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마주하는 마음은 다양하죠. 두렵기도 설레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우리를 바꿔가기도 합니다. 김동희는 변화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주변을 바라보고 어떤 현상에 멈칫하는지 자신을 관찰하는 게 우선이고, 그다음 전시 장소를 충분히 탐색해요. 공간에 머무르고 충분히 탐색하고 공간의 동선을 만드는 구조나 재료, 조도나 소리 등의 연결을 끊어보거나 새로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공간의 다양한 요소에서 실마리를 얻고 우연성을 발견하는 거죠. 도면과 실현 사이를 잇는 건 오롯이 김동희의 몫이고요. 최근 오래된 한옥에 침투한 듯 안착한 작업처럼 우연하고 유연한 세계를 만드는 김동희의 작업을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흰 계단›, 2026, 목재에 방수페인트 도장,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김동희입니다. 저는 공간이 지닌 요소를 활용해 작업하는 미술작가로, 전시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운경고택에서 «다시 도착한 집»이라는 전시명으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개인 작업 공간이 필요해서 안 쓰는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딘가에 비어 있는 공간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여러 공간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실제로 어떤 공간을 정하면 용도를 바꿔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 동안 구조 그 자체로서 공간, 사회 안의 공간, 다른 기능을 상상할 수 있는 조건을 발견하고 조율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인테리어 현장에 일을 하러 나가면서 보고 배운 것들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주하게 된 일들을 해결하다 보니 뭔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그 직능으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와 전시에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흰 선›, 2026, 철 파이프에 에나멜 페인트 도장,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 공간은 여러 군데로 분산되어 있는 편인데, 필요에 따라 늘렸다 줄였다 하고 있습니다. 우선 디자인 업무가 가능한 사무실 공간이 조금 필요하고, 작품 제작을 실험하기 위한 작업장과 규모가 꽤 큰 작업 부산물 창고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고정된 사무실과 작업장이 있지만, 꽤 오랜 시간 서울의 넓고 싼 지역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함께 일해 준 친구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작업 부산물이 많을 때는 컨테이너 창고 5~6개 분량을 채우기도 했고, 지금은 작업장 한편에 창고를 두고 컨테이너는 1개만 임차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곧 현재 진행 중인 전시가 끝나면 컨테이너를 몇 개 더 빌려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흰 선›, 2026, 철 파이프에 에나멜 페인트 도장,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육분원을 위한 굴토›, 2026, 방수목재에 방수페인트 도장,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검은 선›, 2026, 방청 페인트가 도장된 철 파이프에 에나멜 페인트 도장,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지도 병합›, 2026, 체리, 비치, 하드메이플, 레드오크, 히노키, 월넛 원목에 화이트오일 마감,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수없이 떠다니는 이미지와 평소에 지나치는 여러 가지 사물이나 현상을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평소처럼 지나가다 특별해 보이는 순간을 마주하는데, 그 순간순간이 가장 큰 영감인 것 같습니다. 내가 어디에 갑자기 멈추고 기록하는지 그 기록을 다시 살펴봅니다.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계절이 달라지고, 날씨가 달라지며, 시간이 변하면서 생기는 차이도 지켜봅니다. 주로 어떤 것이 멈춰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서서히 움직이는 상태에서 포착된 순간을 기억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에는 여러 가지 채널이 있고, 작업마다 과정이 다르지만, 공간을 기반으로 삼는 작업을 압축해서 설명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그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가능하면 직접 걸어보고, 둘러보고, 넘어보고, 만져보고 하는 행동을 합니다. 또 한동안 지켜보면서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구분해 보기도 합니다. 구조나 재료, 조도나 소리, 계획된 동선과 가지 못하게 막아둔 곳들을 살피며 항목을 없애 보거나 서로 연결 지어 봅니다. 공간 자체가 지닌 다양한 요소를 생각에 담아두고 컴퓨터 도면 위에 여러 가지 옵션을 얹어봅니다. 과거에 생성한 도면에서 연결 지을 수 있는 것들도 살피고, 새로 만든 도면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지점도 살핍니다. 긴 시간 도면을 다듬고 나서 그것을 실제 공간으로 불러들여 그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만들어졌을 때 어떤 것이 되는지 다시 고민을 시작합니다. 도면과 실현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조정하거나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최종 계획을 업데이트합니다.
‹뒤집힌 다락›, 2026, 목재에 방수페인트, 금속 파이프, 레코딩 아티스트 김영선의 사운드,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흰 계단›, 2026, 목재에 방수페인트 도장,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운경고택에서 열린 개인전 «다시 도착한 집»을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이 하나의 전시이자 하나의 작품은 다시 16개 세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공간의 요소를 재료 삼아 작품으로 만들었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치하고 구현했습니다. 지형을 다루거나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동선과 시선을 재구성하거나, 구조를 변형하거나, 덧붙여 만들어 낸 구조물입니다. 대표적으로 고택의 실내와 실외를 연결하는 작업인 ‘흰 계단’은 한옥이 지닌 실내외 경계의 모호성에서 출발합니다. 작업의 형태를 이루는 방법은 과거의 개인전 «3 볼륨즈»에서 가져왔지만 그 기능은 운경고택에서 더 분명히 보이게 됩니다. 한옥이 지닌 실내외 경계에서 신체가 수행해야 하는 움직임인 신발을 벗는 행위는 그 경계를 구분 짓기도 합니다. 흰 계단은 그 행위가 일어나는 위치와 경험에 변화를 줘 경계가 침범되는 상태를 만들어 주는 구조이자 작업이 됩니다.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작업을 통해 무엇을 강조한다기보다는 작업을 만들어 가면서 계속해서 고민을 더해 가는 편입니다. 근래에는 구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조건과 선택이 있고, 그런 조건을 드러내거나 흐트러뜨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업이 실재하는 구조로 완성되고 난 이후에 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독립적 조각이라고 하기에는 완전치 않은 상태의 그것이 그 상태 그대로 혹은 어떤 변화를 통해 조각적 이동이 가능한지를 두고 계속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이 지닌 요소를 탐색하던 중 특히 이 오래된 건물이 지니고 있을 시간이라는 요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이 새로운 고민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들 고민이 작업 곳곳에 붙어 있어 순간순간 드러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뒤집힌 연못›, 2026, 스티로폼 CNC, 원단, 촬영 이종근, 제공 운경재단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오랜 시간 정성으로 관리되고 있는 한옥에서 그 공간의 구조에 잘 어울려 안착한 상태가 만족스럽습니다. 적합한 균형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썼는데, 스스로 만족스러운 상태의 균형을 이룬 것 같습니다.
‹해변›, 2024, 옛 전남도청 건물 조각, 모래, 천막지, 촬영 김사윤, 김선우,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망루›, 2024, 금속 파이프, 목재 패널, 촬영 김사윤, 김선우,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망루› 내부, 2024, 금속 파이프, 목재 패널, 촬영 김사윤, 김선우,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프랍서울이라는 전시공간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작업과 일 사이에서 맡은 일에 따라 일정이 크게 달라져 규칙적이지 못한 일상을 보내지만 그 안에서 적절한 휴식과 행복을 찾습니다. 5세 아들과 잘 놀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작가님이 관심을 가장 많이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작업과 일, 행복한 일상 사이의 균형입니다.
«오프 더 화이트: 주름과 망루» 전시전경, 2026,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제공 일민미술관
«오프 더 화이트: 주름과 망루» 전시전경, 2026,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제공 일민미술관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여러 가지 가능성과 조건을 열어두고 변화하는 환경에 반응하는 편입니다. 작업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명확하게 규정하기보다는 실제 상황에서 생기는 변화가 작업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합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문제는 늘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잘 해결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능한 한 차분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마음이 복잡해지면서 감정적인 문제가 일상에 영향을 끼칠 때도 있지만, 그 역시 필요한 도움을 받으며 잘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만들어 낸 작업을 잘 보관하는 것과 또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데는 더 큰 규모의 작업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Hide Edge» 전시전경, 2025, 촬영 이의록, 제공 YPC SPACE
‹탑뷰_1›, 2025, mdf에 우레탄 도장 블럭, 갈바판에 투명 도장, 아연판에 투명 도장, CR강판에 투명 도장, 구로철판에 투 명 도장, 스텐레스 판, 뮤지엄겔, 215.6×70×55 cm, 촬영 이의록, 제공 YPC SPACE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는 요즘 내가 언제까지 유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도킹(Docking)› 드론 영상기록, 2024, 옥상(11m x 55m) 내 과거 작업들로 구성, 촬영 엽태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도킹(Docking)› 드론 영상기록, 2024, 옥상(11m x 55m) 내 과거 작업들로 구성, 촬영 엽태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나 일을 시도하고 병행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집중력이 분산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서로 다른 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데, 그 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방향이 생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일단 직접 해 보고 실제 상황 속에서 수정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것과 만드는 것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공간을 잘 풀어내고, 영민하게 생각하며, 무엇보다 플랫폼으로서 유용했던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Artist
Donghee Kim 김동희(@kdheecom)는 서울에 거주하며 현대미술 작가이자 전시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공간을 하나의 완성된 형태보다 그것을 성립시키는 다양한 조건과 관계의 집합으로 바라보며, 공간을 이루는 요소를 변형하거나 구조를 재배치해 익숙한 장소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경험하게 하는 작업을 전개해 왔다. 2010년대 초반부터 프리홈 프로젝트, 나열된 계층의 집, 오페라코스트, 23층, 웨스트 웨어하우스, 아시바비젼 등의 임시 전시 공간을 만들고 운영했으며, 2020년부터 전시 공간 Hall 1을 운영했다. 현재는 전시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PROP SEOUL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다시 도착한 집»(운경고택, 2026), «Hide Edges»(YPC Space, 2025), «Hall 2»(Hall 1, 2023), «pr,op»(pr,op, 2019), «3 volumes»(시청각, 2017), «나열된 계층의 집»(2014), «프리홈 프로젝트»(2011)등을 열었다. «Hall 2»로 2023년 제2회 서울예술상 시각 부문 포르쉐 프런티어상을 수상했다. 주요 전시로는 «오프 더 화이트: 주름과 망루»(일민미술관, 2026), «옥상 프로젝트 2024, 여기!»(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4), «아트스펙트럼 2022»(리움미술관, 2022), «다른 곳»(아뜰리에 에르메스, 2020), «하나의 사건»(서울시립미술관, 2020) 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