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작가 겸 컨설턴트 겸 편집장 겸 인터뷰어 겸 번역가 겸 강사… 여러 직함을 달고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혜진이 여러 직업 사이에서 성공적으로 저글링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디렉토리»«1.5°C»을 창간한 ‘편집장’이기도 한 최혜진 작가가 이렇게 많은 직함을 달게 된 사연이 궁금하시다고요. 아래 에세이에서 그 사연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두어 해 전의 일이다. ‘최혜진 님, 브런치 글을 보고 업무 문의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인터뷰 콘텐츠와 커머스를 결합한 서비스를 기획 중인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렇게 만들려 한다’며 친절히 레퍼런스를 보냈는데, 출처는 모두 «디렉토리» 매거진이었다. …응? 내가 이 잡지 편집장인데? 지금 내가 만든 걸 따라하자고 메일 보낸 거야?
담당자는 인터뷰 원고를 곧잘 쓰는 ‘블로거’ 최혜진에게 연락했는데, 하필 그 최혜진이 기업의 온드 미디어 전략을 짜는 ‘에디토리얼 컨설턴트’이자 브랜드 매거진 «디렉토리»«1.5°C»을 창간한 ‘편집장’ 최혜진이었던 것이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 최혜진이 『우리 각자의미술관』 『명화가 내게 묻다』 등을 쓴 ‘예술서 작가’ 최혜진이고, 그림책 업계에서는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로 알려진 ‘인터뷰어’, ‘평론가’, ‘강사’, ‘번역가’ 최혜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단 이름 탓이 크다. 둘러보라. 최혜진은 어디에나 있다. 유행하는 아기 이름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에는 서연이와 민서가, 1990년대에는 유진이와 민지가, 1980년대에는 혜진이와 지혜가 단연 사랑받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NICE평가정보 사이트에서 검색하니 2022년 3월 현재 최혜진 씨는 전국에 3713명이 있고, 혜진 씨는 10만 6177명이 있다. 성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을 무려 3700명 이상 거느린 자로서 “어? 작가님이 그 최혜진 편집장이라고요?”, “어? 디렉터님이 그 최혜진 작가라고요?”라며 놀라는 상대를 다정하게 대해줄 의무가 있다. (실제로 동명이인이라 생각한 3명의 최혜진이 결국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안이 벙벙해진 방송국 PD를 만난 적이 있다.)
물론 사건의 본질은 내가 모든 업무를 통합해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에디터로서 연마한 인지력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일한다는 면에서 업무 메커니즘은 유사하지만, 각 산업은 생각보다 분리되어 있다. 쉽게 말해 브랜딩 업계 사람을 그림책 업계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다. 같은 출판업이어도 잡지, 예술서, 그림책 시장은 각각의 질서로 돌아간다. 그 때문에 각 업계 사람들은 내 직업적 자아의 일부만 만난다. 자, 오늘은 클라이언트사 제안 발표날이니 컨설턴트 최혜진 씨가 나갑니다. 오늘은 출판사 미팅이 있는 날이니 작가 최혜진 씨, 나오세요. 프랑스어 번역이 필요하시다고요? 자, 여기 번역가 최혜진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누워 있는 시간이 제일 긴 것으로 유명한 ISFP 남편은 여러 직업적 자아를 오가는 나를 수년간 지켜본 뒤 이렇게 결론 내렸다. “팔자다.” 지인 대부분에게 나는 늘 바쁜 사람으로 되어 있다. 엄마는 안부 통화 끝에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를 입버릇처럼 하는데, 그때마다 질문한다. ‘무리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무리인가?’
어쩌면 누군가에겐 너무나 산만하고 피곤한 삶, 혹은 지독한 성과주의자의 삶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누군가일 뿐이다. 어떤 내면의 필요와 서사에 의해 이런 삶을 택했는지, 점을 연결해 맥락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리고 맥락이 있는 희한함을 우리는 ‘독창성’이라고 부른다.
어릴 때부터 단판승부에 약했다. 이번 판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들면 몸이 굳고 머리 속이 하얘졌다. (그래서 수능을 망쳤다.) 사이드 잡은 꿈도 꾸지 않았던 20대 잡지 에디터 시절엔 늘 보수적 설계를 했다. 망치면 끝이니까. 나에게 다른 판은 없으니까.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기획이 들끓어도 함부로 시도했다 하나뿐인 판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러다 여러 우연의 축복으로 책을 출간하고, 수입에 인세 항목이 추가되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미약했지만, 해방감이 상당했다. 이제는 단판승부가 아닌 것이다!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도 배짱 있게 올인하는 타고난 선수들이 있지만, 나는 도박장에서도 비상금을 주머니 한쪽에 떼어놓을 인간이다. 단행본 저자가 된 이후에야 잡지 에디터로서 뚜렷한 주관이 담긴 아웃풋을 냈다. 그제야 제 실력을 발휘했다.
책은 굉장한 매체였다. 먼 곳까지 퍼져서 생각지도 못한 문을 열어주었다. 강연자, 전시 기획자, 번역가, 평론가 등 새로운 명찰을 달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두려웠다. ‘내가 이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질문은 서늘하고 날카로웠다. 새로운 판은 늘 마음을 베면서 찾아왔다.
머릿속에서 떠드는 자격 검증의 목소리를 뚫고 움직이려면 이런 질문들에 답해야 했다. ‘강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번역은 무엇을 하는 작업인가? 누군가의 작품에 평을 붙이는 행위에는 어떤 이로움이 있는가?’ 도전하려는 일의 의미를 나름의 언어로 정리하면 비벼볼 구석이 작게나마 보였다. 너무 겁이 날 땐 이렇게 생각했다. ‘나에겐 다른 판도 있잖아. 이 판은 망쳐도 괜찮아. 일단 해보자.’
‘새로운 동기 발견―두려움과 걱정―일단 지르기―전략과 실행―일말의 성취’라는 프로세스를 숱하게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판돈을 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오역을 지적당할 것에 대한 공포심을 딛고 난이도 높은 이론서 번역에 도전하거나, 클라이언트사 C레벨 회의에서 수억 원의 예산이 걸린 프리젠테이션을 하거나. 그 무렵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려운 과업 앞에서 내 안의 최혜진 씨들이 서로를 돕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 최혜진 씨가 생계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베스트셀러 작가를 염탐하거나 흉내내지 않도록 컨설턴트 최혜진 씨가 돈을 번다. 컨설턴트 최혜진 씨가 클라이언트와 원만히 소통하며 설득력을 발휘하도록 인터뷰어 최혜진 씨가 경청의 기술을 연마한다. 글쓰는 최혜진 씨가 혼자만의 동굴에서 자기만족에 그치는 글을 쓰지 않도록 강사 최혜진 씨가 수많은 타인과 교감하고, 컨설턴트 최혜진 씨가 동시대 트렌드를 리서치한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논-제로섬 게임.
좋아하는 분야에서 적당히 난이도 있는 과업에 도전하며 결과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그 일은 놀이와 닮게 된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라는 질문에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결국 “재밌고 좋으니까” 말곤 없다. 초심자일 때만 가질 수 있는 두근거림과 흥분을 좇아 새로운 직업적 자아의 명찰을 달 때, 나는 늘 아마추어였다. 아마추어amateur는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아모르amor에서 파생한 단어다. 자격이 있어서, 학위가 있어서, 잘 알아서 하는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하는 사람.
‘사람의 무지는 보물이므로 아무렇게나 써버리면 안 된다.’ 시인 폴 발레리가 한 말이다. 앞으로 내 안의 최혜진 씨들이 어떤 협업을 하고, 어떤 새로운 직업의 문 앞에서 설레 할지 지금의 나는 모른다. 모른다는 감각, 새로 배우고 알아갈 것이 남아 있다는 느낌, 무엇을 하든 세상이 규정하는 이름 하나로 간단하게 치환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좋다. 이름들 사이로 미끄러지는 생활에는 이런 기쁨이 있다.
Writer
최혜진(@writer.choihyejin)은 에디터십을 기반으로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잡지 «디렉토리»«1.5°C»«볼드저널» 편집장으로 일했고, 『우리 각자의미술관』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등 일곱 권의 예술서를 썼다. 『album[s] 그림책 : 글, 이미지, 물성으로 지은 세계』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