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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有印良品 유인양품8-학교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Writer: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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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브랜딩은 결과를 먼저 정해놓고 역산합니다. 차별화 전략과 매출, 포지셔닝 같은 목표를 정한 뒤, 그 지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브랜딩의 문법이죠. 어쩌면 세상의 수많은 것들 역시 이런 문법을 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 정반대로 움직이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이름 하나로 자신을 정의하길 거부하고, 학위와 역할을 지운 채 교육만 남기는 곳. 심지어 스스로를 ‘대안’이라 부르는 것조차 경계합니다. 대안이라는 말 역시 주류를 전제하고 그 반대편에 자신을 세우는 또 하나의 포지셔닝일 뿐이죠. 학위도 성적도 없이 자기가 잘하는 것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학교’가 되어가는 곳, 느슨하고 자발적인 버드콜(Birdcall)의 이야기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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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학교: 우리가 서로의 학교가 될 때› 전시에서도 버드콜은 역시 도서관이자 교실을 제안하는데, 도서 자료를 ‘출발, 손가락, 이야기, 메모리, 초대, 그리고’로 분류했다.

버드콜을 설명하기는 간단치 않다. 한 해 동안 버드콜에서 일어난 일을 모은 책 ‹Birdcall Year Book 2025›가 버드콜 같다. Birdcall.online의 위키, 라이브러리, 키오스크를 깊이 탐색하다 보면 무슨 개방형 아카이브 실험 프로젝트가 떠오를 테니까. 2026년 3월 발매한 번역서 ‹학교: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는 예술교육, 그 최근의 역사›에서도 버드콜이 보인다. ‘예술학위 취득에 12만 달러가 드는 시대(BFAMFAPhD)’에 버드콜은 학위와 역할을 지우고 교육을 남겼다. 다양한 목소리와 버전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Birdcall.online의 About 페이지도 버드콜이다. 각각 다른 구체적인 뜻을 가진 사람들이 느슨하지만 자발적으로 연결되는 것, 커뮤니티의 정의 그 자체다. 어쩌면 물리적 공간 버드콜에 방문한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분실물을 정리한 ‘Lost and Found’ 위키 항목이 버드콜일지 모른다.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은 결국 솔직하고 사소한 이야기고, 귀여운 피조물들의 영업전략이다. 하나의 이름을 모든 하위 요소에서 일관되게 표현하도록 조율하는 브랜드 활동을 브랜딩이라 부른다. 하지만 버드콜과 브랜딩 만큼 동떨어진 단어도 없다. 브랜딩은 결과(차별화 전략, 매출, 포지셔닝)를 정해놓고 역산한 결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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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룸 서비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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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커뮤니티 메모리 단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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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촬영된 커뮤니티 메모리의 스태프 및 자원봉사자들의 단체 사진

“버드콜은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커뮤니티 메모리의 개념을 참고해 아카이브를 운영(버드콜 위키의 ‘Birdcall Archive Guideline’ 문서)”한다고 밝힌다. 커뮤니티 메모리는 인류 최초의 공개 컴퓨터 게시판 시스템(BBS)이다. 중요한 것은 ‘최초’만이 아니다. 1960년대 북캘리포니아의 ‘(반전, 표현의 자유 운동으로 요약되는) 카운터 컬처’에서 영향 받은, 생태적이고, 비위계적이며, 저비용 지향, 사용자 친화적 정신의 구현이 곧 커뮤니티 메모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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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의 Birdcall Public Open 채널

Are.na는 커뮤니티 메모리와 이념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Are.na Tutorial’은 버드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기도 하다. 또한 여러 방향의 정의가 필요하다. Are.na는 소셜 네트워크이자 지식 관리 도구이자 아카이브 시스템이다. 핵심은 연결에 있다. 이미지, 텍스트, 링크, 파일을 조합해 다양한 ‘채널’을 만들 수 있고, 이미지 하나, 텍스트 하나 단위의 ‘블록’을 다른 채널과 ‘커넥트’할 수도 있다. 당연히 알고리즘이 작용하지 않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연결이다. 버드콜은 그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또한 그들의 아카이브 방법론을 전파하는 데 Are.na를 적극 활용 중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Are.na는 단지 도구가 아니다. 예컨대 전 세계 주요 탐사보도 기자들이 사용하는 PGP 혹은 GPG(이메일 암호화 기술)와 Tails OS(USB로 부팅하는 특수 운영체제)를 단지 그들의 보안 도구라 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이 닥쳐도, 제보자의 신원을 지키겠다는 서약이 좀 더 정확한 설명 아닐까? Are.na는 버드콜이 그리는 “도서관이자 교실”의 정신적 연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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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는 예술교육, 그 최근의 역사› 샘손 저, 박재용 역, 버드콜

그 도서관이자 교실은 어떤 곳인가? ‹학교›의 마지막 페이지 ‘우리들의 말’에 단서가 있다. 제도권 예술학교와 다른, 2000년 이후 등장한 자기조직형 예술 학교와 예술가 주도의 교육 플랫폼들을 다룬 책이다. 버드콜과 서울리딩룸이 공동 제작했고, 11개월간 18번의 ‘초역 읽기’ 세미나를 거쳐 완성했다. 그 시간을 이렇게 적는다.“번역의 과정은 자연스레 ‘학교화’되었다.” 자기조직화의 형식으로 자기조직형 예술 학교에 관한 책을 다뤘고, 학교라는 단어에 제도권 교육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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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메이트, 리서치 메이트는 꾸준히 이어지는 버드콜의 프로그램이다. 최근 아르코 미술관의 전시 ‹예술 학교: 우리가 서로의 학교과 될 때›에 참여하면서, 이 자리에서 리포트 자리를 가졌다.

‘아카이브 메이트’는 버드콜의 운영자 이지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6개월 동안 자신의 데이터를 정리하고, 자료의 형식과 분량에 맞는 아카이브 시스템의 구축”을 제안한다. 각자의 데이터가 커리큘럼인 셈이다.‘미니멀 OS’는 “(개인 사업자가) 뭘 기록해야 하는지, 어떤 숫자가 나의 사업을 설명하는지 살펴보고, 각자의 사업 형식에 맞는 데이터 시트를 설계”하는 워크숍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했고 현재는 공유 공간 헙을 운영하는 이현정이 맡는다. 가르치는 그 역시 배우는 사람의 자료를 통해 다른 걸 배울 것이다. ‹학교›에 등장하는 예술학교들에서 목격한 소규모이고 협업적이면서도 자기주도적인 버드콜의 프로그램들이다.

다만 버드콜을 또 한 번 ‘대안’ 같은 단어에 가두면 곤란하다. 대안은 결국 브랜드의 방식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대안 교육’, ‘대안 공동체’ 같은 말들은 주류를 전제하고, 그 반대편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하나의 ‘포지셔닝전략’이다. Are.na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지수는 말한다. “강사가 이미 자신만의 오리지널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되 그걸 참여형 워크숍으로 확장하는 게 중요해요.”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비용을 낮추는 접근이기도 하지만, 교환이 아닌 증여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학생과 선생의 경계를 없애는 방향이기도 하다. 학생이든 선생이든 학위가 있든 없든, 개인은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대안에 관심이 없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드러내고 확인받으며 나아가는 것, 그것만이 관심사다. 그 개인들의 삶은 ‘브랜딩’이 아닌 ‘자연스러운 학교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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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OS 프로그램 이미지

작가 한강의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의 유명한 장면이 있다. 한강이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않나요?”라고 묻자, 1998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의 국제창작 프로그램의 참가자로 추정되는, 마흐무드라는 인물이 생각에 잠기더니 답한다. ”아니지. 그렇지 않아.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격언의 성격이 그렇듯, 이 문답 구조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고, 학교도 그중 하나 같다. “아니지, 그렇지 않아. 학교를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학위, 교과, 성적 같은 것. 학교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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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학교: 우리가 서로의 학교과 될 때› 전시의 ‹리빙룸›, 버드콜 전경.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 『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