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Essay

밈 원정대: 민희진은 왜 밈이 되었을까?

Writer: 김경수
header_essay_김경수_민희진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지난 4월 25일 서울시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경영권 탈취 시도 관련 의혹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인데요. 2시간에 달하는 생중계가 끝나자, 민희진 대표는 ‘국힙원탑’이란 별명과 함께 순식간에 대한민국 주요 매체 뉴스를 장악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기자회견 때 입은 옷은 불티나게 팔렸고, 어록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수없이 공유되면서 이를 패러디한 창작물이 쓰나미처럼 나타났어요. 순식간에 인터넷 밈이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기자회견은 민희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을 받을 만큼 역대급 반향을 일으킨 민희진 대표와 관련된 밈은 지금도 계속 소셜 미디어를 통해 증식 중이랍니다. 인터넷 밈을 연구하는 경수 님에게 민희진 대표가 밈이 되는 현상은 결코 놓칠 수 없는 분석 대상인데요. 그래서 «비애티튜드»가 시대정신에 발맞춰 준비해 보았습니다. 민희진 대표는 왜 밈이 되었을까요? 경수 님이 관찰한 이모저모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01_essay_김경수_민희진

마법의 망토랄까. 민희진 인터넷 밈을 완성하는 것이 이 LA다저스 모자라고 생각한다. 민희진을 신화 속의 존재로 승화하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모자를 쓰지 않은 민희진 밈이 가능하기나 할까. 이 모자의 힘을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인터넷 밈을 쓰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갈린다. 인터넷 밈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적 오브제라고 생각한다. © MLB

그날만큼은 영화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섯 번의 ‘이선좌’ 끝에 보지 못했던 ‹더 비스트The Beast›(2023)를 드디어 영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식 수입될 가능성 또한 제로에 가까워서 그때가 아니라면 영영 놓칠 게 분명했다. 레아 세두Léa Seydoux가 주연을 맡은, 호불호가 꽤 갈리는 괴작이란 소문은 익히 들었기에 한껏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영화관 인근 카페에서 밀린 원고를 마감한 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볼 요량이었다.

영화 시작을 여유롭게 기다리는 중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하이브가 제기한 어도어 경영권 찬탈 의혹에 대한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 생중계가 시작된 것이다. 레드벨벳 덕질 10년 차로서 민희진의 오랜 팬이기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유튜브를 켰다. 그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초록색 스트라이프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파란색 LA 다저스 볼캡을 눌러쓴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이윽고 20분 가까이 정돈되지 않는 말을 쏟아냈다. 솔직히 우려됐다. 가뜩이나 여론이 녹록지 않은 데다 기자회견 직전 무당의 지시 아래 어도어를 ‘주술경영’했다는 기사까지 퍼진 마당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을 뒤집기는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적어도 그가 자신을 직장인이라고 말하며 하이브 임원과 나눈 카톡 대화 내력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02_essay_김경수_민희진

기자회견 30분을 넘어갈 때부터 도파민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화면에 띄우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며 사자후를 내지르자 분위기가 달아오른 것이다. 얄궂게도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영화도 상영을 시작했다. 솔직히 영화에 집중이 단 1도 안 됐다. 지금 민희진이 밖에서 실시간 블록버스터를 찍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SM엔터메인먼트에서 퇴사하고 하이브에 입사한 경위, 하이브 임원진의 푸대접, “돈에 미친 세상”이라는 일갈, K팝 산업에 대한 신념, 뉴진스와의 러브 스토리, 자매 레이블의 뉴진스 표절 등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에 맥락이 더해질수록 서사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04_essay_김경수_민희진

K-영화와 K-드라마를 통해서 세계적인 유행어가 된 욕 “x발새끼”를 직접 들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상에서 장난투로 쓰는 욕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에서 한恨이 응어리져 쏟아져 나오는 x발새끼는 더욱 그럴 것이다. ‹오징어게임›의 “x발, 기훈이 형!” 정도가 조금 그 경지에 다다랐달까. 민희진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x발새끼는 단언컨대 x발새끼 중 가장 완전한 x발새끼일 것이다. 우리는 평소 민희진과 비슷한 톤으로 x발새끼를 일상에서 여러 번 외친 적이 있다. 다만 그 순간에 터져 나오는 한을 타인과 공유하긴 힘들다. 이 x발새끼는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게끔 한다. 왜 우리는 응어리진 한을 발화하기가 힘들었을까.© X

하이브 임원진을 가리켜 “술을 처마시”고, “골프를 치”는 “개저씨”로 부르는 순간 이번 기자회견이 ‘떡상’할 기운을 느꼈다. 돈에 미친 기업 vs 일에 미친 직장인 구도가 만들어지자, 민희진은 중년 남성이 고위직을 독차지하는 호모 소셜, 유리 천장, 직장 내 이권 다툼 등 일터에서 생길 수 있는 각종 부조리와 K팝 시장의 악습, 돈독 오른 세상에 맞서 혈혈단신으로 싸우는 히어로가 되어 버렸다. LA 다저스 볼캡이라는 코스튬까지 있으니, 이보다 슈퍼 히어로 영화 공식에 충실한 설정도 없을 것이다. K팝을 소비하며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30대 사이에 공감대가 생기자, 여론은 단번에 뒤집혔다. 그날 밤 민희진은 밈의 화신이 되어 대한민국 소셜 미디어를 강타했다.

예전 유튜브에서 진행한 장난식 설문조사인 ‘내가 꼭 나가야 한다면?’의 결과를 합성해 ‘술 한잔할 건데 나올 수 있냐’는 민희진이 ‘좋은 소식 있는데 들을 거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압도하는 짤이 퍼졌다. “아니 개저씨들이”, “아니 이 X발 새끼들이”, “들어올 거면 맞다이로 들어와” 등 기자회견 어록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유머 계정을 도배했다. 민희진이야말로 리얼 힙합이라며 ‘국힙원탑’으로 추앙하고, 그의 어록에 비트를 입혀 리믹스한 힙합 영상이 유튜브에 쏟아져 나왔다. ‹SNL 코리아›의 크루 중 누가 민희진을 패러디하냐는 질문이 오가기도 했고, 뉴진스의 팬덤, 버니스의 상징인 토끼에 민희진의 기자회견 착장을 입힌 짤도 떠돌았다. 카톡 대화 내역에 등장한 “~~밟으실 수 있죠?”, “ㅎㅎ즐거우세요? 아 즐거우시냐고요ㅎ”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두가 기자 회견이 끝난 당일 밤에 탄생했다. 이 정도로 폭발력 있는 밈의 등장은 최근 들어 비교 불가의 수준이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은 그날 저녁 바로 프리스타일 랩으로 제작되었다. 이찬혁이 말했듯이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진 세상에서, 코미디언 듀오 맨스티어의 ‘AK-47’이 힙합 씬에 파란을 일으키는 세상에서 민희진이 국힙 원탑으로 불리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의 딕션이 워낙 찰진 데다가 리듬감이 있어서 프리스타일 랩으로 가공하기 편한 탓도 있을 터다. 그를 비판하기 전에 그가 힙합이 될 만큼 비판적 언어가 망가진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다.

한편 기자회견을 둘러싼 찬반 의견도 만만찮게 대립했다. 젊은 여성 직장인의 설움과 한을 토하는 민희진에 대한 공감과 기자회견이 감성팔이의 도구냐는 비판은 지금도 팽팽히 대립 중이다. 하이브와 민희진의 갈등이 부르주아의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찻잔 속의 태풍처럼 대하는 냉소론자도 존재한다. 누군가는 민희진과 뉴진스의 관계를 통해 K팝 산업에서의 청소년 연습생의 소외를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세대론을 끄집어낸다. 하나하나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 우리나라에 K팝 전문가가 수만 명은 있는 것 같으니, 한 명의 K팝 팬에 불과한 입장에서 잘잘못을 가리는 통찰력은 요연하다. 인터넷 밈 덕후로서 여기에 말을 얹을 것이면, 민희진이 왜 밈이 되었는지 고민하는 게 훨씬 생산적인 일이겠다.

언론 앞에서의 말 한 마디는 손쉽게 풍자의 대상이 되곤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안철수의 “누굽니꽈”, 고승덕의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아!” 등은 아직도 인터넷 밈으로 회자된다. 외국이라고 뭐 다를까. 당장 옆 나라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는 “지금처럼이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지금처럼이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등 당연한 말을 되풀이하는 괴상한 순환 논법으로 유명하다. 발 연기가 떠오르는 인위적인 감정이나 우스꽝스러운 언행이 언론에 박제되면, 평생 네티즌의 비웃음거리가 된다. 명언을 시도한다든지, 뻔한 맥락에서 과잉된 감정선으로 주목을 끄는 과정에서 엄청난 헛발질을 한 업보다.

05_essay_김경수_민희진

고승덕의 미안하다는 곧장 애비메탈 등으로 가공되었다. 미안하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워낙에 찰진 탓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밈이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2001년 god 멤버 박준형의 기자회견은 가장 앞줄에 위치한다. 당시 여배우와의 연애에 집중하느라 활동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소속사로부터 팀 퇴출 통보를 받은 그를 지키기 위해 퇴출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설의 “나 서른두 살이에요. OK? 서른두 살이면 여자 친구 있어야죠.” 어록이 탄생한 순간이다. 최근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피식쇼›에 출연한 그는 최대한 논리적으로 대답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카메라 전원이 들어온 순간 자기도 모르게 설움이 폭발했다고 회상했다. 매년 1월 1일이면 막 서른두 살이 된 사람들이 기자회견 때 사진을 DM으로 보낸다는 웃픈 사연도 말했는데, 나도 서른두 살이 되는 새해를 맞아 DM을 보낼 생각이므로 미리 사죄드린다. 박준형의 기자회견 이후로는 단연 2008년 나훈아의 기자회견이 압도적이다. 1년 동안 활동을 잠시 중단했던 나훈아는 잠적설을 포함해 온갖 소문에 시달렸다. 그는 야쿠자의 애인과 불륜을 저질렀다가 신체 일부가 훼손됐다는 루머를 해명하던 중 급작스레 호통을 치며 단상에 올라가 바지춤을 내리기 시작했다. “제가 내려서 5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봐도 멋진 모습이었다.

울먹이는 얼굴로 나 32살이에요 오케이?라고 외치는 박준형의 기자회견은 아이돌 팬덤 문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K-POP은 탄생할 때부터 아이돌과의 유사-연애로 운영되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혈서를 써서 보내고, 타 아이돌과 열애설이 났다고 살해 협박까지 하는 사생팬이 매일 뉴스에 등장하던 시기보단 지금이 낫다. 연애를 한다는 이유 만으로 한 인간의 일상이 파괴되는 일은 없으니까. 박준형에게는 아이돌의 연애를 터부시하고 퇴출까지 감행하는 당시의 문화가 낯설었을 것이다.

06_essay_김경수_민희진

나훈아의 기자회견은 테스토스테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에 대한 의혹에 이만큼 당당하게 대응한 경우가 몇이나 있나 싶을 정도다. 최근 나훈아의 은퇴 콘서트 후기가 SNS에서 유행했다. 상남자 중 상남자라는 평이 한가득했다. 모든 것에 쿨하고 대범한 나훈아의 캐릭터는 서로의 거리는 가장 가깝더라도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가장 방어적인 지금 우리 세대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

그럼 민희진은 왜 비웃음이 아니라 열광의 대상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민희진의 모습이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연극적인 행동으로 특정 의도를 전달하려 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박준형, 나훈아, 민희진이 기자회견 중에 펼친 돌발행동이 사전에 계획한 것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본인 입으로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영원히 모르는 일이다. 세 사람의 언행에서 무언가를 선언하겠다는 의도나 정교한 포석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히려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관람한 사람들은 술자리 한탄을 들은 기분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런 친근함을 고도의 연극적인 성취로 간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희진의 언행보다 오히려 그가 서 있던 기자회견이 본질적으로 연극과 유사하다고 느낀다. 기자회견에 임하는 주인공은 사건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최대한 탄탄한 논리와 격식 있는 말투로 말하길 강요당한다. 그에 맞는 엄숙하고 단정한 복장 또한 필수다.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자신의 몸짓과 행동, 발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언론에 박제되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촬영 현장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테이크가 하나라는 점에서 연극에 가깝고, 그렇기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엄숙한 기자회견에서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합의한 암묵적인 룰을 위반하는 위험한 일이다. 민희진은 이를 통쾌히 깨트리며 기자회견이 갖는 연극성을 가시화한다. 논리적인 비판이 강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 그의 기자회견이 갖는 힘은 점점 커진다. 이성적인 태도와 프로다움, 조직을 강조하고 개인의 목소리를 지우며 고분고분 행동하길 독촉하지만, 정작 (본인은) 실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기성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07_essay_김경수_민희진

미국의 사회학자 어빈 고프먼Erving Goffman은 사회생활을 연극에 비유한 바 있다. 우리는 학교, 회사 등의 공적 장소와 집과 술집 등 사적 장소를 오가며 생활한다. 공적 장소에 머무는 개인은 타인과 소통하며 제 역할을 정하는데, 종종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며 자아를 연출한다. 관객에게 노출된 연극 무대에 오른 듯 행동하는 게 곧 사회생활인 셈이다. 고프먼은 이런 상황에서 무대 뒤편, 즉 사적인 자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적인 생활과 유희를 충분히 즐길 때에야 다시 공적인 자리에 등장할 채비를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에 끊임 없이 접속하며 항상 공적인 자리와 연결된 현대인의 연극은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 걸까? 어쩌면 무대 뒤편을 박탈당한 건 아닐까. 민희진의 기자회견장에 카톡 대화가 적나라하게 소환되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감성적인 것을 냉소하고 ‘팩트’라는 단어를 숭배하는 소셜 미디어 여론은 우리 삶의 원동력으로 기능하는 감성과 도파민이 설 자리를 소멸시키고 있다. ‘선즙필승’과 ‘감성팔이’라는 모멸적 표현이 난무하는 상황을 보자. 합리적인 대화에 꼭 필요한 요소인 이성과 팩트는 언제부터인가 그 의미가 뒤틀려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폭력적으로 쓰이고 있다. 감성을 유지하며 사건을 바라보는 쪽을 그저 민폐 끼치는 존재로 싸잡아 치부하고 깔아뭉개며 발화자의 우월감을 채우기 위한 도구적 수사로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 기복과 격정적인 표현으로 기자회견의 룰을 부순 민희진의 모습에 많은 대중이 해방감과 쾌감을 느끼며 그를 영웅시하고, 밈으로 승화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민희진 기자회견 직후에 곧장 프리스타일 랩과 리믹스가 쏟아져 나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생중계로 진행된 직후 민희진의 기자회견 전체가 여러 언론의 유튜브 채널에 그대로 업로드되었다. 합성 소스로 쓸 원본이 곧바로 생겨난 셈이다. 인터넷 밈 제작자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민희진이 기자회견 때 쓴 볼캡에 대한 인기는 그래서 무척 흥미롭다. 기자회견 종료 후 온라인에서 매진된 LA 다저스 볼캡은 박찬호와 민희진을 거쳐 착용만 하면 마법처럼 끝없이 말하게 되는 밈으로 등극했다. 사람들은 왜 이 모자를 사들이는 걸까? 혹여 직장인 중 직장 내 불만을 모두 쏟아내고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가영이의 퇴사짤’을 모니터 바탕화면에 시원하게 띄우고 싶은 욕망 말이다. 혹시 LA 다저스 볼캡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이들에게 일말의 위로를 주는 도구 아닐까. 그렇다면 이참에 전 국민이 다 함께 히어로 코스튬처럼 ‘민희진 모자’를 구매해도 좋겠다. 언제 어디서건 눈치 보지 않고 누구든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나도 이번 원고료를 받으면 구매에 동참할 생각이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드디어 동명의 단행본으로 오는 6월 17일 발간된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