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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Gacha! 사운즈굿 김준오·정덕환이 뽑은 것

Writer: 방현식
, Photographer: 박영감
사운즈굿, Soundsgood

GACHA!

흥미로운 인물에게 랜덤 질문을 던집니다.

가챠는 일본말 가챠가챠(がちゃがちゃ)의 준말입니다. 작은 기계에서 나는 시끄러운 금속음을 말하는데요. 우리에게는 랜덤하게 캡슐을 뽑는 게임으로 익숙해요. 저희는 이 가챠 시스템을 인터뷰에 적용했어요. 궁금한 질문을 마구 그러모은 후 인터뷰 현장에서 무작위로 뽑아 대화를 청합니다. 보통의 인터뷰와는 분명 다른 맛이 나겠죠?

비애티튜드의 모험에 올라탄 네 번째 주인공은 레코드숍 ‘사운즈굿Sounds Good’의 김준오·정덕환 대표입니다. 아직 바이닐이 주목받지 않았던 2017년, 두 사람은 연남동 골목에 조용히 사운즈굿을 열었어요. 이후 재즈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바이닐을 선보이며 바이닐 컬렉터 사이에서 이름을 알려갔죠. 또한 음악을 소재로 머천다이즈를 제작하거나, 직접 바이닐을 만들어 매장에서 공연을 여는 등 다채로운 행보를 선보이며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는데요. 인터뷰를 통해 바이닐 문화를 대하는 그들의 진심 어린 태도를 느꼈답니다. 랜덤으로 질문하는 예측불허 가챠 대화를 지금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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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준오, 정덕환

◑ ‘좋은 음악’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김준오(이하 준오): 명확한 기준은 없는 것 같아요. 각자가 가진 기준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 같아요. 출근길 버스를 탔을 때,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의 한 구절이 와닿는다면 그게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퇴근길 스트리밍 앱으로 오랜만에 재생한 음악의 멜로디가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준다면, 그게 좋은 음악이 되겠죠? 특정 장르나, 평론가들이 정해놓은 스타일이 좋은 음악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정덕환(이하 덕환): 저도 준오 형이랑 비슷한 생각이에요. 저는 울림을 주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음악으로부터 받은 울림은 듣는 이를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든다고 믿어요. 음악뿐 아니라 영화든, 책이든 예술 문화 영역에 해당하는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 지금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어떤 분이 선곡하셨어요?

준오: 오늘은 덕환이가 틀었어요. 

덕환: 그런데 그냥 손에 잡히는 걸 틀어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웃음)

준오: 저렇게 말하지만, 아마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틀었을 거예요. 창문을 통해 해가 들어오는 숍의 풍경과 어울리고, 인터뷰에 방해되지 않는 따뜻하고 잔잔한 음악에 자연스레 손이 갔을 겁니다. 평소에도 그날의 날씨, 그리고 여러 상황적인 요소에 따라 트는 것 같더라고요.

덕환: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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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은 어디서 처음 만나셨어요?

덕환: 한 패션 회사에서 만났어요. 음악, 영화 취향이 잘 맞아서 금방 친해졌죠. 특히 둘 다 재즈를 좋아했어요.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없어서 정말 반가웠죠.

┗ 재즈의 어떤 면이 매력적이었나요?

덕환: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 기법이 매력적이었어요. 보통 즉흥 연주라고 하죠. 재즈 연주자들은 연주할 때 본인의 느낌에 따라 즉흥적으로 표현하거든요. 같은 곡을 연주해도 연주자에 따라 멜로디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이유예요. 똑같은 곡을 연주해도, 그날 연주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음이 미세하게 변하기도 하죠. 가사가 없는 재즈지만, 가사가 있는 곡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음과 음 사이에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준오: 즉흥성에서 나오는 재즈의 자유로움이 스타일리시하다고 생각했어요. 연주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죠. 예를 들어 사랑에 관한 곡을 연주할 때, 가사로 규정한 내용이 없으니까 연주자는 곡을 다양하게 해석해 멜로디로 내놓을 수 있어요. 연주자의 해석이 다양한 만큼, 듣는 사람도 더욱더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죠. 가사에서 비롯한 정해진 해석이 있지 않아서 언어와 세대의 장벽을 뛰어넘어 더욱 큰 울림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이 재즈의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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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들어보니 무척 매력적인 장르인데 ‘나는 재즈를 좋아해!’라고 말씀하시는 분을 주변에서 잘 만나보지 못한 것 같아요.

덕환: 어쩌면 재즈 아티스트, 그리고 재즈 애호가들이 재즈의 정통성에 천착해서 그러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 재즈의 고루한 면이 부각된 것 같고요. 그런데 패션이나 영화 등 다른 문화 영역에서는 재즈를 쿨한 문화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에릭 돌피Eric Dolphy처럼 패셔너블한 재즈 연주자도 많았거든요.

준오: 최근 고무적인 사실은 젊은 층에 어필하는 재즈 아티스트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저희가 사운즈굿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만 하더라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재즈를 주제로 한 패션 브랜드나 숍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존에 재즈를 다루는 어법과는 다르게 숍을 운영해 보고 싶었죠.

┗ 그래서 두 분이 합심해서, ‘재즈에 대한 사람들의 장벽을 내려보자!’는 결심으로 사운즈굿을 시작하게 되신 거군요.

준오: 사실 사명감 같은 건 없었어요. ‘아니, 재즈가 이렇게 멋있는데 왜 다들 몰라?’라든가, ‘재즈를 안 들으면 너는 음악 모르는 거야!’라는, 어떤 우월감을 가지고 사운즈굿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덕환: 심지어 그런 매력을 애써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좋아하는 재즈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될 거라는 믿음만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꼭 저희 숍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경로로든 재즈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둘러볼 수 있는 레코드숍이 있으면 좋잖아요. 물론 저희 숍을 통해 재즈의 매력을 알게 된다면 더욱 좋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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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운즈굿에서 출시한 머천다이즈 중 가장 애착 가는 제품을 뽑아보신다면요?

준오: 트럼펫 연주자들의 이름을 활용해 스웨트셔츠를 만들었던 적이 있어요. 미국 대학교 스웨트셔츠의 디자인을 패러디한 제품인데요.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교에서 제작하는 스웨트셔츠는 대학교를 대표하는 색인 자주빛으로 만들고, 가슴팍에는 아치 형태로 ‘HARVARD’라는 학교 이름을 적어 놨는데요. 저희는 HARVARD라는 단어 대신 ‘HUBBARD’로 바꿨어요. 트럼펫 연주자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의 성이죠. 위트있는 표현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판매가 꽤 잘됐어요. 판매량을 차치하더라도 해당 제품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구매하신 분 중에 ‘스웨트셔츠를 사고 나서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프레디 허버드라는 아티스트를 모르는 분들도 스웨트셔츠가 예쁘니까 먼저 구입하고 자연스레 아티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그때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재즈를 알려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아 기뻤던 기억이 나요.

덕환: 사실 패션 브랜드에서 재즈를 활용한 사례가 몇 있어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Supreme만 하더라도 재즈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앨범 ‹A Love Supreme›의 앨범 커버를 활용한 데님 재킷을 출시했거든요. 준오 형이랑 저는 패션에도 관심이 많으니까, 앞서 말씀드린 예시처럼 사람들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치로 계속 재즈와 관련된 머천다이즈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존 콜트레인 쿼텟The John Coltrane Quartet의 아트워크를 활용한 후드 티가 대표적인데요. 제가 특히 존 콜트레인 쿼텟을 좋아해서 한동안 참 자주 입고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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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기호로 제작한 머천다이즈가 잘 팔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요. 결국 좋아하는 것과 사업적인 것을 선택하는 측면에서 늘 갈등이 있을 것 같아요.

준오: 영원한 딜레마죠. (웃음) 내가 좋아하는 건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무언가를 판매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데에는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잖아요. 저희는 애초 시작이 ‘우리가 좋아하는 걸 소개하고 싶다’였기 때문에 더 자주 딜레마에 빠지곤 했어요. 그래도 2017년 시작해 어느덧 7년 차를 맞이한 입장에서, 잘못된 판단을 통해 많이 배우고 깨달으며 이제는 어느 정도 선택에 도움을 주는 데이터베이스가 쌓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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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환: 머천다이즈도 있지만, 사운즈굿에서 자체적으로 바이닐을 제작하기도 해요. 아티스트와 소통하면서 어떤 음반을 바이닐로 만들지, 몇 장이나 만들지, 그리고 제작한 바이닐을 어떻게 판매할지 전반적인 과정 모두 저희가 맡아서 진행하는데요. 사업적인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좋지 않은 선택일 거예요. 하지만 아티스트와 커넥션을 유지할 수 있고, 사운즈굿이 재즈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숍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바이닐을 제작하기로 결정했어요. 또한 저희가 자체 제작한 바이닐은 사운즈굿에서만 판매하니까 희소성 있는 바이닐이라는 이점도 있죠. 바이닐 판매를 기념하며 다양한 활동도 열어볼 수 있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재즈 트리오 ‘윤석철트리오’, 한국적인 삼바를 표방하는 밴드 ‘화분HWABUN’, 피아니스트 임채린과 프로듀서 송영남, 그리고 바밍타이거 소속 이수호의 음반을 바이닐로 제작했는데요. 최근에는 래퍼 넉살과 밴드 까데호의 합작 음반을 바이닐로 제작하고 숍에서 발매 기념 공연까지 진행했답니다. 덕분에 다양한 소비자에게 사운즈굿을 소개할 수 있었어요.

┗ 사운즈굿이 어느덧 7년 차를 맞이하면서, 주변에 나만의 레코드숍을 꿈꾸는 분들이 조언을 구하러 오실 것 같아요. 지금 이 인터뷰를 보는 독자분 중에도 분명 레코드숍 창업을 마음에 품은 분이 계실 것 같은데요. 혹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준오: 이건 오프더레코드로 해야 정말 진솔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어느 정도 선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한 가지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만약 레코드숍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레코드숍 사업의 마진 구조 같은 게 눈에 보일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하고 싶은 분이라면 추천할게요. 그런데 레코드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사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시다면 말리고 싶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하기에는, 레코드숍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거든요.

┗ 순수한 마음이라면, 예를 들어 ‘나는 음악이 정말 좋아!’ 같은 마음을 말씀하시는 거죠?

준오: 음악이 정말 좋은데, 돈이 많은 분이라면 레코드숍을 운영하셔도 좋습니다! (웃음) 그런데 레코드숍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분이라면, 결정하기 전에 조금 더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런 분들은 저에게 연락을 따로 주세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말씀드리고 싶네요.

덕환: 준오 형이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줬으니, 저는 좀 이상적인 조언을 드리고 싶은데요. (웃음)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사업을 벌이면, 인간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꼭 레코드숍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사업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군대를 다녀오는 것처럼,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준오: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종종 레코드숍을 부업으로 하려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보기보다 레코드숍을 운영하려면 신경 쓸 일이 정말 많답니다. 일주일만 신경을 안 써도 엄청 티 나요. 저희는 7년 동안 운영하면서 직원을 둔 적이 없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레코드숍을 운영해 보니 하루 반나절 인수인계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디테일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고, 물리적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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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운즈굿이 자리 잡은 연남동은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나요?

준오: 우선 제일 잘 아는 동네가 연남동이었어요. 사운즈굿을 시작하기 전에 다녔던 회사가 홍대 쪽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사운즈굿을 시작했던 2017년 당시만 해도 연남동이 꽤 한적했어요. 길 건너편 홍대 앞 부근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죠. 저희가 사운즈굿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과 분위기가 잘 맞는 느낌이었어요.

┗ 연남동의 어떤 부분이 사운즈굿과 어울린다고 생각하셨어요?

준오: 레코드숍에서 바이닐을 손으로 하나씩 살펴보고, 턴테이블 바늘을 올려놓고, 헤드폰을 꺼내 들어 음악을 듣는 행위는 동적이지만, 동시에 정적이에요.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와는 정반대죠.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이는 스마트폰 안에서는 몇 초 단위로 영상이나 사진이 다이내믹하게 흘러가잖아요. 하지만 레코드숍에서는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고, 레코드를 듣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돼요. 바이닐을 살펴볼 때도 라벨에 적힌 글을 찬찬히 읽어야 하고, 턴테이블 바늘을 올려놓는 일도 급하지 않게 해야 하죠. 레코드숍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행위들이 한적한 연남동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 지금 매장은 첫 번째 매장에서 옮겨온 곳이죠?

준오: 맞아요. 이전 매장은 지금 공간 바로 옆 골목에 있었어요. 2층 공간이었는데, 지금의 매장보다 물리적으로 훨씬 작았죠. 그래서 조금 더 넓은 공간을 찾아 지금의 자리로 오게 되었어요.

┗ 이 공간은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어요?

준오: 여기는 반지하인데도 해가 아주 잘 들어와요. 벽면의 창문을 통해 햇빛이 내려앉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층고가 높아서 개방감이 느껴지는 공간이라는 점도 좋았고요. 테라스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에서 커피도 파니까, 손님들이 이 공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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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왜 사운즈굿을 찾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덕환: 제일 친절한 레코드숍이라서…? 하하.

준오: 다른 레코드숍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다가오시는 것 같아요. 친절한 방식으로 음악을 소개해 드려서 그런 걸까, 추측해 보는데요. 인스타그램에 날씨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꾸려서 추천하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이 선곡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하거든요. 매장에서는 공연을 열기도 하고, 여러 브랜드와 협업해 팝업 스토어를 기획하기도 해요. 바이닐을 빼곡히 꽂아둔 도서관처럼 운영하고 싶지 않아서 진행한 일들이 지금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매장에 들른 손님 중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었나요?

준오: 자주 오시는 분들이 기억에 남죠. 매장에 들어오시면 인사드리면서, “이번에는 어떤 걸 추천해 드릴까요?”라고 먼저 말을 건네기도 하는데요. 어느 순간 그 손님이 매장에 오시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우리에게 더 이상 그분의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가 없나?’ 각종 생각이 들면서 전반적인 숍 운영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그리고 바이닐을 즐기는 행위가 한 사람의 생활 패턴에 자리 잡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죠.

┗ ‘바이닐 문화가 붐’이라는 식의 기사가 물밀듯이 쏟아질 때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바이닐을 구입하는 일이 소위 힙하다는 인식도 퍼져나갔고요. ‘바이닐이 트렌디하다’라는 생각에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세요?

덕환: 사실 저는 그러한 기사들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바이닐 문화를 즐기는 사람은 비록 소수이긴 해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잖아요. 그런데 바이닐 문화가 조금 주목받았다고, ‘붐’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반갑진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트렌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바이닐 문화에 대한 설명 없이, ‘바이닐이 트렌드입니다’라는 말만 하며 소비를 조장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진 않죠.

준오: 시류 덕분에 사운즈굿이 득을 본 건 사실이지만 2017년만 하더라도 바이닐 문화가 지금처럼 대중적이진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 숍을 시작할 때 ‘느리더라도 제대로 바이닐 문화를 알려보자’라고 생각하며 매장을 운영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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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환: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과 돈을 버는 일은 별개라고 봐요. 바이닐을 유행시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사운즈굿만이 가진 개성에 집중하다 보면 사운즈굿의 팬이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었어요.

준오: 트렌드에 발맞춰 ‘번쩍’하고 이득을 볼 수 있는 업종이 있죠. 요새 유행하는 탕후루가 대표적이겠네요. ‘바이닐이 트렌드다’라는 기사가 쏟아졌을 때는 바이닐이 마치 탕후루처럼 빠르게 팔려나갔어요. 인기 있는 바이닐은 말도 안 되게 잘 팔리기도 했죠. 숍에 들른 손님들이 뭐든 집어서 구매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어요. 저희도 바이닐이 잘 팔리니까 좋았죠. 어떠한 방식이었든 간에, 사람들이 바이닐 문화를 알게 됐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재즈와 관련된 머천다이즈를 제작해 재즈를 소개하는 방식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판매 그래프가 아주 급격하게 내려가더군요. 바이닐 문화가 인스턴트한 트렌드로 소비되는 모양새에 씁쓸했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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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즈굿, Soundsgood

◑ 만약 대표님이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동물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덕환: 저는 고양이로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친절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사실 제 마음 깊숙한 곳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웃음) 사람들에게 활발하게 보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독립적인 성향도 갖고 있는 편이에요. 고양이도 겉으로 보이는 매력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까칠한 면이 있잖아요. 고양이랑 닮은 점이 많아서, 아마 고양이로 태어날 것 같네요. 하하.

준오: 글쎄요… 저는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 생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해보고 싶은데요. 고래로 한번 살아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바다에 살면서 가보지 못한 곳을 둘러보고 싶거든요. 그리고 고래는 바다에서 최상위 포식자잖아요. 빨리 잡아먹히기는 또 싫어서, 고래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웃음)

┗ 만약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면, 두 분이 다시 만나 사운즈굿을 오픈하게 되셨을까요? (웃음)

준오: 일단 회사에 계속 다니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운즈굿처럼 레코드숍이 꼭 아니더라도,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꾸민 공간을 직접 운영했을 것 같아요. 네다섯 평짜리 작은 공간이라도 제 취향을 보여주는 공간을 열지 않을까 싶네요.

덕환: 저도 준오 형처럼 회사에 다니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운즈굿을 열기 전에 여러 회사에서 일해봤는데, 조직 문화를 따르는 게 어렵더라고요. 현실적인 문제를 떼어놓고 생각해 보자면, 아마 제 이름을 건 사업을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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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사운즈굿이 걸어온 길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일까요?

준오: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어요. 자만은 아니고요. (웃음) 사실 일에 정답이 없잖아요. 오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는 건 늘 힘들고요. 당시에는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훗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죠. 다만 저희 둘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늘 100점이었다고 생각해요.

┗ 사운즈굿을 통해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준오: 사운즈굿을 운영한 지 올해로 7년 차가 되었는데요. 시간이 지나 손님으로부터 ‘사운즈굿 덕분에 음악 듣는 일이 취미가 되어서, 디제이가 되었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꼭 디제이가 아니더라도, 사운즈굿 덕분에 음악을 듣는 일이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업적으로도 꼭 성공하고 싶어요. 사운즈굿 같은 류가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줄래요. 

덕환: 레코드숍 말고, 바이닐 문화를 기반으로 삼는 다른 성격의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꼭 거금을 들여 바이닐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적은 돈으로 바이닐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해 봤죠. 예를 들어,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바이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처럼요. 모임에 참석한 분들끼리 취향을 주고받으면서 자기 개성도 발견하고, 자기만의 브랜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무척 기쁘겠네요.

사운즈굿, Soundsgood-sc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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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살아보니, 어떤 걸 가장 조심해야 하던가요?

준오: 부정적인 마음이 피어오르는 걸 경계하려고 해요. 어떤 대상이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데요. 저는 좋은 면을 보고 사는 게 에너지 소비가 훨씬 덜하더라고요. 그리고 당시에는 스트레스로 다가오거나 불쾌했던 순간들이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덕환: 이 시대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짧은 영상들 아닐까요.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짧은 영상들이 깊게 생각하는 능력을 점점 퇴화시키는 것 같아요. 짧은 영상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을 비난하려는 건 전혀 아니고요. 소비하는 사람 입장에서 조금은 조심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준오: 저도 덕환이 말에 공감해요. 최근에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2023)을 영화관에서 봤는데요. 상영 시간이 거의 3시간 30분이에요. 영화를 보면서 ‘와, 유튜브 쇼츠를 통해 정보를 얻다 보면 3시간짜리 영화를 가만히 앉아서 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짧고 간편한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적 상황이 바이닐을 듣는 행위에도 영향을 미치겠어요.

준오: 맞아요. ‘바이닐을 듣는 느낌’은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짧게는 30분에서 한 시간 동안, 턴테이블 앞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분들이 점점 줄어드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심지어 영화도 유튜브에서 짧게 편집한 영상을 찾아보잖아요. 어떤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얻을지는 본인 자유지만, 선택하기 전에 조금은 깊게 고민할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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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가장 ‘청춘’이었다고 느끼는 시절은 언제였나요?

덕환: 저는 지금이 청춘이라고 느껴요. 지금 이 나이에, 좋아하는 걸 생각 없이 하고 있으니까요. (웃음)

준오: 청춘이 한자로 푸를 청(靑), 봄 춘(春) 이잖아요. 한자 뜻처럼 정말 빛나는 단어인데, 저는 ‘청춘’의 시기라 불리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시절에 늘 우울했어요. 무언가 하고 싶은데 어떤 걸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했거든요. 물론 모든 게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 입시에 가까워질수록 제 앞에 놓인 선택지가 하나둘 사라지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고 싶다는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 같아요. 대학교 전공도 취업이 잘 된다는 보건 계열로 선택했고, 병원 실습도 나가면서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했는데요. 열정이 없으니까, 저 스스로를 태우게 되더라고요. 술을 퍼마시고, 몸을 혹사하면서 불규칙하게 생활했어요. 그러다가 끝내, 저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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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나이가 어느 정도셨어요?

준오: 30대 초반이었죠. 그제야 진지하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했고, 지금 공부하는 분야 외에 가장 시간을 많이 쏟는 분야를 생각해 보니 ‘패션’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늘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옷에 엮인 다양한 문화적 이야기를 서칭하고 공부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패션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덕환이를 만나게 됐죠.

덕환: 저는 군대에서 제대하고 바로 패션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는데요. 그 회사에 준오 형이 면접을 보러 왔어요. 제가 면접을 진행했는데, 형의 내공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패션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해 아는 게 정말 많은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죠. 삶 전반을 대하는 태도도 배울 게 많았어요. 저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좋은데, 준오 형이 딱 그런 사람이어서 친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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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두 대표님은 행복하신가요?

준오: 행복해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동업할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죠. 덕환이랑은 취향도 잘 맞아요. 둘 다 축구를 좋아하고, EPL 리그 클럽 아스널Arsenal FC의 팬인 데다, 좋아하는 영화의 결도 비슷하죠.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태도나 관점이 비슷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때도 즐거워요.

덕환: 사업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동업은 특히나 만만치 않잖아요. 동업할 때는 업무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의 균형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준오: 그런데 질문이 굉장히 철학적이네요. (웃음) 다른 인터뷰이 분들도, 이런 질문을 받으시면 바로 질문을 잘하시나요?

┗ 대체로 생각을 많이 하고 답변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희는 정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생각이 듣고 싶거든요. 그래서 평소 인터뷰에서 다루지 않을 법한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해요.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명료한 답보다는, 인터뷰이의 다양한 생각이 담긴 답변을 흩뿌려놓고 독자들 스스로 울림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을 찾길 바라는 건데…말하다 보니 재즈와 꽤 닮은 것 같아요. (웃음) 이것도 재즈라고 할 수 있나요?

준오: 그럼요. 제대로 재즈인 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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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

김준오와 정덕환은 레코드 스토어이자 브랜드 ‘사운즈굿SOUNDS GOOD’의 운영자다. 재즈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레코드를 소개하고, 음악 문화에서 파생된 콘텐츠로 머천다이즈를 제작하며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Editor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현재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Photographer

박영감(@khuss_goods)은 안산공고 전자과를 졸업한 후 취미이던 사진을 업으로 삼은 비전공자 사진작가다.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한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분위기의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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