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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일시 정지가 포착한 찰나의 세계

Writer: 장예빈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장예빈 작가는 인터넷을 떠도는 영상의 한 장면을 캡처합니다. 감상자 모드와 창작자 모드를 넘나들며 ‘일시 정지’ 신공으로 포착한 화면은 물리적인 시력의 한계를 넘어 우리에게 낯선 감정을 일으켜요. 그가 캔버스 화면에 가득 담아낸 누군가의 일그러진 표정이나 싸우는 두 남자의 격정적인 순간을 보면 장면 이전과 이후를 자연스레 상상하며 몰입하게 된답니다. 매의 눈으로 포착한 흥미로운 장면을 캔버스로 전환해 다양한 감정을 상기하는 장예빈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A fluffy man›, 2021, acrylic on paper, 21 x 29.7 cm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회화 작업을 하는 장예빈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네 살 때부터 단짝인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는 도화지에 눈, 코, 입, 얼굴형, 머리카락 등을 다양하게 그려놓고 하나씩 조합해서 캐릭터를 만들곤 했는데요. 캐릭터가 너무 예뻤어요. 반짝이는 눈에, 코도 오뚝하고, 헤어 스타일도 화려했죠. 그래서 저도 친구 옆에 앉아 열심히 캐릭터를 그렸는데, 그렇게 끄적이다 보니 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인물 그리기를 좋아해서, 제 작업에는 표정을 강조하는 이미지가 많은데요. 그 친구 영향을 조금은 받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어렸을 때 그린 캐릭터처럼 예쁜 눈코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요. 격렬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를 자세히 보면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하죠. (웃음)

‹Pain and Agony›, 2022, acrylic on paper, 40.5 x 30.5 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대학원 실기실을 쓰다가,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하려고 최근 아현동에 작업실을 구했어요. 하루 종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막상 혼자 작업실을 쓰기 시작하니 조금은 심심하기도 하고 외롭네요. (웃음) 그래도 제 작품에 오롯이 몰입하는 시간이 많아서 만족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저는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작업하기 때문에 분진이 많이 날리는데요. 공동 작업실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봐 늘 마음이 불편했어요. 이제 저만의 작업실에서 마음껏 에어브러시를 사용할 수 있어서 조금 더 과감하고 자유롭게 작업에 임할 수 있는 느낌이에요. 주변 환경을 바꾸니, 전에 보지 못한 사소한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작업실 바로 건너편에 포도나무가 있는데요, ‘오늘은 열매가 얼마나 보랏빛이 되었을까?’ 기대를 품은 채 출근하곤 한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신체와 신체가 움직이고 부딪히는 장면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보통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먹잇감(?)을 찾아다닙니다. 영상을 보다가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순간이 등장하면 바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캡처해요.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강박적으로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서 이미지를 수집하죠. 그러다 보면 빠르게 흐르는 영상에서 쉽게 캡처하기 어려운 장면을 조우하게 되는데요. 가상으로 마주할 때 훨씬 다양한 정보를 기억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오더군요. 더욱 선명하게 실제를 바라볼 수 있는 게 영상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이미지를 수집하고는,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드로잉 작품 ‹Chocking›은, 두 남자가 싸우는 도중 취하는 자세를 캡처한 이미지에서 출발했어요. 특정 상황을 연상하며,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재빠르게 드로잉으로 옮겨낸 작품이에요.

‹Choking›, 2022, acrylic on paper, 21 x 29.7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맨눈으로는 보기 힘든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서 그런지, 캡처한 이미지를 더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장치를 사용하는 편입니다. 확대한 후 크롭해서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블러 효과로 처리할 때도 있죠. 제 캡처 컬렉션에 속하는 다른 이미지의 부분과 결합해 예기치 못한 재미를 더하기도 해요. 늘 계획한 대로 똑같이 나오지 않아서, 화면 위에서 더욱 유연한 형태로 탄생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She keeps changing her mind› 시리즈를 소개하고 싶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근육의 한순간을 담아낸 시리즈인데요.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은, 캔버스 속 인물이 어떤 상황에 처한지 모르는 채로 그의 표정을 읽어야만 하죠. 감정이 격정적으로 나타난 표정, 또는 모호하게 보이는 표정에 이입하면서도, 동시에 왠지 모를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게 시리즈의 특징인 것 같아요.

‹She Keeps Changing Her Mind 1›, 2021, acrylic on canvas, 45.5 x 37.9 cm

‹She Keeps Changing Her Mind 3›,‹She Keeps Changing Her Mind 4›, 2022, acrylic on canvas, 45.5 x 37.9 cm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요즘 시대는 정보의 쓰나미잖아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미지와 영상을 접하고 있죠. 저는 영상에서 한 부분을 멈추고, 그다음 순간으로 넘어가기 전의 시간을 유예해, 특정 장면을 자세하게 늘여서 관찰하는 걸 즐기는데요. 물리적인 시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순간을 임의로 멈춘 후, 그리고 싶은 순간을 정하는 일이 제 작업의 큰 틀인 것 같아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섬세한 드로잉보다는 즉흥적이고 거침없는 표현을 선호해요. 깊게 고민하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완성한 그림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좋을 때 큰 만족감을 느껴요. 불만족하는 지점은 만족하는 지점과 이어지는데요. 한 작업에 오래 매달리며 신경 썼는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 더러 나올 때면 정말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을 더욱더 길게 가지려 노력 중입니다.

‹Palm reading›, 2021, acrylic on paper, 20 x 20 cm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데 능통한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작업시간을 많이 확보해, 건강하게 작업하려고 노력합니다. 작업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거나, 수많은 영상을 넘나들며 헤엄을 쳐요. 이미지를 찾는 과정에서 당연히(?) 딴 길로 새는 경우가 많은데요. (웃음) 감상자 모드로 영상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창작자 모드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엔 긴 영상보다는 짧은 길이의 영상인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에서 이미지를 수집하고 있어요. 러닝타임이 긴 영상은 비교적 서사가 뚜렷하고 흐름이 느린 편인 데 반해, 짧은 영상은 속도감이 빨라서 부정확하고 애매한 이미지를 수집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되려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큰 것 같아서 매력적이에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편이라, 제 자신을 채찍질하며 원동력을 얻는 편이에요. 작업 스타일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기준이 높기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고요. 이러한 태도가 작업에도 묻어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에 몸을 맡기는 편이에요.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땐 붓을 놓고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며 힘을 얻어요. 감정적인 교류, 응원을 통해 힘을 내는 편이죠.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조금 더 냉철한 피드백을 수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미지와의 거리도 적당히 유지하려고 하고요. 영상에서 캡처 이미지, 뒤이어 드로잉, 회화로 발전하는 과정을 체계화하는 중입니다. 저만의 체계와 방식을 튼튼하게 구축한다면 슬럼프를 겪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아,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고 가끔 테니스를 치기도 하는데요. 힘을 줘서 타격한 공이 타점에 잘 맞아 빠르게 날아갈 때는…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생각만 해도 온몸에 희열이 차오르는 것 같네요. (웃음)

‹Friends›, 2020, ink on paper, 21 x 29.7 cm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껴요. 최근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도 자주 못 해서 활동량이 적었어요. 다시 건강에 신경 쓰며 작업을 이어가려 합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적어도 작업할 때만큼은 작품에 진심을 다하고,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리지 않아야 한다고 봐요. 그 어떤 마음에도 방해받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순수하게 작업에 몰입해야 좋은 작업을 완성하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부수적인 것을 제쳐놓고 원점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일을 매일 꾸준히 하는 걸 추천드려요. 저는 매일 하던 드로잉에서 출발해서 현재 작업의 토대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한 장 그리고, 다음 장을 넘겨서 그리고, 또 다음 장을 넘기고… 작업이 막히거나 진전이 없을 때, 전에 그렸던 드로잉을 살펴보면 가끔 실마리가 떠오르더군요.

‹Head Shot 2›, 2023, water mixable oil color and acrylic on panel, 33 x 33 cm

‹Critical Hit›, 2022, oil and spray on canvas, 72.7 x 72.7 cm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좋은 작업을 많이 그린 작가요. 작품에 투영한 세상을 통해 관람객이 저만의 시선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꾸준히 발전하는 창작자로 기억되는 게 꿈입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좋아하는 물건으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며 살고 싶어요. 주변에 멋진 동료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Artist

장예빈은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과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원본 없는 판타지»(2023, 온수공간, 서울), «와일드 번치»(2022, 디스위켄드룸, 서울), «남는 벽 빌려드립니다»(2022, 상히읗, 서울), «접속»(2021, 이화 아트 파빌리온, 서울) 등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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