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는 최악일지라도 때론 최선을 다한 것일 수 있죠. ‘쿠소(くそ)영화’에 관한 이야기예요. ‘똥’에 해당하는 일본어 욕설 ‘쿠소(くそ)’와 ‘영화’를 합친 이 표현은 쓰레기 같은 영화를 가리킵니다. 박동수 영화평론가는 쿠소영화를 ‘실패의 산물’로 규정합니다. 연기, 편집, 촬영, 기술, 각본… 다양한 구성 요소가 갖가지 이유로 실패하며 탄생한 조악한 영화라는 것이죠. 그 실패 위에서, 우리가 영화에 기대하는 익숙함을 벗어난 상상력을 재료 삼아 말도 안 되는 설정과 열악한 자원 속에서 어떻게든 착즙해 낸 최악이자 최고의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박동수가 첫 번째로 꺼내든 쿠소영화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2019)입니다. 아프리카, 쿵푸, 나치가 한데 뒤섞인 이 가나산 괴작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는 쿵푸영화의 간략한 계보와 브루스플로이테이션부터 산업이 부재함에도 영화를 만드는 아프리카의 창작 생태계까지 쿠소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배경을 살펴봅니다. 자본과 산업의 논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조악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낭만적인 쿠소영화에 관해 박동수가 전하는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아프리카의 쿵푸영화, 그런데 나치를 곁들인…
3년 전엔가, 여느 날처럼 트위터 타임라인을 뒤적이던 중 이 영화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African Kung-Fu Nazis›(2019). 눈에 흉터가 난 히틀러가 포스터 중앙에 있고, 쿵푸 마스터의 도복 비스름한 옷을 입은 아프리카인이 주인공 자리에 서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전범 아돌프 히틀러와 도조 히데키가 사실 살아남았고, 이들은 아프리카로 도망쳤다. 가라테 수련을 통해 히틀러는 타인을 세뇌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되고, 가나 국민을 가나-아리아인Ghan-Arian으로 만들어 제국의 부활을 시도한다. 어느 쿵푸 도장의 제자인 주인공 아대는 나치에 반발한 사부가 죽임을 당하자 외딴곳에 숨어 수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히틀러가 개최한 무술대회에 참가한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예고편
이 황당한 줄거리는 나름의 ‘근본력’을 갖추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쿵푸영화에 관한 애정과 오마주가 영화 전체에 빼곡히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쿵푸 도장을 습격한 나치 일당이 현판을 부수는 모습은 이소룡의 ‹정무문精武門›(1972)을 고스란히 차용한다. 일본군이 가라테를 배운 나치로, 이소룡이 주인공 아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아대는 수련이 부족한 인물이다. 그래서 ‹취권醉拳›(1978)의 성룡처럼 은둔 고수를 사부 삼아 수련을 이어간다. 이때 등장하는 사부의 의상은 ‹취권›의 원소전과 거의 비슷하다. 물론 술도 마신다. 히틀러 주최의 무술대회는 자연스럽게 이소룡의 마지막 걸작 ‹용쟁호투龍爭虎鬪›(1973)에서 따온 것이다. 이소룡이 범죄조직을 격파하기 위해 무술대회에 참가했듯이 아대는 나치와 히틀러를 박살 내기 위해 참가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대체 왜 쿵푸일까?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의 은둔 고수와 영화 ‹취권›의 원소전. 두 인물은 비슷한 모자와 헤어스타일을 공유하고, 비슷하게 생긴 술병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인 ‹브루스 리의 클론들The Clones of Bruce Lee›(1977) 포스터. 이소룡의 사망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어느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이소룡을 복제해 두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거룡Dragon Lee과 장일도Bruce Lai, 홍콩의 여소룡Bruce Le, 태국의 브루스 타이Bruce Thai 등이 동시에 출연한다.
영화 ‹브루스 리의 클론들› 스틸컷
1970년대 이래로 전 세계 액션영화는 쿵푸영화의 영향 아래 있다. 이소룡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후로 쿵푸영화계는 넥스트 이소룡을 찾는 데 혈안이 된다. 성룡도 그렇게 등장한 배우 중 하나였다. 다만 성룡은 쿵푸와 슬랩스틱을 결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다양성을 더한다. 이후 홍금보, 원표, 이연걸, 견자단 등의 스타와 함께 쿵푸영화의 전성기가 이어진다. 그와 동시에 신화가 된 이소룡의 이름을 따라 무수한 아류작과 짜깁기 영화가 등장한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Bruceploitation이라는 명칭으로 유통된 일련의 짝퉁 이소룡 영화에서는 홍콩뿐 아니라 대만과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무술가가 “브루스 어쩌고”나 “저쩌고 룡”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등장했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은 홍콩 무협영화, 한국의 권격영화, 일본의 찬바라 영화 등과 뒤섞여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유통된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정식으로 유통되지 못했다. 그 대신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은 해적판 필름의 형태로 낡아빠진 동시상영관에 유통되거나, 돈냄새를 맡은 사업가가 짜깁기한 판본이나 오역으로 가득한 더빙판으로 비디오 대여점에 유통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사도들Apostles of Cinema›(2022) 스틸컷. 탄자니아의 영화향유 문화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DJ로 불리는 일종의 변사가 간이 상영관에서 라이브 더빙을 선보이는 장면(위)과 해적판 DVD 판매점의 모습(아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탄자니아지만, 우간다나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 지역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가나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이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가 향유되었다.
공식적인 배급망을 탄 것은 아니지만 필름보단 비디오로 유통되던 이 영화들은 가난한 노동자나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주된 유흥거리가 되어주었다. 제작부터 상영에 이르는 영화산업이 없다시피 한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본다. (국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비공식 상영관에서 해적판 영화가 상영되고, VJ나 DJ로 불리는 일종의 변사가 라이브 더빙을 선보이거나 해적판 DVD에 자체 더빙을 입혀 배포한다. 쿵푸영화뿐 아니라 발리우드 영화, 한국 드라마, 대만 청춘영화, 심지어 EPL이나 챔피언스리그 중계영상까지 같은 방식으로 유통되고 상영된다. 그 토양에서 아프리카의 비디오 키즈는 다양한 혼종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어느덧 ‘놀리우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나이지리아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 스타가 된 우간다의 ‘와칼리우드’가 그렇다.
사무엘 K. 응칸사의 첫 영화 ‹2016›(2010) 예고편.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의 대결을 다룬 이 영화는 당황스러운 CGI와 VFX로 점철되어 있다. 예고편의 화질이 좋지 못한 것은 원본 영화의 화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당황스러운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가 제작된 가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제작된 몇 편의 장편영화를 제외하면 거의 비디오 영화만 제작되어 영화산업이랄 게 부재한 나라다. 실제로 (유럽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는 북아프리카 국가를 제외하면) 아프리카 전체에서 ‘영화산업’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나라는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세네갈 정도니까 말이다. 산업이 없는 곳에서는 종종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가 등장하곤 한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를 만든 사무엘 K. 응칸사Samuel K. Nkansah도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인물이다. 닌자맨Ninjaman이라는 예명으로 제작사 ‘닌자 무비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그는 2010년작 ‹2016›의 예고편이 유튜브를 통해 바이럴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외계인 침공을 다룬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의 이미지를 가까스로 움직이는 열화판 CGI로 가져온 뒤 엉망진창의 폭발과 액션을 곁들인 괴작이다.
스키장에 여행 온 의대생과 나치 좀비의 대결을 담은 호러 코미디 영화 ‹데드 스노우›의 스틸컷
달의 뒷면에 숨겨진 나치 기지가 있다는 설정의 영화 ‹아이언 스카이› 스틸컷. 영화 속 나치 기지는 놀랍게도 하켄크로이츠 모양이다.
지구를 식민지화하려는 외계인의 침공을 소재로 삼았던 감독이 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소재가 나치의 부활이었던 걸까? 장르영화의 팬으로서 무수한 영화의 소재였던 나치가 다시 소환되는 것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나치는 그 이름만으로 혐오 대상인 만큼 무수한 SF, 호러, 코미디 영화에서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다(어떤 면에선 지금의 좀비가 지닌 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데드 스노우Dead Snow›(2009) 속 나치 좀비나, ‹아이언 스카이Iron Sky›(2012) 속 달 뒷면의 나치 기지 음모론 혹은 마블 유니버스의 ‘하이드라’ 같은 설정이 가능했다. 나치는 분명한 적이자 퇴치해야 할 해충으로 묘사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쿵푸로 마음껏 패고, 다방면으로 조롱해도 상관없는 대상이랄까. 영화의 공동연출자이자 히틀러 역을 맡기도 한 독일인 세바스티안 스타인Sebastian Stein은 ‘아프리카+쿵푸+나치’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두고 “히틀러를 비웃는 게 나치즘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응칸사 감독에게 익숙한 코드인 쿵푸와 나치를 빌런으로 설정한 액션영화를 결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의 무술대회 장면. 어설프게 쓰인 한자와 깃발의 만(卍)자, 화이트페이스 분장을 한 가나-아리아인의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어처구니없지만 단순한 반전의 묘미가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달까.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속 도조 히데키가 세뇌된 가나-아리아인과 행군하는 장면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는 ‘히틀러와 나치에 관한 조롱과 그에 관한 격파’라는 주제에 한없이 충실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깃발은 욱일기에 하켄크로이츠를 박아 넣은 파격적인 디자인 같지만, 사실 영화 안의 모든 문양은 ‘한자 만(卍)’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초기 할리우드 영화에서 문제가 되었던 블랙페이스는 가나-아리아인의 하얗게 칠한 얼굴로 반전된다. 히틀러의 아프리카 정복 목적은 단순히 술과 여자를 얻기 위한 것이다. 트워킹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디제잉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전체주의적 악당을 묘사하기 위해 나치의 방식을 모사했던 몇몇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속 웅장함과 달리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속 히틀러는 일관되게 한심하고 음흉하며 바보 같다. 이소룡이자 성룡이 된 아대는 식민지의 무술로 우스꽝스러운 제국을 무찌르는 쿵푸전사가 된 셈이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2African Kung Fu Nazis II›(2025) 공식 트레일러. 섬네일의 로봇은 거대화된 히틀러인 ‘아돌프 로보틀러’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강력한 쿠소함의 정체는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에 뒤섞여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라는 정직한 제목은 영화의 모든 것이다. 다만 영화의 마무리는 쿵푸가 아니다. 아대가 대회에서 도조 히데키를 격파하자 가나-아리아인의 세뇌가 풀려버린다. 이에 히틀러는 폭주를 시작한다. 아대는 세뇌에서 풀려난 군인에게 건네받은 권총을 들고 소총을 난사하며 도망친 히틀러를 추격한다. 총격전 끝에 아대는 히틀러가 엄폐물로 쓰던 도요타 자동차의 연료 탱크를 명중시키고 히틀러는 폭사한다. 그림판으로 어설프게 누끼를 딴 것 같은 히틀러의 머리가 바닥에 굴러다니며 사태는 끝난다. 어쩌면 이는 속편을 위한 발판일지도 모른다. 2025년 시체스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속편에서 히틀러는 로봇이 되어 짝퉁 괴벨스와 함께 되돌아온다. 새로운 주인공으로 무협영화 걸작 ‹외팔이獨臂刀›(1967)의 영향을 받은 외팔이 쿵푸전사이자 아대의 동생 아도가 등장한다. 스모 선수, 프로레슬러, 심지어 거대로봇 아돌프 로보틀러까지, 더욱 사이즈를 키운 속편은 쿵푸영화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 다양한 장르 간 이종교배를 실험한다.
영화산업이 없다는 것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악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말과도 같다.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로 제작부터 배급까지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진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하자 저예산 장르영화와 아류작을 양산했던 로저 코먼Roger Corman이나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에드 우드Ed Wood가 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돈의 논리 바깥에서 혹은 우리가 상업영화에 기대하는 개연성의 바깥에서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같은 영화는 가능해진다. 무엇이든 흡수하여 뒤섞을 수 있는 영화, ‘쿠소영화’는 그런 영화를 위한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스틸컷
Artist
박동수 평론가(@dsp9596)는 제3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비평상과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영화와 게임을 주로 다루지만 종종 미술이나 방송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료 평론가들과 함께 영화비평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크리틱›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명의 비평집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첫 단독 저서인 에세이 『쿠소필리아』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