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Essay

쿠소영화를 위한 관객 - ‹무서운집›을 찾아온 관객들

Writer: 박동수
[BA]박동수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2015년 7월 30일, 단 한 번의 상영. 박동수는 어딘가 이상한 공포영화 ‹무서운집›을 관람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집에 혼자 남은 중년 여성이 마네킹 귀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후 아연실색하며 집이 있는 5층으로 한달음에 달아나는 장면은 영화의 특징처럼 반복되고, 주인공 구 여사의 일상을 따라 침투한 마네킹 귀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공포보다는 쿠소에 가깝죠. 장르영화가 탄생하기 어려운 한국에서 장르영화의 모든 흐름을 무시한 ‹무서운집›의 누적 관객 수는 1,039명에 불과하지만, 박동수 영화평론가는 영화 속 엉성한 상황과 다소 이질적인 연기의 총합이 바로 한국판 컬트영화이자 쿠소영화라고 분석합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폐기한 장르를 마음대로 연출한 감독의 존재와 실패를 기꺼이 바라볼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있기 때문이고요, 실패를 용인하는 소수가 한 장르의 존속을 끌어온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BA]박동수_2

‹무서운집›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2015년 여름 유튜브에 영화 예고편 하나가 올라온다. “제작 무서운영화”라고 등장한 굴림체의 자막,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올라가는 아주머니, 윈도우 무비 메이커라는 고대의 편집 툴로 제작된 듯한 퀄리티. “뉴타입 호러”라는 이유 모를 자신만만한 자막, 별다른 가구도 없는 집의 모습. 7월 30일, 이 영화는 (지금은 없어진)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단관 개봉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 만에 극장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8월 8일 재개봉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살 여름방학을 맞은 나는 광복절 하루 전날 극장을 찾았다. 상영관 앞에서 로투스 크래커를 나눠주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 영화는 일종의 먹방이다.” 그렇게 나는 ‹무서운집›을 극장에서 본 (영진위 통계 기준) 1,039명의 관객 중 한 명이었다. 이 경험은 정말 특별하다. 단지 ‘‹무서운집› 극장 관람’이란 한정판 경험을 얻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이게 컬트영화지!”라고 말하던 상영관의 아저씨를 기억한다. 내 생각도 그 아저씨와 같았다. 이 영화는 10년 뒤에도, 어쩌면 그 이후에도 기억에 남을 영화였다.

‹무서운집› 예고편

컬트영화는 종종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컬트영화는 장르가 아니다. 컬트영화는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의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Plan 9 From Outer Space, 1959)나 토미 웨소의 ‹더 룸›(The Room, 2003)처럼 너무 못 만들어서 관객들의 지지를 받는 영화일 수도, ‹록키 호러 픽쳐 쇼›(Rocky Horror Picture Show, 1975)나 ‹이레이저 헤드›(Eraserhead, 1977)처럼 캠피하거나 기괴한 비주얼에 매료된 관객이 꾸준히 극장에 몰려든 결과일 수도 있다. 구회영(김홍준 감독의 필명)은 저서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1991)에서 “컬트영화는 정의될 수 없고, 정의되어서도 아니 된다.”(229쪽)라고 쓰고 있다. 컬트영화는 무언가로 정의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 관객이 뜻밖에 선사하는 호응과 지지를 통해 성립하는 범주다. 그렇기에 모든 면에서 엉망진창인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의 영화도, 거칠지만, 영화사의 걸작으로도 불리는 영화를 만들어낸 데이빗 린치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도 컬트로 불린다. 김기영의 ‹하녀›(1961)가 1990년대 한국 시네필의 지지를 받으며 컬트로 재발견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BA]박동수_5
[BA]박동수_6
[BA]박동수_7

컬트영화로 자주 언급되는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더룸›, ‹록키 호러 픽쳐 쇼›, ‹이레이저헤드› 스틸컷. 얼마 전 ‹록키 호러 픽쳐 쇼›의 주인공 프랭크 역의 팀 커리가 세상을 떠났다. R.I.P.

‹무서운집›은 그러한 컬트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앞서 예고편을 묘사하긴 했지만, 본편은 더욱 범상치 않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진가와 사진가의 아내가 새집에 이사온다. 1층엔 스튜디오가 있고 5층엔 그들의 집이 있다. 남편이 출장 간 사이, 홀로 남은 아내는 심심해한다. 그러던 중 스튜디오에 있던 마네킹이 귀신에 씌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하층 스튜디오와 5층 집을 오가며 귀신과의 사투를 벌인다. 다만 이런 줄거리 설명으로는 ‹무서운집›을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

‹무서운집›은 리듬의 영화다. 어떤 리듬? 우리가 공포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박살 내는 리듬.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네킹 귀신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내 영화는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린다. 피곤해서 귀신이 보이는 거라는 둥 이런저런 혼잣말을 꺼내던 주인공 구 여사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요리를 시작한다. 짜장라면을 끓여 먹고, 로투스 크래커에 믹스커피를 마신다. 그러더니 각종 식재료와 대야를 꺼내 김장을 시작한다. 막말로, ‹무서운집›을 관람하는 동안 우리는 배추겉절이 레시피를 배울 수 있다. 귀신이 다시 나타난다. 홀로 남은 집에서 노래 “베사메무초”에 맞춰 춤추던 구 여사를 따라 귀신도 춤을 춘다. 구 여사가 잠을 청하자, 침실에도 귀신이 나타난다. 구 여사 특유의 비명, 포스터에도 사용된 그 표정은 정말 아이코닉하다. 그 표정이 등장하기까지, 혹은 그 표정을 유지한 채로 영화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있다. 지하층에서 5층까지를 오가는 계단이다. 평범한 공포영화라면 간단히 스킵했을 장면이지만, 이 영화는 지하층부터 5층까지 오르내리는 과정을 다 보여준다. 남편과 함께 5층의 집으로 향하는 구 여사의 모습에서부터, 귀신을 피해 집으로 달려 올라가는 구 여사, 혹은 뭔가에 사로잡혀 계단에서 제자리뛰기를 하는 구 여사까지, 계단은 그가 사는 빌라를 ‘귀신 들린 집(haunted house)’로 만들어 내는 주요한 공간이다. 귀신이라는 존재가 자아내는 공포를 조성하려는 리듬은 온데간데없고, 영화는 우리를 자꾸만 쿠소의 샛길로 인도한다.

[BA]박동수_8
[BA]박동수_9
[BA]박동수_10
[BA]박동수_11

‹무서운집›의 장면들. 김장하는 장면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만 떼어놓고 본다면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라곤 잘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이상한 영화 만들기는 감독이자 사진가 남편 역, 귀신 목소리 역으로 출연하기도 한 양병간 감독의 전작에서도 드러난다. ‹무서운집› 이전의 연출작은 세 편이다. 그중 다소 전형적인 드라마 ‹피조개 물에 오르다›(1985)와 어딘가 아침드라마스러운 ‹태양 속의 남자›(1994)는 잠시 뒤로 미뤄두자.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일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는 에로영화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 아낙네들이 서로 갖고자 싸움을 벌이는 나무 공이가 남자 주인공이다. 커다란 나무 딜도의 형상을 한 이것은 밤자리를 하고자 주문을 외우는 여성 앞에서 두툼한 변강쇠의 모습으로 변한다. 심지어 마을 원님도 주문을 외웠다가 나무 공이와 동침하게 된다. 류승완이 1970년대 만주웨스턴을 보고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을 만든 것처럼, 양병간은 1980년대 한국의 토속 에로영화, 김수형의 ‹산딸기›(1982)나 이두용의 ‹뽕›(1986), 김기의 ‹화녀촌›(1985) 같은 영화를 보고 자기 멋대로 재조립한 셈이다.

[BA]박동수_12

그림 4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포스터. “SF적 에로시티즘”이라는 문구와 흰소복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대비된다.

한국에서는 특정 장르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르의 실패 속에서 쿠소영화가 등장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한국 영화사에서 장르의 생애주기는 매우 짧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끌었던 여귀(女鬼) 공포영화는 1970년대로 넘어가며 자취를 감추고, ‹팔도 사나이›(1969)에서 촉발된 협객물 또한 1980년대 들어 사라진다.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주웨스턴도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 같은 몇 편의 대표작을 남기고 사그라든다. 1980년대 3S 정책의 결과로 부흥했던 에로영화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까지 어느 정도 명맥을 이어가던 에로영화는 21세기 들어 자취를 감춘다. 한국 영화사를 공부하다 보면 영화사 전체를 관통하는 장르의 전통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정 장르가 끝나갈 무렵, 관객은 물론 제작자도 양산되는 태작 사이에서 소수의 걸작과 흥행작을 되짚어 보며 “쯧쯧”거리며 새로운 노다지를 찾아 떠나간다.

1970년대부터 스크립터와 조감독으로 활동했고 1985년 감독으로 입봉한 양병간 감독은 짧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충무로라는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생존 본능의 감각을 체득하고도 남는 시간 동안 영화인으로 살아왔다. 한국영화 100주년 프로젝트로 제작된 초단편 옴니버스 ‹100×100›(2019)에서 양병간은 ‹충무로전성시대›라는 단편으로 참여했다. 예전의 사무실과 극장은 사라지고 “OOO 터”와 같은 표지석만 남은 충무로와 종로 일대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가 담아낸 충무로는 할리우드와 같은 “꿈의 공장”이라기보단 (역시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을지로 일대의 소규모 공장이나 인쇄소의 모습과 비슷하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영화의 유산보단 살아남기 위해 시류에 올라타고 정책에 적응해 온, 군부독재와 민주화, 저개발과 신자유주의를 모두 맛본 땅의 변화를 목격한다.

[BA]박동수_13
[BA]박동수_14

1996년 사실상의 검열제도인 사전심의가 위헌 결정을 받은 뒤 명시적인 검열제도는 사라졌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사이 온라인을 휩쓸었던 엽기코드와 더불어, 충무로에서건 독립영화에서건 엽기적이고 수위 높은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츠카모토 신야 등에게 영향받은 듯한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와 웨스 크레이븐의 슬래셔를 끌어온 ‹씨어터›다.

2000년대 초 사전심의 폐지라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나 ‹씨어터›(2000)처럼 고수위의 장르영화가 잠시 쏟아져 나오다 2010년대 들어 사라진 것처럼, 한국영화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기존의 장르를 폐기하고 새로운 장르를 발굴하길 반복해 온 역사에 가깝다. 그렇기에 한국에는 장르영화가 자리 잡지 못했고, 한국 장르영화의 팬이 자리 잡지 못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쿠소영화가 무수히 양산되는 장르영화 속에서 뭔가 특출난 ‘구림’과 ‘실패’를 통해 발굴되는 영화라면, 한국에서 쿠소영화는 어쩌다 한 번씩 돌출해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기형종에 가깝다.

21세기의 관객에게 ‘쿠소영화’로 재발견되는 양병간의 영화는 장르의 지속이 불가능한 땅에서 등장한 희귀한 사례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가 에로영화라는 장르의 끝물에서 등장한 일종의 자기 패러디의 사례로 비디오 시장에서 흥행을 거뒀다면, ‹무서운집›은 1960년대 여귀 공포영화와 그것을 TV 시리즈로 복각한 ‹전설의 고향›(1977~1989)을 2010년대 한복판에 소환함으로써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자가 양산되던 장르 막바지에 등장한 괴작이라면, ‹무서운집›은 장르영화의 흐름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만들어진 영화에 가깝다. 난데없이 골방 백수들을 우주로 보내버린 이응일의 ‹불청객›(2010)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무서운집›은 2000년대 내내 ‹여고괴담›(1998)의 성공을 반복하거나 옆 나라의 J호러를 시샘하듯 곁눈질로 훔쳐보길 반복했다. ‹무서운집›은 그런 상황에 놓인 충무로 위에 태연자약하게 등장한다. 단관 개봉 하루 상영이라는 극악의 관람 조건을 뚫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 있었고, VOD 시장으로의 직행이 예정되어있던 영화는 상영관을 늘려 재개봉해 1,000여 명의 관객과 만났다. 이는 새로움을 바라던 관객의 욕망과 맞아떨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충무로가 자꾸만 폐기한 장르를 마음대로 주물러 보겠다는 양병간의 결심을 통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BA]박동수_15
[BA]박동수_16

‹무서운집›을 보러 갔던 2015년 8월 14일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의 풍경. 지금은 폐관한 극장이기에, ‹무서운집›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 공간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무서운집› 같은 컬트 쿠소영화가 다시금 등장할 수 있을까? 그러자면 한국에서 장르영화가 어떤 상황인지를 우선 이야기해야 한다. 연재에서 다룬 영화,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 ‹데드 스시›, ‹샤크토퍼스›, ‹곰돌이 푸: 피와 꿀›은 한 국가의 영화시장 안에서 수십년 이상 소비하고 제작해 온 장르와 산업의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 제작자와 관객이 함께 형성하는 장르와 시장에서 무수한 범작을 양산하고 난 뒤에야 그 안에서의 실패를 ‘쿠소영화’라는 가치로 바라볼 수 있다. 나는 ‹무서운집› 같은 한국 쿠소영화가 다시금 컬트적 인기를 끌길 기대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러한 영화가 나왔을 때 컬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관객을 기대한다. 어쩌면 「쿠소영화를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한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쿠소영화에는 영화만큼이나 그것을 발견하는 관객이 필요하다.

[BA]박동수_17

Writer

박동수 평론가(@dsp9596)는 제3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비평상과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영화와 게임을 주로 다루지만 종종 미술이나 방송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료 평론가들과 함께 영화비평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크리틱›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명의 비평집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첫 단독 에세이 『쿠소필리아』(2026)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