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Creator’s Room

Creator’s Room: 샐러드보울 구창민의 작업실

Editor: 정윤주
, Photographer: 이우정
saladbowl_1

Creator’s Room

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saladbowl_2

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공간 기획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샐러드보울 스튜디오saladbowl studio’ 대표 구창민입니다.

샐러드보울 스튜디오(이하 샐러드보울)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2015년 시작했으니, 올해로 벌써 10주년이 되었네요. 10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샐러드보울이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처음 스튜디오를 만들 때 인테리어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 종사자가 함께 모였어요. 커다란 보울bowl 안에 수많은 재료가 조화를 이뤄 하나의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장면이 연상되어 샐러드보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과 관련된 일도 하셨다고요.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경험해 보고 나니, 디자인에서 경계나 영역을 나누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빠르게 유행이 변하는 패션계와 성향이 잘 맞지 않던 차에 문득 공간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집은 분명 부동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대상인데, 당시만 해도 진정성과 의미가 느껴지는 공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집이 가구, 소품, 섬유, 조명 등 모든 디자인이 어우러지는 종합체라는 사실에도 끌렸고요.

saladbowl_3

처음부터 호기롭게 창업을 선택하셨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평소 친분 있던 대표님 댁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스튜디오 설립까지 이어졌어요. 첫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지금 생각해도 괜찮을 만큼요. 신기하게도 현재 저희가 추구하는 느낌이나 방향과 매우 흡사했죠. 당시에도 지금처럼 시간이 흘러도 유행과 상관없이 질리지 않으며 과하지 않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키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돌아보아도 촌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거죠. 지나고 보니 결국 그 차이를 만드는 핵심은 소재 아닐까 합니다.

샐러드보울의 시그너처로 은은하고 깊이 있는 섬세한 소재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로군요.

그렇죠. 원목, 대리석, 돌, 종이 등 다양한 소재를 탐험했어요. 그중 특히 나무는 오랫동안 탐구할수록 더욱더 새롭게 다가오는 존재입니다. 오래되어도 늘 멋스럽고, 긁히거나 변색하여도 그 가치가 지켜지는 소재는 나무가 유일한 것 같아요. 산업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소재가 수없이 쏟아지고 있지만, 나무는 끝까지 함께하고 싶어요. 동시대에 유행하는 수종, 개인적으로 끌리는 나무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다양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은 ‘좋은 소재’하면 색이나 톤처럼 시각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지만, 저는 오히려 촉각적이라고 믿습니다. 몸에 닿을 때 느껴지는 질감, 부드러운 결 등은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것이니까요.

saladbowl_4

많은 이들은 샐러드보울이 작업한 공간에 특유의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 원천은 무엇일까요?

저는 빛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을 디자인할 때 빛의 각도와 위치, 시간 별로 유입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 정도에 따라 소재를 선택하고 내부 공간을 설계해요. 창을 어떤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어야 가장 적당하게 빛을 해당 공간에 흡수시킬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죠. 빛은 샐러드보울이 디자인한 공간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워낙 많은 작업을 진행하셨는데요. 최근 몇 년간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궁금합니다.

‘청담 라운지’는 가구, 금속, 패브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협업한 프라이빗 공간입니다. 손잡이를 비롯해 모든 집기를 섬세하게 제작한 프로젝트로 기억해요.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TWW 하우스’는 뷰티 브랜드 TWW를 위한 공간인데요. 차분하고 단정한 호텔이 연상되는 분위기에서 TWW라는 브랜드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광화문 케이스퀘어시티에 위치한 ‘ACR 카페’는 ACR과 협업한 두 번째 매장입니다. 한국적인 미감과 고객을 맞이하는 섬세한 환대에 집중하며 공간을 계획한 프로젝트였어요. 하이엔드 오피스텔 ‘레이어 청담’은 공간의 이름부터 브랜드 스토리 기획, 총 60가구를 위한 세대 공간 디자인까지 모두 참여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2025년에 완공될 예정이라 저희도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

청담 라운지, 2023

saladbowl_6

청담 라운지, 2023

saladbowl_7

여주 TWW HOUSE, 2023

saladbowl_8

ACR Coffee Bar, 2022

saladbowl_9

레이어 청담, 2020

saladbowl_10

레이어 청담, 2020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독특한 작업이 있나요?

때마다 다르지만, 현재 저희는 프로젝트 다섯 개를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그중 두 개가 서울 북촌에 위치한 한옥이네요. 한옥의 특성상, 겨울에는 잠시 공사를 멈추고 있어요.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진행해야죠.

saladbowl_11

청담동, 양재동에 이어 작년 청계산 근처로 스튜디오를 옮기셨어요.

전보다 좀 더 넓은 공간을 찾던 차에 이곳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이전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층고가 무척 높고, 빛도 잘 스며들고, 자유롭게 공간을 구획할 수 있는 점이 좋았어요. 스튜디오 초창기에는 도심이나 번화가를 고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느낍니다.

스튜디오 안쪽의 업무 공간으로 들어오려면 전시 공간을 무조건 거쳐야 하는 구조가 독특합니다. 무척 넓기도 하거니와, 전시대도 여럿 존재하네요.

스튜디오 입구부터 크고 작은 공예품을 볼 수 있어요. 가장 가까운 전시대에서 바로 보이는 물품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생활 오브제인데, 손민정 작가님이 만드셨어요. 마음에 쏙 들어서 형태가 다른 작품 여러 점을 구입했습니다. 바로 옆에는 일본 작가의 찻잔과 도자기가 놓여 있고요. 창가 쪽에 자리한 두 번째로 큰 전시대에는 샐러드보울에서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물건들을 올려놓았습니다. 많을 때는 열 개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하거든요. 저희 멤버들이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오가며 볼 수 있고, 서로 자유롭게 의견도 나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련했어요.

saladbowl_12
saladbowl_13

지금은 한옥에 관한 재료들이 올려져 있군요.

최근 한옥 프로젝트를 연이어 진행 중인데, 정말 알면 알수록 너무나도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한옥의 근간과 뿌리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옥과 관련된 기물의 원래 기능과 명칭, 재료와 형태 등 습득하는 지식도 다양합니다. 옛 도구나 장식의 본래 쓰임새를 잘 이해하면 더욱더 정확하고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믿어서요. 특히 한옥은 워낙 경력이 오래된 장인과 합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잘 숙지할수록 공사가 수월해져요. 한지의 질감과 미감에 집중하는 디자이너의 특성을 넘어, 한지의 제조 과정이나 국내에서 활동하는 한지 장인에 대해서 알아가려고 해요. 한옥이 위치한 자리나 터에 대한 지식도 최대한 쌓으려고 노력합니다.

saladbowl_14
saladbowl_15

샐러드보울이 설계한 한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재료를 사용한 터라 더욱더 매력적입니다.

샐러드보울의 고유한 분위기를 한옥에 담기 위해서 현대적인 재료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이어갈수록 한옥이란 공간이 참으로 쉽지 않지만, 그만큼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일반적인 주거 공간에 비해 한옥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차이가 클 듯합니다.

일단 공사 기간이 확연하게 달라요. 일반 주택은 3개월 정도가 소요되는데, 한옥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예상해야 합니다. 공간을 고치고, 도구를 만질 때 드는 생각과 속도가 현대적인 공간과는 무척 달라요. 현장 소장님의 연령대도 높고, 그분의 경험치와 눈대중에 의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나무 기둥 하나를 세우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어요. 여러 면에서 참 재미있고,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은 공간입니다.

saladbowl_16

여러 공예품을 아카이빙한 넓은 전시대는 전시 공간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 하네요. 규모가 꽤 커서 분위기 또한 압도적입니다.

대부분 작고, 아름답고, 손맛이 느껴지는 공예품을 전시해요. 저는 누군가 손으로 만들어낸 작품에서 느껴지는 수고로움이 좋아요. 공예품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각각 그만의 인내와 시간을 느낄 수 있어요. 저희가 작업한 공간에서도 창작자의 정성과 수고로움이 느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아카이브를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집한 작품을 저희 멤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때마다 조금씩 전시대에 올려놓는 작품을 바꿉니다. 계절에 맞게 귤처럼 작은 과일을 놓을 때도 있죠.

saladbowl_17
saladbowl_18

공예품의 색이나 소재에 대한 영감을 나누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만드는 과정과 태도를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춘 공간이었군요.

저는 공예품을 보면서 그 형태나 겉모습보다는 태도와 정신에 대한 영감을 받아요. 오랜 시간 빚고, 깎고, 두드리고, 꼬아서 탄생한 작품을 대할 때 엄숙한 마음마저 듭니다.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공예품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예술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에 더욱더 마음이 갑니다. 생활과 예술의 경계선에 자리한 작품들을 좋아해요. 작가님이 만든 공예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면 실제 프로젝트에서 협업으로 이어가기도 합니다. 금속공예를 하시는 윤여동 작가님과 휴지걸이, 손잡이를 만든 적도 있죠. 그런 예술적인 협업에는 항상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saladbowl_19

다양한 작품을 선별한 장면에서 샐러드보울만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공간을 만들 때는 우리가 특별히 좋아하고 고집하는 게 분명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분들이 여기 전시 공간을 보며 ‘샐러드보울의 취향과 방향이 이런 거구나’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모아 놓은 작업이 딱히 엄청나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작가들의 작품만 취사선택하지도, 모으는 행위를 위해 갤러리나 아트숍을 일부러 찾아가지도 않습니다. 업무 때문에 편집숍, 아트 및 디자인 페어를 워낙 자주 가다 보니 보물 같은 물건과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은 거죠. 닥나무 펄프 소재의 한지를 꼬아 만든 이영순 작가님의 항아리 작품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발견한 것처럼요. 가게를 들르기 보단, 친분 있는 작가님의 작업실에 찾아가는 걸 선호해요. 구자현 작가님, 허명욱 작가님의 공간은 갈 때마다 많은 영감을 받고 돌아옵니다.

saladbowl_20

한쪽 벽에 걸린 대형 사진 작업이 인상적이에요.

김희원 작가님의 작업인데요. 예전부터 좋아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자주 추천했지만, 개인적으로 작품을 구입한 건 이게 처음이에요. 우리나라 고궁에서 촬영한 ‹누군가의 창문› 연작 중 하나입니다. 창덕궁 후원이 내다보이는 풍경이 마치 왕의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듯해서 마음에 쏙 들었어요. 한지에 출력한 점이 흐릿한 날씨의 묘한 매력을 북돋는 것 같아요. 고궁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가 있었는데, 궁에 들어가면 그 자체만으로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라 자주 방문하곤 했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볼 때면 궁에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느낌이라 참 좋습니다.

saladbowl_21
saladbowl_22

안쪽으로 들어오니 오피스와 키친, 공용 공간이 자리하고 있어요. 여기도 기물이 참 다양하네요.

탕비실로 사용하는 키친은 예전에 사용하던 걸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저희가 가진 기물과 소품의 크기와 너비에 맞게 디자인해 가장 편안한 맞춤 가구라서요. 차를 즐겨 마셔서 다양한 차 케이스와 차 도구를 수납하는 함도 별도로 만들었어요. 공용 공간은 가구와 조명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대부분 프로젝트나 전시를 위해 자체적으로 제작했던 물품이고, 개인적으로 수집한 빈티지 가구도 몇 점 있어요. 원래 많은 사람이 앉을 만한 큰 소파를 제작하고 싶었지만, 업무가 바쁘다 보니 여유가 나질 않았네요. 각자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한 기물들인데, 샐러드보울의 스타일을 담다 보니 본래 하나였던 느낌으로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공용 공간에서는 티타임을 갖거나, 짧은 회의를 진행해요.

saladbowl_23

평소 작업을 위해 개인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도구는 무엇인가요?

디자이너라서 연필과 노트를 쓸 것 같지만, 사실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평소 가방을 비롯해 무언가를 소지하고 다니는 걸 싫어해요. 기록이 필요할 때 마땅한 도구가 보이지 않거나, 무언가 찾으려고 가방을 뒤적거리는 상황 또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리폼Freeform, 노션Notion, 스케치업SketchUp 등 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최대한 다양하게 기록하고, 여러 기기를 서로 연동시켰어요. 휴대전화에 메모하고, 아이패드로 스케치하고, 컴퓨터로 정리하는 식이죠. 이를 통해 디자인을 빌드업합니다.

saladbowl_24
saladbowl_25

공간과 관련된 스케치는 주로 아이패드에서 진행하겠네요.

아이패드가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사용했으니 굉장히 오래 쓴 셈이죠. 지금 사용하는 게 세 번째 아이패드에요. 애플펜슬도 다른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많이 사용하지 않을 때부터 썼죠. 옐로 페이퍼에 연필로 스케치하는 맛도 있지만, 오랫동안 기계를 활용해 디자인하니까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편해요. 따로 정리하거나 바인딩하는 과정이 줄어들고, 계속 아카이빙되는 메모와 스케치를 언제든 찾아볼 수 있어서 더욱더 편리합니다.

혹시 취미를 위한 도구는 없으신가요?

아쉽게도 개인적으로 즐기는 취미가 별로 없어요. 일 이외에 남은 시간은 무조건 가족과 보내기에 아직 취미 즐길 틈이 없네요. 대신 여행을 좋아해서,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곤 해요. 최근 다녀온 곳 중 국립경주박물관과 담양 소쇄원이 기억에 남아요.

스튜디오 곳곳에 룸 스프레이를 비롯한 향 제품이 놓여 있습니다.

룸 스프레이는 뷰티 브랜드 TWW와 협업해서 제작한 제품입니다. TWW 사옥 인테리어를 진행한 인연으로 샐러드보울 에디션을 함께 만들었어요. 숲에 들어선 것처럼 우디하고 시원한 느낌의 향입니다. 저는 향도 공간을 인식하는 기억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간에 들어섰을 때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게 하는 향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했는데요. TWW와 제품을 만들면서 많은 궁금증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의 향 제품을 스튜디오에서 사용해 보고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찾는 향은 어떤지 궁금해서 테스트해 보기도 해요.

saladbowl_26

최근 특별히 관심이 가는 소재는 무엇인가요?

한지입니다. 한옥에 은은하게 스미는 빛은 창과 문에 바른 한지 덕분인데요. 지역과 소재, 만드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서 보면 볼수록 새로워요. 예전에는 한지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패턴이 눈에 갔는데 이제는 빛을 투과하는 정도나 은은한 색감을 잘 구현하는 한지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경상남도 의령에는 한지 장인 신현세 선생님이 계세요. 16살 때부터 전통 한지를 만드신 분인데, 이탈리아에서 문화재 복원 재료로 인증받을 정도로 남다른 한지를 제작하시죠. 닥나무를 직접 재배해 그 껍질을 벗겨 수없이 방망이를 두드린 끝에 탄생하는 그분의 한지를 보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에 한지를 투과하며 그 느낌을 관찰하고 있어요.

saladbowl_27
saladbowl_28

스튜디오 안쪽에 있는 커다란 빗자루의 용도는 뭘까요?

스튜디오 멤버들이 경기도 광주에 있는 풀짚공예박물관에서 만들어 온 마당 빗자루에요. 새로운 소재를 찾고, 공간에 사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여러 시도와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빗자루가 저희에게 큰 영감을 줄 수도 있겠죠?

saladbowl_29
saladbowl_30

아까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입구에 방문객을 반겨주는 오브제가 남달랐어요. 고양이를 닮았던데요.

김문학 작가님의 도자 작품입니다. 작년 ‘공예트렌드페어’에서 발견하고 스튜디오에 데리고 왔습니다. 도깨비나 수호신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부러 입구에 놓았죠. 맞은편에 있는 우드 테이블은 이정빈 작가님의 작업이고, 함께 놓은 의자는 저희 샐러드보울에서 제작했습니다.

saladbowl_31

스튜디오 곳곳에 책이 놓여 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건축, 아트, 그래픽 등 분야도 다양해요.

제가 즐겨 읽거나 좋아하는 책을 선별해서 배치했어요. 지금 손에 쥔 책은 일본 건축가 시노하라 가즈오(篠原 一男)가 설계한 ‘엄브렐러 하우스Umbrella House’를 일본에서 독일 비트라 캠퍼스로 운송해 다시 짓는 과정을 담았어요. 단순하고 명료한 선과 면, 형태를 구축하는 건축가라 평소에도 좋아하는 분이죠. 덴마크의 가구 디자이너 핀 율Finn Juhl, 미국의 현대 예술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작품집도 놓았습니다. 사실 건축가의 작품집은 예전에 수집했고, 요즘은 건축이나 인테리어 관련 책을 자주 보진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사진, 패션, 회화 등 다른 분야의 책을 더 많이 봅니다. 그리고 외국보다 한국 동시대 작가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됐어요. 개인적인 취향이 변화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살펴볼 수 있는 셈입니다.

saladbowl_32
saladbowl_33

키친에 올려져 있는 조명은 마치 달처럼 둥글고 밝네요.

모양이 예뻐서 구입했는데 사실 어느 브랜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saladbowl_34

디자이너나 브랜드를 보고 사는 편이 아니신가 봐요.

그게 중요하던 때도 있었어요. 예전에는 디자이너의 아이템을 구입하면 그의 디자인을 소유한다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이제는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 가격을 문의하면, 대부분 비싸긴 하더라고요. (웃음) 특히 조명은 공간에서 분위기를 돕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너무 독특하거나 튀는 디자인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럼 요즘 대표님이 물건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물건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해당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봅니다. 물건에 담긴 이야기가 남다르면, 좀 더 마음이 가죠. 신진 작가나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는 일도 좋아하고요. 오히려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은 잘 선택하지 않게 돼요.

saladbowl_35

취향이 쉽게 바뀌지 않는 편이신 듯해요.

어떤 분야이든 좋아하는 게 비교적 명확해요. 취향의 끝이 있다면 관심사가 달라질 수 있을 텐데, 공부할수록 신기하고 부족한 부분을 느끼니까 자꾸만 더 알고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재료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다가, 점점 재료의 산지나 근원, 만드는 과정에까지 궁금증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새롭게 시도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티크 목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티크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처럼 말이죠. 취향은 바뀌지 않더라도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 중이니, 미래의 집이 과연 어떻게 변할지 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곤 합니다.

미래의 집은 어떻게 바뀔 거라고 예상하시나요?

단순히 휴식과 재충전을 누리는 곳 이상의 안식처, 즉 ‘셸터Shelter’ 같은 의미가 생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취향을 담은 특별한 공간으로 집을 인식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시험 삼아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작은 모듈러 하우스를 자체 프로젝트로 만들어볼 생각도 한답니다.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빕Vipp’에서 설계한 공간에 머문 적이 있어요. ‘더 빕 셸터The VIPP Shelter’라는 이름의 집인데, 스웨덴 임멜른Immeln 호수 근처에 잠수함과 항공기에서 영감을 얻어 컨테이너 형태로 지었어요. 너른 호수가 끝없이 펼쳐진 고요한 숲속에 자리한 그곳에 대해 아이들이 아직도 종종 이야기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였다고.

요즘 인테리어 외에 관심을 두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비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때문은 아니지만, (웃음) 요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맛보다는 음식을 만드는 방식과 태도가 궁금한 건데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덴마크 코펜하겐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노마Noma’의 오너 셰프,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가 음식을 하는 방식이 흥미로웠어요. 지역 산지의 제철 재료가 가진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는 레시피, 재료를 직접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 등이 멋스럽게 느껴졌죠.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료, 한국적이라는 말의 재해석, 유행 아이템으로만 채우지 않는 식공간 등이 융합된 장소를 디자인해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테이에이치STAY H’가 이번 ‘크리에이터스룸’을 위해 준비한 아이템에 관해 얘기해 볼게요. 인터뷰이가 자신의 공간과 어울리는 아이템을 한 점 고르면 선물로 드리는 방식이죠. 어떤 아이템을 선택하셨나요?

덴마크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 빌헬름 라우리첸Vilhelm Lauritzen이 디자인한 칼한센앤선의 ‘VLA26P 베가 체어’ 화이트 그레이 컬러를 선택했습니다.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덴마크 가구 브랜드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데요. 가느다란 보디에 편안함과 우아함이 모두 담긴 베가 체어에서 그런 흐름이 느껴졌어요. 나무, 패브릭, 금속의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조합도 마음에 들었고요. 건축가가 콘서트홀을 위해 디자인한 의자답게, 여러 점을 겹쳐 쌓을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럽습니다.

VLA26P 베가 체어를 앞으로 어디에 놓고 사용하실 생각이세요?

처음 이 의자를 보고 특유의 톤과 분위기가 샐러드보울 스튜디오 어디에 놓아도 원래 있었던 듯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스튜디오 멤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피스 안에 놓았는데요. 워낙 무게가 가볍고 이동성도 좋아서 그 장소는 계속 바뀔 것 같네요.

saladbowl_36

Artist

구창민(@saladbowl_studio)은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2015년부터 공간 기획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샐러드보울 스튜디오saladbowl studio’를 운영 중이다. 고요하면서도 자연스럽고 미니멀한 공간을 구현하는 특유의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본질과 철학을 지키는 디자인을 지향하면서, 새로운 소재에 관한 연구 또한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다. salad-bowl.co.kr

Editor

정윤주(@chungyunjoo)는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메종 코리아» 인테리어 에디터와 «보그 걸»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온라인 매거진 «디퍼differ»의 디렉터 겸 편집장도 역임했다. 영화 속 인테리어와 데커레이션에 주목한 책 『영화 속의 방』의 저자이며, «엘르 데코 코리아»의 객원 에디터이기도 하다. 현재는 프리랜스 에디터 겸 EYES and EARS 디렉터로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다.

Photographer

이우정(@iopppic)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수년간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거쳤다. 현재 «보그 코리아», «엘르 코리아», «GQ 코리아», «하퍼스 바자 코리아» 등 다양한 매체와 협업하며 앨범, 광고 등 커머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