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신의 것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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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원정백화점은 디지털 미디어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독특한 작업을 합니다. 특히 신체 감각에 주목하며 ‘불온한 판타지’를 스크린과 육체로 끌어들이는 데 집중하는데요. 환상과 릴스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금세 소멸하는 것을 붙잡는 방법론으로 영원한 존재인 신의 것을 훔쳐 온다고 해요. 그래서 작품들은 서양 중세 종교화에서 자주 보이는 삼면화의 특성을 차용하고, 성경 구절을 사운드의 일부로 쓰고, 지극히 육체적인 체액과 혈흔, 염증을 신적 존재와 결부시키면서 불온한 천사와 조각난 천사와 대립하는 본능적인 몸에 대해 상상한답니다. 이때 인공지능으로 생성해 스크린에 나타나는 몸의 존재와 물리적인 공간에서 퍼포머가 실연하는 몸의 존재가 서로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공존하는 상태가 무척 흥미롭답니다. ‘불온한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환상, 이미지, 욕망, 현실, 신체 감각을 탐험하는 이 신비한 창작자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01, 원정백화점, 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퍼포먼스, 2022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원정백화점입니다. 서비스하거나 환상을 좇는 일을 합니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불온한 판타지를 몸과 스크린으로 끌어들입니다. 현재는 온라인과 온라인 밖에서의 신체 감각에 주목하고 있어요.

02, 원정백화점, 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퍼포먼스, 2022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8년 ‹영적삶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어서 체험행사를 진행한 게 원정백화점의 첫 활동이었어요. 이벤트 형식에 맞춰 일회성으로 ‘원정백화점’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사용했는데요. 그러면서 한동안 기존의 종교적 고민에 대한 작업이 아니라 백화점으로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현재는 그 시기와 생각과 작업이 다르지만 이름은 계속 쓰고 있습니다. ‹영적삶게임›이 종교적 고민에 대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마지막 작업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종교적인 것에서 훔쳐 오고 있어요. 환상과 릴스처럼 금세 소멸하는 것을 붙잡기 위해서 영원한 신의 것을 훔쳐서 작업합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아, 불과 얼마 전에 작업 공간을 이사했어요. 지금은 컴퓨터와 의상 정도만 구비한 상태이고, 거의 비어 있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너무 진부한 질문인가요. (웃음)

걸으면서 떠올린 생각,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그렸던 그림들, 썼다가 고민한 메모들, 유튜브에서 본 뮤직비디오, 블로그로 훔쳐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일기, 학교와 학원과 극단과 교회에서 배운 것들, 실패하고 있는 운동, 인공지능에 의존해 만든 이미지, 최신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아요.

03, 원정백화점, 하팃구리

‹하팃구리HEARTIGURI›, 2020 2022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드로잉과 메모에서 출발할 때가 가장 많아요. 창작자와 실연자로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실행 과정에서 작업 내부에 어떤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따라갔다가 벗어났다가 하는 과정이 존재해요. 예컨대 ‹ઈ스킨케어신화ઉ›라는 작업에서는 ‘신의 것을 훔치는 여자’라는 캐릭터를 생각하며 만들어 나갔죠. 그렇게 크게 붙잡을 수 있는 선을 하나 만들어두고, 그다음으로는 과정 중에 몸을 움직이며 변화에 적응해 나갑니다.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ઈ스킨케어신화ઉ›(2022-2023)는 디지털 자아를 위한 현재 진행형 신화입니다. 소셜미디어에 E-girl의 모습으로 셀피를 올리면서 시작한 작업인데요. 서양 중세 종교화에서 보이는 삼면화(triptych) 같은 구조로 스크린을 설치하고 중앙에는 셀피가, 좌우로는 천사와 괴물 형상의 버추얼 이미지가 나옵니다. 작년부터 몇몇 공간에서 설치와 퍼포먼스 등 형태를 변형하면서 실연해 오고 있어요. 스크린 아래에서는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소리와 클래식, 비트가 교차하는 사운드에 맞춰 춤을 추죠. 스크린 속 인물이 카메라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데 반해, 그 아래에서 춤추는 인물은 신체 내부로 감각을 집중합니다.

04, 원정백화점, 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2022

05, 원정백화점, 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퍼포먼스, 2023

06, 원정백화, _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퍼포먼스, 2023

‹ઈ스킨케어신화ઉ›가 스크린에 매끈한 피부처럼 붙어있는 상태라면, ‹탈락한 피부와 디지털 체액 편지›(2023)는 피부 내부에서 떨어지는 체액과 혈흔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설치물과 비디오, 퍼포머 등 작업의 구성 요소를 배치할 때 피부, 체액, 혈흔, 염증이 한데 모인 하나의 몸을 생성한다고 상상하며 구성했어요. 스크린에서는 몸이 마치 매끈한 피부처럼 시각적인 요소로 존재한다면, 공간에 현존하는 실제 몸은 촉각적이고 청각적인 상태에 가깝습니다. 디지털 세계의 이미지와 현실 공간의 신체가 대립항이 아니라, 뼈와 살처럼 함께 있는 느낌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07, 원정백화점, 탈락한-피부와-온라인-체액-편지

‹탈락한 피부와 온라인 체액 편지›, 2022

‹Pure Hymn›(2023)은 ‹ઈ스킨케어신화ઉ›의 찬송가로 신의 자리에 생긴 염증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체액의 사운드와 인공지능 사운드로 구성해 순수한 힘에 대한 찬양을 담았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신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하지 않고 그저 염증이 생긴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생명이 잉태하는 장소로 신화적 장소인 자궁은 염증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물리적인 몸으로 존재합니다. 가장 환영받는 자리에 환영받지 못하는 물질이 생기고, 염증 걸린 불온한 천사들이 서로 의존하며 비행합니다.

08, 원정백화점, pure-hymn

‹Pure Hymn› MV 스틸 이미지, 2023

온라인에서 음악 앨범 및 뮤직비디오로 유통하는 ‹Pure Hymn›은 ‹염증을 위한 구유›(2024)에서 건물의 일부, 병풍 또는 벽지처럼 연하게 스크리닝 돼요. 바닥 중심에 위치한 구유에서는 계속해서 인공지능 제너레이팅을 통해 염증으로 변하는 천사의 몸이 등장하고, 둘러싼 공간과 기둥에는 조각난 천사의 몸으로 만든 금줄을 매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염증을 맞이하러 온 두 몸이 등장하면서 퍼포먼스 ‹워워워십Worworworship›(2024)을 진행해요. 몸들의 괴물적이고 본능적인 에너지와 소리에 집중해 구성한 퍼포먼스입니다.

09, 원정백화점, Worworworship

‹워워워십Worworworship› 퍼포먼스, 2024

10, 원정백화점, Worworworship

‹워워워십Worworworship› 퍼포먼스, 2024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디지털 자아는 자기 몸에 새로운 것을 붙이거나 삭제하면서 변신할 수 있는 자아인데요. 변신에 대한 욕망은 현실과 연결되어 육체와 밀착한다고 느껴요. 디지털 자아로 만날 수 있는 판타지적 이미지를 신체와 연결하려는 충동과 욕망에 대해서 생각한답니다. 스크린 안에서의 몸과 스크린 밖에서의 몸을 구성할 때,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를 구축하고, 각 캐릭터가 반대편에서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공존할 수 있도록 집중하기도 해요. 앞서 말한 ‹ઈ스킨케어신화ઉ›처럼요. 스크린 속 인물의 애교스러운 행동과 온몸의 에너지를 다 쓰는 듯한 공간 속 인물의 움직임을 함께 배치하고 싶은 면도 있고요. 이런 흐름은 ‹Pure Hymn›, 이와 엮이는 ‹워워워십›에서도 이어집니다. 스크리닝 되는 미디어의 몸들은 몽환적인 필터 속 이미지와 함께 존재하고, 퍼포먼스에 출현하는 몸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면서 신체적인 에너지에 집중해 움직입니다.

11, 원정백화점, Worworworship

‹워워워십Worworworship› 퍼포먼스, 2024

해당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 과정 중에 발생하는 충동적인 생각들, 미리 기획한 범위 밖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들여와서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크게 정해진 루틴 없이 진행하는 작업에 따라 일정이 들쑥날쑥해요. 작업을 만들고, 작업을 위한 연습에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편이에요.

12, 원정백화점, 베드트레이닝

‹베드 트레이닝BED TRAINING› 퍼포먼스, 2023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낭만과 건강이요. 몽상적인 시간을 가지면서도 작업에 필요한 행정적인 업무까지 웬만큼 잘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고 싶네요.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아주 최근에는 정신적인 부분보다 육체적인 몸의 태도가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게 돼요. 저에게는 자아 폐쇄적인 성향과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자아를 버리고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성향이 공존하기 때문에, 한동안 여느 과정들이 고생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채 양다리 걸치듯 양쪽을 왔다 갔다 하는 상태가 작업에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해요.

13, 원정백화점, 가상공동설Virtual-Hollow

‹가상공동설Virtual Hollow› MV 스틸 이미지, 2023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저는 슬럼프가 육체적으로 발현되는 편이에요. ‹Pure Hymn›(2023)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특히 몸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갑자기 촬영 2주 전부터 당시 복용하던 약의 부작용이 상당했어요. 울렁증이 계속 생겼거든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일정을 처리했어요. 어지러울 때는 쉬었다가, 괜찮을 때 작업을 하는 등 결국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받아들이며 진행했는데요. 그때 ‘작업이 망한다는 건 어떤 걸까?’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한동안 다른 일을 비우고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만 했어요. 정서적으로 평온하지 못할 때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계속 써 내려갔고요. 그리고 수면을 좀 더 오래 취하는 법도 배웠어요.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마음먹기도 했고요. 어쨌거나 결국 다시 몰입할 수 있는 걸 찾았을 때, 그래도 평온해질 거라고 믿고 있답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앞서 말한 대로, 컨디션 관리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불온한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정도가 있습니다.

14, 원정백화점, pure-hymn

‹Pure Hymn›,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토요일마다 ‘서울야생마’라는 모임을 가져요. 작업하면서 만나거나 극단에서 같이 활동한 멤버 세 명이 함께 막춤을 추려고 모였다가 어느날 정식으로 이름을 짓게 되었죠. 퍼포먼스와 연극,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함께 하고 있어요. 모임에서는 체력 훈련, 감정 훈련, 읽기, 글쓰기, 움직임 만들기, 즉흥, 마임 같은 걸 해요. 기존 멤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함께 참여해서 연습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모임은 열려있어요. 저는 작업 과정에서 최대한 건강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기를 열망해요. ‘불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요. 혼자서는 어려울 때가 많은데, 모임에서는 건강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충실한 코스튬 플레이어 같은 느낌이면 좋을 것 같네요.

15, 원정백화점, 베드-트레이닝

‹베드 트레이닝BED TRAINING› 설치 전경, 2023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생각해 보면 저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터무니없이 막연한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아주 가깝고 일상적인 곳에서 롤모델의 부재를 느꼈고, 제 몸 하나조차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그려지지 않았어요. 최근에는 가까운 미래에 사람들이 어떻게 꾸밀지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 액세서리와 코스튬을 만들고 있답니다. ‘삭제된 세계’라는 제목으로 작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 모두 인공지능으로 생성할 수 있는 세계에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제너레이터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작업이에요. 인공지능의 생성물은 기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어떤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고 인지되었는지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죠. 그래서 삭제된 세계의 작업자들은 그동안 덜 소비되고 인지된 물질을 인공지능으로 생성하는 과정을 거쳐 작업을 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의 그림 중 하나를 그려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16, 원정백화점, Costumes-for-Conceiving-Inflammation-in-Place-of-God

‹Costumes for Conceiving Inflammation in Place of God›, 2023

17, 원정백화점, Costumes-for-Conceiving-Inflammation-in-Place-of-God

‹Costumes for Conceiving Inflammation in Place of God›, 2023

Artist

원정백화점은 미디어 설치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환상성을 지닌 이미지에 대한 욕망과 해당 이미지가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한다. 최근 온라인과 온라인 밖에서의 신체 감각에 집중하고 있다. «THE CHAMBER»(2024, 캡션 서울), «끝에서 두 번째 세계»(2022, 하이트컬렉션), «올 투모로우즈 파티스»(2022, 아트스페이스3), «하팃구리 데뷔 쇼케이스»(2020, 아노브)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홀리 호니 듀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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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듀킴Dew Kim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주제를 용감하게 다룹니다. 퀴어,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사도마조히즘, 대중문화, 종교와 신비주의를 오가며 조각과 설치,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이는데요. 그의 말에 따르면, “홀리holy하고 호니horny한 것들에서 받은 영감”이 큰 원동력이 된다고 해요.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 사회에 다양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으로 다른 이와 소통하는 듀 킴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When the Water Blushed›, 2020, a prayer chair, imitation leather, handcuffs, ankle cuffs, egg topper, stained glass,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주로 입체와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듀킴Dew Kim입니다. 한때는 허니듀Huh Need-you이기도 했고, 호니허니듀HornyHoneyDew이기도 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다른 데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커가면서 자연스레 미술을 계속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도 이렇게 미술을 하고 있네요.

‹As If You Wish›, 2021, single channel film(07 17 ), 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 (좌)

‹As If You re Dreaming›, 2022, wood, acrylic, light, mixed media, iPhone(single channel video, looped) (우)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업실은 보광동에 뒀어요. 제가 보광동에서 태어났는데요. 어릴 때라 기억이 있지는 않아요. 이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로 계속 움직였는데, 지금 결국 보광동으로 돌아왔네요. 올여름 3개월 정도 해외에 체류하며 작업실을 비웠더니, 공간 곳곳에 곰팡이가 피는 바람에 현재 사용을 못 하고 있어요. 개인전을 오픈하고 나서 대청소를 벼르고 있습니다. (반지하는 너무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작업실에서 이태원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바로 ‘게이 힐Gay Hill’이 있어서 작업하다 지칠 때 놀러 나가기에는 위치가 아주 좋아요. (웃음)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홀리holy하고 호니horny한 것에서 영감을 얻어요. 예를 들어, 종교적인 장소나 SM 플레이 같은 거랄까요.

«Dear Fear»(2020, 아웃사이트 서울) 전시 전경

‹The Object›, 2020, latex sheet, stainless steel, vacuum machine, 220 x 100 x 130 cm

‹Enrapture›, 2022, wood, lenticular print, mixed media, 180 x 95 x 4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작업할 때 주변 사람과 아이디어를 자주 공유하는 편이에요. 조언을 얻으면 작업에 바로 적용하기도 하죠. 이런 과정이 제 창작 과정 전체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저에 대한 이야기, 제 경험에서 작업이 비롯되기 때문이죠. 주변 사람과 작업 중간 과정을 공유하는 일은 자신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이자 작업의 유연성을 기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봄 한남동에 자리한 갤러리 VSF에서 개인전 «I Surrender»를 열었어요. 퀴어와 기독교를 주제로 돔(Domination)과 섭(Submission)의 SM 플레이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기도하는 손 혹은 피스팅하는 손이 교회 건축이나 장식 양식을 확장하는 이미지를 입체 작업으로 구현했어요. 예전에 공부했던 금속 공예와 주얼리 디자인을 작품 제작에 적용해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I Surrender»(2023, Various Small Fire) 전시 전경

‹O Come to the Altar›, 2023, mixed media, 190 x 140 x 30 cm

‹Let the Church Say Amen›, 2023, mixed media, 170 x 80 x 10 cm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요즘은 제가 집중적으로 연구해 오던 사도마조히즘과 종교, 아이돌 문화처럼 초자아 명령이 지배하는 문화 영역을 연결해 좀 더 이야기를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서로 다른 영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상하고 기이한 것을 연결 지어 바라보고 싶어요.

‹Got the Whole World in the Hands›, 2023, mixed media with wood, metal, silicone casting (좌)


‹Shackles›, 2023, mixed media with metal and silicone, 40 x 54 x 15 cm (우)

‹In the Garden›, 2023, mixed media with silicone casting, metal and beads, 60 x 40 x 20 cm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최근 몇 년간 정말 쉬지 않고 전시와 프로젝트가 이어지면서, 작업하지 않는 때에는 대부분 머리를 비우고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혼자 있을 때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즐겨 보았고, 혼술도 자주 했죠. 친구들과도 자주 술자리를 가지다 보니 음주 능력이 늘어난 것 같아요. (웃음)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음… 생각해 보니 요즘 개인전을 준비하느라 그 이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네요. 뉴욕에서 3개월 동안 레지던시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중이 불어난 거라서 현재의 몸 상태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체중 관리가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개인전을 성료하면 정말 운동을 시작하려고 해요. 친구들은 더 이상 제 말을 믿지 않지만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일단 저지르는 타입인데요. 이런 성격이 작업에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무모한 도전 때문에 실패를 겪기도 하지만, 결국 이런 성향이 작품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고 믿습니다.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Asia Project; Looking for Another Family»(202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Tangible Error»(2020, d/p) 전시 전경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찾아오면, 제 예전 작업을 스스로 분석해 봐요. 예전 작업할 때 받았던 영감을 다시 찾아보려고 노력하죠.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완성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어디에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지금 사용하는 작업실에는 이제 빈 곳이 거의 없거든요. 작품 보관에 알맞은 컨디션을 갖춘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별도의 스토리지를 따로 마련하자니 부담이 되어서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계속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를 탐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특히 탐구 과정을 외부와 연결하고 확장하며 어떤 시각 언어로 소통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답니다.

‹Faster than a Kiss›, 2018, digital printing on polyvinyl chloride, silicone tubes, 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주변 사람들마저 지겨워서 그만하라고 말릴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해보세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살고 싶어요.

«Purple Kiss ♡»(2018, 아카이브 봄) 전시 전경

Artist

듀킴Dew Kim은 변화와 충돌의 임계점에 있는 예술, 종교, 정체성의 다양한 교차점을 탐구한다. 건국대학교에서 금속 공예를 전공하고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조소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주로 퀴어,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사도마조히즘, 대중문화, 종교와 신비주의를 주제로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한다. 개인전으로는 «I Surrender»(2023, Various Small Fires, 서울), «Apocalypse Kiss»(2021, Fragment Gallery, 모스크바), «Dear Fear»(2020,아웃사이트,서울) 등이 있으며, «Sweet Salvation»(2023, Subtitled, 뉴욕), «Fanatic Heart»(2022, Para Site, 홍콩), «펑키-펑션»(2022, 대구미술관, 대구), «노래하는 사람»(2021, 대안공간 루프, 서울),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202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뉴노멀»(2020, 오래된 집, 서울), «양각의 기술»(2019, 오퍼센트, 서울), «포스트-사이버 페미 니스트 인터내셔널»(2017, ICA, 런던) 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만약’이라는 질문으로 쌓아 올린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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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셀린박 작가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Speculative Design’을 다뤄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마주칠 사회적 이슈를 고민하고, 디자인적으로 해결점을 찾는 시도인데요. 여러 미래학자와 관련 분야의 연구진과 소통하고, 미래 사회의 이슈를 지금 여기로 가져와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마련해 왔죠. ‘무뎌진 생각을 날카롭게 만든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Data Slave›, 2021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셀린박입니다. 저는 2014년부터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이너Speculative Designer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아이러브아트센터와 셀린박갤러리 관장으로 일했고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프랑스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이후 캐나다, 미국, 덴마크, 영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석사 과정을 이수했어요. 2017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셀린박 스튜디오를 창업해 다양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작업을 수행한답니다. 국내외에서 강의와 전시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며 조수아 레이 스테픈스Joshua Ray Stephens 교수님을 만났어요. 교수님 수업이 열리는 날이면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온 교환 학생과 밤늦게까지 디자인에 대해 토론하곤 했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아름다움의 측면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북 메이킹, 포스터 디자인 작업을 하며 제가 생각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게 기억나요. 당시에는 지금 사회 구성원의 관점과 심리를 캡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뉴욕의 유니언스퀘어Union Square에서 6000명 넘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여러 조사를 거치며 작업을 진행했죠. 디자이너 혼자 진행하는 작업의 한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키운 기간이라고 봐요.

그 와중에, 보그Vogue, 니켈로디언Nickelodeon, 리핀콧Lippincott에서 인턴과 프리랜서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어느 날 직장 동료들과 디자인 이야기를 하던 중, 제 답답한 심정을 알던 사람이 앤서니 던Anthony Dunne과 피오나 라비Fiona Raby가 이끌던 영국왕립예술대학(RCA)의 ‘디자인 인터랙션’ 전공 링크를 보내줬어요. 링크를 연 순간, 제가 정확히 원하던 걸 바다 건너 영국에서 10년 가까이 진행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던 기억이 나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전시 중 «Design and the Elastic Mind»는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인기가 많았는데요. 해당 전시가 방금 말씀드린 디자이너들과 그 제자가 맡았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고 더욱더 놀랐어요. 당시 학부생이던 제게 디자인의 새로운 경지를 깨닫게 해준 전시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민 끝에 해당 전공에 지원했고, 2014년 극적으로 합격통지서를 받았어요. 디자인 인터랙션에서 공부한 덕분에 현재 제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죠. 이를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면서, 후회 없이 작업 중이에요.

‹Object Marriage› Performance, 2018, V&A Museum

‹Object Marriage› Performance, 2018, V&A Museu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압구정 아이러브아트센터에서 4년간 작업하다가 올해부터 새로운 작업 공간을 물색 중이에요. 그동안 사용한 공간은 모두 편해서 좋았어요. 때마다 마음에 드는 작업실을 자연스레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기에, 지금도 제게 맞는 공간을 기다리며 열심히 물색 중이에요. 요즘은 제가 있는 자리가 곧 작업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켜서 연구와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구 작업실 전경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주로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던 중에 아이디어를 떠올릴 경우가 많아요. 기도하기 전에는 항상 복잡한 생각의 트랩에 갇힌 기분이 종종 드는데요. 기도를 하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어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떠오르곤 해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시나리오를 구축하는 일을 진행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어떤 주제가 인상에 깊게 남으면, 전문가와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양의 연구를 찾아요. 그리고 전문가와 이메일 혹은 대면으로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죠. 제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 이게 먼 미래에 가능한 시나리오일지 타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연구 과정은 인정하면서도 현재 관점으로 바라볼 때 윤리·문화적으로 문제 된다는 판단 아래 반대하는 전문가분들이 더러 계신데요. 미래학자의 추측에 근거해 설명해 드리면 대부분 이해하시더라고요. 도리어 연구를 더욱더 후원해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갑니다. 관객 이해도를 높이려고 영화 시나리오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시나리오를 완성하면 제 작업에서 여러 번 촬영 감독으로 참여해 주신 구본영 감독님을 비롯해 영화감독 출신의 형부, 샤글리 마키제Charlie Marquiset가 큰 힘을 줘서 자주 프랑스에 갑니다. 프랑스에선 형부가 조감독으로 도와주기도 해서 촬영할 때 너무 큰 도움이 돼요.

‹The Object Right›, 2017~2018

‹The Object Right›, 2017~2018

‹The Object Right›, 2017~2018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2021년 작업한 ‹Data Slave›는 박은희, 김다예 디자이너와 리서치를 협업으로 진행했어요.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이 고안한 ‘에너지 노예(Energy Slave)’ 개념과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2020) 등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현재 데이터에 대해 집착하는 사회적 현상이 극대화되는 걸 고려하면, 미래에는 더욱 나쁘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해요. ‘만약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과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몸에 흘려보내면서까지 데이터를 얻는 상황이 미래에 펼쳐진다면?’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를 생각했죠. 사람 몸에서 전류를 내보내는 수치를 마치 전기뱀장어처럼 극대화한 상황을 떠올려 봤어요. 그리고 사람이 몸에서 전류를 에너지로 흘려보낸 만큼 데이터 은행에서 바꿔서 가상화폐처럼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세웠고요. 작업을 구상하는 중, 인체에서 전기뱀장어만큼 전류를 흘려보내는 연구를 진행한 국내 메커니컬 엔지니어 팀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저는 국내 최초로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한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Data Slave›, 2021

‹Data Slave›, 2021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데이터의 범람 속에서 난무하는 거짓 정보를 살피고, 분별하기 어려운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더욱더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연구의 범주와 시나리오 측면에서는 만족하지만, 미적인 측면에서는 불만족스러워요. 예전 작업에서 빠지지 않던 유토피아적인 영상, 즉 맑고 명랑한 색으로 가득한 이미지가 최근 작업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요. 가보지 않은 나라에 가거나, 먹어보지 않은 걸 맛보거나, 해보지 않은 체험에 도전하는 일은 아주 어려서부터 좋아했답니다. 새로움을 경험하고, 이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을 기대하며 일상을 보냅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거대한 침체(Great Stagnation)’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시대보다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해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1960년대까지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류는 자동차, 텔레비전, 전구, 시민권, 원자력 등 엄청난 기술의 발전을 경험했어요. 이런 진보는 미래에도 여전할 거라 믿었지만, 현재는 과거 기술을 조금 더 발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 같아요. 저는 정보가 과대하게 불어난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서 관련 연구를 이어가는 중이에요. 소셜 미디어로 인해 전 세계가 손바닥 안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 역시 원인의 일부 아닐까 싶습니다.

‹Object Matcher›, 2018 2019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잘 정돈한 작업실을 좋아해요. 머릿속이 번잡할 때 작업실을 청소하면 생각도 함께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이런 태도가 작업에도 묻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오면 작업에서 손을 떼고 책을 읽습니다. 2023년 1월부터 트레바리에서 클럽장을 맡아 독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나 홀로 아이디어의 블랙홀에 빠져있을 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블랙홀로부터 벗어나는데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돌아와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작업을 한 지도 어언 6년이 흘렀는데요. 여전히 한국에서는 해당 개념을 잘 받아들이기 어려운것 같아요. 중국과 일본으로 향한 대학원 동기들이 말하길, 그곳에서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 또렷한 윤곽을 보인다고 해요. 예를 들어, 중국은 베이징에 있는 중앙미술학원(CAFA) 총장이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의 영향력과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디자이너의 발전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10년 가깝게 여러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님을 초청해 강의를 열고 수업과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해요. 그런 영향 덕분에 중국은 이제 디자인에 대한 견해가 전과 같지 않고, 발전 가능성이 놀라울 만큼 성장 중인데요. 한국 디자인 교육에서도 과거의 보편적인 디자인 경계를 넘어 더욱 다양한 디자이너를 양성하길 바랍니다.

‹Object Matcher› Exhibition, 2020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요즘에는 ‘정성(精誠)’이 깃든 디자인을 만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시각적인 호기심을 끄는 것은 디자인의 역할 중 하나인데, 그 이상 깊이와 성의를 다하는 과정이 빠진 듯한 작업을 접할 때가 많아요. 물론 과거에 본 작업을 융화하거나 조금 바꾸며 새로운 작업을 하지 않고, 완벽히 새롭게 작업하는 건 저에게도 무척 어려운 일이죠. 다만 최대한 자기 색깔과 취향을 살리고, 내면의 이유와 철학을 불어넣지 않으면 디자인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작업을 완성하는 데 의의를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찾고, 자신의 다름을 타인의 강요에 맞추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또한 지금 쫓는 일의 방향이 달라지더라도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를 바라요. 모든 과정이 결국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제게도 하고 싶은 말을 남길게요. “Just Do It.”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무뎌진 생각을 날카롭게 만든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이 없는 미래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 아닐까요?

Artist

셀린박은 셀린박 스튜디오, 아이러브아트센터의 설립자이자 대표 디자이너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셀린박 갤러리, 아이러브아트센터를 운영했다. 그는 작업을 위해 한국에서 유럽으로 끊임없이 이주하며 유럽과 한국의 대학, 박물관을 포함한 여러 기관에서 전시와 강의를 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프랑스, 캐나다, 미국에서 자란 그는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디자인 인터랙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런던 V&A 뮤지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주프랑스한국문화원 등 유럽과 한국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2019년부터 제주도 프랑스영화제 단편 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책 집필 중에 있다. 

나의 구림을 버티는 용기가 필요해

Performance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황휘는 전자 음악가이자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업체eobchae’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에요.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동시대 문제를 음악과 영상으로 풀어낸답니다. 현재 그는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전 작업이 작가 개인의 이면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대중 전반에 소구할 수 있도록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싶다고 해요. “천천히 가끔이라도 괜찮으니, 언제나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황휘 작가. ‘재미있고 이상한 걸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지금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업체eobchae, ‹The Decider’s Chamber›, 2021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황휘입니다. ‘HWI’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전자음악가이자,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업체eobchae’의 일원입니다. 업체eobchae에서는 음악과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 공부를 해서일까요. 커서 당연히 예술 분야에 종사할 거라 생각했어요. 웃긴 건 미술을 전공해 공부하는 와중에도 음악가를 꿈꿨다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갈등하고 많이 헤맸는데요. 결국 둘 다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답니다. (웃음)

왓챠 #홈퀘이크 1화 ‹HWI›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해 1월부터 방음 설비를 갖춘 작업실을 임대해 쓰고 있어요. 이전까지는 고정적으로 나가는 월세가 부담스러워서 집에서 쭉 작업했는데요. 막상 작업실을 써보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서울의 주거 공간은 제가 내든 남이 내든,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그런데 작업실은 이런 문제로부터 (거의) 완벽히 해방된 곳이에요. 작업 공간이 바뀌니 지향하는 소리도 조금씩 과감하게 변하는 것 같아서 무척 만족합니다. 영상 작업은 아직 집에서 마무리하는데요. 궁극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작업이든 할 수 있는 곳에서 살기를 바라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작업하는 시점에 꽂힌 단어나 관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요. 요즘 들어서는 기독교 미술이 알게 모르게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생 신앙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미션스쿨이었고, 친가 친척들이 개신교인데요. 아마 그래서 무의식의 20% 정도를 기독교가 형성하지 않았나 싶어요. 기독교는 매력적인 부분이 많은 종교인데요. 전 특히 기독교 미술에 흥미가 가요.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도상조차도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더라고요. 여러 도상이 다양한 내러티브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기에, 암호화된 평면으로 나타나는 점이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읽을거리가 많은 시끌시끌한 그림이라서 흥미롭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이야기가 절대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금기 혹은 징벌과 관련한 터라, 신비롭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사실도 마음에 듭니다.

업체eobchae,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 2021

업체eobchae,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 2021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발표했던 작업은 대부분 업체eobchae의 작업이에요. 작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eoracle»은 저희에게 중요한 전시였어요. 그때 선보인 20여 분짜리 영상 작품 ‹eoracle›을 특히 소개하고 싶네요. 해당 작품은 Web3,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을 주제로 삼았지만, 가장 첨단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래서 중세 기독교 회화나 고대 그리스 문양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답니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이미지를 리서치하고 콘티를 짤 때 느꼈던 즐거움 덕분에 더욱 기억에 남아요.

업체eobchae «eoracle» 홍보 이미지, 디자인: 김소희,  삽화: 윤희준

«AMAEBCH» 포스터, 디자인: 필립 킴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현재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보편성’이라는 개념에 집중해서 작업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더 특별하고, 더 이상하며, 더 매니악한 존재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요. 이번 앨범에서는 저만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의 (진정한) 이면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떨치려고 해요. 돌아보면 이상한 것에 끌리는 와중에도, 남들이 울 때 함께 울고 웃을 때도 함께 웃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 보편의 감정을 찌르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완성한 작업물이 사람들의 감정을 잘 찔렀으면 좋겠네요.

업체eobchae, ‹eoracle›, 2022

업체eobchae, ‹eoracle›, 2022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eoracle›은 모션 그래픽만으로 4K 규격에 맞게 처음으로 완성한 작업이라 만족스러워요. 작업의 해상도가 높아지니까 디테일을 살릴 수 있더라고요. 배경이나 다름없는 화면 구석구석을 전경으로 끌어와 화면에서의 원근감을 최대한 없앨 수 있었죠. 다만 실제 전시장에서 영상의 컬러와 사운드가 어떻게 나타날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운 지점인데요. 디지털 작업을 하는 창작자라면 모두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며 30분 정도 책을 읽다가 그날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해요. 밤이 되면 드라마 한 편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요즘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빌리언스Billions›를 보고 있어요. 뉴욕의 억만장자 펀드 매니저와 그를 감옥에 집어넣으려 혈안이 된 검사장의 이야기인데요.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라서 추천드려 봅니다.

왓챠 #홈퀘이크 1화 ‹HWI›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금융·투자와 관련된 영화나 책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빌리언스›도 그래서 흥미롭게 보는 것 같아요. 특별히 해당 분야를 깊게 알고 있어서는 아니고요. 우리가 사는 사회가 ‘금융’이라는 시스템화한 픽션에 깊이 기대고 있다는 지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인간이 만들어 낸 허구 중 ‘금융’은 가장 힘이 세고 위험한 허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보통 새로운 사람을 만나요. 아니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루틴을 만들어 봅니다. 루틴에 따라 생활하다 보면 서서히 문제가 해결되더라고요. 저는 올해 재즈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 레슨을 받고 있어요. 연주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 평소 쓰지 않는 뇌의 특정 부분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반복적인 일상에 파묻히면 평소 사고하던 대로 뇌의 회로가 굳어져요. 그래서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매번 새로운 문제가 날아드는데, 제가 가진 해법은 새롭지 않으니까요. 초등학생이 시간표를 짜는 것처럼, 시간을 잘게 쪼개어 꾸준히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게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뇌를 자극해 주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아기의 노래› 설치 전경, 2021, 윈드밀 © 박승만

‹지도› 설치 전경, 2021, 윈드밀 © 박승만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업실이 지하에 있는데 근처에 하천이 있어요.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작업실이 잠길까 봐 늘 걱정입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느낌이라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대학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이 있는데요. 요즘 종종 그 말을 되새기고 있어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로 기억해요. “중요한 건 나의 구림을 버텨내는 인내력이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천천히, 가끔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냥 계속하면 되지 않을까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재미있고 이상한 걸 만드는 사람.

Artist

황휘는 ‘HWI’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전자음악가이자,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업체eobchae’의 일원이다. 노래하는 목소리를 재료로 삼아 컴퓨터와 이펙터 등 기계 장치를 도구로 활용해 음악을 제조한다. 2019년 데뷔 EP ‹ExtraPlex›, 2021년 업체eobchae의 사운드트랙 앨범 ‹The Decider’s Chamber›를 발표했다.

지금 꿈꾸는 미래의 미래를 품을 수 있는 미래

Performance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루킴은 설치와 퍼포먼스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키프로스, 캐나다, 한국, 브라질을 오가며 성장한 그는 여러 문화를 마주하며 느낀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폭력에 대해 예술로 저항할 수 있는지 꾸준히 질문을 던져 왔어요. 용기 있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루킴 작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뱀 (Interpermeations)› 퍼포먼스, 2022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루킴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리서치 기반으로 작업하며, 설치·소리·글·퍼포먼스를 주요한 매체로 삼아 작업하고 있어요. 프랑스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서울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독일에서 태어나 키프로스, 캐나다, 한국, 브라질을 오가며 자랐어요. 몇 년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여러 문화를 겪으며 성장했죠.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늘 그림을 그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 아닌 형태의 표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학원에서 논문 쓸 때 제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위치에 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지금까지 이어지는 작업 방향을 찾았던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데, 이 모두를 포함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감사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눈, 코, 입, 귀, 이마, 턱, 광대뼈, 눈썹›, 2021

‹눈, 코, 입, 귀, 이마, 턱, 광대뼈, 눈썹›, 2021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해는 보광동에 위치한 개인 작업실을 주로 쓰고 있어요. 특정한 공간이 필요한 매체로 작업할 땐 알맞은 공방이나 연습실을 방문하곤 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큰 변화를 만드는 사람으로부터 영감과 작업을 지속할 힘을 얻어요. 일상에서도 늘 영감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길을 걷다 ‘어?’하는 순간을 마주친다면, 그때 떠오른 생각을 파고 들어가요. 연관 지을 수 있는 글을 읽어보고, 저자의 이론을 찾아보거나 직접 대화를 청하기도 합니다. 전혀 연결성이 없다고 간주하는 지점으로 작업이 이어질 때 큰 흥미를 느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역사적 사실을 현재의 맥락과 잇는 과정을 중시해요. 리서치를 진행하며 단계별로 형태를 만들고, 완성된 형태를 경험하는 과정을 이어 나가며 최종 결과물로 확장하는 편입니다.

<눈, 코, 입, 귀, 이마, 턱, 광대뼈, 눈썹›, 2022

<눈, 코, 입, 귀, 이마, 턱, 광대뼈, 눈썹›, 2022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몇 년은 하이드로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본 물의 대화를 작업의 소재로 삼았어요. 전시 공간을 파악해 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 보고, 극적인 방법으로 비인간 매개체인 물을 활성화하며 대본을 통해 무대를 오가는 연출을 기획했습니다. 여기서 물은 서로가 겪은 일에서 느끼는 감정과 폭력의 역사, 그리고 인간이 구축한 경계를 물 자체의 특성으로 넘나들며 허물고 출구를 찾는 전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21년 ‘메디테라니아 19 젊은 예술인 비엔날레’에 첫선을 보인 후 여러 전시와 프로그램을 거치며 발전시켰어요.

2022년 탈영역우정국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뱀(Interpermeations)›도 소개하고 싶어요. 개인전 «에코톤: 탈출 역량»의 설치를 활용해 구성한 퍼포먼스인데요. 안무가 신채은과 니꼴라스 줄리안Brahim Nicolas Julian, 그리고 음악가 앤드 로즈 피콕And Rose Peacock과 협업했습니다. 이 작업은 글로리아 안잘두아Gloria Anzaldúa의 치카노 페미니즘 저서 『경계지대/국경』에서 다루는 ‘뱀’의 존재에서 출발해요. ‘뱀’과 ‘뱀(배어남)’의 관계를 담은 글이 라이브 음악, 그리고 현대무용과 탱고를 구사하는 ‘차이 나는 몸’과 만난 작업입니다.

‹뱀 (Interpermeations)› 퍼포먼스, 2022

‹뱀 (Interpermeations)› 퍼포먼스, 2022

2020년에 선보인 ‹Tax Returns/분청사기상감인화문붕명둔접›은 한국으로 이사해 진행한 첫 번째 작업이에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 입주한 후 지역적·매체적 리서치에 기반해 진행했죠. 특히 『조선왕조실록』에서 발견한 15세기 궁녀의 퀴어성에 대한 기록과 같은 시기에 나온 공납용 자기를 접목했어요. 당시 궁녀들이 서로의 몸에 문신하던 ‘벗 붕(朋)’ 자를 엉덩이를 본뜬 접시에 새기고, 공납용 자기와 동일한 기법으로 제작해 전시를 방문한 분에게 하나씩 나눠드렸어요. 시민이 낸 세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장면을 연출했죠.

‹Tax Returns/분청사기상감인화문붕명둔접›, 2021

‹Tax Returns/분청사기상감인화문붕명둔접›, 2021

2019년에 공개한 ‹유럽인들이여, 가장 성스러운 것들을 지켜내라›는 19세기 말, 러-일 전쟁의 맥락에서 만들어진 동명의 독일 석판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해당 석판화는 동양의 문화적·인종적 차이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해 유럽인이 러시아와 연대하길 요구하는 내용을 다뤘어요. ‘황색 위험(The Yellow Peril)’이라는 표제와 함께 미국과 프랑스 신문에 실렸죠. 2020년에는 팬데믹을 둘러싼 동양인 비하 목적으로 해당 문구가 쓰이기도 했는데요. 저는 이 표현을 1960년대부터 주로 사회주의적 연대와 연결된 현대 독일 속 동양인의 존재와 그에 대한 대우를 리서치로 이어 나갔어요. 19세기 석판화 원본 속 몇 가지 요소를 리서치에 접목해 전시 공간에서 번역했고,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이미지가 탈구성화될 수 있도록 설치했습니다.

‹유럽인들이여, 가장 성스러운 것들을 지켜내라(1895)›, 2019, 나무, 비단, 아크릴, 플라스틱, 컨택 마이크, 종이, 영상, 소리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최근 작업은 땅과 바다 등 두 개의 다른 생물군계가 만나는 지점으로, 더 많은 삶의 형태를 제공하는 장소인 ‘에코톤’의 개념으로 풀어냈어요. 또한 경계를 넘나드는 주체인 물을 통해 재고할 수 있는 ‘우리’라는 단위, 여기서 확대된 개념의 책임감을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tilde: 세 개의 에코톤›, 2021

‹tilde: 세 개의 에코톤›, 2021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함께 만드는 걸 좋아해요. 다양한 형식의 협업이 이전보다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시기에 따라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전시가 임박하지 않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운동을 합니다. 작업실에서 공부하거나, 글을 적으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편이에요.

‹용해전략 Strategies of Dissolution›, 2021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음악 제작 수업을 듣고 있어요. 음악 만드는 과정을 배우고, 음악을 직접 제작하는 일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최근에는 전자 음악 그룹 ‘레지스터(RE#SISTER)’에 합류했답니다. 다양한 형태의 합주와 공연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는 요즘입니다.

더불어 앞으로 열리는 전시들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죠. 아르코에서 지원금을 받아 기획자 이지언과 몇 차례의 퍼포먼스 및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퍼포먼스는 9월 초 보안여관, 10월엔 초이앤초이갤러리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11월에는 공간413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것 같아요. 여름 동안에는 작년 하이드로페미니즘 책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제주에 자리한 언러닝스페이스Unlearning Space와 협업해 전시 및 프로그램을 계획하려 합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일단 푹 쉬려고 해요. 충분한 휴식을 마친 후에는 작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거나,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활동을 합니다. 자신을 채우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다양한 책과 영화, 전시를 보러 다녀요. 우울할 때는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적고 그림을 그려봅니다.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한 방향이 더욱 뚜렷해지는 느낌이 와요.

‹당기기, 저항하기, 끊기 Tirer, Résister, Rompre›, 2019

‹당기기, 저항하기, 끊기 Tirer, Résister, Rompre›, 2019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다른 나라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요. 돈과 연료가 문제가 되지 않는 이동 수단을 개발해 친구들이 머무는 나라를 오가며 함께 식사하고 포옹하고 싶네요.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한 사람이 주변 인물에게 미치는 영향, 작업을 통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밀접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실적이지만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미 세상에는 폭력적이고 부당한 일이 넘쳐나니 여기에 저마저 부정적인 마음을 더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서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