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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치 앨범과 7인치 싱글, 나란히 놓인 두 신보를 함께 들어봅니다
과거를 가장 정교하게 되살린 음악과 지금 이 순간 가장 새롭게 들리는 소리가 나란히 도착했습니다. 토마토맛의 EP «토마토맛 도시락»은 시부야케이의 보사노바풍 리듬과 Y2K의 말갛고 들뜬 질감을 곳곳에 흩뿌리며 2000년대 초의 공기를 음악으로 빚어냅니다. 과거를 손끝으로 매만지듯 지금 여기에 되살리는 작업이죠. 반대편엔 티파니 데이Tiffany Day와 슬레이어slayr가 함께한 싱글 ‹CONSTANTLY›가 있습니다. 정신없이 튀어 오르고 휘몰아치는 하이퍼팝 트랙으로, 동시대 대중음악을 최전선에서 끌고 갑니다. 한쪽은 과거를 되감고, 다른 한쪽은 현재를 앞당깁니다. 서로 다른 방향의 시간을 그리는 두 음악입니다. 비애티튜드 매거진 편집부에서 고심 끝에 고른 2026년 6월의 두 신보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들어보세요.
토마토맛, «토마토맛 도시락» 커버
토마토맛, «토마토맛 도시락» 커버
Tiffany Day, Slayr, ‹CONSTANTLY› 커버
토마토맛, «토마토맛 도시락»
사이먼 레이놀즈는 『레트로 마니아』를 열며 동시대 대중음악의 기이한 면모를 지적한다. 오늘날의 대중음악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내놓기보다 과거를 끝없이 되감고 또 재생한다는 것이다. 한때는 문화가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었다는 이 진단이 제법 유효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비판마저 철 지난 투정처럼 느껴진다. 너무 자주 반복된 나머지 그 자체로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 버린 탓이다. 과거를 빌려 오는 일은 이제 너무 당연해서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빌렸느냐보다 어떻게 빌렸느냐를 먼저 묻게 된다.
토마토맛의 EP «토마토맛 도시락»은 바로 그 ‘어떻게 빌렸느냐’에 답하는 앨범이다. 시부야케이 특유의 보사노바풍 리듬과 보송한 코러스, Y2K의 말갛고 들뜬 질감이 곡 곳곳에 흩어져 있다. 트랙 ‹콜렉트콜 개러지›와 ‹토마노바›는 싸이월드 시절 BGM을 연상하게 하고, ‹오렌지 런웨이›와 ‹레몬 앤 샤베트›는 과거 투니버스에서 즐겨 보았을 법한 ‹슈가슈가룬›이나 ‹달빛천사› 같은 소위 소녀만화의 OST를 떠올리게 하며, 2000년대 초의 감성을 음악적으로 완벽히 재현한다.
흥미로운 건 이 감각이 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뮤직비디오의 색감과 라이브 무대의 스타일링, 멤버들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브이로그까지. 토마토맛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시대의 공기를 음악 바깥에서도 촘촘히 엮어 낸다. 그 덕분에 이들의 레트로는 단순히 취향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총체적인 세계처럼 다가온다. 한 시절을 통째로 빚어내는 이 솜씨는 영리하면서도 어딘가 사랑스럽다.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보여 줄지까지 세심하게 헤아린 흔적이 곳곳에서 읽히기 때문이다.
더 인상적인 건 바로 그다음이다. 토마토맛은 라이브에서 트랙을 스스로 리믹스해 내놓는다. 한 번 완성한 노래를 굳이 해체해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조립하는 셈이다. 그렇게 공연장의 «토마토맛 도시락»은 발매된 음반과 조금씩 다른 얼굴을 지닌다. 빌려 온 시대의 질감은 그대로지만, 그것이 제시되는 방식은 철저히 동시대적이다. 과거를 품은 애정과 현재를 좇는 충동이 한자리에서 부딪히는데, 그 결합이 만들어 내는 긴장이 토마토맛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 앞에서 레트로가 낡았다느니 새롭다느니 하는 물음은 더는 무의미하다. 어쩌면 레트로의 가장 신선한 얼굴은 빌려 온 것을 끝내 자기 것으로 바꿔 내는 이런 순간에 깃드는지도 모르겠다.
Musician 소개
토마토맛tomatomat은 ‘낯선 장르라도 기죽지 않겠다’는 다부진 태도로 모인 3인조 인디 그룹이다. 셀프 프로듀싱을 기반으로 각자 솔로 활동을 이어 온 쿠인과 수은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팀에 토스터즈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던 나연이 합류했다. Y2K 감성의 아이돌 걸그룹을 연상하게 하는 비주얼을 내세우지만, 정작 세 사람은 작사·작곡·프로듀싱부터 기획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책임지는 음악가들이다. 한 차례 유행이 지나 이제는 서브컬처의 영역으로 밀려난 시부야케이를 비롯해 보사노바, 투스텝 등 2000년대 감성을 한껏 머금은 장르를 뒤섞으며,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들려준다. ‹콜렉트콜 개러지›, ‹머쉬룸 하우스› 같은 싱글을 거쳐 데뷔 EP «토마토맛 도시락»(2026)을 내놓으며,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담은 첫 이야기를 완성했다.
(좌) Tiffany Day ⓒ Ally Wei, (우) Slayr ⓒ Slayr
Tiffany Day, Slayr, ‹CONSTANTLY›
요즘은 누군가 갑자기 떠오르면 으레 의심부터 따라붙는다. 정말 혼자 힘으로 일군 성공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 띄운 결과인지 습관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진정성에 얽힌 이 의심 속에서 ‘인더스트리 플랜트’는 어느새 흔한 꼬리표가 되었다. 하이퍼팝 뮤지션 티파니 데이Tiffany Day 또한 그 의심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앨범 «HALO»를 들려준 지 두 달 만에 열아홉 살 래퍼 슬레이어slayr와 함께 ‹CONSTANTLY›를 내놓았다.
‹CONSTANTLY›는 티파니 데이에게 제기된 의심에 맞서는 정면 돌파처럼 들린다. 정신없이 튀어 오르고 채찍질하듯 휘몰아치는 프로덕션을 토대로, 옛 연인을 곱씹는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옮긴 듯한 하이퍼팝의 전형 한가운데서 그는 이 혼돈이 제 손으로 빚은 것임을 증명한다.
그 위에 더해진 슬레이어의 랩은 나른하다. 반짝이는 티파니 데이의 보컬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간 실험적인 레이지 스타일을 구사하던 그였기에 이렇게 결을 누그러뜨린 모습은 더욱 흥미롭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두 사람이 금세 친구가 되어 만든 노래라서일까, ‹CONSTANTLY›에는 두 사람이 함께 바닥에 누워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그 순간의 온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Musician
티파니 데이Tiffany Day는 침실에서 녹음한 커버 영상으로 출발해 일렉트로닉 팝의 최전선까지 나아간 중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이다. 2017년 이탈리아의 한 우물에 대고 ‘Hallelujah’를 부르는 영상이 입소문을 타며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고, 베드룸 팝에 가깝던 사운드는 2025년 무렵부터 글리치한 프로듀싱과 강하게 왜곡된 보컬을 앞세운 하이퍼팝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데뷔 앨범 «Lover Tofu Fruit»(2024)에 이어 2집 «HALO»(2026)를 내놓으며, 불안과 솔직함을 번쩍이는 사운드 위에 얹는 자신만의 화법을 다져 왔다. 최근 보일러룸Boiler Room 런던 무대에 디제이로 데뷔하며 활동의 폭을 한층 더 넓히고 있다.
슬레이어slayr는 디스코드에서 음악을 시작해 레이지와 디지코어의 새로운 결을 빚어 온 필라델피아 출신 래퍼이자 프로듀서이다. 비디오 게임 사운드트랙과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의 음악을 자양분으로 삼아 트랩과 EDM, 록을 하나의 곡 안에서 충돌시키는 다채로운 사운드를 선보인다. 믹스테이프 «Half Blood»(2025)와 확장판 «Half Blood (Bloodluxe)»(2026)로 언더그라운드의 가장 주목받는 이름 중 하나로 떠올랐으며, 공격적인 비트에 감각적인 멜로디를 더하며 레이지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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