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와 간격을 다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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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최혜진 작가는 이번 글에서 정보의 관계를 알아보고 정리하는 작업을 잘 수행하려면 평소에 어떤 훈련을 하면 좋을지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정보 사이에 존재하는 미적·심리적·논리적 거리와 간격을 다루는 거예요. 이를 기반으로 최혜진 작가가 제시하는 다양한 훈련 방법을 연습하면 ‘에디팅’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흥미진진한 에디팅의 세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신문사, 출판사, 방송국도 있는데, 왜 잡지사에 들어가셨어요?”

살면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신문과 단행본은 이미지 다룰 일이 적어요. 방송(영상)에서는 글 다룰 일이 적죠. 저는 글과 이미지를 동시에 다루는 매체를 좋아해요.”

잡지 에디터를 생업으로 선택한 2003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내 선호는 변하지 않았다. 인식의 암흑 지대 어딘가에서 갑자기 전구를 ‘탁!’ 켜는 문장을 쓰는 사람도 멋지고, 문자 언어로 도저히 번역할 수 없는 압도적 비주얼을 만드는 사람도 멋지지만, 나는 글과 이미지가 만날 때 생기는 긴장과 확장에 가장 큰 흥미를 느낀다.

‘편집으로 창작하기’를 6개월째 연재하면서 ‘편집이란 무엇인가? 에디터적 사고력이란 정확히 어떤 능력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집요하게 던지고 있다. 편집자 타이틀을 가진 여러 사람―이를테면 일간지와 주간지의 편집 기자, 문예지와 단행본 편집자, 패션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 다양한 플랫폼의 콘텐츠 에디터, 영상 편집자 등―이 하는 공통적인 행위에 관심이 간다. ‘글과 이미지 모두에 적용가능한 편집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면 편집이 가진 창조성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존재하는 재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힘을 더욱더 기를 수 있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정보를 해석하는 주체로서 에디터십을 가지고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지니고 연재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다섯 편의 글에서 전했듯 에디터는 ‘브리콜라주bricolage’ 정신으로 무장하고 재료를 모으는 사람, 정보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고 연결하는 사람, 인식의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 의도한 관점과 맥락에 맞추어 정보를 정리하는 사람, 그렇게 하기 위해 때론 생략할 용기를 내는 사람이다. 다각도에서 에디팅의 의미를 살폈지만, 여전히 뿌옇게 다가오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다. 정보의 관계를 알아보고 정리하는 작업을 잘 수행하려면 평소에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 오늘은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

지난 6개월 간 최혜진 작가가 비애티튜드에서 선보였던 글들이다.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아티클을 확인할 수 있다.

1. 에디터적 사고력이 왜 모두에게 필요하냐고요?

2. 수집으로 예술을 할 수 있다고요?

3. 어디에 주목할지 결정하셨나요?

4. 관계를 알아차리셨나요?

5. 생략이 주장이 되는 순간

파편화된 정보가 맥락 없이 난잡하게 흩어지거나 혹은 과잉하여 범람할 때 사람들은 편집의 필요성을 느낀다. 재료를 선별하고 자리를 찾아주면 혼란이 잦아들고, 의미·메시지·스토리·취향·의도 등 정보의 지향점을 읽어낼 수 있다. 다음 예를 살펴보자.

[사례 1] 

1 – 2 – 3 – 4 – 5 – (     ) – 7

제시한 숫자를 하나의 정보 단위, 즉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선택·배치한 편집의 결과물로 보면 어떨까. 대부분의 독자가 괄호에 무엇이 들어갈지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보의 간격을 일상적인 관습 안에 놓은 편집 덕분에 그 관계를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대신 지적·미적 흥미나 자극을 느끼기는 어렵다. 다른 사례는 어떨까.

[사례 2] 

16 – 06 – 68 – 88 – (     ) – 98

이번 조합은 정보 사이에 구축된 관계의 끈이 희미하다. 괄호에 들어갈 숫자를 단박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유추력을 사용해 구조를 파악하려 애쓰고, 가설을 세워서 가능성을 검증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러면서 인식이 날카롭게 벼려진다.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예시의 답을 다들 찾았는지 궁금하다. 편집자가 숨겨놓은 구조가 보이면 괄호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단어의 조합으로 예를 살펴보자.

[사례 1] 

원숭이 엉덩이 – 빨갛다 – 사과 – 맛있다 – 바나나 – 길다 – 기차 – 빠르다 – 비행기 – 높다

[사례 2] *

밀가루 뒤집어쓰기 – 퉁퉁 부은 발 – 자정 넘어 벽에 못 박기 – 기울어진 시소 – 썩은 씨앗 – 몸을 터는 젖은 개

(* 안희연 시인의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 실린 시 「소동」에 등장하는 시어들)

에디팅은 무엇과 무엇을 어떻게 붙일지 선택하는 일, 다시 말해 재료 사이에 존재하는 미적·심리적·논리적 거리와 간격을 다루는 일이다. 글만 다루는 편집자, 이미지만 다루는 편집자, 글과 이미지를 동시에 다루는 편집자 모두 정보 사이의 거리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행위를 한다.

다만 어떤 편집은 [사례 1]처럼 관습적 약속에 충실하고, 어떤 편집은 [사례 2]처럼 도전적인 초대장을 보낸다. 다수와 무난하게 소통하기 위해 정리하는 편집이 있고, 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나 심상을 의도하는 편집도 있다. 무엇이 낫다 나쁘다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목적이다. 자신이 수행하는 선택과 배치가 어떤 결과를 만들기 원하는지 정확한 목적지를 찍고, 그에 맞춰 정보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는 일. 이것이 바로 에디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다루는 에디터는 단어와 단어가 맞붙을 때 피어나는 뉘앙스를 포착해 기억에 남는 제목을 뽑거나 카피를 쓴다. 문단과 문단 사이의 흐름을 감지하고 정보의 공백을 늘이거나 줄인다. 편집장으로서 잡지 한 권을 엮을 땐 필자와 필자, 아티클과 아티클을 묶으며 생기는 주장과 메시지, 매체의 연상 이미지를 조정하기도 한다.

이미지가 재료일 때는 어떨까? ‘2022 부산비엔날레’에 초대된 두 아티스트, 프랑코 살모이라기Franco Salmoiraghi와 임충섭 그리고 ‘2019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아서 자파Arthur Jafa의 작업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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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살모이라기, ‹Tortured Metal, Broken Stone›, 1994(2022 재제작), 알루미늄 판에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60.96×106.88 cm © 최혜진

이탈리아계 미국인 프랑코 살모이라기는 1968년부터 하와이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하와이의 자연환경과 정신적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Tortured Metal, Broken Stone› 연작은 하와이에서 신성한 섬으로 여기는 카호올라베섬에서 촬영한 것이다. 카호올라베섬에는 고고학적 유적이 많이 있었지만, 1941년 미국 연방 정부가 차지해 포격 연습장으로 사용하며 황폐해졌다. 운동가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20여 년 만에 군부대가 철수하며 섬이 반환되었는데, 살모이라기는 반환 직후부터 꾸준히 섬에 들러 폭력의 흔적과 그 와중에 다시 피어나는 연약한 생명의 흔적을 병치한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 이 두 가지 사물과 풍광은 하나의 알루미늄판에 배치했는데, 의미적·조형적으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는 두 컷을 붙여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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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충섭, ‹Scape@Fossil 1-8›, 2008, 아크릴, 발견된 오브제, 혼합매체, U.V.L.S. 겔, 45.7 × 47×15.2 cm © 최혜진

1970년대 초 뉴욕으로 건너가 활동한 임충섭 작가는 매일 허드슨강변을 산책하며 주운 물건을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재료로 사용해 ‹Scape@Fossil 1-8›를 작업했다. 종이, 나뭇가지, 철제 부품, 돌멩이 등 이질적인 사물을 함께 놓아, 기존에 학습한 인식의 틀로는 설명하기 힘든 새롭고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발견된 사물로 쓴 시’라고 불릴 만한 서정적인 작업이다.

2019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의 대규모 개인전에서 만난 아서 자파는 혀를 내두를 만한 편집광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추적하기 위해 온갖 잡지와 인터넷에서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스크랩하고 일련의 순서로 배치했다. 분명 기존 맥락을 도려낸 이미지 파편의 모음인데, 스크랩 북을 넘기다 보면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서 복잡미묘한 느낌과 감정이 피어오른다.

아서 자파의 개인전이 열렸던 스톡홀름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 전시장 풍경. 전시장 한쪽 벽에는 자파가 컴퓨터에 저장한 디지털 이미지의 출력본을 빼곡히 붙여두었고, 전시장 중간 테이블 위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스크랩 북을 놓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방식이나 흑인 문화의 흔적과 관련한 이미지, 작가를 매혹한 낯선 이미지가 뒤섞인 상태였다. © 최혜진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영상 작업 ‹APEX›은 8분 22초의 러닝타임 동안 전자 사운드 박동에 맞춰 점멸하는 일련의 이미지 모둠을 보여준다. 미키 마우스, 전자 현미경으로 본 곤충, 흑인 운동선수, 흑인 음악가, 폭동 현장,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 훼손된 시체 등 언뜻 맥락 없어 보이는 이미지를 차례차례 보고 있노라면 불편함과 무서움, 기이함과 매혹 사이 모호한 지대에 머물게 된다. 자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험을 섬뜩하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장엄하면서도 비참한 것이라는 자신의 관점을 담기 위해 이미지 사이의 관계와 거리를 조정했다.

아서 자파, ‹APEX› 중 일부, 2013 © 최혜진

“모든 것은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앞의 이미지와 뒤의 이미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약 당신이 이것과 저것을 가져다가 포갠다면 그 포개진 장소가 바로 당신이라는 점입니다.”

– 아서 자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진행한 ‹APEC› 코멘터리 인터뷰 중

프랑코 살모이라기, 임충섭, 아서 자파 모두 수집한 이미지를 편집·배치하며 자기 작품을 창작했다. 그러면서 ‘잘 설명하기’와 ‘낯설게 하기’라는 목적의 스펙트럼 양극단에서 조금씩 다른 지점에 좌표를 찍었다.

에디터적 사고력을 위한 요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을 다루든 이미지를 다루든 정보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신선한 재미가 없고, 너무 멀면 소통이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사용할 재료 사이의 거리를 감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현대 그래픽 노블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워드리스 북wordless book’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 린드 워드Lynd Ward가 남긴 아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에디터의 임무를 상기한다.

“(그림과 그림의 연결로 이야기를 짓는) 이 작업의 어려움은 효과적인 구성 요소들 사이의 간격을 알아내는 것이다. 간격이 너무 크면, 독자는 받은 정보로 이야기를 연결할 수 없고 당신은 독자를 잃게 된다. 반대로 간격이 너무 좁으면, 새로운 구성 요소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고 작품은 독자의 관심을 잃게 될 것이다.”

– 린드 워드, 『대사 없는 스토리텔러 : 린드 워드의 목판화』 중

그렇다면 정보 사이 간격을 감지하는 센서는 어떻게 연마할 수 있을까? 그간 나에게 유용한 훈련이 되었던 몇 가지 놀이를 공유하려고 한다.

첫 번째 놀이는 타인의 창작물의 구성 요소를 분해하는 ‘해부하고 바꿔 끼기’다. 완성형 창작물을 다시 원천 재료 레벨로 분리한 다음 각 재료를 다른 것으로 바꿀 때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상상하는 훈련이다.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에토레 소트사스, ‹Olivetti DomusLife›, 1993 © Associazione Archivio Storico Olivetti

위 포스터는 디자인 그룹 ‘멤피스Memphis’의 멤버이자 기능주의 중심의 모더니즘 디자인에 반기를 들었던 이탈리아의 스타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가 가전·가구 기업 올리베티Olivetti를 위해 만든 가정용 PC 광고 포스터다. 이렇게 흥미를 자극하는 창작물을 만나면 “와, 예쁘다. 재밌다” 등의 감탄에서 멈추지 말고 원천 재료 레벨로 해체해 보자.

  • 표현 방식 : 종이 인형 놀이 모티브의 일러스트레이션 
  • 등장 요소 : 3인 가구 구성원, 지붕과 응접실, 가구들, 주방 가전, 가정용 PC
  • 톤 앤 무드 : 위트, 즐거움, 재미
  • 최종 메시지 : 종이 인형 놀이를 할 때처럼 자율적이고 전능한 기분을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선사하는 올리베티 제품

그런 다음 가정형 질문을 이어간다. ‘만약 종이 인형 놀이 모티브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3인 가족을 촬영한 사진을 썼다면 어땠을까? 3인 가구가 아니고 1인 가구였다면 어땠을까? 광고의 대상인 컴퓨터를 더욱더 크게 키웠다면 어땠을까? 최상단에 배치한 제품명이 ‘DomusLife’가 아니라 ‘Almighty Home’이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등등…이렇게 상상을 이어가다 보면 현재 조합을 최종본으로 결정한 창작자의 의중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자기만의 감각과 판단의 가늠자 역시 자연스럽게 조금씩 선명해진다.

두 번째 놀이는 ‘아무거나 잡화점 주인’이다. 가상의 상점 주인으로서 진열대를 어떤 조합으로 꾸릴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진열대1]

보디 워시 – 샴푸 – 컨디셔너 – 핸드 워시 – 로션

위 조합으로 물건을 모은다면 진열대 제목은 영락없이 ‘보디 & 헤어 케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래와 같은 조합으로 진열대를 꾸린다면 어떤 제목을 달아줄 수 있을까?

[진열대2]

보디 워시 – 커피 – 3M 소음방지 귀마개 – 책 『글쓰기 좋은 질문 642』 – 유칼립투스 오일

사람마다 모두 다른 제목을 상상할 수 있다. 나라면 ‘마감을 코앞에 둔 창작자를 위한 부스터’라고 지을 것 같다. [진열대1]과 [진열대2]에 있는 보디 워시는 사물 그 자체가 변하지 않았지만, 함께 놓인 사물(정보)에 의해 그 함의가 달라진다. 이렇게 관습적인 분류법에서 일부러 멀어지는 연습을 하다 보면 사물(정보)의 의미와 연상 이미지 네트워크를 다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고, 다른 사물(정보)과의 관계를 어떻게 신선하게 맺을 수 있을지 궁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놀이는 제롬 케이건Jerome Kagan의 책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에서 힌트를 얻은 ‘아무 단어 챌린지’다. 랜덤으로 두 단어를 떠올리고 그 쌍이 공유하는 특성을 적어도 한 가지 이상 찾아내는 연습이다.

“대부분의 성인은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아무 단어나 쌍으로 잡아도 그 쌍이 공유하는 특성을 적어도 한 가지는 감지할 수 있다. 좋은-나쁜(good-bad), 활발한-활기 없는(active-passive), 강한-약한(strong-weak), 남성-여성(male-female)과 같이 서로 반대되는 기본적인 단어 쌍이 겉으로는 완전히 별개로 보이는 단어의 쌍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스피린과 백신은 좋다(good). 눈보라와 운동선수는 활발하다(active). 아기와 빗방울은 약하다(weak). 바다와 여왕벌은 여성(female)이다. 마법 의식은 이런 종류의 연관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던 고대 이집트의 한 여성은 밀랍과 남자의 마음은 둘 다 부드럽게 녹아내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남자의 모양으로 빚은 밀랍 조각상을 녹였다.”

– 제롬 케이건,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중

자세한 훈련법은 이렇다. 먼저 머릿속 단어 주머니에서 아무 단어나 골라잡는다. 지금 글을 쓰는 내 머리에는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다음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단어를 적어본다. 강아지. ‘고양이-강아지’ 조합이 갖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이라고 정리했다. 만일 ‘고양이-가방’ 조합은 어떨까?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는 속성이 연상된다. ‘고양이-택시’라면 어떨까? ‘불러도 절대 안 옴’. ‘고양이-빨간색’은? ‘강인하다’. ‘고양이-몰스킨 노트’는? ‘쫙 펴진다’. ‘고양이-달력’은? ‘뭔가를 하라고 조른다’…

이 놀이 역시 단어(정보)가 품은 연상 네트워크를 활성화한다. 단어(정보)는 모양, 색, 촉감, 크기, 기능, 소리, 일반적으로 위치하는 장소, 움직임, 습성, 범주, 상징성 등의 다양한 갈고리를 지닌다. 이를 최대한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연결 가능성이 높은 재료나 개념을 유연하게 찾을 수 있다.

이런 놀이를 응용하면 브랜드를 가운데 놓고 기업이 자신의 차별점에 어떤 연상 이미지를 부여하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브랜딩의 핵심은 결국 연상 이미지 관리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리브랜딩을 한 토스Toss는 ‘공 던지듯 쉬운 금융’이라는 기존의 연상 이미지를 지우고, 3D 로고와 함께 ‘새로운 차원을 향한 비틀기(도전)’라는 새로운 연상 경로를 제안했다. ‘Toss(던지다, 뒤섞다)’라는 단어에 이전에는 멀리 있던 ‘도전’이란 연상 개념을 가까이 놓기 위해 어떤 모션 그래픽, 캠페인, 굿즈 등을 제작했는지 해부해보면 어떨까? 티파니Tiffany를 ‘청혼’과 연결한 경로, 올드 셀린느Old Céline를 ‘우아함, 절제’와 연결한 경로, 볼보Volvo를 ‘안전’과 연결한 경로, 설화수를 ‘헤리티지’와 연결한 경로, 맥심을 ‘여유와 행복’과 연결한 경로 등 브랜드 연상 네트워크 사례를 공부하면 정보 사이의 간격을 감지하는 센서를 연마할 수 있다.

자, 이렇게 곳간 구석구석까지 탈탈 털어 에디터적 사고력을 기르는 다양한 요령을 정리해 보았다. 재료 소진으로 오늘은 이만 영업을 마쳐야겠다. 다음 글을 준비하려면 ‘브리콜라주’ 정신으로 무장하고 재료를 모으러 다녀야 할 것이다. 인풋과 아웃풋, 배움과 소진을 빠르게 오가는 삶은 꽤나 피곤하지만, 날 것의 정보를 잇고 연결하는 끈을 찾으면 모든 피로를 잊고 흥분해서 노트북을 열게 된다. 이로써 밝혀진 사실 하나. 에디터는 마감을 기점으로 망각을 반복하는 이상한 동물이라는 것.

Writer

최혜진(@writer.choihyejin)은 19년 차 잡지 에디터다. «디렉토리»«1.5°C»«볼드저널» 편집장으로 일했고, 에디터십을 기반으로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우리 각자의 미술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등 일곱 권의 예술서를 썼다. 동료애 기반의 에디터 커뮤니티 ‘Society of Editors’(@society.editors)를 이끌고 있다.

생략이 주장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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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최혜진 작가는 이번 글에서 생략할 용기에 대해 말합니다. 무언가를 하겠다며 선택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서 어떤 것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은 더욱더 어렵죠. 하지만 생략은 첨가보다 용감하고 힘이 있습니다. 생략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메시지이자 주장, 초대장이자 질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략할 용기와 본질을 알아차리는 안목은 경험치와 노력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해요!

“어릴 때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에 관해 쓰고 있는데요. 고통스럽던 순간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아버지가 내내 나쁜 사람이진 않았어요. 쓰고 싶은 소재이긴 한데…혹시 제가 아버지를 나쁘게 몰아가는 건 아닐까요?”

몇 해 전, 글쓰기 특강에서 한 독자가 질문을 건넸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청중 몇몇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으로 서성인 경험이 있어 그의 의중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회고형 에세이 쓰기는 오래 방치한 서랍을 정리하는 일과 비슷하다. 잊고 살자고 결심했지만 잊히지 않는 순간, 늦은 새벽 슬그머니 어깨동무하는 어두운 감정, 공감받지 못한 욕망, 발설하고 싶었지만 삼켜야 했던 말 등이 뒤엉킨 서랍이다. 사람마다 서랍의 크기와 과적 상태는 제각각이지만, 이 점 하나는 확실하다. 깊은 곳에 있던 서랍을 열어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 다시 말해 내밀한 기억을 글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보통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서랍에서 차지하는 지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을수록 그는 내 인생에 큰 타격감을 남길 수 있는 위치에 선다. 지나가던 행인이 부당한 언사를 보일 땐 곧장 ‘미친 사람 아냐?’라고 거침없이 판결하지만, 가족이나 친구의 경우라면 온갖 모순적인 감정이 동시에 찾아온다. A이면서 B이면서 C이자 D이기도 한 덩어리. (보통 좋은 글감은 이런 상태다.) 글쓰기는 덩어리진 감정과 생각을 끈기 있게 관찰해 원소 단위로 호명하는 작업이다. 성분을 알아보고, 이름 붙이고, 맥락을 이해해야만 정리할 수 있다. 이러니 어떻게 쉬울 수 있나.

‘A이면서 B이면서 C이자 D일 수 있는데 내가 이렇게 느꼈다고 주장해도 될까?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를 배제해도 될까?’라는 고민은 사실 에세이 쓰기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보도문, 칼럼, 리뷰, 평론, 연구 보고서를 쓸 때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창작자는 글쓰기뿐 아니라 거의 모든 창작 활동의 시작점에서 맹렬히 이 질문과 대면한다. 문장의 얼개만 남겨보자.

OOO에 대해 써야겠다(만들어야겠다). ‘OOO가 A하다’고 주장할 예정인데, OOO가 A 속성만 가지지 않았다는 걸 안다. A 속성 외 다른 것은 다루지 않아도 괜찮을까?

‘편집으로 창작하기’ 지난 연재글에서는 의미의 다면성을 강조했다. 책이 서점 매대에 있을 땐 ‘상품’, 유통 창고에 있을 땐 ‘재고’, 쓰레기장에 있을 땐 ‘종이류 쓰레기’, 공공도서관에 있을 땐 ‘장서’, 작가나 독자의 품에 있을 땐 ‘작품’으로 의미가 바뀌는 것처럼, 자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아버지도 다른 맥락에서는 선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의미의 다면성을 무시하고 땅땅땅, 판결봉을 휘둘러도 될까? 다면체의 한쪽만 강조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 아닐까? 

이렇게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일단 칭찬을 던지고 싶다. 자신이 말하려는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섬세하고 종합적으로 살피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피곤해하는 시대, 복잡한 이해관계나 사연을 단순화해서 세 줄 요약으로 알려주길 기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저런 류의 망설임은 소중하다. 

하지만 창작을 하려면 어느 순간에 결국 주장으로 도약해야 한다. 어떤 정보를 취하고, 어떤 정보를 버릴지 선택하고, 그 결정을 바깥으로 드러내야 한다. 자신이 전방위에서 수집한 정보가 모두 동일하게 의미 있다고 여기면 그 무엇도 주장할 수 없다.

그간 만난 에디터 후배 중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은 버리는 일을 공통적으로 어려워했다. 마치 도토리를 양 볼 가득 욱여넣은 다람쥐 같았다. ‘이 내용은 이래서 의미 있고, 저 내용은 저래서 의미 있다’는 생각은 정보 과잉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길을 잃게 만든다. 자신이 하려는 말(주장)을 놓치는 것이다.

글쓰기, 편집, 창작은 오류를 없애는 작업이 아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음에도 한쪽 손을 들어주는 일, 입장을 밝히는 일, 오류를 품고 프레임을 치는 일이다. 프레임 바깥의 다른 가능성, 다른 해석, 다른 견해가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다. ‘저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고 자신의 주관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글쓰기이고, 편집이고, 창작이다. 오류를 지적 받는 게 두렵다면 자신의 견해가 최대한 내적 완결성과 설득력을 가지도록 의자에 엉덩이 딱 붙이고 써 내려가면 된다.

에디터는 정보를 정리하는 전문가다. 정리는 난잡한 형태의 원재료를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형태로 구분해서 보관하는 일이다. 곧 불필요한 것을 알아보고 배제할 줄 알아야 정리가 가능하다. ‘편집으로 창작하기’ 연재에서 ‘생략할 용기’에 대해 한 번은 꼭 언급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하겠다며 선택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어떤 것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은 극악무도할 정도로 어렵다. 어릴 때는 더욱 그랬다. 어떻게든 개성을 표출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니 늘 ‘무엇을 더 해야 할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급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 종종거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명확한 아이덴티티, 일관된 맥락과 서사, 날렵한 각을 지닌 이들은 ‘무엇을 하지 말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고, 자기만의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 일에서도, 삶에서도 그랬다. ‘생략’이 ‘첨가’보다 용감하고 힘이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생략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메시지이자 주장, 초대장이자 질문이 되기도 한다.

노순택, ‹검은 깃털 #CHL0401›, 2017

노순택, ‹검은 깃털 #CIF1601›, 2018 © 최혜진

노순택, ‹검은 깃털 #CIJ1001›, 2018 © 최혜진

노순택, ‹좋은 살인 #BJK2209›, 2009 © 최혜진

지난 6월 22일부터 7월 17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 노순택 작가의 개인전 «검은 깃털(Shades of Furs)»은 역광에서 찍은 사진만으로 구성한 전시였다. 사진에서 역광은 가급적 피해야 할 조건으로 여기곤 한다. 광원이 피사체 뒤에 있을 때 피사체의 디테일을 모두 지우기 때문이다. 반대로 ‘윤곽outline’은 한껏 뚜렷해진다. 어둠과 밝음의 중간 지대가 사라지며 둘이 맞닿는 경계면이 날카롭게 인식되는 것이다. 노순택 작가는 전시 작가 노트에 이렇게 밝혔다.

“사람 사진의 경우 중요한 세부는 얼굴과 표정인데, 역광 사진은 그걸 가림으로써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한다.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사진을 대체 왜 찍는단 말인가. (…) 가끔은 질문이 대답이 된다.”

노순택 작가가 던진 질문에 답하는 그림이 있다면 아마 ‹회화의 기원The Origin of Painting› 같은 작품 류가 아닐까 싶다. 장 밥티스트 레뇨Jean-Baptiste Regnault, 조제프 브누아 쉬베Joseph-Benoît Suvée 같은 18~19세기 화가가 그리스 신화를 재해석한 산물이다.

장 밥티스트 레뇨, ‹The Origin of Painting›, 1786
조제프 브누아 쉬베, ‹The invention of the art of drawing›, 1791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여성 디부타데스Dibutades는 양치기 청년과 깊이 사랑하는 사이였다. 어느 날 청년이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고, 이별하기 전날 밤 디부타데스는 벽에 비친 청년의 그림자를 따라 윤곽선을 그린다. 애절하고 애틋한 순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장면을 왜 ‘회화의 기원’이라 부르는 걸까?

만약 디부타데스가 연인의 얼굴 구석구석과 점 하나, 머리칼 하나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면 그의 전부를 기록했을 것이다. 중요도나 우선순위에 대한 고려 없이 전체를 동결하는 작업은 ‘박제’다. 박제는 보는 이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지 못한다. 하지만 디부타데스가 벽에 남긴 단출한 선은 보는 이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그가 바로 ‘창작’을 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이 『영혼의 미술관』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화가들은 무엇을 기념해야 하고 무엇을 생략해야 할지 적절하게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디부타데스는 연인의 얼굴 윤곽선을 따라 그린 결과물이 향후 자신의 마음에 불러일으킬 효과를 이해하고 있었다. 현실의 연인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의 총합이지만, 그를 마음속에 선명하게 붙잡아두기 위해서 모든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디부타데스는 편집을 했고, 곧 이는 창작이 되었다.

이렇게 생략이란 중요한 편집 기법을 창작 전략에 사용하는 작가는 아주 많다. 특히 동시대 미술은 빼기의 고수가 벌이는 인식의 전쟁터다. 원래 이번 원고는 빼기에 능숙한 아티스트 이야기로 가득 채우려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빛과 텅 빈 공간만으로 관람자에게 엄청난 몰입의 경험을 선사하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그냥 보기엔 새하얀 전시장 벽이지만 여기에 UV 라이트 손전등을 비추면 숨은 작품이 살아나는 박관택 작가도 언급하고 싶었다. 그뿐인가. 그림 한 장 그리지 않고도 아름답고 황홀한 그림책 『눈처럼 생겼어(It Looks Like Snow)』을 펴낸 안무가이자 그림책 작가 레미 찰립Remy Charlip 이야기도 길게 늘어놓고 싶었다.

제임스 터렐, ‹레이마르 파랑›의 부분, 1969 © 최혜진

제임스 터렐, ‹레이마르 파랑›의 부분, 1969 © 최혜진

박관택 개인전 «여백» 포스터 © ARKO

레미 찰립, 『눈처럼 생겼어』의 부분, 1957 © philnel.com

초고에서는 흥에 취해 줄줄 설명했지만, 탈고하며 많은 분량을 지웠다. 편집은 자신이 의도한 효과를 만들기 위해 지켜야 할 재료를 알아보고 남겨두는 작업이다. ‘편집으로 창작하기’를 연재하는 에디터 최혜진이 붙들어야 할 핵심은 이런 질문이다. “생략이 언제나 좋은 전략인가? 생략이 주장이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군더더기를 알아보고 배제하는 판단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 미술 관련 지식을 줄줄 쓰면 열심히 공부했다는 성실함을 어필할 수 있겠지만, 이는 원래 목적과 거리가 멀다. 뺄 것을 알아보는 일은 19년 차 에디터에게도 쉽지 않다.

생략이 임팩트를 만들 때 수용자는 초대장을 받는 기분을 느낀다. 궁금증과 함께 정보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작가의 세계와 자기 세계를 부지런히 오간다. 이럴 때 생략은 그 자체로 주장이 된다. 반면 모호함 뒤에 자신의 게으름을 숨기는 창작자도 있다. 자신이 무엇을 만드는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언어화하지 못해서 빈약한 이미지만 나열한다. 그들이 구사하는 생략은 가짜다.

군더더기를 알아보고 배제하는 판단력을 지니려면 먼저 자기만의 정의가 필요하다. 일을 시작한 애초의 목적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같은 재료와 정보도 A의 관점으로 보면 군더더기이고, B의 관점에서는 본질일 수 있다. ‘코끼리 코’를 하고서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나 이런 유동성 덕분에 해석과 창작의 영토가 이토록 드넓은 것이다. (그러니 너무 노여워 말자.)

정답 없는 ‘다중 시점의 망망대해’에서는 오직 정직한 자기 목소리가 나침반이다. 이 목소리는 자문자답을 통해 선명해진다. ‘네가 생각하는 OO는 뭐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 작업을 하면 너에겐 뭐가 좋아? 보는 사람들에겐 뭐가 좋아? 사람들은 왜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까?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등의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영점이 잡히고,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부여하는지 알게 되며, 군더더기를 정의하는 기준도 생긴다.

기준점을 마련하면 이제 수집한 재료를 검증한다. 더했을 때의 효과와 뺐을 때의 효과를 비교하고 기억한다. 수집한 재료가 100개라면 100번의 가능성을 구축했다가 이내 부순다. 생략할 용기와 본질을 알아차리는 눈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경험치와 노력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안목이 높아진다. 나는 이 사실에 커다란 위안을 얻는다. 에디터적 사고력에 왕도가 없다는 사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려 애쓰고 실패와 좌절의 데이터를 통해 배우는 길 말고는 별다른 요령이 없다는 사실이 좋다. 떨림과 두려움을 품고 조그마한 인식의 사각형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최선을 다해 그 안을 정돈하고 가꾸는 이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

Writer

최혜진(@writer.choihyejin)은 19년 차 잡지 에디터다. «디렉토리»«1.5°C»«볼드저널» 편집장으로 일했고, 에디터십을 기반으로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우리 각자의 미술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등 일곱 권의 예술서를 썼다. 동료애 기반의 에디터 커뮤니티 ‘Society of Editors’(@society.editors)를 이끌고 있다.

에디터적 사고력이 왜 모두에게 필요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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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최혜진 작가는 19년 차 에디터입니다. 그는 에디팅을 우리 시대의 가장 설득력 있는 창조행위라고 말하는데요. 재료가 널린 상황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키워가는 일은 모든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 자기 서사를 써 내려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편집으로 창작하기’의 중요성을 말하는 그의 첫 번째 연재 글을 읽어보세요!

선배, 종이 잡지 위상이 바닥인데, 지금이라도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까요?” 

식어 불어터진 야식을 앞에 두고 후배가 긴 한숨을 쉬었다. 눈 시리게 퍼런 형광 불빛 아래, 책상마다 위태롭게 쌓아올린 종이 더미와 일회용 커피잔이 그득했다. 사양산업에 종사한다는 불안과 무기력이 짙은 안개처럼 잡지 시장을 덮친 2012년 어느 날의 일이다. 

당시 나는 패션,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발행하는 대형 잡지사 뉴미디어팀에서 디지털라이징 실험을 하고 있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 맹위를 떨치기 전, 애플, 어도비, 카카오, 삼성전자, KT 등 대형 IT기업들이 콘텐츠 수급을 위해 잡지사 문을 두드리던 시절이었다. 올드 미디어가의 대왕대비마마를 최첨단 기기에 적응시키기 위해선 이런 질문에 답해야 했다. “잡지란 무엇인가? 잡지는 왜 이런 만듦새를 갖게 되었나? 잡지 포맷의 이점은 무엇인가?” 

유통하는 정보량이 많아 정보를 구조화해야 할 때, 주목–선택–배제–큐레이션으로 일관된 취향이나 주장을 전하고자 할 때, 이미지 정보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때 잡지는 고유한 존재 이유를 갖는다. 특히 내가 몸 담았던 패션, 라이프스타일 잡지는 아주 커다랗고 관대한 포대 같아서 그 안에 담지 못할 정보가 없었다. 세상 모든 구석에서 의미를 찾아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감독의 지난 필모그래피에서, 요즘 뜨는 골목길 맛집 목록에서, 서점 심리학 코너 책 제목에서 특정 신호를 감지하는 것이 에디터의 일이었다.

취재 대상은 매번 바뀌지만, 원리는 같았다. 먼저 난삽하게 흩어진 다량의 잡음 사이에서 유의미한 재료를 수집한다. 고품질의 정보나 스킬을 가진 전문가 혹은 취재원을 찾아낸다. 취재를 통해 모은 정보를 분류하고, 정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의미가 동시대 시장과 독자의 마음에 견고하게 자리 잡도록 맥락과 포지션을 정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에디터적 사고력을 자극할 겸 간단한 놀이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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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무작위 상태의 현상이 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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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비슷하게 생긴 것을 분류했나? 출발이 좋다! 계통을 파악해 종류를 나누는 건 에디팅의 기본이다. 자, 다음엔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 어떤 정보 관계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대답은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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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부터 1–6번

누군가는 수량을 알아보는 일에 관심이 갈 것이다. (1)
서로 다른 4가지 조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도 있다. (2)
아예 조형을 곡선형과 직선형으로 구분해 대비시킬 수도 있다. (3)
다수를 차지한 까만 점에 가장 신뢰할 만한 가치가 담겼다고 믿을 수도 있다. (4)

가장 소수인 하얀 원에 대안적 가치가 담겼다고 믿을 수도 있다. (5)
만약 당신이 까만 점과 세모의 수량 차이와 별과 하얀 원의 수량 차이가 ‘1’로 동일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면 브라보! 독특하고 훌륭한 관점이다. (6)

위의 놀이에서 경험한 것처럼 에디팅은 특정 정보에 주목하고 의미의 맥락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같은 현상도 어떤 정보 관계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에디터는 자신이 선택한 의미와 메시지가 동시대 시장과 독자 마음 속 인식의 지형도에서 어디쯤 위치할지 예측하면서 내용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시대 흐름에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기획’에 관한 이야기다. 잡지 에디터의 중요 업무인 ‘시각화’ 작업에 대해선 아직 언급도 못했다. 종이 잡지는 보통 기사마다 구성과 레이아웃이 다르다. 한 권의 잡지에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픽토그램, 표, 그래프, 지도 등 다양한 속성의 이미지가 공존하며, 텍스트 역시 헤드라인, 서브헤드, 리드, 바이라인, 보디 텍스트, 발문, 캡션으로 나뉜다. 잡지 에디터는 여러 창작자와 협업하면서 자기 지면의 총감독 역할을 한다. 모든 이미지와 텍스트 요소를 파악하고 지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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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점이 대세라고 말하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레이아웃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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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곡선형과 직선형 조형이 혼재한다는 정보를 전하는 레이아웃 예시

까만 점과 세모의 수량 차이와 별과 하얀 원의 수량 차이가 ‘1’로 동일하다는 정보를 강조하는 레이아웃 예시

이런 이유로 잡지의 읽기 경로는 책과 분명 다르다. 책은 보통 단일 저자의 목소리를 선형적으로 따라간다. 잡지는 여러 화자가 갖가지 방향에서 등장하며 독자의 주의를 빼앗는다. 서로 다른 크기의 텍스트 덩어리와 이미지가 시선 경쟁을 한다. 독자는 덩어리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눈이 가는대로 띄엄띄엄 훑다가 관심이 가는 내용을 발견하면 그제야 ‘읽기 모드’를 활성화한다. 어쩐지 익숙한 풍경 아닌가? 텍스트와 이미지의 융합 가능성을 최전선에서 실험해 온 잡지 지면은 이미 오래 전부터 멀티미디어, 터치 버튼, 하이퍼링크가 주의력 뺏기 경쟁을 하는 디지털 환경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잡지가 사양산업이라고 모두가 외치던 2012년, 이직을 고민하던 후배에게 이렇게 답했다. 

“잡지가 망해가는 게 아니고, 세상이 온통 잡지화 되는 것 같아. Editor’s Pick, 리얼 룩, 하우투 같은 잡지 문법이 슬슬 애플리케이션으로 나오잖아. 설사 종이 잡지가 사라진다 해도 정보와 맥락을 다루는 에디터라는 직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더 많아질 걸?” 

10년 전 예언은 현실이 됐다. 스트리트 리얼 룩 콘텐츠는 ‘스타일쉐어’가, 인테리어 집들이 콘텐츠는 ‘오늘의집’이, 코스메틱 품평 콘텐츠는 ‘화해’가 서비스로 만들었고, 포털 사이트는 아예 조인트 벤처로 잡지사를 차렸다. 기업과 브랜드가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경향이 심화되면서 유통 커머스, 부동산 디벨로퍼, 플랫폼 스타트업 등 미디어 산업 바깥에서도 에디터 직군을 채용하는 시대가 됐다. 

나아가 이 정도면 온 국민이 ‘준準에디터’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SNS에 올릴 사진과 영상을 고르고 편집하고, 보디 텍스트를 쓰며, 자기만의 해시태그를 정해 콘텐츠 아카이브를 한다. 수많은 데이터에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스스로 큐레이션해 상황별 추천 음악 플리를 만들고, 영감 수집 부계정을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동시대 시각 예술은 어떤가. 나는 요즘 미술관에서 ‘아, 이 작가는 대단한 편집자다’라고 감탄할 때가 많다. 구상 미술을 감상할 땐 작가의 붓질, 손놀림, 조형 기법에 감탄하지만, 동시대 미술을 볼 땐 작가의 편집자적 관점에 감탄한다. 정말 그렇다.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나 사물을 모으고, 분류하고, 합치고, 교차하고, 변형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아티스트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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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두께가 쌓이듯 자연스럽게 찢기고 덧붙여진 파리 길거리 포스터 지층을 있는 그대로 떼어 작품으로 발표한 자크 비에글레Jaques Villeglé.

누군가는 ‘잡음’이라고 여기는 사물이나 현상에서 ‘신호’를 포착하려는 태도는 에디터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자크 비에글레, 122 rue du temple›, 1968 © M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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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87 시집 『한 번의 주사위 던지기가 결코 우연을 없애진 못하리라』에 대해 들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말라르메는 기존의 관습적인 활자술 대신 다양한 크기의 서체 배치를 통해 시어를 시각화하는 시도를 했는데, 시집 출판 이후 타이포그래피, 구체시, 아트가 출현하는 데에 커다란 발판이 됐다.

벨기에 예술가 마르셀 브로에타스Marcel Broodthaers 이에 대한 오마주 아트 작업을 하면서 원문의 문장을 검정색 영역으로 표시해 추상적 이미지로 만들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 이미지, 지면의 관계를 탐색하는 것은 에디터의 주된 업무 하나다.

마르셀 브로에타스, 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 1969 © M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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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20년에 열린 «낯선 전쟁» 전에 전시되었던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설치 작업. 1910년대부터 전쟁에서 사용된 실제 폭탄 외관을 실물 크기 시트지로 재현했다. 1945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부터 1961 소련에서 만든 역대 최대 규모 수소폭탄까지, 인류 최악의 살인도구가 매끈한 금속성을 뽐내며 관람객 머리 위로 떨어진다. 하나의 관점으로 비슷한 계통의 사물이나 현상을 분류하고 시각화 하는 에디팅의 기본이다

아이 웨이웨이, Bomb, 2019 © 최혜진

프랑스 파리의 멋진 현대 미술 공간 팔레 도쿄를 창립하고,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하기도 미술비평가 니꼴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 자신의 저서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이렇게 썼다.

이제 예술적 질문들은어떤 새로운 것을 우리가 만들 있는가?’ 아니라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있는가?’이다.”

에디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설득력 있는 창조 행위다. 상품, 지식, 뉴스, 데이터, 예술 작품 모두 현기증 날 정도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보 공해(infollution)’는 갈수록 심해진다. 고려할 사항이 지나치게 많을 때 선택할 자유는 기쁨이 아니라 노동이다.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큐레이션에 취향, 호기심, 탐구심, 판단력을 외주화하는 일이 늘어가는 이유다. 재료는 널려 있는데, 자기만의 관점을 키워가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편집으로 창작하기’가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직업적 스킬 차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든 모두 자기 서사를 써내려가기 때문이다. 자기 서사란 ‘특정 사건에 주목하고 맥락을 만들어서 의미를 덧붙인 기억의 모듬’이다. 자기 서사는 자존의 뿌리다. 불행한 일을 겪고도 놀라운 회복탄력성으로 주체의 자리를 되찾고 나아가 주변에 영감을 주는 이들은 이 ‘편집권’의 놀라운 권능을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힘은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있다.  

앞으로 ‘편집으로 창작하기’ 연재에서 에디팅 행위에 숨어있는 함의와 창조성을 탐구하기 위해 동시대 예술가, 크리에이터의 작업을 두루 살필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에디팅의 첫 걸음인 ‘수집’이 어떻게 예술적 행위로 거듭나는지 온 카와라, 쟈니 레이노넨, 박혜수, 마크 디온, 아이 웨이웨이 등의 사례를 통해 밝혀보려고 한다.

Writer

최혜진(@writer.choihyejin)은 19년차 잡지 에디터다. «디렉토리»«1.5°C»«볼드저널» 편집장으로 일했고, 에디터십을 기반으로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우리 각자의 미술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등 일곱 권의 예술서를 썼다. 동료애 기반의 에디터 커뮤니티 Society of Editors(@society.editors)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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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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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허영심. 이 단어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싶다가도 불현듯 어떤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김도훈 작가는 다양한 상품들을 둘러싼 자신의 허영심에 대해 솔직한 생각과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배달시킨 마라샹궈를 빈티지 그릇에 담아 먹을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아래 아티클에서 한번 확인해보세요!

나는 허영이 많은 사람이다. 오랫동안 부정했지만, 확실히 나는 허영이 많은 사람이었다. ‘허영’이라는 단어를 직접 마주하게 된 건 한 10년 전의 어느 술자리였다. 타로를 잘 보는 양반이 동석했다. 모두가 점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점을 좋아한다. 점집도 가본 적 있다. 나의 과학적 이성은 언제나 무속 앞에서 고개를 돌리라 강조하지만, 인간은 과학적 이성에 따라서만 뭔가를 선택하는 법이 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의 문명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여하튼 나도 타로점을 봤다. 그 양반은 내가 골라낸 타로를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허영이 많은 분이시네요.” 맙소사. 나는 그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허영이 많은 사람이라고 불린 적이 없다. “예쁜 걸 참 좋아하시네요”라거나 “쇼핑 참 좋아하시네요” 같은 소리는 들은 적이 있다. 아, 생각해보니 그것도 허영이 많다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 있겠다.

처음 느낀 건 수치심이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준비해놓고 있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허영. 그 얼마나 허영스러운 단어인가. 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확신이었다. 지금 내 앞에서 타로를 무심하게 빼 들고 내 눈을 보고 있는 이 사람은 용한 사람이 틀림없다. 그런 확신이었다. 타로 한 장으로 나라는 인간의 가장 깊숙한 구석에 숨어있던 죄책감을 뼛속 깊이 읽어내 버렸다. 그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어도 괜찮다. 그는 나에게 “곧 이동수가 온다”고 했다. 다음 해 나는 직장을 옮겼다. 그는 “10년 안에 연애는 힘들겠다”고 했다. 아무렴. 그 뒤로 10년간 나에게 연애라고 부를 법한 연애는 전혀 없었다.

타로의 밤 이후로 나는 허영이라는 단어를 굳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맞다. 나는 허영이 많은 사람이다. 그건 지금 내 집만 돌아봐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내 옷장에는 아마도 당신이 상상하는 과하게 폼내는 브랜드가 모두 다 들어있을 것이다. 그깟 비닐로 만들어놓고 100만 원 넘게 받아먹는 양심도 없는 프라다 셔츠? 있다. 딱히 좋은 재질로 만든 것도 아닌데 로고 라벨을 보이는 곳에 붙여놨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아먹은 발렌시아가 코트? 딩동댕. 있다. 그냥 보통 야구 모자인데도 로고가 그려진 탓에 야구 경기에는 도저히 쓰고 나가지 못하는 셀린의 모자. 없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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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혹시 에르메스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그나마 저렴한 물건이지만, 있다. 샤넬? 아 그게 문제다. 그러나 내 화장실에 고고하게 벌꿀 빛으로 빛나고 있는 ‘샤넬 넘버 5’도 샤넬로 친다면, 역시 있다. 남자가 왜 그 향수를 쓰냐고 묻지 마시라. 젠더리스 시대란 말이다. 물론 몸에서 엄마 향이 난다는 게 딱히 장점은 아닐 수도 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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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의 허영은 빈티지 그릇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짜를 먼저 검색했다. 파리의 ‘방브Vanves’에서, 칸Cannes의 자그마한 모퉁이 시장에서, 런던의 ‘선버리 앤티크 마켓Sunbury Antiques Market’에서, 베를린 곳곳의 벼룩시장에서 그릇을 샀다. 그릇을 사게 된 이유는 집에 놀러 온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너는 식기가 다 이케아밖에 없네.” 나는 그 문장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이케아 식기는 양반이었다. 서울로 이사 오던 날 어머니가 원룸에 놔두고 간 온갖 꽃 그림이 그려진 접시들은 차마 찬장에서 꺼낼 수도 없었다. 만약 그걸 꺼냈다면 그 친구는 이케아고 나발이고 묘연하게 씩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애인이 침대에 구겨져 있는 엄마표 꽃무늬 이불을 보며 지을 법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한국 남성들은 정말이지 엄마표 이불로부터 먼저 독립해야 마땅하다.

다시 주제를 그릇으로 돌려보자. 나는 끊임없이 그릇을 샀다. 더는 둘 데가 없을 정도로 샀다. 대부분이 빈티지 그릇이다. ‘포르나세티Fornasetti’의 빈티지 찻잔 세트는 아마도 내가 구입한 가장 값나가는 그릇일 것이다. 당신이 아침에 커피를 담아 먹으며 ‘역시 핀란드 찻잔은 커피 맛이 다르네’라고 생각했을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의 찻잔들도 당연히 있다. 컬렉션이 완성되는 동안 이케아 그릇들은 하나씩 깨지며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재미있게도 아름다운 그릇을 모으기 시작하자 그릇의 진정한 용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릇은 장식품이 아니다. 그릇은 무엇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나는 깨질까 조심조심하며 진열장에 올려둔 그릇들을 보며 결심했다. ‘밑반찬을 ‘락앤락’에 담긴 그대로 테이블에 옮겨 식사하지 않겠다. 절대 뜨겁게 데운 햇반을 플라스틱 용기 채로 퍼먹지 않겠다. 배달 음식도 절대 배달 용기 채 먹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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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훈. 필자가 소장 중인 물건들을 직접 사진 찍어서 보내주었다.

결심을 아직도 지키고 사냐고? 그렇다. 지금도 나는 배달 시킨 마라샹궈를 베를린에서 깨질까 조심조심 마음을 졸이며 사 온 70년대 빈티지 그릇에 깨끗하게 다시 담아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도 나는 조만간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건 허영이다. 환경 오염을 누구보다 걱정하는 당신은 내가 플라스틱 배달 용기에 담긴 음식을 다시 그릇에 옮겨 담는 것으로 소비하게 될 수돗물과 세제의 양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옳은 지적이다. 나는 그냥 용기 채 먹어도 될 음식을 예쁜 그릇에 옮겨 담는 행위를 통해 결국 기후 변화에 해를 끼치고 있다. 어쩌겠는가. 인간의 허영이라는 것은 원래 정치적 공정함이나 사회 운동과는 약간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그릇에 대한 허영이 내 삶을 어느 정도 바꾸어 놓았다고 확신한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다. 가장 원초적인 행위일수록 우리는 작은 존엄을 지켜야 한다. 아름다우면 더 좋다. 때로는 허영스러워도 괜찮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기 위해 엊그제 뼈 없는 닭발집에서 시킨 매운 닭발을 전자레인지로 데워 포르나세티 접시에 담는 당신의 허영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허영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일상의 작은 허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우리의 삶은 아주 약간 더 풍요로워진다. 게다가 우리는 락앤락에 담긴 김치를 ‘웨지우드Wedgwood’ 접시에 옮겨 담는 행위로 김치공장 노동자에 충분한 경의를 바쳐야 할 의무도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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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도훈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이다. 영화주간지 «씨네21», 남성지 «GEEK»과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일했다.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loser21

작가 겸 번역가 겸 컨설턴트 겸 편집장… 어느 n잡러의 고백

Report

최혜진, 작가, 편집장, 디렉토리매거진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작가 겸 컨설턴트 겸 편집장 겸 인터뷰어 겸 번역가 겸 강사… 여러 직함을 달고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혜진이 여러 직업 사이에서 성공적으로 저글링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디렉토리»«1.5°C»을 창간한 ‘편집장’이기도 한 최혜진 작가가 이렇게 많은 직함을 달게 된 사연이 궁금하시다고요. 아래 에세이에서 그 사연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두어 해 전의 일이다. ‘최혜진 님, 브런치 글을 보고 업무 문의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인터뷰 콘텐츠와 커머스를 결합한 서비스를 기획 중인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렇게 만들려 한다’며 친절히 레퍼런스를 보냈는데, 출처는 모두 «디렉토리» 매거진이었다. …응? 내가 이 잡지 편집장인데? 지금 내가 만든 걸 따라하자고 메일 보낸 거야?

담당자는 인터뷰 원고를 곧잘 쓰는 ‘블로거’ 최혜진에게 연락했는데, 하필 그 최혜진이 기업의 온드 미디어 전략을 짜는 ‘에디토리얼 컨설턴트’이자 브랜드 매거진 «디렉토리»«1.5°C»을 창간한 ‘편집장’ 최혜진이었던 것이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 최혜진이 『우리 각자의미술관』 『명화가 내게 묻다』 등을 쓴 ‘예술서 작가’ 최혜진이고, 그림책 업계에서는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로 알려진 ‘인터뷰어’, ‘평론가’, ‘강사’, ‘번역가’ 최혜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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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름 탓이 크다. 둘러보라. 최혜진은 어디에나 있다. 유행하는 아기 이름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에는 서연이와 민서가, 1990년대에는 유진이와 민지가, 1980년대에는 혜진이와 지혜가 단연 사랑받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NICE평가정보 사이트에서 검색하니 2022년 3월 현재 최혜진 씨는 전국에 3713명이 있고, 혜진 씨는 10만 6177명이 있다. 성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을 무려 3700명 이상 거느린 자로서 “어? 작가님이 그 최혜진 편집장이라고요?”, “어? 디렉터님이 그 최혜진 작가라고요?”라며 놀라는 상대를 다정하게 대해줄 의무가 있다. (실제로 동명이인이라 생각한 3명의 최혜진이 결국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안이 벙벙해진 방송국 PD를 만난 적이 있다.)

물론 사건의 본질은 내가 모든 업무를 통합해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에디터로서 연마한 인지력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일한다는 면에서 업무 메커니즘은 유사하지만, 각 산업은 생각보다 분리되어 있다. 쉽게 말해 브랜딩 업계 사람을 그림책 업계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다. 같은 출판업이어도 잡지, 예술서, 그림책 시장은 각각의 질서로 돌아간다. 그 때문에 각 업계 사람들은 내 직업적 자아의 일부만 만난다. 자, 오늘은 클라이언트사 제안 발표날이니 컨설턴트 최혜진 씨가 나갑니다. 오늘은 출판사 미팅이 있는 날이니 작가 최혜진 씨, 나오세요. 프랑스어 번역이 필요하시다고요? 자, 여기 번역가 최혜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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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누워 있는 시간이 제일 긴 것으로 유명한 ISFP 남편은 여러 직업적 자아를 오가는 나를 수년간 지켜본 뒤 이렇게 결론 내렸다. “팔자다.” 지인 대부분에게 나는 늘 바쁜 사람으로 되어 있다. 엄마는 안부 통화 끝에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를 입버릇처럼 하는데, 그때마다 질문한다. ‘무리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무리인가?’

어쩌면 누군가에겐 너무나 산만하고 피곤한 삶, 혹은 지독한 성과주의자의 삶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누군가일 뿐이다. 어떤 내면의 필요와 서사에 의해 이런 삶을 택했는지, 점을 연결해 맥락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리고 맥락이 있는 희한함을 우리는 ‘독창성’이라고 부른다.

어릴 때부터 단판승부에 약했다. 이번 판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들면 몸이 굳고 머리 속이 하얘졌다. (그래서 수능을 망쳤다.) 사이드 잡은 꿈도 꾸지 않았던 20대 잡지 에디터 시절엔 늘 보수적 설계를 했다. 망치면 끝이니까. 나에게 다른 판은 없으니까.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기획이 들끓어도 함부로 시도했다 하나뿐인 판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러다 여러 우연의 축복으로 책을 출간하고, 수입에 인세 항목이 추가되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미약했지만, 해방감이 상당했다. 이제는 단판승부가 아닌 것이다!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도 배짱 있게 올인하는 타고난 선수들이 있지만, 나는 도박장에서도 비상금을 주머니 한쪽에 떼어놓을 인간이다. 단행본 저자가 된 이후에야 잡지 에디터로서 뚜렷한 주관이 담긴 아웃풋을 냈다. 그제야 제 실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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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굉장한 매체였다. 먼 곳까지 퍼져서 생각지도 못한 문을 열어주었다. 강연자, 전시 기획자, 번역가, 평론가 등 새로운 명찰을 달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두려웠다. ‘내가 이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질문은 서늘하고 날카로웠다. 새로운 판은 늘 마음을 베면서 찾아왔다.

머릿속에서 떠드는 자격 검증의 목소리를 뚫고 움직이려면 이런 질문들에 답해야 했다. ‘강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번역은 무엇을 하는 작업인가? 누군가의 작품에 평을 붙이는 행위에는 어떤 이로움이 있는가?’ 도전하려는 일의 의미를 나름의 언어로 정리하면 비벼볼 구석이 작게나마 보였다. 너무 겁이 날 땐 이렇게 생각했다. ‘나에겐 다른 판도 있잖아. 이 판은 망쳐도 괜찮아. 일단 해보자.’

‘새로운 동기 발견―두려움과 걱정―일단 지르기―전략과 실행―일말의 성취’라는 프로세스를 숱하게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판돈을 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오역을 지적당할 것에 대한 공포심을 딛고 난이도 높은 이론서 번역에 도전하거나, 클라이언트사 C레벨 회의에서 수억 원의 예산이 걸린 프리젠테이션을 하거나. 그 무렵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려운 과업 앞에서 내 안의 최혜진 씨들이 서로를 돕기 시작한 것이다.

최혜진, 작가, 편집장, 디렉토리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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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혜진 씨가 생계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베스트셀러 작가를 염탐하거나 흉내내지 않도록 컨설턴트 최혜진 씨가 돈을 번다. 컨설턴트 최혜진 씨가 클라이언트와 원만히 소통하며 설득력을 발휘하도록 인터뷰어 최혜진 씨가 경청의 기술을 연마한다. 글쓰는 최혜진 씨가 혼자만의 동굴에서 자기만족에 그치는 글을 쓰지 않도록 강사 최혜진 씨가 수많은 타인과 교감하고, 컨설턴트 최혜진 씨가 동시대 트렌드를 리서치한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논-제로섬 게임. 

좋아하는 분야에서 적당히 난이도 있는 과업에 도전하며 결과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그 일은 놀이와 닮게 된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라는 질문에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결국 “재밌고 좋으니까” 말곤 없다. 초심자일 때만 가질 수 있는 두근거림과 흥분을 좇아 새로운 직업적 자아의 명찰을 달 때, 나는 늘 아마추어였다. 아마추어amateur는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아모르amor에서 파생한 단어다. 자격이 있어서, 학위가 있어서, 잘 알아서 하는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하는 사람.

‘사람의 무지는 보물이므로 아무렇게나 써버리면 안 된다.’ 시인 폴 발레리가 한 말이다. 앞으로 내 안의 최혜진 씨들이 어떤 협업을 하고, 어떤 새로운 직업의 문 앞에서 설레 할지 지금의 나는 모른다. 모른다는 감각, 새로 배우고 알아갈 것이 남아 있다는 느낌, 무엇을 하든 세상이 규정하는 이름 하나로 간단하게 치환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좋다. 이름들 사이로 미끄러지는 생활에는 이런 기쁨이 있다.

최혜진, 작가, 편집장, 디렉토리매거진

Writer

최혜진(@writer.choihyejin)은 에디터십을 기반으로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잡지 «디렉토리»«1.5°C»«볼드저널» 편집장으로 일했고, 『우리 각자의미술관』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등 일곱 권의 예술서를 썼다. 『album[s] 그림책 : 글, 이미지, 물성으로 지은 세계』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화이트 웨딩 White Weddings

Report

ray masaki, 레이 마사키, 화이트 웨딩, 결혼식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레이 마사키 작가가 교포의 시선에서 바라본 일본의 결혼식 문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일본계 미국인으로서 사촌 등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에 참관하여 일본식 결혼 문화를 관찰했답니다. 일본의 종교에서부터 웨딩산업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확인해보세요!

순백의 드레스와 백인 목사: 일본의 기독교식 결혼

일본에서 내가 처음 참석한 결혼식은 당시 60대였던 아버지의 재혼 결혼식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도쿄로 이사한 직후였고 그전 여름에 친구 결혼식에 가려고 뉴욕의 제이크루J.Crew에서 산 날렵한 감청색 수트를 입고 갔다. 검정색 몽크스트랩 구두가 너무 꽉 끼어서 물집이 안 잡히도록 발꿈치에 반창고를 붙여야 했다. (그날 다른 사람들의 차림을 보니 나는 너무 공들여 차려 입은 축에 속했다.) 

호텔로 들어가자 직원이 나와서 신랑측 손님인지 신부측 손님인지 물었다. 당시에는 일본어로 ‘신랑’ ‘신부’라는 단어를 몰라서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더듬더듬 아버지가 결혼한다고 했더니 마침내 맞는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예식이 시작되자 나는 예식장 안의 인상적인 예배당(채플)에 앉아, 놀랍게도 대형 십자가와 라이브 성가대가 있는 광경을 마주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비록 우리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해도 아버지가 종교적인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기 삶의 이런 면을 이제껏 나에게 숨겨온 걸까 궁금했다. 식장에는 중요해 보이는 차림새의 목사가 서 있었다. 그는 중년의 백인 남성으로 일본어를 유창하게 했으며, 예식을 진행하는 동안 하객들이 기독교식 찬송가를 한 목소리로 부를 수 있도록 안내지도 나눠주었다.

약 1년 후 사촌이 결혼했을 때도 같은 식이었다. 우리는 도쿄 소피아 대학교 근처의 인상적인 성당에 갔다. 거기서는 또 다른 백인 성직자가 온통 일본인 하객만 가득한 데서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하고 있었다. 피로연에서 사촌과 신랑은 탑처럼 높은 4단 케이크를 잘랐다. 두 사람이 사진 촬영을 하려고 섰는데 케이크가 거의 천장에 닿을 듯했다. 케이크의 엄청난 크기가 믿기지 않아서 뒤쪽을 봤더니 케이크는 재사용 가능한 소품으로, 그중에서 한 부분만 자를 수 있게 금이 가 있었다. 

이 케이크처럼, 일본의 기독교식 웨딩업계의 대부분은 표면만 꾸민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 의구심대로 그렇게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며 결혼식은 모두 화려한 퍼포먼스에 불과했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본 속담이 있다. “일본인은 태어날 때는 신사를 찾고, 결혼할 때는 교회를 찾고, 죽은 후에는 절로 간다.” 간단하지만 놀랄 만큼 복잡한 구절이다. 일본인들과 종교 및 영성 간의 관계를 말해주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뜻인지 들여다볼 만하다. 

일본인들은 자신을 종교적이라 하지 않으나 대체로 꽤 영성을 추구하는 편이다. 넷플릭스의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Tidying Up with Marie Kondo›의 에피소드를 하나라도 봤다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 철학 일부는 모든 물건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집을 치우고 옷이 가득 든 이케아 가방을 버릴 때도 모든 소유물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일본의 “800만 신”이라는 신도의 믿음과 관련이 있다. 모든 것에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신도의 의식은 출생 때부터 시작된다. 출생 의식 ‘미야마이리(宮参り)’의 일부로 아기가 태어난 지 약 한 달 후에 신사로 데려가 가족들이 감사를 표하고 신생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일본인이 삶을 끝마치면, 대다수는 불교 의식을 치르며 화장된다. 불교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서기 500년 즈음 도입되었으며, 고통과 생사의 순환을 비롯하여 삶의 모든 양상을 자연스레 수용할 것을 강조하는 종교다.

화장된 유해는 보통 직계 가족이 집으로 가져가 불교식 제단인 ‘부츠단’에 모셨다가 나중에 가족묘에 안장한다. 덧없음과 무상함에 대한 인식은 일본인의 삶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봄날에 짧게 피고 지는 벚꽃을 즐기거나, 매년 조상의 넋을 기리는 일본식 불교 축제인 오봉을 기리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어릴 적에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옮겨주려고 하면 엄마에게 혼나곤 했다. 그 행동이 죽은 사람을 화장한 다음 뼈를 유골함에 옮기는 불교 의식의 일부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속담 중간에 “결혼할 때는 교회를”은 가장 최근에 추가된 것으로,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일본의 서구화 역사 및 비유일신 경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ray masaki, 레이 마사키, 화이트 웨딩, 결혼식
ray masaki, 레이 마사키, 화이트 웨딩, 결혼식

기독교식 결혼

전후 일본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은 미국과 친선을 도모하며 이익을 보았다. 두 나라 관계가 개선되자 점점 더 부유해지는 미국에 일본이 고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함으로써 번영의 기회가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기간에 물자와 제조업을 지원하며 막대한 자본이 일본으로 유입되었다. 마침내 미국과의 공생 관계가 형성되었고, 여기서 서구식 생활이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이 따랐다.

일본의 현대 생활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면이 있지만, 문화의 많은 부분이 이제는 잡다하게 섞여 있다. 그렇지만 미국식으로 변화된 일본인의 생활에 깃든 아이러니는 아마도 문화적으로 고립된 역사 때문인지 일본인들 다수가 본국을 떠나지 않고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통해 서구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내가 목격한 것은 일본의 문화적 반향실(反響室, echo chamber) 테두리 안에서 외국 문화의 낭만화된 측면들이 전용되고 과장되며, 구체적으로 일본식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변형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일본에서 인구의 약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소수 종교이지만, 일본에서 기독교식 “채플 결혼식”은 놀랄 만큼 인기가 있어 주류를 이룬다. 

1982년에는, 전후의 인기 예식 스타일이었던 신도 예식이 90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런데 1998년이 되자 신도 결혼식은 50퍼센트로 줄었다. 오늘날은 기독교식 결혼식이 신도 예식을 완전히 대체하여 주된 결혼식이 되었다. 한국이나 필리핀 같은 이웃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기독교가 일본에서 주요 종교가 된 적이 결코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인기는 가히 놀랍다. 최근까지도 일본에서 기독교는 문제시되었다. 16세기 예수회가 아시아 전역으로 진출할 때 일본으로 기독교를 확장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외국의 종교적 영향력이 일본 의식ritual의 순수성을 더럽힌다고 생각하는 막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기독교인들은 현대에 와서 억압에서 해방되었지만, 일본의 기독교인 비율이 극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

일본인들이 대다수 서양인들이 “종교적”이라고 여기는 많은 활동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인 국가로 꼽힌다. 일본 문화청 조사에 따르면 일본 인구의 대다수가 신사 참배, 오마모리 부적 구입 등 신도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종교를 가진 사람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서구식 종교 개념은 일신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 맥락에서 믿어야 할 유일신이 있으므로 복수의 신앙을 믿는다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면서 동시에 라마단에 금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종교가 일반적으로 훨씬 덜 억압적이고,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종교적 정체성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독실한 유일신 숭배 개념이 환영받지 못한다. 비록 현대 일본이 서구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근본적인 의례의 전통이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일본의 결혼은 항상 세속적인 문제였고, 결혼은 시청에서 정부 기록에 서명해야만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상대적으로 전통적이라 여겨지는 신도 의식조차도, 채플 결혼식보다 더 공식적인 종교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식은 일본에서 큰 사업이 되었고, 이러한 장소들은 신랑 신부뿐 아니라 양가 가족에게 궁극의 서양식 판타지를 소비하도록 조장되었다. 물론 이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식은 문화와 상관없이 볼 만한 장면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인들의 정말 다른 점은 종교 내에서 의도적으로 역할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 결혼식에 온 남자 주례들이 심지어는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도 아니고, 대부분 부수입을 올리려는 영어 교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보조 영어 교사가 쓴 기사를 읽어보니 그는 성직자로 임명 받은 적도 없는데 “가짜 성직자”로 450건의 결혼식에서 주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90분간 일하며 180달러 상당의 돈을 벌었으며 중개업체에서 주말마다 네다섯건의 결혼식을 그에게 배정하곤 했다.

1990년대에 «Tokyo Classified»에서 결혼식에 성직자를 고용할 때 필요한 목록을 실었다. 이상적인 후보는 일본인들이 영화에서 얻은 이미지에 부합하는 사람으로, 주로 백인 남자였다. 일본어 말하기 실력이 있으면 더 좋긴 하지만, 영문으로 쓴 커닝 페이퍼가 있어서 필수 요건은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예식의 실상 혹은 성직자가 정식 안수를 받았는지 여부 같은 종교적 진실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하객과 가족 들은 기독교 신앙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행사 전체가 퍼포먼스이기에 성직자가 “가짜”라는 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1980년대에 아버지와 결혼했던 당시의 결혼식은 어땠는지 물었다. 엄마는 자라면서 서구 문화가 미화되어 지극히 멋있고 트렌디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전후에는 일반적으로 미국적인 것이 사람을 좀 더 현대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정서가 있어서, 당시의 많은 여성들이 아름다운 흰색 웨딩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는 것에 대해 환상을 가졌다. 버블 경제 시기에는 곤돌라를 타고 성 같이 생긴 결혼식장에 도착하거나 리셉션이 진행되는 동안 옷을 몇 번씩 갈아입는 식으로 부유함을 거창하게 드러냈다는 말도 했다.

요즘도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면 젝시(Zexy, 신부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기획사) 같은 서비스 광고를 마주친다. 몇 년 전, 거대 광고기업 하쿠호도에서 진행한 젝시의 광고가 도쿄 카피라이터 클럽 최고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 광고는 요즘 커플들이 사랑을 위해 결혼한다는 것을 진보적이고 현대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시대에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는 뜻으로 대충 해석되는 이 카피는 서양식 결혼 예복을 입은 아름다운 일본인 두 사람을 배경으로 보여주며, 그 주변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기독교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자신의 부와 현대적 취향을 보여주는 계급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채플 결혼식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채플이 대다수 일본인들의 삶에서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초월적인 공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독교가 예식의 기반으로 그처럼 매력적이게 된 이유는 바로 기독교가 일본 사회에서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혼주가 신도의 전통을 올바르게 유지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완화하는 동시에, 일상 생활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인터뷰에서 채플 결혼식을 올린 커플들은 그걸 택한 이유로 “영화 같은 것”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예식장에서는 동화 같고 영화 같은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을 제공한다. 

이 일환으로, 웨딩업계는 결혼식의 결과물에서 글자 그대로 ‘영화’를 뽑아내는 것에도 중점을 둔다. 하와이에서 열린 형의 결혼식에 갔을 때 일본식 웨딩 패키지로 진행된 그 결혼식에서 우리는 마치 잘 연출된 연극의 배우들 같았다. 어디에 서야 할지, 사진 찍을 때 손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무빙 카메라에 완벽하게 잡히도록 언제 꽃을 던져야 할지 사사건건 지시를 받았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같은 반전은 우리가 어느 방에 들어가서 그날 행사가 온전히 편집된 상태로 재생되는 비디오를 시청한 일이다. 나는 속으로 마지막 작업은 그 비디오를 보고 있는 우리 뒤통수를 찍은 라이브 영상일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필름 제작의 속도와 효율을 보면 이런 예식이 얼마나 틀에 박힌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요소가 조합되어 일본인들이 낭만적으로 여기는 서양식 결혼식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식 결혼식은 유럽이나 미국인들의 예상에 부합하지 않고, 현대 일본의 문화적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설정이 일본인 커플과 그 가족에게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알겠으나, ‘종교적이면서도 비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라야만 이런 욕구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2020년 팬데믹이 세상에 내려앉기 시작할 때 시부야 구청에서 동반자와 조용히 정부 기록에 서명했다. 사정상 아직 제대로 웨딩 파티를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하게 되면 그냥 썰렁한 포트럭 파티 비슷한 것을 할 것 같다. 일본에서 하는 서양식 결혼식은 나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미국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미국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산산조각 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ray masaki, 레이 마사키, 화이트 웨딩, 결혼식

Writer

레이 마사키Ray Masaki는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 그래픽 디자이너 겸 작가이다. 파슨스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쿠퍼유니온에서 타입 디자인을 공부했다. 현재는 버몬트 미술대학 그래픽 디자인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21년 일본 디자인계의 제도화된 백인 우월주의와 서구화의 역사에 대한 책서핑보드를 들고 다니는 회사원Why is the salaryman carrying a surfboard?을 썼다.

전쟁터의 개들 Dogs of War

Report

이안 라이넘, 도쿄, 고양이, 시바견, 개, 비애티튜드, ian lynam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이언 라이넘이 개와 미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사람들이 왜 스테레오타입에 갇히곤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 에세이예요.

우리는 곁에 아무도 없어도 소리를 낸다

나무처럼 혹은 광대의 눈물처럼

요, 난 광대들이 두려워

나는 작은 마을들이 두려워

‹어둠 속의 무지개Rainbow in the Dark›, 다스 레이시스트Das Racist

Part 1: 개들

올해 들어 도쿄에서 가장 추운 날이다. 길에는 캣피플들이 나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집 바로 옆 공원 가까이에 작은 공간을 점유하고는 돌아가며 캠프를 세워 점점 그 수가 줄고 있는 도쿄 서부의 길고양이들을 먹인다.(1) 그곳에는 늘 사람들이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앉아 있는데, 나는 두어 달 동안 동네에서 고양이를 본 적이 없어 그 모습이 의아하다. 

사실 전에도 이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약 12년간 도쿄에서 지내면서 세 장소에서 살았는데, 모두 두어 블록 반경 안에 있었다. 두 번째 집은 2층짜리 주택으로 약혼녀와 하우스메이트 한 명,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윌리였다. 윌리는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는 거리 모퉁이를 돌아다니며 먹을것을 구걸했다. 그래서 갱스터 윌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내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살 때 길모퉁이에서 마약을 팔던 아주 다정한 마약상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고양이 윌리는 나를 따라 여러 번 집에 오더니 곧 나의 첫 번째 집에 들어앉았다. 윌리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윌리를 위해 뒷문을 열어두었더니 마음대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음식을 언제든지 마음껏 먹으려 하고, 내 소파에서 빈둥거렸으며, 내가 책상에서 일할 때면 내 무릎에 앉아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그래픽 디자인 프로젝트들을 차례차례 열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이전까지 오래 맺어온 관계에서 벗어난 시점이라 윌리가 함께 있어 정말 좋았다.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하자 고맙게도 윌리가 우리를 따라왔다. 윌리는 함께 사는 세 명의 인간이 모르는 사이에, 몇 해에 걸쳐 동네의 다른 여러 군데에도 드나들었다. 윌리가 집집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훨씬 나중에서야 알았다.

추위를 피해 뭉쳐 있던 사람들은 어느 날 밤 여러 집에 돌아다니며 거주하던 우리의 고양이 친구 윌리를 길고양이로 착각하고 잡으려고 했다. 그들은 우리집 마당에 상자 모양의 덫을 놓고 고양이 먹이를 미끼로 두었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내는 이상하게 달가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덫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이 재빨리 모퉁이를 돌아가는 모습도 지켜봤다. 

무단침입으로 그들을 경찰에 신고한 다음, 나와 룸메이트들은 남의 고양이를 무조건 잡아들이려 한 그 사람들에게 심한 욕을 퍼부었다. 그들은 알고 보니 보호소에 들일 수 있는 고양이는 구조하고, 들고양이 성향이 강한 고양이들은 이 도시의 공원에서 먹이를 준다는 전제하에 활동 중이었다.

그들은 윌리를 고양이 보호소에 들여야 할 고양이로 파악했다. 보호소는 근처 상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루한 표정의 불쌍한 고양이들이 창가에 옹기종기 붙어 지나가는 행인을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며 자유를 갈구했다. 

나는 골수 고양이 애호가이지만, 이런 구조 활동가들은 지나치다고 본다. 이들에 대한 내 개인적인 판단이 그러하다. 그들은 구세주 콤플렉스와 탐욕이 뒤섞인 채 자신의 생각을 그럴듯하게 포장만 한, 전형적인 동물광이다. 이 정도로 고양이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질린다. 특정 대상에 너무 몰입한 사람들 같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식의 근시안적이고 강박적인 오타쿠 기질에는 질겁하게 된다.(2)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늘 고양이들이 있었다. 어느 시점에 동생과 나는 부모님을 졸라 개를 들여왔다. 아버지가 스파키(기억이 확실치는 않다)라는 이름의 버릇없는 농장 개를 한 마리 데려온 것이다. 털에는 벌레가 득실거렸다. 내 기억에 스파키는 우리 집에 채 48시간도 머무르지 않았다. 거의 모든 방에 똥을 싸고 몇 명 되지도 않는 우리 식구 네 명 중에 셋을 물었다. 게다가 우리 고양이 두 마리를 겁에 질리게 했다. 나는 고양이들이 너무 불쌍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스파키를 데려온 곳으로 돌려보냈다.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면, 이 사건 이후 우리 라이넘 가족은 ‘고양이과’ 사람들임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초기의 라이프스타일이 사는 내내 지속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간간이 고양이들과 살았다. 최근에 마음에 드는 작은 개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개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편안하게 느낀 적이 없다. 최근 이곳 도쿄에 내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매장에서 미니어처 견종의 예쁘장한 개들을 매일 마주친다. 개들은 내 아내를 좋아하고 개 주인은 산책길에 항상 우리 매장에 들른다. 우리는 견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개들이 간식을 달라고 소소한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 녀석들은 귀엽고 어리숙한 편인데다가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다. 아마 이 개들은 동종 교배되어서 시력이나 후각이 그리 좋지 않으며,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대체로 경험한 잡종견들의 특징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 나는 미국에서 개 두 마리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둘 다 나를 개싫어했다. 한 마리는 내 목을 노렸다.

개는 내 친구 마이크가 말한 “공포”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공포는 내가 늘 느끼지만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습성이기도 하다. 많은 개 주인들이 펜스를 설치하지 않고 개 훈련에도 신경 쓰지 않았던 소도시에서 자란 덕분에 이런 공포가 생겨버렸다. 어릴적에 자전거를 타고 시골 길을 달려가면 개들이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와 쫓아왔다. 아마도 개들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본능이었을 텐데, 개와 같이 지내본 경험이 없이 대체로 가족에게 보호받으며 살아온 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경험은 내 평생을 두고 거듭 발생했다. 내가 어디에 살건 개들이 나를 노린다. 뉴욕, 오클랜드, 포틀랜드, 시애틀, 시카고.

한 3년 전 쯤,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스트 할리우드 부근을 산책하다가 핏불 두 마리 때문에 곤경에 처한 적이 있다. 나는 양쪽 다리를 두어 군데 크게 물렸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소송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개 주인들이 너무 무신경했다.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게 숨어서 자기네 마당으로 개들을 불러들이고는 집 밖으로 굳이 나와서 내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건 솔직히, 너무 무서운 경험이었다.

묘하게도,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최근에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한 남자가 지갑을 빼앗으려고 나를 코너로 몰기에 나는 거리낌없이 내가 먼저 그 남자의 지갑을 빼앗겠다고 위협했다.(3) 그런데 개들한테는 그러질 못한다.(4)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내가 폭망한 것을 안다. 내 경험들과 스테레오타입은 ‘본능’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 문제다.

용서는 문화와 사회와 자연의 중요한 부분인데 우리는 이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가장 발전된 형태는 아마도 자비일 것이다. 우리가 (아니, 내가) 스테레오타입에 얽매여 하나의 종 전체에 대한 판단을 내려버린다면, 사람의 영혼을 질식시키는 영향을 준다. 바로 여기서 증오가 자라나는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개들에 대해 품은 나의 견고한 혐오감의 원천을 없앨 수 있었다.

나는 살면서 만난 개들을 사랑하려고 애썼다. 가장 최근에 나를 공격한 개도 사랑하려고 했다. 또 다른 개와 단 둘이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절친의 개였는데 우리끼리 남게 되자 나를 보고 으르렁거렸다(작은 개라서, 닥치라고 하니 말을 들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개들은 인간, 정치, 현재의 사건들을 비유하거나 대신하는 표현이 아니다. 은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개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개를 사랑한다. 내 인생의 많은 사람들이 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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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from Talking Barnacles ⓒ Patrick Tsai

Part 2: 전쟁

당신이 어떤 스테레오타입을 가졌더라도 항상 누군가가 나타나 당신의 스테레오타입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곤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평생 동안 대놓고 미 육군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반대해왔다. 군산복합체를 무척이나 충격적인 현상으로 보았고, 특히 내 평생 미국이 세계 지정학에 참여하는 방식이 거슬렸다.

10대 후반과 20대 시절에는, 군대의 역사와 해외에서 이루어진 미국 군사 작전의 충격적인 본질을 서술한 좌파 성향의 자료를 상당히 많이 읽었다. 이것은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 20년간 살면서 만났던 미국 군인의 태도와 규범 때문에 혐오감을 품게 된 이유에서 비롯됐다. 나는 정기적으로 틀에 박힌 반 군대 정서의 욕설을 하고 현직 군인이든 퇴직 군인이든 그들과 굳이 친구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물론, 나중에 내 감정을 변화시킨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미 육군에서 근무한 퇴역 군인이다. 어떤 계급으로 군 생활을 마쳤는지는 잊어버렸다. 우리는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지만, 아버지 말로는 군 생활이 꽤 견딜 만했다고 한다. 전 여자친구의 아버지 역시 퇴직한 육군 중령이었는데, 군대에 대해 아주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다정한 사람이어서 나는 그와 여러 해에 걸쳐 군 생활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다. 서로 다른 부대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말 친절한 보통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던 퇴역 군인 학생들 덕분에 군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와 함께 일한 퇴역 군인들은 두 명을 제외하고는 성실 근면하고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과는 놀랄 만큼 강력한 대인관계와 아주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중 한 명인 잭은 사우스다코타주의 소총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이두박근에 호러물을 테마로 문신을 했다. 다정한 아버지이자 남편이기도 하다. 또 스테판은 내가 만난 사진가들 중 가장 재능 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티파니는 선원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음이 녹아내리게 할 만한 사람이고 나는 종종 그렇게 마음이 약해졌다. 제이미는 전역 후 테네시주에서 디자인을 가르친다. 티미는 장애 보상금으로 우루과이에서 편하게 산다. 후안은 수출입 사업을 하고 있다. 채드는 홋카이도 시골에서 교사로 일한다.(5) 친구들 다수가 현직 디자이너, 아티스트, 작가, 교사 들이다. “자부심”이라는 단어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친구들 모두가 자랑스럽다. 모두는 아니지만 이 중 다수가 노동자 계층 출신이다. 미군에 들어가 제대군인원호법의 혜택을 받는 것이 그들 대다수에게는 미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공포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갔다. 그리고 계층적 위상면에서 자신의 처지를 변화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동 가능성은 ‘아메리칸 드림’이 선사하는 선물이자 저주다. 물론, 이동 가능성의 큰 부분은 지리적 이동 가능성을 뜻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뉴욕주 북부에서 성장하여 열아홉 살에 내 뜻대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바라건대) 최종적으로 2005년 도쿄로 이주했다. 내가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태어난 사실에 만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이동 가능성의 개념이며, 이 개념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고무되었으므로 살면서 항상 이동 가능성을 추구해왔다.

미국인의 이동 가능성이 가지는 또 다른 큰 측면은 경제적 · 재정적 이동 가능성이다. 미국인의 삶은 가난하게 태어나 부자가 되든지, 혹은 그 반대다. 나는 가난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의미 있는 개인적 경험이 없다.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고 내가 겪은 가난은 대부분 피해갈 만했다. 우리 부모님은 노동자 계층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났다. 아버지는 육군에서 수년간 복무하고 제대군인원호법을 통해 대학 학비 지원을 받았으며, 뉴욕 주정부에서 행정직을 구하여 동생과 내게 더 나은 삶을 제공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체감한다.

내가 현재 가르치는 학생들과 과거의 학생들 중에서 대다수는 미군 복무 기간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 점은 내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겉으로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직위이더라도 미군에 입대하는 데에는 큰 위험이 뒤따른다. 

내 동생은 미군에 복무해서 죽었다. 부대에 있을 때 얻은 경험과 상처 때문에 제대 후 삶이 고통으로 피폐해졌다. 동생 이야기를 하기가 정말로 너무너무 힘들다. 동생은 개들을 무척이나 아끼는 사람이었고 다루기 힘든 어떤 떠돌이 개라도 잘 다루어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스테레오타입과 굳어진 행동 경향이 있다면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좋다. 그런 식으로 사람은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하여 더 나은 존재가 된다. 세상은 고정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그 안에서 변화 없이 고정된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셈이다.

도쿄에서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밤이다. 다시 캣피플들이 밖으로 나섰다. 나는 가까운 자판기에서 뜨거운 옥수수 수프 캔을 사서 그들에게 나눠준다.(6)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10년 전에 생긴 일에 대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설명하고 사과한다. 그들은 이해한다. 나도 이해한다. 우리는 친구가 된다. 우리는 수프를 더 마시고 윌리의 딸일지도 모르는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사실인지는 절대로 알 수 없지만.

결국, 혼자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1) 도쿄 도지사는 도쿄에서 길고양이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하고 대체로 그렇게 실행해왔다. 고이케 도지사 님, 세계에서 제일 큰 수도에서 쥐들은 이 조치에 감사하겠지만, 저는 분명 그렇지 못합니다. 당신은 도쿄에서 가장 매력적인 특징 하나를 없애버렸어요.

(2) 내가 그런 사람이다. 상대적으로 디자인 역사를 강박적일 만큼 좋아하지만, 지식에 대한 내 열망에도 한계가 있다.

(3)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 나는 싸움꾼이 아니라 화가다. 

(증거: http://westdenhaag.nl/publications/Alphabetum/Writing_Writing)

(4) 물론 못한다. 개들은 지갑도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까.

(5) 이 사람들의 진짜 이름과 직업이 아니며, 실제로 사는 지역도 아니다.

(6) 도쿄에서 눈 오는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걸어다니며 도시의 변화를 바라보고, 캔에 든 뜨거운 옥수수 수프의 다양한 맛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 일은 아무리 해도 질리지가 않다.

이안 라이넘, 도쿄, 고양이, 시바견, 개, 비애티튜드, ian lynam

Writer

이언 라이넘Ian Lynam은 그래픽 디자인, 디자인 교육, 저술 활동 등 다방면에 종사한다. 일본 템플대학교 교수이며, 버몬트 미술대학교 그래픽 디자인 석사 과정, 도쿄의 밈 디자인 스쿨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의 객원 평론가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이언 라이넘 디자인’을 운영하며, 아이덴티티, 타이포그래피, 인테리어 디자인을 아우르며 작업한다. «IDEA»(일본), «Modes of Criticism»(포르투갈/영국), «Slanted»(독일)에 기고하며, 디자인 관련 서적을 다수 출간했다.

대선 후보도 얼굴 복붙이 되나요? (Feat. 가상인간 & 딥페이크)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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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딥페이크와 페이스 스와프를 활용한 가짜 영상은 SNS을 통해 퍼지면서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가짜 뉴스를 만드는 게 가능해졌어요. SNS에서 뉴스와 영상을 볼 때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답니다. 이런 기술은 예술에도 쓰이면서 흥미진진한 장면을 구현하는데요. 저희가 사랑하는 필자 박재용 님이 쉽고 재미있는 리포트를 써주셨어요. 이번 아티클로 딥페이크와 페이스 스와프 기술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왜 도리도리 안 하는 거죠?’라는 질문에 두 손을 모으고 진지한 표정으로 등장한 AI 윤석열은 “아쉽지만 프로그램의 한계입니다. AI 윤석열에 ‘도리도리’가 구현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 AI 산업 부흥을 함께 이뤄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2022년 1월 8일자 보도, “ ‘도리도리 안 하나’ 묻자…AI윤석열 “아쉽지만 프로그램 한계””

2019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포르노 제작이나 선거 후보의 홍보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딥페이크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유명인들의 얼굴을 무단으로 도용한 딥페이크 포르노가 많은 피해를 초래했고, 정치인들이 하지 않은 말을 꾸며낸 딥페이크 영상들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정치 분열을 가속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정책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는 이미 2018년에 AI를 활용한 딥페이크 영상이 재래식 화력이 부족한 국가들이 활용할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행한 바 있다. 같은 해 4월, 코미디언이자 배우, 영화 감독이기도 한 조던 필Jordan Peele이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모습을 한 조던 필)은 백악관 집무실인 것처럼 보이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의 적들이 누구든, 언제든, 무엇이든, 실제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실제로 하지 않더라 해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우리의 적들은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도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 가망 없는 꼴통이에요.”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 제가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겠지만요.”

BuzzFeed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 “You Won’t Believe What Obama Says In This Video!”

약 1년 뒤인 2019년 6월엔 모든 사람의 개인 정보를 수집해서 미래를 통제할 거라는 마크 주커버그의 인터뷰 영상이 SNS 피드에 등장했다. 이 영상에서 주커버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직 한 사람이 수십억 명에게서 훔친 데이터와 그들의 모든 비밀, 사생활, 게다가 미래까지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 그게 누구든 데이터를 통제하는 사람이 곧 미래를 통제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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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Dada/Public Faces›(2019) © Bill Posters & Daniel Howe

영상의 정체는 빌 포스터스Bill Posters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바나비 프랜시스Banarby Francis가 다니엘 하우Daniel Howe와 함께 만든 작업 ‹거대한 다다/공공의 얼굴들Big Dada/Public Faces›(2019)이었다. 두 아티스트는 현실과 가짜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자 마르셀 뒤샹,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마크 주커버그, 킴 카다시안, 모건 프리먼, 도널드 트럼프의 외모와 목소리를 학습한 AI 알고리즘으로 여섯 개의 딥페이크 내러티브를 만들어 ‹스펙터Spectre›라는 제목의 설치 작업을 제작했다. 이 ‘현대미술 작업’은 뉴스에서 화제가 되었고, 유럽 연합 의회에서는 ‘얼굴 인식 기술 금지 법안’ 발의에 참고 자료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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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페이스 스왑

그런데 꽤나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딥페이크는 이미 우리 곁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다들 한 번쯤은 실행해보았을 ‘페이스 스왑’ 앱이 바로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실용적(?) 사례다. 아이폰 12부터 도입된 라이다LiDAR 덕분에 더 자연스러운 합성이 가능해졌는데, 사실 애플은 이미 2015년에 모션 캡처 기술 스타트업인 페이스시프트Faceshift를 인수해 다가올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유니콘 모양을 한 애니모지가 내 얼굴 표정을 따라하는 것과 러시아 정보기관이 우크라이나의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만드는 딥페이크 영상은 기본적으로 같은 기술을 공유한다. (참고로 딥페이크라는 용어는 2017년 말에 웹사이트 레딧reddit에서 처음 등장했다. “deepfakes”라는 닉네임으로 여성 연예인들의 얼굴을 포르노 영상에 합성한 내용을 공유하던 사용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달리미술관 관람객들에게 자신이 촬영한 셀피를 보여주는 디지털 살바도르 달리의 모습. 유튜브 영상 “Behind the Scenes: Dalí Lives“에서 갈무리.

한편 플로리다주에 있는 달리미술관 로비에 놓인 대형 화면에는 마치 살아 있는 인물을 촬영한 것처럼 보이는 디지털 살바도르 달리가 관객을 기다린다. 관객이 화면 가까이에 다가오면 이렇게 말한다. “다시 살아 돌아오니 정말 좋네요. 저는 제가 죽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나요?”

디지털 달리는 125개의 인터랙티브 영상 클립을 조합해 19만 512개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다. 1989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달리를 디지털로 되살려낸 홍보대행사 GS&P의 담당자는 화면 속 살바도르 달리에 대해 “이건 달리를 흉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달리”이며, “달리를 달리답게 만드는 것”을 충실히 재현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게다가 화면 속 달리는 관객들과 간단한 대화를 마친 뒤 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셀피 촬영까지 제안한다.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전용 번호로 인증 문자를 보내면 환생한 디지털 달리와 함께 찍은 셀피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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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활동 중인 가상 인간 릴 미켈라의 인스타그램 포스트. 릴 미켈라의 팔로워 수는 2022년 2월 16일을 기준으로 300만 명에 이른다.

오즈의 마법사와 딥페이크를 통해 만들어진 가짜 주커버그. 오바마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조던 필과 AI라는 이름을 붙인 가상인간 버전의 윤석열 후보. 226대의 유세 트럭에 실려 전국 방방곡곡에서 실제 후보를 대신해 유세를 펼칠 거라는 이재명 후보의 디지털 더블. 여러 기업에서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가상인간 모델들. 이들 모두를 가로지르는 공통점은 ‘진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 바꿔 말하면, 이들이 보여주는 진짜의 모습은 오직 겉모습뿐이다. 지극히 통제 가능한, 누군가가 뒤에서 설정 값을 바꾸며 조종한다는 의미에서의 진짜 모습.

딥페이크 영상 제작을 위해 누군가의 가짜 외양을 데이터셋으로 만들고 나면, 거기에는 어떤 목소리나 행동까지 마음대로 덧씌울 수 있다. 가상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모습을 한 가상인간이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주장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각 후보 캠프에서 데이터를 입력하는 사람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국민의힘 대선캠프 행사장에 등장한 가상인간에게 대체 왜 도리도리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던져진 건 우연이 아니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아마 윤석열 후보가 해야 할 말을 하는 대신 도리도리 고개를 흔드는 묘한 모습이야말로 ‘윤석열을 윤석열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딥페이크와 가상인간 같은 기술이 과연 우리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아티스트들이 만드는 미술에서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곱씹으며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아티스트는 아마 김희천이 아닐까 한다. 그가 만든 ‹썰매›(2016)를 본 사람이라면 광화문 앞을 지나는 모든 행인의 얼굴에 아티스트 자신의 얼굴을 뒤집어 씌운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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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천, ‹썰매›, 2016,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7분 27초.

나는 이 장면을 페이스 스왑을 활용해 만들어진 이미지 가운데 가장 ‘이상한 기분’을 안겨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본 것 같은 생경한 기분. 마치 가상인간 윤석열이나 디지털 이재명, 실체 없는 릴 미켈라나 다른 가상 인플루언서를 만들어 합성, 조작 중인 누군가가 피로에 찌든 얼굴로 컴퓨터 화면의 각종 수치를 조정하고 콘텐츠를 입력 중인 모습을 뜻하지 않게 마주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덕분이다.

물론 딥페이크나 가상인간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껍데기뿐인 진짜를 바라보며 느끼는 이상한 기분을 자아낼 수 있다. 영국 미술가 질리언 웨어링은 개념적 사진과 영상 작업을 펼쳐왔고, 최근에는 딥페이크를 활용해 자신이 아닌 여러 배우들에게 자신의 외모를 덧씌운 영상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업 중 이런 ‘이상한 기분’을 더 강렬하게 자아내게 하는 것은 1997년작 ‹2 Into 1›이다.

© 질리언 웨어링Gillian Wearing. ‹ 2 Into 1›, 1997,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4분 30초.

쌍둥이 형제와 그들의 어머니가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영상은 일견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아들들에 대해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어린이의 목소리로, 엄마에 대한 아이들의 목소리는 성인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내용 또한 뒤집혀 있어, 엄마에 대해 말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엄마의 입을 통해 발화된다. 완벽한 립싱크를 통해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지 않는 가상인간 버전의 윤석열 후보나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최대한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말하는 이재명 후보의 디지털 대역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이 기분은 딥페이크 기술로 유명인들을 모사해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오늘날에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려는 저널리즘 영상이나 미술 ‘작업’보다는 김희천이나 질리언 웨어링이 만든 영상을 볼 때 드는 이상한 기분에 가깝다. 휴식도 필요 없고 코로나19 감염 우려도 없으며 학교폭력과 같은 개인사로 인해 논란에 휩싸일 염려도 없는 가상인간 모델들을 볼 때 느끼는 이상한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사용자들이 입력한 수많은 대화에서 혐오의 패턴을 학습해 폐쇄되고 만 챗봇들을 생각할 때에도 그렇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마지막에 이르러, ‘커튼 뒤의 사람’ 마블 교수는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기 직전까지도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가면을 가리키며 ‘저것이 진짜 오즈의 마법사’라고 외친다. 잔뜩 화난 얼굴을 한 도로시와 일행들에게, 그는 비록 모두를 속였지만 자신에게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한다. 사실 자신은 좋은 사람이며, 그저 기술이 부족한 마법사일 뿐이라고 말한다. 진짜 같아 보이거나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들이 피드와 타임라인을 점령하고 대통령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진짜 같아 보이는 자신의 가짜 대역을 만드는 지금, 이 모든 가짜 뒤에 숨어 있는 ‘커튼 뒤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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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장치 뒤에 숨어 있다 정체가 드러난 오즈의 마법사. © Warner Bros. Entertainment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을 운영하며, 공간 ‘영콤마영(@0_comma_0)’에서 문제해결가solutions architect를 맡고 있다. 전시기획자로 일하기도 하며, 다양한 글과 말을 번역, 통역한다.

당신과 당신의 가장 예술적인 것

Report

서윤후, 에세이, 문학, 시

Photography © 진채민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문학, 특히 시를 쓰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곤 해요. 시인이라고 하면 응당 이럴 것이라고 어림잡아 짐작하기도 하죠. 2009년 등단한 시인 서윤후는 시인이 가진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왔어요. 더불어 문학적인 것에 대한 오해까지 말이죠. 작가가 찾아낸 문학적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시인에 대한 오해의 시작과 끝을 담담하게 풀어낸 아티클에 주목해보세요.

우리의 삶에 있어 문학이 옹호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의 기회를 선사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훤히 드러나 부유하는 얇은 사실 속에서, 진실의 형체를 새로이 빚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실존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의 뒤안길에서 일렁임으로 머물러 있다.

문학 작품을 읽고, 보이지 않는 작가와 작품의 의도를 파악해온 것은 우리가 문학을 학습해온 단순한 방식 중 하나였다. 사실 그 지표에는 정답이 없기에, 문학이 기꺼이 즐거울 수 있는 것도 정답이 없다는 함정 속에 놓여 있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실체가 없어 어림잡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렇게 드리우는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문학적인 것’의 양상은 다르게, 동시에 흘러간다. 독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삶을 아름답게 부유할 수 있도록 만들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계속 넘어야 할 장벽이 아닐 수 없다.

일련의 과정과 시절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음에 병이 나서 이마에 난 뾰루지를 쥐어짜며 눈물이 고이게 된다거나, 자도 자도 굴속에 있는 것만 같은 아득한 어둠을 느끼게 된다거나. 몸이 고스란히 반영하는 마음의 성정처럼 문학 또한 우리가 살아내는 것들의 통증을 언어로 일궈낸다.

문예 창작을 전공하면서, 나는 ‘문학적인 것’에 대해 자주 골몰했다. 턱을 괴고 망상에 빠지는 일처럼 그리 쉽고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문학은 책 속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것이기도 했고, 누군가 꾼 허황된 꿈 이야기에도 있었고, 처음 먹어보는 음식 위에도 흩뿌려져 있었다. 아침 만원 버스에 탄 사람들의 구겨진 표정 속에도 있었고, 분주히 제 갈 길을 가는 길고양이의 휜 꼬리에도 맺혀 있었다. 한참이나 찾았던 물건을 코트 안주머니에서 허무하게 발견했을 때에도, 오랫동안 양파를 볶아 끓인 카레 속에서도 문학은 있을 수 있었다. 내가 마주하게 된 생활의 양상 속에서, 나의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을 빗대면서 그렇게 삶을 조금씩 끄덕이게 되었다. 그게 문학적인 것이라면, 문학적인 것은 너무나도 많고 동시에 아무 데에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시인이라고 해서 이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니네요?

그런 단골 인사를 들을 때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시 쓰는 사람들은 모두 별로였으니까. 대학 시절에는, 흡연하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술이나 여자 이야기나 실컷 하면서 문학을 하는 포즈만 취하던 선배들이 싫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시인들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떠벌리거나, 시 쓰는 자기 자신을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싫었을까? 골방에서 병들며 자신의 삶을 투신하고, 원고지 위에서 자주 접질리던 하찮은 시인의 이미지가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건 신비 속에 문학이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드러나지 않고, 적당히 숨기면서 자신을 은닉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아우라를, 노스페이스 패딩처럼 매일 껴입고 다니던 선배를 가끔 생각하며, 나는 학교를 떠나와 여전히 시를 썼다. 그들 사이에선 성실함이나 착한 심성이 도리어 놀림감이 되었다. 죽음을 농담처럼 말하고 피폐한 삶이 자랑이 되는 ‘문학적인 것’에 대해 나는 일찌감치 회의감을 느꼈다. 신비 속에 갇혀 있던 문학 뒤로 은폐해온 많은 진실이 폭로되던 2016년 늦겨울엔, 나는 희미해져 가는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가만히 떠올려보기도 했다.

서윤후, 에세이, 문학, 시

그럼에도 ‘문학적인 것’에 대한 호출에 응답해오면서, 문학적인 것을 강요받아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문학적인 것을 규정하고, 그것에 맞게 자신을 변형시키며 출처가 불분명한 문학적인 것에 심취해야만 했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이십 대를 온전히, 잘 구성된 새장을 바라보며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문학적인 것의 안과 밖을 오해하는 것으로 보냈다. 사람들이 인정해줄 법한 것으로 문학적인 치장을 했을 땐 복면을 쓴 사람처럼 용감해지기도 했다. 누구나 그럴듯하게 끄덕일 수 있는 문학적인 합의를 찾는 것에 이십 대를 온전히 할애했다.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노래를 묻는다면? 나는 방금 소녀시대 노래를 들었지만, 시규어 로스를 대답해야만 할 것 같았다. 시를 쓰는 사람이기에. 그건 창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생활적인 것, 주변의 사소한 것을 작품 소재로 쓰는 것이 촌스러웠다. 서정시가 아니라 그 반대편 전위적인 곳에 나의 문법이 있다고 믿으며, 매일 안간힘을 쓰며 쥐고 있던 슬픔과 사랑은 억누르면서, 내가 돌아오지 않는 시를 썼다. 내가 아닐수록 좋았지만, 앞이 보이질 않았다. 자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시가 전부여선 안 되지만 또 그럴 수도 있겠다며 오지도 않은 미래를 낙담했다. 문학적으로 나는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처럼. 그 꾸며낸 모습을 걷어내니 그때의 내 모습도 함께 지워져 버렸다.

정형화된 틀에 갇히는 게 싫었지만, 자신 스스로를 옭아매며 가두게 된 것은 문학이 건넨 또 다른 함정이었다. 문학적인 것을 오래 생각하다가, 정작 문학적인 것에 다가서지 못하게 된 시절을 잰걸음으로 걸었을 땐 책을 읽는 일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타인의 입김 속에서 하얗게 지워져 버리는 내 모습을 되찾는 것은, 문학적인 것에 대한 관측을 그만둔 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문학적인 것은, 몸에 옮겨붙는 베드버그 같은 것이다. 불분명한 출처에서 와 선명한 통증을 남기고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려움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긁고, 흉진 상처를 서서히 잊어가는 동안에 시는 종종 찾아왔다. 이따금 홀연히 떠나가기도 했다.

문학적인 것을 꿈꾸었으나, 그 정면은 나의 오랜 뒷모습에 있었다.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는 기다림의 형태로. 문학적인 모든 것은 뒤돌아봄에서 출발했다. 갈 길이 먼 게 아니라, 돌아갈 길이 아득한 것이 문학이 준 일상이었다. 아직도 누군가가 시인이라는 단서로 나를 재단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준비된 문학적인 답변을 떠올린다. 삶도 문학적이길 바란 적은 없다. 문학이 삶이 되는 일도. 누군가의 기대를 완벽하게 저버리고 싶다는 생각. 새장을 열어두고 살고 싶다는 생각. 생각에 미쳐 도착하지 않는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물에 빠진 채로, 다시 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삶을 바쳐 발버둥 치는 한 사람의 몸짓을, 문학적인 것이라고 다 설명할 수 없기에.

Writer

시인 서윤후는 2009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소소소』,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와 산문집 『방과 후 지구』, 『햇빛세입자』,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이 있다.

@seounu

서윤후, 에세이, 문학, 시

등산에 대한 몇 가지 오해

Report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최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등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누구나 집에 등산용품 하나쯤은 구비하는 시대가 됐죠. 동시에 등산에 대한 여러 오해도 버젓이 존재한답니다. 등산애호가인 장보영 작가는 등산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균형있게 알려주는 에세이를 썼어요. 등산에 입문하는 초심자부터 산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고수에 이르기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등산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대국민 취미 등산. 등산만큼 클리셰가 많은 취미도 없다. 등산에 대한 편견이 워낙 강해서 오르기도 전부터 이미 산에 한 백 번은 간 것 같고, 오르지도 않은 산에 질려버려 가고 싶은 마음이 전부 사라지기까지 한다. 등산, 정말 그런가요? 무언가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그것에 대한 오해부터 푸는 것. 새해에 등산을 시작해보려는 이들이 등산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등산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보려 한다.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오해하지 말고 재미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비싼 장비가 좋은 장비다?

누가 등산은 돈 안 든다고 했나? 산에 다니다 보면 필요한 장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등산화, 등산복, 등산배낭을 비롯해 크고 작은 장비 일체. 뭐든지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장비마다 조금씩 쓰임과 기능이 다르기에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종류와 상관없이 그 장비가 반드시 비쌀 필요는 없다. 물론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저렴한 장비가 대체로 소재도 부실하고 잔고장도 많아 수명이 짧다. 하지만 실속 있는 중저가 등산 장비도 얼마든지 많다. 특히 등산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라면 비싼 장비 가격 앞에서 아직 진입하지도 않은 산에 대한 장벽을 높일 필요가 없다. 좋은데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장비로 입산(入山)해보자. 종로5가나 산 아래에 위치한 등산 장비점을 이용하면 좋다.

장비와 실력은 비례한다?

비싼 장비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장비발’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장비가 비싼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장비발이라는 것도 사실 뭘 알아야, 뭘 사봐야 내세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장비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비싼 장비가 마치 자신의 등산 실력인 양 으스대는 것은 아무래도 남사스럽다. 단언컨대 장비가 좋은 것과 등산 실력이 좋은 것은 별개다. 또 비싼 장비가 반드시 최고의 장비인 것도 아니다. 저렴한 장비로 산을 즐기며 등산 잘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다. 장비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연에서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캠퍼가 언제나 훨씬 더 멋있다.

배낭이 크면 등산 고수다?

상체를 훌쩍 넘어서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 등산 좀 하는구나!’ 싶어진다. 그 생각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저 배낭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분명 텐트가 들어 있고, 침낭이 들어 있고, 다양한 캠핑 장비가 들어 있겠지? 진짜 무겁겠네. 산에서 잠을 잘 정도면 정말 대단한 담력이야!’ 하지만 막상 그의 배낭을 열었을 때 접이식 침낭 매트리스만이 들어 있는, 각만 잡은 ‘뽕 배낭’일 수도 있다. 등산 고수가 아니라, 배낭 크기로 젠체하며 맨스플레인을 펼치는 진상일지도 모른다. 진짜 등산 고수란 배낭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알고 빠뜨림 없이 챙길 줄 아는 사람이다.

레깅스 입으면 관종이다?

레깅스란 신축성과 보온성이 뛰어난 타이츠 형태의 기능성 바지를 말한다. 러닝, 요가, 필라테스를 넘어 요즘은 등산할 때에도 이 레깅스를 입는다. 레깅스를 입어보면 알 것이다. 활동하는 데 있어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한지. 그런데 이 레깅스가 언젠가부터 ‘관종’(관심을 받으려는 부류의 사람, ‘관심 종자’의 줄임말)의 아이템으로 거론되고 있다. 소재의 특성상 몸에 밀착되어 선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을 타인에게 나의 신체를 자랑하기 위해 입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것이다. 물론 공동의 공간에서 누군가는 타인의 눈에 띄는 옷차림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깅스를 입는다고 무조건 관종인 것은 아니다. 공기와 바람의 저항을 줄여주고 피부와 근육을 팽팽하게 잡아주어 활동 퍼포먼스 효율을 높여주는 레깅스를, 몸의 움직임이 큰 등산을 할 때 입지 않을 이유가 없다.

트레일러닝하면 산에서 계속 뛰어야 한다?

트레일러닝이란 트레일(Trail)과 러닝(Running)의 합성어로, 산과 둘레길과 초원과 해안 등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을 달리는 산악 종목을 말한다. 트레일러닝을 한다고 하면 보통 이렇게 반응한다. “산을 어떻게 계속 뛰어? 걷기도 힘든데!” 당연한 소리! 걷기도 힘든 산을 어떻게 계속 뛰겠는가. 세계적인 트레일러너 킬리안 조넷도 경사가 강한 오르막에서는 걷는다. 그런데 빨리 걷는다. 경사가 강한 오르막에서는 축지법을 쓰듯 빨리 걷고, 경사가 약한 오르막에서는 뛰고 걷기를 반복하고, 내리막에서는 뛴다. 태어난 이래 내가 두 다리로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photography © 장보영

photography © 장보영

photography © 장보영

파타고니아 입으면 환경주의자다?

산악인 이본 쉬나드가 창립한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다고니아는 판매 중인 재킷 아래에 ‘우리의 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의류 한 벌 만드는 데만 해도 상당한 양의 자연 소재가 필요하고 배출되는 탄소량과 폐기물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고객들이 새 옷을 살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을 수선해 오랫동안 입기를 바라는 취지에서다. 과연 환경을 생각하는 선진 기업다운 면모이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의류를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환경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단순히 예쁘고 멋져서 입는 사람도 많다. 물론 친환경, 재활용 소재로 대부분의 의류를 제작하는 파타고니아 의류를 입은 사람이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 의류를 입은 사람보다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일 확률은 높다. 하지만 자연에 가깝게 사는 사람일수록 파타고니아를 입고 있지 않을 확률은 더더욱 높다. 왜냐하면 비싸니까. 이본 쉬나드가 말한 대로 그들은 정말이지 ‘그들의 옷을 사지 않는다Don’t Buy This Jacket.

노스페이스 패딩은 등골브레이커다?

한때 노스페이스 패딩이 대한민국 패딩의 대명사가 되어 중고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패딩 하나에 40~50만 원을 호가하는 까닭에 부모의 입장에서는 가히 부담스러운 유행이 아닐 수 없었고, 결국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부서트린다는 뜻으로, ‘불효’를 뜻함)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법. 전례 없던 한파가 불어닥친 어느 해, 교복처럼 유행하던 노스페이스 패딩의 자리에 ‘롱패딩’이 새롭게 들어서기 시작했고, 과거의 중고생들이 롱패딩을 입는 대학생이 되면서 자신의 노스페이스 패딩을 부모에게 물려주는(?) 현상이 벌어졌다. 아이러닉하게도 부모의 등골을 브레이크한 노스페이스 패딩이, 유행과 상관없이 따뜻하면 장땡인 부모의 등골을 따뜻하게 감싸주게 된 것이다. 최근 롱패딩을 입고 있는 중년층이 늘어난 이유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롱패딩이 한물가고 다시 짧은 패딩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등산하면 무릎 나간다?

취미가 등산이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 “아이고, 무릎 안 아파?” 물론 아프다. 평지를 달릴 때 몸에 가해지는 하중이 체중의 세 배 이상인데 무릇 산길에서야. 무릎 관절의 퇴화는 나이가 들거나, 또 젊더라도 근육이 부족하면 생길 수 있는 연골 변성의 징후이다. 그런데 등산한다고 무조건 다 무릎이 아픈 것은 아니다. 도리어 산길, 계단 등의 오르막을 많이 오르면 넓적다리 앞쪽 근육인 대퇴사두근이 발달해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이 100퍼센트 완충된다. 게다가 무릎 주변의 근육, 인대, 관절 등이 강화되어 오히려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튼튼한 무릎을 가질 수 있다.

등산은 끝나고 막걸리에 파전을 먹기 위해 가는 거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연락을 하다 보면 마무리쯤 다음과 같은 인사를 심심치 않게 건네받곤 한다. “야, 언제 산이나 같이 가자! 끝나고 막걸리에 파전 오케이?” 노! 와인에 스파게티 먹을 건데! ‘등산=막걸리’라는 공식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거지? 물론 산 아래 막걸리에 파전 파는 주점이 많긴 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산에 다녀와서 우리나라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그렇다고 등산 끝나고 모두가 막걸리에 파전을 먹는 것은 아니다. 맥주에 피자도 훌륭한 궁합이고, 사케에 꼬치도 충분히 산과 잘 어울린다. 그러니까 이제 ‘등산=막걸리’라는 공식은 머릿속에서 제발 좀 지워주길.

산은 불륜의 장소다?

앞서가는 저 중년 남녀, 수상하다. 고가 아웃도어 브랜드 의류를 갑옷처럼 입은 남자와 가부키처럼 과하게 화장한 여자. 하하호호 얼마나 즐거운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바위 구간에서 여자는 이내 주저앉았다. “못 가요! 못 가! 나 어떡해! 무서워!” 울기 직전인 여자, 이때 남자는 기지를 발휘해 구름에 달 가듯 내려가더니 여자에게 백마 탄 왕자처럼 손을 내민다. “괜찮아! 내가 아래에서 받쳐줄 거니까 떨어져도 돼!” “어머머머머, 으악, 난 몰라! 아이고! 아이고!” 여기가 에베레스트냐. 저건 십중팔구 ‘불륜’ 커플이겠군. 저 남자, 부인이 저러는 거 알고 있나? 저 여자, 집에서는 소도 때려잡을 거면서. 한심하다. 한심해. 그렇게 별꼴 다 보며 도착한 하산 지점, 갑자기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OO야. 동생 잘 보고 있지? 엄마랑 아빠 방금 산에서 내려왔어. 맛있는 거 사서 얼른 집에 갈게!” 헉. 부부였구나…… 그것도 잉꼬부부…… 그 금술 참 부럽네…… 산에서 만난 중년 남녀, 십중‘이구’는 부부일 수 있으니 너무 매의 눈으로 노려보지는 마시길.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면 꼰대다?

산에 다니는 어르신과 합석할 때 안주처럼 나오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라떼는 말이야”, 보통 과거에 당신이 젊었을 때 다녀온 유명한 산에서의 무용담이다. 그때마다 별 관심 없는 눈빛으로 유체 이탈을 시전했는데 시간이 지나 나도 제법 산에서 경륜을 쌓고 나니, 산에서 일어난 경험담을 주변에 말로든 글로든 자연스레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그때마다 ‘아……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 ‘그때 그 어르신 이야기 좀 재미있게 들어줄걸’ 하고 후회하곤 한다. 그때 그 어르신은 그저 자신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일 뿐, 꼰대는 아닌 것이다. 그게 아니면 어느새 내가 꼰대가 된 거고.

오해란 곧 오만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럴 거야’라는 추측은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한다. 산 정상은 물론. 앞으로도 산에서 무수한 경험을 할 것이고, 무수한 오해를 하겠지만, 2022년의 나는 오해 할 때 하더라도 최소한 경험해보고 오해 할 것을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Writer

장보영은 트레일러너다. 등산에 대한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책 『아무튼, 산』을 썼다.

@purn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