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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tude

김은영-매듭의 재발견

Writer: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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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TUDE

창작의 업과 삶의 태도를 바라봅니다

‘짓는다’고 했습니다. 매듭은 ‘만드는’ 게 아니라 짓는다고.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 김은영과 진행한 인터뷰 내내 그 말이 오래 남았어요. ‘짓다’는 이상하게 시간을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집을 짓고, 시를 짓고, 밥을 짓는 것처럼요. 그 말에 담긴 뜻은 형태를 만드는 행위라기보다 들여다보고 공을 들이는 일에 가까운 것처럼 말이죠. 한국 전통문화에서 매듭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묶고, 연결하고, 몸에 지니는 생활의 기술에 가까웠죠. 그렇게 만들어진 매듭은 일상 속 쓰임이 있었고, 때로는 보는 즐거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김은영 매듭장에게 매듭은 생명력을 다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삶이에요. ‹케데헌›의 열풍을 통해 전통과 민속이 주목받았지만, 여전히 낯선 영역입니다. 박물관 유리장 안에 놓인 유물처럼 멀게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와 마주 앉아 있는 동안 그 낯섦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전승공예대전에서 연이어 수상했던 추억, 아이들을 재우고 밤새 이어간 작업, 마흔여섯에 다시 시작한 공부까지. 평생의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었던 집은 김은영 매듭장의 연대기를 펼쳐 놓은 듯했죠. 한 사람이 80여년 희노애락의 시간을 지어 올린 하나의 매듭처럼 말입니다. 취향을 빠르게 완성하는 요즘, 비단 실을 꼬는 자리와 매듭을 지을 의자 하나가 겨우 맞는 창가. 집 구석구석을 살피며 쓰임을 만들어 온 김은영 매듭장의 공간은 기분 좋은 낯섦으로 남았습니다. 공간은 사람을 닮아간다고들 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머문 사람이 결국 공간을 짓는 것인지도요. 김은영의 시간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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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어디인지요? 공간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집에서 60년을 살았고, 그 시간을 매듭과 함께했습니다. 한번쯤은 새로운 작업 공간을 꿈꿨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지루하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이곳은 가족과 함께하는 보금자리이자 작업실이고,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었어요.

집이 가로로 긴 구조라 현관에서부터 30m 정도 됩니다. 실을 길게 비벼서 꼬아야 하는 제작 과정이 있는데, 공간이 기니까 이를 이용해 두세 번 만에 실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편리합니다.

거실 천장은 복도보다 높아서 실내에서 작업할 때 답답하지 않아요. 나는 예전부터 주로 식탁이나 거실 옆 서재에서 작업을 했어요. 건축가 김중업 선생에게 남편 화실은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그때만 해도 내 작업실은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집안일과 작업을 함께 이어가야 했기에 아이들이 잠든 밤부터 새벽까지만 일할 수 있었어요. 전승공예대전에 여러 번 작품을 냈는데, 한여름에 만들어서 가을에 출품해야 했지요. 에어컨이 없을 때였기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한데, 아이들이 엄마가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었습니다.

오래된 집답지 않게 거실 중간에는 성큰(Sunken)이 있어요. 남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래 공부했기에 그 영향으로 김중업 선생에게 성큰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제사 때나 집안 행사 때는 식탁에 다 앉기가 어려운데, 성큰이 있으니 아늑하게 앉을 수 있고요. 손님 접대에도 좋고요.

원래 소나무 숲이었던 곳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강아지와 함께 집 근처 작은 숲을 한 바퀴 도는 게 좋은 운동이 됩니다. 정원을 가꾸는 데도 열심인데요, 여기서 채집한 여러 가지 식물을 염색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모란꽃이 만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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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때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전시도 16회나 열었어요. 예전의 수첩과 일기를 다시 보면, 내가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고 살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하루를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처럼 쪼개서 살았고, 할 수 있는 것은 후회 없이 다 해 보자고 생각했지요. 그렇다고 한번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은 없고, 정말…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아무래도 건강하고 잠을 잘 자는 체질이 버티는 데 도움이 된 것이죠. 친구들과 가족이 너무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준 것도 힘이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46세에 진학했는데, 집안 대소사를 챙기며, 집안일도 혼자 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친정 아버지께서 가장 큰 힘을 주셨어요. 결혼으로 할 일이 늘었다고 해서 작품 활동을 멈추지 말고, 항상 책을 읽고 공부하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원래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려고 했었는데, 그 당시 신학문이었던 실내장식 디자인을 추천해 주신 분도 아버지셨지요. 결혼 즈음에 매듭을 만나게 됐고, 옛것을 배워서 현대적 시선으로 새로 만드는 매듭에 반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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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며 작업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지셨는지요?

1966년부터 무형문화재 매듭장 김희진 선생님께 20여 년 동안 치열한 가르침을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199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부터 매듭이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생각되어 집으로 학생 몇 명을 불러 교육하기 시작했습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이수생을 키우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매듭을 배우는 데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정식으로 교육하기 시작했으며, 남편이 작고하던 해에 제자에게 무형문화재를 물려주기로 결심하고, 저는 명예 보유자로 살짝 물러났어요. 아직 매듭을 할 수 있을 때 제자와 같이 매듭을 만들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대부분 80세 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저는 일찍 물려준 편입니다.

가르친다는 건 제게 작업만큼, 어쩌면 작업보다 더 중요한 일이에요. 제자들에게는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안목을 키워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매듭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 박물관에도 항상 같이 가지요.

대부분의 무형문화재는 제자들이 자신과 똑같은 작품을 만드는 것을 경계하지만, 저는 제 작품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 보라고 권합니다.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만들어 보는 것도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매년 전시에 함께하는 제자가 60명인데, 다들 잘해서 보람을 느낍니다. 딱히 모일 장소가 없어서 우리 집에서 한 달에 한 번 모여 월례회를 엽니다. 전수회관이나 공예학교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비단실을 관으로 판매하기에 연구회에 모여 재료도 같이 구입해 나눠 갖기도 하고, 공예관에서는 대중을 위한 무료 강습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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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새로운 창작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매듭은 2,0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입니다. 요즘은 주머니와 매듭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한복을 입고 생활할 때는 매듭을 한 주머니가 누구나 만들 수 있어야 하는 생활 필수품이었어요. 이미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우리 매듭과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금동향로의 사신선도 악기에 매듭 술이 달려 있고, 우리나라의 과거 그림과 기록을 보면 매듭이 없는 물건은 거의 없지요. 한복은 주머니가 없는 복식이기에 사람들은 따로 매듭을 한 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 종류가 40여 가지나 됩니다. 남녀노소 주머니가 없으면 생활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나는 매듭을 가르칠 때 주머니와 도장집 만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주머니만 공부해도 재미있을 정도입니다. 역사박물관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매듭 특강을 많이 진행했습니다. 30명을 모집하는데 항상 300명 넘게 지원합니다. 남성도 많이 배우러 옵니다. 해외에서도 매듭 특강을 많이 진행했는데, 한국 사람의 손 감각이 유난히 섬세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옛 서화집을 보거나 자료를 살피며 매듭을 연구할 때는 매듭의 모양새뿐만 아니라 그림 속 인물과 복식, 자세와 행동까지 유심히 살핍니다. 또한 매듭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연계 작업을 수반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가마에 달린 매듭 장식을 만들 때는 제도판에 직접 가마 디자인 도면을 그리고, 목수와 같이 가마를 만들어 매듭을 답니다. 오랜 기간 작업해 재현한 전통 가마는 지금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협업을 통해 매듭의 쓰임에 관해 생각하고, 기능적인 측면과 구조까지 함께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료는 제자들을 위해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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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 펜디(Fendi)와 협업한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24년에 펜디의 ‹핸드 인 핸드› 프로젝트를 통해 매듭으로 만든 바게트 백을 선보였습니다. 경상남도 고성 문수암에서 바라본 구름에 가린 석양에서 영감을 받은 색으로 비단실을 염색했고, 윤기가 넘치는 술실의 꼬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석양 노을의 노랑과 회색, 보라가 섞인 회색 하늘을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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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SNS에서 중국 사람들이 매듭은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었어요. 중국과 일본도 매듭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고유의 매듭 문화가 있는데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중국 네티즌이 오해를 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매듭 고유의 형태가 사라지는 것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현대적인 것을 지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매듭 형태나 이상하게 변화한 매듭이 종종 보이고 있어요. 일본 매듭은 엮고 조이지 않아서 쉽게 풀어집니다. 중국 매듭은 주로 ‘기쁠 희(喜)’, ‘목숨 수(壽)’ 같은 한자 형상으로 엮어서 만듭니다. 우리는 어떤 매듭이든지 두 손으로 순리대로 조여서 맺는 것이 그들의 매듭과 비교하면 차이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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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을 만들 때 가장 오래 머무는 순간은 언제이신지요?

염색은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에요. 무한대로 색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대학원에서 염색을 공부했는데, 천연염색한 노란색에 철분을 넣으면 색이 변하는 것과 같은 과학적 방식이 재미있더라고요. 과거의 문화를 100%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작품의 색 배합을 궁리하면서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습니다. 자연처럼 조화가 잘 이뤄진 색은 없으니까요. 초여름의 흐린 연두색과 나뭇가지의 갈색을 내기로 먼저 정하고 나서, 어떤 색을 더 넣으면 어울릴지 고민하는 순간이 즐겁습니다. 다만 비단실을 염색하면 눈으로 보는 색 그대로 안 나오기에 색 배합을 항상 연구해야 합니다. 남편 전성우 화백이 작고하기 전에는 의논 상대가 되어 주었지요. 남편은 고전적 색 배합에만 연연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기도 했어요.

매듭이라는 천직이 있어서 아직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 자세가 구부정하면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허리를 쫙 펴고, 실을 꼬고, 염색을 해야 오랫동안 작업할 수 있어요. 팔십이 넘으면 대부분 등이 굽기 마련인데, 매듭이 나를 반듯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작업 과정에서 유독 까다로운 지점은 어디인지요?

일본 염색이나 서양 염색은 흰색을 많이 써서 파스텔 컬러 중심인데, 한국의 전통 염색은 원색보다는 여러 가지 색이 섞인 색감의 층위가 특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있을 때 한국의 색에 관해 해마다 강연했어요. 빨간색은 염색한 뒤 15년이 지나면 주홍빛으로 바뀝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지요. 천연 염색은 여러 가지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원색이 나올 수 없어요. 간혹 100년 전의 유물을 보며 복원하느라 현재의 퇴색된 색을 재현하기도 하는데, 천연 염색은 복합적이고 은은해서 눈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요즘은 중간색을 만들면서 파스텔 컬러를 매듭에 쓰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아쉽다는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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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작품 제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방향은 무엇인지요? 어떤 작업자로 기억되기를 원하시는지요?

현대 생활에 어울리는 매듭을 공부하라고 가르친 선생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매듭만 보지 말고,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서 엄선된 작품들의 색과 비례를 많이 보라고 조언합니다. 어떤 것이 조화롭고 멋져 보이는지, 그 안목을 키워야 하니까요. 서양화도 보고, 조각도 보고, 때로는 안 좋은 작품도 보며, 시간이 나는 대로 많이 봐야 공부가 됩니다. 무형문화재 같은 장인들은 학교 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물론 그들의 감각은 타고난 것이지만,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기본 교육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매듭을 배운 제자들이 모두 성실해서 보람을 느낍니다. 요즘 새롭게 배우는 젊은 세대 중에서 전문적으로 매듭 문화를 활용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물론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30~40대 중에서 직업적으로 매듭을 응용하기 위해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를 보면 기뻐요. 과제를 하나 내면 다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게 작업해 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손으로 만지는 경험을 좋아하지요. 매듭은 현대 생활에도 여전히 잘 어울립니다. 테이블보와 쿠션에도 매듭은 필요하고요. 목걸이, 귀걸이, 팔찌도 매듭으로 만들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매듭을 단 주머니는 핸드백 못지않게 현대 외출복과도 잘 어울립니다. 매듭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후대에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나같이 매듭만 60년을 한 사람도 고민이 많습니다. 그간 염색을 어지간히 많이 해 왔지만 여전히 더 내고 싶은 색이 있고… 작업에 관한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염색이 재미있는 순간이라면 생각하지 않았던 색이 우연히 나올 때입니다. 우연한 발견에서 오는 기쁨이 있어요. 여전히 슬럼프는 종종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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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열리는 전시 소식을 들려주세요.

제자들과 일 년에 한 번씩 같이하는 전시는 올해 10월 제주에서 열 예정입니다. ‹탐라 순력도›는 18세기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에게 제작하게 한 화첩인데, 제주의 풍속을 담고 있어서 가치가 높습니다. 이 화첩에 나온 여러 가지 매듭을 제자들과 만들고 있어요. 제자들과 함께하는 화원전은 올해 25회를 맞았는데, 요즘은 이처럼 지방을 순회하면서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국가 행사에서도 매듭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어요. ‹탐라 순력도›에서는 남자 복식과 호패에 달린 매듭, 춤추는 기생들의 노리개가 돋보이더군요. 이처럼 옛날 그림이나 기록을 보며 매듭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고, 그런 기록 속 매듭을 지금의 방식으로 다시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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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제주목: 제주사회, 출처. 제주 세계유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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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김은영

김은영은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으로 지정되었다. 1966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김희진에게 매듭을 배웠고, 198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세 번의 전시로 인연을 맺은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에서 김은영의 작품 6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바티칸미술관, 비엔나민속박물관, 시애틀동양예술박물관, 리움미술관 등에서도 김은영의 작품을 컬렉션했다. 2024년에는 패션 브랜드 펜디(Fendi)의 ‹핸드 인 핸드› 프로젝트를 통해 매듭으로 만든 바게트 백을 선보였다. 부친인 시인 김광균에게 따뜻한 격려를 받았으며, 시아버지 간송 전형필이 남긴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받고 있다. 국내외 개인전뿐 아니라 2002년부터 자신과 제자들의 작품을 모아 김은영전승매듭연구회 회원전을 매년 열고 있다. 저서 『전통매듭』, 『김은영 매듭』, 『매듭 만들기』, 『가정요리』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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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이소영

이소영(@soyoung_lee_art)은 문화 전문 기자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스타일 H», «더 갤러리아»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여러 매체에 기사를 쓰고 있다. 『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전통 혼례』의 저자이며, 『와인과 사람』,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 등을 기획, 편집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의 개관 콘텐츠를 총괄했고, CJ ENM과 함께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시즌 그리팅 굿즈를 만들었다.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한류여행안내서 Person:able SEOUL』을 출간하기도 했다.

Photographer 이근영

사진가로 사진과 글, 영상을 통해 쉽게 말해지지 않는 마음을 기록하고, 이야기로 남긴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작은 순간도 다정하게 바라보고, 그 너머의 의미에 귀 기울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을 담아 글로 표현한 『수면의 고양이』, 『우리, 헤어질 줄 몰랐지』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