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추 작가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눈길이 가고, 곱씹어 생각하고 싶은 것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기록합니다.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웃긴 밈meme은 주요한 작업 소재가 되곤 하죠. 삶에서도, 작업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도 때문이랍니다. ‘작업에서만큼은 하고 싶은 말과 드러내고 싶은 감정을 솔직히 담아내고 싶다’고 말하는 세아추 작가.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기쁨을 작품으로 변신시키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이 정도도 충분히 대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개인 작업을 병행하는 프리랜서 세아추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요즘에는 만들기에 도전하는 중이에요. 집에 머물면서 특히 누워있는 상태를 무척 좋아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 CV를 보면 별다른 경력이 없어요. 몇 군데 직장을 다녀봤지만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지금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게 굉장히 많잖아요. 저는 아직 지금의 삶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깜냥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웃음) 그래서 어딘가 소속되지 않은 채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현실적인 문제로 힘들 때도 있지만, 자유로운 생활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불안감을 떨쳐 내며 프리랜서로서 마주하는 이런저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올 때, 가장 먼저 넓은 책상을 구매했어요. 밖에서는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움직이는 게 귀찮은 성격이라서요. 그렇게 넓은 책상에서 모든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왔는데요. 올해 초 펀치니들Punch Needle 작업을 시작하면서 큰맘 먹고 간이 테이블과 트롤리를 추가로 구입했어요. 사무용 책상에서 작업하려니 애매하더라고요. 저는 주거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새로운 작업을 계속하는 와중에 덩달아 살림이 늘어서 걱정입니다. 지금은 컴퓨터 써야 하는 일은 침대방에서, 실을 써야 하는 일은 거실에서 작업해요.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하는데요. 침대에서 거실로 가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는 지금의 작업실이야말로 제게는 작업하기 딱 좋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우연히 발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요. 평소에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이라,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사진첩을 둘러보며 무엇을 그리고, 만들지 결정합니다. 평소 제가 생각하던 것이나 당시의 감정 상태와 겹치는 이미지를 발견한 후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더라도 제 느낌에 따라 그때그때 표현하고 싶은 걸 작업하는 편이에요.
왼쪽부터 ‹SOmurice›, ‹잠이 잘 오는 마법의 이불›
왼쪽부터 ‹이 눈빛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가끔은 비명을 지르고 싶어›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창작 과정에서는 작업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을 자주 해요. 펀치니들은 단순 반복 작업이 전체 프로세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서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거든요. 큰 틀을 잘 짜두면 오랜 시간 긴장 없이 작업할 수 있어서 마음도 굉장히 편하고요. 그래서 작업하는 동시에 다른 작업을 구상하는 것도 가능하죠. 저는 항상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선택하는 게 제일 어려운데요. 펀치니들 덕분에 이런 고민을 오래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알고 보면 저는 비현실적인 공상을 하는데 더 시간을 쓰는 것 같아요. (웃음).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Cool Kids Jonna Sleep›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작업이에요. 입체로 구현하는 일이 아직 어색하기 짝이 없어서 그림에 과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꼭 만들어 보고 싶어서 겨우 완성한 작업입니다. 누워있는 사람과 침구는 제가 자주 그리는 대상이기도 하고,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해서 푹 자고 싶은 마음을 담아 완성했어요.
‹CKJS: Cool Kids Jonna Sleep›
‹CKJS: Cool Kids Jonna Sleep›
‹마음을 담아서›는 가장 뿌듯했던 작업 중 하나였어요, ‘개자식’이라고 쓴 케이크죠, 전부터 꼭 만들고 싶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 게 효과적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오랜 기간 보류 중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작업을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이건 이렇게 풀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 보니까 실제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답니다. 성공!
‹마음을 담아서›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작업에서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찌 됐든 이 세상을 살아가며 유머를 지키는 건 참으로 중요하니까요. 실제로 웃음이 삶이 균형을 맞춰주는 것 같기도 하고… 웃으면 복이 오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고 보면 제 그림에는 울고 있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고 내용도 어두운데요. 펀치니들 작업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펀치니들 작업이 너무 재밌어서 그림에 소홀한지가 좀 오래되었는데, 그동안 제 정서가 바뀐 거 같기도 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 지낸 게 대략 10년 정도 되는데요. 펀치니들 작업을 시작한 지는 이제 8개월 정도예요. 두 작업을 이어온 기간에 대한 격차가 커서 작업할 때마다 몸소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작업에 필요한 유연성이나 순발력 면에서요. 사실 모든 작업이 멀게 느껴지는지라 펀치니들은 더욱더 멀기만 했는데요. 오히려 저는 이런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예전에 만들어 둔 작업을 보고 ‘이건 이렇게 했으면 더 빨랐겠다’ 같은 생각이 들 때 뿌듯하더라고요.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인지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전혀 없어요. 점수로 치자면 5점 만점에 5점을 주고 싶고, 만족도는 가장 높은 ‘매우 만족’에 체크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네요.
‹내가 만든 내 친구들›, 2023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정말 별것 없어서 뭘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제 일상은 굉장히 불규칙하고 즉흥적으로 흘러가요.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시간을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편입니다. 꼭 해야 하는 일정만 미루어지지 않도록 조절하죠. 창피한 얘기지만, 최근까지 이렇게 지내는 데 별생각이 없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신호를 보내더라고요.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요. 저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에 모든 시선과 집중을 쏟는 편인데요. 이게 과로와 낭비의 원인이라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제 일이든 놀이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건강이요. 그동안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을 따로 구분했었는데요. 요즘에는 이런 구분 방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실감해요. 운동을 몇 달 하다가 잠깐 쉬었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상태가 몹시 안 좋아지는 현상을 경험했거든요. 혹여나 다른 원인이 있는 걸 아닐까, 이리저리 궁리해 봐도 결국 일상에서 바뀐 건 ‘운동을 쉬고 있다’는 사실뿐이라서 조금 절망했어요. 깨닫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깨달아 버린 것만 같달까요… 사람의 몸은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진심으로 억울하기도 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누구나 현실적인 문제와 내면의 괴로움에 세게 부딪힐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면 저는 충분히 화를 내거나, 깊이 낙심하고, 자책한 뒤에 꼭 웃긴 이미지나 영상을 봐요. 말도 안 되게 어이없어서 원초적이고 유치한 유머가 담긴 이미지나 영상을 찾아봅니다.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힘들어하지 않기 위한 셀프 처방인 셈이죠. 실소가 터지는 이미지나 아무 생각 없이 깔깔댈 수 있는 영상을 보다 보면, 앞서 고민한 게 비교적 별일 아니게 느껴져요. 특히 귀여운 동물 사진을 잔뜩 보는 걸 좋아합니다. 있는 그대로 이를 작업으로 만드는 게 참 재밌죠. 작업화하는 것도 참 재밌고요. 그렇다 보니 작업에 어떠한 메시지를 깊게 숨기는 일을 선호하지 않아요. 작업을 공개할 때의 태도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고요. ‘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걸 좋아하네’, ‘요즘은 이런 것도 참 웃기더라…’ 이 정도에 그칠 뿐이죠.
왼쪽부터 ‹밥 내놔›, ‹은.이.언.니›
‹두려울 것이 없는 다섯 친구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보통 슬럼프는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찾아오잖아요. 저는 슬럼프로 인해 괴로웠던 시기가 정말 길었는데요. 이제는 그냥 무시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에는 작업하다가도 스스로 너무 빡빡하게 구는 것 같으면 ‘이만하면 됐다’는 문장을 계속 상기해요. 잘 안되는 작업을 억지로 붙잡으면 몸도 마음도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쉬는 편이에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치과에 다녀왔는데, 진단서를 보니까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른이 되면 이 정도 돈은 항상 주머니에 챙겨야 하는 건가…’ 싶어서요. 그 주 내내 마음이 힘들었어요. 가끔 이렇게 금전적인 문제로 직격타를 맞으면 제가 살아온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속마음›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하자’를 작업 신조로 삼고 있어요. 무언가에 빠져드는 기회, 열심히 하는 시기, 그리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무한하지 않거든요. 이런 때와 마음은 매 한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우연의 중첩이라고 믿어요. 원한다고 쉽게 마주할 수 있지 않기에, 실제 마주하면 힘껏 소중히 여기려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걸 지속하는 상황은 정말 어려운지라 선뜻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저는 그냥 계속 해 보는 것 같아요. 여기서 ‘그냥’과 ‘계속’이 포인트예요. 제 고질적인 습관은 깊이 생각하며 과하게 걱정하는 건데요. 깊이 고민하지 않을수록 좋은 것 같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고, 그리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다 보면 많은 일을 쉽게 느낄 거라고 믿어요.
‹SOmurice›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구질구질한 면은 있으나 솔직한 사람. 저는 제 생각을 즉각 말로 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어요. 소심하고 걱정 많은 사람이라 일상에서 명쾌한 순간이 잘 없네요. 그래서 작업할 때만큼은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고, 최대한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해요. 가끔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면 ‘그래, 이거다!’라는 명료한 느낌을 받는데요. 제게는 그 느낌이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문제가 작업을 하면서 한번 정리되고 해소되는 것 같아서요. 그 과정에서 제가 지닌 약점이나 판단 오류가 종종 공개되는데, 딱히 부끄럽지는 않아요. 오히려 속이 시원하죠. ‘하고 싶은 말이나, 드러내고 싶은 감정을 작업에 솔직하게 담아내는 창작자’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특별히 꿈꾸는 미래는 없어요. 다만 가까운 미래의 제가 요즘처럼만 지내면 좋겠네요. 지난날에 비해 최근의 저는 굉장히 안정적인 상태라서요. 이런 기분을 거의 처음 느끼는 것 같아서 생소한 기분마저 드는데요. 기분이 나쁘지 않네요. 지금 감정이 꾸준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해를 넘겨도,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별생각 없이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Artist
세아추는 곱씹어 생각하고 싶은 것,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길이 가는 것, 흥미를 느끼는 것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기록한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 길을 걷다 발견한 껌딱지의 표정, 이런 대상에 집중하는 자신의 상태 등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관심을 그때그때 붙들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최근 새로 시작한 펀치니들 작업으로 개인전 «사연 있는 친구들»(PRNT, 2023)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