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5주년을 맞이한 아트부산 2026이 5월 21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나흘간 열립니다. 아트부산은 서울 외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국제적 인지도를 축적해 왔고, 3040 세대의 새로운 컬렉터를 포섭하며 꾸준한 성과를 보여주는 아트페어죠. 18개국 11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이번 아트부산은 퓨처 섹션으로 신진 갤러리의 비중을 높여 균형감 있는 작품을 소개하기도 해요. 좋은 작품을 소장해 보고 싶은 분이라면 퓨처 섹션을 살펴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비애티튜드 매거진이 아트부산 2026의 다크호스를 먼저 만났습니다. 바로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으로 진행하는 하나퓨처아트어워드(Hana Future Art Award) 파이널리스트 작가 3인(팀)입니다. 하나퓨처아트어워드는 퓨처 섹션의 작가를 대상으로 파이널리스트 3인(팀)을 선정하고 5월 21일 VIP 프리뷰 당일 최종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요, 작품도 국적도 다채로운 이들의 이야기는 창작이 결국 작은 것을 포착해 다른 감각으로 연결하는 서사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죠. 아트부산 2026 하나퓨처아트어워드 파이널리스트 3인의 이야기를 지금 BE(ATTITUDE) 비애티튜드 매거진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아트부산 2025 전시전경
Artist
Ryu Jimin 류지민
류지민 작가 프로필
류지민(@ryujimiiiiin)은 서울에 거주하며 사라짐 이후에도 지속되는 풍경과 기억의 잔상에 주목하는 회화를 선보인다. 화면 속에는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상태가 겹쳐진다. 관찰된 현실과 개인적 기억은 언어와 생성형 AI를 거쳐 가상의 이미지로 전환되고, 이는 다시 회화로 옮겨지며 실재와 비실재,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After Us» (히피한남 갤러리, 2026)와 «웃어 넘기고 싶은 마음» (유영공간, 2023), «메아리의 색을 모아» (에브리아트, 2021)가 있고, «사라진 뒤에 남은 것들» (히든엠 갤러리, 2026), «스몰 페인팅스-마이 비쥬!» (김리아 갤러리, 2025), «불가분한:현실과 환상» (갤러리 플레이리스트, 2024)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빛이 내린 자리3_Where the Light Fell3›,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24 × 24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회화 작가 류지민입니다. 저는 기억이 시간 안에서 흐려지거나 변형되는 방식에 오래 관심을 두고 작업해 왔어요. 기억은 늘 불완전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바뀌잖아요. 그 불안정한 과정 자체를 화면 안에서 다루고 싶었고, 최근에는 AI 이미지를 작업 과정에 끌어들이면서 기억과 이미지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조금 더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서 계속 그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일상에서 작은 것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상상해 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빛이 모이는 곳_Where the Light Gathers›,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40 × 90 cm
‹남아있는 방_A Room That Remains›,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72.5 × 91 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실은 오래된 상가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네 미용실이 붙어 있어서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는 목소리가 종종 들려와요. 그 소리가 정겹고 재미있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작업실 벽에는 작업 중인 그림이 걸려 있는데, 한 작업을 오래 들여다보고 수정하는 편이라 벽을 채운 그림이 작업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록처럼 느껴져요. 특히 오후 네다섯 시쯤 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데, 그때 그림 위로 빛이 비치면서 같은 그림도 전혀 다르게 보이는 모습이 또 다른 작업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14살 반려견과 늘 함께 작업실에 출근하는데, 대부분 소파에 누워 평화롭게 자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업실에서의 긴 시간이 외롭지 않고 큰 힘이 됩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특별한 장소보다 집 근처 익숙한 길에서 더 많은 걸 발견해요.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나 그림자, 물웅덩이에 비친 장면처럼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 것인데, 저는 그런 장면 안에서 오래 남는 감각을 발견하거든요. 또 버려진 물건이나 오래 방치된 공간을 마주하면 그곳에 남아 있는 이전의 시간이나 사라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상상해요. 그런 감각과 상상이 작업의 시작점이 됩니다.
류지민 작가의 작업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일상에서 찍은 사진이나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해요. 그걸 먼저 단어나 문장으로 꺼내 보고, 그 언어를 생성형 AI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를 통해 이미지로 변환합니다. 그렇게 생성된 여러 이미지를 편집하고 재구성하여 다시 손으로 화면에 옮겨요. 그 과정에서 원래 기억과 생성된 이미지 사이에 어긋남이 생기는데, 저는 그 어긋남에 관심이 있어요. 작업 과정에서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제가 혼자서는 닿기 어려운 이미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매개처럼 느껴집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번 아트부산에서 선보이는 메인 작품 ‹After Us›와 ‹자라나는 방 1, 2(Growing Room 1, 2)›에서는 사라진 이후에도 남아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어요. 누군가 한때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 낡고 방치된 공간을 식물이 뒤덮고 있거나 빛과 그림자, 물결이 뒤섞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장면은 마치 아주 오래된 과거 같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같기도 해요.
이 작품 속 공간은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생성형 AI가 학습한 이미지 데이터가 개입하면서 더 이상 개인의 기억도, 특정한 타인의 기억도 아닌 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혹은 편안하면서도 기이한 감각이 동시에 느껴져요. 저에게 사라짐은 끝이라기보다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과정에 가까워요. 이번 작업은 그런 감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자라나는 방1_Growing Room1›, 2025,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91 × 234 cm
‹After Us›,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97 × 193.9 cm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억과 이미지의 신빙성에 가장 관심이 있어요. 예전에는 사진을 기억의 증거처럼 사용했는데 생성형 AI가 확산하면서 그 전제가 흔들린 것 같아요.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지금, 사진이나 심지어 영상조차도 더 이상 실재를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럼 ‘회화는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히려 그 균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질문을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아주 사소한 것이나 사라질 것을 오래 바라보는 편이에요. 금방 지나가 버리는 순간이나 사소한 장면에 자꾸 마음이 머물고, 그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런 태도가 작업 안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맞닿은 방1_Touching Room1›,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65.1 × 45.5 cm
‹맞닿은 방2_Touching Room2›,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65.1 × 45.5 cm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개인적인 질문이나 고민에서 시작된 작업이 다른 사람의 감각과도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해요. 결국 아주 사적인 경험이라도 누군가는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리고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답을 빨리 내리기보다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요. 이미지가 너무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대라서, 하나의 이미지를 오래 바라보고 그 안에서 미세한 감각을 발견하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따뜻함과 차가움, 익숙함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 그림은 처음 봤을 때는 회화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처럼 다가오지만, 그 안에는 기술적 개입과 동시대적인 감각들이 공존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런 상반된 감각이 한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상태에 관심이 많아요.
또 누구나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실이나 이별 같은 감정을 단순히 슬프고 쓸쓸한 것으로 바라보기보다, 비워진 자리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자라날 수 있는 시작의 가능성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위안을 얻는 것처럼, 제 작업을 보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감각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Artist
山田 美優 야마다 미유
야마다 미유 작가 프로필 (Image courtesy of biscuit gallery and the artist)
야마다 미유(@miyuyamada2)는 시대와 사회적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존재의 모습을 투영하는 도쿄 기반의 믹스드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회화, 조각, 설치를 아우르며 모래를 주 매체로 삼아 작업을 전개한다. 도시와 자연, 정신과 물질, 언어와 비언어 사이를 진동하는 재료인 모래를 통해 끊임없이 요동치는 자아와 타자의 모습을 구현해 낸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Nowhere Land»(2025, biscuit gallery), «Dawn + Drawn»(2023, biscuit gallery), «HOME»(2023, Arte22 Gallery, 서울), «Journey»(2022, HIRO OKAMOTO)가 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waiting for your step (Sticker)»(2026, 갤러리 우, 부산), «Pairspective 004: Miyu Yamada + Nanami Saito “Little Voices”»(2025, biscuit gallery), «A Fixed-Point Observation from Two Billion Light-Years Away»(2024, Tang Contemporary Art), «Daydream»(2024, K11), «YOU DO YOU»(2022, whimsy works) 등이 있다. 이외에도 아트페어 도쿄, 아트부산, 아트 센트럴 홍콩, 키아프 서울 등 주요 아트페어에 꾸준히 출품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는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아크릴 물감과 모래를 사용해 제가 바라보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을 때 마주한 갈 곳 없는 벅찬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이따금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그 시점부터 창작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저를 억눌러 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고 이게 깊은 위안과 큰 기쁨을 주었죠. 하지만 동시에 고통스럽기도 했어요. 작업이 너무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성찰에 가까워서 아직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거든요.
‹Reading Writing›, 2026,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16.7 × 91 × 5 cm
‹Night›,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45.5 × 53 × 5 cm
‹Coffeetime›,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45.5 × 53 × 5 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실은 도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해안 도시인 즈시逗子市에 있습니다. 스튜디오 내부의 벽은 제가 직접 세웠답니다. 집주인 분도 아주 좋은 분이고 마을 전체가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서 이곳을 정말 좋아해요. 도쿄를 벗어나 처음 살아 본 곳인데 햇빛, 강, 바다, 사람 등 주변 모든 것과 사랑에 빠졌죠. 아주 개방적인 분위기예요. 물론 작업은 스튜디오 안에서 하지만 근처로 산책을 가거나 차를 마시는 장소도 제겐 작업실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기분 좋게 그림을 그릴 때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작품에도 스며든다고 믿거든요.
작업실 공간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오히려 약간 깔끔하지 않을 때 집중이 더 잘 되는 편이에요. 사실 약간 어수선한 걸 더 좋아한답니다! 하하…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영감을 억지로 찾으려 하지는 않아요. 영감은 대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작업은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관심사나 자극적인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작품에 진정성과 현실감을 부여한다고 느껴요.
하지만 가끔은 색다른 것에 도전하거나 평소와 다른 작업을 해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림에서 느끼는 ‘거리감’이 달라져서 꽤 흥미로워요.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제게 영감을 주는 대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게 어디든 제가 만나는 사람과 교감하는 공간이 중심이 되죠.
제 그림 속 생명체는 허구이지만 작품 자체는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찍어 두고 모아 둔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할 때가 많습니다.
‹Long Beach›, 2024,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16.7 × 91 × 5 cm
‹A with the light›, 2024,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45.5 × 38 × 5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항상 스케치에서 출발해요. 캔버스에 바탕칠한 다음 배치를 구상하고 채색을 시작하는데 솔직히 이 과정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모든 것을 미리 정해 두기보다는 우연히 떠오르는 형태를 살려 가며 작업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우연에만 내맡기는 것은 아니에요. 매 순간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밀고 당기듯 ‘내가 주도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라는 감각을 항상 손에 쥐고 작업해요. 이렇게 수많은 시도와 탐구의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완성합니다.
그리고 저는 붓끝에 닿는 저항감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패널을 사용하는 걸 선호해요. 정확한 조건은 없지만 표면 위에서 교감이 이루어지다가 어느 순간 ‘이제 멈춰야겠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다음 날 다시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그 느낌이 남아 있다면 그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거죠.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금까지는 모래를 주된 모티프로 삼아 왔어요. 모래는 이미 잘게 부서진 입자라 그저 ‘그곳에 존재한다.’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죠. 그런데 최근 제 관심사가 모래에서 흙으로 옮겨 가고 있어요. 흙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잖아요. 분해와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역동적인 과정 속에 존재하죠. 자연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흙의 속성이 현재 제 작업 방향과 더 깊이 맞닿아 있다고 느낍니다.
이번 아트부산을 위해 최근에 완성한 ‹The root of thought›라는 작품은 보통 나쁜 것은 버려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탐구해요. 제 그림 속에서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특정 생각이나 감정이 배척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양분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져 천천히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도록 허락되고 꽃을 피우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해요. 자아와 타자, 이성과 감성, 생각과 육체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요소가 끊임없이 섞이고 이동하고 순환하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The root of thought›,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16.7 × 91 × 5 cm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음식과 흙에 마음이 끌려요. 최근에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채소를 직접 길러 보니 식물이 야생에서 자라는 게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생생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는 완벽한 자연농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모든 걸 사람 손으로 통제하려 하기보다 자연의 흐름과 순환 속에서 무언가를 길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열심히 배우는 중이에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사람들은 작품을 보고, 제가 꽤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람일 거라 짐작하곤 해요. 하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편안함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닙니다. 제 안에는 늘 상충하는 감정과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사유하거든요. 그렇기에 모든 생각을 남김없이 쏟아 낸 뒤에야 비로소 어깨에 힘이 풀리는 순간이 오는데 그 상태가 되어서야 마침내 어딘가에 도달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명확한 답으로 떨어지지 않는, 모호하고 흐릿한 감정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만큼 저 자신을 어떤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전시장에 있다 보면 “아! 이 그림을 그리신 분이군요.” 라거나 “작품이 작가님이랑 꼭 닮았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요. 한때는 작품과 저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서로 동기화된 부분이 생겼다고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요새는 작품이 제가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요.
‹AB on the field›,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62 × 130.3 × 5 cm
‹Popping cream›, 2023,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38 × 45.5 × 4.5 cm
‹Elevator going somewhere›,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91 × 72.7 × 5 cm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무심코 지나칠 때가 있잖아요. 그러나 작은 어긋남은 결국 큰 어긋남이 되기 마련이죠.
그래서 그 어긋나는 느낌이 드는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건 창작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덧붙여서 이건 창작자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와 협력하며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고 선보일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 공간, 환경에 늘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도 제게는 무척 중요합니다!
‹Old memory›, 2024,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62 × 130.3 × 5 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최종 결과물일 테니 그저 매 순간 제가 마주하는 각각의 작품과전시에 진심을 다하는 데 오롯이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게 된다면 기쁘겠지만 정확히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너무 많아지거든요.
무엇보다도 그 시대에 강렬하게 공명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고 싶습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삶의 특정 시기로 순식간에 돌아가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제 작품도 그렇게 관람객 각자의 시간선과 나란히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제 그림을 보는 순간 특정 시절의 어떤 느낌 속으로 데려가 줄 수 있도록요.
Artist
Inside Job(Ula Lucińska & Michał Knychaus)
인사이드 잡(울라 루친스카 & 미하우 크니하우스)
인사이드 잡 프로필(좌: 울라 루친스카, 우: 미하우 크니하우스)
울라 루친스카Ula Lucińska와 미하우 크니하우스Michał Knychaus는 아티스트 듀오 ‘인사이드 잡Inside Job’으로 활동한다. 두 작가 모두 폴란드 포즈난 예술대학교 뉴미디어 학과를 졸업했다. 이들의 작업은 다양한 매체와 재료의 활용에 기반하며, 종종 다층적인 오브제 기반 환경 설치로 이어진다. 많은 프로젝트는 과거의 잔재와 미래적 추측이 뒤얽힌 재난적 시나리오를 참조한다. 이들은 현재를 형성하고 가능한 미래에 대한 상상력에 영향을미치는 환경적, 사회적, 지정학적 변화에 관심을 둔다. 또한 허구를 작업 방법론으로 도입함으로써,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예견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탐색하는 자기실현적 잠재성을 탐구한다.
인사이드 잡은 파리 국제 아르타공 IV 공모전(2018)의 파이널리스트였으며, 국제 알레그로 프라이즈(2020) 쇼트리스트에 올랐다. 또한 폴란드 문화유산부 ‘영 폴란드(Młoda Polska)’ 장학금(2026), 포즈난 예술 장학금(2023), 포즈난 시 신진예술가상(2020), 폴란드 문화유산부 장관상(2018), 산탄데르 유니버시티 상(2016) 등을 수상했다. 프라하의 FUTURA, 밀라노의 eastcontemporary, 아테네의 Hot Wheels Projects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프라하 MeetFactory, 제34회 류블랴나 그래픽 비엔날레, 아테네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 바덴바덴 쿤스트할레, 바르샤바 국립미술관(Zachęta), 비아위스토크 아르세날 갤러리, BWA 브로츠와프, 슈체친 TRAFO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올해 이들은 제16회 광주비엔날레에서 폴란드 대표로 참여한다.
«Cockaigne», Arsenal Gallery Power Station, 2025, 사진 Tytus Różniak-Szabelski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인사이드 잡Inside Job’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듀오, 울라 루친스카Ula Lucińska와 미하우 크니하우스Michał Knychaus입니다. 폴란드 포즈난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두 사람 모두 포즈난 예술대학교 뉴미디어 학과를 졸업했어요.
저희는 다양한 오브제로 이루어진 설치와 공간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주로 금속과 섬유를 재료로 사용하며 산업적 생산 방식과 전통 공예를 결합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그래서 작업 안에는 언제나 수작업과 기계 생산 사이의 긴장이 내재해 있습니다.
주제 측면에서는 격렬한 변화나 ‘단절과 위기의 순간’에 이끌립니다. 과거가 현재를 배회하고 추측에 기반한 미래가 실재처럼 흐릿하게 다가오는 공간에 주목합니다. 환경적, 사회적, 지정학적 변화에 관심이 많고 나아가 그 변화가 미래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주된 관심사예요. 주로 허구를 방법론으로 삼지만, 그 시작점은 특정 장소나 풍경 혹은 저희가 직접 시간을 보낸 곳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동시대 미술에 들어오기 전부터 저희는 이미 인접한 분야와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울라는 미술사를, 미하우는 문화학을 공부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겼습니다. ‘연구를 넘어 실천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말해 ‘상황을 만들고 설치를 구성하며 분석적 방식이 아닌 감정적이고 시각적이며 직관적인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죠.
하지만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배경에는 보다 물리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위가 낳는 신체적 경험, 즉 물질과 재료를 직접 다루는 감각적이고 신체적인 차원에 대한 갈망이 생겼거든요. 그런 종류의 몰입은 이론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 간극을 더는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유에서 제작으로 이동하고자 했던 충동이 두 사람 모두를 미술학교로 이끌었고 작가 활동을 시작하게 만들었어요. 막상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죠. 그렇지만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했다기보다 오래전부터 닿고자 했던 언어를 비로소 발견한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Behind the mouths gate something is stirring, is flickering›, 2024, linen, silk, organza, stainless steel, galvanized steel, soy wax, calendering line, spray paint, 가변 설치, 사진 Tiziano Ercoli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스튜디오가 포즈난의 대규모 산업 단지 내에 있어요. 한때 타이어를 생산하던 곳으로 도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공장 중 한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서서히 가동이 중단되고 있는데 그 점진적인 쇠락의 분위기가 이곳 전체에 짙게 깔려 있죠. 주변에 작가 작업실이 많지 않아 산업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저희는 이런 환경에서 진심으로 영감을 얻습니다. 한때는 제 기능을 하며 살아 있었으나 이제는 과거의 증인으로만 남은 기계 부품과 미완성 장비, 산업 구조물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공간이니까요.
동시에 역설적으로 건물 사이사이에는 자연이 가득합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저수지, 오래된 나무 군락을 비롯해 수많은 새와 담비, 긴꼬리족제비, 고양이 몇 마리가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큰 강도 흘러요.
스튜디오 내부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요. 절단, 연마, 벤딩 등 거친 작업을 하는 공간과 작업물을 관찰하고 실제 공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테스트하는 깨끗한 공간입니다. 공간이 매우 밝은데 이 점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됐어요. 여러모로 이곳은 저희에게 제2의 집이 됐습니다.
영감의 상당 부분은 폐허나 옛 산업 부지, 재난 혹은 장기적인 방치로 흔적이 남은 풍경 등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서 옵니다. 그런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장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해요. 버려진 건축물이 어떻게 서서히 비인간적인 힘에 굴복하는지, 자연이 한때 인간이 통제하고 구축했던 것들을 어떻게 되찾아가는지에 관한 관찰이 결국 작업의 핵심이 되죠. 오랫동안 척박한 환경에서도 번성하는 엉겅퀴를 사진으로 찍어왔는데, 엉겅퀴의 강인한 의지와 미묘한 힘이 ‹Thistle Mirrors›와 ‹Will Spread› 시리즈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어요.
폐허에 관한 관심은 좀 더 구체적인 지점과 이어집니다. 포스트 공산주의 시대의 정치·경제적 변화 이후 중동부 유럽에서 일어난 특정 산업의 붕괴, 특히 그 붕괴가 장소뿐만 아니라 기억과 상상력에 미친 영향에 매료되었어요. 과거가 어떻게 조작되는지,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차단되거나 새롭게 발명되는지 하는 문제죠. 저희가 계속해서 다루는 시각적 언어는 여기도 저기도 아닌, 무언가의 전(前)도 후(後)도 아닌 일시 정지된 상태를 뜻하는 ‘문턱threshold’입니다. ‹Passages› 시리즈에서는 레이저로 가공된 강철과 반투명한 천을 결합해 리드미컬한 반복 환경을 이루는데, 저희는 이를 “사이의 건축architectures of in-between”이라고 부릅니다.또한 ‹Get Down Get Down…› 작업은 추상적인 포털 형태를 띠는데, 금속 프레임 안에서 LED 조명과 함께 부드럽게 맥동하는 실크 막은 익숙한 표면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무언가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이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유기적인 것과 합성적인 것, 또는 살아있는 것과 생명 없는 것 사이의 경계입니다. 특히 저희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지점은 그 경계가 얼마나 얇고 불안정한가 하는 점이고요.
이러한 호기심은 이론적 영역으로도 확장됩니다. 최근에는 사변적 철학speculative philosophy와 어두운 생태학dark ecology가 현대 미술과 교차하는 방식에 매료되어 있어요. 호러, 기괴함, 기후 변화, SF 장르의 문학과 영화에서도 많은 것을 얻죠. 가상 세계 역시 큰 영감의 원천인데요,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나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처럼 놀랍도록 복잡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상상력을 구축한 게임이 대표적입니다.
‹Get down, get down little Henry Lee and stay all night with me›, 2019, aluminum, steel, digital print on silk, electricity cables, led lights, 가변 설치, 사진 Tiziano Ercoli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듀오로 활동하다 보니 창작 과정에 관한 질문은 언제나 답하기 어려워요. 저희의 협업 방식은 매우 유기적인데, 둘 사이의 관계와 오랫동안 공유해 온 역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말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함이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도 완전히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협업과 소통의 방식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프로젝트는 대개 직관적이고, 꽤 즉흥적으로 시작됩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자신의 때를 기다리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이전에 만들었지만 선보일 기회가 없었던 작업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각 작품은 보통 재료와 협상하고, 때로는 논쟁하는 과정의 결과물이에요. 그래서 최종 결과물은 처음 시작했던 지점과는 상당히 다른 곳에 도달하곤 합니다.
리서치를 선행하고 다양한 자료에서 영감을 얻지만, 특정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직접적인 서사를 전달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모호함, 관객의 자의적인 해석, 미리 정해지지 않은 의미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제작에서는 CNC, 레이저 커팅, 기계적 벤딩, 금속 가공 등 산업적 생산과 관련된 방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 뒤에는 항상 조립, 연마, 수염색, 바느질, 왁싱, 재작업, 때로는 실크스크린 같은 수작업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늘 손으로 직접 그린 고전적인 스케치에서 출발하죠. 저희의 프로세스는 또한 지극히 꾸준한데, 매일 규칙적으로 스튜디오에 출근해 작업합니다.
‹Paradise Rot – The Observer II – detail›, 2025, stainless steel, black steel, chrome steel, electric cables, linen, organza, silk, LED lights, soy wax, spray paint, black pigment, oil, gum, 가변 설치, 사진 Tytus Różniak-Szabelski
‹Paradise Rot – The Observer II & The Pond II›, 2025, stainless steel, black steel, chrome steel, electric cables, linen, organza, silk, LED lights, soy wax, spray paint, black pigment, oil, gum, 가변 설치, 사진 Tytus Różniak-Szabelski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장 최근 작업 중 하나인 ‹Paradise Rot›은 석유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공간 설치 작업이에요. 수백만 년 동안 압축된 유기물이 추출되어 상품으로 변모한 석유의 본질을 다루는 동시에 슬라브 전설에 등장하는 도깨비불(will-o’-the-wisps)에 대한 매혹과도 궤를 같이하죠. 민속적 상상력 속에서 도깨비불은 늪과 습지 위를 떠도는 희미한 빛이자 삶과 죽음의 문턱에 존재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이 설치물은 그 맥락을 한데 모아요. 환상적인 식물 형태의 꽃받침이 검은 기름 찌꺼기 웅덩이 위로 무겁게 드리워져 있고 그 내부에는 마치 끈질기게 살아남아 남은 것을 빨아올리는 듯한 케이블이 뒤엉켜 있습니다. 제목도 고유한 무게를 지녀요. 상실된 낙원과 자연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부패(rot)’를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성적인 것, 즉 변화와 잠재력으로 가득 찬 순환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점을 담고 있죠. 이 작업은 최근 옛 발전소 부지에서 열린 습지 관련 전시에서 소개됐는데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으나 실상은 국가 권력이 닿지 않는 공동체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던 습지 배수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또 다른 작품 ‹Behind the Mouths Gate Something is Stirring, is Flickering›은 식충식물, 특히 곤충을 유혹해 꽃받침 속에 가두는 벌레잡이통풀(pitcher plant)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비롯된 작업이에요. 손으로 염색한 린넨, 실크, 오간자로 이루어진 여섯 개의 대형 구조물을 제작했는데 외부는 어둡고 이끼 낀 듯한 표면을 하고 있지만 내부는 붉고 살점 같은 질감을 띠어요. 왁싱 처리를 통해 젖어 있고 거의 갈라진 듯한 표면도 연출했습니다. 이 구조물은 바닥을 가로질러 뻗어 나가는 근경(rhizomatic) 구조에 매달려 있으며 각각의 내부에는 레이저 커팅된 강철 요소가 날카롭고 복잡한 꽃 모양으로 엉켜 섬세한 천에 기생충처럼 걸려 있죠. 내부와 바닥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검은 케이블은 뿌리 구조와 케이블 네트워크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형태처럼 보입니다. 유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의 긴장,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을 흉내 내는 것 사이의 긴장, 바로 이 작업이 끊임없이 회귀하는 지점이에요.
«Possibility we are poisoned», Mala Galerija Banke Slovenije, 2021, 사진 인사이드 잡
최근 저희는 ‘골격(skeleton)’이라는 형상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어요. 단순히 해부학적인 의미를 넘어 건축적, 은유적, 개념적 구조로서의 골격이죠. 저희의 흥미를 끄는 지점은 골격을 구성하는 것과 그 위를 덮으며 자라는 조직, 표면, 막 사이의 경계입니다. 내부 구조와 외부 층, 숨겨진 것과 가시적인 것 사이의 접점을 탐구하는 것이에요.
이러한 사유의 많은 부분은 아테네 레지던시 기간에 형성되었습니다. 저희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로니코스만Saronic Gulf의 고대 엘레우시스Elefsina, 현재는 엘레프시나Elefsina라고 불리는 곳에서 보냈는데 그곳은 유럽에서 가장 큰 선박 무덤 중 한 곳이에요. 부분적으로 물에 잠긴 선박의 철제 골격은 저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버려진 동시에 여전히 무언가에 의해 점유되고 있는 상태, 즉 갑각류와 해양 생물,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하는 그 공간 안에서 잠재성을 감각하는 일이었죠.
그곳은 일종의 유예된 공간이자 진정으로 경계적인(liminal) 공간이에요. 폐허와 건축 자재 사이, 잔해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어떤 것의 흔적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죠.
이후 저희에게 골격이라는 형상은 인간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 생물과 무생물 사이, 유기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 사이에 놓인 존재로요. 최근에는 퇴적과 축적의 과정, 연료이자 생명 유지 장치로서의 물질 그리고 표면 위에 개별적 존재의 흔적으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And the door was kicked open again», FUTURA – Centre for Contemporary Art, 2021, 사진 Tomáš Souček
‹Anitya (There are flowers that are born of mud) III›, 2020, steel, aluminum, linen, silk, recycled leather, rubber, synthetic textile, 가변 설치, 사진 Tomáš Souček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희 작업의 중심에는 자연에 대한 깊은 매혹이 자리 잡고 있어요. 자연의 메커니즘과 회복력 그리고 스스로 재생하고 재조직하는 능력에 대한 경외심이라고 할 수 있죠. 저희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시스템과 마주하는 경험은 저희를 겸허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매혹의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이 실제로는 얼마나 취약한가에 관한 실질적인 불안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어요. 결코 편안한 상태는 아니지만 저희는 이제 그 갈등을 억지로 해소하려 하지 않습니다. 경이와 두려움 사이의 그 긴장은 저희가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위치처럼 느껴지거든요.
저희를 가장 일관되게 이끄는 힘은 직관과 첫 번째 충동에 대한 신뢰입니다. 본격적인 계획을 세우기 전에 찾아오는 아이디어에 집중해요. 그러한 초기 단계의 인식은 작업 과정에서 다른 요소가 변하더라도 작품의 중심에 끝까지 남아 있게 됩니다.
저희는 또한 신유물론의 사고방식에도 끌려요. 물질을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지니고 변화하며 작동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재료를 도구로 이용하기보다 그 고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특정 장소, 특히 단절되거나 버려진 흔적이 남은 곳에서 작업할 때도 그곳에 여전히 머무는 과거의 유령 같은 존재감을 따라가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이 흐르고 있어요.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저희 자신의 서사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저희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것들을 위한 공간을 지향합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 다른 시간대 그리고 다른 목소리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죠.
ART BUSAN
제15회를 맞이하는 ‘아트부산 2026’은 2026년 5월 22일부터 24일까지 벡스코(BEXCO)에서 개최되며, VIP 프리뷰는 5월 21일에 진행됩니다.
아트부산은 매년 전 세계 주요 갤러리와 컬렉터, 미술 관계자들이 부산에 모여 아시아 미술 시장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장입니다. 2012년 첫 개최 이후 꾸준한 성장과 차별화된 기획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했으며, 매년 국내외 유수 갤러리들이 참여해 활발한 작품 거래와 수준 높은 예술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마이애미’로 불리는 부산은 예술, 휴양, 문화 인프라가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도시입니다. 아트부산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부산아트위크’를 통해 도시 전역에 걸친 예술 경험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네트워크, 차별화된 큐레이션, 도시와 연결된 예술 생태계를 기반으로, 아트부산은 오늘의 동시대 미술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설립한 OMA건축사사무소가 창립 50주년을 맞은 해예요. 전 세계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그려온 이 전설적인 팀은 지금도 “건축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죠.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크리스 반 두인(Chris van Duijn)이에요. 대학교 3학년때 인턴으로 OMA의 문을 두드렸고, 지금은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파트너로 성장했어요. 그는 밀라노의 프라다 파운데이션, 모스크바의 차고 미술관, 베이징의 CCTV 본사, 포르투의 카사 다 무지카 등 도시의 맥락과 사람의 움직임을 잇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죠. 그리고 지금, 홍익대학교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과 또 한 번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건축은 형태가 아니라 맥락이다.” 그의 말처럼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무언가를 더 세우는 일이 아니라 비워두고 여는 일이에요. 도시의 여백, 공공의 의미, 그리고 건축이 품은 책임. 미래의 도시가 어떻게 숨 쉬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건축가의 시선, 그 진지하면서도 유연한 태도를 문화 전문 기자 이소영 님의 인터뷰로 전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BE(ATTITUDE) 비애티튜드 매거진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항저우프리즘 프로젝트›, 사진. Xia Zhi Courtesy of OMA
크리스 반 두인은 얼마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그가 맡은 홍익대학교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는 캠퍼스 안팎을 유기적으로 잇고, 서울의 지형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작업이죠. 세계적인 건축사무소 OMA의 파트너인 그는 렘 쿨하스와 함께 리움미술관 설계에 참여하며 2004년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광교 갤러리아 백화점과 제네시스 강남 전시장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이끌어왔습니다. 현재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한 홍익대 캠퍼스 확장 작업뿐 아니라 부산시와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도 병행 중이에요. 그가 요즘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의미와 21세기 건축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크리스 반 두인, 사진. Marko Seifert
‹갤러리아 광교›, 사진. 홍성준 Courtesy of OMA
네덜란드 대표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립한 OMA건축사사무소가 올해 50주년을 맞았어요. 렘 쿨하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받은 영향은 무엇인지도 이야기해 주세요.
크리스 반 두인(이하 크리스): 1996년 인턴십으로 일을 시작했고, 첫 프로젝트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확장 작업이었어요. OMA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일하기 위해 모이는 사무실이었고, 지금도 다양한 국적과 문화,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매우 경쟁적이면서도 활력을 주는 환경이지요. 놀라운 점은 그 당시 내가 아직 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날부터 도전적 과제가 부여되었다는 겁니다. 디자인 회의나 렘 쿨하스와 토론하는 자리에는 프로젝트 리더부터 인턴까지 모든 팀원이 초대되었고, 저 역시 다른 팀원과 함께 브레인스토밍과 내부 비평에 참여해야만 했어요. 모든 디자인 결정이 완전한 톱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멋졌지만, 신입이라고 해서 숨을 곳도 없었지요. 우리 회사가 수년간 많이 확장되고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특정한 협업 방식은 여전히 우리가 함께 일하는 기본 원칙입니다.
OMA 홈페이지 내 렘 쿨하스 소개 페이지
1996년 대학생으로서 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당신의 건축철학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크리스: 회사는 그동안 규모와 조직 면에서 많이 변했고, 1990년대의 건축 환경은 오늘날과 달랐지만 우리가 새로운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어요. 나는 모든 프로젝트를 각각 고유한 기회로 여기고, 그 유형을 더 발전시켜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며, 이전에 없던 프로젝트를 설계하려고 합니다. 호기심과 순수함을 경험과 연구에 결합하고 있어요.
서울 홍익대학교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가 모두의 기대를 모으고 있어요.
크리스: 지난 1년 반 동안 홍익대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를 작업해 왔으며, 이제 설계 개발을 완료한 상태입니다. 내년 초에 착공할 것으로 예상하며, 지금은 기존 개발안을 발전시키는 단계예요. 이 프로젝트의 특별한 의미는 우리가 오랫동안 작업해 온 여러 가지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건축 프로젝트라기보다는 도시, 공공공간, 조경 프로젝트로 불릴 수 있지요. 홍익대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는 건축이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 스마트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로케이션 현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공간을 개방하거나 빈 공간도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사실 현대 도시에서 빈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홍익대학교 공간을 중정, 홍익대 레벨, 옥상 등 3개 레벨의 레이어로 나누었어요. 캠퍼스를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이 단일 건물 하나를 조성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느껴 빈 공간도 유지했지요. 예를 들면 운동장을 채우려고 했던 설계사무소도 있었지만, 우리는 캠퍼스를 좀 더 지하로 파 내려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기로 했어요. 곧 디자인을 완료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홍익대학교 서울 조감도›, 사진. Negativ Courtesy of OMA
당신이 말하는 빈 공간은 한국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여백의 미’와 같은 건가요?
크리스: 음, 재미있는 비유네요! 한국화에서 보이는 여백의 미와 완전히 같은 의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맥상통한 것으로 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운동장을 피해서 올라가는 상황인데,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설계 공모 프레젠테이션을 위해서 홍익대학교에서 아예 생활했다고 들었는데, 에피소드가 있나요?
크리스: 1주일간 거주하다시피 하면서 상황을 관찰하고 적응했어요. 캠퍼스를 오가며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우리 팀은 모든 건물로 올라가 봤고, 학생들이 건물을 이용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도출한 결론은 학생들이 단과대학 건물뿐만 아니라 캠퍼스 전체를 활용한다는 것이었어요. 공간을 창의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지요. 예술대학 학생이 공대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중정이 있는 교류도 흥미로웠어요. 녹지 대신에 밀집과 집중이 생겼고, 압축된 상황이 협력하는 역할을 만든 것이지요.
우리가 매일 학교에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던 부분이에요. 심지어 우리 팀 건축가 중 한 사람은 이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말이죠.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학교 호그와트처럼 한 계단을 올라가면 갑자기 다른 건물이 나오고, 그렇게 미로 같은 길이 이어집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한번에 제대로 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웃음)
석양이 물든 홍익대학교 운동장, 사진. 조재완 출처 홍익대학교 홈페이지 사진갤러리
문헌관에서 바라본 홍익대학교 야경, 제2기숙사, 운동장, 사진. 갤러리관계자
OMA와 인연을 맺은 아시아 첫 국가의 도시가 서울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2004년에 서울을 처음 방문했었는데, 지난 20년간 지켜본 서울의 건축 문화적 변화는 어땠나요? 서울에는 아파트가 많고, 건축이 획일적이라 지루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크리스: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 때 한국에 처음 왔어요. 렘 쿨하스와 함께 리움미술관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했지요. 두 번째 방문은 2007년 경희궁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시 때문이었어요. 서울은 지난 20년간 많이 변했죠. 예전의 한국 사람은 내향적이었어요. 그래서 택시를 타거나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요즘은 도시 곳곳에 관광객뿐만 아니라 대학과 회사에 외국인이 많고, 한류와 함께 한국이 주목받고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건축적 측면에서 서울은 지형도 특별하지요. 도심에 녹색 산도 많고, 산 아래는 작은 동네가 조성되어 있어요. 산 기슭에는 도로와 고층빌딩이 형성되어 작은 거리와 소규모 주택을 집어삼키고 있지요. 5분만 걸어가도 풍경이 확확 바뀝니다. 하지만 재개발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며 서울만의 특색이 사라져 아쉽습니다. 대부분의 고층 건물이 거리의 활기를 죽이고 있어요. 고층 빌딩이 도시에 기여하지 않는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의 개발 방향이 지역 맥락을 고려해 소규모 빌딩과 대규모 빌딩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율되기를 기대합니다. 재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심사숙고해야 해요. 단순히 기존 건물을 지키거나 없애면서 새로운 것을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서울시의 정책도 그런 균형 있는 개발을 지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OMA의 대표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크리스 반 두인의 건축 철학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크리스: 홍익대학교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가 우리 사무소의 방향과 목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돌이켜보면 밀라노 프라다 파운데이션 미술관과 베를린 악셀 스프링거 미디어 회사 본사(Axel Springer HQ) 프로젝트가 특히 의미 깊었어요.
프라다 파운데이션 미술관은 기존 건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보완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여러 가지 조건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건물과 조건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창조하려는 시도였죠.
‹프라다 파운데이션 외관›, 사진. Bas Princen
‹프라다 파운데이션 외관›, 사진. Bas Princen
‹프라다 파운데이션 외관›, 사진. Bas Princen
악셀 스프링거의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부제와 테마를 보여주기에 중요합니다. 그 회사의 문화, 미디어산업의 문화, 베를린의 정치경제적 상황 등 다양한 서사가 연결되어 있어요. 이 두 가지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사회적 맥락을 흡수하고 새로운 맥락을 창출하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전통적 스타일을 따르지는 않고, 이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가 있고, 계속 그 의미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이 세상에는 공간을 제공하는 등 목적이 다양한 건물이 너무 많기에 사려 깊은 판단으로 건축물로 지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축의 의미가 가장 중요한 것이죠. 21세기의 새로운 건축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어떤 부분에 기여해야 합니다. 건물은 도시의 한 부분이며, 그 건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책임도 있어요. 물론 기능도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건축의 의미를 정의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서 각 프로젝트와 관련한 회사, 산업, 도시, 문화 트렌드 등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지요. 건축설계란 특정 형태나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홍익대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가 주위 환경과 소통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은 베를린 악셀스프링거의 방향과 공통점으로 보이는데, 크리스의 의견은 어떤지요?
크리스: 오! 그런 공통점을 떠올렸다니 흥미롭네요.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두 프로젝트 모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지만 로케이션의 중요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일 거예요. 악셀스프링거 본사 부지는 정확히 동서 베를린을 수십 년간 가로지른 죽음의 구역 위에 위치했어요. 단순한 벽 하나가 아니라 DMZ처럼 벽, 울타리, 지뢰밭으로 구성된 구역이었지요. 독일이 통일된 후 이들 흔적은 지워졌으며, 다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상처에 건물이 채워졌지요. 하지만 우리는 부지 위 대각선으로 위치한 빈 공간을 이전 벽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시킴으로써 이 빈 공간이 한때 동서를 나누던 영구적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홍익대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에서는 캠퍼스 내 열린 공간을 중요 특성으로 인식해 디자인에 통합하고자 했어요. 비록 이 공간에 베를린과 같은 아픈 과거가 연결되어 있진 않지만 말이죠. 우리는 이 빈 공간이 1960~1970년대 새로 조성된 캠퍼스와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빈 공간이 학교와 주변 환경 간 강한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학교와 지역사회라는 두 구간이 분리되었지요. 이 지역에 여전히 열린 공간은 부족하며, 홍익대 캠퍼스는 한국에서 상당히 밀집된 캠퍼스 중 하나입니다. 열린 공간을 유지하고, 시각적·물리적 연결고리로서 열린 공간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홍익대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의 동력이죠. 홍익대와 베를린, 두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거대한 건물이 아니라 내외부로 열려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홍익대학교 서울 조감도›, Image by Negativ Courtesy of OMA
최근 중국의 샤먼 조무 본사(Headquarters of Jomoo)와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Taipei Performing Arts Theater) 등을 완공했습니다. 현재 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는 항저우프리즘(Hangzhou Prism)과 선전의 CMG타임스센터(Shenzhen CMG Times Center)가 있는데요, 항저우프리즘과 선전 CMG타임스센터가 특히 뜻 깊은 프로젝트라고 들었는데, 어떤 점이 특별한지 설명해주세요.
크리스: 항저우프리즘은 올해 안에 완공될 예정입니다. 중국 혁신 지구 중 한곳의 중심에 위치한 100m가 조금 넘는 높이의 건물이지요.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2개 주거 타워를 설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일반적 고층 타워가 이 프로젝트에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클라이언트를 설득해 본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유형인 타워와 안뜰이 있는 도시 블록의 중간 형태인 프로젝트를 설계하게 되었지요. 중앙 안뜰은 야외 공간이지만 지붕이 덮여 있어 행사나 사회적 모임 또는 주변 공원의 확장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는 새로운 CBD 중심부에 3차원 마이크로 마을을 개발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선전 CMG타임스센터 또한 사무실과 주거, 호텔, 문화, 소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결합한 3차원 도시 프로젝트로 설계되었어요. 이는 선전과 그레이터베이 지역의 새로운 CBD인 첸하이의 규모와 야망을 반영하고 있지요. 항저우가 마이크로 마을이라면, 타임스센터는 마이크로 도시라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항저우프리즘 프로젝트›, 사진. Xia Zhi Courtesy of OMA
‹항저우프리즘 프로젝트›, 사진. Xia Zhi Courtesy of OMA
‹CMG타임스센터›, Courtesy of OMA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벽에 세우게 될 OMA의 미래지향적인 호텔 설계도가 SNS에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 레이자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요?
크리스: 레이자 프로젝트를 왕세자에게 두 차례 보고했고, 디자인을 승인받은 만큼 서로의 프로젝트 진행 의사는 확고합니다. 하지만 현재 설계 단계라 구체적 완공 일정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일부는 일시 중단 상태죠. 원래는 2029년 이전에 완공할 계획이었는데, 반가운 소식은 조금 더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SNS에서 화제를 모은 ‹레이자 프로젝트› 이미지, Courtesy of OMA
지난 9월 부산국제건축제(BAF)에서 열린 OMA 특별전과 강연과 관련해 설명해 주세요. 한국에서 열린 첫 전시였지요?
크리스: 지난 1년간 우리 팀이 부산에서 진행해 온 작업 일부를 소개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우리는 서울에서 25년 넘게 작업해 왔지만, 주로 인천, 광교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지난 12개월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부산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일부는 건축 프로젝트이고 나머지는 공공공간 디자인입니다.
특히 그중 하나는 부산의 산간 주택지를 위한 마스터플랜 프로토타입이지요. 부산은 6.25전쟁 이후 오래된 도심 주변 경사지에 비공식 정착지(판잣집)가 형성되어 점차 마을로 발전한 독특한 조건을 지니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의 흥미로운 점은 지방정부로부터 단순한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이 같은 독특한 지형을 기존의 주거 타워로만 사용하지 않고 고밀도로 재개발할 전략이나 접근법을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층 대신 저층을 선택하면서도 한국인의 주거 단위 수요를 충족하는 마스터플랜을 개발했습니다. 부산의 주거 시장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도입해 부산의 다른 지역도 같은 접근법을 따를 수 있다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어요.
«OMA 특별전», 부산국제건축제(BAF), 2025
건축가로서 항상 세계를 여행하는 삶이 특별해 보입니다. 건축가로서 삶은 행복하나요? 건축가로서 고정관념에 사로 잡히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크리스: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문화 속에서 일하며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죠.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중요한 직업이기 때문에 협업에서 많은 에너지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두 번째 좋은 점은 우리는 건축을 단순히 ‘건물’로만 정의하지 않고, 마스터플랜, 공공공간 디자인, 조경, 인테리어, 전시 디자인, 큐레이션, 연구, 출판 등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포함한다는 점이죠.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기에 고정관념에 갇히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아시아의 건축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아시아와 차이가 있는 세계적인 건축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크리스: 앞서 언급했듯이 부산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한국의 인구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동안 도시계획은 지속적 도시화와 주거, 사무실, 기타 건물의 수요를 기반으로 도시 확장에만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다는 점을 깨달은 거죠. 부산은 ‘확장(More)’이 더는 현실이 아니라 전환점에 도달했어요. 또한 마스터플랜과 건축 분야가 확장의 반대 개념인 ‘수축’을 위한 도구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알게 되었지요. 지금까지도 우리는 인구가 매우 빠르게 감소하는 도시를 어떻게 계획할지 적극적으로 고려한 한국 내 마스터플랜 사례를 규모와 상관없이 찾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부산 인구는 2025년 약 3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회 변화를 대비한 경제 부문 정책 등이 개발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마스터플랜 산업은 침묵하는 상태죠. 이 주제는 기후변화와 같은 수준의 중요성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이 이 분야에서 특히 돋보이고 있는데, 많은 다른 나라도 곧 비슷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봅니다.
OMA 홈페이지 메인 화면 속 부산의 산간 주택지 전경
많은 이들이 건축의 지속가능성과 친환경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미래의 건축은 어떻게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크리스: 이 주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의제에 올라왔지만, 아시아의 건설산업에서 반영은 느리게 진행되고 있어요.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 생각의 기준은 훨씬 더 진지하고 높아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현재 규제의 초점은 주로 에너지에 맞춰져 있고, 창의성과 혁신을 자극하는 새로운 해결책은 고려되지 않고 있어요. 예를 들면 신축 프로젝트에는 태양광 패널(PV 셀)을 통합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항이 요구됩니다. 최소한의 태양광 패널 설치량은 ‘전형적’ 건물의 예상 에너지 소비량의 일정 비율로 정해져 있는데, 이것은 좋은 전략인 것처럼 들리지만 해당 규정은 특정 프로젝트의 실제 에너지 성능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자한 프로젝트도 극히 비효율적인 프로젝트와 동일한 양의 패널 설치를 요구받을 수 있는 것이죠. 심지어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는 북쪽 외벽에 패널을 설치해도 승인될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언젠가 꼭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요?
크리스: 요즘 도시와 상업 프로그램 관련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어요.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의 공중화장실 같은 작은 프로젝트부터 CBD(중심업무지구)에 위치한 대형 복합 용도 타워까지 다양한 프로젝트 참여가 즐겁습니다. 하지만 건축 설계 그 자체보다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더 큰 개발에 호기심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인구구조 변화라는 주제와 관련한 정부기관, 문화기관, 학교, 민간단체와 함께 연구 프로젝트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조사하고 있고, 인구구조 변화가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렇듯 경제를 변화시키고 젊은 세대가 한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인구 관련 정책이 개발되고 있으나 이것이 물리적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국가나 도시 차원의 마스터플랜은 아직 없어요. 앞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도시 확장 계획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말이죠. 특히 초고령사회에 해당하는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그렇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한국은 적응하고 변화하는 혁신적 국가이며, 리드하는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주제를 연구하고 도시와 지역이 미래 시나리오에 대비해 어떻게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 전략을 개발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 될 것입니다.
Writer
이소영(@soyoung_lee_art)은 문화 전문 기자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스타일 H», «더 갤러리아»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여러 매체에 기사를 쓰고 있다. 『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전통 혼례』의 저자이며, 『와인과 사람』,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 등을 기획, 편집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의 개관 콘텐츠를 총괄했고, CJ ENM과 함께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시즌 그리팅 굿즈를 만들었다.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한류여행안내서 Person:able SEOUL』을 출간하기도 했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작품을 건 니키리와 미술과 접촉했지만 지금은 에세이스트인 임지은은 친구 사이입니다. 두 사람은 대화가 통한다는 안도와 믿음으로 맺어져 있죠. 이들의 우정과 사랑 일부는 『애정 행각』이라는 책 한 권으로 가시화되었습니다. “좋은 아트는 shit이야.”, “나는 네 그림 별로야.”, “재수 없지만 성공하고 나서 공허해졌습니다.”, “모두가 조금은 개박살 나봐야 돼.” 이렇게 못된 말을 스스럼없이 뱉어내지만 이것 또한 이들의 애정 행각입니다. 임지은은 니키리가 ‘챙긴다는 말만 하지 않고 그대로 움직여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봤고, 니키리는 그 말에 ‘나는 애정 행각을 벌이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응수합니다. 확신하고 현재에 집중하는 이와 의심하고 과거를 곱씹는 이. 이처럼 다른 두 사람이 깨지고 무너지며 서로를 넘어 그 밖의 감각을 새로 입습니다. 예술로 시작해 죽음에까지 다다르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박의령 디렉터가 말을 걸어봤습니다.
니키리와 임지은, 서로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우정을 조용히 되짚는 오후
책의 프롤로그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날의 상황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요. 특히 임지은 작가의 기대와 두려움, 호기심이 생생하게 드러나요. ‘유명인’ 니키리의 ‘간택’ 같은 것이었죠.(웃음)
임지은: 그때의 전 아직 작가도 무엇도 아닌 상태, 첫 책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그래서 되게 불안했고, 내 삶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런 상태에서 굉장히 명확한 사람을 만났으니….(웃음)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정말 튀는 차 한 대가 저한테 미끄러져 오는데 보나마나 저 차 안에 니키가 타고 있을 거라고 직감했어요. 여하튼 그날 모든 것이 범상치 않았어요. 저도 미술을 전공하면서 허영심을 가지고 예술계를 바라본 기간이 있었고, 주변 친구들이 예술계에 몸담으면서 알게 된 위계라는 감각에도 꽤 익숙하거든요. 니키한테는 그런 느낌이 묘하게도 없었어요. 그래서 보자마자 반말을 하라는 말에 따라 바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니키리: 간택? 그 말 재미있는데요. 제가 지은이에게 SNS로 메시지를 날린 이유는 글을 잘 써서예요. 그 당시에는 그런 글을 쓰기엔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용기 있는 친구들을 제가 좋아하니까 친구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연락했죠. 글만으로도 대화가 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겠다를 느낄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친구가 제일 재미있어요.
임지은: 나한테 흥미를 보였으니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쉬지 않고 얘기했어요. 태오 형부까지 셋이서 저녁을 먹다가 급기야 펑펑 울어버렸어요. 아, 창피하다. 이제는 다시 볼 일이 없겠구나 했는데, 두 사람은 커버 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 줬어요. 그날 이후 몇 년을 고쳐 지금까지 왔네요.
니키리와 임지은, 각자의 결이 선명하지만 서로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니키리의 이야기가 책 형태로 나오길 바라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이런 형태일 줄 몰랐죠. 소제목을 두고 대화로 이어지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남의 대화를 듣는 일이 저한테만 흥미로운 건 아닐 거예요.
니키리: 지금까지 정말 많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고, 제가 글 쓰는 걸 싫어하지는 않아요. 근데 게을러서…. 책을 내려면 많은 인내와 강박감, 마감이 이어지죠. 주저했던 이유가 몇 가지 더 있는데, 하나는 또 의외로 순수문학에 관한 어떤 경외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개나 소나인 내가 책을 내도 되겠나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두 번째는 매력을 지닌 책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그래서 한 80이나 90살 넘어서 책 쓰는 데만 올인해서 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럼에도 이번에 책을 내게 된 건 지은이랑 같이 책을 내면 일단 지은이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은이는 책을 4권이나 낸 작가지만 그래도 대중적인 인지도는 제가 조금 더 있으니까, 서로 좋지 않을까. 지은이는 내 이름값을 이용하고 게으른 나는 지은이의 글쓰기를 이용하고….(웃음)
임지은: 서로 이야기하면 재미있겠다가 저희에게 주어진 전부였어요. 무슨 얘기를 해도 된대요. 근데 그게 사실 제일 어렵잖아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니키는 아트를 하는 사람인데 아트 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재미없는 얘기는 안 해요. 그래서 글을 쓰는 제가 저 사람이 재미있어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대화가 성립이 안 되는 거죠. 저쪽에서 재미있어하는 건 뭘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유의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뭘까를 찾아가다 나온 것들이에요. 2년 동안 쌓인 녹취록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그 안에서 재밌다고 느끼는 부분은 둘 다 동일했어요. 언어적인 것 외에도 서로 얘기한 날의 어떤 시그널까지 포함해서 추린 이야기들이죠.
아티스트는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노화와 죽음에까지 이어져요. 활짝 펼쳐진 대화 안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건 니키리가 새롭게 시작하는 일, 즉 페인팅이라는 행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의 대립이 프라이팬 밖으로 튀어 오르는 삼겹살 기름처럼 팍팍 터지는데….(웃음)
니키리: 지은이는 사람들에게 참 다정해요. 어떤 얘기를 할 때 먼저 나의 기분을 살피고 좋은 얘기를 먼저 하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솔직한 반응을 끌어내려면 약간 페이크를 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내 페인팅이 아니라 어떤 흑인의 페인트인데 네가 보기에는 어떤 거 같아? 그랬더니 조악하다는 대답이 나왔죠. 아, 역시 지은이가 페인트를 못 보는구나….
임지은: 항상 이런 식이에요. 나 빼고는 현역 작가랑 관계자들한테 물어봐 놓고. 근데 왜 내 대답을 듣고 싶었는지 그건 좀 궁금하네요. 여기서 들어봅시다.
니키리: 나랑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잖아. 임지은: 제가 그런 건 있어요. 남한테 싫은 소리를 진짜 못하면서 동시에 싫은 소리가 안에 생기면 그걸 없애지도 못해요. 결국은 말을 꺼내야만 해서 어릴 때 왕따도 당하고, 회사 생활도 못 했어요. 그림과 관련한 연락을 받았던 순간이 기억나요. 정자동 주공아파트 4단지 앞에 매미가 울고 있었고, 혹시 니키가 그린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순간 스쳤어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하면 니키한테 정말 중요한 일일 테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두 창작자는 주변 사람에게 작품을 먼저 보여주고 의견을 얻는 스타일인가요? 그 의견에서 영향을 받나요?
니키리: 제 작업을 두고 누구에게도 묻지 않아요. 물어본 적도 없어요. 좋은 작업이란 확신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알아서 했어요. 근데 페인트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물어봤어요. 그리고 또 깨달았죠. 나는 페인터구나. 얼마나 빨리 자신감을 되찾았냐면 처음에 요만하게 그렸거든요. 그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고민하고 난리를 친 거야. 그리고 두 번째 50호, 세 번째 100호로 넘어갔어요. 그 후로는 계속 100호를 그리면 되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단 세 단계만에….
임지은: 누구에게도 안 보여주고 혼자 퇴고를 진짜 많이 해요. 얼마 전 한 편집자님을 만났는데 건드릴 게 없다고 했어요. 이 정도면은 내가 됐다. 할 말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때 내놔요.
임지은
니키리
책을 펴자마자 “모두가 아티스트인 건 싫은 거잖아”라는 말이 나와요. 음악도 DIY, 매거진도 개인 매체, 모두가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시대인데 말이죠. ‘아티스트의 자질’은 어디서 드러난다고 생각하나요.
임지은: 작품에 고민이 녹아 있는 사람과 녹아 있지 않은 사람의 결과물은 너무 다른 것 같아요. 자의식만 가지고 ‘아트’라고 말하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아요. 고민과 자의식이 만나면 무조건 불화하는 순간이 생겨요. 그 과정을 거친 사람은 논리적이 아니더라도 느낌으로 나오고, 그것이 결국 ‘아우라’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매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결정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로열티’와도 같이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둘 다 ‘올라운더’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니키리: 페인터에 국한 지어 이야기할 게요. 그러니까 저는 라이터는 라이터, 액터는 액터라고 말했으면 좋을 사람이에요. 라이터인데 아티스틱하고 액터인데 아티스틱 할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그 모두가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건 별로인 것 같아요. 클래식하게 페인터를 아티스트라고 지칭하는 직업의 이름을 가져가길 바라는 거죠.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불러주면 좋겠어요.
니키리는 단지 사진으로 먼저 알려지고 분류되었을 뿐 아티스트라는 확신을 가졌으며 심지어 ‘아티스트로 살다가는 인생 조질 것 같다는 예감’을 어릴 적부터 느꼈다고 했어요.
니키리: 일단 돈을 많이 못 벌 것 같고 먹고사는 게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그 시절만 해도 어두운 작업실에 갇혀서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미지가 있었던 거죠. 나는 예쁜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싶었는데 큰일 나겠다. 무조건 이 길을 피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도망가려고 무지 애를 썼어요. 그렇다면 끼를 방출할 수 있는 연기를 해볼까 생각했지만 집에서 반대했고, 패션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결국 감각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저랑 안 어울렸어요. 본질에 더 깊이 들어가야 인생이 해소된다는 걸 느꼈거든요. 결국 도망가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거죠.
니키리, 많은 선택을 거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품었다.
임지은, 의심하고 되돌아본 시간이 글이 되었다.
반면에 임지은 작가는 의심하고 되돌아보는 사람이죠. 미술을 전공했지만 자신은 미술가가 될 수 없다는 건조한 사실 확인을 거친 에세이스트.
임지은: 예중, 예고를 거쳐 미술을 전공했고 성적도 좋았어요. 주변에서 다 제가 미술 작가가 될 줄 알았어요. 지금도 정물을 두고 똑같이 그리라고 하면 아마 똑같이 그려낼 거예요. 근데 그거 이상은 안 되는데 주변에서 자꾸 뭐가 되겠다고 말할 정도면 제가 행세를 잘한 거죠. 행세를 할수록 사람은 불안해요. 숨기고 척하는 거니까. 그러다 끓어 넘쳤어요. 어릴 때부터 입시를 겪고 입시 미술 강사를 하면서 합격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거라는 마인드를 주입하고 나 또한 세뇌당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그 인생을 사느라 가족을 개고생시켰는데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네. 미술을 포기하고 나서 승무원 준비도 해 보고, 패션회사 인턴도 했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오래 방황했어요. 그 기간에 뭘 했냐면 그래도 계속 뭔가를 쓰고 있었어요.
서로 속도나 방식은 달랐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히 짚고 간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보여요. 서로 달라서 질투한 적도 있을까요?
니키리: 절대 없어요. 가끔 얘 기분 좋으라고, 미모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도 아니야. 관심 없어요.(웃음) 저는 항상 남이 잘되면 좋을 것 같아서 퍼주는 타입이라 질투라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요. 임지은: 니키는 추진력 있는 스타일이고 저는 머뭇거리는 스타일이라, 저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은 해요. 그렇지만 내 성격을 못 바꾸는 거니까 잠시 생각만 해보고 말아요. 결론은 되게 심플해요.
못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 좋은 것보다 싫은 게 같을 때 얘기가 더 잘 통하는 법이라고 믿고 있는데요. 두 사람의 대화와 우정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동기는 뭘까요?
니키리: 우리가 죽이 잘 맞는 건 다른 이들은 캐치 못한 섬세한 감정이 일었을 때 서로 그 부분을 알아듣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서로 알아먹을 거라는 믿음.
임지은: 예를 들면 ‘예’, ‘아니요’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니키는 스트레스를 받아요.(웃음) 서로가 모르는 부분에서는 주제 자체를 안 꺼내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나눌 얘기가 있으니까요. 니키리: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 리 감독의 새 영화가 나왔어요. 지은이한테는 같이 보러 가자고도 안 하고 감독에 관한 얘기도 하지 않아요. 누구인지 다 설명해 줘야 하는데 귀찮은 건 질색팔색이거든요. 저도 소설을 잘 안 읽어요. 그러니까 지은이도 저랑은 소설 얘기 안 해요. 다만 요즘 소설 내용이 왜 이래? 내 감정 소중해. 스무 살이 왜 어른을 찾아? 네가 어른인데. 이런 얘기를 나누는 거죠.(웃음)
너무 열심히 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최선의 유예, 퇴로를 두는 것에 관한 대화가 나와요. 솔직하게 말하는 게 힘들 때가 있거든요.
임지은: 저는 거의 뭐 노출증 환자죠.(웃음) 아직도 북토크를 할 때 떨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저는 그냥 떨린다고 말해요. 말하고 나면 떨림이 좀 가셔요. 솔직히 말하는 사람에게 조금 더 관대할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저 또한 제가 진짜 싫어하는 사람도 궁지에 몰리면 그 사람을 내버려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타인이 수치스럽거나 창피한 상황일 때 내가 그 사람이 싫어도 그때는 물러나야 한다고 가족한테 배우고 이해 받으면서 자랐어요.
표지를 통해 니키리의 그림을 볼 수 있네요. 이건 어떤 그림인가요?
니키리: 두 번째 작품이네요. 50호 그림을 확대한 거고, 겉표지를 벗기면 안에 오리지널 그림이 나와요. 그걸 잘라서 태오가 디자인했어요.
임지은: 저는 제 일이 아니면 다 미뤄둬요. 나는 글 쓰는 걸로 끝났다. 전문가가 알아서 하겠지.(웃음)
니키리: 요즘 하나도 안 그리고 있죠. 네 번째 그림을 그리려고 신이 날 즈음 엔터회사를 차린 거예요. 사무실에 아틀리에를 만들었고, 출근하면서 틈틈이 그리려고 했는데 막상 해 보려니 안 되더라고요. 지금은 일단 회사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중이에요. 내년에 이사가면서 작업실을 따로 만들 예정이고요, 지금 새로운 걸 접하는 동안 실제로 붓을 들진 않지만 그림을 그리는 기간인 것 같아요.
매일을 재미있게 사는 것,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 니키리의 작품 역시 현실에 발 닿아 있어요. ‹파츠›, ‹신즈› 시리즈와 영화 ‹니키라고도 알려진› 조차도.
니키리: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라고 정해 놓은 게 없어요. ‹파츠›는 공부하듯이 콘셉트를 척척 쌓아갔다면, ‹신즈›는 접근법이 굉장히 달랐어요. 예술가로서 본질적 감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시작했던 작업이라 어렵고 무서운 감정도 느꼈었죠. 앞으로 하겠다는 작업 또한 정해 놓은 건 없어요. 내 삶이 달라지듯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거죠.
많은 예술가가 고향에서 영향을 받곤 해요. 니키리에게 뉴욕이라는 또다른 고향이 있었지만 이제 나는 거기에 없다고도 말했죠.
니키리: 과거에는 어떤 감정도 없어요. 당시의 경험이 내 몸을 돌아다니며 현재를 이루고 있지만 지나간 과거에 감정을 소비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치열한 사랑을 했다면 그걸로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지금 없고 나도 과거에 없어요. 비효율적인 게 싫어요. 이게 나의 철학이라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요. 그 노력이 쌓인 게 나의 습관이 되었고 그래서 현재를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향락과 비관을 모르면 예술을 할 수 없다는 믿음도 있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피폐해진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점점 구도의 길을 걷기도 해요. 제 주변만 봐도 술, 담배 끊고 명상하고 차 마시더라고요.(웃음)
니키리: 조금 다른 얘기지만 지금 제일 친한 친구가 스무 살이거든요. 이제 20대 아니면 말이 안 통해요. 30대도 좀 답답해요. 내가 놀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이 나랑 놀고 싶어해요. 그러려면 쿨해야 해요. 멋진 옷 입고 외모도 멋지게. 멘토한테는 고민을 버리는 거고 노는 거랑은 달라요.
임지은: 아까도 말했지만 니키는 상대의 반응 속도가 떨어지면 스트레스 받아요. 이제는 땀도 늦게 흘린다고 뭐라고 할 거 같다니까요.(웃음)
니키리: 템포가 빨라야 하는데 또래는 걸음도 느려요.(웃음)
그렇다면 최근 가장 흥미로운 건 무엇인가요?
니키리: 신인 배우 발굴. 회사에 여자 신인 한 명을 뽑았고, 눈에 들어오는 남자 신인이 한 명 있어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운명을 믿어요. 나한테만 보이는 날것을 뽑아서 흙을 탁탁 털어내면 빛날 것 같은. 또 유태오 배우의 커리어가 해외를 향하고 있는데, 옆에서 함께 그 길을 개척하고 있어요. 할리우드 시스템을 경험하면서 디깅하는 재미가 있어요. 임지은: 저는 호두랑만 놀아서…. 호두는 제 반려견입니다.
여전히 두 사람의 대화는 즐거운가요? 가장 잦은 대화 주제가 궁금해요.
임지은: 맛집! 니키의 지도를 보면 별천지예요. 거의 우주급.
니키리: 너무 많아서 구 단위로 얘기해야 돼요. 여기가 광화문이라 근처에는 디 타워 모던샤브하우스를 좋아해요. 클래식하고 대중적인 맛에 조명도 너무 좋고….
니키리와 임지은
마지막으로 책 얘기로 다시 돌아 갈게요. 『애정 행각』의 가장 큰 재미는 실제 예술가와 예술의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꿈꾸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시선으로 읽을 것이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전혀 공감하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점까지도요.
임지은: 되게 중요한 부분을 짚어 주신 것 같아요. 그걸 또 되게 원했어요. 굉장히 어려울 수도, 굉장히 쉬울 수도, 굉장히 재미있을 수도, 굉장히 재미없을 수도, 굉장히 가벼울 수도, 굉장히 무거울 수도 있다는 것. 책이 많이 팔리면 좋으니까 친절하게 잘 깎고 다듬을 수도 있는데, 편집하는 과정이나 내용을 취사 선별하는 과정에서 둘 다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이런 생각으로 책을 쓸 수도 있다는 걸, 이런 책이 나와도 괜찮다는 걸 해 보고 싶었어요. 거슬릴 걸 알면서도 뱉어도 보고, 신나게 까이면 까여도 보고….
Artist
니키리(@nikkislee)는 예술가다. 작업으로 ‹프로젝트›, ‹파츠›, ‹레이어스›, ‹신즈›가 있으며 영화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으로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받았다.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에 짧은 글을 썼다.
임지은(@uncommon__j)은 에세이스트다.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결같이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사람이라는 단어가 구겨지면 ‘삶’이라는 단어가 생겨난다고 여긴다.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헤아림의 조각들』, 『연중무휴의 사랑』, 공저 『우리 둘이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를 썼다.
Editor & Photographer
박의령(@youryung)은 ‹나일론›,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하퍼스 바자›에서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사람을 만나고 장소를 둘러보며 글을 쓴다. 사진집 ‹75A›를 작업했고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찍으려고 한다.
MCM은 늘 패션을 넘어서 조금은 엉뚱한 상상까지 탐험해 왔습니다. 2021년부터 이어진 BE@RBRICK과 진행한 협업도 그런 맥락이었죠. 그리고 이번 서울 프리즈 위크, 청담동 한가운데 자리한 MCM HAUS가 드디어 BE@RBRICK 전시로 문을 열었어요. 첫 시도라 그런지 공간부터 분위기까지 묘하게 설레는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400년 전통을 이어온 장인 브랜드 인덴야, 오트 쿠튀르를 무대 밖으로 확장해 온 노부키 히즈메, 그리고 아이의 옷에서 출발한 기억을 작품으로 풀어낸 켄 야시키까지, 세 창작자가 BE@RBRICK을 각자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전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배경들이 한공간에서 부딪히고 어울리는 풍경은 그야말로 MCM이 지향하던 상상의 무대라고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 만남이 결국 ‘MCM’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에요. 전통과 현대, 개인적인 서사와 보편적인 감각, 장인의 손길과 대량생산의 시스템이 모순처럼 보이면서도 기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순간, 그걸 직접 체험하는 일은 꽤 낯설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전 세계 팬들을 위해 준비된 세 가지 한정판 아이템이 현장에서 깜짝 공개되는 이벤트까지! 이번 프로젝트는 MCM이 단순히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놀라움과 설렘을 나누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 전시였어요. 이 무대를 꾸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네 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BE@RBRICK을 이끌어온 CEO와 진행한 인터뷰까지 더해 MCM과 BE@RBRICK의 새로운 상상을 함께 그려낸 장인과 창작자들의 솔직한 목소리, 그들이 만들어 낸 특별한 풍경을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BE@RBRICK in MCM Wonderland’ 파사드 전경, 서울 청담 MCM 하우스
건물 꼭대기에서 꼬냑 컬러 BE@RBRICK이 인사를 건네듯 내려다보는 풍경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건 노부키 히즈메의 쇼윈도였어요. 오트 쿠튀르 모자를 하나씩 쓴 BE@RBRICK들이 런웨이 모델처럼 늘어서 있는데, 그 자태가 우스꽝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우아하고 기묘하게 당당했죠. 그 앞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풍기는 작가님께 다가가 이번 전시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BE@RBRICK in MCM Wonderland’ 쇼윈도 전경
프랑스 최고 장인(MOF)으로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트 쿠튀르 헤드피스를 만들어 오셨죠. 대량생산의 아이콘인 BE@RBRICK을 캔버스로 삼으면서 어떤 지점에서 창의적인 시너지 효과를 도출하셨을지 궁금해요.
오트 쿠튀르는 단 하나뿐인 작업이고, BE@RBRICK은 장르를 넘어 디자이너들이 선망하는 아이콘이에요. 이번 협업을 통해 오트 쿠튀르의 섬세함이 새로운 형식 안에서도 이어지고, 또 다른 방식으로 전해지길 바랐습니다. 저는 오트 쿠튀르 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대량 생산을 위한 디자인을 해요. 결국 디자이너니까요. 이번에 BE@RBRICK을 모자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제 영역과 결합해 새롭게 풀어내면서, 디자이너로서 꿈이 현실이 된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설렘과 열망 덕분에 이번 프로젝트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어요.
노부키 히즈메 디자이너
이번 프로젝트에서 BE@RBRICK에 올려진 모자들은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기준이나 고려를 통해 모자를 선택하셨는지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 브랜드 HIZUME의 ‘Olympia Red’를 출발점으로 삼아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그 작품을 모티브로 BE@RBRICK의 형태에 맞게 조정하여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Olympia Red’를 BE@RBRICK과 융합하고 재해석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착용하지 않더라도 선생님의 모자는 그 자체로 완벽한 예술 작품처럼 보입니다. 모자를 패션 아이템으로 접근하시나요, 아니면 예술 작품으로 접근하시나요?
이런 관점은 제가 일본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감각에서 비롯된 거예요. 저는 제 모자를 기모노와 비슷한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기모노는 입기 위한 옷이지만, 때로는 벗어두었을 때 회화나 예술 오브제처럼 전시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생각이 늘 제 작업 바탕에 자리하고 있어요. 제가 만든 모자가 실제로 쓰이는 것도 좋지만, 동시에 쓰이지 않을 때도 하나의 오브제로서 아름답게 남았으면 합니다. 늘 이렇게 두 가지 면을 함께 고려하죠.
‘BE@RBRICK in MCM Wonderland’ 쇼윈도 전경
‘BE@RBRICK in MCM Wonderland’ 쇼윈도 전경
이번 전시에서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의 교차점이라는 주제를 탐구했다고 언급하셨는데,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어떤 것을 느끼고 가시길 기대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제 작업에서 감동이나 영감을 느낀다면 물론 기쁘죠. 하지만 누군가 불편함이나 낯섦을 느낀다 해도 그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저는 독특한 범주나 감각에 속하는 작업은 본래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봐요. 관람객이 평소의 인식이 잠시 멈추거나 흔들리는 순간을 경험하길 바라기도 해요. 관객 안에서 오래된 감각이 흔들리고 새로운 시선이 자리 잡는 순간이 온다면, 그걸로 제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BE@RBRICK in MCM Wonderland’ 1층 전경
협업 과정에서 MCM의 브랜드 철학이나 BE@RBRICK의 형태도 이번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죠. BE@RBRICK의 형태는 그 자체로 상징적이고,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죠. MCM도 마찬가지예요. 모노그램만 봐도 어떤 오브제 위에 있든 즉시 브랜드가 떠오르니까요. 저는 그 정도의 디자인이야말로 하나의 완벽함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강렬하고 보편적인 시각적 정체성을 지닌 두 브랜드와 협업할 수 있다는 건 디자이너로서 무척 매력적인 경험이었어요.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게 디자인에서 아주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MCM 그리고 BE@RBRICK과 협업하며 작가님의 작업 세계에 어떤 영감을 주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이번 경험은 제 작업 방식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프로젝트에 어떻게 접근할지, 무엇을 만들지 그리고 어떤 길이 가장 나은 선택일지를 스스로에게 계속 묻게 했죠. 그런 점에서 이번 협업은 제게 새로운 창작의 관점을 열어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BE@RBRICK in MCM Wonderland’ 1층 미러룸 전경
‘BE@RBRICK in MCM Wonderland’ 1층 미러룸 전경
1층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분홍빛 조명이 은은하게 퍼지는 3층에는 꽃밭이 펼쳐져 있었어요. 코스모스가 흩뿌려진 정원에서 거대한 BE@RBRICK이 관객을 맞이하고 있고요. 벽면 가득 펼쳐진 ‹PAUSE-Usa Usa› 패턴 속 얼굴들이 속닥대며 인사라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그 중심에서 켄 야시키 작가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수염이 멋스러운 얼굴에 환한 미소까지 더해지니 작품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듯한 인상이었죠.
‘BE@RBRICK in MCM Wonderland’ 3층 COSMOS IN BLOOM 전시 전경
선생님의 작업은 개인의 기억이 담긴 직물을 활용한 ‘키메코미(Kimekomi)’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전시 프로젝트에서 담아내고자 한 기억과 감정은 무엇인가요?
2016년 작업 ‹PAUSE-Usa Usa› 는 아이가 0세부터 2세까지 입었던 옷으로 제작했어요. 그런데 이번 신작에는 지난 10년 동안 자라는 아이와 함께해 온 옷을 사용했습니다. 제게 키메코미 기법은 ‘희망과 소망이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사용한 옷은 아이와 함께한 시간과 일상 속에 쌓인 기억이 그대로 배어 있죠. 그래서 이번 작품에는 그 세월을 감사하는 마음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삶을 경외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PAUSE –Usa Usa›, 톱밥, 아이들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 발포 스티로폼, 인조 속눈썹, 162 × 162 cm
켄 야시키 작가
선생님의 2016년 작품 ‹PAUSE-Usa Usa›를 바탕으로 한 BE@RBRICK이 제작될 예정입니다. 이 패턴에 담긴 개인적인 서사가 MCM과 BE@RBRICK이라는 새로운 맥락과 만날 때 어떻게 확장된다고 생각하시나요?
‹PAUSE-Usa Usa›는 제 아이의 옷에서 출발한 아주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 협업을 통해 그 이야기가 MCM과 BE@RBRICK이라는 보편적인 언어와 만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계라는 한정된 울타리를 넘어 일상의 경험과 감정을 다양한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죠. 그런 점에서 이번 확장은 제게도 무척 의미 있는 경험입니다.
MCM HAUS 3층 전시 공간은 ‘COSMOS IN BLOOM – 감정과 정체성이 꽃피는 정원’이라는 주제로 꾸며졌습니다. 이 ‘감각의 정원’에서 관람객이 어떤 경험을 하길 바라시나요?
좋아하는 옷을 입을 때 가장 솔직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옷을 만드는 사람 역시 누군가의 삶에 색을 더하기 위해 창작하죠. 이번 작업을 통해 모든 사람이 개인과 사회를 잇는 소망의 사슬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전통적인 키메코미 기법을 현대미술에 적용한 데 이어 이번에는 그것을 팝 아이콘 BE@RBRICK과 결합하셨습니다. 과거의 기법과 현재의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어떤 창작적 가능성을 발견하셨나요?
인간의 본질에는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봐요.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의식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간극 속에서 지금 이 시대만의 색채와 감각이 드러납니다. 키메코미 같은 전통 기법이 BE@RBRICK과 만나자,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저는 창작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층에 들어서면 MCM 원단과 전통 키메코미 기법으로 완성된 화려한 MCM 로고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Usa Usa’ 패턴이 아닌 MCM 로고를 선택한 이유와, 그 디자인이 이번 협업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시나요?
‘Usa Usa’ 패턴 대신 MCM 로고를 적용한 건 MCM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각각의 잎사귀와 깃털, 세부 요소를 다채롭고 개별적으로 표현해, 그것들이 모였을 때 하나의 집합적인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BE@RBRICK의 상징적인 형태와 만나 두 브랜드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결과물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패션업계 경험이 현재의 예술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옷을 ‘재료’로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도 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패션 업계에서 일한 경험은 제 작업에 크게 영향을 주었어요. 그때부터 옷을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다룰 수 있는 재료로 바라보게 되었죠. 기술적인 배움은 물론이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어온 교류가 지금의 예술 활동에도 이어져 제 관점을 넓혀주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BE@RBRICK in MCM Wonderland’ 3층 COSMOS IN BLOOM 전경
화사한 정원을 지나 5층으로 이동하자 공기의 결이 다시 한번 달라졌습니다. 안개가 깔린 숲이 눈앞에 드러나고, 사슴 조각상과 나무가 고요히 서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도심을 벗어나 새벽 숲 한가운데 들어선 듯한 기분이었죠. 이곳은 4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인덴야의 세계였습니다.
옆에서는 장인들이 사슴가죽에 옻칠 무늬를 새기는 전통 기법인 고슈 인덴을 시연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인덴야 대표님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기운을 풍기는 모습에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청하고 싶어졌습니다.
‘BE@RBRICK in MCM Wonderland’ 5층 인덴야 전시 전경
1582년부터 이어 온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죠. 인덴야가 수백 년간 지켜낸 전통 공예 기법 고슈 인덴을 현대 대중문화의 상징인 BE@RBRICK에 적용하는 과정은 큰 도전이었을텐데요, 협업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BE@RBRICK은 예술과 대중문화를 절묘하게 잇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브랜드예요. 전 세계의 다양한 캐릭터와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아왔죠. 이번 협업은 인덴야의 전통과 BE@RBRICK의 팝 아트적 감각이 만나는 또 하나의 융합이에요. 전통과 혁신이 맞닿는 도전이자, 이를 통해 BE@RBRICK이 이전에는 없었던 인덴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고 느껴요. 신선함이라는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거라 생각하고, 인덴야를 잘 알지 못했던 분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전통 가죽공예 기법 고슈 인덴을 시연 중인 인덴야의 장인
MCM의 모노그램과 인덴야의 전통 옻칠 모티프 둘 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고유한 패턴 언어라는 점이 재미있어요. 두 개의 다른 패턴이 BE@RBRICK이라는 하나의 형태 위에서 만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MCM과 BE@RBRICK은 각각 분명한 세계를 지니고 있어요. MCM 로고의 월계수 잎은 승리와 명예를 상징하며, 저에게는 특히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추구하고, 존경을 바탕으로 브랜드로써 승리를 지향하는 인덴야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이번 협업을 통해 MCM과 인덴야가 BE@RBRICK이라는 단일 형식 안에서 만나며, 서로를 비추어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해요. 고슈 인덴 기법으로 표현된 월계수 잎이 BE@RBRICK 위에 더해지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특별한 피규어가 탄생했죠. BE@RBRICK이 지닌 대중성과 지속성 덕분에 이런 시너지 효과가 세대를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스며들 거라 믿습니다.
고슈 인덴 기법을 활용한 1000% BE@RBRICK 제작 과정
‘BE@RBRICK in MCM Wonderland’ 5층 인덴야 전시 전경
‘BE@RBRICK in MCM Wonderland’ 5층 인덴야 전시 전경
이번 협업이 인덴야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시도처럼 보입니다. 어떤 계기로 도전에 나서게 되었는지, 내부에서는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첫 반응은 솔직히 놀라움이었어요. “정말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BE@RBRICK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컬렉터를 지닌 유명한 브랜드이고, MCM 역시 글로벌 브랜드니까요. 그런 자리에서 인덴야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이자 영광이죠.
하지만 참여를 결정한 순간부터 이번 협업은 인덴야답게 최상의 사슴가죽과 옻칠로 완성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어요. 물론 과정은 무척 까다로웠지만, IVXJAPAN의 도움 덕분에 가죽이 아름답게 구현될 수 있었고, 그 결과 웅장한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직원 모두가 힘을 모아 제작한 작품인 만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결과예요.
5층 전시 공간은 ‘새벽의 신비로운 숲’으로 연출되어 전통과 기술,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이 공간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셨나요?
전하고 싶었던 건 전통과 기술, 과거와 현재가 서로 어우러질 때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능성이었어요. 서로 다른 두 요소가 공존하는 순간은 흔치 않지만, 그 안에서 차분함과 설렘이 동시에 생겨나죠. 우리는 그 긴장과 조화가 만들어 내는 울림을 관람객이 직접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고슈 인덴 기법을 활용한 1000% BE@RBRICK 제작 과정
헤리티지는 럭셔리 브랜드의 핵심 자산이죠, MCM 측에서 인덴야와의 협업은 꽤나 큰 의미가 될 것 같은데요, 반대로 인덴야 측에서 이번 협업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MCM의 헤리티지는 인덴야가 공유하는 자산이기도 해요. 놀라운 건 MCM이 전통을 지키면서도 늘 새로운 세대와 연결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점이에요.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과 현대를 융합해 브랜드를 성장시켜 온 셈이죠. 저희 역시 같은 마음으로 전통에 혁신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자 하고, 그런 공통된 비전이 있었기에 이번 협업이 더욱 의미 깊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배운 것도 많습니다. 아직 작은 회사지만, 글로벌 브랜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직접 보고 들은 건 무척 귀중한 경험이었어요. 세계적인 브랜드를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고, 그걸 한 단계 더 끌어올리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과 헌신이 요구된다는 걸 실감했어요. 이번 전시는 세계적 브랜드의 위상과 화려함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치열함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고, 여전히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전시 공간을 모두 둘러본 뒤 옥상으로 올라가니, 입구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던 거대한 BE@RBRICK이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몸통을 뒤로 젖힌 모습이 도시 풍경과 겹쳐 묘하게 비현실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더군요. 아직 이른 시간인 덕분에 번잡하지 않고 한결 느긋한 공기가 감돌았습니다.
그곳에서 이번 협업을 함께한 메디콤토이의 CEO 타츠히코 아카시와 마주쳤습니다.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은 방금 전시장에서 본 수많은 작품이 지닌 개성과 조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옥상의 BE@RBRICK처럼 그는 브랜드와 예술을 잇는 다리 역할을 묵묵히 해 내는 사람 같았죠.
메디콤토이 CEO 타츠히코 아카시
2021년부터 MCM과 협업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MCM의 비전과 가치 중 어떤 부분이 귀사와 공명하여 장기간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올해 프리즈 위크를 맞아 진행되는 ‘BE@RBRICK in MCM Wonderland’ 전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MCM의 세련됨과 캐주얼함은 단순히 스타일을 넘어 하나의 태도처럼 느껴져요. 전통과 현재가 결합해 독창적인 감각을 만들어 내는 지점, 그게 바로 MCM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이번 아이디어도 MCM 측에서 직접 제안해 주신 데서 시작됐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특히 갖가지 신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브랜드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자연과 기술과 같이 상반되어 보이는 개념의 조화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이를 통해 이번 전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이고, 참여하는 분들을 어떻게 선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일본에는 ‘야오요로즈노카미(八百万の神)’라는 말이 있어요. 모든 현상에는 그에 상응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죠. 저는 문화와 창의성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은 타인의 문화와 신념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예술적 지향이 달라 하나의 주제로 모이지 않더라도, 뛰어난 작품은 그 자체로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죠. 이번 전시는 바로 그런 작품들이 같은 공간을 나누면서도 각자의 고유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어요.
또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세 명의 아티스트가 함께한다는 사실에도 큰 의미가 있어요. 각자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 잠시 이곳에서 교차하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여러 기회를 통해 다양한 아티스트, 브랜드와 협업해 왔어요.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를 MCM과 시작하기로 했을 때 ‘아름다움의 의미’를 다시 사유할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일지 오래 고민했죠. 그렇게 해서 이번 전시에 참여할 아티스트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BE@RBRICK in MCM Wonderland’ 1층 전경
인덴야가 고수해 온 전통 가죽공예 기법 고슈 인덴부터 켄 야시키의 개인적인 추억을 담은 수공예 작품, 그리고 아방가르드한 조형미를 지닌 노부키 히즈메로 구성된 전시를 보고 있노라면 각각 다른 형태의 ‘장인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편 이런 ‘장인 정신’이 대량생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아트토인인 BE@RBRICK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까요?
장인 정신이 지닌 섬세한 손길과 대량생산 시스템의 효율성이 만날 때 그 안에서 전혀 새로운 감각이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장인은 시간을 쌓아 만든 고유한 기술을 불어넣고, BE@RBRICK은 그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확산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죠. 메디콤토이 가리모쿠, 구타니 도자기,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같은 장인들과 협업하면서 이런 만남의 힘을 직접 경험해 왔어요.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는 동시에 전통적인 기법이 다시 조명되는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죠.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 역시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나 만들어 내는 독창적인 울림을 보여줄 거라 믿어요.
‘BE@RBRICK in MCM Wonderland’ 1층 전경
많은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BE@RBRICK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상업적 가능성을 넘어 협업 파트너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술적 혹은 철학적 기준은 무엇인가요?
서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어쩌면 그건 연애나 결혼에서 느끼는 감각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공간 전체를 채우는 설치 작업은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나요? 이번 큐레이션의 전체적인 의도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건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풍경이에요. 그것은 단일하고 획일적인 모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상이 어우러지면서 저마다의 고유한 결을 드러내는 풍경이죠.
Interviewee
노부키 히즈메 Nobuki Hizume는 일본을 대표하는 밀리너리 디자이너다. 오트 쿠튀르 기법을 바탕으로 모자를 제작하며, 이번 전시에서는 BE@RBRICK을 무대 삼아 독창적인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켄 야시키ken yashiki는 전통 기법 키메코미를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일본 아티스트다. 개인의 기억과 시간을 옷감에 담아내며, 이번 전시에서는 2016년 발표작 〈PAUSE-Usa Usa〉의 패턴을 활용한 전시 공간과 BE@RBRICK 아트토이를 함께 선보였다.
인덴야INDEN-YA는 1582년 창립된 일본의 전통 공예 브랜드로, 사슴가죽에 옻칠을 입히는 고슈 인덴 기법을 40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MCM의 시그니처 비세토스 모노그램을 접목한 BE@RBRICK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잇는 협업을 선보였다.
타츠히코 아카시Tatsuhiko Ryu Akashi는 일본 토이 브랜드 메디콤토이Medicom Toy의 CEO다. 세계적인 컬렉터블 피규어 BE@RBRICK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MCM과 협업 비전을 공유했다.
Editor
김민서는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했다. 프리랜서를 포함해 10여 년 동안 매거진 에디터로 활동했으며, 마지막에는 «행복이가득한집»에서 에디터로 재직했다. 현재는 스타트업에서 브랜딩과 마케팅을 총괄하면서, «스타일조선» 아트 부문 객원 에디터로도 활동 중이다.
이도준은 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를 졸업했다. «더원미술세계»를 거쳐 현재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 세상 특별한 가구 브랜드가 있습니다. 모두가 죄다 특별하다고 어필하는 시대에 뭔 소리냐고요? 잠시 진정하고, 잠깐 말이라도 들어보세요. 본사는 독일 바이에른주 남부 알프스산맥과 맞닿는 지역에 있는데요. 좋게 말하면 목가적이고, 실제로는 정말 시골이에요. 소똥 냄새 진동합니다. 브랜드 창업자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갑자기 브랜드를 차려 디자인하는 대표님으로 변신했고, 검증되지 않은 신예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과감히 채택해 제품으로 만들었어요. 그렇다고 매년 신제품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나오는지 아무도 몰라요.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은 목가적인(?) 본사에서 자전거로 이동할 만한 거리에 밀집돼 있죠. 무슨 생각인지 페어나 박람회에는 나가지도 않아요. 대체 사업을 하려는 건지 의심이 들지만 도리어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1982년 시작한 이래 은둔형 브랜드의 전설이 된 닐스 홀거 무어만Nils Holger Moormann 이야기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2020년 창업자가 은퇴하고, 오너와 디자인 총괄자가 바뀌었는데요. 작년 7월 외부 행사를 할 때까지 5년 동안 언론 노출을 안 했어요.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 진행한 신제품은 2021년 이후 4년 만인 올해 초 출시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이 범상치 않은 브랜드의 핵심 인물 두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너네 정말 어쩌려고 그러니?” 그런데 막상 답변이 매우 논리정연해서 당황스러웠어요. “우리는 정말 특별해”라고 외치는 무어만과의 티키타카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올해 초 4년 만에 출시한 무어만의 신제품, ‘리슬LIESL’ 시스템 선반
독일 바이에른주 시골에 자리 잡은 작은 가구 브랜드와 대한민국 서울에 기반을 둔 온라인 매체가 오프라인으로 인연을 맺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작년 7월 BE(ATTITUDE)는 독일 바이에른주 남부 아샤우 임 키엠가우Aschau im Chiemgau에서 열린 1박 2일 행사에 초대받았다. “아니, 대체 왜 우리에요?”라는 질문에 말없이 웃음으로 응답하던 용맹한 브랜드의 이름은 닐스 홀거 무어만Nils Holger Moormann. 1982년 창업해 벌써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이다.
닐스 홀거 무어만(이하 무어만)은 사실 가구 브랜드 중에서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자신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채택한 창업자 닐스는 법학을 전공하다 가구 회사를 세우고, 이후 디자인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취향이 깊게 배인 가구를 하나둘 세상에 내놓았다. 이제 막 커리어를 쌓아가던 신진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그들을 저 멀리 날아오르게 한 적도 부지기수. 2010년대에는 주요 가구 페어에도 참여하지 않는 뚝심을 부리면서 독특한 안목과 개성에 대한 컬트적인 인기는 더욱더 높아졌다. 독일 시골에 은둔한 비밀스러운 가구 브랜드. 무어만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었다.
창업자 닐스 홀거 무어만의 포트레이트
무어만과 협업한 신진 디자이너들은 이제 다들 유명 인사가 됐다.
2019년 베를린 아트 위크 때 진행한 자전거 도심 가구 배송 서비스 ‘POP HUB’
그런데 무어만의 창립자이자 은거기인 닐스는 정작 본사에 없었다. 아니 은퇴라니요? 그것도 벌써 2020년에요? 아무리 구글링해도 나오지 않던 정보, 심지어 오는 길에도 알려주지 않아 닐스의 과거 인터뷰를 찾아본 입장에서 실로 당황스러웠다. 닐스 대신 방문객을 맞이한 두 명의 젊은 남자―회사를 인수하고 대표를 맡고 있는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Christian Knorst와 브랜드의 마케팅과 디자인을 총괄하는 로버트 크리스토프Robert Christof―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채, 당일 벌어지는 행사 ‘살로네 디 아샤우Salone di Aschau’ 준비로 표정이 들떠있었다.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과 전시인지, 워크숍인지, 축제인지 종잡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한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그날 밤, 잠을 청하는 내 머릿속에는 상반되는 생각이 공존했다. ‘지금 독일 시골까지 와서 대체 뭐 하는 거지? 그런데 오늘 왠지 힐링한 느낌인걸?’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간 낭만적인 하루였다.
2024년 7월 13일에 열린 협업형 디자인 페스티벌, 살로네 디 아샤우
살로네 디 아샤우는 밤까지 이어졌다.
한국에 돌아와 기사를 준비하며 행사 평으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어만이라는 브랜드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파헤쳐보고 싶었다. 게다가 ‘곧’ 신제품이 나온단다. 무려 4년 만에 발표하는 무어만의 신제품. 신제품 소식까지 포괄하는 기사를 진행하기로 상의하고 제품 사진 찍는 걸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덧 해가 넘어가 버렸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소리 소문 없이 신제품도 출시됐다. 소문으로 듣던 닐스보다 더 기인처럼 다가오는 두 사람과 이들이 이끄는 무어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는 인터뷰가 천천히, 오랜 시간 진행됐다. 핑퐁처럼 주고받은 10개월 간의 이메일을 다시 확인하며 드는 생각은 ‘여긴 진짜 특별해.’ 크리스티안과 로버트도 안다. ‘우린 정말 특별해.’ 특별한 곳을 다룬 특별한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 보시라.
작년 여름 독일 바이에른 시골에서 열렸던 살로네 디 아샤우의 즐거운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네요. 올해 초 들려온 4년 만의 신제품 소식도 무척 축하합니다. 독일의 가구 브랜드와 한국의 온라인 매체가 꾸준히 인연을 유지하는 게 참 뜻깊네요.
로버트: 한국은 저희에게 무척 중요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에요. 그래서 한국의 미디어 환경과 콘텐츠 플랫폼을 멀리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BE(ATTITUDE)는 저희와 협업하는 «the thing magazine»의 편집장이 소개해서 알게 됐어요. 콘텐츠를 구성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곧장 매력을 느껴버렸죠. 무엇보다 ‘Magazine for Strange Discovery’이라는 슬로건이 마음이 쏙 들었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살로네 디 아샤우는 독특한 행사였어요. 단 이틀만 진행했는데, 두 번째 날은 아침 등산으로 끝났잖아요. (웃음)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길게 할 걸’ 후회하지는 않으셨나요?
로버트: 솔직히 말씀드리면, 행사를 더 길게 가져갈 생각은 애초에 전혀 하지 않았답니다. 저희가 구상한 바는 첫째 날 전시와 퍼포먼스에 집중하며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활발한 교류의 장을 만드는 거였어요.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본사 건물 뒤편의 들판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 수 있었죠. 다음 날에는 지역에 위치한 ‘캄펜반트Kampenwand’산으로 하이킹을 가면서 지난 하루의 경험을 함께 되짚고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죠. 되돌아보면, 이렇게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행사를 구성한 게 정말 딱 맞는 선택이었어요.
동네방네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모습
살로네 디 아샤우에서는 가구를 직접 만들고 체험할 수 있었다.
동네 뒷산이라기엔 과하게 높은 캄펜반트산 전경
닐스 홀거 무어만, 줄여서 ‘무어만’이라고 부르는 가구 브랜드는 창립자인 닐스의 리더십 아래 컬트적인 명성을 얻은 곳이죠. 그래서 작년 아샤우 임 키엠가우에 위치한 본사에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사실은 2020년부터 브랜드를 이끄는 리더십의 변화였어요. 관련 정보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크리스티안: 새로운 리더십은 이전 리더십과 아주 긴밀하게 협력해 세심한 준비를 거쳤어요. 저희는 이를 요란하게 알리는 대신, 조용한 속삭임처럼 전달하려고 했죠. 신뢰는 전격적인 발표나 폭탄선언으로 얻을 수 없어요. 태도와 시간, 무엇보다도 많은 노력을 통해 쌓인다고 믿어요. 그래서 이번 세대교체는 단절보다는 일종의 바통터치였어요. 즉 저희는 창립자 닐스의 대체자가 아니라, 무어만이라는 브랜드가 지닌 사상의 연속선 위에 있는 존재입니다. 과거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진심 어린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리더십이 바뀐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회의적이기도, 예상보다 따뜻할 때도 있었어요. 저희는 그게 바로 변화가 지닌 본질이라고 믿어요. 변화에는 마찰이 필요하고, 마찰은 온기를 만들어내니까요. 로버트와 가끔 “예전에는 어땠더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결국 하나의 진실을 마주하게 돼요.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죠.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훨씬 더 기대하고 있어요.
무어만 본사 내부 모습
그런 면에서 올해 초 출시한 신제품은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네요. 2021년 출시한 ‘쿠르트KURT’가 닐스가 디자인한 마지막 유산이었다면, 4년 만에 발표한 시스템 선반 ‘리슬LIESL’은 새로운 리더십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산물이니까요. 무어만의 새로운 챕터를 본격적으로 여는 시작점으로 기록되지 않을까요.
크리스티안: 맞아요. 저희가 회사를 인수한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쿠르트는 닐스가 디자인한 테이블이에요. 무어만이라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정말 잘 담고 있는 작업이죠. 40년 넘게 차곡차곡 쌓은 디자인 아카이브를 살펴보다가 발견했는데, 저희의 보물창고랍니다. (웃음) 알고 보니 과거에 제품화를 시도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완성하지 못했더군요. 그런 사실 때문이더라도 쿠르트를 꼭 세상에 내놓고 싶었어요. 수차례의 좌절, 오랜 인내와 노력을 양분 삼아 고집스레 프로젝트를 끌고 가다가 마침내 제품으로 출시하니까, 단순한 성공 그 이상으로 다가오더군요. 닐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이자, 저희에게도 정말 의미 있는 제스처로서 말이에요.
쿠르트,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21년
쿠르트,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21년
쿠르트,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21년
쿠르트 디테일
그 이후로는 무어만의 컬렉션에 새로운 소재와 부품을 더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데어 포르슈탄트Der Vorstand’ 같은 프로젝트성 작업을 진행했죠. 기존의 유산을 존중하며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균형 잡기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올해 초 리슬이 탄생했습니다. 리슬은 아주 아름다운 노트의 깨끗한 공백에 써 내려간 첫 문장 같은 존재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새로운 챕터’의 시작일지도 모르죠. 근데 솔직히 말하면, 저희가 정말 바라는 상황은 리슬이 무어만이라는 긴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익숙한 종이에 저희만의 손 글씨로 이어가고 싶은 그런 이야기요.
데어 포르슈탄트 프로젝트 스케치
데어 포르슈탄트 프로젝트, 진행: 2021년
데어 포르슈탄트 프로젝트, 진행: 2021년
데어 포르슈탄트 프로젝트, 진행: 2021년
리슬, 디자인: Marie Luise Stein, 출시: 2025년
리슬, 디자인: Marie Luise Stein, 출시: 2025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무어만을 인수했다고 알고 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무어만이라는 작은 가구 브랜드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셨나요?
크리스티안: 마흔이라는 나이를 젊다고 하기에는 좀 논쟁의 여지가 있겠는데요. (웃음) 무어만 인수는 평생의 꿈이나 철저한 비즈니스적 판단의 결과는 아니에요. 좀 더 직감에 가까운 선택이었고, 물론 그에 대한 결과도 뒤따랐죠. 정말 우연찮게 무어만이라는 가구 브랜드를 알게 된 후, 닐스와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인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주변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거의 모든 사람이 반대하더군요. “그건 불가능해!”
무어만의 새로운 오너이자 대표,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Christian Knorst.
저는 무어만에서 단순한 가구 브랜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어요. 하나의 사고방식, 하나의 캐릭터,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에 의존하지 않고 매우 일관적이면서 어쩌면 다소 독단적일 만큼 명확하게 이어지는 가치 체계랄까요. 무어만의 가치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죠. 과거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틀 안에서 신중하게 변화와 발전을 시도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고 싶었어요. 한마디로, 무어만은 영혼을 가진 브랜드예요. 그래서 단순히 이름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이름에 가려진 책임까지 함께 떠안는 결정이었습니다. 디자인, 장인정신, 태도에 대한 생태계 전반에 관해서요. 위험한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강한 확신을 지닌 채 진행했답니다.
무어만은 컬트 브랜드입니다.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하고, 개성도 뚜렷하죠. 그 중심에는 창업자인 닐스가 있었고요.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창업한 가구 회사에서 직접 디자인까지 하게 된, ‘비전공 디자이너 대표’ 이야기는 굉장히 극적이잖아요. 그의 취향이 무어만의 다양한 시그너처 제품에 반영된 사실도 유명하고요. 어찌 보면 무어만은 닐스의 분신일 수도 있는데요. 이렇게 한 사람의 정체성이 강하게 투영된 브랜드를 인수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크리스티안: 어우. 당연하죠. 누군가의 개성이 강하게 깃든 집에 이사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가 가구를 왜 이렇게 배치했는지 이해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건드리기 힘들어요. 무어만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태도, 비범한 사고, 사랑스러운 괴짜다움이 투사되는 스크린 같은 존재예요. 하지만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아주 명료하죠. 저희는 이를 투명성, 일관성, 확신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어요.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매우 실용적이고 강력하고 여전히 어디에서나 유효한 행동 지침이죠. 이런 세 가지 원칙은 디자인, 소통, 협업 등 무어만을 둘러싼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키니스트BOOKINIST,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07년
부키니스트,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07년
책을 읽으며 움직이는 의자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독서 편의용품을 보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투명성을 살펴볼까요. 무어만의 가구를 보면 구조가 열려 있고, 보기만 해도 기능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거창하게 가리지 않은 표면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전달해요. 사용자와 함께 서서히 나이를 먹을 수 있죠. 저희가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도 동일한 논리를 따릅니다. 지역 내의 작은 공방과 협업해 제품을 제작하는데요. 대단히 지역 중심적이고 정직해서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추적할 수 있어요. 이건 과거를 염두에 둔 노스탤지어와 거리가 멀어요. 그저 저희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방식일 뿐이죠. 하지만 브랜드가 박물관은 아니잖아요? 유리관 안에 무언가를 보존하는 게 브랜드의 할 일은 아니죠. 생명력과 호기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투명성, 일관성, 확신이라는 가치는 더욱더 중요해요. 이를 기준 삼아 앞으로 나아가면 놀랄 만큼 거대한 자유와 거의 타협을 불허하는 일이 동시에 가능해지거든요. 어쩌면 이야말로 무어만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유산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스트라머 막스Strammer Max, 디자인: Max Frommeld, 출시: 2009년
스트라머 막스, 디자인: Max Frommeld, 출시: 2009년
스트라머 막스 디테일
무어만은 1982년 창립해 지금 40년이 넘었어요. 지난 5년간 브랜드를 재정비하면서 고민거리가 많았을 텐데 어떻게 해결했나요? 그동안 쌓였던 유산과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되던가요?
로버트: 가장 큰 도전은 크리스티안이 앞서 말한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한 후, 이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옮기는 일이었어요. 브랜드의 이름이자 창립자인 닐스가 회사를 떠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가 생겼으니까요. 예를 들어 2020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유통 구조, 소비자의 구매 방식, 타깃 그룹의 미디어 사용 패턴, 공급업체와의 관계, 원자재 가격 등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부 조직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둘러싼 생태계, 즉 네트워크 또한 강화해야만 했어요.
크리스티안: 지난 5년은 정말 짧고도 긴 세월이었죠. 특히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격변 덕분에 더욱더 그랬고요. 뒤돌아 생각해 보면 아주 빠르고도 깊은 다이빙을 했던 것 같아요. 무어만이 지닌 미덕은 매끈하고 번쩍이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오히려 태도, 관계, 다르게 해보려는 열망으로 고집스럽게 뭉친 뾰족한 면모를 보이죠.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저희에게는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어요. 더불어 무어만과 오랫동안 함께한 파트너, 클라이언트, 장인 또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어요. 그래서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더 잘 듣는 법을 배우고 있답니다. 하지만 결국 닐스가 예전에 해준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네요.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지식이 많다고 꼭 현명한 건 아니다.” 그래서 저와 로버트는 이런 정신을 잊지 않아요. “일단 해보자. 직접 손대어 시작해 보자”
갑자기 엉뚱한 질문이 떠오르네요. 무어만의 제품, 솔직히 좋아하시나요? (웃음) 어떤 걸 너무 좋아하면 바꾸기 어렵고, 애정이 없다면 중요한 걸 놓치기도 하잖아요. 여러분에게 무어만의 기존 제품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로버트: 저와 아내는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외관에 품질이 좋은 ‘타임리스 디자인’을 사랑해요. 10년이 훨씬 넘었네요. 아파트 주방에 어울릴 만한 적당한 캐비닛을 찾다가, 무어만의 ‘K1’ 캐비닛을 발견했어요. 시각적인 명쾌함뿐만 아니라 영리하게 설계한 연결 방식, 간단한 조립법, 효율적인 모듈 시스템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K1 캐비닛은 지금도 저희 주방에 멀쩡히 서 있답니다. 세 아이의 좌충우돌을 매일 견뎌내면서요. 하하. 절제된 디자인과 지적인 구조에도 여전히 큰 만족을 느끼고 있고요.
무어만의 마케팅과 디자인을 총괄하는 로버트 크리스토프Robert Christof
K1, 디자인: Neuland, Paster & Geldmacher, 출시: 2010년
K1, 디자인: Neuland, Paster & Geldmacher, 출시: 2010년
K1 디테일
이런 사적인 이야기는 무어만의 디자인 언어를 꽤 잘 설명해 주는 일화예요. 무어만이 추구하는 가구는 단순한 제품에 국한되지 않아요. 마치 특별한 아이디어에 기반한 발명품과도 같죠. 어떤 건 어이없을 정도로 엉뚱하고, 어떤 건 기막히게 영리해요. 사소한 디테일, 혹은 완전히 혁신적인 접근법에서 아이디어가 탄생했죠.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에 걸친 탐색이 필요하고, 그 후에도 긴 시간을 들여 다듬고 또 다듬어야만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결국 제대로 완성해 출시한 제품은 사용자에게 진심으로 사랑받으며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곤 합니다. 투명성, 일관성, 확신이 낳은 힘이죠. 이는 1989년 발표한 ‘FNP’ 선반 같은 클래식 디자인부터 2011년 발표한 ‘프레스트 체어Pressed Chair’, 이번에 새로 출시한 리슬 같은 현대적인 제품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FNP,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89년
FNP,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89년
FNP,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89년
FNP는 확장가능한 모듈형 선반이다.
프레스트 체어, 디자인: Harry Thaler, 출시: 2011년
프레스트 체어, 디자인: Harry Thaler, 출시: 2011년
질문을 약간 바꿔야겠군요. (웃음) 여러분이 특히 애정하거나 높이 평가하는 무어만의 기존 제품을 꼽아주시겠어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크리스티안: 으… 이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마치 “어떤 아이를 제일 좋아하니?” 같은 거잖아요. 답하기가 거의 불가능한걸요.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저는 볼프강 라우베르스하이머Wolfgang Laubersheimer가 디자인한 ‘게스판테 레갈Gespannte Regal’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1984년부터 40년 넘게 무어만의 컬렉션에 속한 선반이죠. 이 제품이 특별한 이유는 긴장(tension)이라는 개념을 구조적 원리로 삼았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인 지지대 위에 선반이 단순하게 올려져 있는 게 아니라, 팽팽하게 당겨진 와이어로프 시스템에 매달려 있거든요. 덕분에 선반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가벼움과 유려함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미니멀한 디자인과 독특한 긴장감이 결합해 공간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명료함과 존재감을 만들어내요.
게스판테 레갈, 디자인: Wolfgang Laubersheimer, 출시: 1984년
게스판테 레갈, 디자인: Wolfgang Laubersheimer, 출시: 1984년
게스판테 레갈의 핵심은 긴장감이다.
로버트: 저는 무어만의 디자인 언어에 정말 큰 애정을 갖고 있어요. 게다가 그 디자인 언어를 컬렉션 전반에 걸쳐 무척 일관되게 구현한 터라 흐름에서 벗어나는 제품이 거의 없어요. 만약 있다고 해도,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일탈입니다. (웃음) 그래서 컬렉션에 속한 거의 모든 제품을 좋아할 수밖에 없죠. 개인적인 호오를 묻는다면, 저는 FNP 선반, ‘지벤슐레퍼Siebenschläfer’ 침대, 프레스트 체어, 그리고 새로 나온 시스템 선반 리슬을 꼽겠어요. 아, 그리고 물론 K1 캐비닛, 게스판테 레갈 선반, ‘라더Lader’ 수납장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렇게 하다가 제품 목록 끝까지 이어지겠는걸요. 하하. 제가 이런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던하고 미니멀하며 타임리스한 디자인, 구조적으로 영리한 아이디어, 고품질의 소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테일에 담긴 유머 감각 때문인데요. 결국 무어만 컬렉션 전체에 공통으로 흐르는 철학과 일치합니다.
지벤슐레퍼, 디자인: Christoffer Martens, 출시: 2007년
지벤슐레퍼, 디자인: Christoffer Martens, 출시: 2007년
지벤슐레퍼 디테일
라더,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96년
라더,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96년
라더 해체 샷
무어만은 업계 행사나 주요 페어에 참석하지 않는 등 홍보 활동이 폐쇄적인데요.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살로네 디 아샤우를 홍보하는 맥주병 캠페인을 접하고 깜짝 놀랐어요. 내가 아는 무어만이 맞나 싶었죠. 무어만의 소셜 미디어 또한 훨씬 젊어졌어요. 이런 대변환의 비결이 뭐죠?
로버트: 칭찬 감사합니다. 저희로서는 이런 변화가 180도 전환이라기보단, 마케팅과 소통 방식을 일관되게 확장하는 중이에요. 무어만은 늘 독특한 아이디어와 콘셉트, 그리고 적당한 유머와 장난기 어린 시선을 지닌 브랜드였어요. 이런 특성에 맞춰 효과적으로 홍보해 왔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속도와 도달 범위일 거예요. 소셜 미디어 같은 플랫폼이 이를 가능하게 했죠. 과거에는 고급스럽고 잘 디자인된 카탈로그와 브랜드 관련 책이 소수의 열성적인 팬 사이에 공유됐어요. 구하기도 쉽지 않았죠. 지금은 소셜 미디어에 올린 단 하나의 게시물만으로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즉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어만이라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지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지 여부입니다.
2024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진행한 살로네 디 아샤우 관련 맥주 캠페인
무어만이 추구하는 소셜 미디어 이미지 방향성
무어만이 추구하는 소셜 미디어 이미지 방향성
무어만이 추구하는 소셜 미디어 이미지 방향성
무어만은 지금까지 제품을 고안할 때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해 왔어요. 닐스를 중심으로 한 내부 개발과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입니다. 특히 유망한 신예 디자이너, 예를 들어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ntin Grcic, 타카시 사토Takashi Sato, 해리 탈러Harry Thaler, 패트릭 프레이Patrick Frey 등과 협업해 서로의 커리어를 확장하는 방법은 무어만의 특징이자 강점으로 꼽혔죠. 새로운 리더십 아래, 무어만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도 변화가 찾아왔나요?
크리스티안: 무어만은 점점 더 ‘디자인 퍼블리셔design publisher’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이에요. 즉 외부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보이고, 그들의 콘셉트를 지원하며 실현해 주는, 일종의 ‘디자인 출판사’랄까요. 지역에서 일하는 작은 공방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무어만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제품이 실체화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저희뿐 아니라 전 세계에 존재하는 무어만의 팬―이곳 아샤우의 장인부터 한국에 있는 고객까지―에게 큰 기쁨을 주면 좋겠습니다.
HUT AB, 디자인: Konstantin Grcic, 출시: 1998년
HUT AB, 디자인: Konstantin Grcic, 출시: 1998년
HUT AB 디테일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할 때 그들의 제안서를 블라인드 방식으로 심사한다고 들었어요. 장단점이 궁금합니다.
크리스티안: 전 세계 디자이너가 제출한 제안서를 익명으로 검토하는 방식은 디자이너의 이름이나 평판에 영향받지 않고 순수한 아이디어 그 자체에 집중해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가장 큰 장점은 선입견 없는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거겠죠. 종종 정말 놀라운 수준의 디자인 제안을 받곤 해요. 대신 그만큼 커다란 신뢰가 필요한 시스템이에요. 모든 참여자 사이에 투명성과 존중, 신뢰가 전제되어야 익명 심사 방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니까요.
올해 초 발표한 신제품 리슬이 더욱더 특별하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지난 몇 년간 새로운 리더십의 시행착오와 고민, 태도, 역량이 고스란히 담긴 산물로서 말이에요.
크리스티안: 맞아요. 리슬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에요. 저희에게는 무어만의 철학을 진정으로 담아낸 작업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알루미늄과 연결 로드를 사용해 ‘필요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적절한’ 상태를 구현하려고 했어요. 제품 개발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죠. 과정 내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답니다. ‘무언가를 제대로 창작하려면, 과연 어느 수준까지 디자인을 고민해야 하는 걸까?’ 저희는 계속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면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순함과 모듈러 구조를 획득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리슬은 조용한 우아함, 그리고 유연함과 변화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겉보기에는 정말 단순하죠. 하지만 그 단순함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도가 필요했는지 밖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거예요. 정말로 긴 여정이었어요.
무어만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시스템 선반 리슬
무어만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시스템 선반 리슬
무어만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시스템 선반 리슬
리슬 디테일
무어만이 매년 신제품을 내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혹시 진짜 마음에 드는 제품만 공들여 출시하는 게 앞으로의 전략이라면, 이제 사람들은 깜짝 알림을 기다려야 하나요?
크리스티안: 빠르게 신제품을 출시하는 건 결코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재정적으로 곤란해질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요. (웃음) 저희에게 진짜 중요한 일은 정말로 확신이 드는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해서 세상에 내놓는 거예요. 새로운 제품은 단순히 신제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여야 한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느리고 신중한 움직임은 분명 저희의 전략입니다. ‘그냥 내보내기 위한’ 제품을 만들 순 없어요. 오랜 세월 동안 컬렉션 안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해요. 제품이 꾸준히 검증받고, 장인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제작에 참여하고, 고객이 언제든지 자신의 가구를 확장해 나가려면 어쩔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 무어만의 신제품은 곧 나올 수도 있고, 몇 년 더 걸릴 수도 있어요. 사실 저희도 잘 몰라요. 진짜로요! (웃음)
닐스가 회사를 이끌었을 때 무어만이 추구하던 핵심 가치는 단순함, 지성, 혁신이었어요. 유연성을 강조하던 그의 말도 떠오르네요. 이런 기존의 가치는 현재 새로운 가치로 진화했다고 봐야 할까요?
크리스티안: 계속 변하는 게 세상이고, 그만큼 우리가 처한 환경과 맥락도 달라지고 있어요. 이제 단순히 ‘간결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니즈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유연성은 여전히 무어만의 핵심 가치 중 하나에요. 대신 디자인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파트너, 고객과의 관계에까지 확장해서 바라보고 있어요. 결국 언제나 목표는 동일합니다. 단순함을 지키면서 그 안에 깊이를 담아내는 것이죠. 이런 변화 속에서 저희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등불은 투명성, 일관성, 그리고 확신이라는 태도입니다. 이제 남은 건 이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이에요.
살로네 디 아샤우로 잠시 돌아가 볼게요. 새로운 리더십이 공개적으로 연 유일한 브랜드 행사나 다름없는데요. 작년에 진행해야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결국 무엇을 위한 행사였나요?
로버트: 무어만은 작고 아웃사이더 기질을 가진 브랜드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늘 떠오르는 고민거리는 우리 제품, 그리고 제품에 얽힌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여부에요. 대부분의 박람회는 저희에게 너무 크고,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그와는 다른 길을 개척해 보고 싶었어요. 분주함에서 조금 벗어난 장소에서 방문자가 전시된 제품과 프로젝트에 조금 더 천천히, 깊이 있게 몰입하며 다른 이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 말이죠. 더불어 저희는 새롭고 완벽한 제품뿐 아니라, 미완성품, 어딘가 거친 면모가 남아 있는 것을 함께 선보이고 싶었어요.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에 더 많은 빛을 비출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리고 금세 확신하게 됐죠. 이런 시도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다른 작은 브랜드 및 디자이너와 함께여야 한다고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첫 번째 협업형 디자인 페스티벌, 살로네 디 아샤우였어요.
본사 마당에서 열린 살로네 디 아샤우 전경
살로네 디 아샤우 포스터
살로네 디 아샤우
크리스티안: 지금 생각해 봐도, 저희에게는 하나의 실험이었어요. 쇼도 아니고, 페어도 아니었죠. 무어만의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에 가까웠어요. 저희는 디자인을 결과물 자체로만 바라보지 않아요. 디자인은 언제나 그 과정, 미완성, 시행착오와 함께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살로네 디 아샤우는 아이디어와 사람들의 만남,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한번 해보는 자유’를 축하하는 자리였답니다. 무엇보다… 정말 순수하게 즐거운 경험이었죠.
살로네 디 아샤우의 평화로운 모습들
살로네 디 아샤우의 평화로운 모습들
혹시 올해도 비슷한 행사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로버트: 저희는 살로네 디 아샤우와 무어만의 제품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봐요. 속도가 중요하지 않고, 행사를 가능한 한 많이, 자주 여는 것도 목표가 아니죠. 첫 번째 살로네 디 아샤우는 참여자 모두에게 아주 특별하고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다음 살로네 디 아샤우는 매우 신중하게 준비하고, 특별하게 구성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계획에 없어요. 물론 반드시 언제가 열릴 거예요! (웃음) 대신 올해는 규모가 좀 더 작은 행사 몇 가지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살로네 뮌헨Salone München’이라는 쇼룸 겸 갤러리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오는 5월 10일부터 18일까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전시를 개최해요. 1980년대 ‘뉴 저먼 디자인New German Design’과 예술 운동 ‘다다Dada’ 사이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작업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살로네 뮌헨 전경
살로네 뮌헨 내부 이미지
살로네 뮌헨 내부 이미지
오스트리아 빈에 소재한 치펜페니히 갤러리(Galerie Zippenfenig)에서 2024년 열렸던 전시 «가가 다다GAGA DADA»가 살로네 뮌헨에서 재현된다.
오스트리아 빈에 소재한 치펜페니히 갤러리(Galerie Zippenfenig)에서 2024년 열렸던 전시 «가가 다다GAGA DADA»가 살로네 뮌헨에서 재현된다.
로버트가 했던 “장인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해요.”라는 말이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도 장인정신과 지역성은 여전히 중요한 속성으로 보이는데요. 무어만에게 지역성은 왜 중요한가요? 최근 전 세계적인 트렌드와도 연결되는지요.
로버트: 무어만의 제품은 한 마디로 특별하죠. 그렇기에 이를 개발하고 생산하려면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장인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장인들과 함께 일할 때는 서로 직접 만나 대화하고, 작업대 앞에 함께 서서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때로는 수정하고 다시 시도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요. 그래서 장인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되는 거죠. 실제 저희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일하세요. 이런 철학은 무어만이 처음 설립될 때부터 중시되었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무어만의 전략에서 변치 않을 원칙입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공예와 지역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무어만이 그런 글로벌 트렌드에 영향을 받진 않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저희 방식대로 해왔고, 앞으로도 이는 변치 않을 거예요.
혹시 두 분이 무어만을 통해 이루고 싶은 성취가 존재하나요? 무어만이 어떤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크리스티안: 음… 저는 사실 거창한 꿈을 꾸는 사람은 아니에요. 브랜드는 무언가 만들어내기보다,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어만은 저만의 뚜렷한 개성을 지녀야 하고, 때로는 거칠고 불편한 면모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어만다운 고집스러움과 솔직함을 계속 지킬 수 있는 자유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저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 같아요.
로버트: 다행히도 무어만이라는 브랜드는 거칠고 솔직한 개성 덕분에 잘 살아남고 있어요. 아마도 이 브랜드는 언제나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 와일드카드, 그리고 ‘이상한 발견(strange discovery)’으로 남을 겁니다. 무어만이 지닌 본연의 특질을 잘 가꾸며 그 매력을 잃지 않도록 계속 이어가는 게 저희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왼쪽부터) 로버트 크리스토프,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
드디어 마지막 질문입니다! 독자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부탁드려요. BE(ATTITUDE)라는 이름에 걸맞게, 창작자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여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크리스티안: 제가 지금까지 배운 교훈 중 하나는 결국 정직하고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에요. 특히 가벼워 보이고, 단순해 보이고, 명확하고, 장난스러워 보일수록 사실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기 마련이랍니다. 토론이 길어진다고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도 알아두세요. 어느 순간에는 그냥 직접 손을 대고, 시도해 보고, 다시 해보고, 또다시 시도하면서 마침내 제대로 완성해 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로버트: 동감이에요. 결국 손을 움직여 직접 해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죠. 더불어 자신의 핵심 가치에 집중하며 태도를 보여주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Interviewee
닐스 홀거 무어만Nils Holger Moormann(@nilsholgermoormann)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제품화하고, 본사가 자리 잡은 독일 바이에른주 아샤우 임 키엠가우Aschau im Chiemgau 지역에서 장인들과 함께 실물로 구현하는 가구 퍼블리셔다. 지금까지 60개 이상의 국제적인 디자인상을 받았고, 가구뿐 아니라 예술 및 문화 프로젝트도 함께 기획 중이다. 현재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Christian Knorst가 회사 오너로서 대표직을 수행하고, 로버트 크리스토프Robert Christof가 마케팅 및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Editor
전종현(@harry.jun)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에서 발행한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겸 아트 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뉴닉»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는 디자인, 아트, 페어, 페스티벌이란 단어를 조합한 수많은 행사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혹시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visual art festival’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지난 2022년부터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을 정체성 삼아 매년 꼬박꼬박 행사를 치르는 ‘웁OOP’은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하반기에 기대하는 독특한 이벤트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들이 해석하는 비주얼 아트는 무척 넓답니다. 비단 아티스트의 작품뿐 아니라, 브랜드의 공간 디자인, 패션쇼의 무대 연출 등 일상에서 시각적 영감과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비주얼 아트로 정의하죠. 이런 범주에서 아트, 패션, 음악, F&B, 테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웁서울 2024’를 다녀와 보니 역동적이면서 감각적인 면모와 즐거움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웁을 기획하는 아트 에이전시 악수AXOO에 대화를 청한 게 작년 10월 말. 차근차근 준비해서 연말 콘텐츠로 내려던 장대한 계획은 근 4개월간 계속된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기약 없이 밀리고 말았습니다.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하는 지금에야 고대(古代) 인터뷰를 발행하는 심정은, ‘늦어서 오히려 좋아!’랄까요. 시간대는 기묘하게 꼬였지만, 후루룩 읽는 재미로 가득한 악수와의 인터뷰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웁서울 2024’ 입장 풍경
작년을 추억하기엔 벌써 올해의 1/4이 지나버렸다. 이제 겨우 살 만 해진 날씨가 눈 깜짝할 새에 무더운 여름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 벌써 조바심이 든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모두에게 해당할 테다. 작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대한민국에 갑자기 등장한 계엄령 이후 내 일상은 매일 쏟아지는 사건과 뉴스에 정신없이 점령됐다. 12월 4일 새벽 1시 1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는 순간을 유튜브 라이브로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몰랐다. 아니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4개월간 지속되리라고는.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선고된 이후에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뉴스에서 비로소 해방됐다. 그제야 일상의 시계가 1분기를 넘어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자각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일들은 빠짐없이 진행했다. 다만 그전에 기획했던 콘텐츠가 문제였다. 사람들의 주목을 빨아들이는 이슈의 파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깐 쉬어가려던 계획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특히 아트 에이전시 악수AXOO와의 인터뷰가 곤혹스러웠다. 작년 9월 말 열렸던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 ‘웁OOP’을 우연찮게 방문했다가 솔직히 놀랐다. 좌충우돌 3회째를 맞은 웁은 그해의 행사 중 유독 자유롭고, 즐겁고, 흥미롭고,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예술·문화 카테고리에 속하는 행사가 고질적으로 지니는 구조적인 딱딱함과 쭈뼛거림 없이, 주최자, 참여자, 관람자가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장에서 마음 편히 구경하고, 먹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멋진 행사가 3일이라는 너무 짧은 기간에 끝났다는 사실이 아쉬워서, 주최 측인 악수에게 대화를 청한 때가 뒷마무리를 끝내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10월 말이었다.
그렇다. 지금 시작하는 인터뷰는 대략 6개월 전 이야기다. ‘웁 2024’의 폐막 이후, 11월에는 일본 오사카에서 웁의 첫 해외 전시가 열렸다. 12월에는 팝업 개념의 ‘웁 해프닝OOP Happening’이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됐다. 악수는 아트 에이전시 활동도 계속 이어갔다. 지난 4월 13일 북촌에 있는 푸투라 서울에서 막을 내린 불가리의 브랜드 전시 «세르펜티 인피니토, Serpenti Infinito»에서 국내 아티스트 큐레이션을 맡았다. 이에 대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인터뷰는 불완전하며 늦은 감으로 충만하기 그지없다.
‘OOP Happening #1. HOUSE PARTY’, 더현대 서울 5F 에픽 서울, 2024.12.14 – 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웁을 기억하는 내 머리와 몸은 정직하게 말하고 있다. 올해의 웁 또한 분명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할 것이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올해 4회째를 맞는 웁을 앞두고 매우 이례적으로 일찍 그 ‘존재’를 알리는 기묘한 인터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추운 겨울을 지나, 이 찬란한 계절에 세상 밖으로 나와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2024년도 ‘웁서울OOPSeoul’이 끝났네요. 9월 22일부터 3일간 목, 금, 토에 걸쳐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렸는데요. 일단 마무리한 소감 한 번 여쭤볼까요?
열심히 준비한 행사가 끝나니 시원섭섭해요. 그런데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스폰서십을 유치해야 내년에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 중이에요.
(왼쪽부터)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악수 안지성 대표와 주귀희 이사
제가 행사에 무지해서 그런데, 스폰서십이 엄청 중요한가요?
어우, 중요하죠. 웁처럼 브랜딩을 만들어가는 신생 페스티벌에는 더욱더 중요한 것 같아요. 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현물로 지원받거나 현금을 유치하는 일은 저희가 원하는 흥미로운 그림에 얼마나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지와 직결돼요. 결국 비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스폰서십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웁서울처럼 건전(?)하게 즐거운 행사는 희귀해서 잘 돼야 한다고 봐요. 보통 즐겁고 힙한 행사라고 하면 현란한 음악이 흐르고 스탠딩으로 술 먹는 장면이 떠오르잖아요. 아니면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돈을 확 태우던가요. 웁서울은 자극적인 게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었어요. 느낌이 좋았다고나 할까. 일명, ‘느좋’ 행사?
오시는 분들에게 저희도 항상 후기를 여쭤보는데 흥미롭게도 좋아하는 이유가 모두 달라요. 이번에도 어떤 분은 공기 조형물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고, 어떤 분은 게임을 계속했다고 하고, 어떤 분은 음식이 맛있다고 했거든요. 이유가 뭐가 됐든 행사를 준비하는 저희로서는 모두 기쁜 피드백이죠.
이번에 제일 입소문 났던 곳은 어디였어요?
아무래도 2층에 부스를 만든 ‘마우스 포테이토Mouse Potato’ 아닐까 해요. 관람객이 머무르는 시간이 가장 길기도 했고, 재미있다는 부스 리스트에서 이름이 빠지지 않았거든요. 와보셔서 알겠지만 메인 공간인 1층과 3층에 비해 중간층에 속하는 2층은 다른 행사에서도 애매하게 쓰이는 경우가 잦아서 너무 아쉬운 공간이었어요. 마우스 포테이토가 2층을 점유한 후, 거의 새로운 게임 공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준비를 제대로 해주셔서,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꾸리는 입장에서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그렇게 공들여 준비한 곳에 놓인 레트로 게임기, 콘솔 게임기에 다들 정신을 못 차리시는 모습에 저희도 신이 났답니다. (웃음)
‘웁서울 2024’에 참여한 마우스 포테이토의 부스 풍경
주최 측 관점에서 가장 마음에 든 공간은요?
저희 콘텐츠라서 말하기 좀 민망하긴 한데, ‘웁플래닛OOPlanet’ 체험존이요. 웁은 고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온라인에서 웁플래닛을 먼저 공개하고, 오프라인에서 웁서울을 개최하죠. 이번 웁서울 공간 1층에 웁플래닛을 게임처럼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마우스 포테이토와 협업해 체험존을 마련한 게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게임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가 있구나, 생각하게 됐죠. 웁의 이름으로 웁플래닛과 웁서울,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는 일은 정말 빡세거든요. 작년에 아쉬웠던 부분을 올해에는 무조건 잘되게 만들자고 마음먹었던지라,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에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우쥬러브WOULD YOU LOVE’가 3층에 구현한 공간도 무척 특별했어요. 이번 행사를 위해 세계관을 구축하고 직접 오브제를 만들어 참여했거든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분들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웁의 온라인 플랫폼인 웁플래닛
웁플래닛을 게임 형식으로 경험하도록 돕는 체험존의 모습
입국 수속을 본뜬 티켓 부스도 재미있었어요.
아, 그걸 까먹을 뻔했네요. 웁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에 있는 웁플래닛이 서울에서 여는 행사가 바로 웁서울인데요. 티켓 부스를 입국 심사장처럼 꾸미니까 관람객이 시민증을 받고 들어와서 여러 이벤트와 연계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어요. 그리고 명색이 ‘페스티벌’이잖아요. 그래서 음악이나 조명 연출에 되게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지난 1~2회 때는 여건이 안 돼서 믹스셋mix을 받은 후 BGM으로 틀었어요. 근데 이번에는 디제잉을 하루 종일 라이브로 진행했죠. 커다란 스크린을 배경으로 라이브 디제잉이 몰입도를 높여주니까, 페스티벌 느낌이 한껏 강조되더라고요.
‘웁서울 2024’ 티켓 부스 풍경
라이브 디제잉 풍경
라이브 디제잉이 진짜 신의 한 수였어요. 어두컴컴한 클럽이 아니라 개방된 공간에 흐르는 음악 사이를 쏘다니며 먹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대관으로 행사를 진행하면 부스마다 가벽을 세워서 답답한데, 이번에는 듣도 보도 못한 모듈형 철제 프레임 파티션을 활용해서 시야가 더욱더 탁 트이더라고요. 여러모로 활용하기에 편리하고요. 대체 어디서 구한 거예요?
지금 진짜 정신이 없네요. 저희가 올해 구현한 역작을 자랑하지 않다니요! 예전부터 저희도 나무 가벽을 세우기 싫었거든요. 돈은 돈대로 쓰는데, 자원까지 낭비하는 꼴이라서요. 그래서 두 번, 세 번 재활용할 수 있고, 니즈에 따라 효율적으로 구조를 바꾸면서 장기적으로 쓸 수 있는 파티션을 오랜 기간 고민했어요. 그러다 3년 만에 드디어 성공한 거죠. 6개의 철제 프레임이 한 세트인데, 철판 보드, 행어, 선반 등을 필요한 만큼 더하고 빼서 자기에게 맞는 형태를 갖출 수 있어요. 이번에 어떤 참여자는 프레임 6개를 모두 철판 보드로만 꾸미기도 하고, 선반을 충분히 갖춰서 액세서리류를 담으셨더라고요. 저희 파티션이 인상이 깊었는지, 대여 문의도 받았어요. 지금은 일단 착착 접어서 공장에 보관해 놨답니다.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모듈형 철제 프레임 파티션
이러다 악수가 디자인 회사로 클 수도 있겠어요. (웃음) 이제 2024년도 웁에 대한 정산을 해봤을 텐데, 어떤가요? 수지는 맞았나요?
현재 웁은 매년 적자예요. 웁과 비슷한 규모의 행사를 치르려면 우선 대관비가 어마무시합니다. 설치, 철수, 운영 등 생각보다 정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적자가 당연한 상황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수익을 낼 수 있는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해 3년간 적자를 감수하면서 많은 부분을 다져왔으니까요. 이제 내년에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목표입니다. 응원해 주세요.
입장료를 받는 게 큰 도움이 되지 않나요? 1인 티켓이 2만 5000원잖아요. 1만명만 와도 이게 다 얼마예요.
훨씬 더 많이 와야 해요.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짐작하시겠죠? (웃음) 스폰서 및 참여자 몫으로 돌아가는 초대권 수량도 확보해야 하고요. 올해 목표가 1만 5000명이었는데 약간 미달했어요. 게다가 올해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일요일까지 행사를 이어가지 못해서 더욱더 아쉬웠어요. 일요일에 대관이 안 돼서 토요일 밤에 철수해야 했거든요. 저희로서는 엄청난 도전이었죠. 그래서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밤 7시가 아니라, 밤 10시까지 문을 열었어요. 늦게라도 방문할 수 있도록요. 마지막 날인 토요일에 분위기가 한껏 물어 익으니 정말 애가 닳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더 늦게까지 하고 싶은데, 당일 잡힌 철수 일정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웁서울 2024’ 행사 전경
제가 토요일에 들렀을 때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 있었거든요. 공식 일정이 마감한 뒤에도 사람들이 부스를 정리하면서 다들 못내 아쉬워하더군요.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끼기도 해요. 저희 같은 행사가 거의 없거든요. 뮤직 페스티벌은 라인업을 잘 짜고 헤드라이너가 유명하면 팬들이 우르르 몰려요. 티켓값도 엄청 비싸고요. 그러면 스폰서십도 원활하게 진행되죠. 근데 저희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이라는 지점이 사람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계속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남달라요. 어쩌면 그게 저희의 1차 미션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악수가 그렇게 걱정되진 않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아트 에이전시 일도 활발히 하면서 잘 살고 있는 느낌이라서요. (웃음)
악수가 아트 에이전시 일을 한 지 12년이 됐어요. 여기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웁 같은 행사를 기획할 용기가 생겼죠. 만일 웁으로만 먹고 살 생각이었다면, 1회 치르고 문 닫아야 했을 거예요. 웁은 저희의 열망이 담긴 행사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악수를 운영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보니, 비주얼 아트라고 정의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확장되는 걸 느꼈어요. 이렇게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데 비주얼 아트를 꼭 교과서적으로 좁게 바라봐야만 할까, 우리가 넓혀가면서 재미있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했죠
예를 들면요?
업계에서 정의하는 비주얼 아트는 보통 아트워크를 뜻하잖아요. 그런데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작품뿐만 아니라 이를 보여주는 공간, 연출, 사운드 등도 비주얼 아트의 영역에서 함께 다루면 안 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와 관련해 지원 사업을 따내려고 PT도 여러 번 해봤지만, 저희가 의도하는 개념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단 우리가 하고 싶은 걸 시작이라도 해보자고 일을 벌인 게 2019년이었어요.
웁이 처음으로 열린 게 2022년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니까요. 그렇게 늦어질지 몰랐어요. (웃음) 2019년에 2020년도 대관을 미리 해놨는데, 그때 하필이면 팬데믹이 터진 거예요. 팬데믹이 잠잠해질 때까지 반강제적으로 미뤄지는 과정에서 계속 고민하다 보니, 현재 웁의 뼈대가 잡혔어요. 웁플래닛라는 행성을 일구어 가는 네 명의 히어로가 존재하고, 그들이 대한민국 서울로 내려와 여는 행사가 웁서울이라는 콘셉트 말이죠. 팬데믹 때 유행하던 메타버스에서 초기 영감을 받았어요.
웁플래닛의 히어로들과 전경
웁서울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웁플래닛과 웁서울 간의 서사가 재미있게 정리돼 있더군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까 들은 대로 비주얼 아트에 대한 색다른 정의였어요. “웁은 브랜드의 공간 디자인, 패션쇼의 무대 연출, 아티스트의 작품 등 일상 속에서 다양한 시각적 영감과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비주얼 아트로 정의한다. 웁은 비주얼 아트라는 공통된 범주 안에서 아트, 패션, 음악, F&B, 테크,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담아내는 비주얼 아트의 네트워크이자 허브다.” 웁서울에서 느꼈던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이해되는 느낌이었달까요.
저희는 병이 있어요. 저희가 독보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병. 남들이 잘하는 건 그들이 하면 돼요. 저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나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면에서 비주얼 아트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과 새로운 정의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어요. 예술 하면 진지하거나 고루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예술을 둘러싼 환경까지 폭넓게 포함하면 절대 지루하지 않거든요.
이번 웁서울의 디제잉 부스만 보더라도, 저희가 3D 프린터로 직접 다 만들었어요. 마치 작품처럼요. 다른 행사에서도 DJ가 자신의 부스를 엄청 신경 써서 멋지게 연출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비주얼 아트라고 부르지 않아요. 그냥 공연이라고 하죠. 그래서 저희는 아트워크에만 집중하는 상황에서 딱 집어주고 싶은 거예요. “와 이런 게 진짜 찐으로 멋있는 건데, 이건 왜 아트라고 하면 안 돼? 결국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면 모두 아트 아냐?” 창작자가 본인의 의도와 방향성을 지니고 시각적인 결과물로 만들고 표현하는 것들을 전부 비주얼 아트라고 생각하는 거죠.
한마디로 말하면, “당신이 일상에서 그냥 지나쳤던 거, 사실 다 비주얼 아트입니다.” F&B 브랜드가 맛만 좋아서 성공하지 않잖아요. 로고, 패키지, 공간 등이 시각적으로 인지되어 브랜드로 어필되기 때문인 건데, 이런 활동에서도 우리가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웁의 이름으로 다 초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예요.
‘웁서울 2024’의 라이브 디제잉을 위해 3D 프린터로 만든 부스 모습
어쩌면 악수의 본업인 에이전시의 특징일 수도 있겠네요. 발견하고 연결하고 소개하고.
맞아요. 저희가 활동하는 큰 의미이자 중요한 부분이에요. 실제 웁을 통해 소개된 브랜드와 창작자를 다시 만날 때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은데요. 저희가 조금이라도 일조했다고 생각하면, 웁을 준비하는 데 정말 큰 힘이 돼요. 뿌듯한 기분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에요. 이게 악수의 무기가 될 생각을 하면 기분이 더 좋아져요.
부담되지는 않나요?
새로운 걸 시도하는 일은 항상 힘들어요. 그리고 공감을 받는 데까지 시간이 걸려요. “이걸 왜 이렇게 정의하는 건데? 그러니까 이걸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게 돈이 돼?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데?” 끝없는 질문을 받죠. 이런 건 회사로서 견뎌야 하는 지점이에요. 저희는 믿거든요. 백 번 말로만 웅얼거릴 바에야, 웁처럼 실체화된 행동으로 보여주면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비주얼 아트 신이 확장할 거라고요. 그러면 그 수혜는 악수에도 미칠 거고, 그렇게 성장한 저희는 또다시 더 재미난 일을 시도할 수 있어요.
그만큼 웁에 애정이 많으면, 고민거리도 생길 것 같아요. 만일 어떤 브랜드가 현금 스폰서십을 제의했는데, 그 브랜드가 웁에 어울리지 않는 톤앤매너를 가지고 있다든지, 그들의 부스가 지닌 시각적인 매력도가 너무 떨어진다든지, 이러면 돈과 퀄리티 중 뭐를 선택해야 하는 거죠?
답은 정해져 있어요. 돈이죠. 돈이 있어야 웁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대신 해당 브랜드가 웁의 톤앤매너에 맞는 방향으로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에이전시로서 컨설팅도 하고, 아예 저희가 일을 받아서 외주로 브랜드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할 거예요. 누군가는 피곤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건 엄연히 비즈니스거든요. 악수와 웁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면, 저희는 제안하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웁을 수식하는 정의가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이죠. 참가자들이 다양한 작업과 굿즈를 파는 걸 보면 페어, 즉 마켓이라고 봐도 무방한데요. 왜 페스티벌이에요?
저희가 아트, 패션, 음악, 테크, F&B 등에서 비주얼 아트의 지점들을 쏙쏙 뽑아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이런 흥미로운 지점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풀릴 수 있어요. 작가들은 작품을 보여주면 되고, 전시를 꾸리면 되고, 브랜드는 쇼룸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연출할 수 있죠. 음악가는 음악을 멋지게 표현하면 되고, F&B는 자신의 음식을 멋지게 즐기는 기회를 마련하면 되고요. 대부분 구매 행위로 이어지긴 하지만, 결국 이런 면들이 복합적으로 폭발하는 장은 마켓이 아니라 페스티벌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웁서울 2024’에서는 야외 전시도 진행했다.
‘웁서울 2024’의 특징 중 하나인 F&B 브랜드의 활발한 참여 모습
웁의 정체성이 페어이든, 페스티벌이든 한 가지는 확실한 거 같아요. 지금 매년 두 배씩 성장하고 있어요. 매출액이나 관람객 수는 모르지만, 일단 참여자만 보면요. 2022년 첫해에는 30팀 정도였는데, 이듬해에는 71팀이었고, 올해는 130팀에 육박했어요.
그건 온전히 저희 의지에요. 페스티벌에 걸맞은 규모를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거든요. 그래서 지난 3년간 참여팀을 매년 2배씩 늘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임했어요. 디자인, 예술 관련 페어 중 유명한 곳은 부스만 몇백 개가 훌쩍 넘어가잖아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이라고 이름 붙는 웁이라면 목표로 삼는 수준까지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웁서울 2022’ 행사 전경
‘웁서울 2023’ 행사 전경
‘웁서울 2023’ 행사 전경
그럼 혹시 일차적으로 원하는 규모가 있어요?
‘웁이라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의 규모는 이 정도구나!’ 남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숫자는 300에 5만. 최소한 300곳 이상의 참여팀과 5만명 이상의 유료 관람객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씩 차근차근 성장의 그림을 그려나가며 그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노력도 중요하고요.
사실 제가 토요일에 암행어사 짓을 했어요. 예전에 매거진에서 소개한 ‘원형들’ 부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게 됐는데요. 대표님이 계시길래 인사를 나누다 웁서울에 3년 연속 참가하셨다는 특급 정보를 들으니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웁서울의 평판과 더불어 왜 3년 연속 참가했는지 여쭤봤어요.
오, 뭐라고 하시던가요?
웁서울이 너무 재미있어서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올해는 아예 다른 브랜드와 함께 나왔는데, 원형들을 알리는 일보다 마음에 맞는 브랜드와 참여하는 게 훨씬 기분이 좋다고요.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홍보도 많이 되기에, 웁서울에 오는 건 남는 장사라는 표현도 하시던데, 이거 혹시 미리 작업한 거 아니죠?
흐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근데 그 얘기가 정말 핵심을 찌르네요. 웁서울에 참여한 브랜드가 행사를 통해 멋져 보이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참가 브랜드가 비즈니스적으로 연결이 잘 되면 기분이 진짜 좋아요. 올해에도 모 브랜드가 비즈니스와 관련한 연락을 엄청 많이 받았데요. 워낙 역량 있는 팀이고 파이팅도 넘쳐서 아마 대성할 거예요. 그리고 재밌는 건 이렇게 돌고 돌아서 악수에도 좋은 일이 생긴다는 점이죠. 어찌 됐든 페스티벌이라는 행사가 일종의 플랫폼이잖아요. 그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고 긍정적인 결과를 창출할수록, 다음에 더 좋은 곳이 참여하고, 그러면 웁서울의 가치도 높아지고, 악수의 일 또한 늘어나는 과정이야말로 선순환이라고 생각해요.
‘웁서울 2024’ 행사 전경
‘웁서울 2024’ 행사 전경
그런데 제가 보기엔 문제가 하나 있어요. 웁서울이 만약 입장료 없는 페스티벌이라면 어땠을까요? 성수동에서 열리는 행사를 보러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리지 않았을까요? 그럼 참가자들의 매출도 크게 증대될 거고, 판매 금액에 대한 소정의 수수료를 부스 비용 대신 받는 악수 측의 자금 사정도 나아질 거고, 무엇보다 페스티벌이란 이름에 걸맞게 정말 축제처럼 와글와글했을 텐데요. 제가 경험한 웁서울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놀이공원 느낌이었어요. 한강공원이 아니라요.
이에 대한 입장은 견고해요. 저희는 웁서울의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싶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입장해 저희가 애써 준비한 것들을 무료로 소비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우리 팀이 준비한 행사를 좀 더 가치 있게 대하고 싶달까요. 잘 아시다시피, 입장료를 치른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 사이의 만족도는 크게 차이가 나요. 돈 내고 들어왔는데 행사가 엉망이면 피드백이 정말 최악일 테고, 그 이상의 것을 얻는다면 만족도가 확 올라갈 테죠.
저희는 웁서울에 준비한 콘텐츠에 자신이 있거든요. 그래서 유료라는 장벽 때문에 관람객이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우리를 믿고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을 좀 더 만족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믿어요. 사람 심리하는 게 조금이라도 돈을 지불하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생기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보다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할 일은 콘텐츠의 밀도를 계속 탄탄하게 만드는 거죠. 지하철 타고 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내리는 곳이 아니라, 정말 가고 싶은 목적지가 되고픈 욕심입니다.
‘웁서울 2024’ 행사 전경
‘웁서울 2024’ 행사 전경
웁이 악수에게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인 게 느껴져요.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를 총동원해야 할 텐데, 에이전시로서 쌓은 능력이 웁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먼저 커뮤니케이션이죠. 참가자들과 세심하게 소통하는 게 몸에 뱄으니까요. 그리고 퀄리티 콘트롤이에요. 아무리 작업을 잘하는 작가라도 프로젝트의 성격, 클라이언트의 반응과 상황,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결합하면 산으로 가는 경우가 꼭 생겨요. 그런 징후를 빨리 알아채서 교통정리를 하는 노하우가 웁에도 똑같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웁이 하루아침에 태어날 수 있는 행사가 아니었네요. 지금 인터뷰를 읽은 분 중 상당수는 악수, 그리고 웁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 자리를 빌어 자기 PR을 해주시겠어요?
악수의 목표 중 하나는 비주얼 아트가 지닌 영향력을 시장에 증명하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산출물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거죠. 가끔 창작 행위가 돈이 되냐는 얘기를 듣는데요. 저희는 된다고 확신해요. 다만 그 수가 적을 뿐이죠. 요즘은 부족한 부분을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의 강점을 더욱더 뾰족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대요. 그러니 새로운 기회를 찾고 계신 창작자분들, 크리에이티브한 협업이 필요한 기업 및 브랜드 담당자분들은 다음 이메일로 부담 없이 연락해 주세요. hello@axoocorp.com
깨알 같은 이메일 노출까지… 내년 웁서울이 정말 기대되네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최고의 인터뷰였습니다. (웃음)
Interviewee
악수AXOO(@axooagency)는 전 세계 아티스트와 쌓은 네트워크와 매니지먼트 역량을 기반 삼아, 불가리, 나이키, 삼성전자, 구글플레이 코리아, SM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기업과 아트 컬래버레이션 및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생산한다. ‘비주얼 아트로 전 세계를 연결한다’라는 사명으로 지구 곳곳에서 비주얼 아트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중이다. 지난 2022년부터 매년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 ‘웁OOP’을 개최하고 있으며, 오는 2025년 9월 네 번째 웁이 열릴 예정이다. 디텍팅을 총괄하는 안지성(@jisung_axoo) 대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주귀희(@__girikiri__) 이사가 키 멤버로 활동한다.
Editor
전종현(@harry.jun)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에서 발행한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겸 아트 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뉴닉»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요즘 불황에 신음하는 한국 영화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단연 ‹서울의 봄›입니다. 개봉 6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300만명을 넘겼어요. 영화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일어난 신군부의 쿠데타를 소재로 삼는데요.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언론 통폐합을 단행했답니다. 그때 폐간 통보를 받고 수많은 매체가 사라졌지만, 3개월 만에 복간된 잡지가 있었습니다. 서슬 퍼런 시대에 발행인이 청와대로 편지까지 보내며 살린 주인공은 바로 월간 «디자인»입니다. 1976년 창간해 시대적 조류에 맞춰 리뉴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월간 «디자인»이 이번에 큰 사고(?)를 쳤습니다. 이제 한 달이라는 루틴에서 벗어나 일, 주, 격주, 월. 분기를 아우르며 콘텐츠 발행과 각종 서비스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인데요. 그 뒤에는 ‘디자인플러스Design+’라는 웹사이트와 긴밀히 조응하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대전환이 존재한답니다. 2024년 1월 지면 리뉴얼부터 완료한 월간 «디자인»의 최명환 편집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과연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까요? 궁금하신 분은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제호 디자인부터 표지와 판형까지 리뉴얼한 첫 번째 결과물인 2024년 1월호.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월간 «디자인»(이하 «디자인»)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는 최명환입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월간 «디자인» 최명환 편집장. 사진: 윤선웅(에스플러스튜디오)
최근 «디자인» 리뉴얼 이야기에 앞서, 편집장님의 과거를 잠시 알아볼까요?
저는 2012년 객원 기자로 «디자인»과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그렇게 쭉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21년 4월호 판권부터 편집장이라는 바이라인으로 출현하며 올해 4년 차를 맞았습니다.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어색한 적은 처음이에요. 저희가 서로 안 지 10년이 넘었잖아요.
제가 객원 기자일 때 종현 씨는 인턴 기자였고, 이듬해 함께 «디자인» 기자로 입봉한 사이죠.
그래서 «디자인» 편집장님과 입사 동기라고 밖에서 자랑한단 말이에요.
허허. 제가 그다지 자랑할 만한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요.
전혀요! «디자인» 하면, 1976년 창간해 지령 500호가 훌쩍 넘은 레거시 매체이자, 편집부가 탄탄한 디자인 전문지로 유명한 걸요. 이런 매체의 편집장은 무슨 일을 하나요?
기본적인 업무는 다른 곳과 비슷할 것 같아요.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부를 관리하죠. 디자인이란 주제에 깊게 파고드는 전문지라서 콘텐츠를 기획할 때 편집장과 기자가 의견을 주고받는 관계가 남달라요. 디자인 또한 외부 업체에 맡기지 않고 내부에 있는 아트 디렉터 및 디자이너와 상의한다는 면도 독특하죠.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종합 디자인 전문지의 편집장이란 이유로 국내 디자인 산업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요.
1976년 창간한 월간 «디자인»은 우리나라 디자인 역사를 반추하는 거대한 아카이브나 마찬가지다.
월간 «디자인» 창간호 표지.
예를 들어 어떤 걸까요?
공공기관의 디자인 심사에 참여하거나, 어떤 기업의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컨설팅하거나, 사업 타당성에 대한 의견을 내는 등의 일이에요. 기자로 일할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편집장이 되니까 수행해야 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종현 씨와 저는 내부자였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했지만, 바깥에서는 «디자인»이 공공성을 띤 매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오랜 시간이 축적되면서 디자인계의 공공재가 됐다고 할까요. 그래서 제 능력이나 장점과는 별개로, «디자인» 편집장으로서 이런저런 할 일이 부여되는 것 같아요.
월간 «디자인»은 자체적으로 ‘코리아디자인어워드’를 운영 중이다.
‘한국 유일 종합 디자인 전문지’라는 아우라가 무척 강력하네요. 이런 정체성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시대가 바뀌면서 세상 모든 물건과 활동에 디자인이란 라벨을 붙이고 있잖아요.
이번 리뉴얼을 진행하면서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는 여러 전문가를 모시고 간담회를 진행했는데요. 그때 종현 씨가 말한 지점을 동일하게 짚는 분이 계셨어요. 세상 모든 게 디자인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된 시대에 «디자인»이 무엇을 다뤄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었죠. 그런데 저희가 다루는 대상을 스스로 제한할 수 없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요.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디자인이라고 말하면 나름의 무언가를 지칭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건 디자인이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근데 지금은 디자인하지 않는 것도 디자인 전략의 일부라고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마치 온 세계가 디자인으로 둘러싸인 느낌이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제한을 두어야 하는지 고민해 봤는데, 이미 세상이 변한 걸요. 예전에는 프로덕트 디자인 하면 자동으로 제품을 떠올렸지만, 요새는 스타트업에서 만드는 다양한 서비스를 가리켜 프로덕트 디자인이라고 칭하잖아요. 결국 «디자인»이라는 매체의 숙명은 사회가 디자인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게걸스럽게 포용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어요. 이런 판단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시대적인 상황이 그렇게 짜이고 있으니까요.
그런 관념이 이번 리뉴얼 때 확립된 건가요?
이를 공식화하고 가시화하는 무대가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이미 그전부터 저희는 이게 디자인인지 아닌지, 어디까지 디자인으로 봐야 하는지 고민하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이걸 디자인이라고 말하면 이것도 다뤄봐야겠다, 저것도 디자인이라고 말하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자연스럽게 보폭을 넓히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디자인의 범주를 따지면서 결과물에 집중하다 보면, 디자인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획, 마케팅, 유통 등 다양한 프로세스를 도리어 간과하고 축소할 수 있겠더라고요.
대표적인 예가 요즘 유행하는 팝업 스토어 같아요. 겉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면모가 성공 비결처럼 다가오지만 그 본질은 뚜렷한 목적 아래 기획, 마케팅, 디자인, 시공, 홍보 등이 정교하게 맞물린 협업의 산물이잖아요. 디자이너의 매직 터치만 우길 수 없죠. 팝업 스토어에 대해 크레딧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가 굉장히 많아졌으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프로젝트의 앞단, 윗단까지 더욱더 확장해서 다뤄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제가 «디자인» 리뉴얼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중앙에는 디자이너가 있고, 그 바깥 부분을 따라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존재하는 장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요. 이들은 저희 «디자인»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층이면서도, 동시에 저희가 취재하는 대상이기도 해요.
월간 «디자인»이 다루는 범위는 비단 디자이너에 국한되지 않는다.
흥미롭네요.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어요. 중앙에 있는 디자이너와 바깥에 있는 이해 당사자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넓게 보면 모두 디자인에 참여하는 창작자 같아서요.
그런 의문도 이해되어요. 결국 디자이너를 구분하려면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직업군을 상정해서 바라보았을 때 아직 세상에는 디자이너로 여겨지는 집단이 존재하고, 이런 도식이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입장에서 지금까지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기획자와 마케터처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는 창작자에 대한 관심을 이제라도 차차 넓혀야 하는 당위성을 느끼는 거죠.
누구나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직업군으로 인정받는 전문적인 디자이너는 따로 존재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비록 그 경계가 점점 명확성을 잃어가고 있지만 사회적 통념 아래 디자이너에 속하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그와 긴밀히 협업하는 창작자들, 이해 당사자들까지 함께 다루는 게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성이라고 보면 되려나요?
그렇습니다. (짝짝)
저희 대화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게요. (웃음) 잡지를 리뉴얼한지 한 달이 넘었는데 내외부 반응은 어떤가요?
보통 업계에서 농담 삼아, 리뉴얼해서 좋은 소리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하는데요. 그래서 지금 잘 가고 있는 건지 오히려 걱정이 들기도 해요. 비판적인 목소리나 중립적인 의견보다 ‘좋은 것 같다’라는 느낌적인 반응이 많이 들리거든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 좋아진 것 같고, 콘텐츠도 탄탄해진 것 같다는 의견을 듣다 보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약간 불안해요. 최소한 몇 개월은 더 기다려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최근에 인스타그램으로 리뉴얼에 관한 설문을 진행했는데요. 정돈되고 간결한 느낌이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어요. 밀도 있는 구성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고요. 다만, 여백이 부족해 조금 답답해 보인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이런 피드백을 경청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선해 보려고요. 인스타그램 주요 사용층 때문인지 설문에 참여한 분들 절대다수가 20~30대인 점도 흥미로웠어요. 특정 연령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과정에서 매체 또한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이번 리뉴얼은 꽤 이른 감이 있어요.
2020년 2월호가 가장 근래에 감행한 리뉴얼이었죠. 당시 지령 500호를 맞이했거든요. 제호부터 콘텐츠까지 완전히 바꾼 경우였죠. 제호는 영어 대신 한글을 크게 쓰고, 콘텐츠는 당시 잡지계의 흐름 중 하나인 ‘원 이슈one issue’, 즉 하나의 이슈를 정해 특집을 준비하며 좀 더 탄탄하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방향을 취했어요.
지령 500호를 맞이해 전격적으로 리뉴얼한 2020년 2월호. 한글 제호 디자인이 화제를 모았다.
그때 굉장한 화제를 모았죠. 파격적인 변신 후 사람들의 호응도 좋았다고 들었어요.
사람들 각자가 하나의 미디어로서 정보를 발신하는 게 시대적으로 완전히 정착하는 상황에서 매달 종이로 나오는 월간지가 지니는 물리적, 시간적 한계를 인정해야 했어요. 세상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을 바에는 큐레이션의 날을 더 날카롭게 세우고 깊이 있게 파고드는 전략으로 바꿨죠. 그런데 이 또한 장단점이 있었어요. 이슈에 따라 사람들이 반응하는 감도가 매우 맹렬하더군요.
예를 들면요?
2023년 2월호 ‘케이팝 디자인 아나토미’가 대표적이에요. 시장 반응이 엄청나게 빠르게 와서 순식간에 매진이 됐어요. 그때 일본에 있는 독자가 정성스러운 편지와 함께 책 좀 구할 수 없겠냐고 연락할 정도였어요. 당시 저도 두 권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권을 국제우편으로 보내드렸죠. 2020년 10월호 ‘100개의 숍, 100개의 디자인’, 2022년 4월호 ‘2022-23 CMF 디자인 사전’, 2023년 3월호 ‘그래픽 디자인 교육에 관한 11가지 질문’ 등도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요. 근데 이런 상황이 늘 벌어지지 않는 게 문제죠. 저희도 매체이기 때문에 흥미는 떨어져도 디자인계에 의미 있는 주제를 파고들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가 오면서 콘텐츠에 대해 좋고 싫음의 편차가 심해지니까 대중의 눈치를 자꾸 보게 돼요. 게다가 리뉴얼 효과가 영원할 수도 없고요. 호평이 잦아드는 걸 시장에서 감지할 수 있으니까요.
2023년 2월호 ‘케이팝 디자인 아나토미’, 2023년 3월호 ‘그래픽 디자인 교육에 관한 11가지 질문’.
그럼 이번 리뉴얼의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리뉴얼에서 제일 중요한 건 당위성이잖아요.
지금 가시적인 결과물이 잡지로 나와서 여기에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사실 리뉴얼의 핵심은 지면이 아니에요. 새로 구축 중인 웹사이트가 가장 중요한 파트입니다. 이미 훌륭하게 리뉴얼했던 잡지를 다시 바꾼 이유도 웹사이트와 효과적으로 조응하기 위한 마중물을 만들기 위해서예요.
«디자인»을 위한 독립적인 웹사이트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URL이 어마어마하던데요?
design.co.kr이라는 URL을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죠. 근데 이게 «디자인» 전용 웹사이트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여기를 통해서 «디자인»의 지면 콘텐츠뿐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 콘텐츠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거예요. ‘디자인플러스Design+’라는 이름으로요. 한 달에 한 번 지면으로 다가가는 «디자인»의 관성을 깨고 365일 독자와 함께 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게 디자인플러스의 목표이자, 이번 리뉴얼의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일간, 주간, 격주간, 월간, 분기간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그 중 월간에 해당하는 서비스가 «디자인» 발행이에요. 일간은 매일 업데이트하는 디자인 관련 콘텐츠이고요. 이 두 가지 서비스를 뼈대 삼아 나머지 서비스를 기획 중이죠.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가 긴밀하게 맞아떨어져야만 해서 비교적 이른 시점에 잡지를 다시 리뉴얼하게 되었어요.
이번 월간 «디자인» 리뉴얼은 디지털 서비스 ‘디자인플러스’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듣다 보니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웃음) 이건 리뉴얼을 넘어 트랜스포메이션, 즉 대전환에 가까워 보여요. 어쩌다가 이런 큰 결심을 하게 됐을까요?
결국 시대적 흐름이 큰 역할을 했어요. 혹시 그거 아세요? «디자인» 디지털 버전을 유료로 구매하는 비중이 의외로 커요. E-매거진 형태로 상당히 많이 팔리고요. 밀리의 서재 같은 독서플랫폼에서 «디자인»을 보는 사람도 많아요. 종이 잡지 시장은 불황이지만, 콘텐츠에 대한 니즈는 건재하고, 콘텐츠의 가치에 대한 폄하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조심스레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 «디자인» 콘텐츠를 비롯한 디자인 관련 소식들을 자체 플랫폼에서 효과적으로 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거예요. 더불어 단순히 콘텐츠를 발신하는 행위를 넘어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여러 액티비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붙이려고 해요.
월간 «디자인»은 E-매거진 매출이 점점 오르는 추세다.
«디자인»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변신인 듯해요. 웹사이트는 아직 오픈 준비 중이던데요. 지면 잡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해 주실래요?
전체 리뉴얼 계획 중 현재 완료한 결과물의 예시는 매달 발행하는 잡지죠. 참고로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 모두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에서 리뉴얼 작업을 맡았어요. 결과물에 한정한다면, 일단 가장 큰 변화는 판형을 바꾼 거예요. 저희가 500호 리뉴얼할 때부터 책과 잡지의 중간에서 움직이겠다고 천명하면서 콘텐츠의 구성을 바꿨는데요. 막상 콘텐츠를 담는 틀, 즉 지면 잡지의 판형이 과연 현재 상황에 적합한지 의문을 품고 있었어요. 지금까지의 판형은 시각 정보를 잘 보여주는 데 특화됐거든요. 디자이너가 작업 중 레퍼런스가 필요할 때 «디자인»을 뒤적거리며 아름다운 디자인 작업을 찾는 순간이죠.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요. 아름다운 이미지와 멋진 해외 스타 디자이너의 작품을 넣어도 전처럼 반응이 잘 오지 않아요. 독자가 원하는 게 시원시원한 시각 경험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자 한 가지 이슈에 집중해 정보를 효과적으로 응축하는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가 줄일 수 있는 마지노선까지 판형을 최대한 줄여보았죠. 디자이너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독자들이 랩톱laptop과 함께 핸디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사이즈를 표방하면서요.
이번 리뉴얼은 20여년 유지한 판형까지 바꾸는 승부수를 뒀다.
그리고 보니 판형은 진짜 바뀐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써놨는데, 이번 변경이 19년 11개월 만이에요. (웃음) 스토리텔링에 집중하자는 의견에 따라 콘텐츠도 손봤어요. 일단 특집은 건드릴 부분이 없었어요. 아직 동시대적인 니즈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관성적으로 꼭 넣어야만 했던 섹션에 대해서는 마음을 조금 놓기로 했죠. 오히려 내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디자인 프로젝트 섹션과 뉴스 섹션을 합친 거예요.
드디어 그 좁은 페이지에 깨알처럼 들어가던 뉴스가 해방되는 건가요?
맞습니다. 원이슈에 집중하다 보니 저희가 놓치는 게 있었어요. «디자인»의 강점 중 하나인 동시대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디자인 소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이 뼈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디자인 프로젝트와 뉴스 섹션을 합쳐 명칭은 디자인 프로젝트로 정하고 저희가 한 달 동안 수집한 다양한 디자인 소식 중 편집부 나름의 기준에 따라 선정한 30~40개 남짓의 프로젝트를 좀 더 깊이 있게 소개하기로 했어요. «디자인» 본연의 성격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콘텐츠 면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인 디자인 프로젝트 섹션.
혹시 새로 바뀐 디자인 프로젝트 섹션에서 눈여겨볼 만한 새로운 시도가 있나요?
크레딧을 보강하려고 해요. 이제 디자인 프로젝트에 디자이너 이름만 쓰기엔 곤란한 경우가 많아졌어요. 기획자, 개발자, 협력사, 시공사, 공장 등 프로젝트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이해 당사자도 함께 표기하려고 노력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CMF에 관련한 정보도 더 확충하고 싶고요. 이건 정보의 불균형과도 관련 있어요. 디자이너 혹은 브랜드 입장에서는 밝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매체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발굴하고 취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프로젝트 멋있어요’ 칭찬만 할 게 아니라, 해당 프로젝트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싶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참고가 될 수 있는 정보를 충실하게 담아주고 싶어요.
전 세계에서 나오는 최신 디자인 프로젝트가 셀 수 없이 많은데요. 이 중 30~40개를 고르는 게 가능할까요?
이건 모든 매체가 직면하는 문제점인데요. 공공성, 혁신성, 신선함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요즘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를 보면 심미성을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닐까, 걱정이 들거든요. 그래서 심미성 또한 중요한 기준이라고 봐요. 이런 포인트를 두루두루 다루면서 프로젝트 이면에 담긴 의미가 과연 독자에게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실제 지면에서 볼 때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플러스가 더욱더 중요해요.
디자인 프로젝트 섹션을 통해 월간 «디자인»이라는 매체가 디자인을 바라보는 면면을 엿볼 수 있다.
‘기승전디자인플러스’네요? (웃음)
잘 아시겠지만, 웹 디자인,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등 지면에서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디자인 영역이 있어요. 서비스 디자인이나 리서치 프로젝트처럼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이미지 몇 장으로 그 가치를 전달하기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요. 만약 이런 소식이 지면에만 갇히지 않고 웹사이트에 소개된다면 독자가 훨씬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디자인플러스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어요. 저희가 독자 제보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하거든요.
독자 제보라면 해외 온라인 매거진에서 진행하는 방식으로요?
정확히 말하면, 외국과는 좀 달라요. 거기는 주어진 포맷에 맞춰 글과 자료를 올리면 편집부가 알곡을 고르고 약간의 윤문을 더해 아티클로 발행하는데요. 저희는 제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설기 때문에,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보낼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려고 해요. 가끔 모르는 분이 제 회사 이메일로 디자인 프로젝트를 보내시곤 하는데, 그런 분에게 굉장히 좋은 서비스가 될 거예요. 그리고 디자인플러스에는 «디자인»뿐 아니라 «디자인프레스»도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답니다. 자세한 건 아직 비밀입니다!
디자인플러스가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점이 이해돼요. 근데 아직 대망의 잡지 제호와 표지 디자인 바꾼 얘기를 못 들었네요. 인터뷰가 온오프라인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잡지 제호와 표지 디자인은 일상의실천이 맡았고, 이와 비슷한 톤으로 디자인플러스 웹사이트를 디자인하고 있으니까 결국 인터뷰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표지 디자인에서는 정보의 위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기존 표지는 한글로 크게 ‘디자인’이라는 제호가 존재하고 그 뒷배경으로 이미지가 크게 들어가고, 볼륨 숫자와 특집 제목을 작게 노출하는 게 전부였어요. 이미지 측면에서는 훌륭했지만, 정보를 좀 더 명확하고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위부터 칸칸이 내려오면서 제호 및 날짜, 볼륨 숫자와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등 기본 정보가 펼쳐지고, 특집 제목과 그달의 주요 인터뷰와 주목할 만한 기사 정보까지 넣어서 좀 더 텍스트로 명확하게 콘텐츠를 표기하는 방향으로 바꿨어요.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은 표지에서 정보의 위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월간 «디자인» 표지 디자인 기본 공식.
일상의실천
“제호의 경우 보편적인 의미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근대적 의미의 디자인이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현대 타이포그래피 역시 그로테스크 서체의 활용과 함께 정립되었다는 역사에 착안해 헬베티카, 유니버스 등 전통적인 모더니즘 서체의 골격을 기반으로 하되 알파벳 g, n에 부분적인 변주를 주었습니다. 일반 명사인 ‘Design’의 보편성을 유지하며, 동시대에 통용되는 형식적인 실험을 담아내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는데요. 양장점으로 활동하는 로만 서체 디자이너 양희재 씨와의 협업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합이라는 난제를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커버는 시스템 구축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타이틀과 매거진의 기본 정보, 특집 기사, 서브 인덱스 등의 위계를 정립하고 동일한 간격을 설정해서 독자가 정보를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또한 호마다 특집 기사를 정해진 그리드에 따라 배치해 2단, 3단의 구성이 용이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왼쪽부터) 김경철, 권준호, 김어진
설명을 들으면서 표지를 보니까 확실히 전보다 특징이 명확하네요. 이런 위계가 마치 웹사이트 설계 구조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건 디자인플러스와의 연계 때문인가요?
정확해요. 일상의실천 쪽에서도 표지 디자인을 하면서 웹사이트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부터 얘기해줬어요. 범용적인 템플릿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셈이죠. 그런 면에서 한글 제호를 영문 제호로 바꾼 까닭도 다 연결돼요. 한글 제호가 무척 매력적이었지만, 이 제호를 웹사이트에 가져온다면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한계점이 존재하더군요. 영문과 한글 제호를 함께 표기하는 것도 고민해 봤지만, 아무래도 추후 사용자의 범용성을 생각했을 때 영문이 주는 이점을 무시하기 힘들었어요. 내부적으로, 그리고 일상의실천과도 계속 얘기하다가, 결국 그렇게 판단을 내린 거죠.
리뉴얼 첫 호 표지의 메인 그래픽은 일상의실천이 작업했다.
표지에 적용한 다양한 그래픽 시안들. 매달 책등에 다른 색을 적용해 소장하는 맛을 의도했다.
이제 «디자인» 지면 리뉴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이렇게 꼼꼼한 계획이 결과물로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요. 기대한 만큼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세요?
아직 섣불리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날 거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처음에는 저항감이 더 클 수도 있고요. 익숙함이란 게 무섭잖아요. 게다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과 실제 유저가 사용하면서 느끼는 경험 사이에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판형만 해도 독자 옆에 계속 붙어있고 싶어서 핸디하게 만든 이유도 있지만, 그 저변에는 관리 문제도 있어요. 이제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수납공간이 줄어드니까 잡지를 모은다는 게 굉장한 부담이 됐어요. 게다가 종현 씨도 «디자인» 판형을 잘 아시잖아요. 가로가 약간 길어서 책장에 넣으면 자기 혼자 튀어나오면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하하. 판형은 정말 잘 바꾼 것 같아요. 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결국 이번 «디자인» 대전환은 어떡해서든 독자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큰 역할을 했네요.
맞아요. 365일 붙어있어야죠. (웃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보여주고 싶은 디자인도 계속 있는데 이걸 한 달 간격으로 꾹 참아야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방식, 다양한 주기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법을 개발하는 게 디자인플러스의 주요 목표예요. 그래서 주간으로는 뉴스레터 서비스를, 격주간으로는 팟캐스트까지 고려하고 있답니다. 이와 관련해서 조직 구성을 더 보강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고요. 아까 말한 크레딧 같은 경우는 지면 문제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디자인플러스에서 소화하고 싶어요. 지면에 QR 코드를 넣어서 웹사이트와 연동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할 거고요.
월간 «디자인» 콘텐츠는 디자인플러스를 통해 일간과 월간을 넘나들며 독자와 만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게 아닐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일단 디자이너보다 디자인 프로젝트에 드라이브를 더 강하게 거는 것 같기는 해요. 예전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디자이너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디자이너를 칭찬하는 기사만 쓸 수는 없잖아요. 디자인 프로젝트에 집중할 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리뉴얼에서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디자인플러스에서 제공하는 주요 서비스 중 하나가 바로 디자이너 DB랍니다. «디자인»에 나온 디자이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그들과 관련한 정보와 기사를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 건데요. 만일 일상의실천이 작업한 프로젝트가 지면에 소개되면 QR 코드를 통해 디자인플러스 내 디자이너 DB에 접속해서 그동안 쌓인 일상의실천에 대한 정보를 모바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독자는 디자이너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도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해 핵심만 표현할 수 있겠죠. DB는 내부적으로 계속 의논 중이라 아직 뭐라 말하기엔 시기상조 같아요. 다만 리뉴얼 얘기가 나올 때부터 저희 발행인님의 가장 큰 ‘관심사’라는 점만 밝힐게요…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디자이너 DB가 꼭 성공하길 기원할게요! 그럼, 디자인플러스 서비스를 오픈하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큰 프로젝트이다 보니 순차적으로 오픈할 것 같아요. 일단 일일 콘텐츠와 제보 서비스는 1/4분기에 선보일 예정이고요. 나머지 서비스 또한 올 하반기에 무사히 공개하면 좋겠습니다.
디자인플러스가 염두에 두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을까요?
최소한 한국의 디자인 소식들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영양가 있는 플랫폼으로 여겨지면 좋겠어요. 분량과 속도를 어느 정도 커버한다는 가정하에, 매 순간 주목해야 할 디자인 프로젝트를 여기서 손쉽게 볼 수 있다는 대중적인 인식이 생기는 거죠. 잡지사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넘어 다양한 액티비티가 일어나는 커뮤니티로 거듭나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디자인플러스 로고 간략화 버전.
이민형 디자인하우스 디자인사업부문장 겸 디자인프레스 대표
“총 6년간 ‘네이버디자인’을 기획·운영하면서 디자인 정보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크다는 사실을 트래픽 등 객관적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디지털로 정보를 전달하는 여러 방식을 실험하며 경험치도 쌓았죠. 이제 더 늦기 전에 매개자로서의 역할과 방식을 재정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집과 발행의 완전한 대전환은 아직 힘들지만, 몇 가지 프로세스만 개선해도 동시대에 훨씬 적합한 효율적인 매개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긴 거죠. 이번 모험은 ‘«디자인»이 현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디자인»과 네이버디자인을 운영한 멤버가 오랜 기간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결과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매체를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매체가 기존에 화두로 삼던 ‘디자이너 프로모션’을 ‘디자이너와 비즈니스 간의 매개자’로 재정립하며, 48년째 축적 중인 DB를 디자인계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단박에 바꾸는 건 욕심이죠. 이번 환골탈태는 오는 12월에 마무리될 거예요. 말 그대로 대전환의 한 해입니다.”
이민형 디자인하우스 디자인사업부문장 겸 디자인프레스 대표.
그럼 «디자인» 편집장으로서 올해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요?
지금 준비하는 것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게 가장 크고 중요한 목표예요. 더 이상 일을 벌이기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잘 이행하고, 내부의 디테일을 잡아가는 거죠. 편집장이 되고 나서 제 존재를 알리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독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고 모더레이터도 맡고 그랬는데요. 이제는 새롭게 바뀐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대망의 마지막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부탁드릴게요.
음. 뭐라고 해야 하죠? «비애티튜드»만큼 «디자인»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웃음) 디자인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국한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아요. 디자인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알아가는 걸 교양처럼 간주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기본 교양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디자인»과 디자인플러스를 찾아주시면 감사합니다. 참고로 «디자인»은 한 권에 1만 5000원으로 배달 음식 한 번만 참으면 된답니다.
월간 «디자인» 2024년 2월호 ‘트렌드 히치하이커를 위한 팝업 스토어 안내서’.
Interviewee
최명환은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편집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디자이너로서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자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 진학했다가, 디자인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일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다양한 매거진에 객원으로 참여하며 2013년 월간 «디자인» 기자로 정식 합류했고, 지금까지 디자인 전방위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2021년부터 월간 «디자인»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 디지털산업계 최대 행사인 ‘앤어워드A.N.D.Award’,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예디자인 스타상품 개발, 한국실내건축가협회에서 주관하는 ‘골든스케일베스트디자인어워드’ 등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와 함께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지난 9월 한국 매스컴이 들썩였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미디어 아트 공모전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시상식에서 한국의 김아영 작가가 최고상인 골든 니카를 받은 것인데요. 한국인 최초라는 사실 때문에 화제를 모았답니다. 김아영 작가는 여러모로 독특한 인물입니다. 시각 디자인, 사진,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한국 근현대사, 지정학, 이송, 초국적 이동 등의 역사적 사실과 동시대 첨예한 이슈를 복합적으로 재구성해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소설, 텍스트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차원적이고 유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왔어요. 미술계와 영화계를 가로지르는 커리어를 보면 놀라울 따름인데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성지, 린츠에서 만난 김아영 작가와의 대화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오스트리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 린츠(Linz). 아돌프 히틀러의 마음속 고향이자 그가 은퇴 후 지낼 곳으로 낙점하며 나치 독일의 문화중심지로 예정됐던 곳. 철강 산업의 부흥으로 윤택해졌지만, 칙칙한 오염 도시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던 이 사연 많은 도시는 지난 2009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지정됐다. 지리적으로 빈과 잘츠부르크라는 유명 문화 도시 사이에 자리 잡은 린츠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뉴미디어 아트 관련 공공재단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가 1979년부터 운영한 세계 최초의 미디어 아트 축제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9월 전 세계 미디어 아티스트의 발걸음을 모으는 힘은 린츠가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문화 도시의 이미지를 선구적으로 쌓는 데 결정적인 지분을 차지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의 꽃은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다. 1987년부터 글로벌 단위로 공모한 작품 중 우수작을 가리는 무대로 ‘미디어 아트계의 오스카’라는 별칭이 붙는다. 총 네 개 부문에 걸쳐 98개국, 3176점의 작품이 밀려든 올해, 생각하지 못한 낭보가 터졌다. 한국의 김아영 작가가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Golden Nica’를 받은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상으로 루브르 박물관의 명물인 ‹사모트라케의 니케›의 모습을 본떠 금박을 입힌 트로피는 미디어 아티스트에게 꿈결 같은 존재. 작년 발표한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로 그는 ‘승리의 여신상’을 손에 넣은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이번 수상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는 ‘운송수단을 통한 시공간의 재편’이라는 작가의 기존 관심사와 더불어 ‘가능 세계(Possible Worlds)’ 이론이 서사의 축을 이룬다. 우리가 발을 딛는 현실 세계 외에도 수없이 많은 ‘가능성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설정 아래, 서울에서 여성 라이더로 일하는 에른스트 모Ernst Mo라는 현실 세계 속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딜리버리 댄서Delivery Dancer’라는 배달 플랫폼에 속한 그는 배달앱 ‘댄스마스터Dancemaster’를 통해 끊임없이 갱신하는 배달 경로를 무한 질주하다가,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가능 세계에 사는 상대 개체인 엔 스톰En Storm을 만나게 된다. 절대 중첩하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에 있던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어느 순간 접점을 이루며, 혼란과 갈등, 애정 섞인 감정의 파고를 겪는다. 지나쳐 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다 360°로 합쳐지는 영상 속 두 개의 구처럼 말이다.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Official Trailer
린츠의 한적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작가는 “스케일이 큰 아트 앤 테크 작업을 대거 선보이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얼떨떨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살짝 되돌아보자. 한국의 근대화 문제를 다룬 ‹어느 도시 이야기› 연작, 석유 자본의 이동으로 20세기 역사를 되짚은 ‹제페트› 연작, 난민 이주와 데이터의 이동을 동시에 환기시킨 ‹다공성 계곡› 연작, 포스트 팬데믹과 기후 변화,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룬 ‹수리솔 수중 연구소› 연작 등 작품마다 치밀한 리서치를 통해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사변적인 픽션을 만들며 영상, VR, 설치, 음악극, 퍼포먼스, 출판 등 특정 장르에 매이지 않고 작품을 구현한 면모는 확실히 비상하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측이 그에게 골든 니카를 안긴 것 또한 매번 자신을 뛰어넘는 도전을 이어온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응원의 결과일 테다. 김아영 작가의 수상을 거듭 축하하며, 대화를 청해보았다.
수상자가 발표된 후 한국 미디어에 나온 기사들을 찾아봤어요. ‘김아영 작가, 미디어 아트계의 아카데미상 받다’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네요. (웃음)
생각 외로 국내 미술 매체보다 일반적인 뉴스 미디어에서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첫 한국인 수상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국가 위상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심사 과정은 어떤가요?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인지도가 높지만,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행사라서 더욱 궁금하네요.
사실 제 작업은 컨템포러리 아트이지, 아트 앤 테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상은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공모를 통한 작품은 물론, 심사위원 다섯 명이 각각 추천하는 작품들도 심사에 포함한다고 들었는데요.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김치앤칩스로 활동하는 손미미 선생님이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저를 추천해 주셨어요. 무엇보다 이번 수상은 우주의 기운이 도와 많은 운이 작동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사위원 중 노라 오무르츠Nora O’ Murchú라는 분은 베를린에서 열리는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 디렉터세요. 작년에 직접 제 스튜디오를 방문하셨고, 저 또한 올해 1월 트랜스미디알레에 초대되어 발표한 적도 있었죠. 심사위원 다섯 명 중 두 명이나 자기 작업을 잘 알고, 좋은 관계로 지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물론 심사위원 전원이 동의한 작품에만 상을 수여하지만요. 올해 뉴 애니메이션 아트로 섹션을 개편하면서 테크놀로지에 중점을 뒀던 이전과 달리 예술적인 실험을 더욱 중시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경향성을 내보일 수 있는 작업으로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선정했고, 한국인으로서 첫 번째 수상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정말 기뻤어요.
작품 속 주인공이 일하는 배달 플랫폼은 딜리버리 댄서, 배달앱은 댄스마스터에요. 라이더 계급 중 주인공이 속한 가장 윗단의 명칭은 ‘고스트 댄서’고요. 배달을 춤에 비유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실제 서울에서 활동하는 배달 라이더분들은 시내의 무수한 경로를 내비게이션을 따라 종횡무진 달리세요. 새로운 경로를 달리고, 갔던 곳을 또 가는 일을 한창 하다 보면 내비게이션 경로가 정말 거미줄처럼 쌓이죠. 서울이라는 도시의 미로에 갇힌 듯이 그 안을 위태롭게 달리는 모습은 마치 비틀거리는 춤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딜리버리 댄서라는 표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7년 차 베테랑 여성 라이더분을 수소문해 인터뷰도 하고, 오토바이에 동승해 서울을 누볐는데요. 팬데믹 기간 동안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함께 배달 다니는 일이 그렇게도 신나고 즐겁더군요. 동시에 라이더분이 주행하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니, 달리는 도로의 실제 상황보다 배달앱에 집중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어요. 배달 라이더가 돈을 벌려면 끊임없이 콜을 받아야 해요. 한 건을 배달하는 와중에 두세 건의 배달을 동시에 업고, 그 중 취소된 건도 확인하는 등 멀티콜을 운용하는 스킬이 꼭 필요하죠. 이렇게 여러 개의 콜을 동시에 받는 게 경제적인 생존과 직결되다 보니, 몸의 감각이 배달 알고리즘에 모두 종속되어 앱이 종용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느꼈어요.
에른스트 모 역할을 맡은 분은 실제 라이더로 활동하나요? 에른스트 모를 직접 촬영한 장면과 3D로 구현한 장면이 영상에 함께 등장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영상에 등장하는 분은 배우입니다. (웃음) 이번 작품에는 이미지 제작 방식을 다채롭게 활용했어요. 먼저 실사 촬영 장면과 게임 엔진으로 시뮬레이션한 질주 장면, 그리고 ‘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센서로 서울 곳곳의 좁은 골목을 스캔해 만든 시퀀스가 혼재됐죠. 각 장면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서로 계속 충돌하는데요.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실제 라이더분들이 이렇게 일하시잖아요. 한 세계에 안주할 수 없고 가상과 실재를 오가야만 하는 삶에는 특유의 에너지와 불협화음이 존재해요.
여러 방식을 혼용한 덕분인지 영상 속 서울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디스토피아 도시처럼 보이더군요.
팬데믹이 진행되면서 거의 2년 넘게 서울 밖을 못 나갔어요. 한 곳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정말 오랜만에 오니까, 심호흡하기 어려울 정도로 답답하더군요. 하지만 동시에 서울이란 공간을 미시적으로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피는 계기가 됐어요. 이를테면, 영상 초반에 에른스트 모가 두무개길, 사직터널, 가산디지털단지 등 서울 여러 구역에서 엔 스톰을 봤다고 상담사와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런 지명은 의도적으로 넣은 거예요. 그곳의 로컬리티에 대한 애정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퓨처리즘Asia-futurism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아시아 퓨처리즘은 아시아인이 주체가 되어 아시아의 미래를 바라보는 담론인데요. 테크노 오리엔탈리즘Techno-Orientalism은 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의미가 전혀 달라요. 테크놀로지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뛰어난 기술 제공자지만, 동시에 감정이 없고 기계적인 존재로 아시아인을 간주하거든요. 저는 아시아 퓨처리즘에 더 관심이 많아요. 새로운 관점으로 아시아인이 주인공인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전 작업인 ‹수리솔 수중 연구소› 연작에도 아시아 퓨처리즘의 관점을 녹여냈습니다.
팬데믹 시기에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는데 막상 여성 배달 라이더를 본 적이 없어요.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거죠. 작품을 만들면서 여성 바이크 애호가 커뮤니티 ‘치맛바람 라이더스’ 회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요. 커뮤니티를 만든 이유를 물어보니, 오토바이를 타고 밖에 나가면 운전에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건 물론이고, 성적인 농담과 플러팅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매일 같이 발생한대요. 직업과 상관없이 여성이 오토바이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안 좋은 경험을 겪기 싫어서 여성 라이더끼리 서로 연대하고, 교육하고, 바이크를 즐기기 위한 모임을 만든 게 시작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게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긴 한데, 이제 21세기쯤 되면 안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요? 에른스트 모만 해도 최상위 라이더 계급인 고스트 댄서인데 말이죠.
해당 작업에 힘을 부여하는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예민 난민 출신의 여성 연구원인 소하일라Sohila AlBna’a를 등장시켰어요. ‹수리솔 수중 연구소›를 작업하기 전에 ‹다공성 계곡 2›을 만들었는데요. 당시 제주도에 온 예민 난민을 인터뷰했어요. 그때 만난 야스민이라는 친구의 이야기가 제게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죠. 야스민은 남편이나 남성 보호자 없이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무슬림 여성인데요. 이런 경우가 실제로는 매우 드물다고 해요.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내내 ‘나는 고결한 인간이고, 아무도 내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자기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어요. 그래서 이런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싶어서 ‹수리솔 수중 연구소›의 주인공을 예멘 여성 이주자로 설정했는데,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야스민이 작품에 참여하지 못했죠. 생각해 보니, 저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비록 미래가 불투명하더라도 목숨을 건 여정에 뛰어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유독 좋아하는 것 같네요. 여전히 그들의 모험과 용기에 크게 감동합니다.
작년에 열린 개인전 «문법과 마법»에서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선보인 바 있는데요. 그때와 달리 이번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전시장에는 해당 영상 한 점만 설치했더군요.
갤러리현대에서 열렸던 개인전은 여러 층을 활용할 수 있어서 인스톨레이션 작품 수가 꽤 됐어요.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그때 처음으로 전시했는데, 스크리닝 외에도 두 개의 헬멧을 함께 노려보듯 세우고, 그 안에서 애니메이션을 재생하는 설치 작업도 선보였죠. 사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측에서도 헬멧 설치 작업을 함께 보여주길 원했는데, 다들 무게가 꽤 나가는 부품들이라 직접 린츠까지 모두 들고 와 전시하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다른 유럽 영화제에서도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상영했는데요. ‘서울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여성’이라는 설정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현지 반응이 궁금해지네요. 유럽과 한국의 배달 문화는 꽤 다르지 않나요?
올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와 바젤 시립영화관에서 작품을 보일 기회가 있었어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때 보니, 그들도 배달 문화를 어렵지 않게 이해한 것 같더군요.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배달앱이 활성화돼서 그러나 봐요. 물론 유럽은 오토바이보다 자전거로 배달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처럼 배달 때문에 목숨 걸고 주행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요. 그럼에도 어떤 관객은 작품 속 배달 라이더가 처한 상황과 그 감정에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는 피드백을 줬어요. 사실 배달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한국의 배달 문화에 지옥 같은 경쟁 사회의 특수성이 녹아 있는 게 문제죠. 그런 면에서 ‹기생충›,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통해 한국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 내는 극단적인 사회 불평등에 대해서 이미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배달 문화는 그들의 일상에서 보기 어려워서 신기하기도 하고 픽션이라고 느낄 수 있을 텐데,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사람들이 제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지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비주얼 요소만 즐겨도 되고, 그 안의 이야기를 더 궁금해해도 괜찮고요. 어떻게든 작품을 본다는 게 중요하고, 감사하죠. (웃음)
혹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일단, 프리즈 런던 20주년을 기념해 신설한 ‘Artists-to-Artist’ 섹션에 초대받았어요.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8명이 젊은 작가 8명을 노미네이트해 부스 형태로 개인전을 여는 건데요. 감사하게도 양혜규 작가님이 추천해 주셨어요. 주목도가 높은 행사일 것 같아서 프리즈 런던을 잘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 핀란드와 일본, 이탈리아에서 스크리닝 행사가 있고요. 지금 ‹딜리버리 댄서 2›를 제작하고 있는데,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호주영상센터(ACMI)에서 내년 8월 처음으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서울이 수많은 가능 세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알게 되면서 여러 우주를 오가는 내용이 될 것 같아요. 이전 작업과는 다르게 무용수들의 모션 캡쳐를 활용한 액션 장면이 들어갑니다.
수상과는 무관하게 원래 잡힌 일정이 있었는데요. 상을 받으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정확하게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는 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죠. 영화계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만들어 내는 신은 서로 다르거든요. 그래도 이번 수상 덕분에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지겠구나, 생각은 들어요. 끊임없이 자기 증명과 인정 투쟁을 해야 하는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계속 증명하는 과정은 지긋지긋하지요. 이제 숨 한번은 고르고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아영은 한국에서 시각 디자인, 영국에서 사진과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주로 유럽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한국 근현대사, 지정학, 이송, 초국적 이동 등의 역사적 사실과 동시대 첨예한 이슈를 복합적으로 재구성해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소설, 텍스트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차원적이고 유동적인 이야기로 창조하는 데 몰두한다. 기존의 영상 미학을 벗어난 독창적 접근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 샤르자 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 관두 비엔날레, 아시안 아트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이미지 포럼 페스티벌, 멜버른 페스티벌,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베를린 Sci-fi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 팔레 드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영국 왕립미술아카데미, 사치갤러리 등에서 선보였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 2023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골든 니카상에 선정됐다.
박은지는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UdK) 박사 과정에 참여 중이다. 아티스트 북의 서지정보를 LOD로 발행해 컬렉션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디자인프레스», «월간 디자인», «퍼블릭 아트» 등에 기고했다. udk-berlin.academia.edu/EunJiPark
머쉬룸컴퍼니와 함께한 네 번째 아티클을 공개합니다. 이번 주인공은 더보이즈의 상연과 제이콥이에요. 2017년 데뷔한 11인조 보이그룹 더보이즈는 어느덧 데뷔 7년 차를 맞이했는데요. 이번 머쉬룸라이브에 출연한 상연과 제이콥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기브온Giveon의 ‘Heartbreak Anniversary’를 선보이며, 칼군무로 유명한 더보이즈의 무대와는 다른 결의 무대를 준비했답니다. 알고 보니 음색 좋은 두 멤버의 무대를 기획하고 싶었던 머쉬룸컴퍼니의 계획이었다네요. 머쉬룸컴퍼니가 직접 소개하는 영상의 관전 포인트와 더보이즈의 상연, 제이콥과 나눈 독점 인터뷰를 지금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더보이즈는 워낙 활발하게 활동하는 케이팝 아티스트입니다. 더보이즈가 컴백할 때마다 ‹엠카운트다운›에서 종종 마주치기도 했죠. 당시 무대 위 멤버들의 아우라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퇴사 후 기획한 왓챠의 오리지널 시리즈 ‹다음 빈칸을 채우시오›에서 더보이즈의 멤버인 ‘큐’ 님을 섭외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이어져 온 머쉬룸컴퍼니와 더보이즈와의 인연이, 이번 머쉬룸라이브 무대를 완성한 것 같아요.
상연 님과 제이콥 님이 커버한 노래는 한국에서도 워낙 유명한 기브온Giveon의 ‘Heartbreak Anniversary’입니다. 이별한 지 딱 1년 되는 날을 홀로 기념하는 내용의 곡이에요. 스토리에 어울리도록 요란한 파티가 끝나고 난 뒤의 쓸쓸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품으로 무대를 꾸민 이유랍니다. 일부러 여백을 많이 남긴 앵글이라든가, 외로운 뒷모습 등으로 영상에 포인트를 더했어요.
더보이즈에서 상연 님과 제이콥 님은 본인만의 음색이 워낙 좋은 멤버예요. 멤버 수가 많고, 군무로 유명한 그룹이라 두 분의 음색에 귀 기울일 기회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두 분 모두 표현력이 좋아요. 그래서 클로즈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보는 분들이 라이브 영상을 즐길 수 있길 바랐어요. 이번 무대가 두 분의 ‘이면에 있던’ 매력을 끌어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비애티튜드›는 동시대 창작자의 태도를 다루는 문화·예술 매거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상연 : 안녕하세요. 더보이즈 상연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이콥 : 안녕하세요! 더보이즈의 스윗 보이스 제이콥입니다!
머쉬룸컴퍼니의 머쉬룸라이브 시즌 4를 통해 팬분들을 만나게 되셨는데요. 상연 님과 제이콥 님이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상연 : 워낙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제이콥도 보컬 멤버거든요. 머쉬룸라이브에서 같이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이콥 : 회사를 통해 연락이 왔는데, 좋은 기회일 것 같아서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웃음)
이번 머쉬룸라이브에서 기브온Giveon의 ‘Heartbreak Anniversary’를 커버하신 점이 신선했어요. 기존 더보이즈가 선보인 노래와 무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아서요. 이번 라이브에서 해당 곡을 선택하신 이유를 여쭤보고 싶어요.
상연 : 저와 제이콥은 R&B 스타일을 좋아하는데요. 제이콥이 이 곡을 추천해주더라고요. 좋은 곡을 알게 되어 기뻤고, 제이콥에게 바로 이 곡으로 하자고 말했어요. (웃음)
제이콥 : 머쉬룸라이브에서 부르고 싶은 여러 노래를 생각해 봤는데요. 기브온Giveon의 ‘Heartbreak Anniversary’가 저랑 상연이 형, 둘 다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라이브에서 유일한 듀오세요. 여러 가지 준비할 게 많았을 것 같은데요. 두 분은 각자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셨나요?
상연 : 합을 가장 많이 신경 썼어요. 화음을 많이 맞춰 봤습니다.
제이콥 : 최대한 제 스타일로 부르면서, 상연이 형이랑 잘 어우러지게 하려고 했어요!
더보이즈로 데뷔한 후 수많은 라이브 무대에 오르셨어요. 머쉬룸라이브는 다른 무대와 어떤 면에서 다르던가요? 머쉬룸라이브만의 독특한 매력을 어떤 지점에서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상연 : 엄청난 세트를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셔서 미래 공간에서 촬영하는 기분이었어요.
제이콥 : 세트장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세트 덕분에 곡 분위기에 맞게 잘 부를 수 있었어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더보이즈의 상연 님과 제이콥 님을 집중 탐구해볼까 합니다. (웃음) 더보이즈는 2017년에 데뷔했어요. 두 분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연습생으로 데뷔를 준비하셨고요. K팝 아티스트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상연 : 저는 가수나 연기자 같은 연예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요. 연습생을 하면서 멜론 뮤직 어워드 무대를 접하고 K팝 가수가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돌을 선택했습니다.
제이콥 : 저는 처음에 공연을 경험하려고 글로벌 오디션을 봤었어요. 오디션에 통과해 한국에서 연습생을 하게 되었죠. 연습하면서 더욱더 K팝에 관심이 생겼고, 아이돌이 되고 싶어졌던 것 같아요!
더보이즈 하면 역시 퍼포먼스를 빼놓을 수 없어요. 엠넷에서 방영한 ‹로드 투 킹덤›과 ‹킹덤›에서 선보인 화려한 퍼포먼스에 대한 기억이 강렬해요. 매번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는 건 K팝 아티스트에게 피할 수 없는 숙제일 텐데요. 더보이즈 분들은 무대를 기획할 때 서로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정리하고 반영하시나요?
상연 : 전부 반응이 좋아서 하나를 꼽기 어려운데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멤버와 회사에 공유하고 상의해서 계획을 세우는 편입니다.
제이콥 :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안무 선생님과 회사에 이야기하면서, 무대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거 같아요!
모든 아티스트의 목표는 완벽한 무대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매 순간 노력하실 텐데요. 무대에 오르기 전 두 분이 각각 스스로 되뇌는 말이나 긴장을 떨쳐버리기 위해 상상하는 이미지가 궁금합니다.
상연 : 항상 저희 팀 구호를 외치고 시작합니다. GET IT~ GOT IT!
제이콥 : 저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계속 안무를 복기하는 것 같아요. 틀리면 안 되니까 딱 오르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런 스루run through를 하고 있어요!
아이돌은 엔터테이너로서 다양한 매력을 선보이는 데 능한 분들이에요. 노래와 춤, 퍼포먼스뿐 아니라 종합적인 창작자로서 다양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이를 위해 두 분은 평소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상연 : 지하에서 죽어라 연습합니다. (웃음) 얼마나 걸리든, 완벽하게 몸에 익을 때까지요.
제이콥 : 저는 사실 노래와 기타를 좋아해서 K팝 아이돌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것 말고도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는데, 요즘엔 매일매일 고민하고 계속 노력하면서 더 잘하려 노력합니다!
두 분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자작곡을 발표하기도 하셨는데요. 어디서 어떻게 영감을 얻어 작업하시는지 궁금해요.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DESIGN» «SPACE 空間» «NOBLESSE»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HUFFINGTON POST KOREA»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BRIQUE»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THE EDIT» «LUXURY» «AVENUEL»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활동했다.
머쉬룸컴퍼니와 함께한 세 번째 아티클을 공개합니다. 이번 주인공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아티스트 씨피카(CIFIKA)예요. 2016년 데뷔한 그는 2018년 제15회 한국 대중 음악상 최우수 댄스 & 일렉트로닉 노래상을 수상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죠. 2021년엔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하이드로복스Hydrovox’를 공개하며 해외 매체에서 다뤄지기도 했고요. 그런 그가 지난 3월엔 새로운 정규 앨범 ‹ION›으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습니다. 머쉬룸라이브에서는 수록곡 중 하나인 ‘Melody’를 선보였는데요. «비애티튜드»와의 인터뷰에서 머쉬룸컴퍼니의 두 PD는 ‘마음이 뭉클해지는 무대였다’고 답했죠. 머쉬룸컴퍼니가 직접 소개하는 영상의 관전 포인트와 씨피카와의 독점 아티스트 인터뷰를 지금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씨피카와 저희는 오랜 친구예요. 2017년 ‹타인의 삶›이란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출연자 중 한 명이 씨피카였죠. 이후 꾸준히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며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씨피카의 음악 작업을 늘 지켜 보고 있었어요. 머쉬룸컴퍼니를 창업한 이후에는 씨피카의 신보가 나올 때 다시 협업해야겠다고 생각해 왔죠. 이번 시즌이 그런 열망에 대한 기회가 됐답니다.
씨피카는 순수함을 지닌 아티스트입니다.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편견 없이 세상을 흡수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늘 낯선 매력을 주는 존재죠. 이번 무대에서는 씨피카의 그런 모습을 끌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대 미술 콘셉트는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생명체’로 정했어요. 인간이 감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존재하며 반짝이는 장소와 물체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씨피카의 머쉬룸라이브 무대는 개인적으로 무척 특별해요. 2017년의 씨피카와 지금의 씨피카는 다르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씨피카의 ‘Melody’를 라이브로 듣고 있자니, 저희 셋이 처음 만났던 그해 여름이 생각났어요. 씨피카를 하늘 공원에 데려가 김창완 선생님의 ‘청춘’을 부르게 했는데요. 그때를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지더라고요. 씨피카의 라이브가 그만큼 힘이 있다는 의미겠죠? (웃음) 이 친구도 계속 변화하고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씨피카와 머쉬룸라이브를 함께 하는 시간이 조금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숭고하게 느껴졌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비애티튜드›는 동시대 창작자의 태도를 다루는 문화·예술 매거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인사 말씀과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프로듀서, 그리고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는 씨피카입니다. 반갑습니다
머쉬룸컴퍼니의 머쉬룸라이브 시즌 4를 통해 팬분들과 특별한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씨피카 님은 머쉬룸라이브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셨나요?
머쉬룸라이브를 기획하는 두 명의 피디는 제 친구이기도 한데요. 두 친구가 개인 프로젝트로 ‹타인의 삶›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작업할 때 저를 섭외하며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몇 달 동안 촬영하며 씨피카의 초기 시절을 있는 그대로, 가장 순수하게 담아냈던 기억이 남습니다. 그 이후로 지속적인 교류를 했는데요. 두 명이 새로운 방향으로 기획·제작 활동을 시작한 게 머쉬룸컴퍼니이고, 드디어 제 신규 앨범도 나와서, 행복한 명분 아래 다시 카메라를 마주하게 되었네요. (웃음)
지난 3월 새로운 정규 앨범 ‹ION›을 발표하시면서 컴백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이번 앨범에는 ‘모든 감정의 연금술사’인 제가 서투른 방법으로 감정을 다루며 일어나는 환희와 좌절, 희망 등 여러 에너지를 담았어요. 팬데믹 사태와 개인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음악을 만든 스스로에 대한 희망가도 들어있죠.
이번 머쉬룸라이브에서 ‹ION›에 수록된 트랙인 ‘Melody’를 선보이셨어요. 선곡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저의 소중한 지원자이자 매니저인 이승준 대표의 의견이었습니다. 곧 ‘Melody’의 MV를 공개하기 때문에 이와 맞추어 적극적으로 홍보하자는 계획이었죠. (웃음) ‘Melody’는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쓴 곡으로 무척 단순한데요. 단순해서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에서 반응이 좋아서 감사히 활동하고 있어요.
‹ION› 앨범 커버
씨피카 님은 수많은 라이브 무대에 오르셨는데요. 이번에 경험한 머쉬룸라이브는 다른 무대와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머쉬룸라이브만이 지닌 독특한 매력은 어느 지점에서 느끼셨나요?
저는 이상하게 무대가 멋지면 멋질수록, 무대와 저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어요. 마치 무대가 나무처럼 살아있는 유기체라면, 저는 그 나무에 붙어 살아가는 버섯으로 느껴진달까요. 머쉬룸라이브 무대에는 디자이너 한킴의 옷을 입고 출연했는데요. 무대를 둘러보니 옷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세팅이어서 놀랐어요. 투명 재질의 아크릴 작품이 구겨져 있고 그 주변으로는 멋진 원단과 플라스틱 숲(plastic forest)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가상 현실 플랫폼 게임인 VRChat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영화 ‹아바타›도 생각났고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씨피카 님을 집중 탐구해볼까 해요. (웃음) 씨피카 님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을 진행하고 계세요. 이번 정규 앨범 발표 전에 선보인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하이드로복스Hydrovox’만 하더라도 해외 매체에서 다룰 만큼 화제를 불렀다고 알고 있어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작년부터 완전히 독립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 시점에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의 오프닝 공연 섭외가 들어왔죠. 해당 전시는 SF를 주제로 여러 나라의 작가가 모인 아주 멋진 전시였는데요. 저도 그에 걸맞는 공연을 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마이크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넘어서는 수준으로요. 그래서 당시 새로 사귄 친구였던 조명 디자이너 LOKSU와 ‘하이드로복스’ 프로젝트를 계획했습니다. 오디오 비주얼은 저희 둘 다 처음이었고 시행 착오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황홀하고 아름다운 무대가 완성되었죠. 그리고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디자이너 혜인서가 의상 제작에 참여해 주었고, 헤어 디자인은 가베, 메이크업은 연우 씨가 맡아 주었어요. 이번 인터뷰 자리를 빌려, 세 분께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프로젝트 예산이 부족해 다들 대가 없이 도와주셨거든요. 그렇게 하이드로복스는 프로토타입을 포함하여 첫 공연 후 1년 동안 총 네 번의 라이브 공연을 마쳤고, 다음 버전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은 씨피카 ‘본캐’ 활동 기간이라서 조금 시간이 부족하군요…(웃음)
씨피카 님은 과학 기술을 포함해 회화, 공간 등 세상 모든 것에서 음악에 대한 영감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바 있어요. 시각적으로 영감 받은 대상을 사운드로 풀어내시는 재능 때문인데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씨피카 님은 작업을 진행할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지만, 차원을 옮기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아요. 직접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제가 앉은 의자는 시트를 메시로 처리했는데요. 여기서도 다양한 영감을 받을 수 있어요. 우선 메시는 사이사이에 네모난 구멍이 존재하죠. 그 네모난 구멍을 negative space, 즉 빈 공간으로 간주할게요. 그리고 직물을 꼬아 만든 메시 부분은 아마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듭의 연속일 거예요. 그리고 색은 회색이네요. 회색의 매듭을 positive space로 보면, 저는 부드러운 나선형 계단이 떠올라요. 그럼 사인파(sine wave)로 시작하는 웨이브 테이블 악기로 나선형이 연상되는 패닝을 먹이면 매듭 모양이 저만의 소리로 표현되겠죠? 그리고 회색은 검은색과 흰색 중간에 위치하니까 저는 ‘디튠detune’을 주어서 조금 불안정한 음을 만들 거예요. 이렇게 positive space, 즉 채운 공간을 만들고 나면 빈 공간은 일정한 리듬으로 비워둘 거예요. 이제 머릿속에는 재미있는 리듬이 들어간 리드 멜로디와 패턴이 떠오르게 된답니다.
씨피카 님의 인터뷰를 살펴보니 ‘과학’이란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여전히 과학은 씨피카 님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나요?
박사 학위를 가질 정도나 논문을 읽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과학계에서 나타난 새로운 발견이나 미스터리는 여전히 제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은 존재입니다. 우주가 멸망하기 전까지 마르지 않는…
씨피카 님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고 계세요. 꾸준히 크리에이티브한 작업물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을 꼽아보신다면요?
관심이 없다면 절대 못 할 거 같아요. 제가 흥미롭게 느끼는 대상이 예술이기 때문에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작업이 음악이에요.
씨피카의 일상 사진
평소 씨피카 님은 어떻게 일상을 보내시나요?
월·수·금은 보통 요가를 하고, 화·목은 가벼운 산책을 합니다. 최근에는 촬영이 많아서 요가 가는 시간이 들쑥날쑥했지만, 보통 규칙적으로 시간을 보내요. 밤에는 주로 음악 작업을 하고, 밀린 이메일을 정리합니다. 시간이 나면 친구 집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하죠.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내는 데요.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혼자 갤러리를 방문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요새는 제 친구 예진이와 산 타고 싶어요!
씨피카 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궁금해요.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열정과 사랑을 음악에 담고 싶어요. 그 대가로 바라는 것은 크지 않아요. 다음 앨범 활동이 가능할 정도의 금전적 여유와 건강을 가진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이 작업에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유체이탈하지 않는 이상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으니까요. 작업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후회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요.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최대한 쿨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간이요. 모든 부분을 잘 진행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해요.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아니면 누군가 시간을 팔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좀 사게요. (웃음)
씨피카 님이 중시하는 아티스트로서의 태도와 철학이 궁금합니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지만 ‘초심’으로 작업하고 싶고, 작업에 항상 ‘순수’하게 임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꼼수도 배우게 되고, 오래 걸리는 일을 빨리 해결하는 잔머리가 생기잖아요. 그런데 과정을 너무 간소화하면 사고가 줄어들어요. 그만큼 실수나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사라지면 규칙을 지키는 음악을 만드는 느낌이죠. 저는 대학교에서 크래프트맨쉽이 중요하다고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이 좋고, 그런 부분을 섬세하게 계획하고 실현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음악을 대할 때는 굉장한 완벽주의로 작업하는 거 같아요.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하더라도요. (웃음) 그리고 겸손을 중요한 마음가짐으로 두고 있습니다. 겸손해지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한다기보다, 음악을 하면 할수록 자연스레 깊어지는 게 겸손한 마음인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전쟁에 관심이 가요. 직접적으로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를 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전쟁은 무엇이고, 전쟁의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찾아보곤 해요. 또 전쟁이 일어나는 데 관련된 모든 사람―정치인, 리더, 무기상, 스나이퍼, 전쟁에 필요한 인력, 전쟁기자―을 살펴봐요.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사실이 제게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거든요. 텍사스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인 SXSW에 우크라이나와 인근 나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참가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서 더욱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어요.
LA의 광고회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시던 스물넷 나이에 음악이 하고 싶어서 한국에 들어온 후 꾸준히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작업을 발표하고 계십니다. 한 인터뷰에서 “음악보다 재밌는 건 없을 것 같아요. 잡을 수 있는 게 아닌, 불확실한 존재인데 사람들이 노래를 들으면 감정의 변화가 있거든요”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 깊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음악은 재밌는 존재인가요?
여전히 재밌어요. 제가 음악 만드는 일을 한다는 건 천운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행복해요. 바람이 있다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오랫동안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아티스트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자신을 속이지 말고, 꾸준히 음악 활동에 정진한다면 분명 기회는 찾아옵니다. 그 기회를 잡을 실력과 열정을 잘 쌓아두어야 해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노력한다면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의 기회가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용감한 사자처럼 본인의 판단을 믿고 최대한 크리에이티브한 작품을 발표하세요.
씨피카 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 너무 어려워요. 다음 행보를 예상할 수 없는 예상 밖의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더 멋진 말을 하고 싶은데, 생각이 나질 않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지금 씨피카 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현실적인 환경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층고 높은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 작업 환경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어요. 미래를 긴 시선으로 바라보자면…아주 천천히, 미미하게라도 괜찮으니 발전하는 ‘씨피카’가 되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 같아요. 정체 시기도 겪었고,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일도 마주했었지만, 이제는 자라나고 확장하는 씨피카를 보여줄 차례인 것 같습니다.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DESIGN» «SPACE 空間» «NOBLESSE»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HUFFINGTON POST KOREA»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BRIQUE»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THE EDIT» «LUXURY» «AVENUEL»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