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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과정에 집중합니다.
[인터뷰/인터뷰어/인터뷰이]는 70년대 이후 해외에서 거주하고 활동해온 한국 디아스포라 여성 현대미술작가의 스튜디오와 작업 장소를 방문하여 현장성과 대화성을 결합한 인터뷰를 수행하는 기록 프로젝트입니다. 다수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들이 참여하는 인터뷰 기록을 영상과 텍스트로 퍼블리싱해서, 한국 미술사 서술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해외 거주 여성 작가들의 위치를 새롭게 맥락화하고, 다양한 독자와 관객이 접속할 수 있는 다층적 지식·감각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인터뷰/인터뷰어/인터뷰이] 시리즈 첫 번째로 강원도 춘천 내평리와 미국 뉴욕 소호를 오가며 작업해온 김명희(1949년생) 작가를 초대합니다. 아래로 스크롤하면 전체 인터뷰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엘리너 하트니 – 장우진 인터뷰
2026. 2. 18. 수 16:00-18:30 진행(@뉴욕시 잭슨하이츠 Heartney의 집)
장우진: 안녕하세요. 인터뷰 시작에 앞서 선생님께서 현재 하고 계신 일과 전문 분야를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엘리너 하트니: “안녕하세요, 저는 미술 평론가 엘리너 하트니입니다. 약 40년 동안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써 왔고, 실제로 한국미술에 관해서도 꽤 많은 글을 집필했습니다. 한국에는 아마 10번에서 15번 정도 방문한 것 같은데요, 그동안 한국미술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어서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김명희 작가님을 비롯해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한국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뉴욕 김차섭 개인전 아트리움에서 만난 엘리너 하트니와 김명희, 김차섭의 자화상, Tchah Sup Kim: The Key to a New World (2026년 9월 17일 – 10월 24일, 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 작가 제공
장우진: 선생님께서 한국미술과 한국 미술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엘리너 하트니: “제가 미국의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을 때였는데요, 1990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올림픽이 끝난 직후에 한 친구의 주선으로 한국에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미술계는 서구 사회로 막 뻗어 나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한지’를 주제로 대규모 전시회가 열렸는데, 수많은 서양 작가와 일부 한국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그 전시회에 가게 되었고….”
2022년 뉴욕 AHL 재단의 미국내 한국작가 아카이브 인터뷰 프로젝트에는 엘레노어 하트니가 뉴욕 거주 최성호 작가와 ‹Across the Pacific: Contemporary Korean and Korean-American Art, 태평양을 건너서: 오늘의 한국 미술›(October 15, 1993- January 9, 1994, Queens Museum of Art, August 23-September 23, 1994, Kumho Museum of Art)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장우진: 선생님께서 한국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작점과 관련해서 혹시 백남준 선생님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는지요?
엘리너 하트니: “네, 맞아요. 사실 한국을 방문하던 아주 초창기에 백남준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제가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열렸던 그 전시에 선생님도 참여하셨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미국과 한국 사이에 교차하는 문화적 흐름에 관심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던 때였죠. 그리고 백남준 선생님의 60세 환갑잔치가 기억나는데, 정말 큰 행사였고, 성대한 축하 자리로 마련되었어요.”
2002년 8월 10일 김차섭의 구상노트에 적힌 백남준, 구보다 시게코Shigeko
Kubota 사이의 일화. 김차섭 기념사업회 제공
2002년 8월 10일 김차섭의 구상노트에 적힌 백남준, 구보다 시게코Shigeko Kubota 사이의 일화. 김차섭 기념사업회 제공
1997년 2월 13일 김차섭의 구상노트에 적힌 엘리너 하트니에 관한 꿈 이야기. 김차섭 기념사업회 제공
엘리너 하트니: “그분은 전시회를 열어 수많은 서구 평론가들을 초청했고, 대규모 심포지엄도 개최했는데, 그 기회를 통해 백남준 선생님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한국 여정에 동행했던 제 남편 역시 백남준 선생님과 몇몇 대형 퍼포먼스를 함께하며 긴밀하게 작업했어요. 특히 백남준 선생님의 샤머니즘적 성향을 다룬 대형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백남준 선생님과 정말 친한 사이가 되었죠.”
1980년대 뉴욕 백남준 작품 앞에서 김명희와 백남준. 작가 제공
장우진: 김명희 작가님 부부도 백남준 선생님과 꽤 가까운 곳에 사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그분들이 평소에 자주 모이거나 친하게 지내셨는지 알고 계시나요?
엘리너 하트니: “두 분이 친하게 지내셨던 걸로 기억해요. 김명희 작가님과 백남준 선생님은 서로 친하셨을 텐데, 사실 백남준 선생님은 대부분의 한국 예술가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셨거든요. 그리고 교류가 아주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편안하고 비공식적인 자리였지만, 서로의 작업실이나 집을 오가면서 이뤄진 교류도 많았습니다.”
“그 당시 뉴욕의 한국 예술가들은 굉장히 끈끈한 세계였습니다. 그 점이 우리 부부가 발견한 것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 사람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사람을 알게 되고, 또 그다음 사람을 알게 되면서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곤 했습니다.”
김차섭 작가(1938~2021) 2주기 모임(2024년 11월 뉴욕 작가 스튜디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엘리너 하트니의 파트너 Larry Littiny Litt. 오른편 정면에 존배 작가, 그 왼편에 엘리너 하트니가 앉아 있다.
장우진: 선생님께서는 미국 미술 전문지 «Art in America(AIA)» 독자들에게 한국미술을 많이 소개하셨고, 특히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다루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한국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그리고 어떤 지점이 선생님께 흥미로웠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엘리너 하트니: “페미니즘은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분야입니다. 저는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고, 작은 페미니스트 작가 공동체를 이끌며 페미니즘 미술의 다양한 측면을 다룬 책 세 권을 함께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 역시 무척 흥미로웠어요.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특히 저희가 처음 한국에 갔을 당시에는 매우 남성 중심적인 사회처럼 느껴졌고….” “아시다시피 그 당시에는 이른바 원로 거장(old masters)들이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지위나 후광을 물려주는 분위기였고, 여성들은 그 흐름에 그리 속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김명희 작가님을 비롯한 몇몇 여성 예술가를 알게 되었고,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그 당시 한국사회의 아주 강했던 일종의 ‘학연·지연 네트워크(old boy network)’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셨던 거죠.”
뉴욕 김차섭 개인전 아트리움에서 대화 중인 엘리너 하트니와 김명희 영상 앞의 두 사람, Tchah Sup Kim: The Key to a New World (2026년 9월 17일∼10월 24일, 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 작가 제공
장우진: 선생님의 관점에서 김차섭, 김명희 두 분 선생님의 관계를 어떻게 지켜보셨을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남편과 아내 관계이지만, 김명희 작가님 또한 독자적인 예술가였으니까요. 페미니즘 관점을 포함해서 선생님께서 바라본 두 분 작가님의 관계를 좀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엘리너 하트니: “네, 저희는 김차섭 작가님과 김명희 작가님 두 분 모두와 정말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식사도 자주 나눴죠. 한국에서도 두 분을 뵈었는데, 산속에 있는 폐교로 직접 찾아가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분의 관계를 꽤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는데요, 제가 느끼기에 두 분은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예술가였고, 사실 그 당시 그토록 대등하게 작업하는 예술가 부부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다소 드문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그런 사례를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거든요.”
1990년대 춘천 내평리 스튜디오 돌계단에서 김차섭과 김명희. 작가 제공
엘리너 하트니: “하지만 김명희 작가님이 김차섭 작가님이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며, 다소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 또한 보았습니다. 그 점은 꽤 놀라웠는데, 왜냐하면 저는 여러 면에서 김명희 작가님의 작품이 그의 작품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고 늘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에 담긴 기술적 수준과 그 힘이 훨씬 더 컸다는 뜻입니다. 그의 작품이 무척 흥미로웠지만, 저에게는 매우 개념적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는 다소 철학적인 사람이었고, 저는 늘 그에게는 예술보다 철학이 먼저라고 느꼈습니다. 반면에 김명희 작가님에게는 예술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죠.”
장우진: 김명희 작가님의 작업이 저에게 굉장히 흥미로웠던 지점은 작가님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면서도 일상생활을 다루고,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포착해 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보기에 ‹김치 담그는 날›(2000)을 포함해 일련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님의 작품과 관련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엘리너 하트니: “네, 김치 담그는 모습을 다룬 김명희 작가님의 작품은 무엇보다 정말 아름다운 회화 작품입니다. 제 서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저는 이 작품을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작품과 비교하게 되곤 합니다. 빛을 포착하는 방식과 평범한 가사 노동의 아주 소소한 디테일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한 작품이죠. 일종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매우 부드럽고 온화한 자화상입니다.”
Preparing Kimchi, 2000, Oil pastel on chalkboard with LCD monitor, 47 1/4 × 94 1/2 inches (120 × 240 cm) 작가 제공
엘리너 하트니: “김명희 작가님은 자신을 화려한 예술가로 포장하여 내세우기보다는 한국 여성이 수천 년 동안 전통적으로 해 왔던 일, 즉 음식을 준비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매우 ‘김명희 작가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자신을 낮추며 겸손해 보이면서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선사하니까요.”
장우진: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궁금해진 점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김명희 작가님은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인지요? 선생님께서는 작가 자신이 그걸 자각하고 작업을 한다고 보시는지요?
엘리너 하트니: “사실 예술가들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여성 예술가의 작품과 관련한 글을 써오면서 제 관점에서는 작업 방식이 매우 페미니즘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라벨(꼬리표)을 붙이고 싶어 하지 않는 예술가를 많이 보았습니다. 때로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면 오히려 예술가로서 진지하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제가 보기에 김명희 작가님의 페미니즘은 자신이 삶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intimacies)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과 인간관계(interpersonal relationships)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김명희 작가님의 작업은 매우 섬세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데, 저에게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매우 여성 중심적인(female-oriented) 방식 중 하나로 다가옵니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소재 자체가 매우 소박하고 겸손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명희 작가님은 아이들을 이야기하고, 가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너무나도 보편적인 주제입니다. 제 생각에 오랫동안 여성 예술가는 만약 자신이 예술가로서 큰 야망을 품고자 한다면, 삶의 이런 소박한 측면을 다루지 말도록 제지당해 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해낸 성과 중 하나는 ‘맞아, 그것도 중요해. 그것 역시 저 거대한 우주적인 주제나 대규모의 극적인 역사화만큼이나 중요해”라고 말해 준 것입니다.”
춘천 내평리 작가 스튜디오에서 작품 앞 김명희, 춘천 내평리. 작품명 Dream, 2003, Oil pastel on chalkboard with LCD monitor, 56 × 59 inches (142 × 150 cm). 2025년 장우진 감독 촬영.
장우진: 네. 제가 보기에도 작가님은 레이블 씌우기를 그다지 원치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1999)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엘리너 하트니: “그 작품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유목민적 성향이나 실크로드를 통한 여정과 연결되는 회화입니다. 하지만 그림 자체만으로도 복숭아를 들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죠. 복숭아는 아주 탐스럽고 아름답게 익어 있으며, 무척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다른 무엇보다도 일종의 상호 문화적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 단지 오늘날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도 전 세계로 뻗어 나갔던 방식처럼 말이죠. 그와 동시에 복숭아는 어떤 면에서 관능성이나 성적 매력을 나타내는 일종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역시 대단히 여성적인 이미지라고 볼 수 있으며, 매우 탐스럽고 매혹적(seductive)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The Golden Peaches of Samarakand, 1999, Oil pastel on chalkboard, 44.9 × 80.3 inches (114 × 204 cm)
장우진: 영미권에서 복숭아만 지니고 있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1999)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엘리너 하트니: “서구 문화에서도 복숭아는 다분히 여성성을 함축(feminine connotation)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숭아는 달콤하고 감미로우며, 부드러운 겉면 속에 놀라운 속살을 품고 있죠. 매우 성적인(sexual) 이미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정물화에서도 성적 매력의 은유로 자주 사용되곤 합니다. 그렇기에 이 같은 맥락 역시 그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우진: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추방›(1999)에 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엘리너 하트니: “그 모든 것에는 아주 가슴 뭉클한(poignant)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풍경의 일부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대자연과 자연에 가까이 살아가는 삶, 그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김명희 작가님 작품의 상당수가 시골의 삶과 대지와 매우 밀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정서가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Morphing, The Exile – Morphing, 1999, Oil pastel on chalkboard, 80.3 × 44.9 inches (204 × 114 cm)
장우진: ‹내가 결석한 소풍날›(1993)은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1999)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엘리너 하트니: “아, 네. 그 작품 알고 있습니다. 김명희 작가님이 참여하지 못했던 소풍을 그린 작품은 정말 가슴이 뭉클합니다. 여기서 많은 어린아이를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기억에 관한 작품(a memory piece)입니다. 저는 작가님이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현재 작업실로 쓰고 있는 그 분교에 살았거나 분교로 찾아왔을 것으로 상상한 아이들의 모습이 작가님의 개인적인 기억과 뒤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기억이 일종의 혼합을 이룬 것이죠.”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얽힌 일종의 상상된 기억(imagined memory)이 함께 녹아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이 참으로 애틋한 이유는 여기 아이들이 이 흥미진진한 소풍을 떠나기 위해 가방을 메고 갈 준비를 모두 마친 모습으로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에게 이것은 상실의 기억이자 자신이 끝내 하지 못했던 무언가의 기억입니다. 그리고 칠판 그림의 상당수는 검은색을 바탕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뉴욕 스토리지에서 작품 촬영 중인 장우진 감독, 양정훈 촬영감독, 안준국 조감독
The Excursion That I Missed 08, 2009, Oil pastel on chalkboard, 46 3/4 × 140 1/4 × 1 1/2 inches (119 × 356 × 3.5 cm). 2026년 조수아 프로듀서 촬영.
엘리너 하트니: “그 작품에는 어쩌면 무척이나, 거의 슬프다고 할 수 있는 어떤 정서가 서려 있습니다. 마치 기억을 앞으로 끄집어내는 것처럼 그 형상을 어둠 속에서 빛으로 건져 올리고 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때로 이런 기억은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림에서 작가님은 일종의 상실된 기회를 두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 아이들이 겪은 상실 또한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 자라서 이미 어린 시절을 완전히 잃어버린, 아니면 그 분교에 살았거나 분교를 다녔던 아이들 말입니다. 그 시절은 이제 사라졌으니까요. 그렇기에 제 생각 속에 참으로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장우진: 김명희 작가님은 2000년 ‹김치 담그는 날›을 시작으로 ‹차 마시는 날›(2004) 같은 회화 작품 안에 직접 찍은 비디오영상을 보내기 위한 모니터를 설치하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엘리너 하트니: “그럼요, 김명희 작가님의 모든 작품에서 ‘시간’이라는 요소 전체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칠판과 분교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그것은 일종의 동시적인 시간(simultaneous times)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비디오 영상이 더해지면 또 다른 차원의 시간적 요소가 추가되는 것이죠. 따라서 작가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리가 가진 과거의 기억과 지식, 미래의 희망 덕분에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 스튜디오에서 작품 제작 중인 김명희 작가. 바닥에 놓인 모니터에 작가가 촬영한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Is God a Mathematician, 2026, Oil on chalkboard with LCD monitor, 44 1/2 × 68 1/2 inches (113 × 174 cm) 2026년 장우진 감독 촬영
엘리너 하트니: “따라서 회화 작품 안에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을 담아내는 것은 우리가 마주한 회화가 시간 속의 어느 한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순간 현재로 넘어와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회화를 고정된 시간으로부터 해방시켜 우리 자신의 경험 속으로 걸어 들어오게끔 도와주는 것이죠. 관람객으로서 우리 역시 우리만의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움직이는 영상과 정지된 이미지를 동시에 바라보며, 우리는 이 모든 시간이 얼마나 동시적으로 공존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장우진: 2002년도 작품 ‹강요된 유전›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엘리너 하트니: “자작나무가 나오는 작품 말씀이시군요. 네, ‹강요된 유전(Forced Dislocation)›라는 그림은 일종의 한국인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특히 전 세계로 뻗어 나갔지만, 고향을 잃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구소련 지역 고려인에 관한 기억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작나무 숲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어떤 면에서 거의 갇혀 있는 상태나 다름없어 보입니다.”“김명희 작가님의 작품 중 상당수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작품만큼은 자신이 정말 속할 수 있는 집이나 터전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어떤 슬픔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도 일종의 ‘동시적 존재(simultaneous existences)’라는 개념이 녹아 있는 셈이죠. 타지에 머물면서도 고향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김명희 작가님에게는 무척 중요하지만, 동시에 고향을 잃어버렸기에 이 이질적인 공간에 갇혀 버린 듯한….”“일종의 현실에 갇혀 버린 듯한 느낌 말이죠. 그래서 사실 그 작품은 정말 가슴 애틋한(poignant) 작품입니다.”
Forced Dislocation, 2002, Oil pastel on chalkboard with LCD monitor, 3.9 × 27.2 feet (120 × 830 cm)
장우진: 그것과 관련해서 작가님은 선생님의 삶을 앰뷸런트(ambulant)적이라 하시더라고요. 노매드(nomad)와 차별화되는 앰뷸런트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엘리너 하트니: “앰뷸런트(ambulant)요? 걸어 다니는 사람이나 이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겠네요, 그렇죠? 제 생각에 김명희 작가님은 여러 곳에서 편안함(at home)을 느끼는 분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실제로 여러 곳에서 살아왔고, 도시 세계와 시골 세계 모두에서, 그래서 서구 사회인 뉴욕과 한국 모두에서 편안하게 녹아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유목민(nomad)은 정착할 집이 없다고 느끼는 반면에 어쩌면 작가님은 자신에게‘많은 집’이 있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유목민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장우진: 어디에 있든 끊임없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자신만의 자리가 언제나 마련되어 있는 셈이죠.
엘리너 하트니: “맞아요. 유목민(nomad)은 그 어떤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반면에 작가님은 여러 곳에 온전히 속해 있는 셈이죠.”
장우진: 집이 없는 것(homeless)이 아니란 말이죠.
엘리너 하트니: “네. 맞아요.”
장우진: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김명희 작가님의 작품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그와 함께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특별히 강조하거나 조명했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엘리너 하트니: “네, 제가 생각하고 있던 작품이 있는데요, 김명희 작가님은 아이들이 분수대(water spouts)에서 물놀이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여러 점 그렸습니다. 칠판의 어두운 검은색 바탕 위에 뿜어져 나오는 밝고 하얀 물줄기가 대조를 이루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죠. 저에게 이들 작품은 순수한 기쁨 그 자체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작가님의 작품 중 상당수에는 때로 슬픔이나 향수가 깃들어 있기도 하지만, 이들 그림만큼은 아이들이 느끼는 그 엄청난 ‘기쁨의 분출’만 온전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그림을 정말 사랑합니다.”
Forced Dislocation, 2002, Oil pastel on chalkboard with LCD monitor, 3.9 × 27.2 feet (120 × 830 cm)
장우진: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엘리너 하트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제 이야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아카이브 정보
생산자 [인터뷰/인터뷰어/인터뷰이]#1
형태 문서
내용 인터뷰 영상 녹취록과 기타 자료(사운드, 영상, 사진 등)
편집 백지숙, 정순민
참여자 엘리너 하트니(Eleanor Heartney), 장우진
작품 사진 및 자료 출처 김명희, 김차섭 기념사업회
이 사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의 ‘2026년 시각예술창작산실’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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