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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최강록의 말, 최강록의 맛

Writer: 박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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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먹방’부터 ‘쿡방’까지, 음식을 미디어로 향유하는 문화가 셰프 대상의 팬덤으로도 점점 확장되고 있는 요즘, 최강록 셰프는 이 새로운 추세의 핵심입니다. 어쩜 이름마저 ‘최강록’인지,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을 읽으며 요리를 배웠다고 수줍게 말하던 그의 삶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성장만화의 주인공같아요. 스페인어과를 중퇴한 후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고, 이후 창업에 실패해 빚을 갚으려 참치 무역 회사에 취직한 회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요리대회에서 우승한 이야기가 이 세계에선 실화(!)랍니다. 사실 그의 인기는 10년 전으로 훌쩍 돌아가 2013년 ‘마스터셰프 코리아 2’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어딘가 어수룩하지만 담백한 진심이 담긴 그의 독특한 어휘 구조는 인터넷을 점령하기도 했어요. 그가 탄생시킨 수많은 어록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귀찮음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고 적힌 그의 유튜브 채널 중 설명 한 줄에서 은근 ‘최강록스러운’ 면이 있다고 느껴져요. 번지르르한 미사여구 없이도 누구보다 진정성 있는 말로 표현하죠. 박경은 기자가 최강록의 말에서 졸여낸 맛은 어떨지,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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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최종 우승한 최강록 셰프. 넷플릭스 제공

지난하고 고된 라운드를 우여곡절 끝에 헤쳐 왔다. 마침내 죽음의 계곡에서 살아남은 그는 최후의 승기를 눈앞에 둔 채 크고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시리즈의 마지막 요리를 심사위원 안성재와 백종원 앞에 내놓은 채···. 화면 너머로는 짜릿한 긴장감과 함께 나른한 해방감 비슷한 느낌도 전해졌다. 최후 무대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너무너무 잘했다고 축하하고 싶었고, 이미 마음 속에선 뜨거운 박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승부는 승부였다. 심사위원 안성재는 묻는다. “왜 이 요리를 자신에게 주고 싶었어요?”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감동받을 준비를 한 채 최강록의 ‘최후 진술’을 기다렸다.

“저는 조림인간입니다. 연쇄···.” 

최강록의 말은 그 뒤에 꽤 이어졌다. 하지만 두근거리며 방송을 지켜보던 나는 “저는 조림인간입니다” 하는 부분에서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최강록식 유머의 절정이었으니까. 일단 그의 말부터 들어보자. 깨두부를 넣은 국물요리를 만들게 된 이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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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최종 우승한 최강록 셰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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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 2 결승무대에서 최강록 셰프가 자신을 위해 만든 요리와 함께 소주를 내놓은 뒤 설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연쇄조림마, 조림핑, 그런 별명을 얻어 가면서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습니다.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척하기 위해 살아왔던 인생이 좀 있었습니다. 나를 위한 요리에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얼마나 짠했던가. 주방에서 누군가를 위해, 그것도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긴장하며 졸여야 했다는 그의 고백이다. 많은 사람은 수고했다고, 충분했다고 도닥여 주고 싶었을 게다.

이런 짠한 서사를 앞두고 나온 그의 ‘조림인간’ 멘트에서 나는 ‹흑백요리사› 시즌 1 결승전에서 에드워드 리가 했던 “저는 비빔인간입니다”가 떠올랐다.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아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에드워드 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그렇게 자신을 정의했다. 비빔인간이 만든 비빔밥을 보며 그 맛을 상상하기보다는 숭고하고 숙연한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낀 사람이 꽤 많지 않았을까? 최강록 씨가 그 장면을 어떻게 지켜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담담하면서 꼼꼼하게 주변을 바라보고, 숙고하고, 일상에 농축해 내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면 조림인간은 최강록표 유머의 절정이자 지독하게 솔직한 자기객관화, 비빔인간에 관한 진지하고 위트있는 오마주였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최강록 어록이라는 이름의 콘텐츠와 수많은 밈이 넘쳐난다. 

“나야, 들기름”, “제목은 ##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OO을 곁들인”, “엄마가 해주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전 아빠지만”, “떨어질 수도 있죠. 떨어지면 한 1년 동안 인터넷을 안 하면 되거든요”.

여기에다 밑도 끝도 없이 넣는 ‘예’, ‘음’, ‘그러니까’ 따위의 추임새까지 일일이 글로 옮기기 힘든 것이 많다. 이번 시즌에서 “나야, 재도전”으로 포문을 연 그의 최고 어록으로 ‘조림인간’을 꼽고 싶지만 대중은 또 의외에 포인트에서 열광했다. 자신이 만든 민물장어 요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는 진땀을 흘린다. “폭신폭신한 느낌이···(3초간 정적 후)···‘을’ 한번 그냥 맛 보여드리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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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셰프코리아›(이하 마셰코) 시즌 2에서 우승한 뒤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다시 우승을 거머쥐기까지 그의 요리 실력은 더욱 정교하고 깊어졌겠지만, 어째 그의 말솜씨는 더 어눌해진 것도 같다. 우리가 본 처음부터 그는 눌변이었다. 뭔가를 설명하고 싶지만 말문이 막혀 멈춘다. 막상 설명을 시작하지만, 그는 앞서 했던 부족한 말에 조금씩 설명을 덧댄다. 그래서 음, 그러니까, 예··· 따위의 추임새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급기야 조사를 ‘이’에서 ‘을’로 바꾸는,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을 두고 고치는 데선 한국어 문장을 정교하게 구사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셰코› 때였나. 심사위원들은 그의 요리 설명을 듣다 오히려 답답해하며 유려하고 적확한 표현으로 그의 요리를 설명해 줬다. 그들의 설명에서 “당신 요리 이렇잖아요. 이렇게 설명하고 싶었던 거 맞죠? 어때요? 내 설명. 당신 맘에 쏙 들지 않아요?” 하는 속뜻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다. ‹흑백요리사›에서도 그는 여전히 말을 더듬거렸고, 그의 문장은 툭툭 끊어졌다. 심사위원들은 비져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질문을 툭 던진 채 그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잠깐의 ‘포즈’에선 심사위원들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말이 들려왔다. “당신이 가장 못하는 게 음식 설명이잖아요. 알아요. 하지만 이건 요리경연대회인 걸요. 말 잘하는 방송인 가리는 게 아니니 걱정 말아요.” 이런 음성이 재생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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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만의 언어 구사력이 돋보여 ‘휴먼강록체’로 불렸던 대사 “제목은 고추장 닭 날개 조림으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바질을 곁들인” 장면의 방송 화면. 추후 수많은 인터넷 게시물의 제목과 댓글에 ‘제목은 000으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000을 곁들인’ 구조가 재활용되며 해당 표현의 출처를 묻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 2 유튜브 화면 갈무리

‹흑백요리사›는 시즌 1, 2를 통해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시청자 저마다의 ‘원픽’들이 있을 테고 외식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중 최강록은 여느 스타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시즌 1 당시 하던 식당도 폐업했던 그는 자신의 요리를 기대하는 대중의 기대에 부담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때문에 시즌 2가 마무리되면서 오죽했으면 물 들어올 때 노를 버린 그를 두고 “제발 배 위에 그냥 앉아만 있으라”는 아우성이 쏟아졌을까. 당장은 식당을 열 계획은 없다는 그가 당분간 어떤 모습으로 대중을 만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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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곳하게 어깨에 기댄 최강록 셰프의 포즈가 화제가 되었던 ‹흑백요리사› 시즌 2 단체 사진. 넷플릭스 제공

그는 자신을 포장하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지만 주어진 방송 공간에서 그게 잘 안됐다. 그래서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다. 승리욕이나 욕심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무기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열심히 애쓰지만 날이 서 있지는 않은, 뭔가 애매한 상태랄까. 웬만한 방송에서라면 다 편집되었을 모습들이지만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은 아마도 그런 날것의 미완성에서 그의 진정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시청자들에게도 전달됐고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사람들은 왜 그에게 빠져들었을까? SNS에 숱하게 쏟아지는 콘텐츠와 각종 미디어에서 공통적으로 그의 진정성을 꼽는다. 진정성. 우린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진정성을 갈구해오지 않았던가. 기막힌 기교와 음색, 음악성으로 무장한, 번뜩이는 재능을 지닌 무명 아티스트들의 진정성에 감동하고 감탄해 왔는데 왜 계속 진정성 타령인가 말이다. 아마도 그의 삶과 서사에서 나 자신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가장 흑수저같은 백수저다. 흑수저로 출연한 셰프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를 졸업했고 이름만 들어도 탄성이 나올만한 레스토랑에서 이력을 쌓았다. 물론 ‹마셰코›라는 프로그램 우승 역시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은 아니지만 소위 ‘스펙’으로 정의되는 경쟁무대에서 그의 이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요리만화에 반해 요리를 시작한, 숱한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중년을 맞은 만화적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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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김소희 셰프와 최강록 셰프(오른쪽). JTBC 유튜브 화면 갈무리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취업하기 위한 면접시험에 참석한 최강록. 순발력이 불가피한 압박면접 공간에서 과연 그는 합격할 수 있을까? 끝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면접관들은 얼마나 될까? 어눌하고 느린, 답답하기까지 한 그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으며 그의 진정성을 알아보고 가능성을 펼치게 해 줄 회사가 있을까?

지금 사회는 ‘보여주기’가 먼저 요구되는 구조다. 유려한 표현력으로 완성되어 보이는 모습이 실력의 척도로 평가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는 길게 봐야 진가를 알게 되는 사람 아니던가. 얼마 전 그가 출연했던 ‹냉장고를 부탁해›를 봤다.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은 ‹흑백요리사›와 다른, 요즘의 전형적인 면접장이다. 자기 피알과 순발력, 대상을 향한 빠른 어필이 중요한 포맷의 무대 때문일까? 최강록은 그대로였지만 그의 매력이 이 공간에서 동일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흑백요리사›는 진득하게 기다려 준 무대였다. 소위 자기 피알에 젬병인 최강록의 특징은 강한 매력으로 작동했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메시지가 전달됐고, 그런 그에게서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꼈다. 저렇게 해도 잘해낼 수 있구나. 그의 진정성을 심사위원들이 알아봐 줬구나. 잘하면 그가 우승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그를 지지하며 끝까지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나를 포함해 우리 주변엔 저런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런 사람의 성공은 너무 희소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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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우승한 최강록 셰프가 넷플릭스와 인터뷰하면서 “국숫집을 하면서 늙어가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얼마전 넷플릭스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 가게를 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라면서 “나중에 국숫집을 하며 늙어가고 싶다”라고 했다. 중년이 되면 힘이 많이 없어질 것이라는 설명을 붙이면서 말이다. 알려진 프로필에 따르면 1978년생인 그는 올해 마흔여덟이다. 이미 중년인 그가 국숫집을 열 나이가 몇 살쯤일지 알 수는 없다. 맨손의 실력으로 무수한 식재료를 조리며 고유의 맛을 뽑아내 온 그가 어떤 국물과 면발을 뽑아낼지도 궁금하다.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리듬을 지키는 그가 만드는 국수는 어떤 맛일까? 그의 국수를 종종 맛보며,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나를 들볶는 대신 나만의 맛을 졸이며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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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박경은(@pkyongeun)은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다. 탐식(貪食)과 잡식(雜識)을 지향하며 수십년째 써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집필 노동자로 늙어가고 싶다고 한다. 책 성스러운 한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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