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인류와 마주한 위험을 표면적으로 가장 크게 실감하는 현상은 이상기후입니다. 하지만 이하늬 수의사는 변덕스럽고 극한으로 치닫는 날씨 말고 다른 방식으로 지구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죠.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을 돌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를 바라는 그는 20세기 초 멸종한 여행비둘기와 달리 사람과 가까운 한국 고유종 양비둘기의 서식 환경을 마음에 둡니다. 이하늬는 자신이 바라보는 양비둘기가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자연을 지킨다는 말은 동물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 때로는 내어주는 것임을 말합니다. 작은 존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이하늬의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여행 비둘기, 출처. 위키피디아(Passenger Pigeon)
지구의 마지막 친구들에게
한 생명이 사라지면, 그 생명이 살아가던 하루도 함께 지워진다. 야생과 사람의 경계에 서 있는 동물원 수의사의 경험과 시선으로 이미 지구를 떠난 이들의 흔적을 짚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지워지고 있는 생명의 자리를 기록한다. 거창한 구호 대신 200g짜리 작은 새의 깃털 속에서 뛰는 미세한 심장 소리에서 무려 5,000kg이 넘는 거대한 코끼리의 육중한 걸음 소리까지 전한다. 멸종과 생명, 이 지구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담담하게 관찰하고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과 실천법을 적었다.
개체수가 많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여행비둘기의 비극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라면 어떨까?
숲은 여전히 푸르고 강물은 흐를 것이며, 아침이면 햇빛도 어김없이 들어올 것이다. 먹을 것도 어쩌면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알아보는 존재는 없다. 내가 내는 소리를 알아듣는 귀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눈도 없다. 생명에서 혼자라는 것은 사람의 외로움과는 조금 다른 문제일 것이다. 같은 종의 다른 개체가 있다는 것은 짝을 만나고 새끼를 낳는 일만 뜻하지는 않는다. 함께 이동하고,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고, 때로는 서로의 행동을 보며 살아가는 방식까지 포함한다. 한 마리만 남았다는 것은 결국 그런 관계가 모두 끊어졌다는 뜻이다. 마지막 개체가 죽으면 더는 다음 세대가 태어나지 않는다.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이어져 온 하나의 계통이 그 자리에서 멈춘다. 화석이 남고 표본이 남을 수도 있으며, 사진과 기록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는 끝이다. 나는 멸종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너무 쉽게 사용했던 것 같다. 어떤 동물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100마리가 99마리가 되고, 다시 50마리가 되는 것처럼 숫자 하나가 줄어드는 일로 생각했다. 그런데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바깥에 있는 것이 보인다. 한 마리가 줄어들 때마다 그 생명이 살아가던 하루도 함께 사라진다. 먹이를 찾던 장소와 쉬던 나뭇가지, 짝을 부르던 소리와 새끼를 돌보던 방식처럼 우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것들이 함께 사라진다. 어쩌면 자연의 역사는 책보다 먼저 쓰이고, 책보다 먼저 지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비둘기 표본, 출처. 위키피디아(Passenger Pigeon)
하늘이 어두워질 만큼 많았던 새
여행비둘기 이야기를 처음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가장 이상했던 것은 멸종 자체가 아니었다. 그 숫자였다. 19세기 북아메리카의 여행비둘기는 수십억 마리 규모로 추정된다. 거대한 무리가 마치 강물과 같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새 무리가 지나가는 동안 햇빛이 가려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나무가 흔들리고 수많은 날개가 한꺼번에 움직이며 숲 위로 긴 회색빛 무리가 지나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런 새 무리가 정말 사라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 어렵다. 아마 당시의 사람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이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늘을 마치 강을 이루듯 날아가는 수만 마리의 여행비둘기 떼(AI 이미지)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여행비둘기는 대규모 상업적 사냥의 대상이 됐고, 고기를 얻기 위해, 스포츠 사냥을 위해 대량으로 포획됐다. 철도가 넓게 놓이면서 사냥터에서 잡은 새를 먼 시장까지 운송하기도 쉬워졌고, 전신망의 발달은 사냥과 관련된 정보가 오가는 속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숲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여행비둘기가 먹이를 얻고 번식하던 숲이 농경지와 도시로 바뀌었고,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던 습성은 오히려 약점이 됐다. 수천, 수만 마리가 한곳에 모이면 사냥꾼에게는 한번에 많은 새를 잡을 기회가 됐고, 둥지가 밀집해 있는 만큼 번식지의 훼손도 개체군 전체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뭔가가 너무 많을 때 그것이 사라질 위험성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강에 물고기가 많으면 계속 많을 것 같고, 숲에 새가 많으면 내일도 그만큼 있을 것 같다. 풍요는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 여행비둘기도 그랬다. 사람들은 여행비둘기 무리가 한곳에 모여들 때마다 ‘비둘기 덫’으로 불리는 거대한 그물을 쳐서 한번에 수천 마리씩 잡아댔다. 심지어 불을 지르거나 독을 뿌리는 끔찍한 방법까지 동원되었고, 결국 여행비둘기는 버티지 못했다.
여행비둘기 덫 모식도(AI 이미지)
1900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마지막으로 알려진 야생 여행비둘기가 죽었다. 그 뒤에는 동물원과 사육시설에 남은 몇 마리만 있었다. 그리고 오직 마사만 ‘유일’한 여행비둘기로 남은 채 신시내티동물원에서 살게 되었다. 수십억 마리가 하늘을 날던 여행비둘기 중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한 마리에게 사람들은 이름을 붙였다, 마사라고. 그 이름을 부르면 새가 고개를 돌렸을까? 알 수 없다. 다만 마사가 혼자였다는 사실은 남아 있다. 동물원은 짝을 만들어 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함께 있던 수컷들이 먼저 죽으면서 마사는 마지막 개체가 됐다. 1914년 9월 1일 동물원 속 마사마저 숨을 거두며 수억 마리 동료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때 하늘을 가득 채웠던 종이 작은 몸 하나로 남았다가 그것마저 멈춘 날이다. 마사의 몸은 표본으로 보존됐고, 이제 우리는 그 표본을 통해서만 여행비둘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표본이 존재한다 해도 표본은 날지 못한다. 죽은 사체를 정교하게 보존해도 날갯짓 소리는 돌아올 수 없다. 마지막 여행비둘기 마사의 이름도 기록으로 남을 수 있지만, 생명은 결국 돌아오지 않는다는 뼈아픈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낭비둘기(집비둘기와 다르게 꼬리에 흰 줄이 있다) 출처. 서울대공원 웹 페이지 내 동문 보유 현황 페이지
양비둘기 사진, 출처. 한겨레 신문
우리나라 새, 양비둘기
나는 여행비둘기의 사연을 접한 뒤부터 비둘기를 볼 때 조금 오래 바라보게 됐다. 도시의 비둘기는 인도 위를 걷고, 광장에 모이며, 건물 난간에 앉는다. 회색빛의 평범한 새, 비둘기. 너무 흔해서 특별히 볼 이유가 없는 새처럼 보이지만, 비둘기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고유의 새인 양비둘기가 존재한다. 낭비둘기라고도 부르는 이 새는 집비둘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목 주변의 금속성 광택과 꼬리에 나타나는 흰색 무늬를 자세히 보면 차이를 알아볼 수 있다. 예전에는 한반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부 지역에 남아 있으며, 전남 구례와 고흥, 경기도 연천 등이 주요 서식 지역이다. 국립생태원 조사에서는 2023년 최대 175개체가 확인됐다. 숫자로 적어 놓으면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한 도시의 공원에 모이는 비둘기보다 훨씬 적은 숫자이다. 그 적은 개체수 안에 한 종의 미래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비둘기는 왜 이렇게 줄었을까? 국립생태원은 가장 큰 위협 중 한 가지로 집비둘기 간 경쟁과 잡종화를 꼽는다. 양비둘기와 집비둘기가 같은 공간에서 먹이를 찾고 둥지를 이용하면서 경쟁이 생기고, 서로 교배하면서 양비둘기 개체군의 유전적 특성을 보전하기가 어려워졌다. 실제로 구례 화엄사에서는 두 종류 사이의 잡종이 확인됐고, 잡종화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집비둘기를 관리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양비둘기의 서식지를 조사하다 보면 조금 의외의 장면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서식지는 절벽과 강, 농경지와 사찰, 교각과 댐처럼 자연과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 한데 섞여 있기 때문이다. 양비둘기는 연천의 임진강 주변에서는 강가와 풀밭에서 먹이를 찾고, 교각이나 댐의 틈에서 쉬거나 번식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구례에서는 사찰과 주변 농경지가 생활공간으로 이용된다. 사람에게는 건물의 일부에 불과한 작은 틈이 새에게는 둥지가 되는 셈이다. 나는 이 대목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자연을 이야기할 때 깊은 숲이나 아무도 없는 습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절벽을 먼저 떠올리지만, 양비둘기가 살아가는 풍경에는 사람이 있다. 사찰도 있고 농경지도 있으며 다리도 있다. 이미 사람이 만든 풍경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힌 새인 것이다. 그래서 보호 역시 단순하지 않다. 둥지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먹이를 구할 장소가 있어야 하고, 번식할 공간도 필요하다. 주변 환경이 달라지면 새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역시 달라진다.
채혈을 위해 양비둘기 날개를 펼치는 중
종 복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새 떼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고, 문이 열리면서 동물 무리가 숲으로 뛰어가는 거대한 장면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훨씬 조용하다. 작은 새 한 마리를 손에 올려놓고 몸무게와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혈액을 채취해 유전적 특성을 살핀다. 200~300g밖에 안 나가는 양비둘기의 깃털 사이를 조심스럽게 벌리고 작은 혈관을 찾는 동안 새의 몸이 손 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 미세한 떨림에 손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온 정신과 마음을 집중한다. 그러고 혈액이 한 번에 뽑히기를 바라며 주삿바늘을 꽂는다(물론 한 번에 채혈하기가 쉽지는 않다). 양비둘기의 혈액을 뽑는 순간에는 멸종도 생태계도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그저 내 눈앞에 있는 작은 생명 하나인 것이다. ‘오늘 건강상태는 어떤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간다면 어디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복원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된다. 개체의 건강을 살피고, 유전적 특성을 확인하며, 야생에 돌아간 뒤에는 어디로 이동하고, 어떤 장소를 이용하는지도 추적한다.
양비둘기 복원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집비둘기 간 잡종화 문제이다. 구례 화엄사에서는 양비둘기와 집비둘기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사례가 연구됐고, 외형만으로는 잡종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유전적 분석이 활용된다. 새는 누가 토종이고 누가 외래종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먹이가 있는 곳으로 가고, 안전한 곳에서 쉬고, 짝을 찾을 뿐이다. 우리가 만든 경계와 생물의 경계가 언제나 정확하게 겹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양비둘기 보전에는 개체수뿐만 아니라 유전적 특성과 번식 공간, 먹이터, 이동 경로까지 함께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고흥에서는 구례의 양비둘기를 옮겨와 방사한 사례도 있었다. 방사한 암수 한 쌍은 약 두 달 뒤 번식에 성공하였다. 단지 한 쌍의 번식 성공 사례, 숫자로 보면 작은 사건이다. 하지만 야생으로 돌아간 새가 스스로 짝을 이루고 다음 생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사람의 손을 떠나 다시 자신의 삶을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종 복원의 시작은 이런 소소한 번식 성공에서 기원한다.
양비둘기 부부 사진, 출처. 한겨레 신문
마지막 한 마리를 만들지 않는 일
여행비둘기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본다. 마사는 새장 안에서 바깥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외로움에 지쳐 생기 없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깥에서는 나무가 자라고 계절이 바뀌며 세상은 평범하게 돌아갈 것이다. 마사가 죽었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았다. 아마 그것이 멸종의 가장 이상한 모습일 것이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된다. 그렇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종이 사라져 간다. 동물의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으면서 날갯짓이 끊어진다. 한때 존재했던 관계 하나가 조용히 사라진다. 양비둘기를 생각하면 나는 자꾸 마사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두 새의 역사는 다르다. 양비둘기가 여행비둘기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현재의 개체군과 위협요인도 다르다. 또한 양비둘기는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 야생에서 볼 수 있고 아직 우리가 바라볼 시간이 있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제 종 복원이라는 말을 들을 때 거대한 성공의 장면을 기대하지 않는다.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모습보다 교각 아래에서 한 마리가 둥지를 지키고, 농경지 가장자리에서 먹이를 찾고, 사찰 처마 아래에서 새끼를 기다리는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임진강 위를 건너가는 작은 그림자도 그렇다. 그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연을 지킨다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연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갈 자리를 빼앗지 않고, 때로는 사라져가는 자리를 다시 내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작은 생명 하나가 다음 계절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기다리는 것도 말이다.
동물원의 양비둘기를 보면서 생각한다, 저 새가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수십억 마리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다음 세대가 있었으면 한다, 그다음에도 또 한 세대가. 마사가 혼자였던 그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마지막 한 마리를 바라보게 되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Writer
이하늬는 야생의 숨결이 가득한 동물원 진료실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생명을 돌보는 수의사다. 야생동물을 돌보며 치료했던 생생한 현장 기록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단순한 개체 보존을 넘어 사라져 가는 생명이 지구라는 대자연 속에서 당당히 제자리를 지키며 인간과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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