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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찻잔 속 태풍처럼

Writer: 허수연
허수연,HuhSuyon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허수연 작가는 ‘보이지 않는 면들에서 오는 불안감’을 중요한 테마로 삼아요. 그는 관계의 이면을 살피며 다양한 성찰을 통해 창작 활동에 임해왔는데요. “살면서 맺게 되는 여러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작업을 한다”라고 그는 말하죠. 드러나지 않은 강한 에너지를 지닌 작가가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허수연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허수연,HuhSuyon, Inverted-Body

‹Inverted Body›, 2023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각예술작가 허수연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미지근한 유리알’로 표현하고 싶어요. 연약해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기에 ‘유리알’과 닮은 면이 있는 것 같고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담백한 성격이라 ‘미지근한’을 덧붙였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땐 단순히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웠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예술학교에 진학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웃음) 다만 성인이 되기 전에는 단순히 ‘대학만 잘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대학 생활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고, 창작활동을 지금까지 할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 못 했죠. 그런데 졸업 이후 작업실을 구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친구나 교수님이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일이 즐겁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작품을 완성할 때면 밀려오는 엄청난 성취감과 행복도 좋았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의 작업실은 충무로에 있어요. 층고가 높아서 규모가 큰 페인팅 작업과 입체 작업을 하기에 용이한 공간이에요. 작업실은 1층이라 햇살도 잘 들고, 주변은 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어 여러모로 맘에 듭니다.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라, 어떨 때는 제 방보다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웃음)

허수연,HuhSuyon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주로 과학·철학·인문학 등 비문학 영역과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요. ‘충코의 철학’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좋아하고 이동진 평론가가 운영하는 채널, 그리고 최재천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 등을 보며 영감을 많이 받아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그리고 윗세대 작가들이 집필한 책도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비롯한 생각이나 이야기 등에서 작업의 단초를 얻기도 하죠. 산책을 하면서도 영감을 얻기 때문에, 영감은 늘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오는 것 같아요.

허수연,HuhSuyon, True-Stories-scaled

‹True Stories›, 2023

허수연,HuhSuyon, Loop-scaled

‹Loop 2›, 2023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상대적으로 작업을 만들어 내는 과정보다 구상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써요.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는 데 조금 더 집중하는 편이죠. 구상 과정에서는 먼저 제가 틈틈이 메모한 종이를 펼쳐 놓고 아이디어를 취합해요. 아이디어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 공부하고, 최종적으로 어떤 작업을 만들지 구상합니다. 그리고 저만 알아볼 수 있는 아이디어 스케치를 간단히 마친 뒤에 바로 작업에 들어가죠. 저는 하루에 보통 4시간, 많게는 6시간 정도만 작업에 투자하는데요. 시각적인 쉼과 작업하는 시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자신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새로운 ‘눈’을 충전하는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거미줄을 모티브로 삼은 페인팅 작업 ‹철옹성›을 설명해 드리고 싶어요. 중세미술에서 정원은 천국이 반영된 장소로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각자의 정원이 하나씩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원 위에는 견고한 벽돌을 쌓아 올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쉼의 집’을 만들고, 소중히 지켜가면서 살아가는 거죠. 이렇게 만든 여러 개의 ‘쉼의 집’은 우리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데요. 저는 정원 위의 집이 거미줄로 덮여있는 형상을 표현했어요. 거미줄은 외부의 힘이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너무나 쉽게 끊어지기도 하잖아요. 실제 우리 삶에서도, 소중히 지키고 싶은 비밀이나 치부를 숨겨둔 ‘쉼의 집’이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는 순간이 존재하죠. 하지만 내 존재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마음속 집 안에 감춰둔 것들과 더 깊이 관계를 맺게 되고, 그로 인해 비로소 개인의 존재가 성립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관계가 이루어지는 일은 어렵지만, 되려 어떤 포인트로 인해 쉽게 이루어지는 게 관계라는 걸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 

허수연,HuhSuyon, 철옹성, Impenetrable-Fortress-scaled

‹철옹성Impenetrable fortress›, 2023

현재 베이징에서 진행 중인 단체전 «Untalely»에 출품한 작품 ‹Absence of perfect society›도 소개해 드릴게요. 이 작업은 3가지 분류로 나눈 인간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세 개의 큰 기둥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밧줄은, 3가지 분류의 인간이 서로 맺는 관계의 연결망을 상징합니다. 밧줄은 관계 사이에서 겪게 되는 긴장과 이완을 뜻하죠. 관계 속 수많은 긴장과 이완을 통해 어떤 분류의 인간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결여되어 버리는데요. 그 모습을 포착해 풀어낸 작업입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개인이 서로 연결되고 소통한다고 해도 완벽한 사회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한쪽이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다른 한쪽은 거리를 둘 수도 있으니까요.

허수연,HuhSuyon, Untaely

«Untaely»(2023, Tabularasa Gallery) 전시 전경

허수연,HuhSuyon, Absence-of-perfect-society-scaled
허수연,HuhSuyon, Absence-of-perfect-society-scaled

‹Absence of perfect society›, 2023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모든 것에 다면적인 부분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핵심적으로 보이는 것 이외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방대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인간은 개인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해석하며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넣기도 하는데요. 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제게 있어 창작 활동이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저라는 존재, 그리고 저를 통해 맺어지는 다양한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탐구해, 이를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 같아요.

허수연,HuhSuyon, To-be-anything-To-be-nothing

«To be anything, To be nothing»(2023, 탈영역우정국) 전시 전경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평소 생각과 작업을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기억보다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았어요. 다만 작업을 완성하는 데 있어 시간 관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점인 것 같아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아침 아홉 시에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 다섯 시까지 작업을 해요. 일을 마치고는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별거 없는 일상이죠. (웃음) 사람을 만나는 일에 에너지를 많이 뺏기는 편이라, 약속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만 잡아요. 혼자 충전하고 쉬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면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보통 11시에서 12시 사이에는 잠에 들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추상적이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잘 살고 싶어서요. 사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에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허수연,HuhSuyon, Immortal-scaled

‹Immortal›, 2023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일단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물리학자 김상욱 선생님은 ‘본래 모든 것의 상태는 다 죽어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죽음이 디폴트값이기 때문에,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보면 굉장히 특이한 상태라는 거예요. 그만큼 살아 있는 순간이 찰나라는 뜻이겠죠? 찰나이기에 그만큼 소중하고요. 하지만 저는 워낙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 현실에서 가끔 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알 수 없는 미래에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항상 붕 떠 있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요. 결론적으로는 현실에 충실히 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고통도 즐기려 해요. 우리가 지성을 갖고 있는 한, 살면서 느끼게 되는 모든 감정은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저는 직관적인 방법으로 터치를 작업에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처럼,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불확정적인 순간도 다 즐기려 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자세히 보시면, 고정된 평면의 캔버스 위에서 생동하는 터치, 그 안에서 역동하는 생명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허수연,HuhSuyon, Quarantine-scaled

‹Quarantine›, 2022

허수연,HuhSuyon, Self-Portrait-scaled

‹Self Portrait›, 2022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번아웃 증상’을 슬럼프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편이에요. 간간히 산책하러 나가기도 하고요. 때로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해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극복이 되는 것 같아요. 참 단순하죠? (웃음)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운동을 안 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서, 체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껴요. 내년에는 의지를 갖고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려 합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창작자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채, 질문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나는 왜 이런 걸 만들까?’, ‘나는 왜 이런 걸 그릴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설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허수연,HuhSuyon, Temporary-Landing

«Temporary Landing»(2022, TINC) 전시 전경

허수연,HuhSuyon, A-Very-Merry-Unbirthday-scaled

‹A Very Merry Unbirthday›, 2022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잘 먹고 잘 자기. 완벽한 쉼 이루기. 주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기.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기. 마지막으로 ‘난 할 수 있다!’고 세 번 외치기.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통일성 있는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평면이든 입체든, 어떤 매체를 사용하더라도 제 작품에서 ‘허수연’이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저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강하지 않은데, 그 속에 요동치는 강함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러나지 않는 강한 에너지가 있는 작가’를 꿈꿔봅니다.

허수연,HuhSuyon, Safe-House-scaled

‹Safe House›, 2022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공기 좋은 곳에서, 마당이 넓은 집을 갖고 싶어요. 수영장이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가꿀 수 있는 정원이 있다면 더욱 좋겠네요. 작업 공간은 층고가 높기를 바라고, 자전거를 타고 다닐 만큼 넓어서 생각나는 건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도서관을 꼭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엔 한 달에 한 번은 꼭 미술 서적을 구매하고 있답니다.

Artist

허수연은 세상을 살아가는 자아와 그와 맺는 관계를 통해 사회와 주변을 이해하는 행위를 이어 나간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 상대적일 수 있음에 괴리가 느껴지는 지점을 고민한다. 보이지 않거나 미처 인지하지 못한 세상의 이면에서 오는 불확정성에 기인한 불안을 작품의 기반으로 삼는다. 개인전으로는 «INSECURE Ms.Kim»(2022, 옥상팩토리), «Temporary Landing»(2022,TINC), «FOLLOW THE RABBIT»(2021, FAS),«great exhibition 2019 : Retrieve,Recycle,Revive»(2019, G Gallery)을 열었고, «To be anything, To be nothing»(2023, 탈영역우정국), «긴 지금The Long Now»(2021, d/p), «22nd WHITE NOISE: PIGEON»(2020, 화이트노이즈)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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