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서체가 보편화된 오늘날, 어떤 타이포그래퍼는 오히려 한땀 한땀 종이를 오린 후 스캔해 글자를 만듭니다. 어도비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이 강요하는 표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죠. 누군가는 새로운 합자를 고안해 언어에 뿌리박힌 이분법적 성별 개념을 지워 보고자 분투합니다. 고대 마야 문명이나 서아프리카 소수 민족의 언어처럼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문자를 기억하기 위해 대안적인 서체 체계를 만들기도 하죠.
이 모든 놀라운 일이 프랑스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대 역행적이지만 대범한 프랑스 타이포그래피 ‘씬’의 작업은 잘 생각해 보면 그리 낯설진 않습니다. 가라몽과 디도의 나라에서 서체는 언제나 의미 전달을 위한 도구를 넘어 권력이 작동하는 하나의 장(場)이었으니까요. 지식의 공공성을 중요시하고 젠더와 포용성을 둘러싼 정체성 정치가 일상 깊숙이 자리한 프랑스답게 서체는 곧 하나의 정치적 발언이 되기도 합니다. 낭시에서 그래픽 디자인 갤러리 마이 몽키를 운영하며 20년간 프랑스와 한국의 디자인 현장을 잇고 있는 모건 포템이 거장들의 유산과 새로운 세대의 실험을 아우르며 프랑스 서체의 계보와 현재를 들려줍니다. 모건이 전하는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벨베틴(Velvetyne) 카탈로그 발췌문
The french type.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타이포그래피는 우리의 무의식과 글, 문서에 관한 인식을 좌우한다. 이 절제되고 엄격한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강력한 힘을 지닌다. 타이포그래피는 말과 동행하며,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또 세대를 거듭하며 글로 메시지를 전한다.
프랑스 타이포그래피의 독특한 역사는 몇 가지 중요한 이정표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서체의 탄생으로 점철된다. 비전문가에게는 눈에 띄지 않지만, 그럼에도 없어서는 안 될 이 분야는 활기차고 다면적인 현장에서 글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새로운 세대의 프랑스 타이포그래퍼들은 다시 한번 최전선에 서서 최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실험하고 경계를 넓히며, 타이포그래피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PART 1 – The influencers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15세기 유럽에서 활판인쇄를 발명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라틴 타이포그래피의 기초를 닦은 것은 프랑스인 니콜라 장송Nicolas Jenson이었다. 윈도 운영체제를 통해 전 세계에 보급된 타임스 뉴 로만Times New Roman 서체는 장송(또는 젠슨)의 계보를 이으며 널리 사용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16세기 중반에 클로드 가라몽Claude Garamond은 프랑스 스타일을 정의한 세련된 로마체를 창안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디지털 버전은 아마도 어도비의 가라몽Garamond일 것이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새로운 품질의 종이와 속건성 잉크 덕분에 피르민 디도Firmin Didot는 직선형 세리프와 강한 대비를 갖춘 현대적이고 우아한 서체로 타이포그래피를 완성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서체 ‘Didones(Didone)’는 프랑스 행정 문서와 교육 문서의 공식 표준이 되었다.
The french type.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타이포그래피는 우리의 무의식과 글, 문서에 관한 인식을 좌우한다. 이 절제되고 엄격한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강력한 힘을 지닌다. 타이포그래피는 말과 동행하며,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또 세대를 거듭하며 글로 메시지를 전한다.
프랑스 타이포그래피의 독특한 역사는 몇 가지 중요한 이정표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서체의 탄생으로 점철된다. 비전문가에게는 눈에 띄지 않지만, 그럼에도 없어서는 안 될 이 분야는 활기차고 다면적인 현장에서 글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새로운 세대의 프랑스 타이포그래퍼들은 다시 한번 최전선에 서서 최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실험하고 경계를 넓히며, 타이포그래피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PART 1 – The influencers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15세기 유럽에서 활판인쇄를 발명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라틴 타이포그래피의 기초를 닦은 것은 프랑스인 니콜라 장송Nicolas Jenson이었다. 윈도 운영체제를 통해 전 세계에 보급된 타임스 뉴 로만Times New Roman 서체는 장송(또는 젠슨)의 계보를 이으며 널리 사용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16세기 중반에 클로드 가라몽Claude Garamond은 프랑스 스타일을 정의한 세련된 로마체를 창안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디지털 버전은 아마도 어도비의 가라몽Garamond일 것이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새로운 품질의 종이와 속건성 잉크 덕분에 피르민 디도Firmin Didot는 직선형 세리프와 강한 대비를 갖춘 현대적이고 우아한 서체로 타이포그래피를 완성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서체 ‘Didones(Didone)’는 프랑스 행정 문서와 교육 문서의 공식 표준이 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프랑스산 서체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프랑스산 서체
그 후 프랑스의 타이포그래피는 혁신성이 줄어들며 점차 시대의 흐름에 서서히 영향을 받게 되었다. 아르누보는 획을 자유롭게 풀어 유기적인 즐거움을 드러냈고, 아르데코는 보다 직설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를 보여 왔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의 뚜렷한 영향 아래 스위스와 폴란드, 헝가리, 미국의 학교는 ‘모더니티’를 추구했다. 예술가 라슬로 모홀리나기Laszlo Moholy-Nagy는 타이포그래피와 사진의 융합을 주창했고, 얀 치홀트Jan Tschichold는 단순하고 기능적이며 세련된 타이포그래피로 회귀하는 데 목표를 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Nouvelle Typographie›를 정립했다.
20세기 초 아르누보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는 파리 지하철의 유명한 입구를 디자인하던 당시 직접 서체를 디자인했다. 사진: 파리 16구 도핀역, 출처: 위키백과 / 모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래픽 디자이너 로제 엑스코퐁Roger Excoffon은 수많은 상점 간판과 광고에 널리 사용되며 프랑스 디자인계의 고전이 된 여러 서체를 디자인했다. 미스트랄Mistral, 헬베티카나 유니버스와 경쟁하기 위해 고안된 앤티크 올리브Antique Olive와 그 변형판 노르드 Nord(에어프랑스를 위해 개발), 반코Banco, 칼립소Calypso, 쇼크Choc 등이 그것이다.
1968년 5월 문화혁명을 계기로 에콜 폴로네즈École Polonaise에서 수학한 예술가 집단 그라푸스Grapus가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등장했고, 이들은 창작자로서 지위와 함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책임을 주장했다. 그들의 타이포그래피는 종종 손글씨체로 폭발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들은 협회와 노동조합을 위한 캠페인 등 수많은 사안에 참여했다. 그의 노력은 그래픽 디자이너를 광고 의뢰를 수행하는 단순 작업자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후대의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미쳤다.
1981년 그라푸스가 제작한 세쿠르 포퓰레르 프랑세Secours Populaire Français 로고. 제2차 세계대전 말 설립된 이 단체는 프랑스와 해외에서 정의와 연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PART 2 – Back to school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새로운 세대의 타이포그래퍼들은 이 같은 유산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2011년 낭시의 마이 몽키My Monkey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Lettres type»는 이런 부흥을 알리는 선언문 역할을 하며 프랑스어권의 젊은 타이포그래피계에서 활력과 다양성을 선보였다. 전시에는 40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한 40개 프로젝트가 소개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2년 후 같은 도시에서 7년간의 휴지기를 마치고 재개관한 국립 타이포그래피연구소(ANRT: Atelier national de Recherche typographique)의 교수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PART 2 – Back to school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새로운 세대의 타이포그래퍼들은 이 같은 유산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2011년 낭시의 마이 몽키My Monkey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Lettres type»는 이런 부흥을 알리는 선언문 역할을 하며 프랑스어권의 젊은 타이포그래피계에서 활력과 다양성을 선보였다. 전시에는 40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한 40개 프로젝트가 소개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2년 후 같은 도시에서 7년간의 휴지기를 마치고 재개관한 국립 타이포그래피연구소(ANRT: Atelier national de Recherche typographique)의 교수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1985년 설립된 ANRT는 서체와 편집 디자인editorial design 분야에서 프랑스와 유럽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매년 학생 6명을 선발해 타이포그래피 분야의 개인 연구를 수행하게 하며, 타이포그래피와 역사, 문자 체계, 글자 학습에 초점을 맞춘 커리큘럼 중 한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학생들은 소정의 연구 지원금을 받고, 2년 과정을 마치면 bac+7(석사 이상) 수준의 학위를 받는다. 일부 학생의 경우 연구 논문(박사)을 통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다.
선발된 학생은 전문 타이포그래퍼들로부터 정기적인 지도를 받으며, 저명한 외부 연사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진행하는 강연이나 워크숍에도 참여할 수 있다. 재학 기간에는 학생들이 서예나 각자(letter carving) 같은 전통 기법과 기술을 체험하고, 그와 동시에 업계 최신 연구 성과나 코딩에 관한 수업을 접할 수 있다.
프랑스 낭시 ENSAD에 위치한 ANRT 스튜디오와 재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순회 전시 중 한 장면.
ANRT 내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실험적이기도 하며, 실용적 또는 이론적 성격을 띨 수도 있다. 또한 특화된 응용 분야나 보편적인 목적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흥미롭고 인문적인 이니셔티브로는 디지털 공간에서 소외된 문화의 보존, 유지, 전승에 기여하는 데 목표를 둔 ‘Missing Scripts’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전 세계에서 잊어져 간 서체나 소수 또는 고대 문자를 위한 서체를 제작하고 통합하는것이다. 개발된 프로젝트의 몇 가지 예로는 필리핀의 문자 체계인 에스카야Eskaya(2025), 구전 전통을 지닌인도 부족을 위한 오이 오날Oi Onal(2025), 서아프리카의 마사바Masaba(2024)와 베테Bété(2022), 수마트라의 람풍Lampung(2023), 철기시대에 기원을 둔 아나톨리아 시데틱Sidetic 체계(2023), 프로토엘람(2022), 몰디브의 디베스 아쿠루와 이란의 선형 엘람 문자(2021), 마야(2019), 팔레오히스패닉(2016), 크리올어를 위한 아파카(2018) 등이 있다.
“세계의 문자 체계”, 유니코드 시스템(컬러)에 이미 포함된 모든 언어(파란색과 검은색)와 누락된 언어(빨간색과 보라색)를 보여주는 ANRT 포스터의 발췌문.
“세계의 문자 체계”, 유니코드 시스템(컬러)에 이미 포함된 모든 언어(파란색과 검은색)와 누락된 언어(빨간색과 보라색)를 보여주는 ANRT 포스터의 발췌문.
ANRT는 아베니르Avenir, 프루티거Frutiger, 메트로 파리지앵Metro Parisien, 네온스크립트Neonscript,파리의 두 주요 공항을 위한 OCR-B 오를리Orly와 루아시Roissy 서체, 온딘Ondine, 유니버스Univers, 세리파Serifa 서체의 창시자인 저명한 타이포그래퍼 아드리안 프루티거Adrian Frutiger의 탁월한 아카이브(1961~1975)를 소장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정리, 기록 작업이 완료되면 취리히의 Museum für Gestaltung에 소장된 프루티거 컬렉션에 추가될 예정이다. 주요 아카이브로는 IBM 타자기를 위해 디자인된 유니버스Univers 서체 패밀리의 교정본과 수기 노트가 포함되어 있다.
IBM 컴포스피어 타자기를 위한 니켈-플라스틱 합금 구.
아드리안 프루티거의 브뢰겔 서체 연구,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린 드로잉, 1978
PART 3 – Fight for your type!
2000년대 들어 프랑스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데, 특히 파리의 듀오 M/M은 가수 비요크Björk와 협업(현재도 진행 중)하거나 패션·럭셔리 업계에서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의 표현력과 화려하며 동시에 해체적인 실험은 새로운 시각적 형태를 갈망하는 문화산업을 사로잡았다.
그 이후 프랑스어권 아방가르드는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인공지능을 언급하는 것은 아님)을 둘러싼 실험이나 기존 가치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나타나는 듯하다.
PART 3 – Fight for your type!
2000년대 들어 프랑스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데, 특히 파리의 듀오 M/M은 가수 비요크Björk와 협업(현재도 진행 중)하거나 패션·럭셔리 업계에서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의 표현력과 화려하며 동시에 해체적인 실험은 새로운 시각적 형태를 갈망하는 문화산업을 사로잡았다.
그 이후 프랑스어권 아방가르드는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인공지능을 언급하는 것은 아님)을 둘러싼 실험이나 기존 가치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나타나는 듯하다.
, Björk 앨범 커버, 디자인: M/M Paris, 2004
타이포그래피는 반항적인가? 지난 15년 동안 Open Source Publishing(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이나 라파엘 바스티드Raphaël Bastide 같은 집단의 작업을 살펴보면, 독점 소프트웨어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오픈소스 코드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두의 것으로서 공유재를 만들려는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디지털 도구가 강요하는 표준화, 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의 공격적인 정책,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초래하는 문화적 빈곤화와 동질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 같은 창의적 관점은 비판적이자 정치적인 성격을 띠며, 지속 불가능한 생산성을 주창하는 소비주의적 독재로부터 벗어나면서 창작의 지평을 새로운 형태로 확장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오픈 소스 퍼블리싱Open Source Publishing의 ‘Dingbats Libration Fest(딩뱃 해방 축제)‘는 종이 오려내기 작업과 서버에 연결된 스캐너를 이용해 서체를 제작하는 방식의 로파이low-fi하면서도 유쾌하고 집단적인 창작프로젝트이다. 관객이 수작업으로 만든 글자 모양은 자동으로 온라인에 저장되며, 점차 형태를 갖추어 가는 서체에 실시간으로 통합되어 언제든지 다운로드할 수 있다.
실시간 서체 제작 장치, ’ 전시회 발췌, 2010.
실시간 서체 제작 장치, ‘ 전시회 발췌, 2010.
유망한 연구 분야이기도 한 웹투프린트Web-to-print / web2print는 웹 페이지에서 직접 인쇄물을 생성할 수 있게 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이다. 기존 인쇄 방식보다 더 유연한 이 기술은 주문형 인쇄와 단품 인쇄 모두 가능하게 하며, 가변 데이터(스타일 시트 활용)로 인쇄물의 맞춤 설정을 쉽게 구현하고, 크로스미디어를 지원한다. 따라서 웹투프린트는 레이아웃 소프트웨어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콘텐츠의 개방적인 유통을 가능하게 한다.
Living Path 소프트웨어 발췌문
사용자가 직접 매개변수를 조절할 수 있는 가변 폰트는 탐구와 혁신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 예를 들면 이반 무리트Ivan Murit는 생성적 디자인에 주력하며,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왜곡 또는 변형이 가능하도록 가변 알고리즘을 통해 폰트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Texturing’과 ‘Livingpath’ 같은 소형 소프트웨어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이제 색상을 폰트 요소에 통합할 수 있게 된 ‘가변 컬러 폰트’는 특히 픽토그램이나 디자인을 제작하는 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오픈소스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프랑스 디자인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벨베틴Velvetyne’ 프로젝트는 실험, 워크숍, 연구 과정에서 탄생한 매우 표현력 있는 폰트를 오픈소스 라이선스로 배포하고 있다. 그들의 슬로건은 “Libre fonts for everyone(모두를 위한 무료 폰트)!”이다.
ivan-murit.fr 웹사이트
벨베틴(Velvetyne) 카탈로그 발췌문
2026년 5월 출간된 책 『Velvetyne saved my life』의 표지
계몽주의가 길러낸 인본주의적 가치와 프랑스혁명이 다진 반항 정신은 흔히 ‘프랑스의 정신’과 연결되며, 여전히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ANRT에서 진행된 특정 연구 프로젝트에서도 볼 수 있는데, 재학생인 오드리 고네Audrey Gonnet와 카이 응우옌Khải Nguyễn은 각각 시위용 현수막Writings of Protest과 베트남 최초의 풍자 신문인 퐁 호아Phong Hóa(1932)를 연구했다.
엘로이사 페레즈는 글자 학습을 연구하며 자신의 출판사인 ‘Learnings Forms’를 설립했다.
다른 학생들은 포용성 문제에 주목했다. 어린이의 알파벳과 언어 학습(유치원 필기 교육용 엘로이사 페레즈의 ‘Prélettres’나 문어 습득을 위한 로잘리 바그너의 ‘Borel’ 서체), 장애인(소피 가겔만스의 난독증 관련 연구),젠더(유제니 비도트가 개발한 ‘Adelphe’ 서체)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로잘리 바그너의 ‘보렐(Borel)’
이 같은 젠더 포용성 이슈는 프랑스어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많은 로망스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어에는 영어나 한국어에 없는 특징, 즉 ‘단어에 성gender’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원어민에게서 각 단어가 여성형인지 남성형인지 파악하는 것은 큰 난관 중 하나다(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사용해 온 필자조차도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랑스-벨기에 공동 단체로 유제니 비도Eugénie Bidaut가 소속된 퀴어 활동가 그룹 ‘바이 바이 바이너리Bye Bye Binary’는 완전한 포용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적인 성별 개념을 없애고, 새로운 글자나 합자ligature(글자끼리 이어 붙인 형태)를 도입한 서체를 개발하고 있다.
이분법 이후의 타이포그래피 상상력, Bye-Bye Binary
반항은 더 가벼운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시각 교육 전문 타이포그래퍼이자 사회 참여형 작업을 보여주는 오세안 주뱅Océane Juvin의 ‘Typefesse’ 서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오세안은 아이콘이나 픽토그램 같은 시각 시스템을 즐겨 다루는데, 유쾌하고 도발적인 이 서체는 ‘Typeface’라는 단어가 변형되어 탄생했다.
프랑스어 억양으로 발음하면 ‘Type-fesse’처럼 들리는데, 이는 프랑스어로 ‘엉덩이’를 의미한다. 참고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엉덩이를 주축으로 한 유연함으로 다양한 형상을 띠며 라틴 알파벳을 구성한다. 이 폰트는 velvetyne.fr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velvetyne.fr 웹사이트
오세안 주뱅의 ‘Typefesse’
오세안 주뱅의 ‘Typefesse’
끝으로,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배소현의 작업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국어와 프랑스어, 영어 등 3개 언어를 구사하는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라틴 문자와 한글이라는 두 문자 체계 사이의 불협화를 탐구한다. 디아스포라의 일상 속에서 여러 언어의 단어와 표현을 뒤섞으며 새로운 혼성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배소현의 연구에서 발췌
배소현의 연구 논문 자료
Writer
모건 포템Morgan Fortems은 전시 디자이너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교육자, 예술가로프랑스 낭시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래픽 전문 갤러리 마이 몽키를 설립해 큐레이터로서 20년간 다양한 디자이너와 창작자를 소개해 왔으며, 지난 15년간은 한국의 디자이너, 예술가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