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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Gacha! WOOR 유리아·이민지가 뽑은 것

Editor: 방현식
, Photographer: 박도현

GACHA!

흥미로운 인물에게 랜덤 질문을 던집니다.

가챠는 일본말 가챠가챠(がちゃがちゃ)의 준말입니다. 작은 기계에서 나는 시끄러운 금속음을 말하는데요. 우리에게는 랜덤하게 캡슐을 뽑는 게임으로 익숙해요. 저희는 이 가챠 시스템을 인터뷰에 적용했어요. 궁금한 질문을 마구 그러모은 후 인터뷰 현장에서 무작위로 뽑아 대화를 청합니다. 보통의 인터뷰와는 분명 다른 맛이 나겠죠?

랜덤으로 질문하는 예측불허 인터뷰에 올라탄 세 번째 주인공으로 모자 브랜드 ‘WOOR’을 운영하는 유리아·이민지 대표를 모셨습니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피고 지는 요즘, 두 사람은 처음부터 ‘모자’에 초점을 두고 브랜드를 운영해 왔는데요. 여기에 ‘PeeP’이라는 팝업 겸 편집숍까지 연다는 사실은 에디터의 흥미를 더욱 자극했죠. 두 사람이 모자를 만들게 된 계기와 편집숍을 운영하며 겪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왼쪽부터 이민지, 유리아

◑ 서로의 스타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을 한 가지 꼽아주신다면요?

유리아(이하 리아): 스타일도 그렇지만, 민지 언니의 큰 키가 제일 부러워요. 저는 언니를 실제 만나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일방적으로 팔로우하고 지켜봤는데요. 평범한 옷을 입어도, 비율이 좋아서 태가 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와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언니가 올렸던 사진들을 저장하고 레퍼런스로 삼았던 기억이 나요. 무슨 짝사랑하는 사람처럼요. (웃음)

┗ 그러다가 DM으로 연락을 해서 만나게 되신 건가요?

리아: 의류 쇼핑몰에서 만났어요. 제가 먼저 사무직으로 일했고, 언니는 나중에 모델 겸 아트 디렉터로 영입되었죠.

┗ 서로의 첫인상이 궁금하네요.

이민지(이하 민지): 리아의 첫인상은 정말 일 잘하는 회사원 같았어요. 디자인이나 패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닐까 어림짐작하기도 했죠.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 때문에 성숙해 보여서, 저보다 나이가 어린 줄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동대문으로 함께 시장 조사를 나갈 일이 생겼는데, 서로 취향도 잘 맞았고, 리아가 내는 의견들이 하나같이 다 제 스타일이더라고요.

┗ 그럼 그때부터 WOOR을 준비하신 건가요?

리아: WOOR을 준비한 건 회사를 나온 후예요. 2018년 즈음 공교롭게도 같이 퇴사하게 되었는데요. 직장을 찾다가, ‘아예 함께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언니를 알아갈수록 제게 없는 부분을 갖고 있어서 좋더라고요. 상상력도 풍부하고, 무언가를 서칭해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났죠. 반대로 저는 실행이 빠른 편이고, 운영에 필요한 부분을 챙기는 데 자신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어떤 아이템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모자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 첫 사업 아이템으로 모자를 떠올리기 쉽지 않을 텐데 흥미롭네요.

민지: 사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요. 2015년 즈음 인스타그램이 막 활성화되던 시기였는데요. 제가 무인양품에서 구매한 버킷햇을 쓰고 찍은 사진을 올렸어요. 얼굴을 거의 가릴 정도로 푹 눌러쓸 수 있는 깊이의 검은색 모자였는데요. 그 사진에 ‘좋아요’가 엄청 눌린 거예요. 댓글이나 DM으로 제품 정보를 묻는 분들도 많았죠. 그래서 의류 쇼핑몰을 다닐 때 모자를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떠냐, 제안도 받았어요.

리아: 언니가 모자 쓴 사진이 인기가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둘 다 모자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저는 예전부터 의류 업계에서 일해서 모자 만드는 과정을 알고 있었죠.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버킷햇을 제작해보자고 마음 먹은 게 WOOR의 시작이에요.

┗ 반응은 어땠나요?

리아: 저희 기대보다 훨씬 더 잘 팔렸어요. 블랙, 네이비, 아이보리, 미스티 블루 네 가지 색상으로 만들었는데요. 개당 3만 5000원이었는데 몇천 개는 판 것 같아요.

┗ 몇천 개요??

리아: 몇천 개라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더 많이 팔았어요. 몇 차례 리오더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죠. 그래서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으로 팔다가, 관리가 어려워서 블로그에서 판매했어요. 대략 2년 정도 블로그로 팔았는데, 꾸준히 구매 문의 댓글이 달렸던 것 같아요.

┗ 많이 팔린 비결이 뭘까요?

민지: 저희 모자 같은 상품이 시중에 없어서 아닐까요? 앞서 말한 무인양품 버킷햇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쓰고 다니다 보니,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무인양품 버킷햇은 푹 눌러쓸 수 있어서 좋았지만, 머리를 뒤로 묶었을 때 불편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앞뒤 챙 길이를 다르게 만들었죠. 모자의 깊이는 유지하되, 시야 확보가 필요해서 앞의 챙 길이를 기존보다 짧게 했어요. 모자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쓰고 다니면서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문제들을 해결해서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던 것 같아요.

◑ 지금까지 마주한 손님 중에 가장 진상은 누구였나요?

민지: 진상이라 할 만한 손님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귀여운 분들이 많았어요. 저희는 WOOR과는 별개로 PeeP이라는 편집숍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 매장을 연희동에 열었어요. 팝업도 열고 플리마켓도 열다 보니까, 한적한 동네가 북적북적해졌죠. 그래서 동네 어르신들도 구경하러 자주 놀러 오시는데요. 한번은 어떤 어르신이 양파망을 들고 매장을 구경하시더라고요. 저희 눈에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웃음)

리아: 진상보다는 감사한 분이 많았어요. 매장에 방문하신 분 중에 “옛날에 블로그에서 판매한 버킷햇 잘 쓰고 다녔어요!”라며 인사하는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 그런데 편집숍은 어떻게 열게 되신 거예요?

리아: 동명의 팝업 행사가 시작이었어요. WOOR을 오프라인에서 소개하고 싶어서 PeeP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했는데요. 저희 제품만 소개하기보다는, 주변에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들과 함께 행사를 진행하면 어떨까 싶었죠. 그래서 망원동에 자리한 카페 604부터 편집숍 트리라이크스워터treelikeswater, 그리고 식물 가게 4t까지 저희가 좋아하는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 하는 팝업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그게 지금의 편집숍으로 이어졌고요.

┗ 첫 팝업의 반응은 괜찮았나요?

리아: 생각보다 많이 오셨어요! 각 브랜드와 매장의 팬들로 북적거렸죠. 팝업을 진행한 4t 매장이 신용산에 있거든요. 2021년 행사를 열었는데, 마침 신용산이 뜨고 있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해요.

민지: 팝업에 많은 분이 오신 점도 기뻤지만, 그래도 가장 기분 좋았던 이유는 WOOR의 진가를 알아봐 주셨기 때문이에요. (웃음) 소재나 디테일을 칭찬하는 분들도 많았고, 가격을 듣고는 생각보다 저렴하다며 놀라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때 브랜드를 계속 이어갈 힘을 많이 얻었어요.

┗ 처음 팝업을 기획할 때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민지: 리아랑 만났던 회사를 나온 후, 컬렉트Kollekt라는 가구점의 사업 중 하나였던 위클리캐비닛Weekly Cabinet의 일을 제안받아 저희 둘이 진행했어요. 빈티지 가구 기반의 팝업 전시를 여는 게 주 업무였는데요. 한남동에 위치한 공간에서 매달 새로운 팝업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전시 콘셉트 구상부터 포스터 디자인도 저희 둘이 하고, 팝업 전시에 참여하게 되는 작가님에게 연락을 돌리는 일도 저희 둘의 몫이었죠. 공간을 구성하고, 이후에 철거하는 일까지 함께했어요. 그래서 PeeP의 첫 번째 팝업을 기획할 때, ‘그때만큼 어려울까…’ 싶어서 바로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위클리캐비닛을 기획하며 기억에 남는 전시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민지: «나른»이라는 팝업 전시가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차(茶)를 기반으로 한 전시였는데요. 차와 다구를 다루는 분을 섭외하고, 타이틀과 어울리는 빈티지 가구를 골라서 배치했어요. 세라믹 디자이너와 스카프 브랜드도 함께 섭외했죠. 여러 브랜드를 한데 모아 ‘나른함’이라는 단어를 시각화하려고 노력했어요. 주말에 차 시음회를 운영한 덕분에 반응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원래 계획한 전시 기간인 2주에서 한 주 연장하게 되었거든요.

리아: 위클리캐비닛에서 기획한 전시 대부분 반응이 좋았어요. 연예인도 많이 찾아와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도 했죠. 그래서 ‘우리가 팝업 기획을 잘 하는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민지: 동시에 팝업 기획이 정말 힘들다는 걸 깨달았어요. 매달 팝업을 기획하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위클리캐비닛에 입사한 지 일년 정도 지났을 때, 리아와 회사를 나왔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WOOR을 준비했죠. 회사를 다니면서도 WOOR의 모자를 판매했는데, 꾸준히 팔려나갔거든요. 점심시간을 쪼개 회사 앞 편의점으로 달려가 택배를 보냈던 기억이 나요. (웃음)

┗ PeeP에서도 꾸준히 팝업을 기획하셨는데요. 쉽지 않은 팝업 기획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민지: 다양한 연령대의 소비자와 만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리빙’을 주제로 팝업을 진행하면 30대에서 40대가 PeeP을 찾아오세요. 그리고 영타겟의 스트리트 브랜드를 모아 플리마켓을 열면 10대에서 30대가 찾아오시죠. PeeP에서 WOOR을 함께 판매하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소비자에게 WOOR이 노출될 거라 생각했어요.

리아: 그리고 저희는 두 사람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한 명이 팝업 기획에 전념해도 다른 사람이 브랜드 운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니, 팝업을 기획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 옷을 만들 때 꼭 지키는 기준이 있을까요?

리아: 저희의 취향을 기준으로 삼아요. 예를 들어 짐 백Gym Bag의 경우, 다른 브랜드보다 끈 길이가 긴 편인데요. 패딩을 입고 가방을 메도 불편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저희가 겨울에 패딩을 자주 입어서요. 그리고 가방 양 끝에 고리를 달아 스트랩을 연결하면 크로스백처럼 멜 수 있게 만들었는데요. 짐이 많은 경우에 편하게 들고 다니고 싶어서 스트랩을 생각해 냈어요. 제가 평소에도 워낙 짐이 많거든요. 가방에 손톱깎이부터 반창고까지 들고 다니는 성격이에요. (웃음)

┗ 모자를 만들 때, ‘이것만큼은 꼭 지킨다’는 기준이 있을까요?

리아: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모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두상이 다르고, 귀의 위치가 다르니까 같은 모자라도 착용감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핏과 디자인의 모자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챙이 구부려진 볼캡도 만들고, 스냅백 스타일의 플랫 캡도 만드는 거죠. 같은 플랫 캡이라도 챙의 폭과 길이를 다르게 제작하고, 챙 안에 들어갈 소재도 모자의 콘셉트에 따라서 달리해봐요. 예를 들어 빳빳한 챙이 어울릴 것 같은 모자에는 두꺼운 소재로 챙을 만들어요. 자유자재로 구부려지는 게 나을 것 같으면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한 소재를 집어넣죠.

민지: 챙뿐만 아니라 스트랩도 다양하게 만드는 편이에요. 끈, 천, 가죽 재질 등등 각각의 모자의 콘셉트에 따라 소재를 달리합니다. 버클로 고정한 뒤에 남는 스트랩을 늘어놓을지, 홈 안에 넣어서 깔끔하게 정리할지도 고민해요. 스트랩의 소재와 모양에 따라 모자의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지거든요. 이런저런 조합으로 샘플을 만들고, 직접 착용해 보면서 제작하는 것 같아요.

┗ WOOR의 모자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이, 로고를 크게 박아 놓은 모자가 별로 없더라고요.

민지: 로고보다는 디테일로 WOOR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최근 출시된 로프 롱 빌 캡Rope Long Bill Cap은 모자 양쪽에 각각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는데요. 양쪽에 구멍이 뚫려있는 모자는 스포츠 브랜드 기반의 기능성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에서 많이 출시하는 편이에요. 저희는 여기에 스트랩을 끼워서, 휴대하기 편한 모자를 만들었어요. 모자는 차콜과 카키로 만들고 스트랩을 세 가지 색상으로 제작해, 소비자가 모자와 스트랩의 조합을 커스텀 할 수 있도록 출시했어요.

리아: 단순히 예쁜 브랜드가 아니라, 재밌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브랜드의 가치를 로고가 아닌, 디테일로 평가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사람들을 움찔움찔하게 만드는 디테일을 가진 브랜드가 되고 싶달까요.

┗ 그런데 너무 특별한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하기 어려워하진 않을까요?

민지: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모자 착용법과 활용법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소개하고 있어요. 제작 과정을 올릴 때도 있죠. 그리고 모델이 아닌 주변 지인들이 착용한 사진을 올리는 편이에요. 소비자들이 WOOR의 모자를 어렵게 생각하시지 않았으면 해서요.

리아: 사실 매번 독특한 제품을 출시하지는 않아요. 베이직한 제품이 있어야, 독특한 제품도 눈에 띄더라고요. 짐 백도 그래서 판매가 잘 되었던 것 같아요. 모자 브랜드에서 가방을 출시하니까, 흥미롭게 지켜본 분이 많았던 게 아닐까요?

◑ 대표님이 시도했었던 가장 과감한 의상은 무엇이었나요?

민지: 이 질문 별로인 것 같아요. (웃음)

리아: 진짜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희 둘 다 과감하게 입는 편이 아니라서요. (웃음) 아! 혹시 정말 옛날도 괜찮나요? 제가 초등학생 때 탈색 머리였어요. 그리고 통이 큰 바지와 품이 큰 후드티를 즐겨 입었죠. 신발은 항상 굽이 높고 두툼한 쉐입의 나이키의 에어 포스나 DC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었어요. 거의 힙합 여전사였죠 하하.

┗ 말씀하신 스타일이 당시에 유행하던 스타일 아닌가요? 초등학생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리아: 어머니가 옷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워낙 스타일리시한 분이라, 당시에 회색으로 머리를 염색하시곤 멋지게 옷을 입고 다니셨죠. 제게도 유행하는 브랜드를 많이 사주셔서, 자연스레 옷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모자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죠. 겨울이면 어머니가 사주신 비니를 항상 쓰고 다녔거든요.

┗ 지금 민지 대표님은 엄청 깊은 고민에 빠지신 것 같아요. (웃음)

민지: 사실 저도 생각이 났는데요. 그때의 제 모습을 떠올리니까 정말 싫네요. (웃음) 저는 고등학교 때 캐나다에 잠깐 살았었어요. 하루는 파티가 있는 날이었는데, 이모가 원피스를 입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심지어 오프숄더 원피스를요. 하이힐과 엄청나게 큰 귀걸이도 주셨는데, ‘이게 외국 스타일인가 보다’하고 그대로 입고 파티에 갔었어요. 파티 내내 정말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요.

리아: 언니 그렇게 입은 거 상상이 안 간다. (웃음)

◑ 옷장에 모자는 몇 개 있으세요?

리아: 지금 사무실에 둔 것만 50여 개가 될 거예요. 집에 있는 걸 포함하면 거의 100개는 되려나요? 저는 주로 비니를 많이 산 것 같아요.

민지: 저도 50개 정도 있을 것 같아요. 비니도 많은데, 편하게 쓰는 모자를 좋아해서 볼캡이 더 많아요.

리아: 이제는 모자 샘플을 많이 사는 것 같아요. 모자를 사도 공부를 위해서 구매하는 편이죠. 저희 둘 다 패션디자인 학과를 나오지 않았거든요. 패션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으니까 시중에 판매되는 모자를 사서 뜯어보고, 계속 샘플을 만들어 봤어요. ‘여기에는 이런 디테일이 들어가는구나’, ‘여기에는 이런 원단을 쓰면 이렇게 핏이 나오는구나’라는 걸 직접 발로 뛰면서 알아냈죠.

민지: 사실 처음에 WOOR을 시작하게 된 건 단순한 이유였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색깔, 그리고 좋아하는 핏의 모자를 만들어 보자’라는 게 출발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처음 만든 제품 중에 이어 워머 비니Ear Warmer Beanie라는 제품이 있는데요. 비니 양쪽에 단추 홈을 뚫어두고, 비니에 연결해서 달 수 있는 목도리를 함께 판매한 제품이에요. 비니만 단독으로 착용할 수도 있고, 단추로 연결해서 양쪽에 귀가 달린 것처럼 착용할 수도 있는데요. 목도리랑 비니를 같이 들고 다니려니까 너무 귀찮아서 만든 제품이에요. (웃음)

┗ 비니도 볼캡만큼이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민지: 연구하면 할수록 비니를 만드는 과정이 꼭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이 느껴져요. 원단에 따라서 착용감이나 전체적인 핏이 달라지고, 짜임에 따라서 전혀 다른 비니가 되거든요. 그리고 비니의 접히는 부분이 얼마나 접히느냐에 따라서도 전체적인 형태나 무드가 바뀌어요. 같은 실이라도 디테일에 따라 다른 비니가 되기 때문에, 늘 여러 요소를 동시에 고민해 보는 것 같아요.

┗ 비니를 만들 때에는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세요?

리아: 핏감인 것 같아요. 저희 둘 다 눈썹이 가려지게끔 비니를 푹 눌러쓰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푹 눌러썼을 때, 머리 위로 솟아오르는 부분이 신경 쓰이지 않도록 제작하는 편이에요.

┗ 비니가 잘 어울리는 두상이 따로 있을까요?

민지: 비니가 잘 어울리는 두상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본인에게 어울리는 비니가 꼭 있거든요. 비니를 안 써 버릇해 보셔서 어색하시니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아닐까요?

리아: WOOR의 다양한 모자를 통해서, 더 많은 분이 모자를 쓰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큰 목표예요.

◑ 사업을 시작하신 이후에 후회했던 적은 없나요?

리아: 아직까지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저희가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왔거든요. 모자를 제작할 때 사업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WOOR을 운영하는 게 값비싼 취미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우리가 힘들게 모은 돈으로, 맘에 안 드는 제품을 만들기는 싫었어요.

민지: 디렉터의 취향이 흔들리지 않아야 브랜드의 추종자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다행인 건 저희 둘 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는 절대 못 하는 성격이라서요. (웃음) 덕분에 WOOR의 방향성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리아: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때면 브랜드를 이어갈 힘을 얻어요. 특히 팝업에서 만나는 소비자로부터 제품에 대한 칭찬을 직접 들을 때면 더욱 기뻐요. 팝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칭찬을 들을 때면 힘들었던 기억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요.

◑ WOOR의 여러 제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은 무엇인가요?

민지: 자카드 목도리를 고르고 싶어요. 제품을 낼 당시에 축구 클럽의 로고가 그려진 머플러가 인기였는데요. 아무래도 경기장에서 응원용으로 쓰이다 보니 화려한 색과 그래픽으로 채워진 경우가 많았어요. 여기에 WOOR의 색을 더해 만들었는데, 너무 맘에 들어 자주 매고 다녔어요.

리아: 저도 자카드 목도리가 제일 애착이 가요. 길거리에서 처음 본 저희 제품이거든요. 버스를 탔는데 앞자리 남성분이 저희 목도리를 하고 계신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당장이라도 어깨를 톡톡 치고 ‘제가 만든 거예요!’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어요. (웃음)

┗ 편집숍에서 판매하시는 제품 중에 WOOR 말고 소개하고 싶은 브랜드가 있을까요?

민지: 다들 너무 맘에 드는 제품이라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도그 앤 디시스Dog And Dishes는 감사한 브랜드라 소개하고 싶어요. 해외에서 셀렉한 그릇과 컵, 그리고 자체 굿즈를 판매하는 곳인데요. PeeP에서 처음 팝업을 열었을 때, 남은 수량을 전부 팔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당시에 브랜드 운영을 중단하셔서, 도그 앤 디시스의 팬분들이 매장에 많이 찾아오셨죠. 한 분은 오셔서 도그 앤 디시스의 그릇과 컵 20만 원어치를 사 가셨던 기억이 나요.

리아: 9월에는 PeeP이 연희동에서 을지로로 자리를 옮길 계획이에요. 을지로 매장은 계단으로 걸어 올라와야 하는 공간이라, 1층에 자리한 연희동 매장보다는 조금 더 프라이빗한 분위기가 느껴질 것 같은데요. 매장에서 소개하는 브랜드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니 돋보이는 제품도 달라질 것 같아요.

◑ 최근 서로의 생일에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나요?

민지: 저는 리아한테 포스터를 받았어요. 독일의 음반 레이블 퍼블릭 포세션Public Possession에서 만든 그래픽이 담긴 포스터인데요. 리아가 어떻게 알았는지 제 노트북 배경 화면과 똑같은 포스터를 선물해 준 거예요. 그것도 해외 배송으로요. 맘에 쏙 들어 쇼룸에서 자랑 중이에요. (웃음)

리아: 저는 언니에게 강아지 모양의 케이크를 선물 받았어요. 제가 ‘우주’라는 이름의 슈나우저를 키우는데요. 언니가 굉장히 멀리까지 가서 우주를 닮은 강아지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 줬어요. 너무 귀여운 케이크라, 아까운 마음에 못 먹을 정도였죠. 무엇보다 언니가 우주 사진을 골라서, 케이크 가게에 들러 직접 가져왔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스윗하잖아요! (웃음)

┗ 엄청나게 계획적으로 준비하신 거 보니까, 민지 대표님은 왠지 J 이실 것 같아요.

민지: 정 반대에요. (웃음) 오히려 리아가 ESFJ고, 저는 INFP예요.

리아: 저희가 싸우지 않는 이유가 둘 다 F라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검색을 해보니까 ESFJ 주변에 INFP 성향의 사람들이 많대요. ESFJ 성격의 사람들이 INFP 성향 사람들의 자존감을 지켜줘서요. 저희 둘을 생각해 봐도, 제가 언니에게 서슴없이 칭찬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얼추 맞는 것 같더라고요.

민지: 솔직히 MBTI는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저는 리아의 E와 J같은 면모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J와 P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는데, 리아가 집에서 하루 종일 쉬는 날을 못 봤어요. 어떤 날은 집에서 티비만 보면서 힐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리아는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요. 퇴근 후에도, 매일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고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리아한테 존댓말을 써요. 어떨 때는 저보다 더 어른스러운 것 같아서요. (웃음)

┗ 리아 대표님은 민지 대표님께서 존댓말을 쓰는 게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리아: 처음에는 ‘나를 불편해하나?’ 생각했어요. 이제는 너무 편한 사이가 되어버려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요. 미팅을 나가면 외부 분들이 되려 놀라시더라고요. 친구들은 네 살 언니에게 반말하는 제 모습을 보고는 버릇없다고 해요. (웃음)

민지: 사실 리아가 한번은 술 먹고 엄청 서운하다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되게 귀여웠어요. (웃음) 그런데 리아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나이가 어리다고 막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리아: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할 말이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돌아보면, 서로 존중하는 마음 때문에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크게 다퉈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직장에서 만나 친구 사이가 되고, 동업까지 하게 되는 게 흔하지 않은 일이잖아요. 취향 맞는 사람을 만나, 같은 길을 걷게 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Creator

유리아와 이민지는 모자 브랜드 WOOR과 세운상가에 위치한 오프라인 기반의 셀렉샵 PeeP을 함께 운영하며 공간 및 팝업을 기획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Editor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현재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다. 렌즈 기반의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

결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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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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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팡그래픽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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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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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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