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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무수한 세계를 넘나드는 김아영의 '가능 세계'

Writer: 박은지

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지난 9월 한국 매스컴이 들썩였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미디어 아트 공모전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시상식에서 한국의 김아영 작가가 최고상인 골든 니카를 받은 것인데요. 한국인 최초라는 사실 때문에 화제를 모았답니다. 김아영 작가는 여러모로 독특한 인물입니다. 시각 디자인, 사진,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한국 근현대사, 지정학, 이송, 초국적 이동 등의 역사적 사실과 동시대 첨예한 이슈를 복합적으로 재구성해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소설, 텍스트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차원적이고 유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왔어요. 미술계와 영화계를 가로지르는 커리어를 보면 놀라울 따름인데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성지, 린츠에서 만난 김아영 작가와의 대화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오스트리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 린츠(Linz). 아돌프 히틀러의 마음속 고향이자 그가 은퇴 후 지낼 곳으로 낙점하며 나치 독일의 문화중심지로 예정됐던 곳. 철강 산업의 부흥으로 윤택해졌지만, 칙칙한 오염 도시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던 이 사연 많은 도시는 지난 2009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지정됐다. 지리적으로 빈과 잘츠부르크라는 유명 문화 도시 사이에 자리 잡은 린츠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뉴미디어 아트 관련 공공재단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가 1979년부터 운영한 세계 최초의 미디어 아트 축제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9월 전 세계 미디어 아티스트의 발걸음을 모으는 힘은 린츠가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문화 도시의 이미지를 선구적으로 쌓는 데 결정적인 지분을 차지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2023 페스티벌 카탈로그 © ARS ELECTRONICA Website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의 꽃은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다. 1987년부터 글로벌 단위로 공모한 작품 중 우수작을 가리는 무대로 ‘미디어 아트계의 오스카’라는 별칭이 붙는다. 총 네 개 부문에 걸쳐 98개국, 3176점의 작품이 밀려든 올해, 생각하지 못한 낭보가 터졌다. 한국의 김아영 작가가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Golden Nica’를 받은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상으로 루브르 박물관의 명물인 ‹사모트라케의 니케›의 모습을 본떠 금박을 입힌 트로피는 미디어 아티스트에게 꿈결 같은 존재. 작년 발표한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로 그는 ‘승리의 여신상’을 손에 넣은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수상 세레모니. © vog.photo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수상 세레모니. © vog.photo

이번 수상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는 ‘운송수단을 통한 시공간의 재편’이라는 작가의 기존 관심사와 더불어 ‘가능 세계(Possible Worlds)’ 이론이 서사의 축을 이룬다. 우리가 발을 딛는 현실 세계 외에도 수없이 많은 ‘가능성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설정 아래, 서울에서 여성 라이더로 일하는 에른스트 모Ernst Mo라는 현실 세계 속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딜리버리 댄서Delivery Dancer’라는 배달 플랫폼에 속한 그는 배달앱 ‘댄스마스터Dancemaster’를 통해 끊임없이 갱신하는 배달 경로를 무한 질주하다가,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가능 세계에 사는 상대 개체인 엔 스톰En Storm을 만나게 된다. 절대 중첩하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에 있던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어느 순간 접점을 이루며, 혼란과 갈등, 애정 섞인 감정의 파고를 겪는다. 지나쳐 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다 360°로 합쳐지는 영상 속 두 개의 구처럼 말이다.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Official Trailer

린츠의 한적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작가는 “스케일이 큰 아트 앤 테크 작업을 대거 선보이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얼떨떨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살짝 되돌아보자. 한국의 근대화 문제를 다룬 ‹어느 도시 이야기› 연작, 석유 자본의 이동으로 20세기 역사를 되짚은 ‹제페트› 연작, 난민 이주와 데이터의 이동을 동시에 환기시킨 ‹다공성 계곡› 연작, 포스트 팬데믹과 기후 변화,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룬 ‹수리솔 수중 연구소› 연작 등 작품마다 치밀한 리서치를 통해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사변적인 픽션을 만들며 영상, VR, 설치, 음악극, 퍼포먼스, 출판 등 특정 장르에 매이지 않고 작품을 구현한 면모는 확실히 비상하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측이 그에게 골든 니카를 안긴 것 또한 매번 자신을 뛰어넘는 도전을 이어온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응원의 결과일 테다. 김아영 작가의 수상을 거듭 축하하며, 대화를 청해보았다.

김아영,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 3 Zepheth, Whale Oil from the Hanging Gardens to You, Shell 3›, 2015 © Ayoung Kim Website

김아영,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Porosity Valley, Portable Holes›, 2017 © Ayoung Kim Website

김아영,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 At the Surisol Underwater Lab›, 2020 © Ayoung Kim Website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 Ayoung Kim Website

수상자가 발표된 후 한국 미디어에 나온 기사들을 찾아봤어요. ‘김아영 작가, 미디어 아트계의 아카데미상 받다’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네요. (웃음)

생각 외로 국내 미술 매체보다 일반적인 뉴스 미디어에서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첫 한국인 수상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국가 위상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심사 과정은 어떤가요?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인지도가 높지만,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행사라서 더욱 궁금하네요.

사실 제 작업은 컨템포러리 아트이지, 아트 앤 테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상은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공모를 통한 작품은 물론, 심사위원 다섯 명이 각각 추천하는 작품들도 심사에 포함한다고 들었는데요.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김치앤칩스로 활동하는 손미미 선생님이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저를 추천해 주셨어요. 무엇보다 이번 수상은 우주의 기운이 도와 많은 운이 작동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사위원 중 노라 오무르츠Nora O’ Murchú라는 분은 베를린에서 열리는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 디렉터세요. 작년에 직접 제 스튜디오를 방문하셨고, 저 또한 올해 1월 트랜스미디알레에 초대되어 발표한 적도 있었죠. 심사위원 다섯 명 중 두 명이나 자기 작업을 잘 알고, 좋은 관계로 지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물론 심사위원 전원이 동의한 작품에만 상을 수여하지만요. 올해 뉴 애니메이션 아트로 섹션을 개편하면서 테크놀로지에 중점을 뒀던 이전과 달리 예술적인 실험을 더욱 중시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경향성을 내보일 수 있는 작업으로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선정했고, 한국인으로서 첫 번째 수상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정말 기뻤어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의 Deep Space 8K에서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상영 중이다. © Tom Mesic

작품 속 주인공이 일하는 배달 플랫폼은 딜리버리 댄서, 배달앱은 댄스마스터에요. 라이더 계급 중 주인공이 속한 가장 윗단의 명칭은 ‘고스트 댄서’고요. 배달을 춤에 비유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실제 서울에서 활동하는 배달 라이더분들은 시내의 무수한 경로를 내비게이션을 따라 종횡무진 달리세요. 새로운 경로를 달리고, 갔던 곳을 또 가는 일을 한창 하다 보면 내비게이션 경로가 정말 거미줄처럼 쌓이죠. 서울이라는 도시의 미로에 갇힌 듯이 그 안을 위태롭게 달리는 모습은 마치 비틀거리는 춤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딜리버리 댄서라는 표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7년 차 베테랑 여성 라이더분을 수소문해 인터뷰도 하고, 오토바이에 동승해 서울을 누볐는데요. 팬데믹 기간 동안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함께 배달 다니는 일이 그렇게도 신나고 즐겁더군요. 동시에 라이더분이 주행하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니, 달리는 도로의 실제 상황보다 배달앱에 집중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어요. 배달 라이더가 돈을 벌려면 끊임없이 콜을 받아야 해요. 한 건을 배달하는 와중에 두세 건의 배달을 동시에 업고, 그 중 취소된 건도 확인하는 등 멀티콜을 운용하는 스킬이 꼭 필요하죠. 이렇게 여러 개의 콜을 동시에 받는 게 경제적인 생존과 직결되다 보니, 몸의 감각이 배달 알고리즘에 모두 종속되어 앱이 종용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느꼈어요.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 Ayoung Kim Website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 Ayoung Kim Website

에른스트 모 역할을 맡은 분은 실제 라이더로 활동하나요? 에른스트 모를 직접 촬영한 장면과 3D로 구현한 장면이 영상에 함께 등장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영상에 등장하는 분은 배우입니다. (웃음) 이번 작품에는 이미지 제작 방식을 다채롭게 활용했어요. 먼저 실사 촬영 장면과 게임 엔진으로 시뮬레이션한 질주 장면, 그리고 ‘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센서로 서울 곳곳의 좁은 골목을 스캔해 만든 시퀀스가 혼재됐죠. 각 장면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서로 계속 충돌하는데요.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실제 라이더분들이 이렇게 일하시잖아요. 한 세계에 안주할 수 없고 가상과 실재를 오가야만 하는 삶에는 특유의 에너지와 불협화음이 존재해요.

여러 방식을 혼용한 덕분인지 영상 속 서울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디스토피아 도시처럼 보이더군요.

팬데믹이 진행되면서 거의 2년 넘게 서울 밖을 못 나갔어요. 한 곳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정말 오랜만에 오니까, 심호흡하기 어려울 정도로 답답하더군요. 하지만 동시에 서울이란 공간을 미시적으로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피는 계기가 됐어요. 이를테면, 영상 초반에 에른스트 모가 두무개길, 사직터널, 가산디지털단지 등 서울 여러 구역에서 엔 스톰을 봤다고 상담사와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런 지명은 의도적으로 넣은 거예요. 그곳의 로컬리티에 대한 애정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퓨처리즘Asia-futurism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아시아 퓨처리즘은 아시아인이 주체가 되어 아시아의 미래를 바라보는 담론인데요. 테크노 오리엔탈리즘Techno-Orientalism은 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의미가 전혀 달라요. 테크놀로지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뛰어난 기술 제공자지만, 동시에 감정이 없고 기계적인 존재로 아시아인을 간주하거든요. 저는 아시아 퓨처리즘에 더 관심이 많아요. 새로운 관점으로 아시아인이 주인공인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전 작업인 ‹수리솔 수중 연구소› 연작에도 아시아 퓨처리즘의 관점을 녹여냈습니다.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 Ayoung Kim Website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 Ayoung Kim Website

영상에 등장하는 라이더는 여성 화자뿐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팬데믹 시기에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는데 막상 여성 배달 라이더를 본 적이 없어요.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거죠. 작품을 만들면서 여성 바이크 애호가 커뮤니티 ‘치맛바람 라이더스’ 회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요. 커뮤니티를 만든 이유를 물어보니, 오토바이를 타고 밖에 나가면 운전에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건 물론이고, 성적인 농담과 플러팅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매일 같이 발생한대요. 직업과 상관없이 여성이 오토바이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안 좋은 경험을 겪기 싫어서 여성 라이더끼리 서로 연대하고, 교육하고, 바이크를 즐기기 위한 모임을 만든 게 시작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게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긴 한데, 이제 21세기쯤 되면 안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요? 에른스트 모만 해도 최상위 라이더 계급인 고스트 댄서인데 말이죠.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 Ayoung Kim Website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 Ayoung Kim Website

그러고 보니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연구원 소하일라도 여성이네요.

해당 작업에 힘을 부여하는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예민 난민 출신의 여성 연구원인 소하일라Sohila AlBna’a를 등장시켰어요. ‹수리솔 수중 연구소›를 작업하기 전에 ‹다공성 계곡 2›을 만들었는데요. 당시 제주도에 온 예민 난민을 인터뷰했어요. 그때 만난 야스민이라는 친구의 이야기가 제게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죠. 야스민은 남편이나 남성 보호자 없이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무슬림 여성인데요. 이런 경우가 실제로는 매우 드물다고 해요.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내내 ‘나는 고결한 인간이고, 아무도 내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자기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어요. 그래서 이런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싶어서 ‹수리솔 수중 연구소›의 주인공을 예멘 여성 이주자로 설정했는데,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야스민이 작품에 참여하지 못했죠. 생각해 보니, 저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비록 미래가 불투명하더라도 목숨을 건 여정에 뛰어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유독 좋아하는 것 같네요. 여전히 그들의 모험과 용기에 크게 감동합니다.

김아영,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 At the Surisol Underwater Lab›, 2020 © Ayoung Kim Website

작년에 열린 개인전 «문법과 마법»에서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선보인 바 있는데요. 그때와 달리 이번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전시장에는 해당 영상 한 점만 설치했더군요.

갤러리현대에서 열렸던 개인전은 여러 층을 활용할 수 있어서 인스톨레이션 작품 수가 꽤 됐어요.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그때 처음으로 전시했는데, 스크리닝 외에도 두 개의 헬멧을 함께 노려보듯 세우고, 그 안에서 애니메이션을 재생하는 설치 작업도 선보였죠. 사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측에서도 헬멧 설치 작업을 함께 보여주길 원했는데, 다들 무게가 꽤 나가는 부품들이라 직접 린츠까지 모두 들고 와 전시하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의 Deep Space 8K에서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상영 중이다. © Tom Mesic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전시회. © Hara Shin

다른 유럽 영화제에서도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상영했는데요. ‘서울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여성’이라는 설정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현지 반응이 궁금해지네요. 유럽과 한국의 배달 문화는 꽤 다르지 않나요?

올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와 바젤 시립영화관에서 작품을 보일 기회가 있었어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때 보니, 그들도 배달 문화를 어렵지 않게 이해한 것 같더군요.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배달앱이 활성화돼서 그러나 봐요. 물론 유럽은 오토바이보다 자전거로 배달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처럼 배달 때문에 목숨 걸고 주행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요. 그럼에도 어떤 관객은 작품 속 배달 라이더가 처한 상황과 그 감정에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는 피드백을 줬어요. 사실 배달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한국의 배달 문화에 지옥 같은 경쟁 사회의 특수성이 녹아 있는 게 문제죠. 그런 면에서 ‹기생충›,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통해 한국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 내는 극단적인 사회 불평등에 대해서 이미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배달 문화는 그들의 일상에서 보기 어려워서 신기하기도 하고 픽션이라고 느낄 수 있을 텐데,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사람들이 제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지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비주얼 요소만 즐겨도 되고, 그 안의 이야기를 더 궁금해해도 괜찮고요. 어떻게든 작품을 본다는 게 중요하고, 감사하죠. (웃음)

혹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일단, 프리즈 런던 20주년을 기념해 신설한 ‘Artists-to-Artist’ 섹션에 초대받았어요.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8명이 젊은 작가 8명을 노미네이트해 부스 형태로 개인전을 여는 건데요. 감사하게도 양혜규 작가님이 추천해 주셨어요. 주목도가 높은 행사일 것 같아서 프리즈 런던을 잘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 핀란드와 일본, 이탈리아에서 스크리닝 행사가 있고요. 지금  ‹딜리버리 댄서 2›를 제작하고 있는데,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호주영상센터(ACMI)에서 내년 8월 처음으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서울이 수많은 가능 세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알게 되면서 여러 우주를 오가는 내용이 될 것 같아요. 이전 작업과는 다르게 무용수들의 모션 캡쳐를 활용한 액션 장면이 들어갑니다.

이번 골든 니카상이 작가님의 향후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수상과는 무관하게 원래 잡힌 일정이 있었는데요. 상을 받으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정확하게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는 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죠. 영화계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만들어 내는 신은 서로 다르거든요. 그래도 이번 수상 덕분에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지겠구나, 생각은 들어요. 끊임없이 자기 증명과 인정 투쟁을 해야 하는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계속 증명하는 과정은 지긋지긋하지요. 이제 숨 한번은 고르고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 Ayoung Kim Website

Artist

김아영은 한국에서 시각 디자인, 영국에서 사진과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주로 유럽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한국 근현대사, 지정학, 이송, 초국적 이동 등의 역사적 사실과 동시대 첨예한 이슈를 복합적으로 재구성해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소설, 텍스트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차원적이고 유동적인 이야기로 창조하는 데 몰두한다. 기존의 영상 미학을 벗어난 독창적 접근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 샤르자 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 관두 비엔날레, 아시안 아트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이미지 포럼 페스티벌, 멜버른 페스티벌,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베를린 Sci-fi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 팔레 드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영국 왕립미술아카데미, 사치갤러리 등에서 선보였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 2023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골든 니카상에 선정됐다.

ayoungkim.com

Writer

박은지는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UdK) 박사 과정에 참여 중이다. 아티스트 북의 서지정보를 LOD로 발행해 컬렉션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디자인프레스», «월간 디자인», «퍼블릭 아트» 등에 기고했다. udk-berlin.academia.edu/EunJi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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