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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영화관의 졸음을 사랑하는 법

Writer: 김경수
김경수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하는 «비애티튜드»의 에세이 코너. 2024년을 맞이해 새롭게 영입한 필자는 바로 인터넷 밈meme을 연구하는 김경수 님입니다. 작년 석사 논문으로 발표한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온라인에서 알음알음 굉장한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 기세를 몰아 올 2월에는 단행본으로 정식 출간될 예정이랍니다. 앞으로 매달 인터넷 밈과 엮어 우리 사회의 일면을 읽어줄 경수 님의 본업은 영화평론가예요. 짧디짧은 인터넷 밈과 최소 90분이 넘는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는 극과 극을 달리는 존재죠. 인터넷 밈이 선사하는 즉각적인 도파민에 길들다 보니 경수 님은 어느덧 영화관에서 졸음 마귀에게 시달리는 위기에 처했어요. 그런데 그는 이제 영화관의 졸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영화평론가가 대체 뭔 소리냐고요? 자세한 내막은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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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탕후루’와 ‘제로 콜라’를 동시에 비평하는 사람이다. 탕후루는 ‘인터넷 밈’이고 제로 콜라는 ‘영화’다. 탕후루와 제로 콜라가 동시에 유행하는 시대라니 다행이다. 아니, 오히려 좋다! 덕분에, 나 같은 혼종도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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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밈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을 원본 삼아, 본체와 관련 없는 우스꽝스러운 제스처, 상황, 표정 따위를 추출한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특정한 상황이나 맥락에 적당한 제스처와 원초적인 감정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인터넷 밈을 사용한다. 이때 원본과 인터넷 밈은 이미 맥락에서 벗어나 서로 관련이 없어진다. 그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때 인터넷 밈 하나면 간단히 끝난다. 인터넷 밈은 재생 길이도 무척 짧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한가득 떠도는 밈을 보다 보면 시간이 훅 간다. 하나만 봐야지, 하다가 수십 개를 보고 결국엔 눈이 시려서 잠든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무엇보다 극한에 가까운 쾌감과 웃음을 만들기 때문에 그 속성은 매우 자극적이다. 마치 탕후루처럼 말이다. 

깨물어 먹는 순간 금세 혈당을 치솟게 하는 ‘혈당 스파이크’ 탕후루처럼, 인터넷 밈은 누군가의 뇌에 도파민을 때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석사 논문 주제로 인터넷 밈을 다루기로 마음먹은 후, 리서치를 위해 인터넷 밈을 수집하면서 내 뇌는 어느 순간부터 도파민에 절여졌다. 지금도 뱀술 속의 뱀처럼 도파민에 푹 담겨 있다. 그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나는 원래 제로 콜라, 즉 영화를 비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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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곧바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매체가 아니다. 초반부터 감독이 설정한 빌드업을 성실히 따라가야 하이라이트에 이르러 마음 깊은 곳에서 카타르시스가 겨우 우러나온다. 게다가 빼어난 작품성도 필요하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온전히 충족할 때 비로소 도파민은 샘솟을락 말락 기지개를 켠다. 즉 영화로 도파민을 느끼려면 이렇게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뇌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자극적인 인터넷 밈을 갈망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이제 영화에서 롱테이크 장면이 등장하거나 잔잔한 일상이 묘사되는 순간, 내 뇌에는 비상이 걸린다. 졸음신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든 상세히 보고 기억하며 맥락화해야만 하는 영화평론가에게 이는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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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경험을 고백하고 싶다. 아트나인에서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더 킬러The Killer›(2023)를 보다가 졸음 마귀가 찾아왔다. 킬러가 주인공이라는 말만 듣고 나는 곧장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했다. 감독이 과거 내놓았던 스타일리시한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2001)을 생각한 내가 바보일까. 영화 속 킬러는 “운명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 “공감은 금물이다. 공감은 나약함이다. 나약함은 약점이다” 등 그동안 쌓아온 나름의 철학을 중얼대며 20분 가까이 공유 사무실 위워크WeWork에서 표적을 기다린다. 그는 빅맥을 먹었고, 요가를 했고, 심박수도 체크했고…뭐…아, 졸면 안돼! 하필 이놈의 영화는 평론까지 청탁받은 귀한 몸이었다. 어느덧 영화관은 내 의지와 뇌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콜로세움이 되었다.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언정, 보통 우리가 방문하는 영화관은 사실 졸음에 최적화된 곳이다. 적당히 따뜻하고, 의자도 부드럽다. 그만큼 졸음에 알맞게 어두컴컴한 공간도 드물다. 태생적으로 극장이란 공간은 관객이 오로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그런 과정에서 관객의 불편을 줄이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할 수도 없는 영화관은 그래서인지 따뜻하고…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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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The Killer›(2023)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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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The Killer›(2023)

망했다. 족히 네 번은 기절한 듯하다. 영화 흐름은 대강 기억나지만 디테일을 놓쳐버렸다. 조각조각 흩어진 이미지가 머릿속을 부유하는데, 졸다가 꾼 꿈과 뒤섞이는 느낌까지 든다. ‘아아, 한 번 더 보아야 하나’ 좌절할 즈음, 혹시나 하고 유일한 희망인 다이어리를 펼치면 좌절은 두 배가 된다. ‘휴먼졸림체’로 쓴 글자 덩어리가 페이지마다 빼곡하다. 악필을 타고난 것도 억울한데, 쓰다가 말아서 알아볼 수 없는 글자 사이로 지렁이가 기어간다. 순간 나 따위가 영화 평론을 쓸 자격이 있는지 자문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은 어느덧 ‘내가 사람이기는 한가?’라는 실존적인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나를 철학자로 만든다. 내가 이러려고 인터넷 밈을, 아니 영화 평론을 쓰기로 마음 먹었던가… 왜인지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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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게다가 나는 그 영화를 혼자 본 게 아니다.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영화를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보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그녀는 한참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꼭 혀를 끌끌 차는 듯하다. 요즘 영화를 함께 보면, 여자친구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 같아도 속상할 테다. 꼭 봐야 하는 영화라기에 굳이 같이 왔더니, 정작 평론 쓴다는 인간은 졸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동안 연인은 하나로 연결되는 마법을 겪는다. 영화관이 시내에서 진행되는 현대적 데이트의 성지인 이유다. 공적인 공간인 영화관은 어두컴컴한 분위기로 연인 간의 은밀함을 고조하는 사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고로 영화를 보다가 조는 행위는 은밀함을 부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례나 마찬가지다. 더는 이를 반복하고 싶지 않던 나는 나름의 의지를 담아 각서를 썼다. ‘나, 김경수는 함께 영화를 보다가 세 번 이상 졸면 밥을 산다.’ 그리고 각서 쓴 다음 날 그녀에게 밥을 샀다. ‹더 킬러›를 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다 인터넷 밈에 절인 탓이라고 체념하는 순간이다. 결국 나는 그 영화를 혼자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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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관에서 조는 게 꼭 나쁜 걸까? 이왕지사 이렇게 된 바에 영화관의 일부로 적응하는 나에게 찾아오는 졸음을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분명 이 말을 접한 사람들은 ‘영화평론가라는 이가 무슨 막말이냐’라고 분기탱천할 듯싶다. 생각을 바꿔보면, 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가속화된 시대를 살아간다. 모든 감정을 한시라도 빨리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인터넷 밈은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한다. 영화는 가속화에 저항하는 감각을 기르는 도구다. 우리가 평소에 스치듯 본 것을 더욱더 길게 보도록 만든다. 카메라가 어떤 대상을 롱테이크로 포착하면 왠지 모르게 전보다 심오하게 대하게 된다. 그런 시선을 통해 평범한 일상은 고유한 의의를 부여받는다. 만일 킬러 영화를 보자마자 살인이 펼쳐졌더라면, 우리는 킬러도 현대 사회의 노동자에 불과하며, 그의 업무가 한없이 지루하다는 점을 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킬러의 일상을 이처럼 상세히 경험할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영화는 현시대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감각을 발명하고 있다. 동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지루하고 졸리다는 치명적인 결함은 오히려 내가 영화의 방법론을 더욱 사랑하도록 하는 핵심 요소다. 비록 네 번이나 졸았지만, 잠시나마 그런 영화를 보며 가속화된 나의 감각에 저항하는 일은 무척이나 뿌듯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명작은 나를 창의적으로 졸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관람객을 졸리게 할 수도 있구나’ 싶을 때 경탄을 느낀다. 졸지 않았다면 이토록 생경한 감각을 마주할 수 없다는 면에서, 졸음이야말로 도파민의 무한한 굴레에 갇힌 동시대인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도록 돕는 일등 공신인 셈이다.

지난 2023년 내가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2023)였다. 작년 5월에 본 후, 최근 다시 보았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무려 네 번이나 관람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졸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 뜨고 제대로 보지도 못한 영화를 최고의 영화라고 꼽을 자격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내게는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나른하고 졸리다. 감독의 그간 작품과 비교해 보아도 그러하다. 내레이터가 계속 쏟아내는 대사의 힘이 크다. 톤이 일정해 마치 자장가처럼 들린다. 게다가 인물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말한다. 잠시 졸았다가 깨어난 다음에도 여전히 나른하게 전개되는 터라, 혹여 내가 여전히 꿈속에서 헤매는 건 아닐까 착각을 줄 정도다. 이런 나른함이야말로 우리가 평소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영화 속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우리에게 휴가지에 머무는 듯한 감흥을 준다. 감독은 플롯에 상관없이 관람객이 유유자적하게 영화 속을 유영하길 바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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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2023) 스틸 이미지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우리의 졸음을 반긴다. 연극의 리허설 장면으로 끝나는 엔딩을 보자. 느닷없이 한 캐릭터가 일어나 급작스레 외친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모두가 최면에 걸린 듯 이 대사를 되풀이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는 내게 던지는 한 마디 위로였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영화관에서라도 도파민에서 해방되어 잠드는 경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하려고 105분을 달린 느낌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서 푹 자고, 꿈꾸는 듯한 감흥에서 헤매다 결말만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인터넷 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감독의 배려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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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무척 기묘하고도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엔딩의 연극 리허설이 등장하기 직전의 일이다. 주인공과 그의 아들이 대화하는 뒤편으로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멀리 원자폭탄이 터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둘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멍하니 쳐다본다. 방사능 낙진은 전혀 다가오지 않고 그 어떤 위기감도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보일 정도다. 나는 원자폭탄 터지는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우리는 창문의 이름을 딴 신비한 세계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컴퓨터의 ‘윈도Window’다. 윈도는 원자폭탄이 일상적으로 터지는 세계다. 그리고 영화는 그와 별개의 세계다. 감독은 마치 영화관이란 공간이 인터넷에서 반복되는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난 세계인 듯 그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아날로그 영화관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휴가지인 양 거기서 마음껏 졸음에 빠지고 저만의 꿈을 꾸라고 속삭인다. 진정한 ‘꿈의 공장(Dream factory)’이 알고 보니 여기에 있었다.

덧붙이는 말.

영화와 졸음의 상관관계를 극적으로 느끼고 싶다면 태국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메모리아Memoria›(2022)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 속 캐릭터가 15분 가까이 잠드는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도 자는데, 너는 안 잘 거니?’라고 물어보는 듯하다. 이는 한 여성이 어디선가 ‘쿵’ 하며 울려 퍼지는 미지의 소리를 접하는 영화의 플롯과도 맞물린다. 우리는 그가 접하는 소리의 실체를 예측하기 힘들다. 실상 우리의 삶은 백색 소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은 여성이 느끼는 소리의 충격을 관객과 공유하려 한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관람객을 졸음의 세계로 유도하는 일이다. 영화를 보다가 비몽사몽하며 온몸의 긴장이 나른해지는 무방비 상태가 펼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영화 속 캐릭터가 느끼는 미지의 소리에 진정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10분에 한 번 들리는 ‘쿵’ 소리는 우리의 몸 전체에 기이한 충격을 가한다. 영화 속으로 녹아들어 체험이 체화되는 순간이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단행본으로 기획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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