영화의 단골 소재도 없다. 블록버스터의 효시가 된 ‹죠스›(Jaws, 1975) 이래로 상어는 호러의 아이콘이 되었고, 무수한 아류작으로 이어졌으며, 질 떨어지는 속편과 아류작 사이에서 변형되기 시작한다. 이들 아류작은 엇비슷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휴양지나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곳에 나타난 상어가 누군가를 공격한다. 지역 정치인이나 사업가는 상어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결국 식인 상어의 학살극이 벌어지고, 비극에 대응하기 위해 주인공 일행은 상어 사냥에 나선다. ‹죠스›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의 템플릿은 완벽했다. 거대한 흥행 성적과 평단의 열광은 상어 영화를 매력적인 여름 상품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수영장이나 호수, 해변의 물에 몸을 담그고 ‹죠스›를 보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렇게 상품이 되어버린 상어는 점차 해변을 습격하던 ‘공포’의 이미지를 잃어 갔다. 백상아리의 아가리(jaw)가 물 밑에서 사람들을 노릴 것이란 공포의 아이디어는 수십 년이 흘러 즐길 법한 어트랙션이 된 것이다.
2018년 개최된 ‹죠스›의 해변 상영회. 미국의 극장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의 이동상영 이벤트인 ‘롤링 로드쇼’의 일환으로 메사추세츠의 섬 마서스비니어드 개최되었고, 13일의 금요일에 맞춰서 상영되었다.
흥미롭게도 상어의 생명력은 쿠소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시작은 ‹딥 블루 씨›(Deep Blue Sea, 1999) 같은 또 다른 히트 상어 영화였다. 하지만 비공식 속편과 아류작이 판치고, ‹샤크 어택›(Shark Attack, 1999)처럼 실소가 터져 나오는 CGI 상어가 등장하는 영화에 이르게 된다. 물론 쿠소한 CGI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상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상어는 범고래나 피라냐, 악어처럼 다른 동물로 변주된다. 정글의 무법자 아나콘다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리즐리 베어나 사막의 지하를 헤엄치듯 다니는 괴생명체처럼 물가 바깥의 생명체로 변모한다. CGI 상어의 본격적인 등장을 기점으로 쿠소 상어 영화의 르네상스가 열린다. 2010년대의 상어는 바다뿐 아니라 호수와 연못, 온천, 욕조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물이 담겨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어가 등장할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나아가 상어는 모래사장과 사막, 산맥에서도 튀어나오고, 눈사태를 타고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영화에서는 상어가 악귀나 좀비가 되기도 한다. 포켓몬처럼 속성이 부여된 상어는 방사능을 얻거나 질병을 퍼트리는 슈퍼 전파자가 되기도 한다. 상어 인간은 ‹모아나›(Moana, 2016)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The Suicide Squad, 2021)의 슈퍼 빌런으로도 등장하는 ‘메이저’ 캐릭터가 되었다. 상어는 인간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괴생명체와 거인, 로봇, 좀비, 심지어 외계인과도 혈투를 벌인다. ‹어비스: 메가 샤크›(Mega Shark VS Mecha Shark, 2014)라는 영화에선 거대 식인 상어가 인공지능 상어 로봇인 메카 샤크와 사투를 벌이기에 이른다. 이런 변형의 역사 속에서 상어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전 세계 아동이 따라 부르는 아기상어가 되거나 초등학생들의 인기를 끌어모은 ‘트랄랄레로 트랄랄라’가 되기까지 했다. 상어가 어원 그대로의 밈이 된 것은 쿠소 상어 영화 덕분이다. 쿠소영화계의 걸작인 ‹샤크네이도› 시리즈를 필두로, 상어는 여기저기서 사람을 잡아먹고 뭉개지만 동시에 전기톱에 썰리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기도 한다.
순서대로 ‹죠스›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모래괴수 영화 ‹불가사리›(Tremors, 1990), 모래사장을 헤엄치는 상어가 등장하는 ‹샌드 샤크›(Sand Shark, 2011), 상어에 물리면 악령이 들린다는 설정의 ‹샤크 엑소시스트›(Shark Exorcist, 2014), 러시아가 만든 상어인간이 달에 숨어 있었다는 설정의 ‹47샤크›(Shark Side of the Moon, 2022), 메가 샤크와 메카 샤크의 대결을 그려낸 ‹어비스: 메가 샤크›(Mega Shark VS Mecha Shark, 2014)의 포스터
그런 맥락에서 쿠소 상어 영화의 출발점 중 하나인 ‹샤크토퍼스›는 각별하다. ‘컬트의 제왕’이자 ‘뉴 할리우드의 아버지’인 로저 코먼이 만 85세에 제작한 ‹샤크토퍼스›는 같은 해 공개된 (역시 로저 코먼 제작인)‹다이노샤크›(Dinoshark, 2010)와 함께 혼종 상어 영화의 출발점이 된다. 제목 그대로 상어(shark)와 문어(octopus)의 혼합체인 ‘샤크토퍼스’가 미군의 실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주인공들이 먹이를 찾아 육지에 상륙한 괴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속편은 한술 더 뜬다. ‹샤크토퍼스 vs. 프레라쿠다›(Sharktopus vs. Pteracuda, 2014)에선 프테라노돈과 바라쿠다의 혼합체인 프테라쿠다(Pteracuda)가 등장한다. ‹샤크토퍼스 vs. 웨일울프›(Sharktopus vs. Whalewolf, 2015)는 범고래와 늑대의 혼합체인 웨일울프(Whalewolf)와 샤크토퍼스 사이의 대결을 다룬다. 아참! 그리고 로저 코먼은 공룡급 크로코다일(Dinocroc)과 슈퍼급 엘리게이터(Supergator)가 대결하는 ‹다이노 슈퍼게이터›(Dinocroc vs. Supergator, 2010)라든지, 피라냐와 아나콘다가 합쳐진 ‹피라냐콘다›(Piranhaconda, 2012)의 제작자이기도 했다. 아나콘다의 몸통에 피라냐의 머리통이 달린 기묘한 생명체의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상어는 이제 바다를 벗어나거나 속성을 부여받는 대신 다른 동물과 직접 뒤섞이기 시작한다.
‹샤크토퍼스›의 제작자 로저 코먼은 영화 경력의 출발점부터 쿠소영화의 조상격인 영화를 만들어 온 인물이다. ‹크랩 몬스터의 공격›(Attack of the Crab Monsters, 1957)을 통해 유니버셜 몬스터 영화를 제멋대로 재해석하고, 각각 5일과 2일 만에 촬영을 끝내버린 ‹버켓 오브 블러드›(A Bucket of Blood, 1959)와 ‹흡혈 식물 대소동›(The Little Shop of Horror, 1960)를 통해서는 고딕 호러에 블랙코미디를 가미했다. 그는 ‹죠스›의 개봉 이후 곧장 아류작을 만들어 낸다. 예고편 편집자로 고용했던 조 단테에게 상어 대신 피라냐가 등장하는 아류작을 만들게 한 것이다. 한여름의 악몽을 그려냈던 ‹죠스›와 달리 베트남전부터 폐수 방류에 이르는 사회적 이슈를 각본에 욱여넣은 ‹피라냐›(Piranha, 1978)는 그렇게 탄생했다. ‹피라냐›는 상어를 다른 동물이나 괴생명체로 대체한 여러 영화의 효시가 된다. 어쩌면 로저 코먼의 필모그래피는 이 시점부터 ‹샤크토퍼스›(그리고 ‹피라냐콘다›)로 이어지는 길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로저 코먼이 직접 연출한 괴수영화 ‹크랩 몬스터의 습격›(위)와 제작으로 참여한 ‹피라냐›(아래)
IMDb를 기준으로 56편의 연출작이 있고, 무려 489편의 영화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로저 코먼의 스타일을 손쉽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1990년 출간한 자서전의 제목은 그가 평생 지켜온 영화 제작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100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 푼도 잃지 않았는가』, 이 책에서는
300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280편에서 수익을 남겼다고 정정되는 이 제목에서 중요한 것은 ‘돈을 벌었다’가 아니라 ‘한 푼도 잃지 않았다’라는 말이다. 그의 초기작은 동시상영관에서 상영되었고, 이후엔 비디오와 DVD 시장을 거쳐 케이블 채널과 VOD까지 다양한 경로로 영화를 선보여 왔다. ‹샤크토퍼스›와 속편들도 상어 영화는 물론 다양한 쿠소영화나 목버스터를 방영하는 것으로 유명한 싸이파이 채널을 위해 제작된 영화였다. 비슷한 시기 제작한 ‹다이노샤크›, ‹다이노 슈퍼게이터›, ‹피라냐콘다›도 마찬가지다. 영화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는 데 눈이 밝은 사람이랄까. 물론 로저 코먼이 손댄 모든 영화가 좋은 영화거나 즐길 만한 쿠소영화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큰 흥행을 바란 게 아니다. 제작비를 회수하고 다음 영화를 준비할 수 있는 시장의 규모를 계속 발견해 나갈 뿐이었다. 다시 말해, 쿠소 상어 영화 ‹샤크토퍼스›는 ‘잃지 않는 영화’였다.
웨일울프와 광장에서 대치 중인 샤크토퍼스(위), 해변 위 남자의 머리통을 물어뜯어 날려버리는 샤크토퍼스(아래)
다양한 장소에 등장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 상어는 매력적인 소재다. 다만 그 모든 아이디어가 ‹죠스›나 ‹딥 블루 씨› 같은 블록버스터일 필요는 없다. 어떤 아이디어는 그저 만들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샤크토퍼스›는 그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수천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의 제작비가 우습게 돌아다니는 할리우드에서 100만 달러 수준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괴상망측한 상어 괴수가 등장하는 케이블 채널 시청자를 매혹하고, VOD를 결제하게끔 한다. 지느러미 대신 문어 다리를 정말 ‘다리’로 사용하는 샤크토퍼스가 등장하는 순간, 해변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괴생명체의 꾸물거림을 구현하는 조악한 CGI는 실소와 감탄을 동시에 부르는 이미지로 변모한다. 샤크토퍼스가 해변에 서 있던 남자의 머리통을 날리자, 옆에서 비치발리볼하던 이들이 공 대신 머리를 토스하는 ‹샤크토퍼스 vs. 프테라쿠다›의 한 장면은 아무런 맥락이 없지만 강력한 잔상을 남긴다. 보름달 뜨는 날 전직 야구선수에게 가해진 생체실험이 그를 웨일울프로 만들었다는 ‹샤크토퍼스 vs. 웨일울프›의 아득한 설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적지만, 그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만으로도 제작비는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
중국에서 리메이크된 ‹샤크토퍼스›의 트레일러
‹샤크토퍼스›는 2023년 중국에서 ‹章鲨›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조금 큰 상어 정도였던 샤크토퍼스는 이 영화에서 거대한 선박을 뒤흔드는 거대 괴수가 되었다. 사실 쿠소 상어 영화의 열풍 이후 제작된 ‹메가로돈›(The Meg, 2018)이 중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이래, 중국에서도 다양한 상어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쿠소 상어 영화가 발견한 새로운 금맥이다. 로저 코먼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와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쿠소 상어 영화는 그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살펴볼 수 있는 토양이 되어준다.
Writer
박동수 평론가(@dsp9596)는 제3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비평상과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영화와 게임을 주로 다루지만 종종 미술이나 방송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료 평론가들과 함께 영화비평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크리틱›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명의 비평집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첫 단독 에세이 『쿠소필리아』(2026)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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