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고 간단한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 금방 답이 돌아옵니다. 우리는 이를 두고 정보를 “찾았다”라고 하죠. 그런데 정말 찾은 걸까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전시 «알렉사에게»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AI 음성 비서 ‘알렉사’를 나란히 불러 세우며 그 물음을 파고듭니다. 가장 오래된 지식의 그릇과 가장 새로운 지식의 통로가 같은 이름을 나눠 갖게 된, 어딘가 농담 같은 상황이죠. 이메일 인터페이스를 뼈대로 삼은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신문지를 가위로 자르고, 혜성의 기록을 따라가며 도시의 빛이 신체에 새겨진 흔적 앞에 멈춰 서다 보면 어느 순간 내용만 ‘받아 읽는’ 수용자에서 정보의 형식과 구조까지 ‘골라 읽는’ 탐색자가 됩니다. 빠르게 제시되는 정보 너머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되짚는 큐레이터 김성우의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알렉사에게»,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2026,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오늘날의 전시는 대개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된다. 기후와 인공지능, 포스트휴먼 같은 주제어를 전면에 세우고 작업은 그 주제어를 예시하는 데 동원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시는 현상을 설명하는 장치가 되고, 작품은 설명의 삽화로 동원된다. 이 구조에서 작가의 작업이 지닌 독자적 시선과 접근법, 이를테면 ‘작가는 세계를 어떻게 해체하고, 심문하며, 다시 연결해 그 좌표를 새롭게 세우는가’ 같은 것은 주제라는 상위 개념에 흡수되어 소멸한다. 작품은 ‘무엇’에 관한 것으로 환원되고,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묻히기 일쑤이다. «알렉사에게»가 흥미로운 것은 이런 통상의 구조에 반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인공지능 시대의 정보 인식’이라는 동시대의 환경적 조건을 배경에 두고, 참여 작가들이 천착해 온 형식과 방법론을 자동화된 정보 검색·처리 기술에 맞서는 양식으로 내세운다.
박지호, ‹하나부터 열까지›, 2026,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우선 전시 제목에서 우리는 두 도서관을 겹쳐 보게 된다. 인류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자 설립되었던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질문에 즉답하는 오늘날의 음성 인터페이스인 ‘알렉사’가 그것이다. 지식을 모으고 헤집고 연결하던 공간인 도서관은 현재의 온라인 검색 엔진과 대화형 AI에 이르기까지 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사용자가 부담하는 물리적 수고는 줄어들었고, 정보 탐색에 드는 시간은 크게 단축됐다. 전시는 동시대 기술 매체 환경의 변화와 조건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 배경 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경험을 새롭게 조직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를테면 손쉽게 정보를 탐색하고 즉시 정렬해 제시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의도적으로 서로 무관해 보이는 자료를 편집하고 연결하는 작가의 방법론을 경유하는 식이다. 이는 당장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인과적 조건을 초월해 과거를 방문하고, 지금 여기의 좌표를 새롭게 제시하며, 상상의 미래를 그려보는 데 유효하다.
남화연, ‹코레앙 109›(2014), ‹동방박사의 경배›(2015),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그런 면에서 기획자가 제시하는 전시의 구성은 유효하다. 이메일 인터페이스를 골격으로 삼은 이 전시에서 ‘보낸 편지함’(전시실 1)은 지나온 정보의 흐름을 비선형적으로 되짚고 엮어 내며, ‘받은 편지함’(전시실 2)은 끊임없이 유입되는 정보를 단편적 인덱스로 재구성해 ‘대안적 아카이브’를 탐구한다. 메일함은 시간순 정렬과 폴더 분류를 통해 정돈된 정보 인터페이스 시스템이다. 전시는 그 분류의 체계를 전시의 표면으로 끌어오되 오히려 이는 교란을 촉발하는 전시의 뼈대로 작동한다. 부유하는 정보의 미로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이 전시는 정보의 네트워크로 짜인 동시대 환경에 질문하며, 현실 속 삶의 차원에서 이를 새롭게 마주하길 요구한다. 예컨대 ‘보낸 편지함’(전시실 1)에 포함된 작업 ‹동방박사의 경배›에서 남화연은 평균 76년을 주기로 지구에 접근하는 핼리혜성을 지표로 삼아 서로 다른 시각 체계의 기억과 기록을 교차시킨다. 여기서 혜성이 관측되는 주기는 각 시대를 관통하는 관측 기술, 즉 기록적 시선의 욕망을 드러낸다. 작가의 또 다른 작업인 ‹코레앙 109›는 어떤가. 14세기 고려에서 제작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중심에 둔 이 작업의 서사는 수집가에서 국가적 아카이브로 이어지는 사물의 이주를 인터넷과 하이퍼링크의 작동 방식을 통해 뒤따른다. 서로 다른 층위의 시공간을 도약하듯 연결하는 이 작업에서 분절된 시공은 가상의 경로를 통해 통합되지만, 그 끝에서 정보를 통해 구축한 가상의 지도는 물리적 현실과 좁힐 수 없는 괴리를 낳으며, 정보와 실체의 간극을 더욱 극적으로 가시화한다.
강동주, ‘빛 드로잉’ 연작, ‹324초의 달›(2013),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강동주, ‹전농 뉴타운 – 청량리역 1.7km / 47km›, 2013, 종이에 먹지, 30 × 122 cm, 플랫폼엘 소장 ⓒ 서울시립미술관
구동희, ‹캐스케이드›(2026), ‹맥 아래서, 주문을 건다›(2012),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한편 강동주의 ‘빛 드로잉’ 연작은 도시의 시공간을 일상의 사적 경험과 신체를 통해 매개하고 추상화한다. 장소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감각과 기억을 통해 비로소 형성되는 삶의 ‘장field’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이는 단순히 물리적 좌표나 추상적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강동주의 작업은 도시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개인의 몸짓과 기억이라는 언어로 다시 쓰는 시도이며, 거시적 시스템에 관한 미시적 해석이자 번역의 실천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구동희의 ‹캐스케이드›는 교각이나 수로 같은 도시의 인공적 구조와 자연의 움직임을 연결한다. 여기서 작가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수집한 푸티지를 교차시킨다. 출처가 다른 이미지가 전이하고 연쇄하는 과정은 거시적 환경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구조 속 단일한 서사로 통합되지 않는 개별 단위의 실체를 환기한다. 더 나아가 작가는 10여 년 전에 발표한 ‹맥 아래서, 주문을 건다›와 ‹캐스케이드›를 중첩해 하나의 화면 위에 제시함으로써 시각적 분산을 꾀하고, 이는 이미지 데이터의 시공간적 선후 위계를 해체하는 동시에 정보의 상호 참조적 관계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성능경, ‹현장 6›, 1981, 젤라틴 실버 프린트, 19.1 × 27.5 cm (30),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반면 전시실 1(보낸 편지함)과 전시실 2(받은 편지함) 양쪽에 걸쳐 제시된 성능경의 작업이 특히 흥미롭다. 그는 개념미술 1세대로서 1970년대에 이미 신문을 오려내고, 읽고, 지우는 행위로 정보 매체의 검열을 시각화했다. 전시에서 성능경은 단순히 ‘역사적 선례’로 모셔진 것이 아니라 동시대 작가와 같은 방법론의 계보 위에 놓인다. 신문을 손으로 절단하고 재구성하던 1970년대의 신체 노동은 알고리즘 시대 작가의 비선형적 자료 연결과 50년의 시차를 두고 공명한다. 주어진 정보의 체계적 정렬을 거부하고, 이를 해체하며, 다시 연결하는 성능경의 작업은 이 전시의 연대기적 권위를 담보하는 작가적 기원이 아니라 자동화 이전부터 인간이 정보를 수동으로 다루어 온 노동에 어떤 인식적 가치가 내재하는지 증언한다.
『‹현장 6› 찾아보기』, 2026, 신문 용지에 윤전 인쇄, 54.5 × 39.4cm (8),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디지털 검색이 정보의 탐색을 일순간 압축해 버린 시대를 배경으로 «알렉사에게»는 전시 형식을 통해 그 인터페이스에 반문한다. 온라인에서 더 빠르게 접근 가능한 정보를 오프라인 공간에 옮겨 놓는 일은 검색이 줄 수 없는 잉여 가치를 만들어 냄으로써 의미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는 아카이브를 표방한 전시가 늘 시험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진열 테이블에 삽입된 신문과 인덱스 카드, 파편화된 시각 이미지를 헤매는 시간은 지연의 과정 한가운데 관객을 위치시킨다. 이 모든 탐색의 두께와 깊이는 ‘알렉사’가 내보일 수 없는 세계의 것이다. 오늘날 오로지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의 관계로 구성된 정보 처리 기술의 블랙박스 앞에서, 전시를 배회하고 해독하는 관객은 능동적인 경험의 과정에서 자신만의 논리를 세워 의미를 산출하도록 요구받는다.
전소정, ‘일상의 전문가’ 연작,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와 관람 정보
– 전시명: «알렉사에게»
– 기획: 류혜민 학예연구사
– 전시 기간: 2026. 3. 26.(목) ~ 7. 26.(일)
– 전시 장소: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모음동 전시실 1,2, 아카이브라운지 1,2
– 관람 요금: 무료
– 휴관일: 매주 월요일
Writer
김성우는 큐레이터로서 주로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역사, 문화, 미디어와 사회의 체계가 어떻게 공동의 정체성을 재현, 정립, 왜곡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또한 전시를 시간성과 행위성이 응축된 사건으로 정의하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대안적·미시적·상상적 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하길 기대한다. 아마도예술공간의 책임 큐레이터로 2015년부터 2019년 초까지 공간 기획과 운영을 총괄했다. 큐레이토리얼 컬렉티브로 2018년도 광주비엔날레를 공동 기획했으며, 2020년 부산비엔날레의 큐레이토리얼 어드바이저를 지냈다. 현재는 독립적인 큐레이터 활동과 함께 2022년 하반기 비영리 큐레이토리얼 스페이스 ‘프라이머리 프랙티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