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5주년을 맞이한 아트부산 2026이 5월 21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나흘간 열립니다. 아트부산은 서울 외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국제적 인지도를 축적해 왔고, 3040 세대의 새로운 컬렉터를 포섭하며 꾸준한 성과를 보여주는 아트 페어죠. 18개국 11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이번 아트부산은 퓨처 섹션으로 신진 갤러리의 비중을 높여 균형감 있는 작품을 소개하기도 해요. 좋은 작품을 소장해 보고 싶은 분이라면 퓨처 섹션을 살펴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비애티튜드 매거진이 아트부산 2026의 다크호스를 먼저 만났습니다. 바로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으로 진행하는 하나퓨처아트어워드(Hana Future Art Award) 파이널리스트 작가 3인(팀)입니다. 하나퓨처아트어워드는 퓨처 섹션의 작가를 대상으로 파이널리스트 3인(팀)을 선정하고 5월 21일 VIP 프리뷰 당일 최종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요, 작품도 국적도 다채로운 이들의 이야기는 창작이 결국 작은 것을 포착해 다른 감각으로 연결하는 서사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죠. 아트부산 2026 하나퓨처아트어워드 파이널리스트 3인의 이야기를 지금 BE(ATTITUDE) 비애티튜드 매거진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아트부산 2025 전시전경
Artist
Ryu Jimin 류지민
류지민 작가 프로필
류지민(@ryujimiiiiin)은 서울에 거주하며 사라짐 이후에도 지속되는 풍경과 기억의 잔상에 주목하는 회화를 선보인다. 화면 속에는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상태가 겹쳐진다. 관찰된 현실과 개인적 기억은 언어와 생성형 AI를 거쳐 가상의 이미지로 전환되고, 이는 다시 회화로 옮겨지며 실재와 비실재,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After Us» (히피한남 갤러리, 2026)와 «웃어 넘기고 싶은 마음» (유영공간, 2023), «메아리의 색을 모아» (에브리아트, 2021)가 있고, «사라진 뒤에 남은 것들» (히든엠 갤러리, 2026), «스몰 페인팅스-마이 비쥬!» (김리아 갤러리, 2025), «불가분한:현실과 환상» (갤러리 플레이리스트, 2024)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빛이 내린 자리3_Where the Light Fell3›,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24 × 24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회화 작가 류지민입니다. 저는 기억이 시간 안에서 흐려지거나 변형되는 방식에 오래 관심을 두고 작업해 왔어요. 기억은 늘 불완전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바뀌잖아요. 그 불안정한 과정 자체를 화면 안에서 다루고 싶었고, 최근에는 AI 이미지를 작업 과정에 끌어들이면서 기억과 이미지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조금 더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서 계속 그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일상에서 작은 것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상상해 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빛이 모이는 곳_Where the Light Gathers›,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40 × 90 cm
‹남아있는 방_A Room That Remains›,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72.5 × 91 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실은 오래된 상가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네 미용실이 붙어 있어서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는 목소리가 종종 들려와요. 그 소리가 정겹고 재미있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작업실 벽에는 작업 중인 그림이 걸려 있는데, 한 작업을 오래 들여다보고 수정하는 편이라 벽을 채운 그림이 작업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록처럼 느껴져요. 특히 오후 네다섯 시쯤 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데, 그때 그림 위로 빛이 비치면서 같은 그림도 전혀 다르게 보이는 모습이 또 다른 작업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14살 반려견과 늘 함께 작업실에 출근하는데, 대부분 소파에 누워 평화롭게 자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업실에서의 긴 시간이 외롭지 않고 큰 힘이 됩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특별한 장소보다 집 근처 익숙한 길에서 더 많은 걸 발견해요.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나 그림자, 물웅덩이에 비친 장면처럼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 것인데, 저는 그런 장면 안에서 오래 남는 감각을 발견하거든요. 또 버려진 물건이나 오래 방치된 공간을 마주하면 그곳에 남아 있는 이전의 시간이나 사라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상상해요. 그런 감각과 상상이 작업의 시작점이 됩니다.
류지민 작가의 작업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일상에서 찍은 사진이나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해요. 그걸 먼저 단어나 문장으로 꺼내 보고, 그 언어를 생성형 AI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를 통해 이미지로 변환합니다. 그렇게 생성된 여러 이미지를 편집하고 재구성하여 다시 손으로 화면에 옮겨요. 그 과정에서 원래 기억과 생성된 이미지 사이에 어긋남이 생기는데, 저는 그 어긋남에 관심이 있어요. 작업 과정에서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제가 혼자서는 닿기 어려운 이미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매개처럼 느껴집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번 아트부산에서 선보이는 메인 작품 ‹After Us›와 ‹자라나는 방 1, 2(Growing Room 1, 2)›에서는 사라진 이후에도 남아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어요. 누군가 한때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 낡고 방치된 공간을 식물이 뒤덮고 있거나 빛과 그림자, 물결이 뒤섞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장면은 마치 아주 오래된 과거 같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같기도 해요.
이 작품 속 공간은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생성형 AI가 학습한 이미지 데이터가 개입하면서 더 이상 개인의 기억도, 특정한 타인의 기억도 아닌 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혹은 편안하면서도 기이한 감각이 동시에 느껴져요. 저에게 사라짐은 끝이라기보다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과정에 가까워요. 이번 작업은 그런 감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자라나는 방1_Growing Room1›, 2025,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91 × 234 cm
‹After Us›,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97 × 193.9 cm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억과 이미지의 신빙성에 가장 관심이 있어요. 예전에는 사진을 기억의 증거처럼 사용했는데 생성형 AI가 확산하면서 그 전제가 흔들린 것 같아요.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지금, 사진이나 심지어 영상조차도 더 이상 실재를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럼 ‘회화는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히려 그 균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질문을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아주 사소한 것이나 사라질 것을 오래 바라보는 편이에요. 금방 지나가 버리는 순간이나 사소한 장면에 자꾸 마음이 머물고, 그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런 태도가 작업 안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맞닿은 방1_Touching Room1›,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65.1 × 45.5 cm
‹맞닿은 방2_Touching Room2›, 2026, Mineral pigment, water-based pigment,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Hanji, 65.1 × 45.5 cm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개인적인 질문이나 고민에서 시작된 작업이 다른 사람의 감각과도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해요. 결국 아주 사적인 경험이라도 누군가는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리고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답을 빨리 내리기보다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요. 이미지가 너무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대라서, 하나의 이미지를 오래 바라보고 그 안에서 미세한 감각을 발견하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따뜻함과 차가움, 익숙함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 그림은 처음 봤을 때는 회화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처럼 다가오지만, 그 안에는 기술적 개입과 동시대적인 감각들이 공존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런 상반된 감각이 한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상태에 관심이 많아요.
또 누구나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실이나 이별 같은 감정을 단순히 슬프고 쓸쓸한 것으로 바라보기보다, 비워진 자리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자라날 수 있는 시작의 가능성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위안을 얻는 것처럼, 제 작업을 보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감각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Artist
山田 美優 야마다 미유
야마다 미유 작가 프로필 (Image courtesy of biscuit gallery and the artist)
야마다 미유(@miyuyamada2)는 시대와 사회적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존재의 모습을 투영하는 도쿄 기반의 믹스드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회화, 조각, 설치를 아우르며 모래를 주 매체로 삼아 작업을 전개한다. 도시와 자연, 정신과 물질, 언어와 비언어 사이를 진동하는 재료인 모래를 통해 끊임없이 요동치는 자아와 타자의 모습을 구현해 낸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Nowhere Land»(2025, biscuit gallery), «Dawn + Drawn»(2023, biscuit gallery), «HOME»(2023, Arte22 Gallery, 서울), «Journey»(2022, HIRO OKAMOTO)가 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waiting for your step (Sticker)»(2026, 갤러리 우, 부산), «Pairspective 004: Miyu Yamada + Nanami Saito “Little Voices”»(2025, biscuit gallery), «A Fixed-Point Observation from Two Billion Light-Years Away»(2024, Tang Contemporary Art), «Daydream»(2024, K11), «YOU DO YOU»(2022, whimsy works) 등이 있다. 이외에도 아트 페어 도쿄, 아트부산, 아트 센트럴 홍콩, 키아프 서울 등 주요 아트 페어에 꾸준히 출품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는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아크릴 물감과 모래를 사용해 제가 바라보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을 때 마주한 갈 곳 없는 벅찬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이따금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그 시점부터 창작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저를 억눌러 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고 이게 깊은 위안과 큰 기쁨을 주었죠. 하지만 동시에 고통스럽기도 했어요. 작업이 너무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성찰에 가까워서 아직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거든요.
‹Reading Writing›, 2026,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16.7 × 91 × 5 cm
‹Night›,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45.5 × 53 × 5 cm
‹Coffeetime›,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45.5 × 53 × 5 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실은 도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해안 도시인 즈시逗子市에 있습니다. 스튜디오 내부의 벽은 제가 직접 세웠답니다. 집주인 분도 아주 좋은 분이고 마을 전체가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서 이곳을 정말 좋아해요. 도쿄를 벗어나 처음 살아 본 곳인데 햇빛, 강, 바다, 사람 등 주변 모든 것과 사랑에 빠졌죠. 아주 개방적인 분위기예요. 물론 작업은 스튜디오 안에서 하지만 근처로 산책을 가거나 차를 마시는 장소도 제겐 작업실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기분 좋게 그림을 그릴 때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작품에도 스며든다고 믿거든요.
작업실 공간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오히려 약간 깔끔하지 않을 때 집중이 더 잘 되는 편이에요. 사실 약간 어수선한 걸 더 좋아한답니다! 하하…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영감을 억지로 찾으려 하지는 않아요. 영감은 대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작업은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관심사나 자극적인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작품에 진정성과 현실감을 부여한다고 느껴요.
하지만 가끔은 색다른 것에 도전하거나 평소와 다른 작업을 해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림에서 느끼는 ‘거리감’이 달라져서 꽤 흥미로워요.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제게 영감을 주는 대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게 어디든 제가 만나는 사람과 교감하는 공간이 중심이 되죠.
제 그림 속 생명체는 허구이지만 작품 자체는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찍어 두고 모아 둔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할 때가 많습니다.
‹Long Beach›, 2024,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16.7 × 91 × 5 cm
‹A with the light›, 2024,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45.5 × 38 × 5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항상 스케치에서 출발해요. 캔버스에 바탕칠한 다음 배치를 구상하고 채색을 시작하는데 솔직히 이 과정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모든 것을 미리 정해 두기보다는 우연히 떠오르는 형태를 살려 가며 작업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우연에만 내맡기는 것은 아니에요. 매 순간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밀고 당기듯 ‘내가 주도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라는 감각을 항상 손에 쥐고 작업해요. 이렇게 수많은 시도와 탐구의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완성합니다.
그리고 저는 붓끝에 닿는 저항감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패널을 사용하는 걸 선호해요. 정확한 조건은 없지만 표면 위에서 교감이 이루어지다가 어느 순간 ‘이제 멈춰야겠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다음 날 다시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그 느낌이 남아 있다면 그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거죠.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금까지는 모래를 주된 모티프로 삼아 왔어요. 모래는 이미 잘게 부서진 입자라 그저 ‘그곳에 존재한다.’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죠. 그런데 최근 제 관심사가 모래에서 흙으로 옮겨 가고 있어요. 흙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잖아요. 분해와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역동적인 과정 속에 존재하죠. 자연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흙의 속성이 현재 제 작업 방향과 더 깊이 맞닿아 있다고 느낍니다.
이번 아트부산을 위해 최근에 완성한 ‹The root of thought›라는 작품은 보통 나쁜 것은 버려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탐구해요. 제 그림 속에서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특정 생각이나 감정이 배척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양분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져 천천히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도록 허락되고 꽃을 피우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해요. 자아와 타자, 이성과 감성, 생각과 육체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요소가 끊임없이 섞이고 이동하고 순환하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The root of thought›,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16.7 × 91 × 5 cm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음식과 흙에 마음이 끌려요. 최근에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채소를 직접 길러 보니 식물이 야생에서 자라는 게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생생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는 완벽한 자연농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모든 걸 사람 손으로 통제하려 하기보다 자연의 흐름과 순환 속에서 무언가를 길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열심히 배우는 중이에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사람들은 작품을 보고, 제가 꽤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람일 거라 짐작하곤 해요. 하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편안함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닙니다. 제 안에는 늘 상충하는 감정과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사유하거든요. 그렇기에 모든 생각을 남김없이 쏟아 낸 뒤에야 비로소 어깨에 힘이 풀리는 순간이 오는데 그 상태가 되어서야 마침내 어딘가에 도달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명확한 답으로 떨어지지 않는, 모호하고 흐릿한 감정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만큼 저 자신을 어떤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전시장에 있다 보면 “아! 이 그림을 그리신 분이군요.” 라거나 “작품이 작가님이랑 꼭 닮았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요. 한때는 작품과 저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서로 동기화된 부분이 생겼다고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요새는 작품이 제가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요.
‹AB on the field›,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62 × 130.3 × 5 cm
‹Popping cream›, 2023,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38 × 45.5 × 4.5 cm
‹Elevator going somewhere›, 2025,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91 × 72.7 × 5 cm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무심코 지나칠 때가 있잖아요. 그러나 작은 어긋남은 결국 큰 어긋남이 되기 마련이죠.
그래서 그 어긋나는 느낌이 드는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건 창작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덧붙여서 이건 창작자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와 협력하며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고 선보일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 공간, 환경에 늘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도 제게는 무척 중요합니다!
‹Old memory›, 2024, Acrylic, sand, mixed media on canvas, 162 × 130.3 × 5 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최종 결과물일 테니 그저 매 순간 제가 마주하는 각각의 작품과전시에 진심을 다하는 데 오롯이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게 된다면 기쁘겠지만 정확히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너무 많아지거든요.
무엇보다도 그 시대에 강렬하게 공명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고 싶습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삶의 특정 시기로 순식간에 돌아가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제 작품도 그렇게 관람객 각자의 시간선과 나란히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제 그림을 보는 순간 특정 시절의 어떤 느낌 속으로 데려가 줄 수 있도록요.
Artist
Inside Job(Ula Lucińska & Michał Knychaus)
인사이드 잡(울라 루친스카 & 미하우 크니하우스)
인사이드 잡 프로필(좌: 울라 루친스카, 우: 미하우 크니하우스)
울라 루친스카Ula Lucińska와 미하우 크니하우스Michał Knychaus는 아티스트 듀오 ‘인사이드 잡Inside Job’으로 활동한다. 두 작가 모두 폴란드 포즈난 예술대학교 뉴미디어 학과를 졸업했다. 이들의 작업은 다양한 매체와 재료의 활용에 기반하며, 종종 다층적인 오브제 기반 환경 설치로 이어진다. 많은 프로젝트는 과거의 잔재와 미래적 추측이 뒤얽힌 재난적 시나리오를 참조한다. 이들은 현재를 형성하고 가능한 미래에 대한 상상력에 영향을미치는 환경적, 사회적, 지정학적 변화에 관심을 둔다. 또한 허구를 작업 방법론으로 도입함으로써,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예견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탐색하는 자기실현적 잠재성을 탐구한다.
인사이드 잡은 파리 국제 아르타공 IV 공모전(2018)의 파이널리스트였으며, 국제 알레그로 프라이즈(2020) 쇼트리스트에 올랐다. 또한 폴란드 문화유산부 ‘영 폴란드(Młoda Polska)’ 장학금(2026), 포즈난 예술 장학금(2023), 포즈난 시 신진예술가상(2020), 폴란드 문화유산부 장관상(2018), 산탄데르 유니버시티 상(2016) 등을 수상했다. 프라하의 FUTURA, 밀라노의 eastcontemporary, 아테네의 Hot Wheels Projects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프라하 MeetFactory, 제34회 류블랴나 그래픽 비엔날레, 아테네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 바덴바덴 쿤스트할레, 바르샤바 국립미술관(Zachęta), 비아위스토크 아르세날 갤러리, BWA 브로츠와프, 슈체친 TRAFO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올해 이들은 제16회 광주비엔날레에서 폴란드 대표로 참여한다.
«Cockaigne», Arsenal Gallery Power Station, 2025, 사진 Tytus Różniak-Szabelski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인사이드 잡Inside Job’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듀오, 울라 루친스카Ula Lucińska와 미하우 크니하우스Michał Knychaus입니다. 폴란드 포즈난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두 사람 모두 포즈난 예술대학교 뉴미디어 학과를 졸업했어요.
저희는 다양한 오브제로 이루어진 설치와 공간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주로 금속과 섬유를 재료로 사용하며 산업적 생산 방식과 전통 공예를 결합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그래서 작업 안에는 언제나 수작업과 기계 생산 사이의 긴장이 내재해 있습니다.
주제 측면에서는 격렬한 변화나 ‘단절과 위기의 순간’에 이끌립니다. 과거가 현재를 배회하고 추측에 기반한 미래가 실재처럼 흐릿하게 다가오는 공간에 주목합니다. 환경적, 사회적, 지정학적 변화에 관심이 많고 나아가 그 변화가 미래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주된 관심사예요. 주로 허구를 방법론으로 삼지만, 그 시작점은 특정 장소나 풍경 혹은 저희가 직접 시간을 보낸 곳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동시대 미술에 들어오기 전부터 저희는 이미 인접한 분야와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울라는 미술사를, 미하우는 문화학을 공부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겼습니다. ‘연구를 넘어 실천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말해 ‘상황을 만들고 설치를 구성하며 분석적 방식이 아닌 감정적이고 시각적이며 직관적인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죠.
하지만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배경에는 보다 물리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위가 낳는 신체적 경험, 즉 물질과 재료를 직접 다루는 감각적이고 신체적인 차원에 대한 갈망이 생겼거든요. 그런 종류의 몰입은 이론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 간극을 더는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유에서 제작으로 이동하고자 했던 충동이 두 사람 모두를 미술학교로 이끌었고 작가 활동을 시작하게 만들었어요. 막상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죠. 그렇지만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했다기보다 오래전부터 닿고자 했던 언어를 비로소 발견한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Behind the mouths gate something is stirring, is flickering›, 2024, linen, silk, organza, stainless steel, galvanized steel, soy wax, calendering line, spray paint, 가변 설치, 사진 Tiziano Ercoli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스튜디오가 포즈난의 대규모 산업 단지 내에 있어요. 한때 타이어를 생산하던 곳으로 도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공장 중 한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서서히 가동이 중단되고 있는데 그 점진적인 쇠락의 분위기가 이곳 전체에 짙게 깔려 있죠. 주변에 작가 작업실이 많지 않아 산업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저희는 이런 환경에서 진심으로 영감을 얻습니다. 한때는 제 기능을 하며 살아 있었으나 이제는 과거의 증인으로만 남은 기계 부품과 미완성 장비, 산업 구조물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공간이니까요.
동시에 역설적으로 건물 사이사이에는 자연이 가득합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저수지, 오래된 나무 군락을 비롯해 수많은 새와 담비, 긴꼬리족제비, 고양이 몇 마리가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큰 강도 흘러요.
스튜디오 내부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요. 절단, 연마, 벤딩 등 거친 작업을 하는 공간과 작업물을 관찰하고 실제 공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테스트하는 깨끗한 공간입니다. 공간이 매우 밝은데 이 점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됐어요. 여러모로 이곳은 저희에게 제2의 집이 됐습니다.
영감의 상당 부분은 폐허나 옛 산업 부지, 재난 혹은 장기적인 방치로 흔적이 남은 풍경 등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서 옵니다. 그런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장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해요. 버려진 건축물이 어떻게 서서히 비인간적인 힘에 굴복하는지, 자연이 한때 인간이 통제하고 구축했던 것들을 어떻게 되찾아가는지에 관한 관찰이 결국 작업의 핵심이 되죠. 오랫동안 척박한 환경에서도 번성하는 엉겅퀴를 사진으로 찍어왔는데, 엉겅퀴의 강인한 의지와 미묘한 힘이 ‹Thistle Mirrors›와 ‹Will Spread› 시리즈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어요.
폐허에 관한 관심은 좀 더 구체적인 지점과 이어집니다. 포스트 공산주의 시대의 정치·경제적 변화 이후 중동부 유럽에서 일어난 특정 산업의 붕괴, 특히 그 붕괴가 장소뿐만 아니라 기억과 상상력에 미친 영향에 매료되었어요. 과거가 어떻게 조작되는지,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차단되거나 새롭게 발명되는지 하는 문제죠. 저희가 계속해서 다루는 시각적 언어는 여기도 저기도 아닌, 무언가의 전(前)도 후(後)도 아닌 일시 정지된 상태를 뜻하는 ‘문턱threshold’입니다. ‹Passages› 시리즈에서는 레이저로 가공된 강철과 반투명한 천을 결합해 리드미컬한 반복 환경을 이루는데, 저희는 이를 “사이의 건축architectures of in-between”이라고 부릅니다.또한 ‹Get Down Get Down…› 작업은 추상적인 포털 형태를 띠는데, 금속 프레임 안에서 LED 조명과 함께 부드럽게 맥동하는 실크 막은 익숙한 표면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무언가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이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유기적인 것과 합성적인 것, 또는 살아있는 것과 생명 없는 것 사이의 경계입니다. 특히 저희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지점은 그 경계가 얼마나 얇고 불안정한가 하는 점이고요.
이러한 호기심은 이론적 영역으로도 확장됩니다. 최근에는 사변적 철학speculative philosophy와 어두운 생태학dark ecology가 현대 미술과 교차하는 방식에 매료되어 있어요. 호러, 기괴함, 기후 변화, SF 장르의 문학과 영화에서도 많은 것을 얻죠. 가상 세계 역시 큰 영감의 원천인데요,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나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처럼 놀랍도록 복잡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상상력을 구축한 게임이 대표적입니다.
‹Get down, get down little Henry Lee and stay all night with me›, 2019, aluminum, steel, digital print on silk, electricity cables, led lights, 가변 설치, 사진 Tiziano Ercoli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듀오로 활동하다 보니 창작 과정에 관한 질문은 언제나 답하기 어려워요. 저희의 협업 방식은 매우 유기적인데, 둘 사이의 관계와 오랫동안 공유해 온 역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말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함이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도 완전히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협업과 소통의 방식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프로젝트는 대개 직관적이고, 꽤 즉흥적으로 시작됩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자신의 때를 기다리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이전에 만들었지만 선보일 기회가 없었던 작업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각 작품은 보통 재료와 협상하고, 때로는 논쟁하는 과정의 결과물이에요. 그래서 최종 결과물은 처음 시작했던 지점과는 상당히 다른 곳에 도달하곤 합니다.
리서치를 선행하고 다양한 자료에서 영감을 얻지만, 특정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직접적인 서사를 전달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모호함, 관객의 자의적인 해석, 미리 정해지지 않은 의미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제작에서는 CNC, 레이저 커팅, 기계적 벤딩, 금속 가공 등 산업적 생산과 관련된 방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 뒤에는 항상 조립, 연마, 수염색, 바느질, 왁싱, 재작업, 때로는 실크스크린 같은 수작업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늘 손으로 직접 그린 고전적인 스케치에서 출발하죠. 저희의 프로세스는 또한 지극히 꾸준한데, 매일 규칙적으로 스튜디오에 출근해 작업합니다.
‹Paradise Rot – The Observer II – detail›, 2025, stainless steel, black steel, chrome steel, electric cables, linen, organza, silk, LED lights, soy wax, spray paint, black pigment, oil, gum, 가변 설치, 사진 Tytus Różniak-Szabelski
‹Paradise Rot – The Observer II & The Pond II›, 2025, stainless steel, black steel, chrome steel, electric cables, linen, organza, silk, LED lights, soy wax, spray paint, black pigment, oil, gum, 가변 설치, 사진 Tytus Różniak-Szabelski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장 최근 작업 중 하나인 ‹Paradise Rot›은 석유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공간 설치 작업이에요. 수백만 년 동안 압축된 유기물이 추출되어 상품으로 변모한 석유의 본질을 다루는 동시에 슬라브 전설에 등장하는 도깨비불(will-o’-the-wisps)에 대한 매혹과도 궤를 같이하죠. 민속적 상상력 속에서 도깨비불은 늪과 습지 위를 떠도는 희미한 빛이자 삶과 죽음의 문턱에 존재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이 설치물은 그 맥락을 한데 모아요. 환상적인 식물 형태의 꽃받침이 검은 기름 찌꺼기 웅덩이 위로 무겁게 드리워져 있고 그 내부에는 마치 끈질기게 살아남아 남은 것을 빨아올리는 듯한 케이블이 뒤엉켜 있습니다. 제목도 고유한 무게를 지녀요. 상실된 낙원과 자연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부패(rot)’를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성적인 것, 즉 변화와 잠재력으로 가득 찬 순환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점을 담고 있죠. 이 작업은 최근 옛 발전소 부지에서 열린 습지 관련 전시에서 소개됐는데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으나 실상은 국가 권력이 닿지 않는 공동체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던 습지 배수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또 다른 작품 ‹Behind the Mouths Gate Something is Stirring, is Flickering›은 식충식물, 특히 곤충을 유혹해 꽃받침 속에 가두는 벌레잡이통풀(pitcher plant)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비롯된 작업이에요. 손으로 염색한 린넨, 실크, 오간자로 이루어진 여섯 개의 대형 구조물을 제작했는데 외부는 어둡고 이끼 낀 듯한 표면을 하고 있지만 내부는 붉고 살점 같은 질감을 띠어요. 왁싱 처리를 통해 젖어 있고 거의 갈라진 듯한 표면도 연출했습니다. 이 구조물은 바닥을 가로질러 뻗어 나가는 근경(rhizomatic) 구조에 매달려 있으며 각각의 내부에는 레이저 커팅된 강철 요소가 날카롭고 복잡한 꽃 모양으로 엉켜 섬세한 천에 기생충처럼 걸려 있죠. 내부와 바닥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검은 케이블은 뿌리 구조와 케이블 네트워크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형태처럼 보입니다. 유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의 긴장,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을 흉내 내는 것 사이의 긴장, 바로 이 작업이 끊임없이 회귀하는 지점이에요.
«Possibility we are poisoned», Mala Galerija Banke Slovenije, 2021, 사진 인사이드 잡
최근 저희는 ‘골격(skeleton)’이라는 형상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어요. 단순히 해부학적인 의미를 넘어 건축적, 은유적, 개념적 구조로서의 골격이죠. 저희의 흥미를 끄는 지점은 골격을 구성하는 것과 그 위를 덮으며 자라는 조직, 표면, 막 사이의 경계입니다. 내부 구조와 외부 층, 숨겨진 것과 가시적인 것 사이의 접점을 탐구하는 것이에요.
이러한 사유의 많은 부분은 아테네 레지던시 기간에 형성되었습니다. 저희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로니코스만Saronic Gulf의 고대 엘레우시스Elefsina, 현재는 엘레프시나Elefsina라고 불리는 곳에서 보냈는데 그곳은 유럽에서 가장 큰 선박 무덤 중 한 곳이에요. 부분적으로 물에 잠긴 선박의 철제 골격은 저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버려진 동시에 여전히 무언가에 의해 점유되고 있는 상태, 즉 갑각류와 해양 생물,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하는 그 공간 안에서 잠재성을 감각하는 일이었죠.
그곳은 일종의 유예된 공간이자 진정으로 경계적인(liminal) 공간이에요. 폐허와 건축 자재 사이, 잔해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어떤 것의 흔적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죠.
이후 저희에게 골격이라는 형상은 인간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 생물과 무생물 사이, 유기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 사이에 놓인 존재로요. 최근에는 퇴적과 축적의 과정, 연료이자 생명 유지 장치로서의 물질 그리고 표면 위에 개별적 존재의 흔적으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And the door was kicked open again», FUTURA – Centre for Contemporary Art, 2021, 사진 Tomáš Souček
‹Anitya (There are flowers that are born of mud) III›, 2020, steel, aluminum, linen, silk, recycled leather, rubber, synthetic textile, 가변 설치, 사진 Tomáš Souček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희 작업의 중심에는 자연에 대한 깊은 매혹이 자리 잡고 있어요. 자연의 메커니즘과 회복력 그리고 스스로 재생하고 재조직하는 능력에 대한 경외심이라고 할 수 있죠. 저희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시스템과 마주하는 경험은 저희를 겸허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매혹의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이 실제로는 얼마나 취약한가에 관한 실질적인 불안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어요. 결코 편안한 상태는 아니지만 저희는 이제 그 갈등을 억지로 해소하려 하지 않습니다. 경이와 두려움 사이의 그 긴장은 저희가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위치처럼 느껴지거든요.
저희를 가장 일관되게 이끄는 힘은 직관과 첫 번째 충동에 대한 신뢰입니다. 본격적인 계획을 세우기 전에 찾아오는 아이디어에 집중해요. 그러한 초기 단계의 인식은 작업 과정에서 다른 요소가 변하더라도 작품의 중심에 끝까지 남아 있게 됩니다.
저희는 또한 신유물론의 사고방식에도 끌려요. 물질을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지니고 변화하며 작동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재료를 도구로 이용하기보다 그 고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특정 장소, 특히 단절되거나 버려진 흔적이 남은 곳에서 작업할 때도 그곳에 여전히 머무는 과거의 유령 같은 존재감을 따라가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이 흐르고 있어요.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저희 자신의 서사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저희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것들을 위한 공간을 지향합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 다른 시간대 그리고 다른 목소리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죠.
ART BUSAN
제15회를 맞이하는 ‘아트부산 2026’은 2026년 5월 22일부터 24일까지 벡스코(BEXCO)에서 개최되며, VIP 프리뷰는 5월 21일에 진행됩니다.
아트부산은 매년 전 세계 주요 갤러리와 컬렉터, 미술 관계자들이 부산에 모여 아시아 미술 시장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장입니다. 2012년 첫 개최 이후 꾸준한 성장과 차별화된 기획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했으며, 매년 국내외 유수 갤러리들이 참여해 활발한 작품 거래와 수준 높은 예술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마이애미’로 불리는 부산은 예술, 휴양, 문화 인프라가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도시입니다. 아트부산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부산아트위크’를 통해 도시 전역에 걸친 예술 경험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네트워크, 차별화된 큐레이션, 도시와 연결된 예술 생태계를 기반으로, 아트부산은 오늘의 동시대 미술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