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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등산에 대한 몇 가지 오해

Writer: 장보영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최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등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누구나 집에 등산용품 하나쯤은 구비하는 시대가 됐죠. 동시에 등산에 대한 여러 오해도 버젓이 존재한답니다. 등산애호가인 장보영 작가는 등산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균형있게 알려주는 에세이를 썼어요. 등산에 입문하는 초심자부터 산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고수에 이르기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등산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대국민 취미 등산. 등산만큼 클리셰가 많은 취미도 없다. 등산에 대한 편견이 워낙 강해서 오르기도 전부터 이미 산에 한 백 번은 간 것 같고, 오르지도 않은 산에 질려버려 가고 싶은 마음이 전부 사라지기까지 한다. 등산, 정말 그런가요? 무언가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그것에 대한 오해부터 푸는 것. 새해에 등산을 시작해보려는 이들이 등산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등산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보려 한다.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오해하지 말고 재미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비싼 장비가 좋은 장비다?

누가 등산은 돈 안 든다고 했나? 산에 다니다 보면 필요한 장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등산화, 등산복, 등산배낭을 비롯해 크고 작은 장비 일체. 뭐든지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장비마다 조금씩 쓰임과 기능이 다르기에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종류와 상관없이 그 장비가 반드시 비쌀 필요는 없다. 물론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저렴한 장비가 대체로 소재도 부실하고 잔고장도 많아 수명이 짧다. 하지만 실속 있는 중저가 등산 장비도 얼마든지 많다. 특히 등산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라면 비싼 장비 가격 앞에서 아직 진입하지도 않은 산에 대한 장벽을 높일 필요가 없다. 좋은데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장비로 입산(入山)해보자. 종로5가나 산 아래에 위치한 등산 장비점을 이용하면 좋다.

장비와 실력은 비례한다?

비싼 장비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장비발’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장비가 비싼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장비발이라는 것도 사실 뭘 알아야, 뭘 사봐야 내세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장비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비싼 장비가 마치 자신의 등산 실력인 양 으스대는 것은 아무래도 남사스럽다. 단언컨대 장비가 좋은 것과 등산 실력이 좋은 것은 별개다. 또 비싼 장비가 반드시 최고의 장비인 것도 아니다. 저렴한 장비로 산을 즐기며 등산 잘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다. 장비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연에서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캠퍼가 언제나 훨씬 더 멋있다.

배낭이 크면 등산 고수다?

상체를 훌쩍 넘어서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 등산 좀 하는구나!’ 싶어진다. 그 생각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저 배낭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분명 텐트가 들어 있고, 침낭이 들어 있고, 다양한 캠핑 장비가 들어 있겠지? 진짜 무겁겠네. 산에서 잠을 잘 정도면 정말 대단한 담력이야!’ 하지만 막상 그의 배낭을 열었을 때 접이식 침낭 매트리스만이 들어 있는, 각만 잡은 ‘뽕 배낭’일 수도 있다. 등산 고수가 아니라, 배낭 크기로 젠체하며 맨스플레인을 펼치는 진상일지도 모른다. 진짜 등산 고수란 배낭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알고 빠뜨림 없이 챙길 줄 아는 사람이다.

레깅스 입으면 관종이다?

레깅스란 신축성과 보온성이 뛰어난 타이츠 형태의 기능성 바지를 말한다. 러닝, 요가, 필라테스를 넘어 요즘은 등산할 때에도 이 레깅스를 입는다. 레깅스를 입어보면 알 것이다. 활동하는 데 있어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한지. 그런데 이 레깅스가 언젠가부터 ‘관종’(관심을 받으려는 부류의 사람, ‘관심 종자’의 줄임말)의 아이템으로 거론되고 있다. 소재의 특성상 몸에 밀착되어 선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을 타인에게 나의 신체를 자랑하기 위해 입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것이다. 물론 공동의 공간에서 누군가는 타인의 눈에 띄는 옷차림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깅스를 입는다고 무조건 관종인 것은 아니다. 공기와 바람의 저항을 줄여주고 피부와 근육을 팽팽하게 잡아주어 활동 퍼포먼스 효율을 높여주는 레깅스를, 몸의 움직임이 큰 등산을 할 때 입지 않을 이유가 없다.

트레일러닝하면 산에서 계속 뛰어야 한다?

트레일러닝이란 트레일(Trail)과 러닝(Running)의 합성어로, 산과 둘레길과 초원과 해안 등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을 달리는 산악 종목을 말한다. 트레일러닝을 한다고 하면 보통 이렇게 반응한다. “산을 어떻게 계속 뛰어? 걷기도 힘든데!” 당연한 소리! 걷기도 힘든 산을 어떻게 계속 뛰겠는가. 세계적인 트레일러너 킬리안 조넷도 경사가 강한 오르막에서는 걷는다. 그런데 빨리 걷는다. 경사가 강한 오르막에서는 축지법을 쓰듯 빨리 걷고, 경사가 약한 오르막에서는 뛰고 걷기를 반복하고, 내리막에서는 뛴다. 태어난 이래 내가 두 다리로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photography © 장보영

photography © 장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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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입으면 환경주의자다?

산악인 이본 쉬나드가 창립한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다고니아는 판매 중인 재킷 아래에 ‘우리의 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의류 한 벌 만드는 데만 해도 상당한 양의 자연 소재가 필요하고 배출되는 탄소량과 폐기물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고객들이 새 옷을 살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을 수선해 오랫동안 입기를 바라는 취지에서다. 과연 환경을 생각하는 선진 기업다운 면모이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의류를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환경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단순히 예쁘고 멋져서 입는 사람도 많다. 물론 친환경, 재활용 소재로 대부분의 의류를 제작하는 파타고니아 의류를 입은 사람이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 의류를 입은 사람보다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일 확률은 높다. 하지만 자연에 가깝게 사는 사람일수록 파타고니아를 입고 있지 않을 확률은 더더욱 높다. 왜냐하면 비싸니까. 이본 쉬나드가 말한 대로 그들은 정말이지 ‘그들의 옷을 사지 않는다Don’t Buy This Jacket.

노스페이스 패딩은 등골브레이커다?

한때 노스페이스 패딩이 대한민국 패딩의 대명사가 되어 중고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패딩 하나에 40~50만 원을 호가하는 까닭에 부모의 입장에서는 가히 부담스러운 유행이 아닐 수 없었고, 결국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부서트린다는 뜻으로, ‘불효’를 뜻함)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법. 전례 없던 한파가 불어닥친 어느 해, 교복처럼 유행하던 노스페이스 패딩의 자리에 ‘롱패딩’이 새롭게 들어서기 시작했고, 과거의 중고생들이 롱패딩을 입는 대학생이 되면서 자신의 노스페이스 패딩을 부모에게 물려주는(?) 현상이 벌어졌다. 아이러닉하게도 부모의 등골을 브레이크한 노스페이스 패딩이, 유행과 상관없이 따뜻하면 장땡인 부모의 등골을 따뜻하게 감싸주게 된 것이다. 최근 롱패딩을 입고 있는 중년층이 늘어난 이유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롱패딩이 한물가고 다시 짧은 패딩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등산하면 무릎 나간다?

취미가 등산이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 “아이고, 무릎 안 아파?” 물론 아프다. 평지를 달릴 때 몸에 가해지는 하중이 체중의 세 배 이상인데 무릇 산길에서야. 무릎 관절의 퇴화는 나이가 들거나, 또 젊더라도 근육이 부족하면 생길 수 있는 연골 변성의 징후이다. 그런데 등산한다고 무조건 다 무릎이 아픈 것은 아니다. 도리어 산길, 계단 등의 오르막을 많이 오르면 넓적다리 앞쪽 근육인 대퇴사두근이 발달해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이 100퍼센트 완충된다. 게다가 무릎 주변의 근육, 인대, 관절 등이 강화되어 오히려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튼튼한 무릎을 가질 수 있다.

등산은 끝나고 막걸리에 파전을 먹기 위해 가는 거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연락을 하다 보면 마무리쯤 다음과 같은 인사를 심심치 않게 건네받곤 한다. “야, 언제 산이나 같이 가자! 끝나고 막걸리에 파전 오케이?” 노! 와인에 스파게티 먹을 건데! ‘등산=막걸리’라는 공식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거지? 물론 산 아래 막걸리에 파전 파는 주점이 많긴 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산에 다녀와서 우리나라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그렇다고 등산 끝나고 모두가 막걸리에 파전을 먹는 것은 아니다. 맥주에 피자도 훌륭한 궁합이고, 사케에 꼬치도 충분히 산과 잘 어울린다. 그러니까 이제 ‘등산=막걸리’라는 공식은 머릿속에서 제발 좀 지워주길.

산은 불륜의 장소다?

앞서가는 저 중년 남녀, 수상하다. 고가 아웃도어 브랜드 의류를 갑옷처럼 입은 남자와 가부키처럼 과하게 화장한 여자. 하하호호 얼마나 즐거운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바위 구간에서 여자는 이내 주저앉았다. “못 가요! 못 가! 나 어떡해! 무서워!” 울기 직전인 여자, 이때 남자는 기지를 발휘해 구름에 달 가듯 내려가더니 여자에게 백마 탄 왕자처럼 손을 내민다. “괜찮아! 내가 아래에서 받쳐줄 거니까 떨어져도 돼!” “어머머머머, 으악, 난 몰라! 아이고! 아이고!” 여기가 에베레스트냐. 저건 십중팔구 ‘불륜’ 커플이겠군. 저 남자, 부인이 저러는 거 알고 있나? 저 여자, 집에서는 소도 때려잡을 거면서. 한심하다. 한심해. 그렇게 별꼴 다 보며 도착한 하산 지점, 갑자기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OO야. 동생 잘 보고 있지? 엄마랑 아빠 방금 산에서 내려왔어. 맛있는 거 사서 얼른 집에 갈게!” 헉. 부부였구나…… 그것도 잉꼬부부…… 그 금술 참 부럽네…… 산에서 만난 중년 남녀, 십중‘이구’는 부부일 수 있으니 너무 매의 눈으로 노려보지는 마시길.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면 꼰대다?

산에 다니는 어르신과 합석할 때 안주처럼 나오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라떼는 말이야”, 보통 과거에 당신이 젊었을 때 다녀온 유명한 산에서의 무용담이다. 그때마다 별 관심 없는 눈빛으로 유체 이탈을 시전했는데 시간이 지나 나도 제법 산에서 경륜을 쌓고 나니, 산에서 일어난 경험담을 주변에 말로든 글로든 자연스레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그때마다 ‘아……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 ‘그때 그 어르신 이야기 좀 재미있게 들어줄걸’ 하고 후회하곤 한다. 그때 그 어르신은 그저 자신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일 뿐, 꼰대는 아닌 것이다. 그게 아니면 어느새 내가 꼰대가 된 거고.

오해란 곧 오만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럴 거야’라는 추측은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한다. 산 정상은 물론. 앞으로도 산에서 무수한 경험을 할 것이고, 무수한 오해를 하겠지만, 2022년의 나는 오해 할 때 하더라도 최소한 경험해보고 오해 할 것을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Writer

장보영은 트레일러너다. 등산에 대한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책 『아무튼, 산』을 썼다.

@purn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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