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숙이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은 걱정 섞인 반응을 보였죠. 일리가 없는 우려는 아니었습니다. OTT와 스트리밍 서비스 강세에 따라 사람들은 영화관을 점점 더 찾지 않고 있는데다 영화는 그에게 익숙한 영역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가 모험을 택한 건 어떤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여성작가 140여 명이 참여한 «팥쥐들의 행진»은 분명 무척 뜻깊은 전시였지만, 아쉽게도 전시가 끝난 후 어디에서도 참여한 여성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부재를 직접 채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주식회사 모은 발 프로덕션, 그 첫 프로젝트로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입니다. 모은 발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공원에서 두 발을 모아 쇠구슬을 던지는 놀이 ‘페탕크’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페탕크는 얼핏 보면 쉽고 재밌는 놀이 같지만, 발을 모은다는 건 그만큼 섬세함과 집중력을 요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모은 발 프로덕션이 준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도 그렇습니다. 그 미학적 의미에 비해 너무 쉽게 잊어지는 국내 여성작가를 흥미로우면서도 섬세한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죠. 김윤신, 김명희, 노원희, 윤석남···. 백지숙이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의 서막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을 만나며.
김윤신 다큐멘터리 촬영 모니터링. 화면에는 김윤신 작가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수양딸이 된 김란 관장의 모습이 담겼다.
어디서 시작해도 좋겠다.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재직 당시 조각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기획할 때 전시와 함께 영화가 제작되었으면 했다. 이중섭과 박수근 외 그 시대 다른 작가의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고, 특히 권진규는 조각가로서 더욱 입체적인 영화적 접근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접촉해 본 영화감독 등 영화계 인사는 영화화 가능성에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명필름의 이은 대표는 극영화를 제작하려면 아카이브와 평전, 다큐멘터리 영화가 먼저라는 실행 경로를 제안했고, 이에 권진규기념사업회 허경회 대표가 평전 집필과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후원으로 응답했다. 곧이어 책이 출간됐고, 다큐멘터리는 현재 제작 마무리 단계에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 전시 홍보 사진.
혹은 이런 경험도 주효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2000년대 중후반까지 대안공간 네트워크의 핵심에 있었던 인사미술공간이 2007년 광화문의 미로스페이스에서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 30여 점을 단 사흘 동안 상영한 적이 있었다. 미술관 화이트큐브의 영상 스크리닝이나 모니터 상영과 달리 블랙박스 영화관의 온전한 극장적 경험은 짧지만 강렬했고, 지금까지도 내 몸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한참 오래전인 20세기 말, 여성 큐레이터 다섯 명이 장기간 준비 끝에 예술의전당에서 «팥쥐들의 행진»을 개최했다. 미술관 1, 2관과 로비에 역사전과 기획전 형태로 조성한 이 전시는 김경란과 풍물패 쟁이의 열림굿으로 시작됐고, 이희호 여사가 개막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팥쥐를 위한 쌈지락파티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같은 장소에서 여성영화제의 일환으로 여성영화 다시 보기 프로그램이 기획됐지만, 정작 참여 여성작가 140여 명의 목소리나 얼굴이 담긴 영화나 영상, 평전이 나왔다는 기억은 없다.
2025년 6월, 마지막 기획전과 함께 25년간 활동을 마치며 폐관한 인사미술공간
2007년 슬기와 민에게 의뢰한 인사미술공간 웹사이트. 출처: 슬기와 민
여성미술제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디지털 아카이브
1992년부터 2018년까지의 글 40편을 시간순으로 담았다.
『본 것을 걸어가듯이』, 백지숙, 미디어버스, 2018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 미술관 관장 임기를 마감한 후 2년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몇 가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미술계 주요 현역은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일 텐데, 그다지 생산적인 효과가 없을 거라고 경고했다. 누군가는 영화 한 편 제작하는 예산이면 전시 몇 개를 열 수 있을 텐데 하며 오히려 전시 기획을 독려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작가는 엉뚱하게도(?) 내 허영심을 탓하기도 했다. 마침 한국의 미술관에는 본격적으로 관객이 몰리는 반면에 온라인 스트리밍 강세 속에서 영화는 거의 사양 사업으로 전락하고, 영화에 관한 공적 지원이나 인프라도 나날이 쇠약해 가고 있던 터라 실제로 일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컸다. 무엇보다 미술 기관 작업에 더 할 일이 많을 텐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영화 제작에 시간을 낭비하려 하느냐는 진심 어린 조언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활동과 그렇게 다른 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동료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시절 리서치했던 아트엔젤Artangel을 소환하며, 원래 프로덕션에 관심이 많았다며 나 대신 변 아닌 변을 해 주기도 했다. 대안공간에서 비엔날레, 미술관으로 연결되는 여러 기관을 세팅할 때도 매번 예상치 못한 도전과 난관 못지않게 보람도 컸던 만큼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며 자신을 독려해 본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우선은 작명부터 하기로 했다. 당시 서로 존대하는 친구에게 쓴 이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새벽에 잠이 깨서 회사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다 프랑스 여행할 때 동네 공원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쇠구슬치기 하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아시겠지만 페탕크라고, 컬링과 유사한 놀이입니다. 거기서 연상되는 여러 지점이 있어서 찾아보니 어원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은발’이라고 합니다. 두 발을 모으고 무거운 쇠 구슬을 치는 게임이라서. 실은 나이 들면 남편과 이 놀이하고 살자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사 오려니 너무 무거워서 못 사 옴.
페탕크Pétanque 놀이의 축이 되는 쇠공
이렇게 시작한 모은 발을 위해 인미공에서 같이 일했고, 공연계 핵심 인사지만 미술인을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정순민 전 아르코 극장장을 모은 발 프로덕션 공동 대표로 끌어들였다. 구립합창단과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그였지만, 월정사 템플스테이 숙고를 거쳐 모은 발 참여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2024년 말 주식회사 모은 발 프로덕션은 자본도 직원도 없이 법인 등록을 마쳤다. 그러곤 곧바로 여성작가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 기획안을 작성해서 작가와 프로듀서, 감독, 후원자,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모은 발 프로덕션 웹 페이지. 디자인과 개발은 민구홍이 함께했다.
예술가로서 진실하게 사는 삶이 어떻게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
해외 여성작가를 다룬 레퍼런스 영화와 다큐멘터리, 평전을 찾아보니 예상보다 많기도 했지만 예상보다 적기도 했다. 한국 상황에 비하면 많았고, 백인 남성 ‘마에스트로’에 견주면 턱없이 적었다는 뜻이다. 힐마 아브 클린트Hilma af Klint의 경우, 평전이 잘 나와서인지 평전을 기점으로 소설과 극영화, 그래픽 노블, 다큐멘터리가 일종의 콘텐츠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루 살펴보기 좋았다. 힐마 아브 클린트의 한두 작품을 그룹전에서 본 적은 있지만, 대규모 회고전은 클린트의 생애에 관한 텍스트를 먼저 본 후에야 관람했다. 만약 전시를 먼저 봤다면 클린트의 인생에 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의 추상화가로 미술사에 기록되는 칸딘스키에 비해 작품의 재료나 밀도 혹은 화면의 완성도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런 차이 자체가 당시 작가의 삶과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각성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작품을 미술사 정전대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이끼바위쿠르르의 30대, 50대 여성 작가들이 70대 노원희 작가와 나누었다는 대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림 재료로 언제나 ‘최소한’을 사용하는 작가적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025년 12월 27일 정순민 대표가 구글챗으로 이끼바위쿠르르의 전시에 노원희 선생님과 동행했다며 전시 초청장을 보내왔다. 뉴욕과 제주, 서울 등 이동이 많은 모은 발의 구성원은 구글챗 덕분에(?) 서로의 여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의 극영화를 처음 본 곳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40년 이상 살며 작업을 하고 있는 송현숙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송현숙은 앞서 말한 «팥쥐들의 행진»에 초대되었던 작가다. 학고재에서 여러 차례 열린 개인전과 스푸뤼스 마거스Sprüth Magers 뉴욕 갤러리 개인전 등을 여러 해 따라다녔지만, 작가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함부르크에서가 처음이었다. 높은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고, 마당 한쪽에는 양봉하는 벌통이 놓여 있던 그의 작업실을 조만간 한 번 더 방문할 예정이다. 다음에는 그가 제작한 템페라 회화나 영화 말고 꿀단지처럼 숨겨져 있는 자전적 드로잉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오래 듣고 싶다.
함부르크 송현숙 작가 작업실에 걸려 있는 사진, 송현숙 작가와 어머니, 2026년 4월 8일 필자 촬영
비행기 안에서 본 ‹Leonora In The Morning Light›(2025)에는 레오노라 캐링턴이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함께한 에피소드가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전쟁과 피란을 거쳐 스페인 정신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하는 등 고난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작가가 94세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레오노라 캐링턴의 그림은 최근 국내에서는 2025년 프리즈 기간에 일부 소개되었고, 소설 『나팔귀』(2022)가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잘 알려진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가 그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서 본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백발의 할머니가 담배에 관한 열정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가로로 긴 그림이 유독 많았던 것도 그의 정신세계와 맞물린 환상적 서술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잠시 상상했다.
룩셈부르크 뮤지엄 레오노라 캐링턴 전시 영상
비비언 수터Vivian Suter와 그의 어머니이자 화가인 엘리자베스 윌드Elisabeth Wild의 과테말라 작업실과 거주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 ‹Vivian’s Garden›(2017), 카셀 도큐멘타가 커미션한 이 작품을 나는 2023년 빈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윌드 회고전에서 볼 수 있었다. 식민과 자연, 모녀 관계, 동식물과 인간의 여러 관계를 밝은 빛과 깊은 어둠으로 조망한 이 작품은 전시와는 다른 결로 작가들과 감독의 일견 평화롭지만 복잡한 속내를 헤아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미술 전시에서 작가의 삶은 보도자료 속의 짧은 이력이나 전시장 한쪽의 보조적인 영상으로 혹은 관련 강연이나 심포지엄에서 미술사적 맥락으로 따로 제시되어 왔다. 작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평가는 별개로 이루어졌고, 작품 독해를 방해하지 않도록 작가의 정보를 조심스럽게 다루어 왔다. 작가의 성격이나 태도, 취미, 가족사는 좋건 나쁘건 이름이 지워진 채 극적 소재로 은밀히 거론되어 오거나 기껏해야 뒷담화 소재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정치적 행동주의의 파고에서도 살아남은 이런 관점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바뀌었다. 작가가 작품 못지않게 중요해졌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작가에 관한 다각도의 아카이빙 작업이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에서 주도하고 있는 작가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제대로 안착하면 이를 기반으로 하는 2차 저작물 생산이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지역의 몇몇 전시에서는 이미 작가 다큐멘터리 영상이 칸막이 없이 ‘동등한’ 작품으로 전시되기 시작했다는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디서 시작할 수 있나?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내장한 작가 천경자를 우선 타진했으나 이미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테레사 학경 차(차학경)는 서울에서 조만간 아카이브 전시를 계획 중이라 들었으나 영화화에는 몇 가지 선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 작가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의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이 생존 작가를 주체로 하듯이 살아 있는 작가의 목소리를 더 늦기 전에 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듯싶었다. 이에 출판사 안그라픽스가 여성작가 평전 시리즈 출간을 결심하며 큰 힘을 실어 주었다. 마침 혜성같이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김윤신 작가가 있었다. 2023년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김윤신 개인전 «더하고 나누며» 개최 직후 세계가 화답한 결과였다. 김차섭 작가와 부부이자 동료 화가로 활동해 온 김명희 작가는 남편의 작고 이후 기념사업회를 조직하는 등 김차섭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전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2021년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 기증한 이 부부 작가 아카이브는 깊이 묵혀 두는 대신 다양하게 발효할 것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 그룹 ‘현실과 발언’의 유일한 여성작가 노원희는 뜻밖에 아들 박재경이 기록한 사진 작업을 발견하면서 모성의 신화와 함께 사회 진보를 감아 넣는 시선을 확보한다. 당대의 페미니스트 윤석남 작가는 점차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1,025마리 개의 이야기를 생태의 곁으로 확장하며 질문을 던진다. 이제 개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나?
김윤신 다큐멘터리를 기록하는 전명은 작가의 기록 사진(2025년 11월 21일)
2026년 2월 26일 뉴멕시코 현지 촬영 중 강사라 피디가 보내온 사진, 뉴멕시코 풍격을 담고 있는 김명희
노원희, ‹자화상›, 1995, 캔버스에 콜라주·아크릴릭, 65.5×91cm, 학고재 제공
윤석남, «1025: 사람과 사람없이(1,025: With or Without Person)»(2009) 일부,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2025
그리고 또 누가 있나?
사실 너무나 많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직 너무 적다.
2026년 5월 7일, 갤러리현대 김명희 개인전 오프닝에서 장우진 감독과 김명희 작가를 만났다.
백지숙은 평론과 기획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방송국 구성작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전시기획과 미술, 문화평론 활동을 했다. 2000년대에는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에서 일했으며,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기도 했다. 2010년부터 2023년까지는 아뜰리에 에르메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예술감독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모은 발 프로덕션(pieds-joints.kr) 공동대표이다. 저서로는 『본 것을 걸어가듯이-어느 큐레이터의 글쓰기』(미디어버스, 2018)가 있다.
결과적으로는 최악일지라도 때론 최선을 다한 것일 수 있죠. ‘쿠소(くそ)영화’에 관한 이야기예요. ‘똥’에 해당하는 일본어 욕설 ‘쿠소(くそ)’와 ‘영화’를 합친 이 표현은 쓰레기 같은 영화를 가리킵니다. 박동수 영화평론가는 쿠소영화를 ‘실패의 산물’로 규정합니다. 연기, 편집, 촬영, 기술, 각본… 다양한 구성 요소가 갖가지 이유로 실패하며 탄생한 조악한 영화라는 것이죠. 그 실패 위에서, 우리가 영화에 기대하는 익숙함을 벗어난 상상력을 재료 삼아 말도 안 되는 설정과 열악한 자원 속에서 어떻게든 착즙해 낸 최악이자 최고의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박동수가 첫 번째로 꺼내든 쿠소영화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2019)입니다. 아프리카, 쿵푸, 나치가 한데 뒤섞인 이 가나산 괴작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는 쿵푸영화의 간략한 계보와 브루스플로이테이션부터 산업이 부재함에도 영화를 만드는 아프리카의 창작 생태계까지 쿠소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배경을 살펴봅니다. 자본과 산업의 논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조악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낭만적인 쿠소영화에 관해 박동수가 전하는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아프리카의 쿵푸영화, 그런데 나치를 곁들인…
3년 전엔가, 여느 날처럼 트위터 타임라인을 뒤적이던 중 이 영화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African Kung-Fu Nazis›(2019). 눈에 흉터가 난 히틀러가 포스터 중앙에 있고, 쿵푸 마스터의 도복 비스름한 옷을 입은 아프리카인이 주인공 자리에 서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전범 아돌프 히틀러와 도조 히데키가 사실 살아남았고, 이들은 아프리카로 도망쳤다. 가라테 수련을 통해 히틀러는 타인을 세뇌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되고, 가나 국민을 가나-아리아인Ghan-Arian으로 만들어 제국의 부활을 시도한다. 어느 쿵푸 도장의 제자인 주인공 아대는 나치에 반발한 사부가 죽임을 당하자 외딴곳에 숨어 수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히틀러가 개최한 무술대회에 참가한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예고편
이 황당한 줄거리는 나름의 ‘근본력’을 갖추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쿵푸영화에 관한 애정과 오마주가 영화 전체에 빼곡히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쿵푸 도장을 습격한 나치 일당이 현판을 부수는 모습은 이소룡의 ‹정무문精武門›(1972)을 고스란히 차용한다. 일본군이 가라테를 배운 나치로, 이소룡이 주인공 아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아대는 수련이 부족한 인물이다. 그래서 ‹취권醉拳›(1978)의 성룡처럼 은둔 고수를 사부 삼아 수련을 이어간다. 이때 등장하는 사부의 의상은 ‹취권›의 원소전과 거의 비슷하다. 물론 술도 마신다. 히틀러 주최의 무술대회는 자연스럽게 이소룡의 마지막 걸작 ‹용쟁호투龍爭虎鬪›(1973)에서 따온 것이다. 이소룡이 범죄조직을 격파하기 위해 무술대회에 참가했듯이 아대는 나치와 히틀러를 박살 내기 위해 참가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대체 왜 쿵푸일까?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의 은둔 고수와 영화 ‹취권›의 원소전. 두 인물은 비슷한 모자와 헤어스타일을 공유하고, 비슷하게 생긴 술병을 사용한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의 은둔 고수와 영화 ‹취권›의 원소전. 두 인물은 비슷한 모자와 헤어스타일을 공유하고, 비슷하게 생긴 술병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인 ‹브루스 리의 클론들The Clones of Bruce Lee›(1977) 포스터. 이소룡의 사망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어느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이소룡을 복제해 두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거룡Dragon Lee과 장일도Bruce Lai, 홍콩의 여소룡Bruce Le, 태국의 브루스 타이Bruce Thai 등이 동시에 출연한다.
영화 ‹브루스 리의 클론들› 스틸컷
1970년대 이래로 전 세계 액션영화는 쿵푸영화의 영향 아래 있다. 이소룡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후로 쿵푸영화계는 넥스트 이소룡을 찾는 데 혈안이 된다. 성룡도 그렇게 등장한 배우 중 하나였다. 다만 성룡은 쿵푸와 슬랩스틱을 결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다양성을 더한다. 이후 홍금보, 원표, 이연걸, 견자단 등의 스타와 함께 쿵푸영화의 전성기가 이어진다. 그와 동시에 신화가 된 이소룡의 이름을 따라 무수한 아류작과 짜깁기 영화가 등장한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Bruceploitation이라는 명칭으로 유통된 일련의 짝퉁 이소룡 영화에서는 홍콩뿐 아니라 대만과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무술가가 “브루스 어쩌고”나 “저쩌고 룡”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등장했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은 홍콩 무협영화, 한국의 권격영화, 일본의 찬바라 영화 등과 뒤섞여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유통된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정식으로 유통되지 못했다. 그 대신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은 해적판 필름의 형태로 낡아빠진 동시상영관에 유통되거나, 돈냄새를 맡은 사업가가 짜깁기한 판본이나 오역으로 가득한 더빙판으로 비디오 대여점에 유통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사도들Apostles of Cinema›(2022) 스틸컷. 탄자니아의 영화향유 문화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DJ로 불리는 일종의 변사가 간이 상영관에서 라이브 더빙을 선보이는 장면(위)과 해적판 DVD 판매점의 모습(아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탄자니아지만, 우간다나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 지역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가나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이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가 향유되었다.
공식적인 배급망을 탄 것은 아니지만 필름보단 비디오로 유통되던 이 영화들은 가난한 노동자나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주된 유흥거리가 되어주었다. 제작부터 상영에 이르는 영화산업이 없다시피 한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본다. (국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비공식 상영관에서 해적판 영화가 상영되고, VJ나 DJ로 불리는 일종의 변사가 라이브 더빙을 선보이거나 해적판 DVD에 자체 더빙을 입혀 배포한다. 쿵푸영화뿐 아니라 발리우드 영화, 한국 드라마, 대만 청춘영화, 심지어 EPL이나 챔피언스리그 중계영상까지 같은 방식으로 유통되고 상영된다. 그 토양에서 아프리카의 비디오 키즈는 다양한 혼종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어느덧 ‘놀리우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나이지리아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 스타가 된 우간다의 ‘와칼리우드’가 그렇다.
사무엘 K. 응칸사의 첫 영화 ‹2016›(2010) 예고편.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의 대결을 다룬 이 영화는 당황스러운 CGI와 VFX로 점철되어 있다. 예고편의 화질이 좋지 못한 것은 원본 영화의 화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당황스러운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가 제작된 가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제작된 몇 편의 장편영화를 제외하면 거의 비디오 영화만 제작되어 영화산업이랄 게 부재한 나라다. 실제로 (유럽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는 북아프리카 국가를 제외하면) 아프리카 전체에서 ‘영화산업’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나라는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세네갈 정도니까 말이다. 산업이 없는 곳에서는 종종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가 등장하곤 한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를 만든 사무엘 K. 응칸사Samuel K. Nkansah도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인물이다. 닌자맨Ninjaman이라는 예명으로 제작사 ‘닌자 무비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그는 2010년작 ‹2016›의 예고편이 유튜브를 통해 바이럴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외계인 침공을 다룬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의 이미지를 가까스로 움직이는 열화판 CGI로 가져온 뒤 엉망진창의 폭발과 액션을 곁들인 괴작이다.
스키장에 여행 온 의대생과 나치 좀비의 대결을 담은 호러 코미디 영화 ‹데드 스노우›의 스틸컷
달의 뒷면에 숨겨진 나치 기지가 있다는 설정의 영화 ‹아이언 스카이› 스틸컷. 영화 속 나치 기지는 놀랍게도 하켄크로이츠 모양이다.
지구를 식민지화하려는 외계인의 침공을 소재로 삼았던 감독이 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소재가 나치의 부활이었던 걸까? 장르영화의 팬으로서 무수한 영화의 소재였던 나치가 다시 소환되는 것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나치는 그 이름만으로 혐오 대상인 만큼 무수한 SF, 호러, 코미디 영화에서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다(어떤 면에선 지금의 좀비가 지닌 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데드 스노우Dead Snow›(2009) 속 나치 좀비나, ‹아이언 스카이Iron Sky›(2012) 속 달 뒷면의 나치 기지 음모론 혹은 마블 유니버스의 ‘하이드라’ 같은 설정이 가능했다. 나치는 분명한 적이자 퇴치해야 할 해충으로 묘사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쿵푸로 마음껏 패고, 다방면으로 조롱해도 상관없는 대상이랄까. 영화의 공동연출자이자 히틀러 역을 맡기도 한 독일인 세바스티안 스타인Sebastian Stein은 ‘아프리카+쿵푸+나치’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두고 “히틀러를 비웃는 게 나치즘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응칸사 감독에게 익숙한 코드인 쿵푸와 나치를 빌런으로 설정한 액션영화를 결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의 무술대회 장면. 어설프게 쓰인 한자와 깃발의 만(卍)자, 화이트페이스 분장을 한 가나-아리아인의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어처구니없지만 단순한 반전의 묘미가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달까.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속 도조 히데키가 세뇌된 가나-아리아인과 행군하는 장면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는 ‘히틀러와 나치에 관한 조롱과 그에 관한 격파’라는 주제에 한없이 충실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깃발은 욱일기에 하켄크로이츠를 박아 넣은 파격적인 디자인 같지만, 사실 영화 안의 모든 문양은 ‘한자 만(卍)’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초기 할리우드 영화에서 문제가 되었던 블랙페이스는 가나-아리아인의 하얗게 칠한 얼굴로 반전된다. 히틀러의 아프리카 정복 목적은 단순히 술과 여자를 얻기 위한 것이다. 트워킹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디제잉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전체주의적 악당을 묘사하기 위해 나치의 방식을 모사했던 몇몇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속 웅장함과 달리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속 히틀러는 일관되게 한심하고 음흉하며 바보 같다. 이소룡이자 성룡이 된 아대는 식민지의 무술로 우스꽝스러운 제국을 무찌르는 쿵푸전사가 된 셈이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2African Kung Fu Nazis II›(2025) 공식 트레일러. 섬네일의 로봇은 거대화된 히틀러인 ‘아돌프 로보틀러’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강력한 쿠소함의 정체는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에 뒤섞여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라는 정직한 제목은 영화의 모든 것이다. 다만 영화의 마무리는 쿵푸가 아니다. 아대가 대회에서 도조 히데키를 격파하자 가나-아리아인의 세뇌가 풀려버린다. 이에 히틀러는 폭주를 시작한다. 아대는 세뇌에서 풀려난 군인에게 건네받은 권총을 들고 소총을 난사하며 도망친 히틀러를 추격한다. 총격전 끝에 아대는 히틀러가 엄폐물로 쓰던 도요타 자동차의 연료 탱크를 명중시키고 히틀러는 폭사한다. 그림판으로 어설프게 누끼를 딴 것 같은 히틀러의 머리가 바닥에 굴러다니며 사태는 끝난다. 어쩌면 이는 속편을 위한 발판일지도 모른다. 2025년 시체스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속편에서 히틀러는 로봇이 되어 짝퉁 괴벨스와 함께 되돌아온다. 새로운 주인공으로 무협영화 걸작 ‹외팔이獨臂刀›(1967)의 영향을 받은 외팔이 쿵푸전사이자 아대의 동생 아도가 등장한다. 스모 선수, 프로레슬러, 심지어 거대로봇 아돌프 로보틀러까지, 더욱 사이즈를 키운 속편은 쿵푸영화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 다양한 장르 간 이종교배를 실험한다.
영화산업이 없다는 것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악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말과도 같다.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로 제작부터 배급까지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진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하자 저예산 장르영화와 아류작을 양산했던 로저 코먼Roger Corman이나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에드 우드Ed Wood가 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돈의 논리 바깥에서 혹은 우리가 상업영화에 기대하는 개연성의 바깥에서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같은 영화는 가능해진다. 무엇이든 흡수하여 뒤섞을 수 있는 영화, ‘쿠소영화’는 그런 영화를 위한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Writer
박동수 평론가(@dsp9596)는 제3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비평상과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영화와 게임을 주로 다루지만 종종 미술이나 방송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료 평론가들과 함께 영화비평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크리틱›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명의 비평집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첫 단독 저서인 에세이 『쿠소필리아』를 준비 중이다.
스크린 속 공포가 스크린 밖 현실까지 점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괴담의 배경이 된 저수지 살목지는 어느새 “살리단길”이라는 별명이 붙은 핫플레이스가 되어 새벽마다 귀신도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의 방문 행렬을 맞이하고 있죠. 우리는 왜 굳이 으스스한 심령 스팟으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걸까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영화 로케이션 투어를 넘어 괴담을 능동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현시대의 고스트 투어리즘 현상을 짚어 봅니다. 김지혜는 프로이트의 운하임리히 개념에 착안한 피셔의 ‘으스스함’에 대한 정의, 그리고 상상력이 쇠퇴한 시대를 꼬집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시선을 토대로 이 기묘한 열풍을 읽어 냅니다. 단순히 유령을 찾으러 가는 길(Drive)이 아니라,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일상의 권태를 자본주의적 감각으로 소비하려는 우리 안의 기이한 충동(Trieb)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들여다보세요.
증상앤더시티는 ‘도시’ 속 우리가 겪는 ‘증상’을 분석한다기보다 증상 속 우리의 향유가 얽혀 있는 틈새를 비추며, 나만의 예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생을 직조해 내는 고유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티스트·아트세러피스트로 정체화하는 저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통해 비스듬히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개인의 증상을 형성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내포한다.
“도시의 증상이면서, 도시가 증상이다.”
살목지가 살리단길이 되었다. 예산군의 저수지인 살목지는 예전부터 밤낚시꾼들 사이에서 괴담이 돌던 곳이었는데, «심야괴담회»에 소개된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리단길” 작명이 따라붙는 핫플 심령 스팟이 되었다. 귀문이 열린다는 새벽 1~3시 사이 살목지로 가는 차량 190대의 행렬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고, 살목지 드라이브 체험 블로그도 등장했다. 살목지에서 퍼 온 물 소분 나눔부터 반려동물 동반 가능 여부까지 생활 정보형으로 꼼꼼하게 챙긴 이 게시물의 댓글은 진짜 광기 혹은 양기라는 반응이 다수이지만, 몇몇 방문자는 댓글이 지워졌다거나 닉네임이 다르게 보인다는 제보로 괴담 확산에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누군가는 살목지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관람하고 정보를 찾으면서도 어딘가 으스스한 기운을 느끼는 저자와는 양기의 급이 다르다. 사람들의 출몰에 귀신도 질려 도망가겠다며 귀신의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밈도 등장할 정도로 살목지는 유명해졌고 현대식 자본주의 퇴마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결국 현시점 살목지의 야간 통행은 제한된 상태이다.
왜 사람들은 괴담에 몰입하고 심령 스팟에 찾아가는 것일까? 사실 공포물을 즐기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현실로 돌아왔을 때 안도하며 느끼게 되는 안전한 카타르시스이다. 일상적 권태에서 벗어나 강렬한 감각 경험을 원하면서도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소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살목지 순례 현상처럼 불안이 실제 장소로 옮아와 체험형 공포가 되면 현실에서의 안전함이라는 경계를 벗어나는 지점이 생긴다. 이에 상응하듯 최근의 괴담은 스크린을 벗어나 체험이 가능한 장소를 만드는 장치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여기에 SNS 후기 등이 미디어에 노출되면 괴담은 확산되고 장소는 관광화되어 더 매력적인 것으로 소비된다. 심령 스팟은 공포 그 자체보다는 이러한 집단적 정동이 전염된 장소의 체험 가능성으로 핫플이 된다.
살목지 순례를 단순히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가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 관광 열기로 이어진 스크린 투어리즘의 사례로만 읽으면 현상은 납작해진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미적 체험과 휴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나 재난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여 역사적 비극을 애도하고 반성하며 교훈을 얻는 대안 관광의 형태이다. 이는 전쟁, 묘지, 식민지 역사, 홀로코스트, 재난, 감옥, 고스트 투어리즘 유형으로 분류된다. 살목지 순례는 이러한 분류 중 고스트 투어리즘으로 볼 수 있으며, 타 유형과 달리 즐거움 추구가 그 목적에 가깝다. 공포가 내부에서 안전하게 유통되는 감정 상품이 된 것이다.
다만 공포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지역에 들러붙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민감한 문제이다. 아침 방송에 출연한 지역 주민은 살목지 성지순례로 아직은 지역 경제 활성화 같은 장점보다 밤중의 소음이나 공포 이미지 고착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포영화 ‹곡성›의 사례처럼 지역 이미지 실추가 우려될 때 지역과의 관련성을 지우지 않고 역발상 홍보로 전환한 경우도 있는 만큼(군수는 브랜드상을 받았다), 예산군도 충주맨식 지역 홍보 문법으로 발 빠르게 지역 홍보에 동참하고 있다. 현재 예산군의 유튜브에는 살목지를 “살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패러디한 영상이 올라와 괴담은 농담으로 중화 혹은 진화 중이다.
살목지 순례는 언캐니uncanny한 장소 경험의 소비로 볼 수 있다. 언캐니는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한 낯익은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감각인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영역이다. 영화 속 살목지의 공포가 시작되는 곳은 사실 실제 저수지라기보다는 로드뷰 화면이다. 심령 스팟으로 유명한 장소에 갔다가 괴이한 현상에 휘말린다는 내용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말 그대로 발견된 영상 속에 무언가 있다는 공포영화의 형식에 충실하다. 카메라 화면 안에 있어서는 안 될 형체가 포착되고, 내비게이션 속 있어야 할 경로는 끊겨서 같은 곳으로 계속 돌아오게 한다. 땅과 물의 경계가 모호한 저수지, 있던 장소에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돌탑,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없어야 할 것이 있는 풍경에서 오는 이 불편한 감각은 마크 피셔Mark Fisher가 정의한 으스스함일 것이다. 사실 영화 ‹살목지›에는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장면이 많고, 귀신도 점점 늘어나서 후반부로 가면 긴장감을 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너무 많은 귀신이 가장 덜 으스스한 것일 수도 있다.
케인 픽셀즈, ‹백룸The Backrooms(Found Footage)›, 2022
피셔는 언캐니가 공포영화 문법의 해석에 미친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그 속에 구겨 넣지 않고 구분하는 시도를 한다. 둘 다 외부 세계를 지각함으로써 내부 세계를 인지하게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기이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의 출현, 으스스한 것은 풍경 속 존재와 비존재에 관한 질문, 즉 부재의 실패나 현존의 실패이다.
데이비드 린치,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 2001
피터 위어, ‹행잉록에서의 소풍Picnic at Hanging Rock›, 1975
또한 피셔는 자본주의를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로 제시하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세계에서는 대안적 상상력이 쇠퇴하고 더 이상 새로운 미래가 없다는 확신이 팽배하면서, 모든 건(과거조차) 단순한 소비 상품이나 심미적 대상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정치·경제 체계뿐 아니라 개인의 무의식과 욕망, 현실 감각 자체를 지배해서 사람들이 냉소적이고 무기력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심령 스팟은 초자연적 현상의 증거라기보다 자본주의가 봉합하지 못한 감각의 틈새가 된다. 예측할 수 있는 상태로 반복되어 새로울 것 없는 일상 속 강렬한 감각은 점점 희소해지고, 심령 스팟은 강렬함을 소비 가능한 형태로 제공하는 장소가 된다. 즉, 희소해진 강렬함의 경험은 다시 자본주의의 소비로 귀결된다. (예컨대, 인터넷 커뮤니티의 살리단길 관련 게시글의 댓글 중 일부는 살리단길에서 핫도그나 떡볶이를 팔겠다는 농담을 담고 있다.) 영화 소비는 관광지 소비로 이어지고, 소비는 더 큰 소비를 낳는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팬픽 등 2차 창작으로 대표되는 참여문화에서 관객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콘텐츠의 공동 생산자로서 역동적 주체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살리단길의 순례자도 이 능동적 모델에 부합하는 듯하다. 영화 관람 후 실제 장소를 찾아가 후기도 쓰며 원전을 확장하는 공동 저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리단길의 순례자에게 살목지 귀신의 존재를 믿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진지하게 귀신을 믿는다면 두려움 때문에 새벽 3시의 차량 행렬에 동참하긴 어려울 것이고, 완전히 불신한다면 굳이 서울에서 예산까지 차를 몰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안 믿지도, 믿지도 않으면서도 가는 행위는 원작에 대한 애정과 몰입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냉소적 태도가 아닐까. (물론 사람들은 단순히 갈 곳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작품을 향한 애정과는 무관한 이동이 된다.) 순례는 믿음과 불신 사이 균열의 지점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고스트 투어리즘은 이 같은 이중 구조의 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된다.
드라큘라의 고향인 트란실바니아 지역에 있는 호이아-바치우Hoia-Baciu 숲은 세계에서 유령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곳으로 알려진 초자연 현상의 순례지 중 하나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을 투영하는 숲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도 개발업자가 아파트 단지 건설을 위해 벌목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자본주의는 어디에서나 리얼하다.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겸하는 NGO의 친환경(?) 투어 프로젝트에서는 드라큘라의 창조자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후손과 함께 숲의 신비를 밝히는 야간탐험을 기획하기도 한다.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Dracula』, 1897, Archibald Constable and Company
다시 살목지로 돌아오면, 앞선 순례자 블로거의 덤덤함 혹은 ‘아방함’은 믿음과 불신 사이에 놓여 있다. 순례길에서 고장 난 핸드폰 거치대나 꺼진 블랙박스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살목지의 물을 떠 와서 나눔을 위한 물품처럼 다루며 공포를 부정하듯 행동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기이한 모양의 나무와 자고 일어나니 생겨있다는 방바닥의 물 자국을 사진으로 전시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살리단길의 순례자는 공포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기 체험을 드라이브 후기로, 인증샷으로, 지도 앱 별점으로, 댓글로 제작해 유통하고 확산시킨다. 영화로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 후기, 그리고 유튜브로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공포를 소비하는 행위가 공포의 생산에 가담하는 행위로 전환된다.
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이 같은 괴담에서 파생된 현상의 이중 구조를 소설의 형식 자체로 실험한 작품이다. 인터넷 게시글, 편지, 인터뷰 기록 등을 콜라주한 페이크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괴담을 소비하는 주체가 괴담을 만들어 간다는 순환 구조는 모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 속 편집자는 파편화된 괴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실종되고,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 역시 저주에 가담하고 있다는 메타적 설정까지 덧붙였다. 괴담을 소비하려고 접근했다가 곧 괴담 전파와 생산에 참여하게 되는 구조로,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괴담 현상에 가담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괴담이 만들어진다.
살리단길 드라이브 블로그 글은 이 문법의 현재 진행형이다. 살아 있냐는 댓글과 스크랩은 늘어 간다. 또 하나의 괴담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모두가 목격한다. 방바닥의 물 자국은 괴담의 증거라기보다, 어쩌면 이 괴담이 독자의 방으로 혹은 일상으로 옮겨가면서 만들어진 메타 서사의 기록이다. 귀신은 이제 영화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가상의 공포는 현실의 장소를 점유했다. 괴담의 장소는 발견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 체험과 그 기록의 디지털화를 통해 새롭게 발명되는 중이다.
세스지,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2025, 반타
영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예고편
이렇게 사람들은 살목지에 귀신을 보러 가는 것이라기보다 귀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러 간다. 살목지의 순례자는 드라이브 겸 살목지로 향했다. 드라이브(drive)는 독일어 “Trieb”의 번역으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인간의 충동이기도 하다. 충동은 만족을 완결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운동이며, 증상의 형태로 반복된다. 살리단길을 향한 드라이브는 괴담의 공동 저자가 되려는 주체들의 드라이브(Trieb)다. 그곳에서 소비되는 것은 유령 그 자체가 아닌 유령을 끊임없이 현존하게 만드는 참여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령이 사는 곳은 이제 저수지라는 장소가 아니라 블로그와 스크린이라는 디지털 콘텐츠 속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Solaris›,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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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박사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로, ‘아트애즈테라피(artastherapy.kr)’를 운영하며 예술 치료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의 관점을 교차하고, 창작과 치유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연구 주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사회정의 미술치료와 반응작업 미술치료가 있다. 앞으로 미술과 음악, 문학, 무용 동작 등을 통합하는 예술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공미술, 전시,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자 한다. 저서로는 『치유로서의 미술』(글로벌콘텐츠, 2021)이 있다.
김재원이 전하는 이야기는 방향을 잃은 채 공기 중을 떠다닙니다. 어떠한 결말도 정해지지 않았기에, 그의 작업은 온갖 경계를 무심한 표정으로 가볍게 넘나들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 사이에서 그는 그 틈에 남은 온기의 잔상을 더듬습니다. 희미하게 쌓인 이미지들은 때로는 맑은 거울처럼 세상을 비추다가도, 어느새 누구나 겪는 평범한 순간이 되어 흩어지곤 하죠. 김재원은 그 불안정한 틈에서 생각이 모양을 갖추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하려 해요. 의미를 가지기 전의 속삭임, 아직 이름 짓지 못한 감정들. 그렇게 시간과 감각이 희미해진 것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며,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작가는 서로를 이어주는 미세한 체온과, 아직 언어로 다 닿지 못한 마음의 흔적으로 우리는 초대합니다. 스쳐 가는 장면을 헤아리다 마주치는 익명의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뜻밖의 하루를 선사할지도 모르죠. 밑도 끝도 없이 끊임없이 번져가는 김재원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그 여정을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어쩌면 멸망을 바랐을지도 몰라 Maybe I Longed for Collapse›, 2025.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영상, 사진, 글을 매체로 작업하는 김재원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과 음악 등 여러 분야를 배우고 접했지만, 그게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게 만든 이유를 완전히 설명해주진 못할 것 같네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여전히 보여주고 싶은 것과 들려주고 싶은 것들이 있기에 계속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를 마친 뒤 현재는 거주 공간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사실 생활 공간과 작업 공간을 분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지금의 환경이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지내다 보니 적응의 힘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Studio view, MMCA Residency Goyang, 2024.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MMCA Residency Goyang, 사진: 이미지줌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대체로 제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제가 겪은 사건, 마주한 사람, 그리고 신체가 놓였던 공간들이 그 바탕이 되었어요. 퀴어와 질병을 둘러싼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당사자성 역시 하나의 기반이 되었는데요. 하지만 경험이 곧장 영감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시간이 지난 뒤 그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미지와 얽히며 생각이 구체화되곤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제 작업은 대부분 기록처럼 남긴 후, 그것들을 다시 모아 엮어보는 방식에서 출발했어요. 서술이라고 하기엔 장황하지 않고, 그렇다고 단순한 기록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 중간 어딘가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영상의 경우, 글(스크립트)을 먼저 쓰고 그다음 시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 과정이 저한테는 꽤 자연스러웠는데, 평소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떠오르거나 그때 그 순간에 남겨야 했던 단어나 문장 등을 수시로 기록하는 습관이 자리잡혀 있어 그랬던 것 같아요. 어쩌면 텍스트 자체도 쓴다는 것 이전에 수집과 기록하는 감각에 더 가깝게 느끼고 있어요.
다만 작업이 늘 텍스트만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에요. 이미지를 먼저 수집하거나 촬영한 뒤, 거기에서 파생되는 언어가 뒤따르는 경우도 있는데요. 사실 제 작업 전반에서 텍스트의 비중이 크다 보니, 최근에는 그것을 경계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어요. 이렇게 텍스트와 이미지가 서로 밀어내기도 끌어당기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타이베이에 위치한 C-LAB에서 HIV 상태인 아시아 예술가들이 경험한 HIV/AIDS의 맥락을 해석한 전시 «Incurable Alliance»가 4월부터 6월까지 열렸어요. 본 전시에 선보인 영상 ‹유실물 Lost Belongings›(2025)을 소개하고자 해요.
‹유실물 Lost Belongings›, 2025, single-channel 4K video, color, stereo sound, 10 min 57 sec, video still.
‹유실물 Lost Belongings›, 2025, installation view, «Incurable Alliance», Taiwan Contemporary Culture Lab (C-LAB), 2025.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iwan HIV Story Association, 사진: Anpis Foto.
영상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전통적인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과, 게이 컬처에서 존재해 온 사물들을 조합해 화면 위에 구성했어요. 각 사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용되고, 훼손되거나 망가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특히 이 작업은 사회 바깥과 커뮤니티 안, 두 영역 모두에서 가시화되기 어려웠던 캠섹스(chemsex: 약물을 복용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를 경험한 게이 남성들의 풍경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어요. 구성원이 남긴, 혹은 사용한 물건들에 주목하여 기억과 질병, 나아가 특정 경험이 일상적인 사물 속에 감정과 시간이 머물러 있는 자취를 탐구했어요. 이런 흔적 속에는 절망, 상실, 수치뿐 아니라 욕망과 친밀함 같은 감정도 공존하며, 그것이 우리의 삶과 기억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해 보고자 했어요. 그리고 저는 영상 속 펼쳐지는 테이블 위를 사람, 커뮤니티,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으로 여겼어요. 그렇기에 모든 사물을 하나의 출연자(Cast)로 간주했고, 실제로 크레딧에 각각의 사물 이름을 모두 표기하기도 했어요.
‹유실물 Lost Belongings›, 2025, installation view, «Incurable Alliance», Taiwan Contemporary Culture Lab (C-LAB), 2025.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iwan HIV Story Association, 사진: Anpis Foto.
더하여 ‹유실물›은 언어적인 부분에서도 변화가 있었던 영상이에요. 이전의 작업들은 비교적 명확한 내러티브와 기승전결을 가진 형태를 취했다면, 이번에는 형식에 대한 고민 끝에 하나의 전환점으로서 다른 접근을 시도했어요.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신 감정의 잔재를 중심으로 구성된 파편적인 시 구절들을 병치시켜 쌓아가는 방식을 선택했는데요. 어쩌면 명확한 ‘이야기’가 있는 형태는 아니지만, 오히려 비선형적인 언어와 이미지의 결합이 제가 붙들고자 했던 감정의 구조나 시간의 밀도에 대해 좀 더 많은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느꼈어요.
‹흔적 없는 몸들 Trace-less Beings›, 2024, print on papers, multi-channel video, loop,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어둠 아래 우리는 각자», YPC SPACE, 2024.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YPC SPACE, 사진: 이의록
‹흔적 없는 몸들 Trace-less Beings›, 2024, 디테일
게이 크루징(gay cruising: 게이 남성들이 성적 교류나 만남을 목적으로 공공장소나 온라인 공간을 탐색하는 행위)을 주제로 2024년 YPC SPACE에서 진행된 전시 «어둠 아래 우리는 각자»에서 선보인 두 작업도 이전의 형식과는 다르게 접근하기도 했어요. 3편의 영상과 6편의 시로 구성된 ‹흔적 없는 몸들 Trace-less Being›(2024)의 경우 텍스트와 이미지를 분리해 글과 무빙 이미지를 각각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다루었어요. 게이 크루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러 시공간을 오가며 사라진 존재와 관계들을 이야기했다면, ‹남겨진 몸들 Echoing Beings›(2024)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공간의 만남에 더 친숙한 세대의 사람들과 함께 크루징의 정의와 범주에 대해 나눈 대화들을 수집해 하나의 비공식적 장으로 만들기도 하였어요.
‹남겨진 몸들 Echoing Beings›, 2024,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32 min 16 sec. video still
‹남겨진 몸들 Echoing Beings›, 2024,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32 min 16 sec, installation view, «어둠 아래 우리는 각자», YPC SPACE, 2024.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YPC SPACE, 사진: 이의록
두 사진 작업 ‹잔류 상태 Lingering State›(2025)와 ‹어쩌면 멸망을 바랐을지도 몰라 Maybe I Longed for Collapse›(2025)는 모두 식별 상태에 따른 심리적 변화를 탐구한 작업이에요. ‹잔류 상태 Lingering State›는 녹슬고 침식된 금속판의 표면을 클로즈업해 세포나 바이러스의 단면, 혹은 바다에 떠 있는 이름 모를 섬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저는 그 흔적들을 단순한 부식이 아니라, 시간 속에 사라지지 않고 켜켜이 쌓인 감정의 결로 바라봤어요. 반면 ‹어쩌면 멸망을 바랐을지도 몰라 Maybe I Longed for Collapse›는 건물 옥상 위 말 조각상의 거대한 규모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고 불안정한 초점으로 포착해, 현실과 환상, 상징과 균열의 경계가 흔들리는 순간을 관찰하고자 했어요.
‹잔류 상태 Lingering State›, 2025, pigment print, aluminum frame, 37×55 cm (each), installation view, «Ballet with the Devil», PODIUM, 2025.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PODIUM, 사진: Lok Hang Wu.
‹잔류 상태 Lingering State›, 2025, 디테일
‹잔류 상태 Lingering State›, 2025, 디테일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건과 장면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 안에는 늘 시간이 얽혀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은 따로 나뉘어 있지 않고 기억의 레이어 속에서 서로 간섭하며 겹쳐지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감각은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공유되고 확장되기도 해요. 그래서 작업을 하나의 의미로 규정하기보다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새롭게 읽히고 개입될 가능성을 지켜보려 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만들 때는 모르고 지나치거나 어쩌면 모른 척 지나쳤던 것이 비교적 일정 시간이 지나 다시 보았을 때, 그제야 만족과 불만족이 선명하게 드러나고는 해요. 그래서 사실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구분되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니에요. 대신 시간이 지난 작업을 종종 다시 보며 그런 차이를 돌아보고는 해요. 다만 이런 평가는 어디까지나 제 스스로의 점검이고, 크게 연연하지는 않아요.
‹불특정 주인공 Protagonist, Undefined›, 2023,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9 min 42 sec, video still.
‹불특정 주인공 Protagonist, Undefined›, 2023,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9 min 42 sec, video still.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일상과 일이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하루의 루틴이 촘촘하게 짜여 있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에 세 번은 반드시 산책을 나가야 하는 반려견 덕분에 그 구간을 중심으로 운동, 책, 영화, 여러 집안일 등을 이어가며 나름의 리듬을 지키려 하고 있어요. 특히 쉴 때는 집 안 곳곳을 청소하거나 정리를 하는데요. 머릿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하루를 더 기분 좋게 열기도, 마무리할 수도 있더라고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1. 반려견 건강 관리, 어떻게 잘 돌볼 수 있을지?
2. 스트레스, 어떻게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지?
3. 몸에 근육은 대체 언제 붙는 건지?
4.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균열이나 흔적, 그리고 감정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려는 태도가 작업으로 이어져요. 그렇게 일상에서 경험한 것들이 이미지에 스며들고, 또 다른 언어나 장면으로 전환되기도 해요. 그래서 작업은 삶을 따로 재현하기보다는,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결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Installation view, «Hazy Scenes», 엘리펀트스페이스,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김진현
Installation view, «Hazy Scenes», 엘리펀트스페이스,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김진현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사실 뚜렷하게 겪었었는지, 또 극복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뭔가 잘 안 풀릴 때는 하루나 며칠 정도 진행 중인 작업에서 살짝 거리를 두고 주변부에 집중하곤 합니다. 그 주변부라는 게 일상의 사소한 것이거나 제가 관심을 두는 다른 것들일 수도 있고, 돌고 돌아 결국 작업의 또 다른 부분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작업 과정에서 힘듦은 항상 동반되는 것이기에 슬럼프를 떠나 그냥 하는 것이 아닐까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스튜디오 문제가 가장 커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는 거주 공간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곧 1년이 되어가다 보니 집인지 창고인지 헷갈리는 이곳에서 나와 이제는 안정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작업 과정에 있어 항상 저 자신에게 많은 엄격함과 의심을 갖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결국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비워둘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요. 때로는 부재와 공백이 어떤 것보다 강하게 발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작업에서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한 번의 작업으로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질문을 이어가며 다시 묻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해요. 작업이 언제나 완결이 아니라 시작점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 그 과정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계속 새롭게 맞물리기를 바라고 있어요.
‹Nuance›, 2022, screening view, «Day With(out) Art 2022: Being & Belonging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2022.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Visual AIDS, 사진; Filip Wolak
‹Nuance›, 2022,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6 min 13 sec. Commissioned by Visual AIDS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평생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혹은 그러길 원한다면 그 대상과의 관계도 여러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과한 애정을 쏟기도 하고, 가끔은 지독하게 다투어보기도 하면서요. 사람 간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느껴요.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 이해가 결국 지속할 힘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아, 작업이랑 어떻게 다투냐고요? 글쎄요…
Installation view, «HIV Science as Art», Metro Arts,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HIV Science as Art, 사진: Louis Lim.
(오른쪽 작업) ‹침묵으로 생긴 여백 Blank Space Caused by Silence›, 2020, installation view, «After That Blue», Fragment Gallery,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Fragment Gallery.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솔직하고 맛있는 창작자. 혹은 사람?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해가 갈수록 미래를 꿈꾼다는 일이 점점 멀게만 느껴져요. 어쩌면 이상을 그려보는 대신 지금의 상황과 관계를 자주 돌아보게 되곤 하는데요. 몇 년 전, 한 친구가 “좋은 삶과 우정, 관계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말이 가끔 떠오르곤 하는데요. 현재로서는 그저 건강하게, 좋은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작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Artist
김재원 (@etc.1)은 영상, 사진, 언어를 매체로 가시성과 기억, 그리고 시공간적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퀴어와 HIV/AIDS를 둘러싼 사회적, 정서적 맥락 속에서 질병 이후 남겨진 잔재와 보이지 않는 관계를 매개로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이는 혼재된 시간성을 시각화한다.
개인전으로는 «Hazy Scenes»(엘리펀트스페이스, 2023), «로맨틱 판타지»(공간사일삼, 2021) 등을 열었고,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서울, 2024), 휘트니 미술관(뉴욕, 2022), 필라델피아 미술관(필라델피아, 2022),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서울, 2021) 등에서 작품이 상영되었다. 이외에도 C-LAB(타이베이, 2025), PODIUM(홍콩, 2025), YPC SPACE(서울, 2024), WESS(서울, 2023),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서울, 2023), Asian Arts Initiative (필라델피아, 2023), 울산시립미술관(울산, 2022)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으며,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지난 2015년부터 관심의 더듬이가 파르르 떨렸지만 쉽게 인연을 맺지 못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매년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입니다. 특히 그래픽 디자이너 100인이 참가하는 ‘100 Films 100 Posters’ 행사가 큰 역할을 했지요. 영화제가 열리는 시즌이 돌아오면 참여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린 포스터가 제 인스타그램을 도배했거든요. 그러던 중 올해는 기필코 직접 가봐야겠다, 마음을 굳게 먹고 지난 5월 드디어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당일치기나 다름없는 1박 2일 일정이었는데요. 영화제의 특성을 미리 제대로 파악했다면 좀 더 길게 체류했을 텐데, 아쉬움이 마구 드네요. 영화제 뉴비로서 겪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첫인상, 돌아다니며 느낀 감상과 깨달음을 한 줌의 칭찬, 한 줌의 후회와 섞어 글로 버무려 보았습니다. 혹시 아나요, 제 실패를 양분 삼아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는지요. 평소 전주국제영화제를 눈여겨보신 분이라면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눈물 어린 노하우를 습득해 보세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무빙 포스터
드디어 가봤다. 지난 10년 동안 주기적으로 소셜미디어를 도배하던 ‘그곳’에. 이제는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이 쭉쭉 증발하는 몸을 이끌고 마침내 방문에 성공했다. 서울에서 2시간 40분이 걸리는 곳, 머릿속으로는 이미 몇 번은 가본 듯한 소문 속 행사. 매년 전주에서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와는 통 인연이 없는 편이다.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 시각 예술이다 보니 전시가 훨씬 편하기도 하거니와,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조용히 보면 잠 귀신이 찾아오는 탓에 평소보다 2~3배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20대 때는 교양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찰리 채플린, 앨프리드 히치콕 등 클래식이라 불릴 만한 감독의 명작들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곤 했지만, 내겐 언제나 모니터 속 ‘시작’과 ‘중지’라는 강력한 버튼이 있었다. 반면,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극장에서 유유히 흐르는 영화를 멀뚱멀뚱 바라볼 때는 잠의 여신이 굉장한 축복을 뿌려댔다. 서서히 퓨즈가 끊겼다가 정신을 다시 차리면 엔딩 크레딧이 장대하게 올라가는 마법 같은 시간 여행이라니.
구글 제미나이가 친절히 만들어준 스폰지밥 스타일의 ‘잠의 여신’과 정신 못 차리는 ‘나’의 모습.
열정으로 똘똘 뭉친 시네필cinephile과 발권 경쟁을 벌이는 영화제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프레스 배지를 신청하고 어영부영 다녀오긴 했지만, 기사를 작성하지 못했다. 영화제를 소개하기엔 이미 경험이 풍부한 애호가들이 가득했고, 프리미어 딱지가 붙은 영화 리뷰를 쓰기엔 전문성이 부족했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북돋우며 감독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기사 발행이 취소되면서 되려 ‘마상’까지 입었다. 에디터로서 영화를 다룰 때 트라우마가 생긴 계기였다.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활약하는 ‘100 Films 100 Posters’ 관련 포스팅이 아무리 내 소셜미디어를 도배해도, 정작 그 현장인 전주국제영화제를 직접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 영화, 실험 영화, 독립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영화제의 강점은 인터뷰, 리뷰뿐 아니라 영화제 현장을 소개하는 일조차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전주국제영화제는 내게 일종의 ‘그림의 떡’이었달까.
구글 제미나이에 의뢰한 ‘그림의 떡’ 일러스트레이션.
사실 지금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한 줌의 용기와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외면하던 곳에 직접 발걸음하는 일도 낯선 도전이었기에, 영화제를 알뜰살뜰 잘 즐겼다고 당당히 말하기는 조금 곤란하다. 소문으로만 듣던 행사에 늦게나마 가봤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니 5월 황금연휴에 맞춰 장중하게 펼쳐진 영화제 중 하루를 기록한 글이 혹여나 어수룩하게 보일지라도 이해와 양해를 슬쩍 구해본다.
처음 겪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상상과 꽤나 다르게 전개됐다.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으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무지에서 비롯한 오만이었다. 이번 방문은 4월 30일 밤 서울에서 시작해 5월 2일 새벽 서울에서 끝났다. 4월 30일이 개막식이었으니, 결국 개막 2일 차인 5월 1일만 겪은 셈이다. 지금도 뼈저리게 후회하는 부분이 바로 당일치기에 가까운 스케줄이다. 영화제가 성대하면 하루만 경험해도 에센스를 뽑을 수 있다고 여긴 게 오판이었다.
영화제는 정밀하게 짠 각본과도 같다. 전체 기간을 염두에 두고 완급조절을 하며 수많은 영화를 상영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즉 사무국에서 의도한 영화제의 참맛을 느끼려면 장기 체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예상하건대 적어도 3일 정도 머물러야 만족스러움이 차오를 것 같다. 이건 개인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혹시 전주국제영화제처럼 일주일 넘게 지속하는 장기 영화제를 경험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을 망설이지 말자. 나 또한 출발 전에 주변에 있는 시네필에게 상의하지 않은 어리석음에 가슴을 쳤다. 허둥지둥거리며 시간이 어디로 어떻게 증발하는지 당최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유경험자의 지고지순한 충언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총 57개국 224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이 정보를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무식하게도) 하루에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시네마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상영 시간표를 분석해 보니, 하루에 영화를 상영하는 주요 시간대는 아침, 오후, 저녁, 심야 정도로 나뉘었고, 여러 앵커 극장과 그에 소속된 다양한 상영관에서 해당일에 배정된 영화를 사이좋게 나누어 상영하는 형태였다. 결국 분신술을 쓰지 않는 한, 이론적으로는 하루 최대 4편 정도를 볼 수 있는 셈인데, 자기가 원하는 영화로만 스케줄을 채우는 건 꿈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주 열린 마음으로 상영작을 예매한 나조차도 결과적으로 2편에 그쳤으니, 보수적으로 잡아 하루에 2편만 제대로 보아도 충분히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 듯싶다.
나는 프레스 배지에 기대어 리뷰에 필요한 영화를 온라인 스크리닝 서비스을 통해 간단하게나마 추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대중에게 해당하지 않는 매우 특수한 상황 아니던가. 그러니 영화제를 충분히 즐기고 싶은 사람은 겸허한 마음으로 철저한 사전 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지, 시간은 언제인지 알아보며 자신만의 스케줄을 짜고, 예매까지 성공해야 기본적인 준비가 끝난다.
참고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현장 예매 없이 사전 예매로만 진행했는데, 최종 좌석 점유율이 81.6%를 찍었다. 총 586회 차 상영 중 448회 차가 매진됐으니, 그 열기가 엄청나다. 7만 명 이상이 찾는 영화제에서 패닉이 오지 않으려면,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의외의 복병을 하나 더 꼽는다면 날씨랄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사에서 날씨가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된통 당한 주인공이 바로 여기 있다. 영화제는 영화에 관한 행사를 집약한 축제이고, 축제란 결코 날씨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보도 자료 속 방문객의 밝고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싱그럽고 쨍쨍한 날씨가 차지하는 지분은 막강하다. 실제 내가 들린 5월 1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비가 주룩주룩 내린 탓에 영화의거리를 가득 메운 현수막이 바람에 후루룩 날리며 비가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어둡고 침침한 디스토피아를 연상시켰다. 그동안 오매불망 고대했던 영화제의 첫인상치곤 고약했달까. 무엇보다 날씨가 과하게 좋지 않으면 자칫 영화제에서 준비한 각종 행사에 심각한 차질이 생긴다는 게 진짜 문제다.
영화제에서는 순수하게 영화 상영만 하지 않는다.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고, 야외무대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비, 돌풍, 황사 등 자연재해는 심술 궂은 불청객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폭우가 쏟아지지 않아서 홀딱 젖는 일은 없었지만, 축축한 분위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열정이 스르륵 사그라들었다. 미리 체크해놨던 야외 행사, 영화제의 중심부인 영화의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움직일 동력이 증발했달까.
그런 와중에 전주국제영화제의 강점을 오히려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으니, 바로 최적화된 동선이었다. 앵커 시설이 영화의거리에 몰려있어 도보 이동이 무척 수월했고,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 또한 많아서 사람들 사이에 당황한 기색이 크지 않았다. 만약 주요 극장 간 거리가 멀었다면 오가는 교통편을 이용하는 순간부터 악몽이 시작되었을지도? 가는 날이 장날이었는지, 나중에 올라온 보도 사진을 보니 날씨가 맑고 쨍쨍했다. 황금연휴 때 기획했던 각종 행사가 잘 이루어진 것 같아서, 내가 다 뿌듯할 정도였다.
앞서 말한 장기 체류에 대해 첨언하자면, 도시의 인프라 또한 큰 역할을 담당한다. 방문객이 머물만한 숙소가 많아야 하고,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먹거리, 볼거리 또한 충분해야 전체적인 만족도가 높은 건 상식이다. 그런 면에서 전주국제영화제는 태생부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영화의거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그 유명한 ‘전주한옥마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호텔 말고도 머물 수 있는 적당한 숙소, 이색적인 숙소가 충분하고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경험과 먹부림이 제대로 발휘된다는 뜻이니, 장기 체류에 대한 심적 저항이 낮아지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말은 1박 2일이지만 실제로는 단 하루만 머물렀던 나는 영화 보고 전시 보고 여기저기 움직이느라 식사다운 식사를 단 한 끼도 즐기지 못해서 더욱더 아쉬웠다. 예전 «씨네21»에서 전주국제영화제 출장을 앞둔 기자들 눈이 반짝인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갸우뚱했는데, 이제는 온전히 통감한다.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전주에서 맛 탐험을 하지 않고 영화만 보는 건 아무리 씨네필이라도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까. 맛집 조사까지 끝내야 전주국제영화제를 즐길 기본적인 준비를 마쳤다고 할 수 있겠다.
아, 맞다. 전주국제영화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결정적 계기인 ‘100 Films 100 Posters’를 실견한 소감을 빠뜨릴 수 없지. 그해의 상영작 중 100편을 뽑아 그래픽 디자이너 100명이 영화에 대한 포스터를 제작해 전시하는 행사는 2015년 시작해 올해로 11년 차를 맞으며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적인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작년 10주년을 기념해 1000점의 포스터를 공개할 만큼 아카이빙의 힘 또한 놀랄 정도인데, 올해부터 ‘100 Films 100 Posters’의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행사가 비단 전시뿐 아니라 토크, 포럼, 워크숍, 부대 전시까지 여러 갈래로 확장됐다.
즉 ‘행사 속 행사’처럼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강화된 셈인데, 다다익선이란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하지만, 막상 당사자 입장에서는 꽤나 고민거리다. 영화 관람과 ‘100 Films 100 Posters’ 관람 중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느냐에 따라 다른 이보다 포기할 게 많아지고, 셈법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개막 2일 차에 방문한 터라 전시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지만, 영화제 중반에 방문하는 이들은 전시를 제외하고도 포럼과 토크, 워크숍 등의 선택지가 다양하게 존재했다. 만일 자기가 정말 보고 싶은 영화의 상영 시간과 디자인 관련 행사가 겹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개인이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 생길 수 있다.
전시만 하더라도, 시간 관계상 포스터 100장을 모아 놓은 메인 전시에만 집중한 나와 달리, 여유가 있다면 다른 전시에도 분명 관심이 갈 터. 총 네 곳의 전시장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는 5개의 전시는 그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고, 그 규모 또한 관람 하나만을 위해 움직이기에는 애매한 느낌이었다. 전주시립인후도서관, 완판본문화관 등 해당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겠지만, 작은 전시를 보기 위해 길게는 왕복 1시간 거리를 오가는 일은 영화제를 찾은 이에게 상영작보다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커 보였다.
메인 전시를 소개하는 포스터의 불명확한 정보 표기가 혼란을 가중시키는 면도 존재했다. 전시 장소로 팔복예술공장, 영화의거리, 문화공판장 작당을 표기했는데, 실제 확인해 보니 영화의거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시 형태가 아니었다. 거대한 현수막에 포스터를 줄줄이 인쇄해 허공에서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거리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코레이션에 가까웠다.
100장의 포스터를 보여주는 행사의 근본 전시는 팔복예술공장과 문화공판장 작당,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는데, 본진으로 추정되는 팔복예술공장 쪽이 궁금해서 택시까지 탔고 갔다가 다소 허무함을 느꼈다. 벽에 설치한 포스터가 시야에서 너무 벗어나 디테일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종이가 들뜬 부분이 계속 눈에 거슬린 점이 주효했다. 예전부터 유지해 온 포맷이라 예상은 했지만, 직접 두 눈으로 경험할 때 느끼는 아쉬움이 존재하더라. 추후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진 속 문화공판장 작당의 디스플레이는 훨씬 직관적이고 휴먼 스케일에 적합했는데, 영화의거리와도 거리 면에서 훨씬 가까웠다. 내년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포스터 전시를 보러 간다면, 1순위로 문화공판장 작당을 추천하고 싶다.
이번 여정을 준비하며 처음 안 사실 하나.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더불어 전주국제영화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비주류 영화, 예술 영화, 독립 영화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더 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작품 또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기에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과 창작자, 평론가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고. 그동안 ‘100 Films 100 Posters’라는 디자인 행사를 꾸리는 독특한 영화제로만 생각한 무지함에 살짝 부끄러웠는데, 실제 관람한 영화가 예상보다 무척 좋았기에 민망함이 더해졌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백현진쑈 문명의 끝›, ‹3670›, ‹핑크문›까지 총 3편으로, 이 중 ‹3670›은 티켓 매진 때문에 추후 온라인 스크리닝으로 접했고, 나머지 두 편은 현장에서 관람했다.
음악가, 화가, 연기자, 시인 등 다재다능하기로 유명한 예술가 백현진이 연극 연출에 도전한 ‹백현진쑈: 공개방송›의 공연 기록을 감독이자 예술가인 박경근이 해체하고 추가로 촬영한 장면을 집어넣어 어디까지가 진짜 공연인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던 ‹백현진쑈 문명의 끝›은 여러 낯익은 인물의 등장과 기묘한 장면의 영상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3670›은 극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플롯이 매우 특별했다. 친형제 같은 탈북자 커뮤니티와 동갑내기 게이 커뮤니티 사이를 오가는 27살 탈북 게이 청년이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상처를 입고 이를 극복하는 방식을 흡입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기반해 움직이는 각기 다른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과연 4관왕을 차지할 만했다. ‹핑크문›은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 불리는 윤석남 작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 마흔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그가 40여 년간 쏟아냈던 에너지의 흔적을 반추하고, 지금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작업에 몰두하는 열정에 매료됐다.
특히 ‹핑크문›은 예정에 없던 깜짝 GV를 진행하며 윤석남 작가와 그의 조카이자 이번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은 감독이 무대 중앙에 앉아 관객과 질문을 주고받았는데, 많은 여성이 창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진지하게 상의하는 장면이 인상에 남았다. GV가 끝난 후에도 작가를 둘러싸고 사인을 받으며 옹기종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록스타를 보는 듯했다. 8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순전한 웃음으로 대중을 대하는 작가의 모습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픈 욕망이 생겼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제가 잠시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비록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찍었지만, 한평생 치열하게 작업하고 삶을 개척한 예술가의 모습이 완연했다. 어쩌면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내게 허락한 깜짝선물일지도?
영화제가 더 많은 사람의 참여와 관심과 인기와 특색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일을 도모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결국 영화가 있다. 더 좋은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 일정한 주제로 엮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영화의 힘을 믿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모이고 모여 옥석을 가리는 노력과 열정으로 영화제를 이끌어 간다. 그 집약체인 영화제 상영작 대부분이 실은 국내 극장이나 OTT를 통해 다시 서비스할 가능성이 희미하고, 그렇기에 지금 마주하는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은 매년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무르는 동기로 충분해 보인다.
‘인생을 바꾸는 예술’, ‘인생을 바꾸는 영화’라는 수식은 뻔하다. 그러나 조약돌을 호수에 던질 때 일어나는 파장처럼, 우리가 접한 무언가는 어떤 형태와 의미로든 결국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두운 극장에서 영화를 통해 내면으로 침잠하며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면,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전주국제영화제야말로 편견의 껍질을 부수고, 감정의 파고를 넘나드는 여정의 한복판으로 제격이다. 마음속 고요한 호수를 흔드는 퐁-당 혹은 풍-덩의 장으로.
덧. 전라북도에 위치한 전주는 지리적 위치가 약간 애매하다. 광주처럼 먼 것도 아니고 대전처럼 가깝지도 않다. KTX가 다니지만, 매일 운행하는 직행 편이 5회에 불과하다. 환승 편을 포함하면 당연히 훨씬 많아지지만, 열차 환승을 꺼리는 이에겐 1시간 50분이라는 소요 시간이 그리 매력적으로 와닿지 않을 테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우리 기억에서 어느덧 사라진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예상외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고속버스는 차편이 훨씬 다양하고 시간대도 넓으며, 무엇보다 얼마 전 외국인 유튜버가 환호했던 전설의 프리미엄 버스가 존재한다. 소요 시간은 2시간 40분으로 KTX에 비해 50분이 더 길지만,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처럼 의자를 완전히 뒤로 젖힌 채 편하게 갈 수 있고, 개인별로 커튼을 칠 수 있어 사생활 보호도 가능하다. 요금마저 KTX보다 20% 저렴하다. 야밤에 움직이는 터라 할 수 없이 고속버스를 이용했던 나는 프리미엄 버스에서 꿀잠을 자며 그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자차로 가지 않는 분은 KTX 말고 프리미엄 버스를 이용해 보시라.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센트럴시티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먹거리 인프라도 즐길 수 있다.
Writer
전종현(@harry.jun)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에서 발행한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겸 아트 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다.
멜트미러MELTMIRROR는 게임 개발과 영상 연출을 병행하는 작업자입니다. 아, 그런데 막상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기 난감한 부분이 있네요.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TRPG 게임의 주사위🎲 굴림 형식을 빌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응했거든요. 예컨대, 단순한 작업자가 아니라 ① 방황하는 ② 반복되는 ③ 1년을 기록하는 ④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⑤ 비교적 성실한 ⑥ 매일 1권의 만화책을 읽는 삶을 영위하는 작업자랍니다. 작년 에스파aespa의 ‘WHIPLASH’ MV를 연출한 주인공이자, 밴드 실리카겔SILICA GEL의 오랜 친구로서 오랜 친구로서 MV 작업을 도맡은 이로 잘 알려진 그는 좋은 영상이란 ① 내러티브 없이 나열된 이미지 자체로 ② 강박적인 편집과 성실한 수면으로 ③ 주기적으로 모니터를 멀리서 쳐다보며 ④ 나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행운과 함께 ⑤ 절묘한 순간에 작업을 멈추며 ⑥ 바닥에 떨어진 고양이의 한 가닥 수염처럼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끝없는 강박과 집요함은 작업에만 쏟아내고, 철저한 계획만큼이나 변칙과 우연을 활용하는 것을 중시한답니다. 충분하고, 완벽하고, 후회 없는 수면은 필수고요. 특정 시기마다 자신의 재능과 속도를 잘 관찰했던 작업자로 기억되고 싶은 멜트미러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P.O.G frame›, 2024. 게임&그래픽 디자인: MELTMIRROR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작업자 ‘멜트미러MELTMIRROR’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답변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제가 주로 작업하는 TRPG 게임의 주사위 굴림 형식을 빌리기로 했어요. 6면체 주사위를 던지며 인터뷰를 확인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저는 현재 게임 개발과 영상 연출을 병행하며, (🎲) 삶을 살고 있습니다.
① 방황하는 ② 반복되는 ③ 1년을 기록하는 ④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⑤ 비교적 성실한 ⑥ 매일 1권의 만화책을 읽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동양화를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부터 생각의 속도와 실행의 속도가 일치하는 작업을 지속하는 게 목표였는데요. 삶의 어떤 분기마다 생각과 실행의 속도가 어긋나는 순간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회화에서 영상으로, 그리고 최근엔 영상에서 게임으로 매체를 바꿔가며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에요.
‹P.O.G frame›, 2024. 게임&그래픽 디자인: MELTMIRROR
‹P.O.G frame›, 2024. 게임&그래픽 디자인: MELTMIRROR
‹P.O.G frame›, 2024. 게임&그래픽 디자인: MELTMIRROR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삼청동 인근의 신혼집을 주거 겸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답니다. 산책하기 좋은 평온하고 목가적인 동네에요. 교통은 꽤나 불편하지만, 한 번 터를 잡으면 좀처럼 떠나기 힘든 매력이 있어요. 특히, (🎲) 풍경을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습니다.
①② 길 고양이가 하품하는 ③④ 비 온 뒤의 인왕산 ⑤⑥ 수상한 단체의 명함이 흩뿌려진 골목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정해진 일상에서 살짝 다른 선택을 할 때 많은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영감이라기보다 시각적 파편의 수집에 가까워요. 이를 파일처럼 따로 저장해 두었다가 작업을 진행할 때 연결 지어 사용합니다. 얼마 전에 매일 오른쪽으로 둘러보던 길을 왼쪽부터 둘러보며 반대로 걸을 일이 있었는데요. 생각보다 굉장히 낯설고 새롭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머릿속 지도가 완전히 뒤바뀐 기분이 들어서 좋았죠. 가장 최근에는 (🎲) 보며 재미있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① 포기가 빠른 아버지의 모습을 ② 인쇄가 잘못되었지만 되려 매력적인 룰북을 ③ 구로사와 기요시(黒沢清)가 과거에 만든 단편을 ④ 10년 전에 찍힌 나 자신의 사진을 ⑤ 욕을 배운 적이 없는 갓난아이의 분노 영상을 ⑥ 꽤 감동적인 문구가 쓰인 스팸 메시지를
‹P.O.G frame›, 2024. 게임&그래픽 디자인: MELTMIRROR
‹P.O.G frame›, 2024. 게임&그래픽 디자인: MELTMIRROR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게임을 제작할 땐 조마조마하고 괴롭게 작업합니다. 게임에는 아직 알지 못하는 감각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결국 이번에도 조금 아쉬운 결과물을 완성하겠지…’ 하면서 조금 진 빠진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요. 영상 작업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컷을 이어 붙일 때 확신이 드는 순간이 조금 더 있을 뿐이죠. 그리고 영상을 다룰 때는 평소보다 조금 더 단호해질 수 있어서 좋답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난 2024년엔 꽤 다양한 영상 작업을 제작했어요. 그중 대표작으로는 뮤지션 ‘휘HWI’와 함께 공동으로 연출한 ‘너의 전생’ MV, 뮤지션 ‘리비자Leevisa’의 ‘Keystone’ MV, 그리고 K-팝 아티스트 ‘에스파aespa’의 ‘WHIPLASH’ MV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HWI ‘너의 전생’ MV, 2024
HWI ‘너의 전생’ MV, 2024
HWI ‘너의 전생’ MV, 2024
HWI ‘너의 전생’ MV, 2024
Leevisa ‘Keystone’ MV, 2024
Leevisa ‘Keystone’ MV, 2024
Leevisa ‘Keystone’ MV, 2024
Leevisa ‘Keystone’ MV, 2024
‘너의 전생’은 저의 첫 공동 연출 작업이자 작업 전반의 프로세스를 만족스럽게 컨트롤할 수 있어서 흡족했고요. ‘Keystone’은 제 첫 해외 올 로케이션 작업이면서 제작의 모든 과정을 홀로 수행한 첫 번째 작업이라서 의미가 깊었어요. ‘WHIPLASH’는 ‘엑소EXO’의 ‘파워Power’ 이후 7년 만에 복귀한(?)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라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다만, “제 본업은 게임 개발자입니다”라고 늘상 주장하는 자기소개가 무색하게, 2024년에는 게임 개발이 미흡했던 터라… 2025년에는 개발자로서 더 분발할 예정입니다.
aespa ‘WHIPLASH’ MV, 2024
aespa ‘WHIPLASH’ MV, 2024
aespa ‘WHIPLASH’ MV, 2024
aespa ‘WHIPLASH’ MV, 2024
aespa ‘WHIPLASH’ MV, 2024
aespa ‘WHIPLASH’ MV, 2024
최근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좋은 영상은 (🎲)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런 부분에 최선을 다하면서, 더불어 좋은 운동감의 연쇄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① 내러티브 없이 나열된 이미지 자체로 ② 강박적인 편집과 성실한 수면으로 ③ 주기적으로 모니터를 멀리서 쳐다보며 ④ 나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행운과 함께 ⑤ 절묘한 순간에 작업을 멈추며 ⑥ 바닥에 떨어진 고양이의 한 가닥 수염처럼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의 어느 지점을 갑자기 들춰내도 균일한 (🎲)이 유지될 때 만족을 느껴요. 반면 체력과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해 흐려진 집중력이 작업에 반영되면 매우 슬픕니다. 최근 작업에서 특정 부분을 콕 집어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하긴 어려워요… 만족과 불만족의 위치는 매번 달라지거든요.
①②③④⑤⑥ 긴장감 ⑦ 슬픔
SILICA GEL ‘APEX’ MV, 2023
SILICA GEL ‘APEX’ MV, 2023
SILICA GEL ‘APEX’ MV, 2023
SILICA GEL ‘APEX’ MV, 2023
SILICA GEL ‘APEX’ MV, 2023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직장인인 바깥양반(와이프)의 기상 패턴과 동일하게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정오 12시가 될 때까지 딱 세 가지 업무를 성취하기 위한 하루의 계획을 세워요. 이후 오후 7시까지 업무를 진행하는데요. 평균적으로 두 가지 업무를 성취하는 것 같습니다. 업무가 촘촘할 때는 집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느슨한 시기에는 가본 적 없는 (🎲)으로 이동해서 업무를 마치고 귀가해요.
①② 인기 없는 프랜차이즈 식당 ③④ 이름이 특이한 지하철역 ⑤⑥ 알라딘 중고서점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영상과 게임,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말해볼게요. 먼저 영상에서는 음악의 힘에 기댄 작업 구상을 멈추는 것, 단호함을 내려놓고 표현 방식의 폭을 넓히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영상 작업을 할 때 제 단호함은 분명 장점이지만, 요즘은 정체감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요. 고민 없이 던지는 습관처럼 굳어버린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게임에서는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만의 ‘컵cup’을 들고 와 컵의 역사에 관한 전 우주적 망상을 펼치는 TRPG를 개발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하지만 좀처럼 구상 단계를 넘어서기가 어렵네요.
아, 더불어 최근에 구매한 소니SONY의 신형 캠코더 PXW-Z200에 적응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SILICA GEL ‘NO PAIN’ MV, 2022
SILICA GEL ‘NO PAIN’ MV, 2022
SILICA GEL ‘NO PAIN’ MV, 2022
SILICA GEL ‘NO PAIN’ MV, 2022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마음속에 간직한 문장은 ‘포차코Pochacco의 키는 바나나 아이스크림 라지 사이즈 컵 4개’인데 말이죠… 손끝은 늘 날카롭고 강박적입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사실 2022년 이후 쭈욱 슬럼프 상태에 빠져 있어서 해답을 찾지 못했어요. 아직도 긴 터널의 (🎲)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①② 시작점 ③④ 정중앙 ⑤⑥ 루프 속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나이와 함께 찾아온 건강 문제입니다. 작업을 진행할 때마다 건강이 깎여 나가는 걸 느껴요. 그리고 사고방식이 굳어져 가네요. 자꾸 표현의 해답을 내리려고 해요.
SILICA GEL ‘Mercurial’ MV, 2023
SILICA GEL ‘Mercurial’ MV, 2023
SILICA GEL ‘Mercurial’ MV, 2023
SILICA GEL ‘Mercurial’ MV, 2023
SILICA GEL ‘Mercurial’ MV, 2023
SILICA GEL ‘Mercurial’ MV, 2023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끝없는 강박과 집요함은 작업에만 쏟아낼 것, 철저한 계획만큼이나 변칙과 우연을 활용할 것, 결과를 책임질 것. 그리고 언제나 (🎲).
League of Legends × SAN SAN GEAR ‘Pivotal Moment’ Campaign Teaser, 2024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특정 매체의 작업으로 한정되어 기억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정 시기마다 자신의 재능과 속도를 잘 관찰했던 작업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 되기 전에 게임 개발자로서 좋은 게임 하나를 발매하는 것입니다. 게임의 무수한 가능성을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묶어두지 않는 간결한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싶구요. 더불어… 바쁘지 않고, 밥을 꼭꼭 씹어먹고, 고양이 밥 주는 시간을 잘 챙기는 작업자로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사랑은 이미 얻었습니다…!
①② 2027년이 ③ 초예술 토머슨이 ④ 멋쩍게 웃는 관객이 ⑤ 소멸된 영혼이 ⑥ 신체를 포기한 데이터가
Artist
멜트미러MELTMIRROR(@meltmirror)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게임 개발자이자 틈틈이 영상을 연출하고 편집하는 작업자다. 요즘에는 같은 질문을 받아도 조금씩 다른 대답을 전하며 스스로의 모양을 알아가고 있다.
애니청 작가는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특히 여러 뮤지션들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MV는 그의 개성이 한껏 묻어나면서도 아티스트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돕는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인상 깊은 날이나 사람을 늘 간직하길 원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찍게 된 사진인지라, 그는 작업에서 피사체와 쌓는 유대감과 친밀감을 중시해요. 결과물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거리감이 만들어내는 애정의 온도가 다르기 때문인데요. 그는 말합니다. “그냥 해라. 해서 안 되더라도, 일단 해봐야 안 할 수 있다.” 제일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다른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버리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하는 애니청 작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그의 이모저모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Gonny ‹Ours› Album Photography, 2024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사진, 영상 작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애니청Annie chung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수단과 상관없이 인상 깊은 날이나 사람을 늘 남기고 간직하길 원했던 것 같아요. 그런 기질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되었고,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Hanjoo of Silicagel, 2021
사진집 『Life images 2』 중에서, 2020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주거 공간은 연남동이고, 작업실은 연희동 홍제천 자락에 있어요. 두 곳 모두 산책로나 강이 가까이에 있고 주변에 나무들이 참 많아요. 특히 작업실은 내부만 보면 옛날 미국 시골집 같은 느낌이 많이 난답니다. 좋아하는 취향의 물건을 걸어놓고, 저희만의 안락한 공간으로 변해가는 걸 보면 더욱더 애정이 가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어린 시절, 인상 깊게 봤던 영화들을 되돌려 보는 편이에요. 옛날 영화를 보면 구도나 인물 감정에 대한 충실한 특징이 두드러질 때가 있거든요. 이 감정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고 많이 배웁니다.
CHUU ‹PINK CLOUD› MV, 2024
CHUU ‹PINK CLOUD› MV, 2024
CHUU ‹PINK CLOUD› MV, 2024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보통은 머릿속에 스치는 이미지를 프레임에 재현하려고 해요. 그 과정이 1초 만에 이루어질 때도 있고, 길게는 하루도 걸리죠. 어떨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도 있어요. 일단 영감이 떠오르면 스케치하듯 머릿속에 빠르게 그려보는 것 같아요. 첫 단추는 ‘구도’에서 시작합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2024년 여름은 The Volunteers의 앨범 ‹L›의 무드 필름부터 북미 투어 비하인드컷, 콘서트 라이브 영상까지 제작했어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JUE의 새로운 싱글 ‹if U..›의 포토 및 MV도 제작했는데요. 저의 뼈대 같은 취향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The Volunteers ‹L› Concept Film (Yerin.ver), 2024
The Volunteers ‹L› Concept Film (Yerin.ver), 2024
The Volunteers의 North America Tour Special Video ‹PSYCHO›, 2024
The Volunteers의 North America Tour Special Video ‹PSYCHO›, 2024
JUE ‹if U..› MV, 2024
JUE ‹if U..› MV, 2024
최근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 스타일대로 터치를 주면서 동시에 아티스트 고유의 개성이 두드러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아티스트의 작업을 보고 다른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런 아이덴티티도 있었구나. 원래 이런 면도 가지고 있었네.’라고 느끼길 바랐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작업을 진행할 때 아티스트와 쌓는 유대감과 친밀감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인지라 가끔은 성격이 맞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요. 그 마음이 정말 잘 맞을 때 너무나도 만족스럽답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속상함을 느끼면서도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결과물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그런 거리감이 만들어내는 제 애정의 온도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The Volunteers의 North America Tour, 2024
The Volunteers의 North America Tour, 2024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많이 먹어요. 하루 중 제일 신경 써서 차리는 식탁이 아침 밥상이랍니다. (건강에는 안 좋다는 말이 있지만요…) 어쨌든 노력해서 밥을 차리고 맛있게 먹으면 하루가 활기차져요. 그럼 자전거를 타고 작업실에 가서, 이제 다시 좀비가 됩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원래부터 옷 입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 들어 패션에 더욱더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화려하거나 예쁜 옷보다는, 실용적이면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찾게 됩니다. 많은 걸 사고 또 버리는 대표주자였는데, 요즘은 주변을 정리하고 꼭 필요하면서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CHS ‘One Summer Day’ (feat. Mei ehara) MV, 2024
CHS ‘One Summer Day’ (feat. Mei ehara) MV, 2024
CHS ‘One Summer Day’ (feat. Mei ehara) MV, 2024
CHS ‘One Summer Day’ (feat. Mei ehara) MV, 2024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인 것 같아요. 결국 언젠가는 모든 게 눈앞에서 사라지고, 저도 다른 이들의 눈에서 사라지겠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요. 웃고 있지만 슬픈, 울고 있지만 웃는 듯한 모습이 전부잖아요. 항상 이미지의 양면성을 생각하며 작업 중입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저는 슬럼프가 온다고 피하기보다, 온몸으로 직면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게 꼭 싸워서 이긴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마음의 커튼을 치고 그 안에 꽤나 오래 머물면서 고민하는 편입니다.
Gonny ‹Ours› Album Photography, 2024
Gonny ‹Ours› Album Photography, 2024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주거 공간의 크기를 늘리고 싶어요. 강아지와 고양이, 동거인 이렇게 넷이 살고 있는데요. 모두에게 독방이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그냥 해라! 해서 안 되더라도, 일단 해봐야 안 할 수 있다.
CHS ‘Wet Market’ MV, 2024
CHS ‘Wet Market’ MV, 2024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사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꾸준히 좋았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좋아졌죠. 게다가 감사하게도 이를 지속할 수 있도록 주변 상황이 도와줬고요. 만약 현실적인 문제로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는 게 어렵다면, 조언을 얻기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계속해 나갈 건지 아닌지 결정부터 하는 게 제일 필요해 보여요.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다른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버리는 것도 괜찮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해 주세요.
Hiko EP ‹말버릇› Album photography, 2024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좋은 사람.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오직 저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나이 때문에 자신감을 잃지 않고, 지금과 동등하게 꿈꾸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Artist
애니청(@anniechung_org)은 타인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다. 고려대학교에서 산업정보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사진예술학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했다. 선우정아, 옥상달빛, 요조, 백예린, The volunteers, CHS, 죠지, Damons year, JUE 등 다양한 뮤지션의 MV를 만들고 촬영을 진행했다. 사진집 『Life images 1』(2017), 『Life images 2』(2020), 『IMAGES』(2022), 『HOW CAN I FORGET YOU』(2023), 『IKINARI』(2023)를 출간했고, 개인전 «HOW CAN I FORGET YOU»(HOQICM, 2017)을 열었다.
인터넷 밈은 때를 가리지 않고 탄생합니다. 태어난 이유조차 다양합니다. 그중 흑역사가 밈이 되는 경우, 당사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보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그래서 더 탐닉하게 되는 일명 ‘길티 플레저 밈’을 아시나요? 가수 비의 ‘깡’을 예로 든다면 이해가 빠를까요! 얼마 전에는 어반자카파 멤버 조현아의 신곡 ‘줄게’의 음방 무대가 엄청난(?) 화제를 모으면서 뉴진스 컴백 영상보다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길티 플레저 밈의 백미는 댓글 놀이입니다. 누가 더 맛깔난 표현으로 ‘좋아요’를 많이 받는지 경쟁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러다가 당사자가 해당 밈을 긍정하면 그때부터 대중은 새로운 영웅의 과거를 캐며 열광하게 됩니다. 운이 좋다면 재발견과 구원, 부활의 기회까지 선사하죠. 불행에서 시작하지만, 종국에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티 플레저 밈의 역설에 대해 ‘밈 원정대’를 연재하는 김경수 님이 탁월한 견해를 보내왔습니다. 다들 이 흥미로운 아티클을 놓치지 마세요!
최근 나는 ‘줄며’들었다. 조현아의 신곡 ‘줄게’에 중독되었다는 말이다. 하루에 한 번씩 ‘줄게’를 듣지 않으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다. 카페에서 ‘줄게’가 나오면 몸이 절로 반응하며 안 들은 날에는 후렴구가 머리에 빙빙 맴돈다. ‘줄게’를 처음 들었을 때는 생각지 못한 일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날은 지난 7월 5일이었다. 그날 오후 KBS 뮤직뱅크의 ‘줄게’ 무대는 방영 직후 소셜미디어에서 ‘깡’의 명성을 이을 전설적인(?) 무대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줄게’ 무대 영상과 이에 대한 조롱 섞인 댓글 반응을 정리한 게시물로 소셜미디어가 쫙 도배됐다. 호기심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영상을 틀었다. ‘깡’이 유행할 때 1일 5깡을 했으며 아직도 ‘깡’을 흥얼거리는 덕후라 더욱 궁금했다.
정작 ‘줄게’ 영상을 트니 안타까움이 컸다. 컨디션 난조가 화면 너머로 느껴졌다. (이 무대를 할 당시 몸이 아팠다고 한다.) 안무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일이 버거워 보였다. 이런 무대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시선 처리마저 내내 어색했다. 음정도 불안했고, 가사까지 실수했다. 거친 노래와 불안한 음정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라이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조현아가 속한 그룹인 어반자카파Urban Zakapa 노래를 즐겨 들은 데다, 심심할 때마다 유튜브 채널 ‘조현아의 목요일 밤’을 봐온 터라 더욱더 마음이 심란했다.
섬네일에서부터 피부로 와닿는 은은한 광기. 아이돌 같은 엔딩 포즈를 준비했으나 부릅뜬 눈이 왜인지 부담스럽다. 이 영상의 컬트적인 인기에 가장 큰 보탬이 된 것이 영상의 섬네일이라고 생각한다.
네티즌의 조롱거리가 된 부분은 노래와 ‘헤메코’였다. 특히 “나는 돈보다 꽃이 좋더라”로 시작하는, 아직 인류에게 이른 감성의 가사가 낡은 멜로디로 어우러진 노래와 분홍빛 꽃잎이 가득하게 그려진 의상 등이 집중포화를 당했다. 나도 처음 영상을 접했을 때 당혹스러웠다. “우주를 떠돌게”라는 가사가 반복될 때마다 정신이 잠깐 안드로메다에 다녀온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줄게’가 아니라 평범한 노래를 부르면서 저런 무대를 했더라면 마음껏 응원했을 터다. ‘줄게’ 무대는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서일까. 무대의 미감과 더불어 굳이 이 노래에 그런 의상을 컨펌한 상황에 안타까움이 섞인 반응이 대다수다.
그리고 ‘줄게’는 곧장 인터넷 밈이 되었다. 네티즌의 웃긴 댓글과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음악 크리에이터의 활약 덕분이다. 비의 ‘깡’과 컬래버레이션을 기대한다는 댓글을 의식한 듯, ‘줄게’와 ‘깡을 리믹스한 ‘줄깡’이라는 영상이 제작되었다. 제프프는 황정민의 ‘줄게’를 제작했다. 계산기로 ‘줄게’를 커버하는 사람도 있었고, 백예린과 아이유의 목소리를 입힌 AI 커버도 벌써 여럿 생겼다. 이에 힘입어 ‘줄게’의 인기가 파죽지세로 치솟았다. 조현아는 ‘줄게’ 음방 출연을 두 차례 했다. 앞서 말한 7월 5일 음방 조회수는 현재 240만 회, 다음날 공개된 ‘쇼! 음악중심’ 음방 조회수는 152만 회를 달성했다. 농담이 아니라, 두 영상 모두 7월 13일 ‘쇼! 음악중심’에서 진행한 뉴진스의 복귀 무대 ‘Supernatural’의 조회수인 141만 회를 웃돈다. 최근 비(非) 아이돌 노래가 이만큼 화제가 된 경우는 비비의 ‘밤양갱’ 정도다.
‘줄게’와 ‘깡’을 리믹스했대서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기대 이하다. 콘셉트는 훌륭하지만 아직 농익지는 않은 듯해서 아쉽다. J.E.B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과연 제프프다. 이 영상의 킬링 포인트는 황정민의 영화 대사 중 “사랑해”가 분명히 있을 법한데, 굳이 ‹수리남›의 “사탄 들렸어” 음성을 가져와서 “너를 사탄해”로 들리게 한다는 점이다. AI 시대의 정겨운 수제 곡이라는 베댓이 증명하듯이, 수제 곡의 아름다움은 이 억지스러운 순간에 등장한다.
‘줄게’의 인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보통 괴작이나 망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은 혼자 감상하면 왜인지 혼란스럽다. 나 혼자서만 괴롭힘을 당한 기분이 든다. 함께 충격을 나눌 만한 사람이 있으면 조금은 견딜 만하다. 동일한 경험을 겪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어서다. 게다가 지금은 예술을 소비하고 리뷰하는 행위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바로 업로드하는 세상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감식안마저 평가의 대상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어떤 작품을 망작이라고 쉽게 말했다간 예술을 모르는 예알못으로 보이기 쉽다. 이때 유명 평론가나 인플루언서가 먼저 작품을 혹평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대충 내 의견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생각과 말을 빌리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하는 장르의 밈을 ‘길티 플레저 밈Guilty pleasure meme’이라고 부르고 싶다. 보는 행위에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즐기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작품을 혹평하는 여론이 생기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모두가 망작이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나 하나쯤은 더 욕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군중 안에 있다는 마음으로 부담감을 더는 셈이다. 이때 아이러니하게 망작은 네티즌의 놀이터로 거듭난다. 어떠한 댓글을 달든지 작품의 흥행이나 재평가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 덕분이다. 그때부터 망작의 리뷰란에서는 서로 누가 더 웃긴 댓글을 다는지 겨루는 놀이가 시작된다. 규칙은 간단하다. 어떻게 이 작품이 망했다는 말을 더욱더 맛깔나게 하는가, 타인에게 ‘좋아요’를 얼마나 많이 받는가 여부다. 댓글 창의 놀이가 되려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보통 콘텐츠와 함께 댓글을 함께 감상(?)하는 것이 재미의 포인트다. 전체 화면으로 보는 건 비매너다. 이런 망작은 ‘댓글 레전드’라는 이름으로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에 집단지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인터넷이라면 더더욱 집단이 생기기 어려운 곳이다. ‘깡’ 댓글 창은 집단지성은 불가능할지라도 집단적인 유머는 가능하다는 몇 안 되는 증거일 것이다. 먼 훗날 인터넷 매체에 관한 박물관이 생긴다면 ‘깡’ 댓글 창은 사라지기 전에 아카이빙 되어서 전시할 만한 물성으로 박제되어야 한다. 나는 꾸러기 표정에 관련된 드립을 가장 좋아한다.
왜 ‘깡’과 ‘줄게’의 댓글 창은 놀이에 적합할까. ‘줄게’에 달린 댓글 중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있었다. 이 노래는 “웃기려 하지 않아서 오히려 웃긴다”라는 말이었다. 최근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유행을 노리고 만든 노래가 가득한 상황에서 한번쯤 고민할 만한 부분이다. ‘홍박사님을 아세요?’, ‘마라탕후루’, ‘잘자요 아가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단 전개부터 평범한 인간의 의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선배에게 마라탕과 탕후루를 함께 사달라고 조르다가 “그럼 제가 선배 맘에 탕탕 후루후루”라고 급발진하며 춤을 추는 모습은 의식의 흐름을 보는 듯하다. 벌스verse는 오직 챌린지에 쓰이는 중독적인 후렴구와 이상한 콘셉트, 누구든 따라 할 수 있는 안무를 유행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고 버려진다. 마치 인공위성의 발사체를 보는 듯하다. 유행을 만드는 데에는 더없이 효과적 전략이더라도 중독적인 후렴구만 반복돼 금방 질리는 한계도 있다. 이처럼 중독성과 유행을 저격하는 틱톡용 노래는 가짜 광기라 생각한다. 유행을 노리지 않아도 유행이 생기는 ‘줄게’나 ‘깡’이 진짜 광기에 가깝다.
조현아와 비는 음악에 진심으로 임한다. 앨범에 수록한 곡인 만큼 음방에 나올 때도 안무와 무대 구성, 의상 등을 체계적으로 구성한다. 다만 흔히들 이야기하듯 트렌드에 어긋난 기획을 할 때가 문제다. 본인은 한없이 진지한데 관객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아이러니가 생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웃음을 부자연스럽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이의 경직성을 교정하려는 징벌로 보았다. 물론 둘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4분 가까이 이어지는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예기치 못한 웃음 포인트를 수없이 만들어 내며 컬트적인 인기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누구는 노래의 1분 17초쯤, 누구는 3분 20초쯤에서 웃음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이 웃었던 지점에서 타인 또한 웃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하지만, 타인이 웃기다고 알려준 포인트를 발견하고 따라 웃기도 한다. 두 눈이 번뜩 뜨일 정도로 창의적인 댓글은 깊은 감탄을 준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노래를 놀리다가 결국에는 노래에 중독된다. 어느덧 댓글 창에는 중독된 네티즌이 길티 플레저를 고백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린다. 나처럼 줄며든 사람이 모이기에는 댓글 창만 한 곳이 없다.
솔직히 가혹하다 생각하지만, 왜인지 저들의 드립력이 부럽기는 하다.
인터넷 밈은 떡밥이 있어야 확장된다. 여고생의 ‘깡’ 챌린지에서 시작된 ‘깡’ 유행은 금방 시드는 듯했다. “꾸러기 표정을 지었는가?” 등의 여러 문답으로 ‘깡’을 판별하는 놀이의 재미 또한 옅어지는 중이었다. ‘깡’에 중독된 후 더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대중이 비의 디스코그래피를 마구 헤집기 시작하며 그 판이 커졌다. 잇따라 ‘차에 타봐’, ‘슈퍼맨’, ‘어디가요 오빠’ 등 아직 인류에게 이른 명곡(?)이 발굴되었다. 해당 곡의 유튜브 댓글 창에는 ‘깡’을 보고 왔다는 댓글이 인증처럼 남겨졌다. ‘차에 타봐’는 ‘깡’과 달리 여자 친구에게 접근한 남자를 때리겠다고 협박하는 가사다. 영상이 하필이면 스페인 자막이라 “이 음악은 J-POP입니다” 등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슈퍼맨’은 유행할 당시에는 비의 심연(?)이라 불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사와 낯선 가성 창법이 놀림거리가 되었다. ‘깡’ 하나도 버거운 와중에 ‘슈퍼맨’은 심화 과정이라 불릴 정도로 이상했다. 불에 기름을 붓듯 ‘레인이펙트’ 3화에서 비가 ‘La Song’과 ‘어디 가요 오빠’, ‘차에 타봐’(어떻게 이 세 곡이 한 앨범에 다 있을 수 있을까.)를 모니터링하는 영상이 발굴되자 비에게 나르시시즘 이미지가 더해졌다. 반대로 가수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면서 가수의 레전드 라이브를 되돌아보는 행렬도 이어진다. 조현아가 발라드를 라이브로 부르는 영상에는 ‘줄게’를 보고 왔다는 인증이 달려 있다. 한 가수의 디스코그래피와 삶이 대중에게 재발견되는 셈이다.
하필이면 영어와 스페인어로 번역되어서 수치심을 자아낸다. 최소 몇억 명은 이 부끄러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공식 영상이 아니라 이 영상이 유명해졌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어쨌든 스페인 사람이 안 듣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게 애국심인 것일까?
댓글 중 가장 웃긴 것은 작곡가를 지적하는 것이다. 왜 아무도 뭐라고 안 했냐는 이 밈의 공식 같은 거 같다.
이때 가수는 흥미로운 기로에 선다. 자신에 대한 밈을 인정하느냐 여부다. ‘깡’이 유행할 때 비는 방송에 직접 나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깡’을 들으려면 최소 1일 3깡은 하라는 능청스러운 말로 위기를 돌파했다. 이때 대중은 비의 태도에 환호했다. 본인에 대한 조롱이 가득한 인터넷 밈을 즐기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드러내서다. 이런 유머러스한 반응은 네티즌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하다. 조현아도 어반자카파와 함께한 방송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악플을 읽으면서 “‘줄게’를 부르긴 할 건데… 네일 색은 맞추어서 부를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리고 “너무 다양하고 재밌는 댓글이 많고 관심이 많은 게 느껴져서 속상한 마음보다는 두근대는 마음이 더 크다”라고 어반자카파의 홍보를 한 셈이라는 반응을 드러냈다. 이러한 원영적 사고가 네티즌의 호감을 샀다. 예전에는 이런 영상이 흑역사로 박제되었다. 당사자 앞에서 흑역사를 언급하며 괴롭히는 게 예능 프로그램의 클리셰였다. 지금은 다르다. 영웅 서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본인에게 뜻하지 않게 생겨난 인터넷 밈을 인정하는 것은 영웅 서사의 첫 단계인 ‘소명의 수락’에 가깝다. 인터넷 밈을 인정하는 순간, 가수는 영웅으로 변하고 대중은 이러한 모습에 열광하는 셈이다. 조회수를 모으려는 홍보 수단에 불과하다고 누군가는 냉소할 테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인터넷 밈은 누구에게나 부활의 기회를 준다. 인터넷 밈으로 부활한 대표적 사례가 바로 가수 김장훈이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그는 기부 천사와 독도지킴이 이미지로 유명했다. 타고난 퍼포먼스와 음색으로 어엿한 중견 가수로 불리던 그는 2010년대 후반부터 밈이 되었다. 성대결절로 목 관리에 실패해 괴성을 질러대는, “천 년에 한 번 나와야 하는” 퇴물 가수로 놀림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날카로운 고음으로 샤우팅을 지르는 그의 창법은 닭 창법, 감전 창법 등으로 불렸다. 처음엔 다들 비웃었지만, 옛날 김장훈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하나둘 발굴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빠져든 네티즌은 옛날의 김장훈을 재평가하며 지금의 김장훈을 ‘숲튽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야민정음으로 표기한 단어가 마치 한자처럼 보인다.)
숲튽훈 창법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창법’ 모음 열풍 때문이다. 전인권의 꼬털 뽑기 창법, 준케이의 염소 창법 등 가수의 컨디션 난조나 창법을 놀리는 모음집 안에 김장훈이 들어가 있어서다. 이와 대비되어서 권인하는 천둥 호랑이 창법이라는 명칭 때문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숲튽훈의 진가를 느끼고 싶다면 ‘아리랑’과 ‘고속도로 로망스’ 무대 강추다.
이런 구도가 생기면서 김장훈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의 댓글 창마다 김장훈의 몸을 숲튽훈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 둘이 김장훈의 몸을 두고 결전을 벌이는 중이라는 밈이 생겼다. 여기에 숲튽훈을 모창하는 유튜버 ‘김장훈왕팬’의 영상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김장훈왕팬은 김장훈의 콘서트에 직접 가겠다는 인증을 올렸고 김장훈은 그와 함께 듀엣 무대를 펼쳤다. 이때 김장훈은 옛날 창법과 샤우팅 창법을 번갈아 사용하며 본인이 완전히 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는 샤우팅 창법을 하는 자아를 숲튽훈이라 불렀다. 이에 기반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보이숲코리아’와 ‘복면가숲’이라는 코너를 열기도 했고 심지어 김장훈과 숲튽훈의 창법을 9:1 비율로 섞는 콘서트를 여는 것은 물론 대놓고 ‘숲서트’를 개최해 팬(?)을 불러 모았다. 그는 이제 버튜버로 활동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솔직히 이 당시에 이 영상만을 기다렸다. 김장훈왕팬의 성량을 압도하는 김장훈의 성량을 보고 역시는 역시다 싶었다.
참가자 하나하나가 개성 있어서 솔직히 한 번에 보기가 힘들어서 나누어 보았다…
인터넷 밈은 비에게도, 조현아에게도 그런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 조현아의 발라드 중 ‘바래진 기억에’ 라이브 영상에는 “줄게 보고 영혼다친사람들이 이렇게많다”라는 말이 베스트 댓글로 올라갔다. 조현아의 ‘줄게’ 무대를 본 후 과거 영상을 검색하다가 몰려든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증거다. 공교롭게도 조현아가 ‘줄게’를 발표한 올해는 어반자카파 데뷔 15주년이다. ‘줄게’ 발표 직전, 어반자카파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라이브 영상은 각각 22만, 52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해당 채널에 올라온 라이브 영상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어반자카파도 다시 함께 주목받은 것이다.
신곡 ‘줄게’ 덕분에(?) 조현아의 과거 무대들이 재조명 받고 있다. 댓글란에는 ‘줄게’를 듣고 충격을 받아 찾아왔다는 인증이 가득하다.
다만 길티 플레저 밈이 끼치는 피해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영화계에서는 ‹인랑› 등 재평가할 만한 작품도 망작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회복이 불가능하다. 영화는 음악과 달리 90분이 넘는 긴 시간을 들여야 하므로 악평이 달리는 순간 새로운 관객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또한 영화는 사람이 아니므로 인터넷 밈을 뛰어넘는 성장담을 만들 수 없다. ‹디워›, ‹제 7광구› 등은 망작을 애호하는 소수를 제외한 대중에게 재평가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음악계에서는 뮤지션의 파격적인 시도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줄게’의 댓글에서 헤이즈의 ‘빙글빙글’을 비슷한 사례로 언급했는데, 둘 다 본인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는 장르를 택한 경우다. “하고 싶은 거 그만 해!”라는 밈이 뮤지션의 실험 정신을 위축시켜 본인에게 잘 어울리거나 지금까지 하던 것만 지속하게 한다면, 음악적 다양성은 사라지고 그의 새로운 면모를 마주할 기회 또한 없어질 수 있다.
영화 ‹7광구› 포스터
가수 헤이즈의 문제적 신곡이었던 ‘빙글빙글(Prod. R.Tee)’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길티 플레저 밈을 옹호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은 테크네techne로 불렸다. 이 단어는 예술과 기술을 아우르는 말이다. 예술에는 발상을 예술적인 표현으로 승화시키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장인처럼 본인의 장르를 연마해야 한다. 예술가는 태생부터 프로다움의 영역에 서 있던 셈이다. 그러니 본인의 잘못된 선택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건 당연하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더욱더 극심한 듯싶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과 실수가 예술가의 인생을 좌우하니까 말이다.
그룹 AKMU 멤버 이찬혁을 향한 댓글. ‘OO아, 하고 싶은 거 그만해’ 라는 표현 역시 밈으로 자리잡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이론서로 불리는 『시학』 25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시인이 선택[의 대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가령] 어떤 말이 두 오른발을 동시에 앞으로 내딛는 식으로 묘사했다면 그것은 [시 예술과 별개의 탐구 영역에 속하는] 각각의 [개별적] 기술과 연관된 잘못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예술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 것보다 심각한 잘못이 아니라고 격려한다. 이는 비극적 주인공의 전형이기도 하다. 길티 플레저 밈은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에둘러 말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선택을 매섭게 질타하기보다는, 놀리기를 통해서 그 충격을 완화하고 나름의 위로를 창작자에게 주는 것이다. 누군가 그 의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비평’이라고 부르고 싶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지난 6월 동명의 단행본으로 발행됐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비애티튜드»의 새로운 에세이 필자인 김경수 님이 한국 인터넷 밈에 대한 연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무척 익숙해 보이지만 실상 파고들면 끝없는 세계가 펼쳐지는 인터넷 밈을 찬찬히 살펴보려면 그 기원부터 후루룩 훑어야겠죠? 경수 님의 놀라운 능력에 힘입어 «비애티튜드» 독자를 위해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깔끔히 정리해 보았어요. 한국 인터넷 밈이 지금의 황금기를 맞이하기까지 겪은 여러 시대적 상황과 고유한 특성, 기본 어휘 등을 이해하며 기초를 탄탄히 쌓기에 이번 에세이만큼 효과적인 한 방은 극히 드물 겁니다. 한 마디로 두고두고 모셔놓고 읽을 만해요. 그럼 우리 함께 한국 인터넷 밈의 시조새를 잡으러 떠나 볼까요.
영화비평가지만 부끄럽게도 이소룡보다 싱하형의 존재를 먼저 접했다. 또 이소룡을 안 다음에도 그 둘이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출처를 알게 되었을 때, 이야말로 짤방의 재미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나. ‹메이플 스토리› 게임 카페에서 퀘스트 공략을 검색하던 중 낯선 게시물을 발견했다. 제목이 이상했다. ‘개웃긴 싱하형 모음집’이라니. 호기심을 못 참고 살짝 클릭했다. 처음으로 인터넷 밈을 접한 순간이었다. 우는 듯 찡그린 듯 묘한 표정을 지은 한 남성의 사진이 등장했다. 싱하형이었다.
그는 “형왔다!!”라는 강력한 첫 문장을 시작으로 “9초도 11초도 아닌 정확히 10초에 한강 굴다리로 텨와라.”라든지 “야 이 새퀴들아 존내 맞는 거다.” 등등 현란한 말빨을 자랑했다. 나는 곧장 홀려버렸다. 이윽고 스크롤을 내리니 원본을 가공한 짤방이 등장했다. 부처님, 유희왕 카드, 당시 유행하던 영화 포스터를 비롯해 온갖 곳에 싱하형 얼굴이 출현했다. 한강 굴다리와 10초, 존내 맞는 거다 등의 캐치프레이즈는 합성 사진의 뉘앙스에 따라서 적절히 변형됐다. 매 이미지가 웃겨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한동안 내 머릿속은 싱하형 차지였다. 학교 수학 시간에 싱하형을 노트에 그리다 걸려서 혼나기도 했다. 그런 싱하형을 시작으로 나는 당시 유행하는 짤방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디씨의 유명한 악플러 싱하의 첫 등장을 알린 게시물이다. 사실 싱하형은 싱하라는 유저가 횽왔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말투에서 딴 이름이므로 싱하라는 원본과 거리가 있다. 악플러인 싱하는 잘 기억되지 않고 싱하형이라는 인터넷 밈만 남은 것이다. 나는 이를 자정 작용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인터넷 밈은 무엇인가?’, ‘왜 그리도 나를 웃게 했던가?’ ‘왜 싱하형과 “내가 고자라니”라고 외치는 심영에게 홀렸을까’라는 질문은 내가 평생 답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인터넷 밈으로 먹고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욱 치열히 대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인터넷 밈의 기원을 뒤적거리며 그 명과 암을 살피는 일은 필수일 테다.
심영의 “내가 고자라니! 를 처음 본 순간에 고자의 뜻도 몰랐고, 이 짤의 원본인 ‹야인시대› 64-65화를 본 적이 없다. 그저 심영의 절규가 웃겨서 매일 반복해 보았다. 나중에야 심영이 공산주의자인데다가 진짜로 고자가 된 것이 아니라 김두한이 라디오에 서 한 허풍을 작가가 한 차례 더 부풀려 만든 것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잊기가 힘들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 밈으로 ‘여겨지는’ 게시물은 (놀랍게도) 실존한다. ‘복숭아맛’이라는 유저가 2001년 7월 17일 디씨인사이드(이하 디씨)에 올린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이다. 비슷한 형태의 게시물이 이전에도 존재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서버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사정만으로도 시대를 강타한 전설적인 글의 원본이 언제든 사라진다. 그래서 살아남는 존재가 가장 강하다. 성지로 등극하기 때문이다. 해당 글은 언뜻 보기에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판매하는 평범한 게시물이다. 아직 디씨가 중고 카메라 커뮤니티로 불리던 시절, 디씨 회원들이 중고 카메라를 판매할 때 쓰는 글의 스타일을 흉내 냈는데, 막상 게시물을 클릭하면 먹다가 남은 과자 사진이 나왔다. 사진 한 장만 바꿨을 뿐인데 중고 카메라 판매 글은 과자 판매 글이 되었고, 이후 인터넷 밈의 기원으로 회자되면서 성지 순례의 대상으로 신분이 격상했다. 지금이야 흔하디흔한 드립이지만 말이다.
주어를 카메라에서 과자로 바꾸었을 뿐인데 이만큼 재밌어질 수 있다니. 이처럼 사소한 장난이 축적되다가 유머 게시판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디지털카메라 동호회가 한국 인터넷 문화의 성지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무엇보다, 이 게시물은 ‘낚시’라는 형식을 유행시켰다. 제목과 내용 사이의 아이러니가 특징인 낚시는 오직 인터넷에서만 제대로 기능한다. 모든 텍스트는 제목과 내용 간에 긴장을 지닌다. 책이라면 제목과 목차가 내용을 적절히 압축해 출간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다르다. 제목을 클릭해야만 다음 링크로 넘어가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제목과 내용 간에 별다른 연관성이 없으면 그대로 낚시를 당할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이다.
낚시는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의 엄숙한 분위기를 부수는 장난이었다. 동호회 성격을 띤 과거의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주제에 어울리는 내용만 논해야 했다. 이런 진지함에는 불필요한 잡담을 막는 순기능뿐 아니라 역기능도 있다. 제목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 게시물에도 불필요한 내용을 적어야만 했다. 이런 강요와 제약을 피하는 우회로가 ‘짤방(짤림방지용 사진)’이다. 내용이 시답잖고 별것 없더라도 게시물 꼴은 갖췄으니 제재하지 말라는 일종의 저항이나 다름없었다.
낚시용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밈 중 하나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나도 여러 차례 당했고, 동시에 애용하던 방법이다. ‘유명 아이돌 멤버 A 씨, 일반인과 열애 인정.jpg’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있다고 치자. 웬만한 돌부처가 아니고서는 마우스 커서를 클릭하지 않을 인내심이 없다. 그리고, 짜잔. 예수님이 제자 베드로에게 “이제부터 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아동 만화 한 컷이 등장한다. (자매품으로 ‘도라에몽 낚시 짤방’이 있다.) 실제 원본이 『만화로 보는 어린이 성경』이다. 예수님 입에서 낚시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지, 화가 치밀기 보다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아이러니가 제맛이다.
한편 낚시는 저질스럽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유통하는 데에도 한몫 제대로 했다. ‘낚일 만한’ 제목의 게시물에 ‘낚인’ 사실을 알리는 짤방을 매칭하지 않고, 아주 평범한 제목에 고어, 포르노, 욕설 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붙이는 것이다. 나 또한 이를 통해 고어나 포르노 이미지를 조우하곤 했다. (굳이 사례를 들진 않겠다.) 그때는 이 모든 것을 ‘엽기’라는 미명 아래 용납하던 시절이었다. 폭력적인 콘텐츠와 음란물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지금은 당시 유행하던 수위의 이미지를 올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낚시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소셜미디어 속 바이럴 마케팅에서 애용하는 카드 뉴스를 보자. ‘요즘 논란’ 운운하는 제목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면 ‘찍먹vs볶먹’ 따위의 별것 아닌 사건이 펼쳐진다. 이와 반대로 커플 썰을 평범하게 풀다가 마지막 장에 급작스레 남성용품 광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조회수만 오르면 뭐든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이라지만 지극히 옹졸한 행태로 계승됐다.
낚시와 더불어 인터넷 밈의 또 다른 원초적 특성으로는 재생과 정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20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어도비에서 서비스를 종료한 파일 형식, 플래시(.swf)를 기억하는지? 플래시는 게임,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 개인이 창작한 B급 감성의 2D 콘텐츠를 동시다발적으로 퍼뜨리며 작금의 인터넷 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한 주인공이다. 플래시로 유통된 콘텐츠 중 허무송은 재생과 정지가 짤방의 기원임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라는 가사를 “아빠가 출”로 줄여 유저를 당황시키고, “엄마가 안아”를 “엄마가 안 와”로 바꿔 노래 ‘뽀뽀뽀’를 동심 파괴의 장본인으로 만든다. 특히 “아빠가 출”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대목에서 영상 속 남성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는데, 싱하형이 탄생하는 논리가 이와 비슷하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그때만 해도 뮤직비디오의 대안으로 기능했다. 동요도 뮤직비디오가 있어야 더 어린이에게 잘 불렸으므로 동요를 기반으로 한 플래시 뮤비가 많이 제작되었다. ‘당근송’, ‘숫자송’ 등이 그 사례다. ‘허무송’은 이러한 –송 시리즈의 반발로 등장한 것이다. 2004년 즈음 웃대의 한 유저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하형의 이미지는 사실 이소룡이 출연한 ‹용쟁호투(龍爭虎鬪)›(1973)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탄생했다. 이소룡의 극 중 캐릭터가 여동생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며 그의 몸을 짓밟고 서는 장면이다. 그런데 얼굴에 울분이 가득한 영상을 정지하는 순간, 이소룡의 표정은 급작스레 우스꽝스러워진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표정의 발명은 마치 허무송의 가사를 멈출 때의 허무함과 당혹감을 괴상한 표정으로 그려내는 일과 유사하다. 인간이 실제 지을 수 있는 표정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싱하형 같은 짤방은 비언어적인 소통을 가능케 한다.
1973년에 제작된 이소룡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미국 영화. 미국 전역에 쿵푸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림사 무술인 리(이소룡)가 여동생을 죽인 숙적 한(석견)에게 복수한다는 내용. 스파이 장르의 플롯 공식을 따다가 만든 영화로 지금까지도 홍콩 무협 영화의 대표작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움짤은 이런 면모가 발전한 경우다. 영상을 초 단위로 잘라 음성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성 영화 시대의 제스처와 닮았다. 축구 감독 최강희의 모습을 담은 움짤은 “아 식빵 무지 달다! 이거 팬케이크 아냐?”라는 감탄사로도, “이게 왜 경고야. 파울이구먼!”이라는 항의로도 읽힌다. 몸짓과 입 모양 등으로는 피사체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모호함이 깃들었다. 오직 움짤을 가져다 쓰는 사람이 그 뜻을 결정할 뿐이다. 이는 당시 인터넷 밈 문화를 만들던 청년 세대와 이어진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요즘 말로 ‘갓반인’이 되지 못한 그들은 쓰고 남은 존재, 즉 잉여로 호명됐다. 잉여 인간이 인터넷 공간에서 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진화한 게 짤방과 움짤이다. 이들은 지금도 일상 속 자질구레하고 잉여로운 순간을 가장 정확히 공유하는 제스처적 소통 방식으로 건재하다.
마법의 짤이라 불리는 이 움짤은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이 2016년 K리그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와 FC서울이 경기를 벌이는 중 득점 찬스가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탄생했다. 원본에서는 사실 소리가 삽입되어 있다. “아, 정말 미치겠네! 왜 그걸 안 차? 라고 따지듯 말했다지만 원본에서 육성이 잘 안 들려서 헷갈린다. 원본이 뭔들 움짤이 재밌으면 그만이다. 영화에서도 관객의 상상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지점이 있듯이 말이다.
이쯤에서 인터넷 밈에 대한 특성을 종합해 보자. 우선 특정 유저들이 짤방과 움짤 등을 활용해 온갖 합성 소스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일정한 규칙이 통용되는 세계관을 구축한 후, 여기에서 각자 독립적인 상상으로 합성 소스를 재창조하는 행위가 바로 인터넷 밈이다. 이때 재창조는 이른바 ‘드립’이라 부르는 디씨식 농담 코드에 기반한다. 애드리브의 준말로 즉흥적인 농담을 뜻하는 드립은 디씨 갤러리에 글이 올라올 때 최대한 빨리 웃긴 농담을 댓글로 달아서 베댓(베스트 댓글)이 되려는 경쟁에서 유래했다. 촉박한 마감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탄생하듯 드립은 개인의 창조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예측불가능한 유쾌함을 안긴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무의식에 깔린 저속하고 비윤리적인 말까지 여과 없이 끌어낸다. 여성, 소수자 등 타인에 대한 혐오를 그대로 드러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드립과 이에 기반한 인터넷 밈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모두 지닌다.
하지만 여기에 절망으로 대응하는 건 성급하다. 짤방이 인터넷 밈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화되는 경우도 많다. 짤방의 기원이 입에 못 담을 만큼 더러울지라도, 대중의 손을 거쳐 세계관이 형성된 이후에는 원본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사라지곤 한다. 드립 또한 특정 세계관에 머무를 때 수많은 창조의 원천 역할을 맡는다. 그러니 원본의 출처를 의심하고 조심하는 일이 필요할지언정 늘상 진지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밈은 원본 짤방을 다시 한번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스스로 풍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기 때문이다. ‹야인시대›를 활용한다고 조폭을 미화하는 게 아니다. 유저에게는 합성 소스로 활용가능한 ‘그 무엇’일 뿐이다.
그거 일리가 있구먼!
여기서 잠깐! 이제 한국 인터넷 밈의 시조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겠다. 미안하다. 사실 이거 말하려고 지금까지 어그로 끌었다. 2019년 6월 19일 오후 1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프레스로 일하는 중 우연히 상황주의자라는 아방가르드 운동 집단이 1973년 만든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라는 괴상한 영화를 접했다. 한국과 홍콩의 합작 영화 ‹정도›(1972)를 ‘전용’했다는 소개 글에 끌렸다. 사실 전용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근데 영화를 보는 동안 싱하형을 처음 접했을 만큼이나 배가 아프게 웃었다.
원작 ‹정도›의 배경은 한국이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한국인과 검도를 수련하는 한국인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의 장르와 플롯은 전형적인 무협 영화에 가깝다. 상황주의자는 여기에 무단으로 프랑스어 더빙을 덧입히고 원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선전 자막을 달았다. 어린아이 두 명이 체 게바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대화를 나누고, 연인과 보내는 마지막 밤에서 정치적 노선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다. 일본인 검도인은 오가는 곳마다 X 표식을 치면서 “노동은 자유를 만든다!” 윽박지른다. 감독의 장난으로 평범한 무협 영화는 혁명이 무엇인지 논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가득한 프로파간다 영화로 변신했다. (TMI지만 박정희 체제 때 벌어진 일이라 원작 영화의 제작자가 영문도 모른 채 심문당했다.)
‹정도›(1972)는 한 홍 합작 영화로, 홍콩에서는 ‹당수태권도›로 개봉했다. ‹정도›의 감독은 강유신, 각본은 유일수이며, 홍콩 영화 ‹당수태권도›의 감독은 도광계와 예광으로 알려져 있다. 캐릭터는 모두 중국어를 하는데, 배경은 왜인지 경복궁인 이 이상한 영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1973)로 전용당하기 전 원본부터가 이상하다.
영화를 이렇게까지 바꾼 동인은 아까 잠시 언급한 전용(détournement)이다.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가 제안한 개념인데, 그는 세상을 언어의 쟁탈전이라고 본 듯하다. 그는 세상의 수많은 단어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만 봐도 힐링, 인문학 등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단어가 그 희생양이 되지 않았던가. 돈벌이 수단이 된 단어를 탈환하라고 촉구한 드보르는 광고나 영화 등을 뒤집고 도둑질하는 것을 일상 속의 혁명이라고 보았다. 그를 추종하던 상황주의자가 ‹정도› 같은 장르 영화를 도둑질하고 인물의 제스처를 어거지로 해석한 방법은, 신기하게도 요즘 인터넷 밈이 창조되는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 1970년대 소비주의 사회에 저항하던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가 펑크록 등 후대 하위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실제 그 에너지가 인터넷 밈으로 이어졌기 때문일 테다. 다만 그 루트를 여기에 더 쓰면 머리가 복잡하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내가 인터넷 밈에 매혹당한 까닭은 이런 ‘어거지 부리기’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매끈함은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조금이나마 심기에 거슬리는 사람을 모두 차단하며 믿고 거른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에 비해, 인터넷 밈은 매끈함에 저항한다. 믿고 걸러진 것들이 펼치는 향연이 곧 인터넷 밈이다. 인터넷 밈을 제작하는 기법을 살피면 더욱더 명확해진다.
초기 인터넷 밈은 주로 누끼따기로 제작했다. 누끼는 다른 소스와 합성해도 원본에서 대상을 자른 흔적을 그대로 지닌다. 누더기를 기운 듯 완벽하지 않은 느낌이 도리어 정감을 준다. 더욱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잘려 나온 존재들이 동일한 배경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야말로 진정한 MCU(Meme Cinematic Universe)다.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영상도 마찬가지다. “내가 고자라니!”라는 장면에서 시작해 이제는 ‹야인시대›의 영상 전반을 광범위하게 합성 소스로 활용하는 인터넷 밈 ‘심영물’을 보라. 심영물 제작자는 ‹야인시대›에 나온 다른 대사의 음성을 음절 단위로 떼고 조잡하게 이어서 새로운 대사를 만든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말을 생성하는 걸 업계 용어로 ‘조교’라고 한다. 전문가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며 최대한 매끈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인터넷 밈은 이를 거부한다. 조교를 통해 무엇을 짜깁기했는지 선명히 드러날수록 더욱더 큰 인기를 누리기 때문이다.
영상 속 세 고양이는 각자 출처가 다르다. 해피캣이 기쁨에 찬 상황에 등장하자, 이와 반대로 맨날 우는 바나나캣이 더해졌다. 이같은 방식으로 각자의 역할이 생기고 역할놀이가 시작된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가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는 이 밈이야말로 타자와 공존하는 사회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어쩌다 보니 자꾸 심영물 타령을 하는데, 사실 이미 옛것이 됐다. 인터넷 밈은 늘상 진화한다. 지금은 푸바오를 중심으로 한 바오네 가족이 인기 계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바오네 가족은 송영관/강철원 사육사(조부모), 아이바오/러바오(부모), 푸바오, 후이바오, 루이바오로(손자)까지 3대에 걸친 가족 서사가 핵심이다. 활동적인 푸바오에게는 푸질머리(푸바오+성질머리), 푸쪽이(푸바오+금쪽이), 아이바오에게는 아여사, 러바오에게는 러부지, 러스타 등 여러 별명이 더해진다. 이렇게 캐릭터와 저마다의 역할이 생기면서 인터넷 밈은 끊임없이 풍성해진다. 여기에 유튜브 시리즈 ‹전지적 할부지 시점›에 올라오는 푸바오의 일상, 푸바오 팬이 용인에서 직접 공수한 푸바오 사진으로 유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바오네 세계관을 계속 확장한다. 그럼으로써 공급자-생산자-소비자로 이어지는 대안적인 예술계가 생성된다.
푸바오가 인기를 얻게 된 계기가 된 사진.
참여자 모두가 제 나름대로 예술과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밈은 21세기판 역할극이다. 남극 곳곳을 탐험하는 조종사이자 세상 모든 어린이의 우상인 뽀로로 선생님(2003~)은 말씀하셨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인터넷 밈이 아니었다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노는 법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인터넷 밈 특유의 독특하고 매혹적인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매끈해지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인터넷 밈의 미학은 매끈하지 않은 것을 차례대로 나열해 제작 과정을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행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약을 빨고 만들었는지, 얼마나 쓸데없는 노력을 가미했는지 여부가 작품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이 땅에서 진정 ‘노오력’이 인정받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소셜미디어의 유머 계정처럼) 출처가 불분명한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보기 좋게 결합하는 광경은 솔직히 고깝다. 출처가 분명한 소스를 이질적으로 조합한 인터넷 밈이 훨씬 더 윤리적이고 미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무척 정치적이지 않은가. 단일하지 않은 수많은 정치적 목소리가 평등하게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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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단행본으로 나올 채비를 마치고 있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하는 «비애티튜드»의 에세이 코너. 2024년을 맞이해 새롭게 영입한 필자는 바로 인터넷 밈meme을 연구하는 김경수 님입니다. 작년 석사 논문으로 발표한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온라인에서 알음알음 굉장한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 기세를 몰아 올 2월에는 단행본으로 정식 출간될 예정이랍니다. 앞으로 매달 인터넷 밈과 엮어 우리 사회의 일면을 읽어줄 경수 님의 본업은 영화평론가예요. 짧디짧은 인터넷 밈과 최소 90분이 넘는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는 극과 극을 달리는 존재죠. 인터넷 밈이 선사하는 즉각적인 도파민에 길들다 보니 경수 님은 어느덧 영화관에서 졸음 마귀에게 시달리는 위기에 처했어요. 그런데 그는 이제 영화관의 졸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영화평론가가 대체 뭔 소리냐고요? 자세한 내막은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나는 ‘탕후루’와 ‘제로 콜라’를 동시에 비평하는 사람이다. 탕후루는 ‘인터넷 밈’이고 제로 콜라는 ‘영화’다. 탕후루와 제로 콜라가 동시에 유행하는 시대라니 다행이다. 아니, 오히려 좋다! 덕분에, 나 같은 혼종도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인터넷 밈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을 원본 삼아, 본체와 관련 없는 우스꽝스러운 제스처, 상황, 표정 따위를 추출한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특정한 상황이나 맥락에 적당한 제스처와 원초적인 감정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인터넷 밈을 사용한다. 이때 원본과 인터넷 밈은 이미 맥락에서 벗어나 서로 관련이 없어진다. 그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때 인터넷 밈 하나면 간단히 끝난다. 인터넷 밈은 재생 길이도 무척 짧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한가득 떠도는 밈을 보다 보면 시간이 훅 간다. 하나만 봐야지, 하다가 수십 개를 보고 결국엔 눈이 시려서 잠든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무엇보다 극한에 가까운 쾌감과 웃음을 만들기 때문에 그 속성은 매우 자극적이다. 마치 탕후루처럼 말이다.
깨물어 먹는 순간 금세 혈당을 치솟게 하는 ‘혈당 스파이크’ 탕후루처럼, 인터넷 밈은 누군가의 뇌에 도파민을 때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석사 논문 주제로 인터넷 밈을 다루기로 마음먹은 후, 리서치를 위해 인터넷 밈을 수집하면서 내 뇌는 어느 순간부터 도파민에 절여졌다. 지금도 뱀술 속의 뱀처럼 도파민에 푹 담겨 있다. 그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나는 원래 제로 콜라, 즉 영화를 비평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곧바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매체가 아니다. 초반부터 감독이 설정한 빌드업을 성실히 따라가야 하이라이트에 이르러 마음 깊은 곳에서 카타르시스가 겨우 우러나온다. 게다가 빼어난 작품성도 필요하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온전히 충족할 때 비로소 도파민은 샘솟을락 말락 기지개를 켠다. 즉 영화로 도파민을 느끼려면 이렇게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뇌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자극적인 인터넷 밈을 갈망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이제 영화에서 롱테이크 장면이 등장하거나 잔잔한 일상이 묘사되는 순간, 내 뇌에는 비상이 걸린다. 졸음신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든 상세히 보고 기억하며 맥락화해야만 하는 영화평론가에게 이는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존재다.
최근의 경험을 고백하고 싶다. 아트나인에서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더 킬러The Killer›(2023)를 보다가 졸음 마귀가 찾아왔다. 킬러가 주인공이라는 말만 듣고 나는 곧장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했다. 감독이 과거 내놓았던 스타일리시한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2001)을 생각한 내가 바보일까. 영화 속 킬러는 “운명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 “공감은 금물이다. 공감은 나약함이다. 나약함은 약점이다” 등 그동안 쌓아온 나름의 철학을 중얼대며 20분 가까이 공유 사무실 위워크WeWork에서 표적을 기다린다. 그는 빅맥을 먹었고, 요가를 했고, 심박수도 체크했고…뭐…아, 졸면 안돼! 하필 이놈의 영화는 평론까지 청탁받은 귀한 몸이었다. 어느덧 영화관은 내 의지와 뇌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콜로세움이 되었다.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언정, 보통 우리가 방문하는 영화관은 사실 졸음에 최적화된 곳이다. 적당히 따뜻하고, 의자도 부드럽다. 그만큼 졸음에 알맞게 어두컴컴한 공간도 드물다. 태생적으로 극장이란 공간은 관객이 오로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그런 과정에서 관객의 불편을 줄이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할 수도 없는 영화관은 그래서인지 따뜻하고… 졸리다…
‹더 킬러The Killer›(2023) 스틸 이미지
‹더 킬러The Killer›(2023)
망했다. 족히 네 번은 기절한 듯하다. 영화 흐름은 대강 기억나지만 디테일을 놓쳐버렸다. 조각조각 흩어진 이미지가 머릿속을 부유하는데, 졸다가 꾼 꿈과 뒤섞이는 느낌까지 든다. ‘아아, 한 번 더 보아야 하나’ 좌절할 즈음, 혹시나 하고 유일한 희망인 다이어리를 펼치면 좌절은 두 배가 된다. ‘휴먼졸림체’로 쓴 글자 덩어리가 페이지마다 빼곡하다. 악필을 타고난 것도 억울한데, 쓰다가 말아서 알아볼 수 없는 글자 사이로 지렁이가 기어간다. 순간 나 따위가 영화 평론을 쓸 자격이 있는지 자문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은 어느덧 ‘내가 사람이기는 한가?’라는 실존적인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나를 철학자로 만든다. 내가 이러려고 인터넷 밈을, 아니 영화 평론을 쓰기로 마음 먹었던가… 왜인지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까지 하다.
망했다. 게다가 나는 그 영화를 혼자 본 게 아니다.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영화를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보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그녀는 한참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꼭 혀를 끌끌 차는 듯하다. 요즘 영화를 함께 보면, 여자친구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 같아도 속상할 테다. 꼭 봐야 하는 영화라기에 굳이 같이 왔더니, 정작 평론 쓴다는 인간은 졸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동안 연인은 하나로 연결되는 마법을 겪는다. 영화관이 시내에서 진행되는 현대적 데이트의 성지인 이유다. 공적인 공간인 영화관은 어두컴컴한 분위기로 연인 간의 은밀함을 고조하는 사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고로 영화를 보다가 조는 행위는 은밀함을 부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례나 마찬가지다. 더는 이를 반복하고 싶지 않던 나는 나름의 의지를 담아 각서를 썼다. ‘나, 김경수는 함께 영화를 보다가 세 번 이상 졸면 밥을 산다.’ 그리고 각서 쓴 다음 날 그녀에게 밥을 샀다. ‹더 킬러›를 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다 인터넷 밈에 절인 탓이라고 체념하는 순간이다. 결국 나는 그 영화를 혼자 다시 보았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조는 게 꼭 나쁜 걸까? 이왕지사 이렇게 된 바에 영화관의 일부로 적응하는 나에게 찾아오는 졸음을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분명 이 말을 접한 사람들은 ‘영화평론가라는 이가 무슨 막말이냐’라고 분기탱천할 듯싶다. 생각을 바꿔보면, 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가속화된 시대를 살아간다. 모든 감정을 한시라도 빨리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인터넷 밈은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한다. 영화는 가속화에 저항하는 감각을 기르는 도구다. 우리가 평소에 스치듯 본 것을 더욱더 길게 보도록 만든다. 카메라가 어떤 대상을 롱테이크로 포착하면 왠지 모르게 전보다 심오하게 대하게 된다. 그런 시선을 통해 평범한 일상은 고유한 의의를 부여받는다. 만일 킬러 영화를 보자마자 살인이 펼쳐졌더라면, 우리는 킬러도 현대 사회의 노동자에 불과하며, 그의 업무가 한없이 지루하다는 점을 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킬러의 일상을 이처럼 상세히 경험할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영화는 현시대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감각을 발명하고 있다. 동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지루하고 졸리다는 치명적인 결함은 오히려 내가 영화의 방법론을 더욱 사랑하도록 하는 핵심 요소다. 비록 네 번이나 졸았지만, 잠시나마 그런 영화를 보며 가속화된 나의 감각에 저항하는 일은 무척이나 뿌듯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명작은 나를 창의적으로 졸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관람객을 졸리게 할 수도 있구나’ 싶을 때 경탄을 느낀다. 졸지 않았다면 이토록 생경한 감각을 마주할 수 없다는 면에서, 졸음이야말로 도파민의 무한한 굴레에 갇힌 동시대인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도록 돕는 일등 공신인 셈이다.
지난 2023년 내가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2023)였다. 작년 5월에 본 후, 최근 다시 보았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무려 네 번이나 관람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졸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 뜨고 제대로 보지도 못한 영화를 최고의 영화라고 꼽을 자격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내게는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나른하고 졸리다. 감독의 그간 작품과 비교해 보아도 그러하다. 내레이터가 계속 쏟아내는 대사의 힘이 크다. 톤이 일정해 마치 자장가처럼 들린다. 게다가 인물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말한다. 잠시 졸았다가 깨어난 다음에도 여전히 나른하게 전개되는 터라, 혹여 내가 여전히 꿈속에서 헤매는 건 아닐까 착각을 줄 정도다. 이런 나른함이야말로 우리가 평소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영화 속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우리에게 휴가지에 머무는 듯한 감흥을 준다. 감독은 플롯에 상관없이 관람객이 유유자적하게 영화 속을 유영하길 바라는 느낌이다.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2023) 스틸 이미지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우리의 졸음을 반긴다. 연극의 리허설 장면으로 끝나는 엔딩을 보자. 느닷없이 한 캐릭터가 일어나 급작스레 외친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모두가 최면에 걸린 듯 이 대사를 되풀이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는 내게 던지는 한 마디 위로였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영화관에서라도 도파민에서 해방되어 잠드는 경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하려고 105분을 달린 느낌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서 푹 자고, 꿈꾸는 듯한 감흥에서 헤매다 결말만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인터넷 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감독의 배려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무척 기묘하고도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엔딩의 연극 리허설이 등장하기 직전의 일이다. 주인공과 그의 아들이 대화하는 뒤편으로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멀리 원자폭탄이 터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둘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멍하니 쳐다본다. 방사능 낙진은 전혀 다가오지 않고 그 어떤 위기감도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보일 정도다. 나는 원자폭탄 터지는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우리는 창문의 이름을 딴 신비한 세계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컴퓨터의 ‘윈도Window’다. 윈도는 원자폭탄이 일상적으로 터지는 세계다. 그리고 영화는 그와 별개의 세계다. 감독은 마치 영화관이란 공간이 인터넷에서 반복되는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난 세계인 듯 그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아날로그 영화관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휴가지인 양 거기서 마음껏 졸음에 빠지고 저만의 꿈을 꾸라고 속삭인다. 진정한 ‘꿈의 공장(Dream factory)’이 알고 보니 여기에 있었다.
덧붙이는 말.
영화와 졸음의 상관관계를 극적으로 느끼고 싶다면 태국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메모리아Memoria›(2022)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 속 캐릭터가 15분 가까이 잠드는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도 자는데, 너는 안 잘 거니?’라고 물어보는 듯하다. 이는 한 여성이 어디선가 ‘쿵’ 하며 울려 퍼지는 미지의 소리를 접하는 영화의 플롯과도 맞물린다. 우리는 그가 접하는 소리의 실체를 예측하기 힘들다. 실상 우리의 삶은 백색 소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은 여성이 느끼는 소리의 충격을 관객과 공유하려 한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관람객을 졸음의 세계로 유도하는 일이다. 영화를 보다가 비몽사몽하며 온몸의 긴장이 나른해지는 무방비 상태가 펼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영화 속 캐릭터가 느끼는 미지의 소리에 진정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10분에 한 번 들리는 ‘쿵’ 소리는 우리의 몸 전체에 기이한 충격을 가한다. 영화 속으로 녹아들어 체험이 체화되는 순간이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단행본으로 기획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