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원정대: 한국 인터넷 밈의 시조새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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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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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비애티튜드»의 새로운 에세이 필자인 김경수 님이 한국 인터넷 밈에 대한 연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무척 익숙해 보이지만 실상 파고들면 끝없는 세계가 펼쳐지는 인터넷 밈을 찬찬히 살펴보려면 그 기원부터 후루룩 훑어야겠죠? 경수 님의 놀라운 능력에 힘입어 «비애티튜드» 독자를 위해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깔끔히 정리해 보았어요. 한국 인터넷 밈이 지금의 황금기를 맞이하기까지 겪은 여러 시대적 상황과 고유한 특성, 기본 어휘 등을 이해하며 기초를 탄탄히 쌓기에 이번 에세이만큼 효과적인 한 방은 극히 드물 겁니다. 한 마디로 두고두고 모셔놓고 읽을 만해요. 그럼 우리 함께 한국 인터넷 밈의 시조새를 잡으러 떠나 볼까요.

영화비평가지만 부끄럽게도 이소룡보다 싱하형의 존재를 먼저 접했다. 또 이소룡을 안 다음에도 그 둘이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출처를 알게 되었을 때, 이야말로 짤방의 재미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나. ‹메이플 스토리› 게임 카페에서 퀘스트 공략을 검색하던 중 낯선 게시물을 발견했다. 제목이 이상했다. ‘개웃긴 싱하형 모음집’이라니. 호기심을 못 참고 살짝 클릭했다. 처음으로 인터넷 밈을 접한 순간이었다. 우는 듯 찡그린 듯 묘한 표정을 지은 한 남성의 사진이 등장했다. 싱하형이었다.

그는 “형왔다!!”라는 강력한 첫 문장을 시작으로 “9초도 11초도 아닌 정확히 10초에 한강 굴다리로 텨와라.”라든지 “야 이 새퀴들아 존내 맞는 거다.” 등등 현란한 말빨을 자랑했다. 나는 곧장 홀려버렸다. 이윽고 스크롤을 내리니 원본을 가공한 짤방이 등장했다. 부처님, 유희왕 카드, 당시 유행하던 영화 포스터를 비롯해 온갖 곳에 싱하형 얼굴이 출현했다. 한강 굴다리와 10초, 존내 맞는 거다 등의 캐치프레이즈는 합성 사진의 뉘앙스에 따라서 적절히 변형됐다. 매 이미지가 웃겨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한동안 내 머릿속은 싱하형 차지였다. 학교 수학 시간에 싱하형을 노트에 그리다 걸려서 혼나기도 했다. 그런 싱하형을 시작으로 나는 당시 유행하는 짤방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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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의 유명한 악플러 싱하의 첫 등장을 알린 게시물이다. 사실 싱하형은 싱하라는 유저가 횽왔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말투에서 딴 이름이므로 싱하라는 원본과 거리가 있다. 악플러인 싱하는 잘 기억되지 않고 싱하형이라는 인터넷 밈만 남은 것이다. 나는 이를 자정 작용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인터넷 밈은 무엇인가?’, ‘왜 그리도 나를 웃게 했던가?’ ‘왜 싱하형과 “내가 고자라니”라고 외치는 심영에게 홀렸을까’라는 질문은 내가 평생 답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인터넷 밈으로 먹고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욱 치열히 대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인터넷 밈의 기원을 뒤적거리며 그 명과 암을 살피는 일은 필수일 테다.

심영의 “내가 고자라니! 를 처음 본 순간에 고자의 뜻도 몰랐고, 이 짤의 원본인 ‹야인시대› 64-65화를 본 적이 없다. 그저 심영의 절규가 웃겨서 매일 반복해 보았다. 나중에야 심영이 공산주의자인데다가 진짜로 고자가 된 것이 아니라 김두한이 라디오에 서 한 허풍을 작가가 한 차례 더 부풀려 만든 것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잊기가 힘들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 밈으로 ‘여겨지는’ 게시물은 (놀랍게도) 실존한다. ‘복숭아맛’이라는 유저가 2001년 7월 17일 디씨인사이드(이하 디씨)에 올린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이다. 비슷한 형태의 게시물이 이전에도 존재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서버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사정만으로도 시대를 강타한 전설적인 글의 원본이 언제든 사라진다. 그래서 살아남는 존재가 가장 강하다. 성지로 등극하기 때문이다. 해당 글은 언뜻 보기에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판매하는 평범한 게시물이다. 아직 디씨가 중고 카메라 커뮤니티로 불리던 시절, 디씨 회원들이 중고 카메라를 판매할 때 쓰는 글의 스타일을 흉내 냈는데, 막상 게시물을 클릭하면 먹다가 남은 과자 사진이 나왔다. 사진 한 장만 바꿨을 뿐인데 중고 카메라 판매 글은 과자 판매 글이 되었고, 이후 인터넷 밈의 기원으로 회자되면서 성지 순례의 대상으로 신분이 격상했다. 지금이야 흔하디흔한 드립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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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를 카메라에서 과자로 바꾸었을 뿐인데 이만큼 재밌어질 수 있다니. 이처럼 사소한 장난이 축적되다가 유머 게시판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디지털카메라 동호회가 한국 인터넷 문화의 성지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무엇보다, 이 게시물은 ‘낚시’라는 형식을 유행시켰다. 제목과 내용 사이의 아이러니가 특징인 낚시는 오직 인터넷에서만 제대로 기능한다. 모든 텍스트는 제목과 내용 간에 긴장을 지닌다. 책이라면 제목과 목차가 내용을 적절히 압축해 출간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다르다. 제목을 클릭해야만 다음 링크로 넘어가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제목과 내용 간에 별다른 연관성이 없으면 그대로 낚시를 당할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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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는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의 엄숙한 분위기를 부수는 장난이었다. 동호회 성격을 띤 과거의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주제에 어울리는 내용만 논해야 했다. 이런 진지함에는 불필요한 잡담을 막는 순기능뿐 아니라 역기능도 있다. 제목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 게시물에도 불필요한 내용을 적어야만 했다. 이런 강요와 제약을 피하는 우회로가 ‘짤방(짤림방지용 사진)’이다. 내용이 시답잖고 별것 없더라도 게시물 꼴은 갖췄으니 제재하지 말라는 일종의 저항이나 다름없었다.

낚시용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밈 중 하나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나도 여러 차례 당했고, 동시에 애용하던 방법이다. ‘유명 아이돌 멤버 A 씨, 일반인과 열애 인정.jpg’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있다고 치자. 웬만한 돌부처가 아니고서는 마우스 커서를 클릭하지 않을 인내심이 없다. 그리고, 짜잔. 예수님이 제자 베드로에게 “이제부터 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아동 만화 한 컷이 등장한다. (자매품으로 ‘도라에몽 낚시 짤방’이 있다.) 실제 원본이 『만화로 보는 어린이 성경』이다. 예수님 입에서 낚시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지, 화가 치밀기 보다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아이러니가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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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낚시는 저질스럽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유통하는 데에도 한몫 제대로 했다. ‘낚일 만한’ 제목의 게시물에 ‘낚인’ 사실을 알리는 짤방을 매칭하지 않고, 아주 평범한 제목에 고어, 포르노, 욕설 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붙이는 것이다. 나 또한 이를 통해 고어나 포르노 이미지를 조우하곤 했다. (굳이 사례를 들진 않겠다.) 그때는 이 모든 것을 ‘엽기’라는 미명 아래 용납하던 시절이었다. 폭력적인 콘텐츠와 음란물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지금은 당시 유행하던 수위의 이미지를 올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낚시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소셜미디어 속 바이럴 마케팅에서 애용하는 카드 뉴스를 보자. ‘요즘 논란’ 운운하는 제목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면 ‘찍먹vs볶먹’ 따위의 별것 아닌 사건이 펼쳐진다. 이와 반대로 커플 썰을 평범하게 풀다가 마지막 장에 급작스레 남성용품 광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조회수만 오르면 뭐든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이라지만 지극히 옹졸한 행태로 계승됐다.

낚시와 더불어 인터넷 밈의 또 다른 원초적 특성으로는 재생과 정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20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어도비에서 서비스를 종료한 파일 형식, 플래시(.swf)를 기억하는지? 플래시는 게임,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 개인이 창작한 B급 감성의 2D 콘텐츠를 동시다발적으로 퍼뜨리며 작금의 인터넷 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한 주인공이다. 플래시로 유통된 콘텐츠 중 허무송은 재생과 정지가 짤방의 기원임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라는 가사를 “아빠가 출”로 줄여 유저를 당황시키고, “엄마가 안아”를 “엄마가 안 와”로 바꿔 노래 ‘뽀뽀뽀’를 동심 파괴의 장본인으로 만든다. 특히 “아빠가 출”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대목에서 영상 속 남성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는데, 싱하형이 탄생하는 논리가 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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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애니메이션은 그때만 해도 뮤직비디오의 대안으로 기능했다. 동요도 뮤직비디오가 있어야 더 어린이에게 잘 불렸으므로 동요를 기반으로 한 플래시 뮤비가 많이 제작되었다. ‘당근송’, ‘숫자송’ 등이 그 사례다. ‘허무송’은 이러한 –송 시리즈의 반발로 등장한 것이다. 2004년 즈음 웃대의 한 유저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하형의 이미지는 사실 이소룡이 출연한 ‹용쟁호투(龍爭虎鬪)›(1973)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탄생했다. 이소룡의 극 중 캐릭터가 여동생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며 그의 몸을 짓밟고 서는 장면이다. 그런데 얼굴에 울분이 가득한 영상을 정지하는 순간, 이소룡의 표정은 급작스레 우스꽝스러워진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표정의 발명은 마치 허무송의 가사를 멈출 때의 허무함과 당혹감을 괴상한 표정으로 그려내는 일과 유사하다. 인간이 실제 지을 수 있는 표정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싱하형 같은 짤방은 비언어적인 소통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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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제작된 이소룡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미국 영화. 미국 전역에 쿵푸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림사 무술인 리(이소룡)가 여동생을 죽인 숙적 한(석견)에게 복수한다는 내용. 스파이 장르의 플롯 공식을 따다가 만든 영화로 지금까지도 홍콩 무협 영화의 대표작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움짤은 이런 면모가 발전한 경우다. 영상을 초 단위로 잘라 음성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성 영화 시대의 제스처와 닮았다. 축구 감독 최강희의 모습을 담은 움짤은 “아 식빵 무지 달다! 이거 팬케이크 아냐?”라는 감탄사로도, “이게 왜 경고야. 파울이구먼!”이라는 항의로도 읽힌다. 몸짓과 입 모양 등으로는 피사체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모호함이 깃들었다. 오직 움짤을 가져다 쓰는 사람이 그 뜻을 결정할 뿐이다. 이는 당시 인터넷 밈 문화를 만들던 청년 세대와 이어진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요즘 말로 ‘갓반인’이 되지 못한 그들은 쓰고 남은 존재, 즉 잉여로 호명됐다. 잉여 인간이 인터넷 공간에서 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진화한 게 짤방과 움짤이다. 이들은 지금도 일상 속 자질구레하고 잉여로운 순간을 가장 정확히 공유하는 제스처적 소통 방식으로 건재하다.

마법의 짤이라 불리는 이 움짤은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이 2016년 K리그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와 FC서울이 경기를 벌이는 중 득점 찬스가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탄생했다. 원본에서는 사실 소리가 삽입되어 있다. “아, 정말 미치겠네! 왜 그걸 안 차? 라고 따지듯 말했다지만 원본에서 육성이 잘 안 들려서 헷갈린다. 원본이 뭔들 움짤이 재밌으면 그만이다. 영화에서도 관객의 상상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지점이 있듯이 말이다.


이쯤에서 인터넷 밈에 대한 특성을 종합해 보자. 우선 특정 유저들이 짤방과 움짤 등을 활용해 온갖 합성 소스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일정한 규칙이 통용되는 세계관을 구축한 후, 여기에서 각자 독립적인 상상으로 합성 소스를 재창조하는 행위가 바로 인터넷 밈이다. 이때 재창조는 이른바 ‘드립’이라 부르는 디씨식 농담 코드에 기반한다. 애드리브의 준말로 즉흥적인 농담을 뜻하는 드립은 디씨 갤러리에 글이 올라올 때 최대한 빨리 웃긴 농담을 댓글로 달아서 베댓(베스트 댓글)이 되려는 경쟁에서 유래했다. 촉박한 마감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탄생하듯 드립은 개인의 창조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예측불가능한 유쾌함을 안긴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무의식에 깔린 저속하고 비윤리적인 말까지 여과 없이 끌어낸다. 여성, 소수자 등 타인에 대한 혐오를 그대로 드러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드립과 이에 기반한 인터넷 밈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모두 지닌다.

하지만 여기에 절망으로 대응하는 건 성급하다. 짤방이 인터넷 밈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화되는 경우도 많다. 짤방의 기원이 입에 못 담을 만큼 더러울지라도, 대중의 손을 거쳐 세계관이 형성된 이후에는 원본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사라지곤 한다. 드립 또한 특정 세계관에 머무를 때 수많은 창조의 원천 역할을 맡는다. 그러니 원본의 출처를 의심하고 조심하는 일이 필요할지언정 늘상 진지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밈은 원본 짤방을 다시 한번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스스로 풍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기 때문이다. ‹야인시대›를 활용한다고 조폭을 미화하는 게 아니다. 유저에게는 합성 소스로 활용가능한 ‘그 무엇’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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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일리가 있구먼!

여기서 잠깐! 이제 한국 인터넷 밈의 시조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겠다. 미안하다. 사실 이거 말하려고 지금까지 어그로 끌었다. 2019년 6월 19일 오후 1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프레스로 일하는 중 우연히 상황주의자라는 아방가르드 운동 집단이 1973년 만든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라는 괴상한 영화를 접했다. 한국과 홍콩의 합작 영화 ‹정도›(1972)를 ‘전용’했다는 소개 글에 끌렸다. 사실 전용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근데 영화를 보는 동안 싱하형을 처음 접했을 만큼이나 배가 아프게 웃었다.

원작 ‹정도›의 배경은 한국이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한국인과 검도를 수련하는 한국인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의 장르와 플롯은 전형적인 무협 영화에 가깝다. 상황주의자는 여기에 무단으로 프랑스어 더빙을 덧입히고 원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선전 자막을 달았다. 어린아이 두 명이 체 게바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대화를 나누고, 연인과 보내는 마지막 밤에서 정치적 노선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다. 일본인 검도인은 오가는 곳마다 X 표식을 치면서 “노동은 자유를 만든다!” 윽박지른다. 감독의 장난으로 평범한 무협 영화는 혁명이 무엇인지 논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가득한 프로파간다 영화로 변신했다. (TMI지만 박정희 체제 때 벌어진 일이라 원작 영화의 제작자가 영문도 모른 채 심문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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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1972)는 한 홍 합작 영화로, 홍콩에서는 ‹당수태권도›로 개봉했다. ‹정도›의 감독은 강유신, 각본은 유일수이며, 홍콩 영화 ‹당수태권도›의 감독은 도광계와 예광으로 알려져 있다. 캐릭터는 모두 중국어를 하는데, 배경은 왜인지 경복궁인 이 이상한 영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1973)로 전용당하기 전 원본부터가 이상하다.

영화를 이렇게까지 바꾼 동인은 아까 잠시 언급한 전용(détournement)이다.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가 제안한 개념인데, 그는 세상을 언어의 쟁탈전이라고 본 듯하다. 그는 세상의 수많은 단어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만 봐도 힐링, 인문학 등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단어가 그 희생양이 되지 않았던가. 돈벌이 수단이 된 단어를 탈환하라고 촉구한 드보르는 광고나 영화 등을 뒤집고 도둑질하는 것을 일상 속의 혁명이라고 보았다. 그를 추종하던 상황주의자가 ‹정도› 같은 장르 영화를 도둑질하고 인물의 제스처를 어거지로 해석한 방법은, 신기하게도 요즘 인터넷 밈이 창조되는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 1970년대 소비주의 사회에 저항하던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가 펑크록 등 후대 하위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실제 그 에너지가 인터넷 밈으로 이어졌기 때문일 테다. 다만 그 루트를 여기에 더 쓰면 머리가 복잡하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내가 인터넷 밈에 매혹당한 까닭은 이런 ‘어거지 부리기’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매끈함은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조금이나마 심기에 거슬리는 사람을 모두 차단하며 믿고 거른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에 비해, 인터넷 밈은 매끈함에 저항한다. 믿고 걸러진 것들이 펼치는 향연이 곧 인터넷 밈이다. 인터넷 밈을 제작하는 기법을 살피면 더욱더 명확해진다.

초기 인터넷 밈은 주로 누끼따기로 제작했다. 누끼는 다른 소스와 합성해도 원본에서 대상을 자른 흔적을 그대로 지닌다. 누더기를 기운 듯 완벽하지 않은 느낌이 도리어 정감을 준다. 더욱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잘려 나온 존재들이 동일한 배경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야말로 진정한 MCU(Meme Cinematic Universe)다.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영상도 마찬가지다. “내가 고자라니!”라는 장면에서 시작해 이제는 ‹야인시대›의 영상 전반을 광범위하게 합성 소스로 활용하는 인터넷 밈 ‘심영물’을 보라. 심영물 제작자는 ‹야인시대›에 나온 다른 대사의 음성을 음절 단위로 떼고 조잡하게 이어서 새로운 대사를 만든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말을 생성하는 걸 업계 용어로 ‘조교’라고 한다. 전문가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며 최대한 매끈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인터넷 밈은 이를 거부한다. 조교를 통해 무엇을 짜깁기했는지 선명히 드러날수록 더욱더 큰 인기를 누리기 때문이다.

영상 속 세 고양이는 각자 출처가 다르다. 해피캣이 기쁨에 찬 상황에 등장하자, 이와 반대로 맨날 우는 바나나캣이 더해졌다. 이같은 방식으로 각자의 역할이 생기고 역할놀이가 시작된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가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는 이 밈이야말로 타자와 공존하는 사회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어쩌다 보니 자꾸 심영물 타령을 하는데, 사실 이미 옛것이 됐다. 인터넷 밈은 늘상 진화한다. 지금은 푸바오를 중심으로 한 바오네 가족이 인기 계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바오네 가족은 송영관/강철원 사육사(조부모), 아이바오/러바오(부모), 푸바오, 후이바오, 루이바오로(손자)까지 3대에 걸친 가족 서사가 핵심이다. 활동적인 푸바오에게는 푸질머리(푸바오+성질머리), 푸쪽이(푸바오+금쪽이), 아이바오에게는 아여사, 러바오에게는 러부지, 러스타 등 여러 별명이 더해진다. 이렇게 캐릭터와 저마다의 역할이 생기면서 인터넷 밈은 끊임없이 풍성해진다. 여기에 유튜브 시리즈 ‹전지적 할부지 시점›에 올라오는 푸바오의 일상, 푸바오 팬이 용인에서 직접 공수한 푸바오 사진으로 유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바오네 세계관을 계속 확장한다. 그럼으로써 공급자-생산자-소비자로 이어지는 대안적인 예술계가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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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바오가 인기를 얻게 된 계기가 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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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모두가 제 나름대로 예술과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밈은 21세기판 역할극이다. 남극 곳곳을 탐험하는 조종사이자 세상 모든 어린이의 우상인 뽀로로 선생님(2003~)은 말씀하셨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인터넷 밈이 아니었다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노는 법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인터넷 밈 특유의 독특하고 매혹적인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매끈해지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인터넷 밈의 미학은 매끈하지 않은 것을 차례대로 나열해 제작 과정을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행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약을 빨고 만들었는지, 얼마나 쓸데없는 노력을 가미했는지 여부가 작품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이 땅에서 진정 ‘노오력’이 인정받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소셜미디어의 유머 계정처럼) 출처가 불분명한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보기 좋게 결합하는 광경은 솔직히 고깝다. 출처가 분명한 소스를 이질적으로 조합한 인터넷 밈이 훨씬 더 윤리적이고 미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무척 정치적이지 않은가. 단일하지 않은 수많은 정치적 목소리가 평등하게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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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제일… 좋아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단행본으로 나올 채비를 마치고 있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영화관의 졸음을 사랑하는 법

김경수
Film

김경수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하는 «비애티튜드»의 에세이 코너. 2024년을 맞이해 새롭게 영입한 필자는 바로 인터넷 밈meme을 연구하는 김경수 님입니다. 작년 석사 논문으로 발표한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온라인에서 알음알음 굉장한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 기세를 몰아 올 2월에는 단행본으로 정식 출간될 예정이랍니다. 앞으로 매달 인터넷 밈과 엮어 우리 사회의 일면을 읽어줄 경수 님의 본업은 영화평론가예요. 짧디짧은 인터넷 밈과 최소 90분이 넘는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는 극과 극을 달리는 존재죠. 인터넷 밈이 선사하는 즉각적인 도파민에 길들다 보니 경수 님은 어느덧 영화관에서 졸음 마귀에게 시달리는 위기에 처했어요. 그런데 그는 이제 영화관의 졸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영화평론가가 대체 뭔 소리냐고요? 자세한 내막은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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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탕후루’와 ‘제로 콜라’를 동시에 비평하는 사람이다. 탕후루는 ‘인터넷 밈’이고 제로 콜라는 ‘영화’다. 탕후루와 제로 콜라가 동시에 유행하는 시대라니 다행이다. 아니, 오히려 좋다! 덕분에, 나 같은 혼종도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02_김경수

인터넷 밈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을 원본 삼아, 본체와 관련 없는 우스꽝스러운 제스처, 상황, 표정 따위를 추출한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특정한 상황이나 맥락에 적당한 제스처와 원초적인 감정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인터넷 밈을 사용한다. 이때 원본과 인터넷 밈은 이미 맥락에서 벗어나 서로 관련이 없어진다. 그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때 인터넷 밈 하나면 간단히 끝난다. 인터넷 밈은 재생 길이도 무척 짧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한가득 떠도는 밈을 보다 보면 시간이 훅 간다. 하나만 봐야지, 하다가 수십 개를 보고 결국엔 눈이 시려서 잠든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무엇보다 극한에 가까운 쾌감과 웃음을 만들기 때문에 그 속성은 매우 자극적이다. 마치 탕후루처럼 말이다. 

깨물어 먹는 순간 금세 혈당을 치솟게 하는 ‘혈당 스파이크’ 탕후루처럼, 인터넷 밈은 누군가의 뇌에 도파민을 때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석사 논문 주제로 인터넷 밈을 다루기로 마음먹은 후, 리서치를 위해 인터넷 밈을 수집하면서 내 뇌는 어느 순간부터 도파민에 절여졌다. 지금도 뱀술 속의 뱀처럼 도파민에 푹 담겨 있다. 그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나는 원래 제로 콜라, 즉 영화를 비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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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곧바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매체가 아니다. 초반부터 감독이 설정한 빌드업을 성실히 따라가야 하이라이트에 이르러 마음 깊은 곳에서 카타르시스가 겨우 우러나온다. 게다가 빼어난 작품성도 필요하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온전히 충족할 때 비로소 도파민은 샘솟을락 말락 기지개를 켠다. 즉 영화로 도파민을 느끼려면 이렇게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뇌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자극적인 인터넷 밈을 갈망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이제 영화에서 롱테이크 장면이 등장하거나 잔잔한 일상이 묘사되는 순간, 내 뇌에는 비상이 걸린다. 졸음신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든 상세히 보고 기억하며 맥락화해야만 하는 영화평론가에게 이는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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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경험을 고백하고 싶다. 아트나인에서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더 킬러The Killer›(2023)를 보다가 졸음 마귀가 찾아왔다. 킬러가 주인공이라는 말만 듣고 나는 곧장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했다. 감독이 과거 내놓았던 스타일리시한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2001)을 생각한 내가 바보일까. 영화 속 킬러는 “운명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 “공감은 금물이다. 공감은 나약함이다. 나약함은 약점이다” 등 그동안 쌓아온 나름의 철학을 중얼대며 20분 가까이 공유 사무실 위워크WeWork에서 표적을 기다린다. 그는 빅맥을 먹었고, 요가를 했고, 심박수도 체크했고…뭐…아, 졸면 안돼! 하필 이놈의 영화는 평론까지 청탁받은 귀한 몸이었다. 어느덧 영화관은 내 의지와 뇌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콜로세움이 되었다.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언정, 보통 우리가 방문하는 영화관은 사실 졸음에 최적화된 곳이다. 적당히 따뜻하고, 의자도 부드럽다. 그만큼 졸음에 알맞게 어두컴컴한 공간도 드물다. 태생적으로 극장이란 공간은 관객이 오로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그런 과정에서 관객의 불편을 줄이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할 수도 없는 영화관은 그래서인지 따뜻하고…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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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The Killer›(2023)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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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The Killer›(2023)

망했다. 족히 네 번은 기절한 듯하다. 영화 흐름은 대강 기억나지만 디테일을 놓쳐버렸다. 조각조각 흩어진 이미지가 머릿속을 부유하는데, 졸다가 꾼 꿈과 뒤섞이는 느낌까지 든다. ‘아아, 한 번 더 보아야 하나’ 좌절할 즈음, 혹시나 하고 유일한 희망인 다이어리를 펼치면 좌절은 두 배가 된다. ‘휴먼졸림체’로 쓴 글자 덩어리가 페이지마다 빼곡하다. 악필을 타고난 것도 억울한데, 쓰다가 말아서 알아볼 수 없는 글자 사이로 지렁이가 기어간다. 순간 나 따위가 영화 평론을 쓸 자격이 있는지 자문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은 어느덧 ‘내가 사람이기는 한가?’라는 실존적인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나를 철학자로 만든다. 내가 이러려고 인터넷 밈을, 아니 영화 평론을 쓰기로 마음 먹었던가… 왜인지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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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게다가 나는 그 영화를 혼자 본 게 아니다.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영화를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보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그녀는 한참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꼭 혀를 끌끌 차는 듯하다. 요즘 영화를 함께 보면, 여자친구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 같아도 속상할 테다. 꼭 봐야 하는 영화라기에 굳이 같이 왔더니, 정작 평론 쓴다는 인간은 졸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동안 연인은 하나로 연결되는 마법을 겪는다. 영화관이 시내에서 진행되는 현대적 데이트의 성지인 이유다. 공적인 공간인 영화관은 어두컴컴한 분위기로 연인 간의 은밀함을 고조하는 사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고로 영화를 보다가 조는 행위는 은밀함을 부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례나 마찬가지다. 더는 이를 반복하고 싶지 않던 나는 나름의 의지를 담아 각서를 썼다. ‘나, 김경수는 함께 영화를 보다가 세 번 이상 졸면 밥을 산다.’ 그리고 각서 쓴 다음 날 그녀에게 밥을 샀다. ‹더 킬러›를 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다 인터넷 밈에 절인 탓이라고 체념하는 순간이다. 결국 나는 그 영화를 혼자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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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관에서 조는 게 꼭 나쁜 걸까? 이왕지사 이렇게 된 바에 영화관의 일부로 적응하는 나에게 찾아오는 졸음을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분명 이 말을 접한 사람들은 ‘영화평론가라는 이가 무슨 막말이냐’라고 분기탱천할 듯싶다. 생각을 바꿔보면, 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가속화된 시대를 살아간다. 모든 감정을 한시라도 빨리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인터넷 밈은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한다. 영화는 가속화에 저항하는 감각을 기르는 도구다. 우리가 평소에 스치듯 본 것을 더욱더 길게 보도록 만든다. 카메라가 어떤 대상을 롱테이크로 포착하면 왠지 모르게 전보다 심오하게 대하게 된다. 그런 시선을 통해 평범한 일상은 고유한 의의를 부여받는다. 만일 킬러 영화를 보자마자 살인이 펼쳐졌더라면, 우리는 킬러도 현대 사회의 노동자에 불과하며, 그의 업무가 한없이 지루하다는 점을 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킬러의 일상을 이처럼 상세히 경험할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영화는 현시대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감각을 발명하고 있다. 동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지루하고 졸리다는 치명적인 결함은 오히려 내가 영화의 방법론을 더욱 사랑하도록 하는 핵심 요소다. 비록 네 번이나 졸았지만, 잠시나마 그런 영화를 보며 가속화된 나의 감각에 저항하는 일은 무척이나 뿌듯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명작은 나를 창의적으로 졸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관람객을 졸리게 할 수도 있구나’ 싶을 때 경탄을 느낀다. 졸지 않았다면 이토록 생경한 감각을 마주할 수 없다는 면에서, 졸음이야말로 도파민의 무한한 굴레에 갇힌 동시대인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도록 돕는 일등 공신인 셈이다.

지난 2023년 내가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2023)였다. 작년 5월에 본 후, 최근 다시 보았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무려 네 번이나 관람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졸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 뜨고 제대로 보지도 못한 영화를 최고의 영화라고 꼽을 자격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내게는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나른하고 졸리다. 감독의 그간 작품과 비교해 보아도 그러하다. 내레이터가 계속 쏟아내는 대사의 힘이 크다. 톤이 일정해 마치 자장가처럼 들린다. 게다가 인물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말한다. 잠시 졸았다가 깨어난 다음에도 여전히 나른하게 전개되는 터라, 혹여 내가 여전히 꿈속에서 헤매는 건 아닐까 착각을 줄 정도다. 이런 나른함이야말로 우리가 평소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영화 속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우리에게 휴가지에 머무는 듯한 감흥을 준다. 감독은 플롯에 상관없이 관람객이 유유자적하게 영화 속을 유영하길 바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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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2023) 스틸 이미지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우리의 졸음을 반긴다. 연극의 리허설 장면으로 끝나는 엔딩을 보자. 느닷없이 한 캐릭터가 일어나 급작스레 외친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모두가 최면에 걸린 듯 이 대사를 되풀이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는 내게 던지는 한 마디 위로였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영화관에서라도 도파민에서 해방되어 잠드는 경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하려고 105분을 달린 느낌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서 푹 자고, 꿈꾸는 듯한 감흥에서 헤매다 결말만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인터넷 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감독의 배려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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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무척 기묘하고도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엔딩의 연극 리허설이 등장하기 직전의 일이다. 주인공과 그의 아들이 대화하는 뒤편으로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멀리 원자폭탄이 터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둘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멍하니 쳐다본다. 방사능 낙진은 전혀 다가오지 않고 그 어떤 위기감도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보일 정도다. 나는 원자폭탄 터지는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우리는 창문의 이름을 딴 신비한 세계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컴퓨터의 ‘윈도Window’다. 윈도는 원자폭탄이 일상적으로 터지는 세계다. 그리고 영화는 그와 별개의 세계다. 감독은 마치 영화관이란 공간이 인터넷에서 반복되는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난 세계인 듯 그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아날로그 영화관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휴가지인 양 거기서 마음껏 졸음에 빠지고 저만의 꿈을 꾸라고 속삭인다. 진정한 ‘꿈의 공장(Dream factory)’이 알고 보니 여기에 있었다.

덧붙이는 말.

영화와 졸음의 상관관계를 극적으로 느끼고 싶다면 태국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메모리아Memoria›(2022)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 속 캐릭터가 15분 가까이 잠드는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도 자는데, 너는 안 잘 거니?’라고 물어보는 듯하다. 이는 한 여성이 어디선가 ‘쿵’ 하며 울려 퍼지는 미지의 소리를 접하는 영화의 플롯과도 맞물린다. 우리는 그가 접하는 소리의 실체를 예측하기 힘들다. 실상 우리의 삶은 백색 소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은 여성이 느끼는 소리의 충격을 관객과 공유하려 한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관람객을 졸음의 세계로 유도하는 일이다. 영화를 보다가 비몽사몽하며 온몸의 긴장이 나른해지는 무방비 상태가 펼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영화 속 캐릭터가 느끼는 미지의 소리에 진정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10분에 한 번 들리는 ‘쿵’ 소리는 우리의 몸 전체에 기이한 충격을 가한다. 영화 속으로 녹아들어 체험이 체화되는 순간이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단행본으로 기획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세상을 사랑하려는 발버둥의 소리

카코포니, Cacophony
Film

카코포니, Cacophony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뮤지션 카코포니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온 마음과 온몸으로 노래한다고요. 엄마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치솟은 감정을 음악으로 풀며 갑작스레 뮤지션이 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음악적 덕목은 진심을 담는 것입니다. 매사 솔직해지기 위해 누군가를 따라 하지 않는다는 그는 ‘나만의 것’을 만들고 있다고 확신하는데요. 음악마다 마치 지문처럼 찍히는 그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길을 걷는 창작자의 모습이 떠오른답니다. 음악에 욕망이 아니라 사랑을 담고, 세상을 어떻게든 사랑하려고 발버둥 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카코포니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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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온 마음과 온몸으로 노래하는 카코포니입니다. 2018년 정규 1집 ‹和›로 데뷔 후 꾸준히 작업하고 있어요. 감사하게도 프로듀싱이나 영상 음악 작업을 의뢰하는 분들이 계셔서 현재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지만 사실이니까 숨길 필요 없이 편하게 말씀드릴게요. 저는 엄마의 죽음을 옆에서 목도하고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누군가의 죽음 곁에 서 있으면, 그 사람의 삶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기회가 생깁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엄마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엄마를 용서하자마자 이별해야만 하는 끔찍한 상황에 놓였죠.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을 둘 곳을 찾지 못하다가 ‘그냥 다 그만두고 음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어요. 사회에서 말하는 나름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중이었는데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참 어렵지만 그렇게 순간 떠오른 생각을 계기로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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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성산동에 있는 작업실을 기타리스트 거누와 함께 쓰고 있어요. 제 모든 작업물이 만들어지고 생활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거누와 저는 돈을 벌면 죄다 장비와 플러그인에 투자하는 편이라, 작업실에 뭐가 참 많아요. (웃음) 벽에는 소중한 순간을 품은 물건을 붙여 두었는데요. 전시 팸플릿, 티켓, 편지, 엽서 등 두고두고 보고 싶은 게 마구잡이로 있답니다. 말만 들으면 굉장히 정신 사나운 공간 같지만, 예상외로 매우 아늑해요!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사실 어떻게 영감을 받는지 잘 모르겠어요. 멜로디는 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고, 음악을 완성하는 방법은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가 떠올라요. 최근 제가 완성하지 못한 데모 음원의 수를 확인해 보니 1000개가 넘더군요. 저를 찾아오는 영감을 가끔은 버겁게 느낄 때도 있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작업을 완성해야 하나, 더욱더 고민하는 것 같아요. ‘이 음악이 지금의 나와 어울리는가?’, ‘내가 지금 도전하고 싶은 완성의 영역인가?’ 등을 스스로 질문하며 작업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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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보통 아이폰 녹음기 앱을 켜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작업을 시작해요. 신기할 정도로 멜로디와 가사가 맞물려 곡 하나를 완성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찾으면서 작업하죠. 그렇게 가사를 완성하면 다음 순서는 편곡인데요. 가사가 품은 이야기가 이끄는 방향대로 악기를 쌓아가며 멜로디에 옷을 입힙니다. 이야기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악기를 쌓는 일에 시간을 오래 투자해요. 작업물을 완성하면 차분히 들어보며 어떤 악기를 빼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혼자서 판단하기에 역부족이란 느낌이 들 땐, 연주자에게 도움을 요청해 작업물을 함께 완성해요. 곡을 완성한 다음에는 녹음을 하고 믹싱을 합니다. 최근에는 여러 곡의 믹싱 작업도 제가 직접 맡았어요. 믹싱 단계에서는 이야기를 해치지 않고, 필요하다면 이야기를 더 재밌게 전달할 방법을 연구하며 각각의 소리를 배치합니다. 믹싱까지 마치면 곡의 마스터링 작업이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품을 수 있는 영역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스터링 엔지니어분께 최종 작업을 맡깁니다.

06, 카코포니, Cacophony, Reborn

‹Reborn› EP 커버

최근 작업 중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시겠어요?

작년 11월 23일, 정규 3집 ‹DIPUC›을 발매했어요. ‘DIPUC’은 사랑의 신 ‘큐피드Cupid’의 철자를 반대로 적은 단어인데요. DIPUC이라는 단어는 어린 남성인 큐피드를 대신해, 성인이자 여성인 제가 사랑의 화자가 되는 ‘뒤집힌 이야기’를 상징해요. 이전 앨범에서는 저의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그대로 제시하며 상황에 지배된 무기력한 소녀를 등장시켰는데요. 이번에는 상황을 지배하는 여성으로 변모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의 개인사를 복원해 스스로 역사의 주체로 위치시킨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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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3집 ‹DIPUC› 커버

이번 앨범에서는 총 세 편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는데요. 가장 먼저 선공개 곡 ‘End’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어요. 타로Tarot 중 ‘소드 10번(Ten of Swords)’에서 영감받아 김도이 감독이 제작을 맡았습니다. 타이틀인 ‘당겨요, 바로 지금’은 저의 폴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촬영한 영상입니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백윤석 감독이 맡아 주었어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의 뮤직비디오는 저의 단독 공연 무대에 함께 섰던 안무가 젬마 님이 직접 출연하고 연출까지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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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요, 바로 지금(Draw The Bow Right Now› 촬영 현장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나의 잘못이 아닌 일로 벌어진 끔찍한 상황, 이로 인한 트라우마로 삶이 망가진 분에게 ‘살아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함께 살아갈 수 있다’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망가진 이들은 서로 냄새를 맡고 알아보며, 서로의 아픔에 공감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카코포니’의 변화예요. 대중에게 단순히 토해내는 음악가가 아니라, 매력적인 여성으로 비쳤으면 했습니다. 음악적인 면에서 과감하게 쌓을 뿐 아니라, 뺄 수도 있는 뮤지션임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대중과 거리가 먼 뮤지션으로 보인 것 같은데요. 이번 3집을 통해서 이제 카코포니가 팝 아티스트라는 점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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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없어)› MV 스틸 이미지

작업을 진행했을 때 만족했던 부분과 불만족했던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이번 앨범에서 뼈를 깎는 노력과 좌절을 통해 자신을 엄청나게 바꿨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에게 이번 음반의 수록곡을 들려주면,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 굉장히 불만족스러웠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할 만큼, 이번 앨범이 제게 딱 맞는 옷처럼 자연스럽다는 뜻이니까요. 창법을 바꿔도 제 목소리가 음악에 지문처럼 남는 건 아티스트로서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실 3집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대중성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중적인 음악을 만드니까 막상 저랑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수많은 노래를 쓰고 버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저와 어울릴 만한 옷을 찾기 위해 스스로 변화를 거듭하며 노래를 불렀죠. 그렇게 3집을 완성해 보니, 처음 기획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앨범이 되었는데요. 계획한 방향이 달라진 건 아쉽지만 어울리지 않은 옷을 과감히 버렸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10, 카코포니, Cacophony, DIPUC
11, 카코포니, Cacophony, DIPUC

‹End(없어)› MV 스틸 이미지

12, 카코포니, Cacophony, DIPUC
13, 카코포니, Cacophony, DIPUC

‹살아남은› MV 스틸 이미지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늘 일합니다. 메일에 답장하고, 보내야 할 서류를 정리하고, 음악 작업을 하고, 노래 연습을 하고, 기획안을 쓰고, 예산을 편성하고, 연락을 돌리고, 새로 나온 음악을 체크하며 일상을 보내요. 말하고 나니 조금 숙연해지네요. (웃음) 혼자서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하는지라 환기의 시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시간이 남으면 산책하고, 폴 댄스나 요가를 하면서 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일에서 아직 덜 빠져나왔다고 느낄 때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꺼내 들어요.

요즘 들어 특히 관심을 두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최근까지 작업에 몰두하면서, 저 자신에 가장 큰 관심을 두었어요. ‘나는 왜 고장이 난 걸까?’, ‘나는 왜 이방인처럼 느껴질까?’, ‘나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소리 날까?’, ‘내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했죠. 과거를 돌아보며 놓친 순간을 다시 붙잡아 저를 이해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요즘 들어 무언가를 쉽게 좋아하기 힘들어요. 원래 작품 감상을 즐겼는데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깨달아버려서인지, 좋은 작품을 보면 창작자의 고통부터 느껴져서 마음이 따갑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감상자 모드로 전환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거짓’이 싫어요. ‘꾸밈’도 싫어합니다. 매사에 솔직하고 싶어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솔직한 사람이 저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작업 측면에서도 솔직해지기 위해서 누군가를 따라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지금의 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나만의 것’을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14, 카코포니, Cacophony, 1집

정규 1집 ‹和› 커버

15, 카코포니, Cacophony, 2집

정규 2집 ‹夢› 커버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작업의 메시지가 모호하게 느껴질 때 슬럼프를 겪게 되는 것 같아요. 이상한 욕망이 투영될 때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는 작업과 거리를 둬요.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전시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기도 하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 갖고 있던 문제점을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진심이 언젠가 통한다고 믿으며 살아왔어요. 누구보다 음악에 진심을 담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진심이 잘 전해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 생각이 많아져요. ‘이 믿음을 어떻게든 실현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차라리 내 음악을 하지 않는 게, 내 믿음을 지킬 방법일까?’ 자문하게 됩니다. 최근 들어 ‘다른 사람의 진심을 전하는 데 몰두하는 게 내 가치관과 더 맞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졌어요.

개인적으로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감시로부터 해방되어 자기 자신의 길을 걷는 것. 사랑받는 무언가를 따라 하지 않고, 내 안에 있는 목소리를 들을 것. 동시에 다른 이의 작품을 경청할 것. 작품에 욕망이 아니라 사랑을 담을 것. 사랑을 담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기술을 배워 작품으로 만들어낼 것.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자기 자신을 가스라이팅하는 수밖에 없어요.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다’라는 마음을 어느 정도 품고 있어야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멋진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나 시련을 겪고 있구나’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업도 더 열심히 하고,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자신을 만나게 돼요. 비록 저는 아직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노력한 만큼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16, 카코포니, Cacoph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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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또 이를 전하기 위해 끔찍하게 노력한 사람. 세상을 어떻게든 사랑하려고 발버둥 쳤던 사람.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환경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이 더 자유로워졌으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편하게 내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고, 더 나은 가치를 위해 함께 싸우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진심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18, 카코포니, Cacophony, 당겨요바로-지금

Artist

카코포니는 온몸과 온 마음으로 노래하는 사람이다. 2018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음악을 시작했다. 죽음 뒤에 찾아온 절망을 이겨내며 피어난 음악은 진정한 삶을 노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불협화음(cacophony)이라는 뜻처럼 조화롭지 못한 감정과 기억을 솔직하게 노래하며, 완벽하지 않고 상처받은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은 어머니를 기리는 정규 1집 ‹和›, 실패한 사랑담을 담은 정규 2집 ‹夢›, 자전적인 내용의 영화와 함께 제작한 EP ‹Reborn›을 연이어 발매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왔다. ‹和›1집 수록곡 ‘숨’은 유튜브 Kpop 채널 ‘ReacttotheK’에서 ‘올해의 노래’ 1위로 선정되었고, ‹夢›은 한국대중음악상 팝 음반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다. EP ‹Reborn›과 함께 제작한 영화는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어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만약’이라는 질문으로 쌓아 올린 미래

Film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셀린박 작가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Speculative Design’을 다뤄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마주칠 사회적 이슈를 고민하고, 디자인적으로 해결점을 찾는 시도인데요. 여러 미래학자와 관련 분야의 연구진과 소통하고, 미래 사회의 이슈를 지금 여기로 가져와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마련해 왔죠. ‘무뎌진 생각을 날카롭게 만든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Data Slave›, 2021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셀린박입니다. 저는 2014년부터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이너Speculative Designer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아이러브아트센터와 셀린박갤러리 관장으로 일했고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프랑스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이후 캐나다, 미국, 덴마크, 영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석사 과정을 이수했어요. 2017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셀린박 스튜디오를 창업해 다양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작업을 수행한답니다. 국내외에서 강의와 전시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며 조수아 레이 스테픈스Joshua Ray Stephens 교수님을 만났어요. 교수님 수업이 열리는 날이면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온 교환 학생과 밤늦게까지 디자인에 대해 토론하곤 했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아름다움의 측면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북 메이킹, 포스터 디자인 작업을 하며 제가 생각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게 기억나요. 당시에는 지금 사회 구성원의 관점과 심리를 캡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뉴욕의 유니언스퀘어Union Square에서 6000명 넘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여러 조사를 거치며 작업을 진행했죠. 디자이너 혼자 진행하는 작업의 한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키운 기간이라고 봐요.

그 와중에, 보그Vogue, 니켈로디언Nickelodeon, 리핀콧Lippincott에서 인턴과 프리랜서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어느 날 직장 동료들과 디자인 이야기를 하던 중, 제 답답한 심정을 알던 사람이 앤서니 던Anthony Dunne과 피오나 라비Fiona Raby가 이끌던 영국왕립예술대학(RCA)의 ‘디자인 인터랙션’ 전공 링크를 보내줬어요. 링크를 연 순간, 제가 정확히 원하던 걸 바다 건너 영국에서 10년 가까이 진행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던 기억이 나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전시 중 «Design and the Elastic Mind»는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인기가 많았는데요. 해당 전시가 방금 말씀드린 디자이너들과 그 제자가 맡았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고 더욱더 놀랐어요. 당시 학부생이던 제게 디자인의 새로운 경지를 깨닫게 해준 전시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민 끝에 해당 전공에 지원했고, 2014년 극적으로 합격통지서를 받았어요. 디자인 인터랙션에서 공부한 덕분에 현재 제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죠. 이를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면서, 후회 없이 작업 중이에요.

‹Object Marriage› Performance, 2018, V&A Museum

‹Object Marriage› Performance, 2018, V&A Museu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압구정 아이러브아트센터에서 4년간 작업하다가 올해부터 새로운 작업 공간을 물색 중이에요. 그동안 사용한 공간은 모두 편해서 좋았어요. 때마다 마음에 드는 작업실을 자연스레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기에, 지금도 제게 맞는 공간을 기다리며 열심히 물색 중이에요. 요즘은 제가 있는 자리가 곧 작업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켜서 연구와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구 작업실 전경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주로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던 중에 아이디어를 떠올릴 경우가 많아요. 기도하기 전에는 항상 복잡한 생각의 트랩에 갇힌 기분이 종종 드는데요. 기도를 하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어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떠오르곤 해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시나리오를 구축하는 일을 진행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어떤 주제가 인상에 깊게 남으면, 전문가와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양의 연구를 찾아요. 그리고 전문가와 이메일 혹은 대면으로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죠. 제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 이게 먼 미래에 가능한 시나리오일지 타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연구 과정은 인정하면서도 현재 관점으로 바라볼 때 윤리·문화적으로 문제 된다는 판단 아래 반대하는 전문가분들이 더러 계신데요. 미래학자의 추측에 근거해 설명해 드리면 대부분 이해하시더라고요. 도리어 연구를 더욱더 후원해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갑니다. 관객 이해도를 높이려고 영화 시나리오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시나리오를 완성하면 제 작업에서 여러 번 촬영 감독으로 참여해 주신 구본영 감독님을 비롯해 영화감독 출신의 형부, 샤글리 마키제Charlie Marquiset가 큰 힘을 줘서 자주 프랑스에 갑니다. 프랑스에선 형부가 조감독으로 도와주기도 해서 촬영할 때 너무 큰 도움이 돼요.

‹The Object Right›, 2017~2018

‹The Object Right›, 2017~2018

‹The Object Right›, 2017~2018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2021년 작업한 ‹Data Slave›는 박은희, 김다예 디자이너와 리서치를 협업으로 진행했어요.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이 고안한 ‘에너지 노예(Energy Slave)’ 개념과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2020) 등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현재 데이터에 대해 집착하는 사회적 현상이 극대화되는 걸 고려하면, 미래에는 더욱 나쁘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해요. ‘만약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과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몸에 흘려보내면서까지 데이터를 얻는 상황이 미래에 펼쳐진다면?’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를 생각했죠. 사람 몸에서 전류를 내보내는 수치를 마치 전기뱀장어처럼 극대화한 상황을 떠올려 봤어요. 그리고 사람이 몸에서 전류를 에너지로 흘려보낸 만큼 데이터 은행에서 바꿔서 가상화폐처럼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세웠고요. 작업을 구상하는 중, 인체에서 전기뱀장어만큼 전류를 흘려보내는 연구를 진행한 국내 메커니컬 엔지니어 팀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저는 국내 최초로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한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Data Slave›, 2021

‹Data Slave›, 2021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데이터의 범람 속에서 난무하는 거짓 정보를 살피고, 분별하기 어려운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더욱더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연구의 범주와 시나리오 측면에서는 만족하지만, 미적인 측면에서는 불만족스러워요. 예전 작업에서 빠지지 않던 유토피아적인 영상, 즉 맑고 명랑한 색으로 가득한 이미지가 최근 작업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요. 가보지 않은 나라에 가거나, 먹어보지 않은 걸 맛보거나, 해보지 않은 체험에 도전하는 일은 아주 어려서부터 좋아했답니다. 새로움을 경험하고, 이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을 기대하며 일상을 보냅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거대한 침체(Great Stagnation)’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시대보다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해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1960년대까지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류는 자동차, 텔레비전, 전구, 시민권, 원자력 등 엄청난 기술의 발전을 경험했어요. 이런 진보는 미래에도 여전할 거라 믿었지만, 현재는 과거 기술을 조금 더 발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 같아요. 저는 정보가 과대하게 불어난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서 관련 연구를 이어가는 중이에요. 소셜 미디어로 인해 전 세계가 손바닥 안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 역시 원인의 일부 아닐까 싶습니다.

‹Object Matcher›, 2018 2019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잘 정돈한 작업실을 좋아해요. 머릿속이 번잡할 때 작업실을 청소하면 생각도 함께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이런 태도가 작업에도 묻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오면 작업에서 손을 떼고 책을 읽습니다. 2023년 1월부터 트레바리에서 클럽장을 맡아 독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나 홀로 아이디어의 블랙홀에 빠져있을 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블랙홀로부터 벗어나는데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돌아와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작업을 한 지도 어언 6년이 흘렀는데요. 여전히 한국에서는 해당 개념을 잘 받아들이기 어려운것 같아요. 중국과 일본으로 향한 대학원 동기들이 말하길, 그곳에서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 또렷한 윤곽을 보인다고 해요. 예를 들어, 중국은 베이징에 있는 중앙미술학원(CAFA) 총장이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의 영향력과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디자이너의 발전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10년 가깝게 여러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님을 초청해 강의를 열고 수업과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해요. 그런 영향 덕분에 중국은 이제 디자인에 대한 견해가 전과 같지 않고, 발전 가능성이 놀라울 만큼 성장 중인데요. 한국 디자인 교육에서도 과거의 보편적인 디자인 경계를 넘어 더욱 다양한 디자이너를 양성하길 바랍니다.

‹Object Matcher› Exhibition, 2020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요즘에는 ‘정성(精誠)’이 깃든 디자인을 만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시각적인 호기심을 끄는 것은 디자인의 역할 중 하나인데, 그 이상 깊이와 성의를 다하는 과정이 빠진 듯한 작업을 접할 때가 많아요. 물론 과거에 본 작업을 융화하거나 조금 바꾸며 새로운 작업을 하지 않고, 완벽히 새롭게 작업하는 건 저에게도 무척 어려운 일이죠. 다만 최대한 자기 색깔과 취향을 살리고, 내면의 이유와 철학을 불어넣지 않으면 디자인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작업을 완성하는 데 의의를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찾고, 자신의 다름을 타인의 강요에 맞추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또한 지금 쫓는 일의 방향이 달라지더라도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를 바라요. 모든 과정이 결국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제게도 하고 싶은 말을 남길게요. “Just Do It.”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무뎌진 생각을 날카롭게 만든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이 없는 미래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 아닐까요?

Artist

셀린박은 셀린박 스튜디오, 아이러브아트센터의 설립자이자 대표 디자이너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셀린박 갤러리, 아이러브아트센터를 운영했다. 그는 작업을 위해 한국에서 유럽으로 끊임없이 이주하며 유럽과 한국의 대학, 박물관을 포함한 여러 기관에서 전시와 강의를 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프랑스, 캐나다, 미국에서 자란 그는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디자인 인터랙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런던 V&A 뮤지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주프랑스한국문화원 등 유럽과 한국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2019년부터 제주도 프랑스영화제 단편 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책 집필 중에 있다. 

나는 자비에 돌란을 믿지 않는다

Film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비애티튜드»가 귀히 모시는 에세이 필자인 김도훈 님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니스트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여름철에 들이닥치는 다양한 영화 시사회에 다녀오느라 요즘 무척 바쁜 몸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는 신작 영화에 대한 리뷰를 부탁하려고 했는데요. 의외로 그의 대답은 ‘노no’. 알고 보니 얼마 전 뉴스에 뜬 자비에 돌란의 은퇴 소식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답니다. 김도훈 작가가 기억하는 돌란은 어떤 모습일까요? 돌란의 은퇴를 믿지 않는다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영화감독 자비에 돌란Xavier Dolan을 만난 적이 있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만난 건 아니다. ‘만났다’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마디라도 나눴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나는 그를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봤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나는 돌란을 가까운 발치에서 봤다. 한 5m 거리 정도?

2010년이었다. 영화잡지에서 일하던 나는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로 출장을 갔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이창동 감독의 ‹시›가 동시에 경쟁 부문에 오른 해였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일종의 2차 경쟁 부문이라 할 법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출품됐다. 한국 영화가 경쟁 부문에 오르면 칸 해변에도 한국 기자들이 많아진다. 결국 이창동 감독이 각본상을 받고, 홍상수 감독이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흥겨운 해였다.

사실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영화는 따로 있었다. 돌란의 ‹하트비트Heartbeats›였다.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함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다. 나는 칸 영화제에 가기 전 돌란의 데뷔작인 ‹아이 킬드 마이 마더I Killed My Mother›(2009)를 봤다. 엄마를 죽여버리고 싶은 16살 게이 소년의 이야기였다. 에너지가 굉장했다. 영화는 엄청 거칠고, 서툴고, 직설적이었다. 그게 매력이었다. 나는 데뷔작부터 지나치게 유려하게 만드는 감독보다 뭔가 좀 엉망진창인 것 같은데도 뺨을 후려치는 것 같은 치기를 지닌 감독을 좋아하는 편이다. 돌란이 딱 그랬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부산 사투리로 “하따 이 새끼 보소”라고 내뱉은 기억이 난다. 나는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보면 저절로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다. 나에게는 서울 사투리보다 좀 더 본능적인 언어라 그럴 것이다.

‹하트비트Heartbeats›, 2010 (좌)

‹아이 킬드 마이 마더I killed My Mother›, 2009 (우)

‹아이 킬드 마이 마더I killed My Mother›, 2009 © FILMGRAB

슬프게도 나는 칸 영화제에서 ‹하트비트›를 보지 못했다. 대신 함께 출장을 갔던 김혜리 기자가 봤다. (선배라고 썼다가 호칭을 기자로 바꾼 이유는, 요즘 아이돌까지 공식 석상에서 선배 선배 거리는 게 영 마뜩잖기 때문이다.) 김혜리 기자를 보자마자 물었다. “어땠어요?” 나는 아직도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봤을 때 그분 특유의 어떤 표정이 있다. 나는 그 표정을 두 번 더 겪었다. 한 번은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고 나오던 중 “선배 이 영화 너무 좋지 않아요?”라고 했다가 목격했다. 또 한 번은 첫 번째 ‹토르› 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 “저는 지금까지 나온 마블 영화 중 이게 제일 좋네요”라고 했다가 목도했다. 절대적으로 인자하지만, 어쩐지 근심이 서려 있는 그 표정. 나는 기대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제 기간 중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돌란을 봤다. 내가 간 식당 바로 옆 파티오에 앉아서 몇몇 힙스터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다. 당시 그는 영국 록 스타 모리세이Morrissey처럼 앞머리를 무스와 스프레이로 단단하게 치켜올리고, (마치 알프스의 마터호른 같았다) 가슴까지 파인 하얀 티셔츠를 입고, 저게 어떻게 사람 몸에 들어가나 싶은 검은 스키니진을 입고, 굽이 앞머리처럼 높은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나는, 반했다. 아니. 돌란은 어떻게 봐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반했다. 그러니까 이건 뉴진스의 ‹어텐션Attention› 뮤직비디오를 보고 민지에게 반한 것처럼 반한 것이다. 뭔가 아름다운 존재를 목격했을 때 나오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하트비트›가 별로여도 나는 이 남자를 계속 좋아하겠구나.

Photography by Denis Makarenko © Shutterstock

잠깐만. 지금 혹시 외모 때문에 감독의 팬이 됐다고 고백하는 거냐고? 아니, 솔직히 좀 그러면 어떤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외모까지 잘 생기면 좀 더 애정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솔직히 생각해 보시라. 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이 잘 생겼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더 좋아 보인다고 말한 동료 평론가도 한 명 알고 있다. 한 사람의 팬질이 꼭 예술적인 이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세세한 요소가 있을 수 있다. 외모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하트비트›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욕망의 대상이 되는 금발의 남자 주인공을 자기보다 덜 멋있는 사람으로 캐스팅한 덕에 돌란의 예쁨은 유독 빛이 났다. 아주 반짝반짝거렸다.

다만 감독으로서 그의 커리어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아마도 젊고 치기 어린 감독이 어쩌다가 내놓은 근사한 데뷔작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트비트›는 예쁜 영화지만 데뷔작처럼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로렌스 애니웨이Laurence Anyways›(2012)를 보고 나는 내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돌란은 이르게 스타가 된 자신을 카메라에 담지 않고 카메라 뒤로 빠지는 선택을 했다. 멜빌 푸포Melvil Poupaud가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는 이 영화는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유미주의적 영화 만들기의 극치였다. 당시 영화잡지에서 일하던 나는 이렇게 20자 평을 썼다. “자비에 돌란은 과대 평가된 힙스터 감독인가? 이 영화는 그 모든 의심에 대한 당돌한 대답이다. 종종 예술적 허세가 폭발하는데, 이렇게까지 허세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니 두손 두발 다 들고 투항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투항했다.

‹로렌스 애니웨이Lawrence Anyways›, 2012

‹로렌스 애니웨이Lawrence Anyways›, 2012

스릴러 영화 ‹탐엣더팜Tom at the Farm›(2013)과 ‹마미Mommy›(2014)를 거치며 그의 영화는 정말 놀랄 정도로 빠르게 진화했다. ‹마미›는 여러 부분에서 데뷔작인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연장이었다. 감정은 더욱 격렬한데 솜씨는 더욱 단아해졌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은 ‹마미›의 바로 ‘그 장면’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1 비율의 정사각형 프레임에 갇혀 있던 주인공이 록 밴드 오아시스의 ‘원더월Wonderwall’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양손으로 화면을 열어젖히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솔직히 이런 형식적 실험 혹은 장난은 잘못 사용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게 마련인데, 유치하지 않았다. 아니다. 솔직히 유치했다. 그런데 그 유치한 진심이 꽤 감동이었다. 그건 어떤 면에서 오로지 돌란처럼 약간 자신의 재능에 취한, 그러나 확실히 재능이 절정으로 치닫는 젊은 감독만이 해낼 수 있는 영화적 치기였다. 나는 그 치기가 어디까지 더 갈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탐앳더팜Tom at the Farm›, 2013

‹마미Mommy›,2014

‹탐앳더팜Tom at the Farm›, 2013 (좌)

‹마미Mommy›,2014 (우)

사실 나는 이 글을 조금 슬픈 마음으로 쓰고 있다. 돌란은 얼마 전 스페인 매체 «엘 문도El Mundo»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제작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예술은 쓸모가 없고 영화에 전념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단호한 워딩은 순식간에 인터넷 세계로 퍼져나갔다. ‘자비에 돌란이 은퇴를 선언하다’라는 제목을 달고 퍼져나갔다. 며칠 뒤 돌란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터뷰를 정정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통역을 거치며 잘못 일반화된 부분이 있다며 “영화를 그만 만들고 싶다고 말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예술은 쓸모가 없고 영화에 전념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계속해서 TV 시리즈 등을 만들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이 해명은 조금 이상했다. 영화를 더는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결국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직접 연출한 ‹The Night Logan Woke Up›에 배역으로 출연한 자비에 돌란

며칠 뒤 «엘 문도»는 인터뷰 오디오 녹취를 공개한 뒤 “자비에 돌란이 애초 언급했던 내용과 일치한다”며 반박을 내놓았다. 굳이 이런 반박을 내놓을 필요가 있나 싶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돌란이 자신의 발언을 후회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꼭 자기가 한 모든 말을 지키고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막상 인터뷰를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정신 좀 차리라”며 전화했을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내가 그의 친구였다면 곧바로 퀘벡에 전화를 걸어 “마음이 불안정할 때는 제발 인터뷰 같은 거 하지 마”라고 쏘아붙였을 것이다. “칸 영화제의 기억은 제발 좀 잊어버리라”고도 말했을 것이다. 나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그의 순간적 혐오가 분명 마지막 두 영화에서 얻은 경험에 기인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2016년 돌란은 ‹단지 세상의 끝›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문제는 이 영화가 어떻게 봐도 그의 최고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영화제 기간 중 매체들이 내놓는 별점은 경쟁작 중 최악이었다. 나 역시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스물일곱의 돌란이 조금 더 성숙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형식적 재주를 모조리 제거한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큰 상을 받자 스캔들이라고 일컬을 만큼 비난이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던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이 울면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비에 돌란을 멍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밈이 되어 인터넷을 떠돌기 시작했다. 아직 한국에 공개되지 않은 영어 데뷔작 ‹존 F. 도노반의 죽음과 삶›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혹평받았다. 로튼토마토 평점을 다 믿는 건 곤란하지만, 신선도 19%는 아무래도 좋은 소식이 아니다. 2019년 작 ‹마티아스와 막심›은 모든 국가에서 처참한 흥행 성적을 거뒀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자신의 세계를 견지하면서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종의 이정표라고 생각했다. 그래.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런데 어랍쇼? 은퇴 선언을 해버렸다.

‹마티아스와 막심Matthias et Maxime›, 2019

나는 자비에 돌란의 은퇴 선언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을 생각이다. 마지막 두 영화가 비평적, 흥행적으로 실패를 거둔, 이제 갓 서른이 된 예민한 예술가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왜냐하면 마흔 중반의 나는 서른쯤의 나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번의 위기를 겪는다. 첫 번째가 서른이고 두 번째가 마흔이다. 마흔이 중년의 위기라면 서른은 정체성의 위기다. 마흔은 정신과 육체가 마침내 절정을 넘어서서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는 단계다. 더는 젊은이로 불릴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하는 순간이다. 더는 새로운 것에 도전할 여유도, 시간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다면, 축하한다. 아직 인생 최악의 정신적 위기는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른은? 사람이 다시 중2병에 접어드는 단계다. 이팔청춘도 지났으니 이제 뭔가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이 길이 맞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 마흔이 넘은 나 같은 늙은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하나다. 그냥 자기를 믿고 밀어붙이라는 것이다. 꾸준히 밀어붙이는 것보다 현명한 방법은 사실 몇 없다. 아니, 갑자기 글이 꼰대의 인생 조언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글은 썩 좋지 않다. 그러니 마지막은 다시 돌란의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만약 당신이 나처럼 삐뚤어질 정도로 돌란의 열성적인 팬이라면 지레 은퇴를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는 결국 다시 영화를 만들게 될 것이다. 어쩌면 더 나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은퇴한다고 선언했다가 슬그머니 복귀할 때는 자기 인생 최고의 것을 내놓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돌란이 계속 “여전히 감성만 가득하고 무게감이 없다”고 비평가가 불평하는 영화를 만드는 힙스터 예술가로 늙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뭐 어떤가. 인생은 길다. 그리고 불공평하다. 모든 사람이 항상 더 성장하며 더 나은 걸작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는 법도 없다. 나는 육십이 되어서도 ‹마미›의 그 장면을 다시 보며 울컥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Writer

김도훈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이다. 영화주간지 «씨네21»,남성지 «GEEK»과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일했다.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loser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