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Essay

증상앤살리단길 - 순례자의 드라이브(Trieb)

Writer: 김지혜
[ESSAY]김지혜_1

영화 ‹살목지› © 쇼박스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스크린 속 공포가 스크린 밖 현실까지 점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괴담의 배경이 된 저수지 살목지는 어느새 “살리단길”이라는 별명이 붙은 핫플레이스가 되어 새벽마다 귀신도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의 방문 행렬을 맞이하고 있죠. 우리는 왜 굳이 으스스한 심령 스팟으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걸까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영화 로케이션 투어를 넘어 괴담을 능동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현시대의 고스트 투어리즘 현상을 짚어 봅니다. 김지혜는 프로이트의 운하임리히 개념에 착안한 피셔의 ‘으스스함’에 대한 정의, 그리고 상상력이 쇠퇴한 시대를 꼬집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시선을 토대로 이 기묘한 열풍을 읽어 냅니다. 단순히 유령을 찾으러 가는 길(Drive)이 아니라,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일상의 권태를 자본주의적 감각으로 소비하려는 우리 안의 기이한 충동(Trieb)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들여다보세요.

[ESSAY]김지혜_2

영화 ‹살목지› 포스터 © 쇼박스

증상앤더시티

증상앤더시티는 ‘도시’ 속 우리가 겪는 ‘증상’을 분석한다기보다 증상 속 우리의 향유가 얽혀 있는 틈새를 비추며, 나만의 예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생을 직조해 내는 고유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티스트·아트세러피스트로 정체화하는 저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통해 비스듬히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개인의 증상을 형성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내포한다.

“도시의 증상이면서, 도시가 증상이다.”

살목지가 살리단길이 되었다. 예산군의 저수지인 살목지는 예전부터 밤낚시꾼들 사이에서 괴담이 돌던 곳이었는데, «심야괴담회»에 소개된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리단길” 작명이 따라붙는 핫플 심령 스팟이 되었다. 귀문이 열린다는 새벽 1~3시 사이 살목지로 가는 차량 190대의 행렬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고, 살목지 드라이브 체험 블로그도 등장했다. 살목지에서 퍼 온 물 소분 나눔부터 반려동물 동반 가능 여부까지 생활 정보형으로 꼼꼼하게 챙긴 이 게시물의 댓글은 진짜 광기 혹은 양기라는 반응이 다수이지만, 몇몇 방문자는 댓글이 지워졌다거나 닉네임이 다르게 보인다는 제보로 괴담 확산에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누군가는 살목지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관람하고 정보를 찾으면서도 어딘가 으스스한 기운을 느끼는 저자와는 양기의 급이 다르다. 사람들의 출몰에 귀신도 질려 도망가겠다며 귀신의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밈도 등장할 정도로 살목지는 유명해졌고 현대식 자본주의 퇴마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결국 현시점 살목지의 야간 통행은 제한된 상태이다.

왜 사람들은 괴담에 몰입하고 심령 스팟에 찾아가는 것일까? 사실 공포물을 즐기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현실로 돌아왔을 때 안도하며 느끼게 되는 안전한 카타르시스이다. 일상적 권태에서 벗어나 강렬한 감각 경험을 원하면서도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소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살목지 순례 현상처럼 불안이 실제 장소로 옮아와 체험형 공포가 되면 현실에서의 안전함이라는 경계를 벗어나는 지점이 생긴다. 이에 상응하듯 최근의 괴담은 스크린을 벗어나 체험이 가능한 장소를 만드는 장치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여기에 SNS 후기 등이 미디어에 노출되면 괴담은 확산되고 장소는 관광화되어 더 매력적인 것으로 소비된다. 심령 스팟은 공포 그 자체보다는 이러한 집단적 정동이 전염된 장소의 체험 가능성으로 핫플이 된다.

[ESSAY]김지혜_3

영월 장릉 전경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ESSAY]김지혜_4

영월 청령포 포구 © 국가유산포털

살목지 순례를 단순히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가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 관광 열기로 이어진 스크린 투어리즘의 사례로만 읽으면 현상은 납작해진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미적 체험과 휴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나 재난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여 역사적 비극을 애도하고 반성하며 교훈을 얻는 대안 관광의 형태이다. 이는 전쟁, 묘지, 식민지 역사, 홀로코스트, 재난, 감옥, 고스트 투어리즘 유형으로 분류된다. 살목지 순례는 이러한 분류 중 고스트 투어리즘으로 볼 수 있으며, 타 유형과 달리 즐거움 추구가 그 목적에 가깝다. 공포가 내부에서 안전하게 유통되는 감정 상품이 된 것이다.

[ESSAY]김지혜_5

Ground Zero 전경 © Axel Houmadi

다만 공포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지역에 들러붙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민감한 문제이다. 아침 방송에 출연한 지역 주민은 살목지 성지순례로 아직은 지역 경제 활성화 같은 장점보다 밤중의 소음이나 공포 이미지 고착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포영화 ‹곡성›의 사례처럼 지역 이미지 실추가 우려될 때 지역과의 관련성을 지우지 않고 역발상 홍보로 전환한 경우도 있는 만큼(군수는 브랜드상을 받았다), 예산군도 충주맨식 지역 홍보 문법으로 발 빠르게 지역 홍보에 동참하고 있다. 현재 예산군의 유튜브에는 살목지를 “살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패러디한 영상이 올라와 괴담은 농담으로 중화 혹은 진화 중이다.

살목지 순례는 언캐니uncanny한 장소 경험의 소비로 볼 수 있다. 언캐니는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한 낯익은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감각인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영역이다. 영화 속 살목지의 공포가 시작되는 곳은 사실 실제 저수지라기보다는 로드뷰 화면이다. 심령 스팟으로 유명한 장소에 갔다가 괴이한 현상에 휘말린다는 내용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말 그대로 발견된 영상 속에 무언가 있다는 공포영화의 형식에 충실하다. 카메라 화면 안에 있어서는 안 될 형체가 포착되고, 내비게이션 속 있어야 할 경로는 끊겨서 같은 곳으로 계속 돌아오게 한다. 땅과 물의 경계가 모호한 저수지, 있던 장소에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돌탑,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없어야 할 것이 있는 풍경에서 오는 이 불편한 감각은 마크 피셔Mark Fisher가 정의한 으스스함일 것이다. 사실 영화 ‹살목지›에는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장면이 많고, 귀신도 점점 늘어나서 후반부로 가면 긴장감을 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너무 많은 귀신이 가장 덜 으스스한 것일 수도 있다.

케인 픽셀즈, ‹백룸The Backrooms(Found Footage)›, 2022

피셔는 언캐니가 공포영화 문법의 해석에 미친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그 속에 구겨 넣지 않고 구분하는 시도를 한다. 둘 다 외부 세계를 지각함으로써 내부 세계를 인지하게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기이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의 출현, 으스스한 것은 풍경 속 존재와 비존재에 관한 질문, 즉 부재의 실패나 현존의 실패이다.

데이비드 린치,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 2001

피터 위어, ‹행잉록에서의 소풍Picnic at Hanging Rock›, 1975

또한 피셔는 자본주의를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로 제시하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세계에서는 대안적 상상력이 쇠퇴하고 더 이상 새로운 미래가 없다는 확신이 팽배하면서, 모든 건(과거조차) 단순한 소비 상품이나 심미적 대상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정치·경제 체계뿐 아니라 개인의 무의식과 욕망, 현실 감각 자체를 지배해서 사람들이 냉소적이고 무기력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심령 스팟은 초자연적 현상의 증거라기보다 자본주의가 봉합하지 못한 감각의 틈새가 된다. 예측할 수 있는 상태로 반복되어 새로울 것 없는 일상 속 강렬한 감각은 점점 희소해지고, 심령 스팟은 강렬함을 소비 가능한 형태로 제공하는 장소가 된다. 즉, 희소해진 강렬함의 경험은 다시 자본주의의 소비로 귀결된다. (예컨대, 인터넷 커뮤니티의 살리단길 관련 게시글의 댓글 중 일부는 살리단길에서 핫도그나 떡볶이를 팔겠다는 농담을 담고 있다.) 영화 소비는 관광지 소비로 이어지고, 소비는 더 큰 소비를 낳는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팬픽 등 2차 창작으로 대표되는 참여문화에서 관객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콘텐츠의 공동 생산자로서 역동적 주체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살리단길의 순례자도 이 능동적 모델에 부합하는 듯하다. 영화 관람 후 실제 장소를 찾아가 후기도 쓰며 원전을 확장하는 공동 저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리단길의 순례자에게 살목지 귀신의 존재를 믿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진지하게 귀신을 믿는다면 두려움 때문에 새벽 3시의 차량 행렬에 동참하긴 어려울 것이고, 완전히 불신한다면 굳이 서울에서 예산까지 차를 몰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안 믿지도, 믿지도 않으면서도 가는 행위는 원작에 대한 애정과 몰입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냉소적 태도가 아닐까. (물론 사람들은 단순히 갈 곳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작품을 향한 애정과는 무관한 이동이 된다.) 순례는 믿음과 불신 사이 균열의 지점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고스트 투어리즘은 이 같은 이중 구조의 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된다.

[ESSAY]김지혜_9

루마니아 호이아-바치우 숲 © Pal Szilagyi Palko

드라큘라의 고향인 트란실바니아 지역에 있는 호이아-바치우Hoia-Baciu 숲은 세계에서 유령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곳으로 알려진 초자연 현상의 순례지 중 하나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을 투영하는 숲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도 개발업자가 아파트 단지 건설을 위해 벌목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자본주의는 어디에서나 리얼하다.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겸하는 NGO의 친환경(?) 투어 프로젝트에서는 드라큘라의 창조자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후손과 함께 숲의 신비를 밝히는 야간탐험을 기획하기도 한다.

[ESSAY]김지혜_10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Dracula』, 1897, Archibald Constable and Company

다시 살목지로 돌아오면, 앞선 순례자 블로거의 덤덤함 혹은 ‘아방함’은 믿음과 불신 사이에 놓여 있다. 순례길에서 고장 난 핸드폰 거치대나 꺼진 블랙박스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살목지의 물을 떠 와서 나눔을 위한 물품처럼 다루며 공포를 부정하듯 행동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기이한 모양의 나무와 자고 일어나니 생겨있다는 방바닥의 물 자국을 사진으로 전시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살리단길의 순례자는 공포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기 체험을 드라이브 후기로, 인증샷으로, 지도 앱 별점으로, 댓글로 제작해 유통하고 확산시킨다. 영화로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 후기, 그리고 유튜브로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공포를 소비하는 행위가 공포의 생산에 가담하는 행위로 전환된다.

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이 같은 괴담에서 파생된 현상의 이중 구조를 소설의 형식 자체로 실험한 작품이다. 인터넷 게시글, 편지, 인터뷰 기록 등을 콜라주한 페이크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괴담을 소비하는 주체가 괴담을 만들어 간다는 순환 구조는 모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 속 편집자는 파편화된 괴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실종되고,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 역시 저주에 가담하고 있다는 메타적 설정까지 덧붙였다. 괴담을 소비하려고 접근했다가 곧 괴담 전파와 생산에 참여하게 되는 구조로,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괴담 현상에 가담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괴담이 만들어진다.

살리단길 드라이브 블로그 글은 이 문법의 현재 진행형이다. 살아 있냐는 댓글과 스크랩은 늘어 간다. 또 하나의 괴담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모두가 목격한다. 방바닥의 물 자국은 괴담의 증거라기보다, 어쩌면 이 괴담이 독자의 방으로 혹은 일상으로 옮겨가면서 만들어진 메타 서사의 기록이다. 귀신은 이제 영화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가상의 공포는 현실의 장소를 점유했다. 괴담의 장소는 발견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 체험과 그 기록의 디지털화를 통해 새롭게 발명되는 중이다.

[ESSAY]김지혜_11

세스지,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2025, 반타

영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예고편

이렇게 사람들은 살목지에 귀신을 보러 가는 것이라기보다 귀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러 간다. 살목지의 순례자는 드라이브 겸 살목지로 향했다. 드라이브(drive)는 독일어 “Trieb”의 번역으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인간의 충동이기도 하다. 충동은 만족을 완결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운동이며, 증상의 형태로 반복된다. 살리단길을 향한 드라이브는 괴담의 공동 저자가 되려는 주체들의 드라이브(Trieb)다. 그곳에서 소비되는 것은 유령 그 자체가 아닌 유령을 끊임없이 현존하게 만드는 참여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령이 사는 곳은 이제 저수지라는 장소가 아니라 블로그와 스크린이라는 디지털 콘텐츠 속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Solaris›, 1972

Writer

김지혜 박사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로, ‘아트애즈테라피(artastherapy.kr)’를 운영하며 예술 치료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의 관점을 교차하고, 창작과 치유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연구 주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사회정의 미술치료와 반응작업 미술치료가 있다. 앞으로 미술과 음악, 문학, 무용 동작 등을 통합하는 예술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공미술, 전시,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자 한다. 저서로는 『치유로서의 미술』(글로벌콘텐츠, 2021)이 있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