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여러분은 ‘왜 초록불에 길을 건너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 있나요? 초록불은 ‘초록’과 ‘불’이라는 단어의 조합일 뿐이지만, 사회 안에서는 보행자의 안전을 뜻하는 거대한 상징으로 작동하죠. 이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사실의 이면에는 반복되는 이야기와 약속이 공존하고, 우리는 그 약속을 굳게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사실과 믿음 사이, 그 빈틈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양하 작가는 익숙한 풍경이 문득 생소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해 냅니다. 일상에서 알 수 없이 맴도는 이미지와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이는 것이죠. 반복되는 작업 과정 속에서 폭발의 잔상이 어느새 꽃이나 구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처럼, 작가는 대상이 기묘하게 뒤엉키는 그 찰나를 포착해 냅니다. 우리가 믿어온 세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흔드는 양하 작가의 이야기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시겠어요?
‹0.1%의 애정만 더 있다면,_1›, 2026, 캔버스에 과슈, 유채, 아크릴, 120×90 cm, 사진 Benjamin van de Veen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그림을 그리는 양하입니다. 주중 3일은 창작자로, 다른 3일은 연구소 직원으로 살고 있어요. 남은 하루만큼은 자유인으로 살려고 노력 중이에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술을 그저 좋아하던 어린이였는데요, 한 일화를 계기로 그림을 계속 그려야겠다는 마음이 굳건해졌어요. 어느 날 한 남자애가 제게 버디버디 메신저로 성희롱적인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기분 나쁜 말이라는 건 느낌으로 알겠더라고요. 울면서 미술학원에 갔는데 선생님께서 꼭 안아주시면서 그림을 그리면 나아질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렸는데 정말 신기하게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어요. 그때부터 마음을 먹었던 걸로 기억해요.
복층 계단에 올라 내려다 본 작업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예전에 치과대학으로 쓰이던 공간이에요. 지금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건물이지만 여러 창작자의 작업실과 클럽, 학생 주거 공간이 함께 있는 버라이어티한 곳이랍니다. 지금은 고빈 작가님과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어요. 층고가 약 4미터 정도로 높아요. 페인터에게 딱인 공간이랍니다. 복층도 있어서 가끔은 복층 계단에 올라가 저의 작업을 보곤 해요. 가끔은 작업실에 옆 방 고양이가 찾아오는데, ‘오늘도 요 꼬마를 마주칠 수 있을까’라는 설렘으로 작업실에 갑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의 영감은 평소에 반복해서 보는 이미지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편이에요. 뉴스 장면이나 인터넷 이미지, 스크린숏처럼 우연히 접한 이미지들을 사진 폴더에 저장해두기도 하고, 미신이나 괴담, 음모론처럼 사람들이 믿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찾아봐요. 그림을 그릴 때는 팟캐스트나 시사 뉴스를 들어요. 사실 그 자체보다 이미지나 이야기가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같은 사건을 보고 어떤 사람은 불안해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갑니다. 어떤 이미지는 반복해서 소비되면서 원래의 맥락보다 형태나 분위기만 남아요.
작업할 때도 처음부터 의미를 정해두기보다는 왜 이미지가 계속 눈에 들어오는지 생각하는 편이에요. 작업에서 자주 보이는 폭발의 형태도 처음부터 하나의 상징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반복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구름과 꽃, 빙수 같은 형태와 닮아가기 시작했어요. 제게 영감이란 특별한 순간에 번쩍 떠오르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알 수 없이 맴도는 이미지나 이야기, 감정을 오래 붙잡고 보는 행위에 더 가까워요.
‹그럼 도대체 가까운 곳은 어디지?_1›, 2026, 캔버스에 과슈, 유채, 아크릴, 120×100 cm, 사진 Benjamin van de Veen
‹내 진정 사모하는_9›, 2023, 연필, 목탄, 아크릴, 패브릭, 나무 손, 마이크 스탠드, 못, 물, 비닐봉지, 구슬, 선캐쳐, 시계, 가변설치, 사진 이의록
‹0.1%의 애정만 더 있다면,_1›, 2026, 캔버스에 과슈, 유채, 아크릴, 120×90 cm, 사진 Benjamin van de Veen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을 할 때는 어떤 이미지나 장면이 나를 건드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해 보는 편이에요. 바로 의미를 정하기보다는, 먼저 사진을 수집하고 메모를 하고 작은 드로잉을 그려봐요.
최근에 개기일식을 보러 갔어요. 퇴근하고 바로 가느라 피곤하고 심드렁했는데, 안경을 끼고 달과 해가 겹치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일식을 보며 수많은 전설을 만들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에 어떤 기운이나 의미가 있다고 믿는 걸까 싶었어요.
달과 해가 완전히 겹치는 순간에 이상하게도 달의 볼륨이 느껴졌어요. 일식 안경을 통해 보고 느낀 것은 과연 ‘진짜 내가 느낀 것일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구 평평설을 믿는 사람들부터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카메라와 채반을 들고 한곳에 모인 사람들까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을 이렇게 움직이는 이 이야기는 대체 뭘까하고 궁금하기도 했어요. 이제 드로잉으로 그려 볼 차례예요.
‹울라고 만든 장면인데 울어야지, 뭐_63›, 2025, 캔버스에 과슈, 유채, 아크릴, 150×130 cm, 사진 Sergel Babasjants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에는 회화 안에서 다뤄왔던 이미지와 구조를 현실 공간으로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 작업 중 하나가 2025년 포르투갈 PADA 레지던시에서 만든 ‹Heavy Reverie› 연작이에요. 레지던시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타일이나 벽돌처럼 그 장소에서 발견한 재료를 모았고, 이것들을 쌓아서 기둥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벽돌은 근처의 오래된 군수공장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라고 상상하기도 했는데, 실제 역사와 제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엮이면서 마치 가상의 고고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버려진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Heavy Reverie_1›, 2025, 나랑 챗지피티가 추정하길 리스본의 군수공장에서 만들어진, 오염된 공원에서 발견한 벽돌, 문 닫은 스낵샵에서 수집한 타일, PU폼, 나무, 249 × 36 × 38 cm, 사진 Ricardo Gonçalves
‹Heavy Reverie_2›, 2025, 나랑 챗지피티가 추정하길 리스본의 군수공장에서 만들어진, 오염된 공원에서 발견한 벽돌, 문 닫은 스낵샵에서 수집한 타일, 연필, PU폼, 나무, 248 × 33 × 33 cm, 사진 Ricardo Gonçalves
‹Heavy Reverie_3›, 2025, 나랑 챗지피티가 추정하길 리스본의 군수공장에서 만들어진, 오염된 공원에서 발견한 벽돌, 문 닫은 스낵샵에서 수집한 타일, 연필, PU폼, 나무, 145 × 32 × 34 cm, 사진 Ricardo Gonçalves
‹Heavy Reverie_1›, 2025, 나랑 챗지피티가 추정하길 리스본의 군수공장에서 만들어진, 오염된 공원에서 발견한 벽돌, 문 닫은 스낵샵에서 수집한 타일, PU폼, 나무, 249 × 36 × 38 cm, 사진 Ricardo Gonçalves
그해 여름 네덜란드 비르머 스쿨에서 만든 ‹Heavy Reveries›는 이 기둥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어요. 전시장으로 사용되는 오래된 학교 건물에서 발견한 나무나 거울, 벽돌의 흔적, 버려질 예정이었던 종잇조각 등을 가져와 길고 가느다란 구조물을 만들고, 그 표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의 회화 작업에서 표현했던 폭발이나 건축적인 형태가 기둥의 표면으로 옮겨가기도 했어요.
여러 기둥을 함께 세워 놓으면 작은 도시나 건축물처럼 보이는데, 저는 그 모습이 단단하고 위압적으로 보이는 동시에 매우 가볍고 불안정하다는 점에 재미를 느껴요. 그동안 회화 작업에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폭발과 재난의 이미지를 평평하고 부드럽게 바꾸어왔다면, 이 작업에서는 그 불안정한 이미지를 실제 구조로 세워 보았습니다. 관객은 회화 작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게, 기둥 사이를 걸어 다니며 각기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최근에는 어떤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 그 자체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실제로 있었던 일과 제가 상상해서 덧붙인 이야기, 회화와 조각, 아름다운 것과 불안한 것처럼 서로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꽤 가까이 붙어 있다고 느껴요.
작업물에도 어느 한쪽으로 명확하게 읽히지 않는 그 상태를 남겨두려고 해요. 폭발을 반복해서 그리다 보면 꽃이나 구름처럼 보이기도 하고, 버려진 벽돌이나 나무로 만든 기둥이 무겁고 단단해 보여도 실제로는 가볍고 불안정한 것처럼 말이죠. 모순된 감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순간이 재미있어요.
관객에게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익숙하거나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거나, 반대로 불안하게 보였던 이미지에서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여지를 작업에 남기고 싶어요. 경계가 잠깐 흔들리는 그 순간이 최근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울라고 만든 장면인데 울어야지, 뭐_38›, 2023,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49.5×109 cm, 사진 Madeline Swainhart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매 순간이 만족스럽고 매 순간이 불만족스러워요. 이걸 참아가며 해야 하는 것이 작업 아닐까요? (하하)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월, 화, 수요일에는 연구소에서 HR 담당으로 세금 업무와 인사 업무를 함께 하고 있어요. 창작과는 꽤 먼 일이지만, 오히려 작업에서 잠깐 떨어져 있는 시간이 리프레시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엔지니어들이 실험을 하는 모습이나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거나 연구소에 있는 기계들을 관찰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영감을 얻을 때도 있어요.
이번 10월 한남동 ‘FIM’에서 개인전을 여는데요, 회사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어요. 서울에서 창원으로 기계를 옮길 때 사용했던 컨테이너 박스에 방수포가 덮힌 모습을 보게 됐는데, 그때 그 재료를 가져와 기둥 형태의 작업물을 만들고 있어요. 작년에 만든 기둥 작업물이 나무판 위에 직접 드로잉을 그리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된 방수포의 표면과 흔적 자체를 작업으로 가져오는 방식을 활용했어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창작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른 환경이 새로운 재료와 형태를 보게 만들고, 또 다른 창작 욕구를 일으킨다는 점이 재밌어요.
목, 금요일과 주말에는 작업실에 갑니다. 오전부터 집중해서 작업하는 편이고, 따로 쉬는 시간을 정해두지는 않아요(물론 중간중간 딴짓은 하지만). 그렇게 작업하다가 오후 5시가 되면 직장인처럼 퇴근합니다. 운동은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하려고 해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캔버스를 들 수도 없고, 그림 앞에 오래 서서 작업할 수도 없거든요.
‹Heavy Reverie_6›, 2025, 나무, 연필, 빛을 만들던 기계의 일부분, 학교의 일부분이 되길 기다리는 벽돌의 흔적, 236 × 25 × 25 cm, 사진 이강준
‹Heavy Reverie_5›, 2025, 나무, 연필, 종이 장난감이 되었어야 하는 종이, 학교의 일부분이 되길 기다리는 벽돌의 흔적, 185.5 × 25 × 42 cm, 사진 이강준
‹Heavy Reverie_7›, 2025, 나무, 연필, 종이 장난감이 되었어야 하는 종이, 학교의 일부분이 되길 기다리는 벽돌의 흔적, 누군가를 비췄던 거울, 210 × 26 × 35 cm, 사진 이강준
‹Heavy Reverie_7›, 2025, 나무, 연필, 빛을 만들던 기계의 일부분, 134 × 24 × 42 cm, 사진 이강준
‹Heavy Reverie_6›, 2025, 나무, 연필, 빛을 만들던 기계의 일부분, 학교의 일부분이 되길 기다리는 벽돌의 흔적, 236 × 25 × 25 cm, 사진 이강준
‹Heavy Reverie_5›, 2025, 나무, 연필, 종이 장난감이 되었어야 하는 종이, 학교의 일부분이 되길 기다리는 벽돌의 흔적, 185.5 × 25 × 42 cm, 사진 이강준
‹Heavy Reverie_7›, 2025, 나무, 연필, 종이 장난감이 되었어야 하는 종이, 학교의 일부분이 되길 기다리는 벽돌의 흔적, 누군가를 비췄던 거울, 210 × 26 × 35 cm, 사진 이강준
‹Heavy Reverie_7›, 2025, 나무, 연필, 빛을 만들던 기계의 일부분, 134 × 24 × 42 cm, 사진 이강준
‹울라고 만든 장면인데 울어야지, 뭐_41›, 2023,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 150×180 cm, 사진 김의선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무얼 믿고 믿지 않는지를 많이 생각해요. 최근에 네덜란드의 경계석을 찾아다녔는데, 길가에 놓인 작은 돌 하나를 기준으로 이쪽과 저쪽이 나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눈앞에는 돌 하나뿐이지만 돌이 가진 의미에는 소유권이나 행정구역, 국가처럼 우리가 함께 믿고 있는 거대한 약속이 있잖아요.
수태고지 이야기도 비슷한 이유로 들여다보고 있어요. 남자 없이 임신하게 된 마리아에게 천사가 그 사실을 알리는 아주 이상한 장면인데, 정작 저는 마리아가 그 순간 기뻤는지, 무서웠는지, 당황했는지가 궁금했어요. 그 이야기는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순결이나 순종, 모성과 연결된 여성의 이미지로까지 이어졌잖아요. 한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이미지를 실제로 만들어낸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그래서 가짜 뉴스나 음모론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요.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누구는 진실이라 믿으며 숭배하고, 누구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엇이 사실인지 아는 것과 그것을 믿는 일이 꼭 같은 건 아니에요. 반복해서 보거나 주변 사람들이 믿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이상했던 이야기도 점점 익숙해지니까요.
결국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사실과 믿음 사이의 거리예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진짜라고 받아들이고, 어떤 이야기를 가짜라고 밀어내는지, 그 판단이 개인의 것이면서도 얼마나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생각해요.
‹울라고 만든 장면인데 울어야지, 뭐_53›, 2024, 캔버스에 과슈, 유채, 아크릴, 130×100 cm, 사진 Paul Tucker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평소에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왜 내 마음이 불편할까’, ‘왜 나는 이 장면에 마음이 동할까’, ‘왜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믿을까’와 같은 질문들이요. 어떤 감정이나 상황이 생겼을 때 바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그 이유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편이에요.
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비슷해요. 어떤 이미지가 눈에 들어오거나 마음에 남으면 왜 이것에 반응하는지를 오래 들여다봐요. 그러다 보면 처음에 불편했던 감정이 뉴스나 종교, 집단적인 기억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제 작업에는 명확한 답보다는 질문이 더 많이 남아요. 그리고 그랬으면 좋겠고요. 아름답게 보이지만 왜 동시에 불안한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왜 사람을 움직이는가, 어떤 이미지는 왜 반복적으로 기억되는지와 같은 질문들이에요. 아마 저는 삶에서도, 작업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상태 자체에 관심이 가나 봐요.
‹울라고 만든 장면인데 울어야지, 뭐_38›, 2023,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49.5×109 cm, 사진 Madeline Swainhart
‹울라고 만든 장면인데 울어야지, 뭐_38›, 2023,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49.5×109 cm, 사진 Madeline Swainhart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무시하고 작업을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셔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는 작업을 위해서 어떻게 살면 좋을지를 주로 생각했어요.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어디에서 작업을 해야 할지, 어떤 전시를 기획해야 할지 같은 것들이죠. 요즘은 ‘작업하는 양하’ 말고, ‘현실의 양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생각하고 있어요.
작업을 계속하려면 돈도 벌어야 하고, 건강도 챙겨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작업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해요. 이전에는 이런 것들이 현실에서 작업을 방해하는 문제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을지 저울질하고 있어요. 쉽지는 않아요.
‹폭발을 위한 드로잉_20›, 2023,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29.4×99 cm, 사진 Madeline Swainhart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는데 꼭 대의가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한다’라는 마인드❗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어떤 창작자로든 기억되기만 해도 좋은 거 아닐까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상적인 미래가 없어진 지 오래예요. 그냥 내일 하루 잘 살면 좋겠어요.
Artist
Yang-ha 양하(@yang_ha.site)는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작업하는 페인터이다. 집단의 사건과 기억이 개인에게 도달한 뒤 어떤 이미지로 변형되고 남는지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Frank Mohr Institute에서 Painting 석사 과정을 마쳤다. 대표 전시로 개인전 «Unfake Fantasy»(Enseoul Gallery, 암스테르담, 2026), 개인전 «Open the Window»(OCI미술관, 서울, 2023) 등을 열었으며, 최근에는 회화의 이미지가 벽을 벗어나 기둥과 같은 구조로 확장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