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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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전대한_1

Wolfgang Tillmans, ‹Freischwimmer 16›, 2003, Photograph, C-print on paper, 23.95 × 17.97cm © Wolfgang Tillmans, courtesy Maureen Paley, London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음악으로부터 우리가 마주한 전율을 언어로 환원하려 할 때 비평가는 필연적인 패배를 예감합니다. 자신이 음악에서 마주한 감정과 느낌을 오롯이 표현하고자 애쓰지만, 정작 입술을 떼는 순간 선명했던 감각은 언어라는 촘촘한 그물망에 포착되지 못한 채 흩어져 버리죠. 음악이 지닌 이 ‘형언불가능성(Ineffability)’ 앞에서 비평은 무력함에 빠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대한은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을 실마리 삼아 음악에 관한 글쓰기가 마주한 곤혹스러움을 토로합니다. 신비의 베일에 싸인 것만 같은 음악을 명료하고 엄밀하게 말하기 위한 분투 혹은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며 균열을 내는 음악 글쓰기의 기묘한 상황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비록 음악이 여전히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필연적인 실패를 계속 마주하기를 거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SSAY]전대한_2

Uta Barth, ‹Ground #42›, 1994, Chromogenic print mounted on panel, 28.6 × 26.7 × 4.8cm, © Uta Barth

어떤 음악은 듣는 순간 우리 마음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이어폰 너머로 첫 음이 가슴에 박히는 찰나 혹은 공연장의 거대한 스피커가 내는 진동이 피부를 떨리게 하는 순간, 그 음악이 주는 강렬한 감정과 정체 모를 느낌에 관해 우리는 무언가 말을 내뱉고 싶어 안달이 나곤 한다. 자신이 느낀 전율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구 혹은 적어도 그 경험의 내용을 휘발되지 않도록 박제하고 싶다는 갈망이 우리를 언어의 입구로 등을 떠민다.문제는 정작 음악으로부터 마주한 감정과 느낌을 말하기 위해 입술을 떼는 순간, 많은 사람의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이 마주한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수준의 음악적 지식을 갖춘 수많은 청자조차도 자신이 들은 음악에 관해 말하거나 글을 써보라는 요구를 받으면 구체적인 단어나 개념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이 음악에 관한 지식이나 훈련이 부족한 청자에게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풍부한 감상자나 비평가, 연구자조차 이 같은 상황을 꽤 자주 마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히려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춘 청자는 너무 많은 개념이나 어휘가 떠올라 들은 음악으로부터 마주한 감정이나 느낌을 어떻게 언어화해야 할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기도 한다. 음악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의 상황과 정반대로 너무 많은 개념과 단어가 떠올라서 자신의 음악적 경험을 말하거나 글을 적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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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ris Khan, ‹Bach…. Six Suites for the Solo Cello›, 2006, Digital C type print, 255 × 173cm, © Victoria Miro, Idris Khan

음악이 낳는 이 어려움을 음악의 ‘형언불가능성’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음악은 그에 관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히 우리의 일상적인음악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음악의 형언불가능성을 부인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바로 이런 점에서 종종 음악에 관한 말하기 혹은 글쓰기가 ‘패배가 확정된 싸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악에 관해 말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언어가 부족해서든, 너무 많아서든 우리는 음악에 관한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코 붙잡을 수 없는 모래를 한 움큼 손에 올려놓고 어떻게든 꽉 쥐어보려고 애쓰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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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Ludwig Wittgenstein, 1947, Photo by Ben Richards © Bridgeman Images

역설적으로 나는 『논리-철학 논고』(이하 『논고』)의 저명한 구절,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문장에서 타개책을 발견한다. 이 문장은 흔히 ‘잘 모르면 입을 다물어라.’라는 세속적 훈계로 오독되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이 요구한 침묵은 사실 논리적 정직함을 향한 선언에 가깝다. 언어로 포착될 수 없는 영역은 단순히 표현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언표 불가능하기에, 침묵이야말로 그 대상을 대하는 유일하고도 정직한 방법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고』에 따르면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오직 수학과 자연과학뿐이다. 그 외의 모든 것, 특히 예술이나 윤리와 같은 가치론의 영역은 언어라는 그물망으로 붙잡을 수 없는 ‘형언불가능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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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Ludwig Wittgenstein, 1921(2025 ed.), Penguin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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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Tillmans, ‹Freischwimmer 54›, 2004, C-type in artists frame, 237 × 181 × 6cm, Städel Museum, Frankfurt am Main © Courtesy Galerie Buchholz, Köln / Berlin, Acquired in 2008 with funds from the Städelkomitee 21. Jahrhundert Property of Städelscher Museums-Verein e.V.

이런 논의를 토대로 음악에 관한 글쓰기를 비추어 보면 무척 곤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앞서 보았듯 음악에 관한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온전히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다시 말해 ‘형언불가능한’ 대상인 음악에 관해 말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나 자신을 포함해 음악에 관해 글을 쓰거나 말하는 사람은 침묵해야 하는 것과 관련해 자꾸만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기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에 관해 말하고 글로 적는 일이 전부 부질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새로이 가볼 수 있는(그리고 스스로 가고 있는) 길을 마주한다. 바로 음악이 정말 ‘말할 수 없는 것’인지를 재고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말할 수 있는 것’의 영역으로 자리 잡게 하는 길이다. 다시 말해 형언불가능성이라는 신비의 베일에 싸인 음악을 최대한 과학과 형식 논리의 언어로 환원하고, 음악을 둘러싼 여러 문제의 객관적인 해답을 찾아보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길이 추구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사소한 요소에 강박적으로 천착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며 포기하기보다는 음악을 엄밀하고 명료하게 논하고자 분투하는 작업이 분명 값진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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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Wall, ‹After “Invisible Man” by Ralph Ellison, the Prologue›, 1999-2000, Silver dye bleach transparency; aluminum light box, 174 × 250.8cm, The Photography Council Fund, Horace W. Goldsmith Fund through Robert B. Menschel, and acquired through the generosity of Jo Carole and Ronald S. Lauder and Carol and David Appel © 2026 Jeff Wall

게다가 ‘음악에 관한 글쓰기’가 처한 특수성에도 일말의 기대를 건다. 잠시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로 돌아가 보자. 그의 말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대상이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둘을 가르는 ‘경계’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여기까지 말할 수 있구나.’ 하고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이미 언어와 경험이라는 말할 수 있는 것에 해당하는 영역 내부에 존재한다. 우리 자체가 이미 말할 수 있는 대상이기에 경계를 넘어 ‘말할 수 없는 것’의 영역에 발을 디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음악에 관한 글쓰기는 ‘말할 수 있는 것’의 영역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보기 위해 그 경계에서 균열을 내는 시도다. 그리고 내가 기대를 품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며, 음악이라는 형언불가능한 대상을 나름의 언어로 번역해 내려고 애쓰는 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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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shi Sugimoto, ‹Tyrrhenian Sea, Priano›, 1994, Gelatin silver print laid down on paper, 47 × 60.3cm, © Hiroshi Sugimoto

아쉽게도 이런 생각은 엄밀한 논증이 아니다. 음악에 관한 글쓰기에 기울이는 애정으로부터 비롯된 사심 어린 직관에 기대어 어렴풋하게 바랄 뿐이다. 언젠가 꼭 음악이라는 거대한 심연이 명료하고 엄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임을 규명해 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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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Tillmans, ‹OSTGUT Freischwimmer›, 2004, Archival inkjet print, unframed, 243 × 615cm, Foundation Beyeler, Riehen/Basel © Wolfgang Tillmans

Writer

전대한은 동시대의 대중음악과 소리문화를 둘러싼 말과 글에 관한 글을 쓴다. 분석철학에 기반을 두고 명료하고 엄밀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쓰기를 지향한다. 논문 「지각 경험의 내용은 개념적인가 아니면 비개념적인가?」를 썼고, 책 『비개념원리』를 썼다.

有印良品 유인양품3-Goods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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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유인양품3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뮤지션의 티셔츠 한 장쯤은 다들 옷장에 있지 않나요? 뜨거웠던 시절, 페스티벌과 공연장에서, 때로는 웹서핑으로 귀하게 발굴했던 티셔츠들. 이제는 앨범을 사도, 책을 사도 굿즈가 따라옵니다. 케이팝부터 박물관까지, 굿즈의 시대죠.정우영이 우희준과 굿즈를 이야기하겠다고 했을 때 의아했습니다. 지금? 왜 하필 굿즈?

그는 제주행 티켓을 끊고, 왜 우희준인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음악은 충분했지만, 굿즈는 없었다고요. 정우영은 우희준을 음악과 음악 바깥을 또렷이 구분해온 음악가로 읽어냅니다.그러던 우희준이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 굿즈 만들기’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스무 명 남짓 모인 자리, 이미 그곳에서 시작된 움직임을 정우영은 기록합니다. 우리가 이미 시작된 변화를 너무 늦게 알아차리지 않도록. 우희준의 ‘만들지 않음’이라는 태도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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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굿즈 만들기’ 워크숍에서의 우희준

우희준은 지난 해 데뷔 앨범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과 두 장의 EP ‹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 ‹아, 진실이라는 모래알이 내 발 밑을 찔러서 따갑다!›를 모두 CD로 발매했다. 한 음악가의 한 해 작업물로서 기록적이다. 레이블 없이 모두 직접 발로 뛰어 만든 결과다. 2025년만 놓고 보면 그는 다작가였다. 공연도 바쁘게 열었다. 단독과 공동 합쳐 무려 약 60회, 그중에는 AI를 활용해 자신의 음악에 관해 고찰하는 한 편의 소극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이지만 X 우희준’이나 여성 음악가들의 연대를 도모하는 ‘(여자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해’ 같은 야심찬 기획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 열렬한 활동에는 비어있는 괄호가 있었다. 우희준은 굿즈를 만든 적이 없다.

‹노력›, 우희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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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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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이지만 X 우희준’ 현장

예컨대 음악가 티셔츠는 21세기 음악 산업 고도화의 한 사례다. 2000년대 이전에 생산된 음악가 티셔츠의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은 도안의 희소성이나 오리지널리티 때문만은 아니다. 그때까지 티셔츠의 프린트는 각 색상마다 수동으로 플라스티솔 잉크를 사용하고 색깔별로 스크린을 제작해 열 큐어링으로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두껍고 입체적인 질감, 선명하고 불투명한 색상, 수십년 입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내구성 높은 프린트의 배경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CD 판매 수익이 추락을 거듭하면서, 공연과 굿즈가 그 대체재를 맡았다. 품질이 아니라 브랜드를 파는 음악가 굿즈의 특성이 십분 활용됐다. 디지털 프린트로 쉽고 빠르게 소량의 티셔츠를 생산하는 대신 품목을 늘려 수익성을 개선했다. 현재의 가정에 입지 않는 2000년대 이후 음악가 티셔츠가 그토록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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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굿즈 만들기’ 워크숍 현장

우희준은 “굿즈를 판매하는 다른 음악가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는 전제로 굿즈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밝혔다. 첫째, 공연 때마다 굿즈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모두에게 당연하다는 이유로 나도 해야하는가? 둘째, 새 상품 소비 대신 빈티지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하지 않는 방식을 누군가에게 권하는 것이 마땅한가? 셋째, 메시지를 중시하는 음악가가 팬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넷째, 예술가가 아닌 사업가의 일(공산품을 접하고 기획하는 일, 재고를 생각하는 일, 이상적인 상품보다는 현실적인 세일즈 방안을 마련하는 일 등)은 창작 활동에 큰 해가 아닌가? 새삼스럽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꺼내놓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우희준을 혁명가로 만들지 않는다. 우희준을 우희준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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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준의 데뷔 앨범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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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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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아, 진실이라는 모래알이 내 발 밑을 찔러서 따갑다!›

우희준은 음악과 음악 바깥을 구분하는 음악가다. 그러나 음악 바깥은 절벽으로서 의미 있지 않다. 음악의 윤리적인,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영역을 확장하는 다리로서 의미 있다. 단적으로 우희준의 지난 해 활동은, 여자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음악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관한 탐구였다. 굿즈도 마찬가지였다. 음악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 분야를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을 고민하다 한 해를 다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을 음악가 개인의 개명한 윤리 의식으로 한정하는 것은 편협하다. 그의 음악적 방법론 또한 확장하는 다리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아, 진실이라는 모래알이 내 발밑을 찔러서 따갑다!›, Official MV, YouTube, 2025

기타 리프가 주도하지 않는 록 음악, 베이스로 연주하는 포크 음악이라는 낯선 형식의 단서는 그의 과거 경력에 일견 나타난다. 옴, 김오키, 이센스, 신한태와 레게소울 등 데뷔 앨범 이전 수년 간의 베이스 세션 활동 대부분이 록 밴드가 아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처음 빠져들고 열중한 음악이 ‘붐뱁’이라 밝힌 바 있다. 뭇 음악가의 “저는 모든 음악을 들어요”라거나 “저는 다양한 시도를 즐겨요” 같은 하나마나한 말일까? 그 안티테제로서, 우희준이 베이스와 힙합으로부터 뻗은 다리는 넓거나 길다기보다 고유하고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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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굿즈 만들기’ 워크숍 현장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굿즈 만들기’ 워크숍은 지난 해 우희준이 음악과 음악 바깥 사이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굿즈에 대한 탐색이자 실천이었다. 로그아웃 아일랜드의 공동운영자이자 제주도에서 다양한 수작업 워크숍을 주최하는 힌지가 함께 했다. 참가자들이 들고 온 입지 않는 티셔츠를 티코스터로 탈바꿈시켰다. 절개한 티셔츠 조각을 실처럼 사용해 직조했다. 선생님은 한 명인데, 색깔은 당연하고 어느 한 부분도 같지 않은 개별적인 티코스터가 완성됐다. 워크숍은 이 대안적 시도로 끝나지 않았다.

우희준이 음악가 굿즈에 가진 의문은 이 워크숍에서 나온 것이다. 참가자들의 음악가 굿즈를 둘러싼 생각을 앙케이트 형식으로 받았고, 음악가 굿즈를 주제로 대화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우희준은 이 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을 기획하고 그 과정을 다시 메일로 공유하겠다 밝혔다. 겨우 2월 7일과 8일 양 일 간, 로그아웃 아일랜드와 쇼트롱 시네마에서 20명 남짓의 참가자가 진행한 워크숍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저 자족적인 행사였다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시작된 변화를 항상 늦게 알아차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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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굿즈 만들기’ 워크숍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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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굿즈 만들기’ 워크숍 현장

펄잼Pearl Jam은 1994년 티켓마스터에 티켓값 18달러, 수수료 1.80달러를 요청하며 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노동자 계급에도 부담없는 반값 이하의 공연료로 충분하니 수수료도 반으로 낮춰달라는 요구였다. 펄잼이 무모한 투쟁을 벌인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미 법무부에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티켓마스터를 공식 고발했고, 무수한 동료 음악가들도 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법무부는 “입증 어려움”을 들어 조사를 종료했다. 하지만 펄잼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라이브의 반값으로 현장을 즐길 수 있는 ‘공식 부트렉’ 라이브 앨범 시리즈를 알렸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매해 72개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1년까지 앨범 숫자를 줄이고, 디지털 유통만 하는 등의 휴지기를 거쳐 다시 2012년부터 연 평균 20~30개의 라이브 앨범을 여전히 CD로 발매하고 있다.

2024년, 미 법무부는 더욱 거대해진 티켓마스터-라이브네이션을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30년 전 법정 근처도 못 갔던 문제의 심각성이 이제야 조명을 받았고 현재 재판 중이다. 펄잼의 라이브 앨범은 해적판 라이브 음반을 근절시킨 시도로, 팬과 음악가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화시킨 사건으로, 셋리스트, 아카이빙 등 새로운 공연 문화를 창출한 선구적인 형식으로 지금에 와서 평가받는다. 2026년, 음악가 굿즈의 대안을 모색한 우 희준이 있었다 기록해둔다.

‹넓은 집›, 우희준, 2025

당연한 문제를 당연하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를 떠난 개인은 있을 수 없으며, 심지어 그 사실이 창작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우희준의 대표곡 ‘넓은 집’은 이 문제를 다룬다. “나는 넓은 집에 살기 싫어요. 그게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요.”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는 혁명가가 아니고, 세상을 뒤엎자고 말하는 대신 인간의 조건을 자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 이제 이 몸에 살기 싫어요.” 하지만 누구도 그 몸에 살지 않을 수 없고, 다만 그 몸 바깥에, 내 집 바깥에 내가 있지 않은지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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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 

증상앤더시티-손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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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증상앤더시티 3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시작이 MBTI였는지, 연예 상담 프로그램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자존감’, ‘가스라이팅’, ‘경계 설정’ 같은 심리학 언어는 어느새 일상의 문장이 되었죠. 나를 지키고, 나를 중심에 두려는 흐름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단의 언어를 너무 쉽게 빌려 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관계의 균열을 대화로 풀기보다 ‘유해함’이라는 이름표를 먼저 붙여버리면서요. 무해한 것만이 내 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는 허가증처럼, 안전함으로 무장하려는 방어 기술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유무해의 언어로 관계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선택이 있습니다. ‘정리’.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세상이 변해도 사람 사이 관계를 끝맺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연인과 이별, 친구와 소원함, 직장 동료와 미묘한 거리두기까지…. 카톡 대화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를 두고 반응 이모지 하나에 예의가 있네 없네를 따지는 시대니까요. 김지혜 박사는 이번 에세이에서 ‘관계 디톡스’를 다시 정의합니다. 버려내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적 마인드를 재구성하고, 건강한 연결이 다시 작동하도록 설정값을 조정하는 과정으로요. 내가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쉽게 정리당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떠올려 보자고 말합니다. ‘혼자여도 괜찮아’를 다짐하며 조용한 손절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 선택의 이면을 한 번쯤 들여다볼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계속됩니다.

[Essay]증상앤더시티 3_2

Sophie CALLE, View of the exhibition

“Take Care of Yourself (French Pavilion of the 52nd Venice Biennale)”, Venice Biennale (Italy), 2007
Courtesy Galerie Emmanuel Perrotin, Paris / Miami ; Arndt & Partner, Berlin / Zurich ; Koyanagi, Tokyo ; Gallery Paula Cooper, NY, Photograph : Florian Kleinenfenn / Aia Production

증상앤더시티

증상앤더시티는 ‘도시’ 속 우리가 겪는 ‘증상’을 분석한다기보다 증상 속 우리의 향유가 얽혀 있는 틈새를 비추며, 나만의 예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생을 직조해 내는 고유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티스트· 아트세러피스트로 정체화하는 저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통해 비스듬히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개인의 증상을 형성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내포한다.

“도시의 증상이면서, 도시가 증상이다.”

치아시드, 레몬수, 아침의 애사비 워터 한 잔까지, 푸드 디톡스는 체내에 축적된 독소를 빼내 배출을 촉진하는 대체의학 요법이다. 디톡스 다이어트는 의학적 효능과 관련한 오랜 논쟁에도 불구하고 새해맞이 피트니스센터 등록처럼 새로운 시작과 결심을 표현하는 의례에 가까워졌다. 애사비 이전에도 클렌즈 주스, 레몬즙, 효소, 녹즙의 유행은 늘 있어 왔다.

비워내고 정화하며 나를 돌본다는 트렌드는 최근 내 몸 내부만 아니라 관계에도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관점으로 확장되었고, 관계 디톡스는 자기계발과 자기돌봄을 위한 관리의 일부로 여겨진다. 에너지 뱀파이어,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톡식toxic한 관계 패턴은 나를 위한 가용에너지도 부족한 세태에 독성 그 자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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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장 샤를 부슈가 악성 나르시시스트 사례에 관해 쓴 책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그 희생자들』의 표지. 원제는 『Les pervers narcissiques나르시시스트형 변태』이다.

이는 심리학이나 상담실에서 쓰이던 언어(therapy-speak)인, 경계 설정(바운더리), 가스라이팅, 트리거 등이 일상의 언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흐름을 반영하기도 한다. 나를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사람들, 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깁’만 뜯기는 관계를 가시화해 나를 지키고 중심에 두고자 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과 감정을 더욱 정교하게 호명하면서 제대로 인식하고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되었지만, 때로는 이 같은 진단의 언어가 오남용되고, 손쉬운 병리화와 라벨링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손절은 원래 주식이 더 떨어지기 전 손해를 막기 위해 매도한다는 주식 투자의 은어 ‘손절매’가 인간관계로까지 확장된 신조어로, 관계에서 감정적이나 시간적 손해가 발생한다면 그 관계를 끊는것을 의미한다. 경제학에서 매몰비용은 이미 지불해 어떤 선택으로도 회수가 불가능하므로 합리적 의사결정에서 고려해서는 안 되는 비용이다. 여기에 매몰되면 여태껏 해 온 게 아깝다는 식의 감정 때문에 객관적 판단이 흐려지므로 매몰비용의 논리에서 벗어나 내 감정자본의 투자를 끊는 것이 진정한 관계의 손절이 된다.

살다 보면 생존을 위해 관계를 끊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독이 되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나를 도구화하고,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자들과 단절하는 것은 절박하고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자기보호이다. 하지만 나에게 유해한 사람과 손절한다는 건 의지와 용기만 가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꺼지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자체가 권력으로, 대다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 우리는 두렵기에 솔직하지 못하고, 취약하기에 친절해질 수도 있다(물론 선후관계가 뒤집혀 친절함이 나약함으로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저 조용히 사라져 줄 뿐…. 그리고 때로는 안전 이별마저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다.

직장 상사가, 지도교수가, 더 나아가 가족이 유해하다고 쉽게 차단할 수 있을까? 내가? 감히? 손절 행위에 따르는 사회적 보복이라는 후폭풍 하나만 감당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은 말할 것도 없다. 범죄의 범주는 배제하더라도 연인관계 혹은 ‘썸’처럼 자발적이고 평등하게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관계에서조차 더 사랑하고 더 관심 있는 이가 을이 되는 미묘한 권력의 역학관계가 설정되곤 한다. 더 적게 원할 때 커지는 사랑의 권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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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권력 비대칭을 드러내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우리는 거의 모두 잠수 이별의 슬픔을 겪은 적이 있다. 오죽하면 프랑스 아티스트인 소피 칼Sophie Calle이 메일로 통보받은 이별의 언어를 남들에게 해독해 달라고 요청하는 작업을 했을까. 여기서 해독을 통한 해독detox은 일어났을까?

이별의 예술가(엄밀히 말하면 차이기의 예술가)로 불릴 만한 소피 칼은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 «Prenez soin de vous(Take Care of yourself)»에서 연인의 이별 통보 이메일의 마지막 문장인 “Take Care of Yourself”를 변호사, 언어학자, 정신과 의사, 교정가 등 ‘언어를 해석하는’ 직업군의 여성 107명에게 해체하고 해부하게 한다. 사적인 이별 언어의 집단적 독해가 이루어지며, 이별을 말하는 언어의 권력은 분산된다.

Take Care of Yourself 원문을 소개하고 있는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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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CALLE, View of the exhibition

“Take Care of Yourself (French Pavilion of the 52nd Venice Bienale)”, Venice Biennale (Italy), 2007
Courtesy Galerie Emmanuel Perrotin, Paris / Miami ; Arndt & Partner, Berlin / Zurich ; Koyanagi,
Tokyo ; Gallery Paula Cooper, NY, Photograph : Florian Kleinefenn / Aia 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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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CALLE, View of the exhibition

“Take Care of Yourself (French Pavilion of the 52nd Venice Biennale)”, Venice Biennale (Italy), 2007
Courtesy Galerie Emmanuel Perrotin, Paris / Miami ; Arndt & Partner, Berlin / Zurich ; Koyanagi, Tokyo ; Gallery Paula Cooper, NY, Photograph : Florian Kleinenfenn / Aia Production

대중문화 속 최악의 이별로 회자되는 것 중 하나는 에세이의 제목으로 영감을 받기도 한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포스트잇 이별 통보이다. 포스트잇의 내용은 ‘미안하지만, 못 하겠어. 날 미워하지마’로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그야말로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손절의 초기 형태로서 이별 방식을 그렸다. 전화로 이별을 통보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탄하는 주인공에게 지금의 손절법은 얼마나 개념 없어 보일까. 자기가 먼저 이별을 고하려 했었다고 분개하는 것은 사랑뿐 아니라 이별에도 권력이 비대칭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신분석학자 제시카 벤저민Jessica Benjamin의 상호인정 관점에서 포스트잇이나 이메일로 통보받는 이별은 한쪽은 행위하는 자(doer), 한쪽은 당하는 자(done to)가 되는 극단적 비대칭 구조로,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별의 슬픔을 표현할 기회조차 소거하는 상호불인정이자 몰인정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포스트잇으로 이별을 통보받고 친구들에게 알리는 영상, 출처 HBO 유튜브

관계를 끝내는 방법에도 다양한 차원과 기술이 있다. 손절은 상대방이 종결을 인지하도록 하는, 이별의 윤리 등급이 있다면 톱티어에 가까운 방식일 것이다. 당하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게 잘 조절된 손절은 관계의 예술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게 조용히 손절했다고 생각할 때 실은 아무도 나의 손절을 몰랐던 거고, 우리 집에서나 좀 이슈가 됐을지 모를 일이다.

고스팅Ghosting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춘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하는 이에게는 손절, 당하는 이에게는 잠수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차단, 언팔, 번호 삭제로 어느 순간 연락을 끊고, 끊었다는 통보를 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 단절이다. 연인관계에만 한정되지 않고, 친구나 동료, 가족관계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응답은 남기지만, 내용은 의미 없는 ‘ᄒᄒ’, ‘그렇구나…’또는 이모티콘으로 최소한으로 반응하는 것이 소프트 고스팅soft ghosting이다. 아직 연결되어 있다는 착시라기보다는 무시이다. 갑작스러운 단절이 부담되는 경우 좀 더 자연스러운 조용한 손절이 이루어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늦게 대답하고, 만남은 미루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관계가 멀어지길 기다리는 방식인 소프트 패딩soft fading이다. 바쁜 게 미덕이고, 직접적인 거절 표현을 꺼리는 한국 사회에서 누가 먼저 끊었는지조차 모호하게 만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 단절 형태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갈등 없이 손절하는 방법, 조용한 손절법 노하우가 공유되기도 한다.

아무리 해도 손절할 수 없거나 온갖 방식을 동원해 손절한다 해도 관계의 피로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인간관계에서 집착을 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쿨한 일일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이미 깨어진 관계를 붙들고 실은 내가 먼저 손절한 거라고, 정신 승리라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위안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내 언어로 이별을 말할 때 비로소 마무리되는 관계가 있다.
이별을 통보하거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설명 자체가 감정노동이 될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를 익숙하게 여기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고스팅이나 조용한 손절이 좀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클릭 한 번으로 관계를 맺거나 정리하고, AI 친구가 딸깍 한 번으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는데, 굳이 안 맞는 누군가와 만나 에너지를 소진하고 때로는 상처까지 주고받을 필요는 없다. 갈등은 함께 대화하며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무언가가 된다. 물론 문제를 피하는 것이 해결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애초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면서 최소한의 손실을 도모하는 것이다.
다만 온라인의 많은 맥락이 생략된 방식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면 언어적 표현보다 상황, 관계, 눈치가 소통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맥락 사회인 한국의 눈치게임에서는 비극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내가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쉽게 정리당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된다. 이는 관계의 불안정성을 낳고, 어떤 관계도 느슨하게 만든다(느슨한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편안함과 구원은 별개로 말이다).

관계 디톡스는 유해하고 문제적인 관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상대를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과정의 의미를 소거하고 주변에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피상적 관계들만 남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관계는 애초에 불편한 것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편함을 견디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물론 노력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관계 디톡스가 관계 맺기와 유지하기의 회피는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필요하다.
75년간의 행복 연구를 진행한 로버트 왈딩거Robert J. Waldinger는 “좋은 관계가 우리를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좋은 관계란 갈등이 없고 감정 소모가 없는 편안한 관계가 아니라 갈등과 노력을 통과한 뒤에도 남아 있는 관계다. 관계는 힘들기에 가치가 있고, 그 힘듦을 감당할 때 관계는 우리를 살린다.

브레네 브라운의 테드 톡: 취약성의 힘

인간은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우리는 관계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유명한 취약성 연구에서 취약성을 인정하고 내면의 연결되고 싶은 기대와 욕망을 받아들일 때 충만한 삶을 향해 나아간다고 보았다. 인간의 충만감은 통제되어 안전할 때가 아니라 취약성을 감수한 연결을 통해 얻는 것이라고 말이다. 관계 디톡스의 디톡스를 비워내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적 마인드를 재구성하고, 좋은 관계가 다시 작동하기 위한 설정값을 조정하는 과정으로 재정의하면 어떨까.

788_1@2x

Writer

김지혜 박사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로, ‘아트애즈테라피(artastherapy.kr)’를 운영하며 예술 치료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의 관점을 교차하고, 창작과 치유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연구 주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다문화 사회정의 미술치료와 반응작업 미술치료가 있다. 앞으로 미술과 음악, 문학, 무용동작 등을 통합하는 예술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공미술, 전시,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자 한다. 저서로는 『치유로서의 미술』(글로벌콘텐츠, 2021)이 있다.

有印良品 유인양품2-소수양품

[BA]섬네일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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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유형·무형의 상품에 스민 창작자·기획자의 고유 의도와 감각을 읽어내는 기획, ‹유인양품› 두 번째 이야기는 ‘활발한’ 언더그라운드 아트페어를 탐색한 기록이에요. 지난해 12월 타이베이의 아트페어 ‹ROOM SERVICE 룸서비스›에서 이국의 언어와 분위기를 뚫고 ‘유인양품’으로 네 가지를 발견했어요. 건축과 레이브 문화, DIY 페미니스트의 성과, 7인치 바이닐 유통 가이드를 담은 진Zine이나 평범한 듯 독특한 굿즈를 포착한 정우영 에디터는 말합니다. 소수의 지지로 움직이는 창의적인 작업은 결국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 소규모 자본과 대규모 자본을 종횡하며 “좋아하는 세계 안에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라고요. ‘사소하고 어지러운’ 것이 와글와글 담긴 물건은 개성을 드러내는 만큼 세밀한 세계를 열어보이죠.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세계에 여러분이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이 정우영 에디터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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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트럭 하이재커스Peach Truck Hijackers의 굿즈들. 코인 케이스, 가사집 진, 피치트럭 하이재커스와 I.M.F.의 스플릿 라이브 앨범 카세트테이프

번역하면 Branded Quality Goods입니다. 노 브랜드가 브랜드가 되는 시대, 이 연재는 브랜드의 어원이자 그 첫 번째 의미, ‘인장’으로 돌아갑니다. 브랜드의 상품성을 두 번째로 둔다는 뜻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것은 팔려야 하는 숙명을 갖지만,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무용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상품성이 첫 번째가 아니므로 예술작품일 수도, 어쩌면 무형의 서비스일 수도 있는, 고유한 ‘양품’을 소개합니다. 

소수양품

언더그라운드 거의 사어가 됐다. 소수의 지지에 한정되는, 자본의 협력을 기대할 없는 창의적인 작업은 여전한데, 인터넷, SNS, 유통 혁명을 기반으로, 다들 송신소 없이도, 인쇄소 없이도 가능한 각자의 매체를 운용하는 덕이다. 또한 유명세가 공공선인 시대, 이상 언더그라운드가 오버그라운드(메인스트림) 배척하지도, 오버그라운드가 언더그라운드에 무지하지도 않다.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가 있기보다 소규모 자본과 대규모 자본이 남았다.

다만 언더그라운드는 병상에 있지 않고, 따라서 눈물 흘릴 일도 없다. 소규모 자본 특유의 사사롭고 도전적인 행보는,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가 너무 거추장스러웠나 싶을 만큼 더욱 활발하다. 예컨대 타이베이의 서비스같은 아트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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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룸 서비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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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룸 서비스 현장

타이베이의명물편집숍웨이팅 2018년부터 주관하는 행사다. 음악, 출판, 의류, 굿즈를 아우르는 웨이팅 룸의 방향성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셀러가 참여한다. 12 6일과 7 일간 열린 2025년의 서비스 역시 다양한 분야의 68 창작자가 이름을 올렸는데 그중에는 한국 창작자들의 이름도 여럿 있었다. 2024 신도시에서 팝업으로 열린 서비스’에 이어, 일종의 교류전 성격으로 신도시가 선정한 한국의 창작자 20 팀이 참여했다. 그중 부스에서유인양품’ 찾았다.

星星唱片(성성창편) 혹은 플라네테스 레코즈Planetes Records, 영문 스펠링으로 미뤄 행성과 방랑자(그리스어 Planētes) 동시에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걸작 SF 만화 플라네테스 대한 오마주일 가능성도 있다.) 중고 바이닐, 신시사이저, 인디 음반을 판매한다 자신을 소개하고 부스 대부분을 그렇게 채웠으나, 직접 제작한 권의 이질적인 Zine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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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테스 레코즈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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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테스 레코즈의 『Pretty Girl Zine 001』


권은 초보자를 위한 레코드와 턴테이블 가이드. 소수의 지지를 받는 분야에 몸담은 창작자는 생각한다. 단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씬scene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신이 건강하지 않은데 자신의 작품이 온전히 평가받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직 바이닐 문화가 활발하지 않은 대만에서, 책은 연장선에 있는 시도였다. 한국의 활발한 바이닐 문화에서도 없는 진이었고, 교수나 평론가가 아니라 철저한 사용자의 관점에서 바이닐 생산부터 턴테이블 세팅까지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는 권이었다.

권은 Pretty Girl Zine 001이다. ‘오타쿠 현혹될 듯한 표지와 달리 뜻밖의 깊고 넓은 기획이 인상적이었다. ‘건축은 레이브 문화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 ‘라틴 음악 앨범 커버 디자인 가이드’, ‘라이엇 : DIY 페미니스트 활동의 성과와 현대적 형태같은 기사가 실렸다. 압권은 플라네테스 레코즈 발매 아티스트 유칭Yu Ching 7인치 바이닐레코드와 카세트테이프 제작기, 음원 등록기가 담긴 기사다. 마치 다른 창작자가 7인치 바이닐, 카세트테이프 생산, 음원 유통을 고려할 참고하라는 모든 제작 과정을 세세하게 남겼다. ‘초보자를 위한 레코드와 턴테이블 가이드 같은 의도였다. 자본의 크기와 그릇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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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칭의 ‘No No Love’ 7인치 커버

Yu Ching – No No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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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테스 레코즈의 『초보자를 위한 레코드와 턴테이블 가이드』

피치트럭 하이재커스Peach Truck Hijackers 불과 1118일에 앨범을 발표한 한국의 여성4인조 밴드다. 2025년의 룸서비스가 예년과 달랐던 하나는 전야제였다. 대만의 라이브 클럽 Revolver에서 열린 전야제에 한국 밴드 I.M.F., 피치트럭 하이재커스, 아지카진매직월드azikazinmagicworld 출연했다. 모든 밴드는 또한 행사 기간 부스를 통해 각자의 굿즈를 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피치트럭 하이재커스는 양으로 밀어붙이는 박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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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트럭 하이재커스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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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트럭 하이재커스의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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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트럭 하이재커스의 부스

스티커 팩이나 티셔츠는 기본적인 품목이지만, 코인 케이스는 한국에서 흔치 않다. 밴드가 선보인 예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달력도 있었다. I.M.F. 피치트럭 하이재커스의 라이브를 면씩 담은 카세트테이프, 악기 셋업과 가사가 마치 쌍인 담은 가사집 진도 이채로웠다. “디자인 전공자들이 뭉친 밴드로서 디자인 특기를 권리라기보다 의무로 사용했다. 얼마나 사소하든 얼마나 어지럽든 개의치 않고 일단 만들었다.   

모든 멤버가 참여해 앨범 제작기를 적어 내려간 , 피치트럭의 녹음일지 특별히 재밌다. 예컨대 ‘Two Songs’ 후반부의 기타리프, ‘Fuck You’ ‘Rubbish’ 드럼 스네어를 유심히 듣게 만드는 기능적 역할을 했고, 정서적으로는 앨범을 녹음하는 밴드의 2025 여름이 전해졌다. 무엇보다 진을 끝까지 읽고 어느새 멤버들의 이름을 외웠다. 이제 데뷔하는 K-pop 아이돌이 만드는 수천만 원의 멤버 소개 영상 대신 피치트럭 하이재커스는 진을 만들었다

Peach Truck Hijackers – Compressed Annoyance

솔트 페퍼Salt and Pepper 서비스 참여 부스 가장 중견 오버그라운드에 가깝다. 의류 브랜드 바이닐 아카이브Vainl Archive 전개하는 코헤이 오키타Kohei Ohkita 만든 갤러리이자 , 사진집, 굿즈를 취급하는 상점이다. 가장 눈길을 제품은 코나미 지로Konami Jiro 사진집 I.D. 1986이었으나 느긋하게 고민하는 사이 품절됐다. 다이도 모리야마Daido Moriyama 연상시키는, 건조하고 진득한 흑백 톤이 인상적인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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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트 앤 페퍼의 부스 전경 @saltandpepper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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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미 지로의 사진집 『I.D.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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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트 앤 페퍼의 얼굴 수건

대신 솔트 페퍼의 로고(Stefan Marx 디자인했다) 들어가고, 히포포타무스가 제작한 PB 제품, 얼굴 수건을 골랐다. 히포포타무스Hippopotamus 일본 고급 수건의 대명사 이마바리시今治市에서 2007 탄생한 브랜드다. 수피마 코튼에 재생 대나무 섬유를 섞은흡수성, 유연성, 색조, 촉감, 건성모두 뛰어난, 압도적인 수건이라 설명한다. 과연 남다른 촉감을 느낄 있었지만 색깔이 검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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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막스가 디자인한 솔트 앤 페퍼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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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막스가 디자인한 솔트 앤 페퍼의 로고


솔트 앤 페퍼의 캐릭터 로고

검은색 수건을 기억이 있나? 특급 호텔이나 부티크 호텔에서 봤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검은색 수건은 흔치 않다. 얼룩이나 오염을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표백, 고온 세탁이 불가능하며, 3~4회는 검은색만 모아서 세탁해야 하는 번거롭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특이한 수건이 아니다

코헤이 오키타는 과거에는 자신도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보일 있을까?” 고민했지만 이제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결국 제가 의식하는 작업의 스타일이 아니라,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세계 안에서 완성도를 얼마나 높일 있는가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뭔가의 완성도는 어떻게든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요.(‘Why Kohei Ohkita opened SALT AND PEPPER’ <Houyhnhnm>에서 인용)”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가 있고, 소규모 자본과 대규모 자본이 있으며, 모두에 속하는 완성도가,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는 검은색 수건의 완성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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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 

최강록의 말, 최강록의 맛

[BA]섬네일_
Report

[Essay]최강록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먹방’부터 ‘쿡방’까지, 음식을 미디어로 향유하는 문화가 셰프 대상의 팬덤으로도 점점 확장되고 있는 요즘, 최강록 셰프는 이 새로운 추세의 핵심입니다. 어쩜 이름마저 ‘최강록’인지,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을 읽으며 요리를 배웠다고 수줍게 말하던 그의 삶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성장만화의 주인공같아요. 스페인어과를 중퇴한 후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고, 이후 창업에 실패해 빚을 갚으려 참치 무역 회사에 취직한 회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요리대회에서 우승한 이야기가 이 세계에선 실화(!)랍니다. 사실 그의 인기는 10년 전으로 훌쩍 돌아가 2013년 ‘마스터셰프 코리아 2’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어딘가 어수룩하지만 담백한 진심이 담긴 그의 독특한 어휘 구조는 인터넷을 점령하기도 했어요. 그가 탄생시킨 수많은 어록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귀찮음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고 적힌 그의 유튜브 채널 중 설명 한 줄에서 은근 ‘최강록스러운’ 면이 있다고 느껴져요. 번지르르한 미사여구 없이도 누구보다 진정성 있는 말로 표현하죠. 박경은 기자가 최강록의 말에서 졸여낸 맛은 어떨지,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ssay]최강록_2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최종 우승한 최강록 셰프. 넷플릭스 제공

지난하고 고된 라운드를 우여곡절 끝에 헤쳐 왔다. 마침내 죽음의 계곡에서 살아남은 그는 최후의 승기를 눈앞에 둔 채 크고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시리즈의 마지막 요리를 심사위원 안성재와 백종원 앞에 내놓은 채···. 화면 너머로는 짜릿한 긴장감과 함께 나른한 해방감 비슷한 느낌도 전해졌다. 최후 무대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너무너무 잘했다고 축하하고 싶었고, 이미 마음 속에선 뜨거운 박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승부는 승부였다. 심사위원 안성재는 묻는다. “왜 이 요리를 자신에게 주고 싶었어요?”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감동받을 준비를 한 채 최강록의 ‘최후 진술’을 기다렸다.

“저는 조림인간입니다. 연쇄···.” 

최강록의 말은 그 뒤에 꽤 이어졌다. 하지만 두근거리며 방송을 지켜보던 나는 “저는 조림인간입니다” 하는 부분에서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최강록식 유머의 절정이었으니까. 일단 그의 말부터 들어보자. 깨두부를 넣은 국물요리를 만들게 된 이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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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최종 우승한 최강록 셰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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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 2 결승무대에서 최강록 셰프가 자신을 위해 만든 요리와 함께 소주를 내놓은 뒤 설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연쇄조림마, 조림핑, 그런 별명을 얻어 가면서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습니다.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척하기 위해 살아왔던 인생이 좀 있었습니다. 나를 위한 요리에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얼마나 짠했던가. 주방에서 누군가를 위해, 그것도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긴장하며 졸여야 했다는 그의 고백이다. 많은 사람은 수고했다고, 충분했다고 도닥여 주고 싶었을 게다.

이런 짠한 서사를 앞두고 나온 그의 ‘조림인간’ 멘트에서 나는 ‹흑백요리사› 시즌 1 결승전에서 에드워드 리가 했던 “저는 비빔인간입니다”가 떠올랐다.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아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에드워드 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그렇게 자신을 정의했다. 비빔인간이 만든 비빔밥을 보며 그 맛을 상상하기보다는 숭고하고 숙연한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낀 사람이 꽤 많지 않았을까? 최강록 씨가 그 장면을 어떻게 지켜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담담하면서 꼼꼼하게 주변을 바라보고, 숙고하고, 일상에 농축해 내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면 조림인간은 최강록표 유머의 절정이자 지독하게 솔직한 자기객관화, 비빔인간에 관한 진지하고 위트있는 오마주였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최강록 어록이라는 이름의 콘텐츠와 수많은 밈이 넘쳐난다. 

“나야, 들기름”, “제목은 ##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OO을 곁들인”, “엄마가 해주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전 아빠지만”, “떨어질 수도 있죠. 떨어지면 한 1년 동안 인터넷을 안 하면 되거든요”.

여기에다 밑도 끝도 없이 넣는 ‘예’, ‘음’, ‘그러니까’ 따위의 추임새까지 일일이 글로 옮기기 힘든 것이 많다. 이번 시즌에서 “나야, 재도전”으로 포문을 연 그의 최고 어록으로 ‘조림인간’을 꼽고 싶지만 대중은 또 의외에 포인트에서 열광했다. 자신이 만든 민물장어 요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는 진땀을 흘린다. “폭신폭신한 느낌이···(3초간 정적 후)···‘을’ 한번 그냥 맛 보여드리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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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셰프코리아›(이하 마셰코) 시즌 2에서 우승한 뒤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다시 우승을 거머쥐기까지 그의 요리 실력은 더욱 정교하고 깊어졌겠지만, 어째 그의 말솜씨는 더 어눌해진 것도 같다. 우리가 본 처음부터 그는 눌변이었다. 뭔가를 설명하고 싶지만 말문이 막혀 멈춘다. 막상 설명을 시작하지만, 그는 앞서 했던 부족한 말에 조금씩 설명을 덧댄다. 그래서 음, 그러니까, 예··· 따위의 추임새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급기야 조사를 ‘이’에서 ‘을’로 바꾸는,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을 두고 고치는 데선 한국어 문장을 정교하게 구사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셰코› 때였나. 심사위원들은 그의 요리 설명을 듣다 오히려 답답해하며 유려하고 적확한 표현으로 그의 요리를 설명해 줬다. 그들의 설명에서 “당신 요리 이렇잖아요. 이렇게 설명하고 싶었던 거 맞죠? 어때요? 내 설명. 당신 맘에 쏙 들지 않아요?” 하는 속뜻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다. ‹흑백요리사›에서도 그는 여전히 말을 더듬거렸고, 그의 문장은 툭툭 끊어졌다. 심사위원들은 비져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질문을 툭 던진 채 그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잠깐의 ‘포즈’에선 심사위원들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말이 들려왔다. “당신이 가장 못하는 게 음식 설명이잖아요. 알아요. 하지만 이건 요리경연대회인 걸요. 말 잘하는 방송인 가리는 게 아니니 걱정 말아요.” 이런 음성이 재생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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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만의 언어 구사력이 돋보여 ‘휴먼강록체’로 불렸던 대사 “제목은 고추장 닭 날개 조림으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바질을 곁들인” 장면의 방송 화면. 추후 수많은 인터넷 게시물의 제목과 댓글에 ‘제목은 000으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000을 곁들인’ 구조가 재활용되며 해당 표현의 출처를 묻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 2 유튜브 화면 갈무리

‹흑백요리사›는 시즌 1, 2를 통해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시청자 저마다의 ‘원픽’들이 있을 테고 외식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중 최강록은 여느 스타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시즌 1 당시 하던 식당도 폐업했던 그는 자신의 요리를 기대하는 대중의 기대에 부담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때문에 시즌 2가 마무리되면서 오죽했으면 물 들어올 때 노를 버린 그를 두고 “제발 배 위에 그냥 앉아만 있으라”는 아우성이 쏟아졌을까. 당장은 식당을 열 계획은 없다는 그가 당분간 어떤 모습으로 대중을 만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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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곳하게 어깨에 기댄 최강록 셰프의 포즈가 화제가 되었던 ‹흑백요리사› 시즌 2 단체 사진. 넷플릭스 제공

그는 자신을 포장하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지만 주어진 방송 공간에서 그게 잘 안됐다. 그래서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다. 승리욕이나 욕심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무기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열심히 애쓰지만 날이 서 있지는 않은, 뭔가 애매한 상태랄까. 웬만한 방송에서라면 다 편집되었을 모습들이지만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은 아마도 그런 날것의 미완성에서 그의 진정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시청자들에게도 전달됐고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사람들은 왜 그에게 빠져들었을까? SNS에 숱하게 쏟아지는 콘텐츠와 각종 미디어에서 공통적으로 그의 진정성을 꼽는다. 진정성. 우린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진정성을 갈구해오지 않았던가. 기막힌 기교와 음색, 음악성으로 무장한, 번뜩이는 재능을 지닌 무명 아티스트들의 진정성에 감동하고 감탄해 왔는데 왜 계속 진정성 타령인가 말이다. 아마도 그의 삶과 서사에서 나 자신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가장 흑수저같은 백수저다. 흑수저로 출연한 셰프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를 졸업했고 이름만 들어도 탄성이 나올만한 레스토랑에서 이력을 쌓았다. 물론 ‹마셰코›라는 프로그램 우승 역시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은 아니지만 소위 ‘스펙’으로 정의되는 경쟁무대에서 그의 이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요리만화에 반해 요리를 시작한, 숱한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중년을 맞은 만화적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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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김소희 셰프와 최강록 셰프(오른쪽). JTBC 유튜브 화면 갈무리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취업하기 위한 면접시험에 참석한 최강록. 순발력이 불가피한 압박면접 공간에서 과연 그는 합격할 수 있을까? 끝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면접관들은 얼마나 될까? 어눌하고 느린, 답답하기까지 한 그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으며 그의 진정성을 알아보고 가능성을 펼치게 해 줄 회사가 있을까?

지금 사회는 ‘보여주기’가 먼저 요구되는 구조다. 유려한 표현력으로 완성되어 보이는 모습이 실력의 척도로 평가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는 길게 봐야 진가를 알게 되는 사람 아니던가. 얼마 전 그가 출연했던 ‹냉장고를 부탁해›를 봤다.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은 ‹흑백요리사›와 다른, 요즘의 전형적인 면접장이다. 자기 피알과 순발력, 대상을 향한 빠른 어필이 중요한 포맷의 무대 때문일까? 최강록은 그대로였지만 그의 매력이 이 공간에서 동일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흑백요리사›는 진득하게 기다려 준 무대였다. 소위 자기 피알에 젬병인 최강록의 특징은 강한 매력으로 작동했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메시지가 전달됐고, 그런 그에게서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꼈다. 저렇게 해도 잘해낼 수 있구나. 그의 진정성을 심사위원들이 알아봐 줬구나. 잘하면 그가 우승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그를 지지하며 끝까지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나를 포함해 우리 주변엔 저런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런 사람의 성공은 너무 희소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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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우승한 최강록 셰프가 넷플릭스와 인터뷰하면서 “국숫집을 하면서 늙어가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얼마전 넷플릭스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 가게를 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라면서 “나중에 국숫집을 하며 늙어가고 싶다”라고 했다. 중년이 되면 힘이 많이 없어질 것이라는 설명을 붙이면서 말이다. 알려진 프로필에 따르면 1978년생인 그는 올해 마흔여덟이다. 이미 중년인 그가 국숫집을 열 나이가 몇 살쯤일지 알 수는 없다. 맨손의 실력으로 무수한 식재료를 조리며 고유의 맛을 뽑아내 온 그가 어떤 국물과 면발을 뽑아낼지도 궁금하다.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리듬을 지키는 그가 만드는 국수는 어떤 맛일까? 그의 국수를 종종 맛보며,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나를 들볶는 대신 나만의 맛을 졸이며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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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박경은(@pkyongeun)은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다. 탐식(貪食)과 잡식(雜識)을 지향하며 수십년째 써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집필 노동자로 늙어가고 싶다고 한다. 책 성스러운 한끼를 썼다.

네덜란드에서 발견한 투명해서 안전하다는 감각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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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지난해 말에 홍보라 디렉터의 안전공간 Safe Space 세 번째 원고를 메일로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바로 열어보지 않고, 일부러 조금 묵혀두었어요. 지난 원고처럼 코펜하겐이나 헬싱키 어딘가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제목을 보니 새해와 어울리니 말이죠. 이 글을 읽는 지금, 새롭게 맞이한 한 해를 조금은 투명하고 아름답게 시작되고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원고에서 ‘안전한 감각’을 건네는 장소는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에인트호번과 틸버그입니다. 틸버그라는 도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익숙해도 더치 디자인 위크는 아직 생소한 이름일 테니까요.

홍보라 디렉터는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시장이 요구하는 매끈한 완성도보다 때로는 엉성하고 불완전하더라도 그 투박함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더 중요해 보였다고요. 하나의 이벤트를 경험하는 일은 예술로 감싸진 도시와 일상을 다시 보게 만들고, 결국 ‘왜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마주한 실용적인 솔직함, 불필요한 벽을 세우지 않는 태도, 그 투명함이 만들어 내는 안전한 감각을 이 글에서 만나보세요. 구글 지도에 가고 싶은 장소를 하나둘 저장하게 될 여러분을 떠올리며, 안전공간 세 번째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펼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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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Depot Boijmans Van Beuningen) 내부 사진, ©사진 Ossip van Duivenbode

Safe Space는 예술을 매개로 도시와 일상 속에서 자유로운 사고와 대화를 열어주고, 사변적 단상과 사회적 질문을 탐색하며 나누는 안전 공간입니다.

밀도의 시간, 열린 가능성의 시작

올여름 헬싱키의 느슨한 공기 속에 머물던 중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의 멋쟁이 문정관 하진 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네덜란드의 국제문화교류 기관인 더치 컬처Dutch Culture가 한국을 중점 국가로 선정하고 문화예술 기획자를 초청한다는, 방문 의향을 묻는 제안이었다. 줌(Zoom) 화면 너머로 몇 차례 미팅이 오가고, 퍼블릭 아트부터 디자인, 건축, 텍스타일, 예술 정책에 이르기까지 나의 방대한 관심사를 가로지르며 이메일이 바삐 오갔다. 놀랍게도 그들은 극과 극으로 보이는 이 넓은 스펙트럼의 관심사를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완벽한 밀도로 담아낸 정교하고 세심한 일정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팩토리2의 동료와 함께 네덜란드의 입체적인 예술 생태계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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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건물 이미지, ©사진 Ossip van Duivenb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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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카를 마튼스(Karel Martens) 회고전, 철제 캐비닛을 활용해 벽을 없앰으로써 사방에서 관람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전시 구조

암스테르담: 미술관을 해킹하는 신체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감각한 것은 ‘경계의 부재’ 혹은 ‘경계 흐리기’였다. 큐레이토리얼 교육기관이자 비물질적 현대미술의 수행적 아카이브인 드 아펠 암스테르담de Appel Amsterdam은 얼마 전 도심의 매끈한 북적임에서 거리를 두고, 생활감이 두터운 동네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현대미술 전시장에서 으레 마주하는 화이트큐브는 그곳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대신 과거 신지학협회 사원이자 공공도서관이었던 건물의 형태와 기억을 온전히 받아들여 다소 기묘한 곡선의 벽과 길고 좁은 창문이 살아있는 공간 안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유연하게 재맥락화하고 있었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떠밀려난 결과가 아니라 지역민과 섞이며 ‘초(超)로컬Hyperlocal’한 커뮤니티 속으로 들어가려는 능동적인 시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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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립 도서관 건물을 개조해 이전한 드 아펠(de Appel)의 전경, ©사진 홍보라

마침 열리고 있던 메르세데스 아즈필리쿠에타Mercedes Azpilicueta의 전시는 말 그대로 감각적인 ‘놀이터’였다. 이야기와 신체성이 가득한 이 전시는 드 아펠이 완결된 결과물의 쇼케이스가 아니라 어린이부터 지역 주민까지 모두를 향해 열린 예술 커뮤니티의 현장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입구 옆 광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다양한 신체의 시민이 소그룹으로 모여 PT를 받으며 권투하는 일상의 풍경이다. 

이 장면은 십여 년 전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광장에서 마주했던 스케이트 보더들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도시의 틈새를 파고들어 계단과 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킹하는 ‘바퀴 위의 사람들’. 세계 여느 미술관 앞에서도 보더를 마주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곳 풍경은 그 결이 사뭇 다르다. 미술관 입구를 마치 커뮤니티센터나 동네 체육관처럼 점유한 시민들. 그들은 미술관이라는 권위적 건축물을 어떻게 일상의 근육으로 해체하며, 공간이 진정 누구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지를 자신의 신체를 통해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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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아즈필리쿠에타(Mercedes Azpilicueta) 작가가 구현한 놀이터로서의 전시,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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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닿을 듯 거대한 메르세데스 아즈필리쿠에타(Mercedes Azpilicueta)의 타피스트리 작품, 작품 뒤편으로 들어가 뚫린 구멍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볼 수 있다.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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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지고, 옮기고, 입어보는 체험이 가능한 메르세데스 아즈필리쿠에타(Mercedes Azpilicueta)의 전시 전경, ©사진 홍보라

로테르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퍼블릭 아트

로테르담 중앙역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광장은 “여기가 바로 다양성과 퍼블릭 아트의 도시”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그 강렬한 첫인상의 중심에는 영국 작가 토마스 J 프라이스Thomas J Price의 작품 ‹Moments Contained›가 서 있다.

4m 높이의 육중한 청동 조각이지만, 흔히 봐온 영웅이나 위인의 형상이 아니라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당당하게 서 있는, 기세 좋은 젊은 흑인 여성의 모습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익명의 인물을 거대한 조각으로 만들어 광장에 놓는 순간, 주변의 역동은 달라진다. 그것은 단순히 광장을 점유한 미적인 오브젝트가 아니라 광장을 오가는 행인들이 끊임없이 교신하는, 살아 있는 주체로 그곳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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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공공예술 홈페이지 내 공식사진, ©사진 Aad Hoogendo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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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공공예술 홈페이지 내 공식사진, ©사진 Jannes Li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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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중앙역 광장의 대형 조각 작품, 토마스 J 프라이스(Thomas J Price) 작품 ‹Moments Contained›(2023), ©사진 홍보라

로테르담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도시지만, 그 역동성은 인구 구성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이 도시는 과거를 복원하는 대신 과감하게 미래를 선택했다. 건축과 퍼블릭 아트를 중심으로 폐허 위의 도시를 새롭게 상상하는 실험이 오늘날 로테르담의 역동성과 정체성을 만들었다. 

이 같은 실험 정신은 MVRDV가 설계한 데포Depot와 그 인근의 뉴 인스티튜트Nieuwe Instituut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계 최초의 공공 수장고인 데포는 미술관의 가장 핵심이면서도 은밀한 뒷무대에 머물던 수장 공간을 전면으로 공개했다. 작품이 복원되고 포장되며 저장되는, 미술관의 보이지 않는 심장부를 시민의 경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1층에서 천장까지 이어진 내부 중정의 거대한 유리 계단과 얽혀 있는 투명한 건축구조물을 올려다보면, 투명한 해파리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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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수장고, ©사진 Ossip van Duivenb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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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의 투명하고 복잡한 내부 구조,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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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풍경을 담아내는 미러 파사드가 돋보이는 데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외관, ©사진 홍보라

뉴 인스티튜트는 건축과 디자인, 디지털 문화를 다루는 예술 기관으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권위적 태도 대신 시민의 참여와 학습이 유기적 연결을 지향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버섯을 주제로 한 전시 «FUNGI: 아나키스트 디자이너»를 준비 중이었다. 『세계 끝의 버섯』의 저자이자 인류학자 애나 칭Anna Tsing과 건축가이자 예술가 페이페이 저우Feifei Zhou가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한 이 전시는 ‘버섯’을 매개로 디자인과 창작에서 관습적인business as usual 접근을 근본적으로 질문하며 버섯의 관점에서 창작자 역할을 새롭게 제안한다. 큐레이터들은 이를 ‘안티-디자인’ 전시로 부르며, 버섯을 수동적 재료가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아나키스트 공동 디자이너로 제시한다. 

전시 오프닝에 맞춰 애나 칭과 도나 해러웨이의 토크 ‘어두운 시대의 다종 생존을 위한 구성Composing for Multispecies Survival in Dark Times’이 마련되었는데, 티켓 판매 시작 후 단 몇 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전시와 토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침 지난 몇 년간 팩토리2가 버섯과 균, 곰팡이를 매개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 역할을 고민해 오며 전시와 워크숍 등으로 이 고민을 풀어 왔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미술관이 답을 제공하는 권위적 기관이 아니라 질문을 수집하고 제기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또한 ‘초로컬’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며, 완결된 작품의 쇼케이스에 머물거나 권위를 빌려 시장 가치를 공고히 하던 미술관의 보이지 않는 관행을 기분 좋게 배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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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디자인풍의 뉴 인스티튜트(Nieuwe Instituut) 라이브러리 및 아카이브 전경,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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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인스티튜트(Nieuwe Instituut) 뮤지엄숍 ‘뉴스토어(New Store)’의 활용 매뉴얼,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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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로비에서 마련된 가든 프로젝트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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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2의 버섯 관련 예술 프로젝트 «미지의 곰팡이 페스티벌 The Third F Festival»의 전시 전경

에인트호번과 틸버그: 손의 기술과 오래된 미래

더치 디자인 위크Dutch Design Week 기간에 방문한 에인트호번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창작자들의 에너지로 도시 전체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하이엔드 브랜드의 상업적 완성도와 스타 디자이너의 발굴에 집중한다면,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를 주축으로 한 더치 디자인 위크는 급변하는 사회적 요구에 관한 창작자의 반응과 실천을 통해 삶의 근본적인 전환을 추구하는 대안적 시각에 주목한다.

이곳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시장이 요구하는 매끈한 완벽함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고 수리하며, 주변에서 발견한 평범한 재료를 재가공해 사용하는 자율적인 제작자Maker의 주체성이다. 때로는 엉성하고 불완전하다 해도 그 투박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정직함, 다소 거칠고 덜 세련되었다 해도 새로운 시대의 질문과 고민을 가감 없이 디자인 언어로 실현하는 실용적 태도에서 묘한 해방감마저 느낀다. 기존의 대량생산 시스템과 디자인 문법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직접 조립하려는 디자인 아나키즘의 실천에 가깝다. 서울에 돌아와 사진을 복기해 보니 실제 기록된 작업의 반 이상이 자급자족과 수리, 손의 기술과 자원의 순환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제작 방식의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 극도로 신자유주의화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자립과 돌봄’, 스스로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안전한 감각’에 관한 실천이다. 기존의 디자인 규범을 가볍게 비켜가거나 뒤집으며 표준화된 질서에 균열을 내는 이른바 ‘조용한 아나키즘’의 기운이 도시 곳곳에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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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디자인 위크(Dutch Design Week) 화두, ‘일상의 재료와 적정 기술을 활용한 자생적 제작 방식(DIY)’,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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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 가구로 명성 높은 피트 하인 이크의 스튜디오가 더치 디자인 위크 시상식장으로 변모했다,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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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디자인 위크 기간 중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DAE) 전시에서 마주한 세 가지 화두, ‘자급자족, 쉘터, 그리고 디자인 아나키즘’ 01,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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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디자인 위크 기간 중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DAE) 전시에서 마주한 세 가지 화두, ‘자급자족, 쉘터, 그리고 디자인 아나키즘’ 02, ©사진 홍보라

반 아베 미술관Van Abbemuseum의 위계 없는 전시 구성 또한 이러한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몬드리안, 리시츠키, 피카소 같은 모던 거장의 작품과 원주민의 공예품, 비물질적인 동시대 타임 아트가 한지붕 아래 나란히 놓여 있다. 기존 미술관의 공간 디자인 문법을 비켜가며 다채로운 색채와 새로운 ‘보기’ 방식을 제안하는 공간은 작품을 규정하던 제도적 권위와 통제로부터 관람자를 해방시키고 있었다.

여정의 마지막 도착지인 소도시 틸버그Tilburg의 텍스타일 뮤지엄Textiel Museum은 19세기 산업 유산이 오늘의 기술, 디자인, 예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이곳은 박제된 오브젝트의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디자인 랩이자 만들기의 현장이다.

여기서는 과거 섬유산업을 이끌던 기계가 그저 전시용 유물이 아니다. 전 세계 창작자에게 개방된 텍스타일 랩Textiel Lab 안에서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고 예술적 영감을 실현하는 도구로 여전히 가동되고 있고, 실제 이번 여정 중 만난 작가들도 이 랩의 워크숍을 통해 작업을 구현하고 있었다. 로테르담 기반 작가 코엔 타셀라르Koen Taselaar는 자신의 페인팅을 대형 태피스트리로 제작했고, 스리랑카 출신 작가 차투리 니산살라Chathuri Nissansala는 퀴어 정체성과 텍스타일을 연결하는 «Haus of fibre» 전시의 공동 창작 그룹에 참여하며 뮤지엄과 협력하고 있었다.

기존의 모던 마스터피스 전시 문법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안하는 반 아베 미술관(Van Abbemuseum)의 전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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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베 미술관에서 발견한 다양한 보기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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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버그 텍스타일 뮤지엄(Textiel Museum)의 텍스타일 랩(Textiel Lab) 공식 프레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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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버그 텍스타일 뮤지엄 워크숍 현장, 대형 터프팅(Tufting) 작업을 통해 완성되어가는 텍스타일 예술, ©사진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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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타일이라는 매체를 통해 퀴어성의 미학을 탐구하는 전시 «Hause of fibre»의 주요 참여 작품, ©사진 홍보라

투명함이 주는 안전감

고백하건대 나는 폐소공포증이 있다. 물리적으로 좁은 공간도 힘들지만,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심리적 폐쇄성이다. ‘말하지 않은 공기’를 읽어야 하는 압박, 솔직하지 못한 회피, 정직보다는 교묘한 처세술로 유지되는 관계, 그런 순간들이 주는 답답함은 내 몸보다 마음을 먼저 조인다.

네덜란드에서 경험한 실용적인 솔직함, 불필요한 벽을 세우지 않는 태도, 일상을 가로막지 않는 투명성이 예상보다 깊게 다가왔다. 도시의 동선부터 건물의 구조, 사람들의 담백한 화법까지, 그들의 ‘벽 없음’은 단순한 디자인 취향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느껴진다. 

여행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같은 투명함은 16세기부터 뿌리내린 칼뱅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불필요한 치장보다는 본질에 집중하고, 넘침이나 과도함보다는 성실과 정직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 복잡한 위계 대신 직선적인 소통을 선택하는 태도, 돌려 말하는 것이 서툰 내게 그들의 투명성은 더없이 편안한 ‘숨 쉴 공간’이 되어주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그곳에서 만난 창작자들과 협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은 기록과 교류지만, 이후 전시와 워크숍, 퍼블릭 아트를 통해 점점 더 깊은 협업을 이어가려 한다. 한 달이 훌쩍 지나 이 기록을 정리하는 지금도 네덜란드에서 마주한 그 투명한 공기가 곁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친구를 잔뜩 만났으니 내년에는 더 재밌게, 무엇보다 ‘안전하게’ 놀아보고 싶다.

Artist

홍보라(@borabola5)는 경복궁 서쪽에서 작고 뾰족한 예술 공간이자 기획 사무소인 팩토리2를 운영하는 디렉터이자 예술기획자로, 도시·사람·예술의 역동적 관계를 기반으로 퍼블릭 아트와 국내외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장르 간 경계를 선이 아니라 넓은 지대로 확장하고자 연구, 기획, 제작, 교육 등 예술과 문화 전반에 걸쳐 경계 없이 활동하고 있다.

증상앤더시티-운세앤더시티

Report

오프닝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2025라는 숫자가 이제야 익숙해졌는데, 어느새 2026년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시간은 늘 우리보다 한발 앞서가는 것 같습니다. 현생을 살다 보면 이루지 못한 다짐이 유독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죠. ‘운이 안 좋았다’는 말로 내년을 기약해 본 적도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신년운, 대운, 금전운 같은 콘텐츠 속에서 자신의 띠를 발견하면 괜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연말은 그렇게 불확실한 미래가 가장 선명하게 체감되는 시기입니다. 어쩌면 운을 점친다는 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려는 시도라기보다 불안한 시간을 건너기 위한 작은 의식에 더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불확실성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 세우기 위한 장치처럼요.

김지혜 박사는 말합니다. 대단한 성공이나 특별한 운이 아니어도 각자의 삶 속에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화양연화’가 존재한다고요. 그리고 그 시간을 스스로 호출하기 위해 심상을 리셋하고 삶의 리듬을 다시 세우는 세 가지 작은 실천을 제시합니다. 2025년을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냈지만 신년운이 어딘가 찝찝하게 느껴졌다면, 김지혜 박사가 건네는 세 가지 제안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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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판 타로 10번 운명의 바퀴

증상앤더시티

증상앤더시티는 ‘도시’ 속 우리가 겪는 ‘증상’을 분석한다기보다 증상 속 우리의 향유가 얽혀 있는 틈새를 비추며, 나만의 예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생을 직조해 내는 고유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티스트·아트세러피스트로 정체화하는 필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통해 비스듬히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개인의 증상을 형성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내포한다.

“도시의 증상이면서, 도시가 증상이다.”

운세앤더시티 – 증상 말고 심상

연말연시 우리는 운을 점친다. 점을 보러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포털이나 카드회사 사이트에서 클릭 한 번으로 토정비결과 신년 운세를 볼 수 있다. 연애운, 학업운, 취업운 등을 따로 보기도 하지만, 연말연시에는 주로 다가올 해의 전반적인 운세를 본다. 우리가 신년을 맞아 특별히 점을 보는 이유는 새출발 효과(fresh start effect)로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우리는 새해처럼 새 구간이 시작되는 시간적 랜드마크(temporal landmark)를 기준점으로 과거의 나와 단절하고, 새로운 나를 시작하는 새출발을 도모한다. 일종의 심리적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이번 생이 처음인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인생 리셋 버튼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상의 이야기에서나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극복하기 위한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을 대리 체험하고자 한다. 따라서 연말연시에 점을 보는 것은 과거의 부정적인 일과 작별하고, 뇌에 새출발의 신호를 보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일종의 새해맞이 의식이 될 수 있다.

한편 연말은 불안정한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욱 체감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저무는 해를 돌아보면 목표까지는 더디고, 이룬 것은 없으며, 생은 허무한 것이라고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견인하고 있다는 통제감을 잃기 쉬운데, 개인적 통제감이 낮아질수록 우연하고 무작위적인 정보 속에서도 패턴을 찾거나 의미를 추구하고 싶어진다. 미신적이거나 초자연적인 믿음을 통해서라도 질서를 회복하고, 애매한 현재를 버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통제감을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한 가지 슬픈 사례로 조앤 디디온Joan Didion은 『상실(원제목은 The Year of Magical Thinking)』에서 남편과 딸이 죽은 후 믿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으며, 가족을 되살리는 마법을 행하고 싶어서 남편이 돌아오면 신을 수 있게 신발을 계속 두었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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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디디온과 남편, 딸의 모습, 사진 Julian Wasser / Netflix

자신의 이해와 운을 초월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성보다는 마술을 믿게 되거나 주술적 사고를 창출하게 된다. 어맨다 몬텔Amanda Montell은 주술적 사고를 마음속 생각이 외부의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보았으며, 더 나아가 현시대를 정보의 홍수 때문에 과도하게 고민하고 편집증적 생각에 집착하는 현대인이 만드는 ‘주술적 과잉 사고의 시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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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 여신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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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수레바퀴, 1420년 경

고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는 우연과 행운, 불운을 관장하며 예측 불가능성과 가변성의 흐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운은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위에 있던 자가 내려오고, 아래 있던 자가 올라가는 역전의 구조처럼 좋고 나쁨과 무관하게 굴러가는 힘이자 불확실성을 다루는 의례의 형식이다. 운명의 바퀴는 타로 카드에서 불가항력적 변화의 순간, 터닝포인트로 해석되며 변화의 흐름 속 통제감의 재배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처럼 신년에 운을 점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이기보다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을 감소하고, 심기일전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얻기 위한 의식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신년 운세는 보통(아주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긍정적이고, 모호한 쿠션어로 쓰여 있기도 하다. 일반적이고 애매한 성격을 묘사하는 경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심리적 경향인 바넘 효과(Barnum Effect) 또는 포러 효과(Forer Effect) 때문에 더욱 내 이야기처럼 와닿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주명리의 세계관에서 운이 나쁘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작정 박복한 내 팔자를 한탄해서도 안 되겠지만, 잘될 거라는 나의 의지에 부합하는 확증 편향을 얻을 때까지 무한히 점집을 찾아다닐 수도 없다. 하지만 설령 운이 나쁘다고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일상적으로 운과 팔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조금 살펴보면 명리학에서 운은 고정된 값이 아니며 팔자와 운은 별도의 운영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태어난 연월일시라는 4개 기둥을 이루는 천간과 지지, 여기에 부합하는 동양적 우주관을 기호화한 8글자가 사주팔자이고, 이를 기반으로 운명을 분석하는 것이 명리학이다[기둥의 위는 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간, 아래는 땅의 기운인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지(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순으로 사람의 띠에 상응)의 순서에 따라 60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이를 육십갑자라고 하며 2026년은 붉은 말의 해인 병오년이 된다. 다만 60년의 사이클이 다시 돌아오는 환갑을 맞는 것을 장수했다고 여겼던 것도 늦춰져 요즘은 70세가 되는 고희를 축하하는 일이 더 흔한 만큼 운과 명에도 시대에 따라 다른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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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로 생성한 사주팔자 이미지

보통 타고난 설계인 명(팔자)이 좋은 것은 환경인 운이 좋은 것만 못하다고 한다. 또한 운에는 대운과 세운이 있는데, 대운은 10년 단위의 환경 변화이고, 세운은 1년 단위의 변화로,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타이밍으로 본다. 따라서 세운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어서 움직여 실행시킬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진부할지 몰라도 운은 누구에게나 돌아오니 힘든 시기가 지나가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이다. 나쁜 운은 영원하지 않고, 나와 환경 간의 지나가는 불협화음일 뿐이다. 운과 명은 결정론이 아니라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다.

그렇다면 관상은 어떨까? 김구 선생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지속하며 신분을 벗어나고자 과거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하게 된다. 가문에 세력과 재산이 있으면 대필, 청탁 등 부정행위로 시험에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낙담한 선생은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관상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선생은 관상책 『마의 상서』를 읽으며, 자신의 얼굴이 귀한 상이 아니라는 데 절망했지만,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라는 구절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렇게 선생은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운이 좋지 않다고 해도 그 운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김구 선생의 이야기는 180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어려운 지금의 상황과 아주 다르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리고 관상학이 널리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라고 해도 외모가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큰가? 심리학에서 후광효과는 대상의 어느 한 측면에서 받은 긍정적 인상으로 사람의 전체적인 특성을 판단하는 인지 편향으로, 외모가 아름다울수록 선한 것이며, 지적이고, 성공했을 것이라고 추론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집안이 좋지 않았어도, 관상학적으로 외모가 좋지 않았어도, 관상에서 심상의 세계로 지도를 옮겼다. 『마의 상서』에 마지막으로 추가된 ‘심호불여덕호心好不如德好’라는 구절은 마음이 착한 것은 덕이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얼굴의 생김새가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여도 관상을 바꾸는 것은 착한 마음인 심상이며, 그 마음의 완성은 구체적인 선행의 실천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너무 비장해질 필요는 없다. 꼭 나라를 구한 영웅이나 위인이 아니어도 자신의 운이나 젊은 시절의 실패를 넘어 남들이 다 늦었다고 할 나이에 뒤늦게라도 생을 꽃피운 인물이 존재한다.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로 불리는 미국의 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가 70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모지스는 가정부로 일했고, 결혼 후에는 농부의 아내로 살았으며, 관절염으로 바늘을 들지 못해 취미인 자수를 할 수 없을 때 붓을 들었고, 101세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 시골의 풍경과 일상의 장면을 포착한 따뜻한 화풍의 그림을 우연히 수집가가 구매한 뒤 전시가 열리게 되었고, 모지스는 국민화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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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ma Moses, Help, 1956 © 2025 Seattle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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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ma Moses, Santa Claus is Here, 1960 © 2025 Seattle Art Museum

60세에 정년퇴직하고 그 이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일본의 엑셀화가 호리우치 다쓰오Horiuchi Tatsuo도 있다. 비싼 재료를 구매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공짜로 할 수 있는 엑셀의 도형채우기 기능을 활용해 스프레드시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CNN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그는 직장에 다닐 때도 엑셀을 사용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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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우치 다쓰오의 작업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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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우치 다쓰오의 완성된 작품

ATARAXIA l Tatsuo Horiuchi l Excel artist, 유튜브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가  7권의 소설을 번역할만큼 사랑했던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는 44세에 알코올 의존증 등으로 회사에서 해고당했고, 처음 책을 출판했을 때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실직 상태로 불면증에 시달릴 때 『펄프 매거진』을 읽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필립 말로라는 탐정이 주인공인 추리소설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전설이 된다. 하루키는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중 ⌈챈들러 방식⌋에서 책상을 하나 정하고, 매일 일정시간 책상 앞에 앉아, 한 줄도 쓸 수 없더라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챈들러 방식이라고 말한다. 이 방식은 언젠가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올테니 초조하게 굴지 않는 자세까지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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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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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챈들러, 1946. Courtesy of the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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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매거진 콘셉트의 영화 ‹펄프 픽션› 포스터

작가 박완서 역시 화가 박수근을 만나 나목 연작 ‹나무와 두 여인›을 보고 집필한 『나목』으로 공모에 당선되며 40세에 등단했다. 지금은 40세를 넘어 등단하는 작가도 많지만, 그 당시로는 늦깎이 신인이었던 박완서는 40세에 작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며, 그전의 삶이 박완서를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작가가 되기 전 살았던 시간은 허송세월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삭혀 문학적 자양분을 비축하는 기간이었다고 말이다. 그것은 벌거벗겨지고도 쓰러지지 않은 나무, 나목처럼 버텨내는 삶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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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130×89cm Ⓒ Leeum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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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완서의 1971년, 1974년, 1975년 모습. 가운데 사진의 청년은 박완서의 장녀 호원숙 작가다. 출처 여성동아
 

최근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가 “우리 모두 보다 더 큰 꿈을 꾸었다고” 샤라웃한 수전 보일Susan Boyle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처음 등장한 모습은 인상적이다. 작은 마을에서 온 여성으로,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이 결코 세련되었다고 할 수 없는 47세의 무직 수전이 무대에 섰다. 어색함을 이기려는 듯 허리를 돌리는 제스처를 하고, 꿈은 프로 가수가 되는 것이라는 수전의 말에 관객석은 물론이고 심사위원까지 냉담했고, 심지어 조소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수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비웃음은 경이로움으로 변했다. 수전이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의 첫 소절 ‘I dreamed a dream in time gone by’를 노래할 때는 그 가사가 장애로 왕따를 경험한 보일의 지난 삶과 맞물려 더 큰 감동으로 공명했다. ‘그동안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수전이 기회를 두드렸고, 내면의 ‘호랑이’ 같은 울림이 퍼져 나가도록 운이 열렸다. 수전이 살아낸 지난 세월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고, 그 목소리 안에 담겨 있었다.

티모시 샬라메의 샤라웃 영상

2009년 수전 보일의 첫 오디션 영상. 현재까지 다시보기와 하이라이트 등 다양한 영상클립이 생성되고 있다.

이참에 한국의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70대에 손녀의 권유로 유튜브를 시작해 인생이 뒤집힌 것도 잊지 말자. 너무 유명인들이라고? 이 라인업에 끼기엔 밸런스가 맞지 않지만, 필자 역시 중년 가까이에 전공과 생의 경로를 수정하고 새로 시작한 경우이다. 미술을 전공했던 필자는 가족이 치매로 진단받은 후 치매를 고쳐보고 싶다는 마음에 미술치료와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술치료사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나이 듦과 아픈 경험이 주는 힘도 때로는 스펙이 될 수 있다. 밈이 말하듯 우리는 키즈모델 빼고 뭐든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이고, 묵묵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오게 되고, 운이 트이는 순간이 온다. 대단한 위인이나 유명인이 되는 운이 아니어도 자기만의 삶 속 화양연화는 누구에게나 있다.

마지막으로 꼭 연말연시가 아니라 해도 언제든 시간적 랜드마크를 직접 찍고, 심상을 리셋하기 위한 행동 중 세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필자의 새해 다짐이기도 하다. 여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상황과 디테일을 더하면 액션 플랜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① 공간을 청소하고 정리한다.

눈앞의 공간이 복잡하면, 마음도 복잡해진다. 물건을 정리하고 묵은 물건을 처리하는 것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의식이 된다.

② 밖으로 나가 걷는다.

한곳에 정체되어 있으면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불안이 커진다. 겨울의 찬 공기가 머리를 깨우고, 걷는 발의 감각, 거리의 모습, 소음과 냄새로부터 뇌는 현재라는 감각 정보를 인식한다. 그렇게 과거와 불안에 매몰된 의식을 지금-여기로 가져올 수 있다.

③ 작은 성공 경험을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하기로 정하고, 작심삼일의 실행이 된다 해도 계속 또 시작해 3일씩 지속한다. 스스로 작은 성취를 칭찬하며 성공을 적립하면, 하루만큼의 성공 경험이 모여 삶의 방향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은 반복은 장기적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청소나 운동 후 씻거나 무언가를 마친 후에 개운하다고 말한다. 개운하다는 것은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가뜬한 해방감을 가리킨다. 명리학에서 개운은 개운(開運)으로 운이 열린다, 즉 운이 트인다는 뜻이다. 여기서 운은 한자 움직일 운(運)으로, 운은 움직임을 내포한 동사이다. 운을 상황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관점이나 인지 편향의 산물로 보는 서양철학의 관점에서도 운은 결국 우리 자신의 행위이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점은 같다. 수동적인 운명론이 아니라 능동적인 실천론을 말하는 것이다. 새해에 당신이 열고 싶은 운은 무엇인가? 당신이 움직이고 싶은 운은 어디로 향하는가? 그 답을 찾아 우선 한 걸음부터 내디뎌 보자.

스크린샷 2025-12-24 오전 9.01.09

Writer

김지혜 박사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로, ‘아트애즈테라피(artastherapy.kr)’를 운영하며 예술치료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의 관점을 교차하고, 창작과 치유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연구 주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다문화 사회정의 미술치료와 반응작업 미술치료가 있다. 앞으로 미술과 음악, 문학, 무용동작 등을 통합하는 예술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공미술, 전시,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저서로는 『치유로서의 미술』이 있다. 

종묘사직을 위하여

[BA]섬네일
Report

[Essay]종묘사직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종묘가 심상치 않습니다.  개발 논쟁의 중심에서, 이곳은 갑자기 아주 오래된 질문을 꺼내 들었어요. 수백 년 전의 제례가 지금도 이어지는 전 세계의 유일한 장소. 그런데 일상의 발걸음은 종묘보다 서순라길과 을지로의 ‘공간’에 더 익숙하죠. 그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간극은 이 오래된 장소와 지금의 도시가 얼마나 다른 리듬으로 버텨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조선의 왕조차 밟지 못했던 길, 신로(神路)가 여전히 남아 있는 종묘. 영화 ‹사도›와 ‹킹덤› 속에서는 익숙한 장면이지만, 서울의 풍경에서는 때때로 영화의 배경처럼 멀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K-콘텐츠가 끊임없이 호출하는 세계관의 원류 같은 이 장소가 그렇게 오래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낯설게 다가옵니다.  지금, 종묘는 어떤 풍경으로 기억될까요. 박경은 기자가 건네는 질문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ssay]종묘사직_2

종묘 영녕전에서 치러진 종묘제례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그리고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관람객 수로 세계 5위권에 이른다는 초현실적인 소식을 얼마전 접하며 무척이나 벅차올랐다. 하지만 한켠에선 실감이 안나는 것도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이던 1970년대에 태어나 온갖 우여곡절을 보고 겪으며 선진국 시대를 살고 있는 나같은 세대는 아마 비슷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광화문에서 한복을 입고 걷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경복궁 생과방과 창덕궁 달빛기행 같은 체험 프로그램은 매번 빠르게 매진되고, ‘궁케팅’이라는 말도 흔하게 들린다. 갓과 철릭같은 전통 복식까지 자연스럽게 ‘스타일’의 일부가 될 만큼, K컬처의 흐름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런 변화의 한편에서, 뜻밖의 장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종묘다. 이름만으로도 그 무게감이 느껴지는 장소, 종묘(宗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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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녁 종묘 정전 풍경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에서 왕이 죽으면 육신은 왕릉에 묻혔고 그 혼은 종묘에 모셔 제사를 지냈다. 쉽게 말하면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인 셈인데, 종묘는 단순한 사당이 아니다. 500년 왕조 조선이라는 국가의 통치철학과 정신이 고스란히 저장된 곳이다. 혹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첫 장면을 기억하는지.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을 멀찍이서 잡아낸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얀 눈이 덮인 정전의 위엄있는 모습. 왜 이 영화는 종묘 정전의 모습으로 시작했을까. 역대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종묘에 단 2명의 왕이 빠져 있다. 짐작하다시피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영화 ‹광해›의 트레일러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종묘는 익숙한 듯도 하지만 다소 멀게도 느껴진다. 화려하고 우아한, 혹은 친근한 궁궐과 비교했을 때 다소 딱딱하고 엄숙하다. 발길을 사로잡는 포토존도 없다. 아마도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가 주는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종묘를 제대로 느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두어 차례 간 적은 있었지만 그저 도심 속에서 고즈넉한 녹지를 거닐며 산책했던 기억밖엔 없었다. 괜히 송구한 마음에 제대로 한번 보자 싶었다.

평일 오후의 종묘 앞 광장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해설자의 인솔에 따라 단체로 입장을 해야하므로 20분 가량을 기다렸다. 어림잡아 40명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부터 평범한 직장인, 데이트하는 듯한 커플까지. 의외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 옆에서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네”하며 들으라고 혼잣말을 하자 그 여성은 “그러네요.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요”하며 알은체를 했다. 66년 평생을 서울에 살았는데, 요즘 하도 뉴스에 많이 나와 마음먹고 처음으로 구경을 왔다는,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털어놨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니 입구부터 넓적한 돌이 깔린 길이 곧게 뻗어 있다. 삼도라고 불리는 3줄의 돌길. 가운데가 살짝 높았고 양쪽은 좀 낮다. 자세히 보니 길 바닥도 울퉁불퉁하다. 산책로라고 하기엔 심오한 뜻이 서려있는 듯한 돌길이다. 가운데의 높은 길은 신로(神路), 즉 조상신들이 지나는 길이며 왼쪽은 왕이 다니던 ‘어로’, 오른쪽은 왕세자가 걷던 ‘세자로’다. 신로는 그 시절 왕조차도 걸을 수 없던 길이었던지라 지금도 이 길 위엔 ‘보행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이 길은 종묘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인 정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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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돌길. 왼쪽부터 어로, 신로, 세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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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를 걷고 있는 시민들

이런저런 건물을 구경하다 정전 뜰로 들어선 순간 컥 하고 숨이 멎는 듯했다. 장중함에 굴복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화려한 곡선이나 아름다운 장식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단순한 건축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흘러나오는 절대적 위엄이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절제와 비례만으로 이런 긴장감을 뿜어내는 건물과 공간을 본 적이 있던가. 다들 말을 멈춘 채 한동안 정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하늘을 올려다 봤다. 높고 푸른 하늘, 그 아래 울창하게 둘러선 숲과 나무를 눈으로 훑다 다시 정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마 조선시대의 왕들과 대소신료들은 이 공간에서 종묘사직의 지엄한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했으리라. 우리가 수많은 사극에서 신하들이 왕에게 “종묘사직을 위하여…”하고 간언하던 대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공간은 나라의 근간이자 정체성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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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 전경 사진. 국가유산포털

500년간 조선의 왕들은 이곳에서 역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것이 종묘제례다. 지금도 1년에 2차례씩 원형 그대로를 재현해 치르고 있다. 이때 연주되는 종묘졔례악은 음악과 무용이 결합된 종합 예술이다. 종묘는 1995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전세계에 왕실과 궁궐은 널렸고 각각의 상징적 이벤트를 보유하고 있겠지만 수백년간 이어진 왕실 제례를 현재에도 그 공간에서 그 원형대로 재현하고 있는 현장은 종묘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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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포털

“내 너를 기억할것이다, 비켜라” 사도와 킹덤의 촬영지 [종묘], 국가유산청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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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해질녁 종묘 정전 모습

이런저런 관념적인 설명을 붙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K사극’ 유니버스에 세계인들도 익숙해진 시대. 한마디로 종묘는 ‘K사극’ 서사의 뿌리이자 세계관의 근원이다. 조선왕조의 역사와 철학, 문화, 건축이 한데 모여 시간의 감각을 총체적으로 체현하는 공간이다. 우리가 사극으로 보는 그 콘텐츠를 품은 실존의 무대다. 종묘의 공기와 건축물, 둘러싼 나무와 숲, 그 위를 덮은 하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까지. 이 모든 공간과 풍경이 포함된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을 빠져나오자 저 멀리 세운상가가 보인다. 1시간 남짓한 시간여행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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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영녕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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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입구 연못 가운데 심겨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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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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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입구에 나 있는 삼도. 가운데 신로 위엔 보행을 자제해달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종묘 주변 개발을 놓고 논란이 계속된다. 문제는 개발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본질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옛날 건물을 보존하자는, 문화유산을 지키자는 감성적 접근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떤 뿌리를 가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도시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미래를 살아갈 후대에게 우리가 전해줘야 할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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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 출처. 셀수스협동조합 한국저작권위원회

Writer

박경은(@pkyongeun)은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다. 탐식(貪食)과 잡식(雜識)을 지향하며 수십년째 써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집필 노동자로 늙어가고 싶다. 책 ‹성스러운 한끼›를 썼다.

증상앤더시티-프로이트의 증손녀들

[BA]섬네일
Report

[Essay]김지혜1_1_오프닝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봅니다. 고린도전서의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는 것에서 차용해 베르히만이 그랬듯이요. 인간의 마음과 도시의 구조, 둘 중 무엇도 선명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연재는 직면이 아니라 반사, 정면이 아니라 비스듬함을 선택했어요. 새로운 기획 ‹증상앤더시티›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 김지혜 박사가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들고 도시의 증상을 바라보는 연재입니다. 도시가 우리에게 새겨 놓은 균열, 그 틈을 통해 되돌아오는 욕망과 불안, 그 모든 것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향유의 순간까지. 정신의학은 늘 보편을 말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읽는 방식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왜곡되며, 희미하다는 점을 아는 것, 그 겸손과 회의를 출발선으로 삼아 도시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 각자의 ‘증상’을 해체하고 그 본질을 비춰보려 합니다. 첫 회는 ‹프로이트의 증손녀들›입니다. 정신분석이라는 오래된 기호를 실제로 계승한 여성 예술가들의 삶에서 도시적 불안과 창조적 증상의 형태를 더듬어 봅니다. 완전한 해석도, 깔끔한 결론도 없는 세계, 다만 비스듬한 반사 속에서 잠시 드러나는 진실의 얼룩, 그 첫 번째 장면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ssay]김지혜1_2_인트로

벨라 프로이트 향초 제품 ⓒ Bella Freud

증상앤더시티

증상앤더시티는 ‘도시’ 속 우리가 겪는 ‘증상’을 분석한다기보다 증상 속 우리의 향유가 얽혀 있는 틈새를 비추며, 나만의 예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생을 직조해 내는 고유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티스트·아트세러피스트로 정체화하는 필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통해 비스듬히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개인의 증상을 형성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내포한다.

“도시의 증상이면서, 도시가 증상이다.”

프로이트의 증손녀들 

피터 왓슨Peter Watson은 『무신론자의 시대』에서 폴 리쾨르Paul Ricoeur를 경유해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를 ‘의심의 대가들’로 칭하며, 의식 전체를 허위의식으로 바라봤던 대표적 인물로 소개한다.

[Essay]김지혜1_3

‘개노답 삼형제’ 밈 생성기로 제작한 이미지. (Gemini, Canva 사용)

그중 무의식을 ‘발견’하고 정신분석을 ‘발명’한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자 했던 선구자이다.

지도는 영토를 정의하지만, 영토가 다시 지도를 그리게 한다. 무의식이라는 영토에 정신분석이라는 지도, 이 생산적이고 순환적인 피드백 시스템에서 돌출되는 것이 증상이다.

현대인인 우리는 증상과 함께 살아간다. 증상은 보통 질병을 통해 환자가 호소하는 이상으로, 환자의 주관에 따른 것이므로 환자가 느끼는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한다. 즉, 개인의 주관적인 불편을 증상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정신의학에서는 증상을 질병이나 장애의 징후로 간주하며, 증상의 완화 또는 제거를 치료의 목표로 삼는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증상은 억압된 무언가가 (욕망이나 외상적 기억이 변형되어 주관적으로 불편한 방식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분석해야 할 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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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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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을 위한 프로이트의 카우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증상(symptôme)과 유사한 ‘Sinthome’(생톰, 보통 ‘증환’으로 번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증상과의 창조적 동일시를 통해 나만의 고유한 양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조건인 결여를 메우려는 시도인 욕망이 좌절되면서 나타난 증상은 ‘내 안에 존재하는 나 이상의 것’이므로 분열적 일 수 있지만, 이는 단순한 치료 대상을 넘어 결여된 주체를 예술적, 윤리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이 된다.

[Essay]김지혜1_6

1967년의 자크 라캉 ©Botti Gamma-Rapho

슬라보에 지젝Slavoj Žižek은 우리가 증상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증상이야말로 ‘아버지의 법’을 위반하며 향유jouissance할 수 있게 하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틈이라고 말한다.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슬라보예 지젝

정신분석의 ‘아버지’인 프로이트는 그가 남긴 거대한 이론적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프로이트의 딸들’을 거느리고 있다. 프로이트의 ‘충실한’ 딸들은 페미니스트 정신분석가 중 프로이트 이론을 가부장제를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로 보고, 이를 사용해 아버지의 법을 무너뜨리려는 전략의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 같은 여성 분석가를 지칭하는 말로, 비판적 함의도 갖는다. 한편 카렌 호나이Karen Horney는 프로이트의 ‘남근선망’에 ‘자궁선망’으로 맞서며, 정신분석 이론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만의 관점을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정신분석뿐만 아니라 ‘이론’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언제나 ‘정치적’이라는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은 『성의 정치학』에서 프로이트 이론을 수정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폐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나는 학문적으로 프로이트의 직계는 아니지만, 미술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증상과 예술(작품)을 혹은 증상의 예술을 정신분석의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프로이트의 방계 어딘가에서 ‘변방의 증손녀’ 정도로 입양되려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피가 섞인 프로이트의 증손녀들이, 그것도 예술하는 증손녀들이 있었으니! 

이제 친자확인은 멈추고,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가 학문적으로는 프로이트의 적통이 아니라는 논쟁도 계속되어 왔으니 정신분석학계에서 피의 계승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라는 정신분석적 기호를 동시대의 메트로폴리탄에서 증상으로, 예술적 방식으로 향유하며 살아가는 여성 후손의 이야기를 ‘자유연상’ 방식으로 그려내 본다.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손자이자 날것 그대로의 누드, 초상화로 유명한 화가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의 두 딸, 벨라 프로이트Bella Freud와 에스터 프로이트Esther Freud가 있다.

[Essay]김지혜1_8

루시안 프로이트의 자화상, 1985, oil on canvas, 562cmx51cm

루시안 프로이트의 두 딸 벨라와 에스더, Bella and Esther, 1987-1988, The Lucien Freud Archive (1)

루시안 프로이트가 그린 두 딸, 벨라 프로이트와 에스더 프로이트

즉, 프로이트의 증손녀인 벨라 프로이트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유튜브 채널 패션 뉴로시스(Fashion Neurosis, 신경증, 벨라가 대변하는 패션과 프로이트를 상징하는 신경증을 조합한 작명)를 운영하기도 한다. 벨라의 어머니는 버나딘 커벌리Bernadine Coverley로, 평생 많은 여성과 연루된 루시안 프로이트와 공식적으로 결혼한 적은 없지만, 파국으로 끝난 다른 여성의 관계와 달리 버나딘은 끝까지 친분을 유지했다고 한다. 벨라는 가족관계를 ‘숲속의 부족’과 같이 비관습적인 관계였다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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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에스터 프로이트의 부모인 루시안 프로이트와 버나딘 커벌리. 사진 제공: 에스터 프로이트

니컬러스 컬리넌Nicholas Cullinan 박사와 벨라 프로이트의 소더비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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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패션 뉴로시스› 촬영장으로도 사용되는 벨라의 집

유튜브 채널 패션 뉴로시스의 공식 질문은 “Can you tell me what you’re wearing today and why you chose these clothes?”로, 벨라는 게스트가 오늘 입은 것이 무엇이며,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세션’을 시작한다. 정신분석이 심층을 탐색한다면, 벨라의 작업은 표면을 다룬다. 그 게스트 라인업이 대단하다. 첫 게스트로 패션 디자이너 릭 오스Rick Owens부터 디올의 조나단 앤더슨JW. Anderson까지, 벨라가 몇 년째 수트를 제작해 주는 뮤지션 닉 케이브Nick Cave부터 로잘리아ROSALÍA, 사진작가 유르겐 텔러Jurgen Teller,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배우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등 매우 다양하다.

디올 여성 컬렉션 데뷔 쇼를 성공적으로 끝낸 뒤, “24시간 일한다”는 조나단 엔더슨의 어록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패션 뉴로시스 조나단 엔더슨 편

그들은 모두 웨스트런던에 위치한 벨라의 집에서 정신분석의 상징인 카우치(Analytic Couch)에 누워 천장(에 달린 카메라)을 응시하며 인터뷰에 응한다. 벨라가 친분이 있는 게스트를 초대하다 보니 찰스 황태자와 카밀라도 참석한 모임에 같이 갔다는 내용 등에서 간혹 그들만의 세상 간 간극에(물론 애초에 왕이 있는 다른 나라 이야기이긴 하다) 아연할 때도 있다. 정신분석의 금수저라면, 프로이트가 원조 명가이긴 하겠다. 물론 루시안 프로이트는 자녀가 (두 번의 결혼과 몇 번의 동거 외 혼외에서 낳은 자녀를 포함해) 공식적으로만 14명은 되고, 벨라의 자매 에스터의 자전적 소설을 읽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아버지, 더 멀게는 할아버지의 후광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벨라의 프로이트 프린트 티셔츠를 유명인들이 입었을까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아비투스habitus에는 경제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이어받는 것이 포함된다.

이처럼 벨라 프로이트는 프로이트라는 위대한 유산을 극복하거나 폐기하려 들지 않는다. ‘패션’과 ‘신경증’이라는 도시의 증상을 카우치라는 무대 장치에 눕히며, 그 형식의 표피만 취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토크쇼가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라 ‘프로이트’가 진행하는 ‘분석’ 장면이라는 정신분석적 기표를 제공한다(케이트 블란쳇의 첫마디는 실제로 “Thank You, Doctor”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혹은 당연하게도(하지만 벨라는 “부끄럽게도”라고 말한다), 벨라는 프로이트의 저작을 한 권도 끝까지 읽지 않았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모든 것에 관심이 있고, 아버지가 프로이트는 재밌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이는 것은 잊지 않는다. 루시안 프로이트는 벨라의 어린 시절에는 부재했지만, 벨라가 런던에 머물게 되는 16세부터는 친밀한 교류가 이루어졌고, 벨라는 여러 번 루시안의 그림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벨라는 아버지를 (미친 방식으로) 사랑했음에도, 벨라의 삶이 충만해졌을 때는 아버지를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나로 산다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벨라는 패션 뉴로시스에서 인터뷰할 때 아버지의 의자에 앉아 있다. 이 과정은 완전히 프로이트적(Freudian)이다. 

프로이트는 벨라 개인의 이름이지만, 어쩌면 가장 공적인 기호 중 하나로, 벨라는 이 기호를 티셔츠 표면에 새기며 동시대의 패션으로 재전유한다.

벨라의 대표 디자인인 ‘Ginsberg Is God’이 새겨진 티셔츠, 점퍼, 컵, 향초 등의 앞면에는 ‘Ginsberg is god’이, 뒷면에는 ‘Godard is dog’이 프린트되어 있다. ‘Ginsberg’는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의 구루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를, ‘Godard’는 프랑스의 누벨바그 감독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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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sberg Is God’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 앞면 ⓒ Bella Fre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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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ard is dog’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 뒷면 ⓒ Bella Freud

긴즈버그는 컬럼비아대학 시절, 윌리엄 버로스, 잭 케루악 등과 군국주의, 자본주의, 성의 억압 등에 반대한 반문화 운동의 아이콘으로 의식의 확장을 이야기했고, 고다르는 기존의 기존 영화 문법을 파괴하고 영화를 정치적 혁명과 투쟁의 도구로 실험하며 영화의 ‘소비’를 방해했던 영화계의 증상 그 자체이다.

긴즈버그의 대학시절을 그린 영화 ‹킬 유어 달링› 트레일러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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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프로이트의 ‘Ginsberg is god’ 티셔츠를 입은 케이트 모스

이 티셔츠는 케이트 모스Kate Moss가 입으면서 유명해졌고, 벨라는 제인 버킨Jane Birkin을 위해 이 티셔츠의 다른 버전 ‘Je t’aime Jane’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티셔츠를 알렉사 청이 입는다(2000년대의 패션 아이콘 케이트 모스와 알렉사 청은 어김없이 벨라의 유튜브에 게스트로 등장하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증손녀는 프로이트라는 기표를 아버지의 법에서 해방시킨다. 프로이트, 긴즈버그, 고다르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패션 아이템이라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형태로 브랜딩하며, 기표를 스타일로 유희한다.

벨라가 프로이트의 유산으로 외적인 스타일을 만들었다면, 벨라의 동생 에스터는 이 유산을 내면의 작업으로, 내러티브로 풀어낸다. 에스터의 첫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Hideous Kinky』는 수피즘에 빠진 어머니, 벨라와 함께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히피로 생활하던 어린 시절의 18개월을 그린 자전적 소설로, 불안정했던 가족관계와 성장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사족의 사족으로 윈슬렛은 그 당시 조감독이었던 짐 스레플톤Jim Threapleton과 결혼하기도 했었다].

영화 트레일러

수녀원 기숙학교에서 탈출해 10대에 딸을 임신한 어머니와 30대 후반이었던 아버지, 다른 여성과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악명 높던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내면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성장했을까? (이번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가족 로맨스(Family Romance) 이론에서 아이가 실제 부모에게 갖는 불만족과 실망감을 해소하고,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신이 더 고귀한 혈통을 지닌 이상적인 부모의 자식이라는 무의식적 환상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에스터가 만들어낸 환상은 무엇일까? ‘Hideous Kinky’는 소설 속에서 두 자매가 낯선 세상을 마주하고, 알 수 없지만, 때로는 기괴하고 멋지다는 감정적 반응을 비밀스럽게 공유하기 위해 만든 암호이자 은어이다. 끔찍한 변태 등의 뜻 그대로라기보다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명명하면서 둘 사이 유대감을 구축하는 언어적 장치, 즉 증상이 된다.

에스터 프로이트는 부재하는 아버지, 프로이트적 아버지를 거부하고 새로운 영적 아버지를 구하는 어머니를 두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자기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글쓰기는 그 자체로 치료적 힘을 가질 수 있다.

벨라 프로이트의 ‘증상’은 프로이트(Freud)라는 기표를 스타일로 입고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유산)와의 유희이다. 에스터 프로이트의 ‘증상’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이야기를 다시 쓰고,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하는 내러티브 재구성으로서 글쓰기이다.

[Essay]김지혜1_20_엔드이미지

Writer

김지혜 박사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로, ‘아트애즈테라피(artastherapy.kr)’를 운영하며 예술치료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의 관점을 교차하고, 창작과 치유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연구 주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다문화 사회정의 미술치료와 반응작업 미술치료가 있다. 앞으로 미술과 음악, 문학, 무용동작 등을 통합하는 예술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적 연결을 위한 공공미술, 전시,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자 한다. 저서로는 『치유로서의 미술』이 있다.

有印良品 유인양품-고요의 서비스

[BA]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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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유인양품1_1_오프닝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정우영 에디터가 보낸 한 통의 메일에서 이 시리즈가 시작됐어요. 메일에서 ‘유인양품’을 읽는 순간, 브랜드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필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했죠. 무인양품(無印良品)이 ‘상표 없는 좋은 물건’이라면, 유인양품(有印良品)은 ‘상표가 찍힌 좋은 무언가’를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예요. 여기서 말하는 ‘양품’은 상품으로서 물건에만 한정되지 않아요. 창작자가 만든 음반, 미술관의 굿즈, 한잔의 커피처럼 작은 경험, 어떤 공간이 제공하는 독특한 서비스까지 모두 포함해요. 어떤 날은 리뷰가 되고, 어떤 날은 인터뷰나 기행문이 될 수도 있죠. 핵심은 하나.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창작자·기획자의 고유한 의도와 감각을 읽어내는 것, 그들이 찍어낸 인장[印]을 따라가며 그 너머의 세계관과 태도까지 탐색하는 기획이 바로 ‹유인양품›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고요’를 하나의 서비스로 제안하는 공간에 관한 기록이에요. 한 사람의 완벽한 순간으로도 충분히 존재하는 그곳을 정우영 에디터가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소개합니다.

[essay]유인양품1_2_인트로

틸트의 ‘Phonic Deck’구역

번역하면 Branded Quality Goods입니다. 노 브랜드가 브랜드가 되는 시대, 이 연재는 브랜드의 어원이자 그 첫 번째 의미, ‘인장’으로 돌아갑니다. 브랜드의 상품성을 두 번째로 둔다는 뜻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것은 팔려야 하는 숙명을 갖지만,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무용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상품성이 첫 번째가 아니므로 예술작품일 수도, 어쩌면 무형의 서비스일 수도 있는, 고유한 ‘양품’을 소개합니다. 

고요의 서비스 

여기에서 당신은 카페의 첫 손님 혹은 바의 마지막 손님이다. 카페의 첫 손님은 버, 그룹헤드, 포터필터를 세척하고 내리는 첫 잔, 아마도 그날 마실 커피 중 가장 깨끗한 한 잔을 마신다. 막 닦은 테이블 위에 남은 레몬 세정제 냄새, 방금 청소를 끝낸 화장실에서 풍기는 락스 냄새도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 다만 당연해서 무심코 지나친다. 당신은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바의 마지막 손님은 벌써 몇 번째 마지막 잔을 시켰는지 모른다. 하지만 밤이 가장 어두운 골짜기에 도달했고, 신호 대 잡음비가 최대치를 찍었다. 음악이 가장 가까운 친구가 술잔을 사이에 두고 꺼내는 고백처럼 들린다. 몸만 잘 가누고 집에 돌아간다면, 오늘의 비밀이 새어나갈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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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디스코 바

물론 소음은 절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 카페에 함께 앉은 직장 동료의 유독 큰 웃음소리는 소음이 아니고, 지하철 옆 사람의 헤드폰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블랙 핑크의 음악은 소음이다. 그래서 주간 집회 소음은 최대 90데시벨, 주간 층간 소음은 5분간의 등가소음 기준 45데시벨 이상처럼 객관적인 지표가 있지만, 소음을 둘러싼 갈등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소음의 절대성과 주관성을 인정하는 서비스를 하는 곳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서비스는 상품 자체를 제외한 모든 유무형의 요소를 가리키는데, 지금까지 미처 그 범주라 상상하지 못한 ‘고요’가 그들의 서비스다.

키에리는 케이크 카페다. 코코넛 에스프레스 치즈케이크, 블루베리 티라미슈, 애플 크럼블 케이크처럼 건강하고 창의적인 메뉴 못지 않게 다른 면의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절대적으로 조용히 해야 한다. 입장부터 절차가 있다. 출입문 밖 벨을 누르고 기다리면 직원이 나온다. “조용히, 소곤소곤 대화 하는 곳입니다” 라는 문장이 가장 큰 글씨로 써진 안내문을 준다.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곳을 이용하는 분들 모두가 공평하게 조용한 카페 공간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라고 부연한다. 자리에 앉으면 작은 안내문이 하나 더 보인다.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화는 작게 나눠주세요.” 도요타는 1994년 부품 추적 시스템으로 개발한 QR 코드가 훗날 모바일 혁명의 한 축을 담당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키에리는 케이크 카페일 뿐만 아니라 ‘조용한 공용 공간’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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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리의 유기농 커피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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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리의 유기농 커피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키에리의 이용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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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리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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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리의 디스플레이 카운터

조용한 상태를 가리키는 미묘하게 다른 다양한 한국어가 있다. 적요, 정적, 적막, 고적, 침묵, 잠잠, 고요 등등. 그중에서도 키에리에 어울리는 단어는 고요다. 고요에는 ‘적막’ 같은 긴장감이 없다. ‘침묵’처럼 말을 안 하는 상태도 아니다. ‘정숙’처럼 규칙이라기보다 제안, 권유처럼 더 부드러운 형식이기도 하다. 고요에는 평화가 있다. 타이거디스코 바 역시 고요를 추구하는 곳이다. 평화를 위해서.

가을이라는 계절감에 맞게 재즈가 많이 나오는 타이거디스코 바의 화요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여행스케치의 동요집은 바이닐로 처음 들었다. (매우 희귀한 음반 중 하나다.)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로 시작하는 그 익숙한 동요가 여행스케치 특유의 하모니와 낭만적인 편곡 속에서 새롭고 아늑했다.

여행스케치 – 가을
가을이라는 계절감에 맞게 재즈가 많이 나오는 타이거디스코 바의 화요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여행스케치의 동요집은 바이닐로 처음 들었다. (매우 희귀한 음반 중 하나다.)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로 시작하는 그 익숙한 동요가 여행스케치 특유의 하모니와 낭만적인 편곡 속에서 새롭고 아늑했다.

타이거디스코 바는 올해 5주년을 맞았다. 타이거디스코 바 역시 입장과 동시에 안내문이 제시된다. “3인 이상은 절대 이용 불가”하고, “반드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눠야 하며, “노트북과 아이패드 같은 전자기기 사용”도 허용하지 않고, “만취 및 음식 냄새와 체취를 동반하는 분들”도 받지 않는다. 복장 규정이 있는 스피크 이지 바나 클럽을 포함해도 높은 문턱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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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디스코 바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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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디스코 바의 기본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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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디스코 바의 기본 안주

타이거디스코 바의 하이볼

개업 초기 한국 대중음악 또 디스코, AOR 분야의 디제잉으로 명성이 있는 타이거디스코의 바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주의 깊은 음악 감상 공간을 만들겠다는 그의 의도는 차츰 부서져간다. 정중하게 제안하는 정도로는 손님들의 소음을 줄일 수 없었다. 하나 하나 안내 사항을 늘려갔다. “안 되는 게 이렇게 많은데, 이게 무슨 술집이고 서비스업이냐”는 식으로 여론도 좋지 않게 흘렀다. 하지만 타이거디스코는 굴하지 않았다. 처음엔 단지 소음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들이었다가 차라리 좀 더 나아갔다. 모든 고객의 평등이었다. 평화와 같은 평평할 평 자를 쓴다. 고르고 조화로운 평화고, 고른 등급의 평등이다. 그는 말한다. “음식 냄새, 체취를 가진 분들까지 제한하는 건 단지 불쾌해서가 아니에요. 타이거디스코 바는 다양한 위스키를 팔죠. 위스키는 향이 중요한 술이고요. 음식과 체취 냄새를 참고 위스키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다른 손님들이 받아 마땅한 서비스를 해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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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디스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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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디스코 바

키에리가 있고 타이거디스코 바가 있었어서, 틸트가 가능했다. 한 사회의 문화적 성숙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고, 타이거디스코는 이제 겨우 손님들이 그 높은 문턱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말한다.

틸트는 음악 감상실이다. 클래식 음악 감상실은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엄숙한 분위기에 저절로 손님이 입 다무는 곳들이다. 하지만 대중 음악을 틀면서 ‘음악 감상실’이라 이름 붙였어도 그랬을까? 틸트는 클래식의 권위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 스스로 탁월해지면서 평등해지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평등은 돌출된 것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만 달성되지는 않는다. 

틸트는 대중음악을 다룬다. 요일 별 프로그램으로, 재즈, 블루스, MPB, 클래식 록, 인디 록, 올디즈, 한국 음악,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등 웬만한 대중음악을 아우른다. 플레이리스트에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3개의 구역으로 나뉜, 3개의 사운드 시스템의 소리는 압도적이다. 

첫 번째 ‘Phonic Deck’ 구역은 고성능 스테레오 사운드 시스템으로 레퍼런스급 음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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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Deck’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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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Hall’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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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입구

두 번째 ‘Phonic Tunnel’은 촉각적인 경험의 영역이다. 바닥으로 전달되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Phonic Hall’은 최상급 음향, 공간 설계의 결정판이다. 7개의 메인 스피커, LFE 서브우퍼, 4개의 천장 스피커로 좌우, 앞뒤, 상하의 입체 음향을 들려준다. 입체 음향의 대명사, 돌비 아트모스까지 적용한 결과다. 독일 브랜드 Geithain과 스페인 브랜드 Triple Onda의 제품을 사용하고, 그들에게 엔지니어링까지 맡겼다. 보통 소리가 잘 조율된 공간은 구석이든 중앙이든 편차가 크지 않게, 평등하게 들린다. ‘Phonic Hall’은 그 최대치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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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Hall’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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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Tunnel’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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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Tunnel’ 구역

틸트를 방문한 월요일은 클래식/재즈/블루스의 날이었다. 혹시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느냐 물으셔서 스피리추얼 재즈로 어떤 곡이든 좋다 말씀드렸더니 이 곡을 트셨다. 

‘The Creator Has A Master Plan’은 압도적인 힘에서 나오는 각성이 맛이다. 하지만 Phonic Hall에서는 쉐이커, 귀로 같은 작은 손악기 소리들도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이 곡을 더 상상적으로 만들었다. 

Pharoah Sanders – The Creator Has A Master Plan,

틸트를 방문한 월요일은 클래식/재즈/블루스의 날이었다. 혹시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느냐 물으셔서 스피리추얼 재즈로 어떤 곡이든 좋다 말씀드렸더니 이 곡을 트셨다. ‘The Creator Has A Master Plan’은 압도적인 힘에서 나오는 각성이 맛이다. 하지만 Phonic Hall에서는 쉐이커, 귀로 같은 작은 손악기 소리들도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이 곡을 더 상상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착한 커피’가 아니다. 평등을 지상 가치로 내세운 적이 없다. 차라리 일반명사 손님이 아닌 고유명사 손님이다. 한 명의 손님이 참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명의 손님이 카페의 첫 손님, 바의 마지막 손님과 같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운영자가 이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설득하고 싶은 전망이 그 한 명에게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명의 손님이 수많은 손님들 틈에서 혼자 충만해질 때, 문득 고요해진다.

BA]엔드이미지_고요의서비스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