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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작동 조건을 딛고서

Writer: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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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전시가 끝나고 모두가 불을 끄고 나간 후에도 전시장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작품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우리는 보통 완성된 작품 앞에 서지만, 그것이 어떤 구조와 규칙 속에서 작동하는지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죠. 박지호는 바로 그렇게 놓치기 쉬운 작품의 작동 조건에서 출발합니다. 전시장 기둥의 크기를 직접 재서 똑같이 만든 임시 기둥이 허공의 구름을 받치고, 기상청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끌어와 아직 오지 않은 열흘 뒤의 날씨를 전시장 안에 구현합니다. 형광 안료로 빚은 별은 낮 동안 빛을 머금고 있다가 모두 떠난 밤에야 비로소 길을 밝혀요. 이렇듯 그는 전시와 작품을 구성하는 기술적 토대를 어떻게 더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알고리즘 자체보다 그것이 지금 우리와 맺는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복잡한 시스템을 매개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재’를 다각도로 재구성하는 박지호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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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호·엄정섭, ‹커뮤니케이션 타워›, 2025. 컴퓨터, 아두이노, 마이크로스텝 드라이버, 모터, DC파워서플라이, 벨트, 타이밍풀리, 볼베어링, 스테인레스 봉, 조광기, 합판, 수성 페인트, 전선, 171×22×36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는 박지호입니다. 주로 시스템과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기술적·제도적 조건을 알고리즘과 물리적 구조를 재료로 삼아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9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여러 미술 전시와 관련된 일을 했고, 이주요 작가의 ‹Love Your Depot› 프로젝트에서 팀디포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품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전시가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방식, 그것을 둘러싼 구조와 시스템을 마주했습니다.


특히 졸업 시기가 코로나19 확산 시기와 맞물리면서, 공간의 변화 속에서 전시를 지속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디지털 공간과 물리적 공간 사이를 오가며 작업과 전시의 가능성을 실험했고, 최근에는 여러 기회를 통해 다시 물리적인 공간에서 전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이미지와 전시를 둘러싼 기술적·제도적 조건에 관심을 지니게 된 계기가 됐고, 지금도 그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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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 2026, 실시간 기상청 데이터, 미래 예측 알고리즘, 언리얼엔진, LED 패널, 철제 구조물, 바퀴, 컴퓨터, 자이로센서, 아두이노, 키보드, 마우스, 조명레일, LED 조명, 콘크리트 벽돌 , 7 × 3.6 × 0.83m, 사진 STUDIO JAYBE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보문역 근처에서 9평 정도의 작은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장(2,440×1,220mm) 규격의 자재도 온전히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어서 작업을 제작할 때는 공간의 제약을 함께 고려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전시를 거치며 작업 규모가 점점 커졌고, 일부 작업은 여러 장소에서 나누어 제작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역시 또 하나의 중요한 작업 공간입니다. 구조를 설계하거나 데이터를 수집해 알고리즘을 만들고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이 주로 컴퓨터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물리적인 작업실과 디지털 공간을 오가며 작업하는데요, 저에게 작업 공간은 하나의 실제 장소라기보다 여러 환경이 연결된 구조에 가까워요. 그래서 전시장과 작업실, 집, 컴퓨터를 원격으로 모두 연결해 모든 공간에 접속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하기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혹은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합니다. 미술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계속 마주하는 일이나 사회의 변화, 기술적 환경을 보면서 지금 제 위치에서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단순히 내용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구조와 방식 속에서 발화될 수 있을지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스템을 통해, 어떤 형식으로 보일 때 그 이야기가 ‘미술’이라는 언어 안에서 전달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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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호 작가의 작업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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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호 작가의 알고리즘 작업 화면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다양한 매체를 다루기 때문에 창작 과정은 작업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구조(시스템)를 설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때로는 제가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데이터를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먼저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모을 것인지 고민합니다. 이후에는 그 데이터가 어떤 구조 안에서 어떤 처리 과정이나 규칙을 거칠지 설계하고, 그 과정이 하나의 이미지나 설치, 알고리즘으로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편이에요. 다만 그때 능수능란함이나 적절함을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마주하는 낯선 순간이나 예상과 어긋나는 결과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창작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 재료와 규칙이 서로 관계를 맺어 작동하는 방식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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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기둥(구름)›, 2026. 나무 각재, 오징어 합판, 페인트, 타프, 송풍기, 배관, 타이머, 콘크리트 벽돌,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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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기둥(구름)›, 2026. 나무 각재, 오징어 합판, 페인트, 타프, 송풍기, 배관, 타이머, 콘크리트 벽돌, 가변크기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신작 3점을 소개할게요.


‹또 하나의 기둥(구름)›은 개인전 «DUMP»를 위해 가장 먼저 만든 작업입니다. 작은 작업실에서 송은의 큰 공간을 가늠하기 위해 3D 시뮬레이션만으로는 부족했던 실제 크기와 거리감을 몸으로 감각하고자 전시장 기둥의 크기를 직접 측정해 같은 크기로 제작했습니다. 저는 기둥이 방향과 질서를 제시하는 상징적 구조물이었다는 점에 주목해 실제 건축처럼 공간을 지지하는 대신 허공과 구름 형태의 구조물을 받치도록 만들었고, 오직 이 전시 공간을 위한 임시적인 기준점으로 기능하도록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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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 2026, 실시간 기상청 데이터, 미래 예측 알고리즘, 언리얼엔진, LED 패널, 철제 구조물, 바퀴, 컴퓨터, 자이로센서, 아두이노, 키보드, 마우스, 조명레일, LED 조명, 콘크리트 벽돌 , 7 × 3.6 × 0.83m, 사진 STUDIO JAYBE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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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 2026, 실시간 기상청 데이터, 미래 예측 알고리즘, 언리얼엔진, LED 패널, 철제 구조물, 바퀴, 컴퓨터, 자이로센서, 아두이노, 키보드, 마우스, 조명레일, LED 조명, 콘크리트 벽돌, 7 × 3.6 × 0.83m, 사진 STUDIO JAYBE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밝은 미래›는 실시간으로 기상청 데이터를 받아와 예측의 신뢰도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하는 10일 후의 날씨를 계산해서 하나의 가상 환경으로 구현한 작업입니다. 관객은 현재 풍경이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날씨를 마주하게 됩니다. 낮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지는 변화 속에서 미래의 시간이 현재의 공간과 계속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구성했어요. 또 거대한 구조물에 바퀴와 위치 센서를 달아 그것이 움직이며 빛과 환경을 조정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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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푸스›, 2026, 축광안료, 철사, 철제 구조물, 바퀴, 나무 각재, 시트지, 반사지, 3 × 2.5 × 0.3 m, 사진 STUDIO JAYBE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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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P», 송은, 2026, 사진 STUDIO JAYBE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카노푸스›는 밤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은 별이지만 북쪽에서는 보이지 않고 남쪽으로 갈수록 가시성이 높아지는 별의 성질에 주목한 작업입니다. 저는 조건에 따라 기준점이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하는 이 특성을 북한과 서울, 제주도를 가로질렀던 가족의 서사와 관계를 맺고자 했습니다. 형광 안료로 제작해 낮 동안에는 ‹밝은 미래›의 빛을 머금고 있다가 밤이 되거나 작동이 멈췄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이 작업은 관객을 위한 시각적 대상이라기보다 전시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나가는 사람을 위해 잠시 길을 비추기를 바라며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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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2026,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2003)으로 구성한 데이터셋 기반, VAE 기반 Latent Diffusion 기계학습 알고리즘, 파이프, 바퀴, 점토, 합판, 웹캠, 컨트롤 박스, 컴퓨터, 아두이노, 마이크로스텝 드라이버, 모터, DC 파워 서플라이, 벨트, 타이밍 풀리, CR 튜브, 전선, 가변크기.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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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2026,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2003)으로 구성한 데이터셋 기반, VAE 기반 Latent Diffusion 기계학습 알고리즘, 파이프, 바퀴, 점토, 합판, 웹캠, 컨트롤 박스, 컴퓨터, 아두이노, 마이크로스텝 드라이버, 모터, DC 파워 서플라이, 벨트, 타이밍 풀리, CR 튜브, 전선, 가변크기.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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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2026,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2003)으로 구성한 데이터셋 기반, VAE 기반 Latent Diffusion 기계학습 알고리즘, 파이프, 바퀴, 점토, 합판, 웹캠, 컨트롤 박스, 컴퓨터, 아두이노, 마이크로스텝 드라이버, 모터, DC 파워 서플라이, 벨트, 타이밍 풀리, CR 튜브, 전선, 가변크기. 사진 남기용 © 서울시립미술관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최근 송은에서 진행한 개인전 «DUMP»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선보인 첫 개인전이었던 만큼 특정 기술이나 단어로 고착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준비했습니다. 건축적 요소가 강한 ‘벙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송은의 지하 공간에 제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을지를 출발점으로 삼아 작업했죠. 외부 환경이 차단된 지하라는 조건뿐 아니라 공간의 곡선과 기둥의 실제 크기, 수직적 감각, 공간의 질감, 전시장과 작업실의 크기 차이까지 모두 고려하며 전시를 구성했어요.


또 전시장 안에는 10일 후의 날씨와 100년 후의 인구 그래프, 과거의 가족사,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서로 다른 시간성을 띤 작업을 공존시켜 각각의 시간이 한 공간 안에서 교차하며 ‘현재’를 계속 재구성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알렉사에게»에서는 아카이브를 다루는 공간의 성격에 주목했습니다. ‘아카이브’라는 장소에서 제가 기록과 데이터를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승혜 작가의 ‹유기적 기하학›(2003)을 하나의 재료이자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전에 홍승혜 작가의 작업과 함께 춤을 추는 작업을 했던 경험에 이어 이번에는 작품을 학습하고 드로잉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배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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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의 한국 인구 기상도 #1›, 2025. 한국 인구피라미드 데이터셋, 미래 예측 알고리즘, 잉크젯 프린트, 148 × 1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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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번 풍경›, 2023, 잉크젯 프린트, 84.1 × 59.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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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번 풍경›, 2023, 잉크젯 프린트, 84.1 × 59.4cm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전시 기간에는 거의 매일 전시장으로 출근해요. 제 작품 대부분이 물리적인 기계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항상 작동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기계를 조정하거나 보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꾸준히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실시간 데이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해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일도 적지 않은 품이 들어요.


저는 전시장을 하나의 현장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설치가 끝났다고 작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변화하는 상황을 관찰하고 조정하는 일까지 해내야 비로소 하나의 작업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작가님이 관심을 가장 많이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작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작업에 기술을 많이 활용하다 보니 기술적인 언어를 자주 쓰는데, 그 기술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복잡한 시스템이나 알고리즘 자체를 설명하는 것보다 그것이 현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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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2025. 아이의 낙서 데이터셋, VAE와 Latent Diffusion 기반 기계 학습 알고리즘, 파이프, 바퀴, 조명 레일, LED 조명, 점토, 합판, 웹캠 컨트롤 박스, 컴퓨터, 아두이노, 마이크로스텝 드라이버, 모터, DC 파워 서플라이, 벨트, 타이밍 풀리, CR 튜브, 전선,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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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2025. 아이의 낙서 데이터셋, VAE와 Latent Diffusion 기반 기계 학습 알고리즘, 파이프, 바퀴, 조명 레일, LED 조명, 점토, 합판, 웹캠 컨트롤 박스, 컴퓨터, 아두이노, 마이크로스텝 드라이버, 모터, DC 파워 서플라이, 벨트, 타이밍 풀리, CR 튜브, 전선, 가변크기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궁금한 게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어떤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이리저리 살펴보곤 합니다. 그런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져요.


그리고 작업에서도 하나의 결과를 만드는 것보다 그것이 어떤 과정과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는지 계속 질문해요. 그래서 저에게 작업은 답을 내리는 일이라기보다는 질문을 오래 붙잡고 들여다보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특별히 뭔가 잘된 적도 없어서인지 아직 저에게는 ‘슬럼프’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태를 자주 마주하죠.


보통은 뭔가 안 풀릴 때 끝까지 혼자서 고민하는 편인데, 정말 시간이 없는데도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는 주변 동료에게 연락해 다짜고짜 의견을 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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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서비스›, 2020, 4K 비디오, 칼라, 사운드, 22’ 32”

‹우리 모두 댄스, 전날밤›, 2020, 1채널 영상, 칼라, 사운드, 3’ 7”, 사진 안윤기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전시를 철거하면서 전시 이후의 과정을 생각해 보고 있어요.


또 하나는 ‘작업을 만든다’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젊은 작가에게는 큰 공간인 송은에서 개인전을 열 기회가 있었는데, 작은 작업실을 고려해 작업을 외부 공간에서 분산 제작한 뒤 전시장에서 조립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만든다’는 것이 단순히 작업실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제작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디렉팅’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어요. 현재는 이런 조건에서 새로운 제작 방식과 철거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2025년 PCO에서 연 2인전을 준비하면서 엄정섭 작가와 작업실을 함께 사용했는데 그때 작업하는 방식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전시를 기획한 박정우 작가와 함께하며 무언가를 배우려는 태도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제게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익히는 것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업 방식과 생각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다시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자신이 좋은 작가인지, 이 작업을 계속해도 되는지, 지금의 방식을 유지해도 괜찮은지를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고민은 작업을 관성적으로 반복하지 않게 해 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익숙한 방식에 머무르기보다 계속 배우고, 의심하고, 다시 시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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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호·엄정섭, «스무고개», PCO, 2025, 사진 안윤기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함께 뭔가를 해 보면 재밌을 것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최소한 4~5년 정도는 이사를 걱정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최근에는 작업 규모가 커지면서 공간이 작업의 중요한 조건이 됐어요. 그래서 안정적인 작업실을 기반으로 조금 더 자유롭게 실험하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게 제가 현재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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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박지호(@jiho6693)는 오프라인에서는 제도와 구조를, 온라인에서는 시스템을 다룬다.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기술적·제도적 조건에 주목하며, 알고리즘과 물리적 구조를 작업 재료로 삼는다. 개인전 «DUMP»(송은, 2026)를 열었고 그룹전 «알렉사에게»(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2026)에 참여하고 있다. 박정우가 기획한 2인전 «스무고개»(PCO, 2025)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