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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기묘한 K씨의 창작활동

Writer: 핸디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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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핸디킴은 암스테르담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전시, 웹진, 워크숍 등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시도해 왔어요. 그는 관객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일상에 파고들어 적극적으로 소통하길 원한답니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보다 보면 정감 가는 ‘친절한 디자인’을 꿈꾸는 핸디킴. 창작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그의 에너제틱 스토리는 역대 어느 창작자보다도 밀도 있고 공들인 언어로 풀렸어요. 지금 바로 그 열정을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hoheluft magazin› Cancel culture issue 삽화, 2020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디자이너 핸디킴입니다.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왕래하면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떤 분은 작가로, 또 어떤 분은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부르시는데요. 매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작업하는 편이라 다양한 포지션으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제 자신을 소개할 때 주로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디자이너라고 소개합니다. 전반적으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가끔은 ‘비주얼 커뮤니케이터Visual Communicator’라고 소개할 때도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물 흐르듯 디자이너가 된 것 같아요. ‘나는 시각 디자이너가 될 거야!’라는 단단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건 아니었어요. 뒤돌아보면 초등학교 6학년 졸업 시기 즈음의 사건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나요?”라는 질문의 설문지를 받고, 마침 집에 있던 직업 도감을 읽었는데 ‘서체 디자이너’가 여러 직업 중 하나로 소개되었더라고요. 그 이름에 멋짐을 느끼고, 디자이너를 막연하게 선망했죠. ‹허니와 클로버›, ‹핑크 레이디› 등의 만화와 웹툰을 보면서 예술을 하는 것도 열망했지만, 구체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국 미술 입시는 원하는 전공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형태가 아니라, 성적순으로 지원해야 하니까요. 저는 그저 거창하게 ‘미술’이 하고 싶었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어떤 학교에 가고 싶다’ 정도의 열망을 갖고 공부에 임했죠. 그런데 제가 당시에 희망하던 시각 디자인과는 어떤 학교든 예술대에서 성적이 가장 높아야만 지원이 가능했어요. 재수 끝에 원하는 학교에는 입학했지만, 도자공예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운이 참 좋게도, 저랑 잘 맞았어요. 물성이 잘 맞아서 작업이 즐거웠고, 꿈꾸던 서울 삶도 행복했죠. (지방 사람입니다. 하하). 무엇보다 제가 어떤 작업을 원하는 사람인지 조금 더 진지하게 탐구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리고 화이트 큐브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작업보다 좀 더 일상에 파고들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작업에 대한 열망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죠. 이러한 생각이 미치니까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더군요. 주변에 고개만 돌리면 가득한 친절한 예술이 저에겐 시각 디자인이었거든요. 문제는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전과가 어려웠어요.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죠)

Demofestival ‹A Walk(산책)›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2022

그래서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어요.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갈증이 컸거든요. 결국 저는 헤이그라는 도시에서 시각 디자인을 배우게 되었는데요. 당시 학교에서 편집 디자인이나 모션 디자인 등 굉장히 구체적인 접근 방식이 아니라 탈영역적인 형태의 시각 디자인 작업을 서포트해 줬어요. 저 또한 비주얼로 풀어내고 싶은 형태가 다양해서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비주얼 작업을 하는 성격을 갖게 되었죠. 근본적으로 ‘왜 나는 이렇게 시각 언어를 작업해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말을 너무 못해서’인 것 같아요. 저는 대화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동시에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목소리로 전달하는 일이 무척 어려워요. 누군가와 소통할 때 ‘지금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걸까?’, ‘저 사람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라는 불안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죠. 그런 걱정 때문에 말에 사족이 많아져서 핵심을 방해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만드는 비주얼은, 제 말보다 전달력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비주얼로 소통하면 누군가와 소통하는 데 무리가 없더라고요. 심지어 이해와 공감을 자아낼 기회가 훨씬 많아지는 것 같아서 지금의 작업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Transforming Desires», In collaboration with Team Rodina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 2020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헤이그에 살 때 학생들이 모여 지내는 플랫 안의 개인 공간을 작업실로 꾸며 사용했어요. 이것저것 쌓아 놓고 살아서 창고 같기도 했고, 좋게 보면 쇼룸이기도 한 공간이었죠. 지인이 와서 작업실을 배경으로 촬영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대로 가구를 갖춘 집처럼 안락한 공간은 아니었어요. 마땅한 탁자 하나 없어 손님이 오면 작업실 구석의 종이상자 두 개를 덧대어 간이 식탁으로 쓰곤 했죠. 겨울엔 냉장고처럼 추워서 친구들이 자기 집에서 자라며 말하기도 했고요. ‘따뜻하고 안전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잡다한 느낌의 작업을 만들기에는 좋았던 곳으로 기억해요.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손에 무언가 잡을 수 있게끔, 무질서 속의 질서를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죠. 문제는 이 패턴으로 4년을 지내니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더라고요. 조금만 손발이 시리면 책상에 앉기가 힘들어지고 (기본적으로 네덜란드는 거주 공간이 따듯한 경우가 많이 없어요), 일어나자마자 주변에 널브러진 작업을 보면 기분이 괜히 더 지겨워지고… 그래서 암스테르담으로 거처를 옮긴 후로는 개인 공간과 작업 공간을 분리했어요.

저는 현재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개인 스튜디오를 병행하고 있는데요. 출퇴근하는 데 거의 4시간이 걸려서 기차 내 작은 책상은 언제나 제 작업 공간으로 변해요. (웃음) 회사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다시 책상에 앉는 게 힘들더라고요. 집은 최대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서 아주 최소한의 작업 테이블만 뒀어요. 메인 작업을 위한 공간은 따로 만들었죠. 그렇게 집순이 모드와 작업자 모드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분리하니까 작업 퀄리티도 높아지고, 또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더군요. 작년 12월까지 집에서 꽤 많이 먼 곳에서 작업했는데요. (도보로 1시간 거리인데 여름에도 손발 시릴 정도로 추운 공간이었어요) 최근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장소로 스튜디오를 옮겼어요. 새로운 스튜디오는 다른 일을 하는 분들과 함께 쓰는데요. 자주 오는 분들이 아니라 아주 널널한 환경에서 개인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무엇보다 따뜻해서 좋아요! 주변 디자이너와 스몰 토크를 할 수 있어서 입에 거미줄 치지 않을 수 있고요. 랜덤한 주제로 얘기를 나누며 스트레칭하면, 머리에 잠시나마 신선한 공기가 불어오는 느낌이 들어요. 얼마 전에는 제 책상을 새로 들여서 꾸미기에 여념이 없는 상태입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작업할 생각에 기대감이 부푼 요즘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10대 시절부터 늘 무언가를 캡처했어요. 말 그대로 휴대폰으로 ‘캡처’를 실행하기도 하고, 순간을 ‘캡처’하기도 해요. 쓸데없다고 생각해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메모하고, 후각 경험과 시각 경험을 휴대폰 메모장에 후다닥 적어둬요. 감정이 확 불어올 때 놓치기가 싫더라고요. 그리고 지인들에게 일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한 번쯤 떠올려 볼 법한 질문을 던지면서 되돌아온 대답을 캡처해 저장해 둡니다.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스크린샷을 죽 훑어보면 꽤 신선한 답변이 많고, 때론 허를 찌르는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해요.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를 지인에게 문자로 보낼 때도 있어요. 정제하지 않은 아이디어라 말이 되지 않고, 이해하기도 매우 어려운 지점도 있어서 아주 냉철하고 진지한 피드백을 받는데요.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나눈 대화에서 영감을 많이 얻은 것 같아요. 이미지 디깅하는 걸 참 좋아해서 텀블러나 아카이빙 관련 사이트를 몇 시간이고 서칭할 때도 많아요.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이미지의 원본을 찾아보면서 작가 혹은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그 사람의 연작은 무엇인지, 작품에는 어떤 내러티브가 담겨있는지 알아내고, 발견한 내용들을 정리해 적어 둡니다. 시간을 정해두고 메모장을 열어보지는 않지만, 작업을 하다가 막히는 날에 한 번씩 체크해 봐요. 몇 년 전 저장한 메모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을 때도 있죠. 과거의 랜덤한 행위가 현재의 저를 막막함에서 꺼내어 주는 경우가 많아요.

개인적으로 SNS에서는 뚜렷한 영감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감정적인 동요를 경험하는 부분이 커서요. 그래도 마음이 루즈해질 때면 SNS가 좋은 채찍이 될 때가 있어서 이 역시 영감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빨리 많이 보는 걸 잘해서 읽을 수 있는 형태의 미디어도 자주 찾는 편이에요. 전 애니메이션보다는 만화책 파인데요. 가사가 없는 노래들, 특히 2000년대 이전에 방영된 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은 작업을 할 때 저의 기름이 되어줘요. ‹다!다!다!›, ‹천사소녀 네티›, ‹디지몬 테이머즈›, ‹FLCL›의 사운드트랙이 근래 몇 년 동안 좋은 연료가 되어주었답니다. 제가 지금 하는 작업은 모두 10대 시절의 경험에서 영감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엔 30대의 제 작업을 위한 영감의 양분을 쌓으려 노력합니다. 작년에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을 읽고 아주 오랜만에 ‘예술’을 계속하고 싶다는 동기를 강렬하게 느꼈는데요. 이런 경험들은 작업 행위 자체를 의심하지 않도록 돕는 영감이라 제게는 너무 소중한 경험이에요. 30대 어느 날엔 윤고은 작가의 책에서 느낀 감각이 담뿍 묻어나는 작업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개인 프로젝트 «Sandwitch» 전시 인스톨레이션, 2021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가장 먼저 스토리를 만들어요. 앞에서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말보다는 비주얼을 제 언어로 활용해요.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를 정리하는 데 힘을 쏟아요. 스토리를 어느 정도 구상한 뒤에는, 스토리를 아주 예쁘게 포장합니다. 대화할 때도 적절한 단어를 골라 예쁘게 전달하려 노력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너무 날것의 내용을 전하지 않기 위해 은유적인 방식의 아이템으로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포장합니다. 여러 아이템의 묘사를 완성하면, 메인 재료는 준비가 얼추 끝나요. 다음으로는 한 화면에 재료들을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아이템은 삭제하고, 어떤 아이템은 강조해요. 그렇게 구성을 마치면 작업이 참 추상적으로 변하는데요. 이후에는 과감하게 색을 변형하거나, 기존에 생각하지 않았던 아이템을 작업에 끼워보는 등 처음에 계획하지 않았던 프로세싱을 거칩니다. 이 과정이 생각보다 정말 중요해요. 처음에 전달하려는 이야기는 핵심에 자리 잡고 있지만 종종 처음 마음에 품은 아이디어에 갇히며 납작한 이미지를 만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약하게 갇힌 시선을 깨야 무의식적으로 핵심에 더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요. 이때 굉장히 많은 변형이 탄생해요. 어떤 쪽이 제가 전달하고자 한 이야기와 가장 상응하는지 고민하죠. 모니터에 크게 띄워보기도 하고, 작은 사이즈로 프린트해서 살펴보기도 하고, 휴대폰 화면에 띄워보기도 한답니다. 신중한 선택을 한 뒤에는 확신의 시간을 가져요. 선택하지 않은 변형물은 아카이브에 남겨두고,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 작업의 세세한 디테일을 잡고 마무리해요. 최종본은 소중하게 압축해 메일에 첨부합니다.

개인 프로젝트 «Sandwitch» 게임 일부 장면, 2021

개인 프로젝트 «Sandwitch» 게임 일부 장면, 2021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나의 이웃집 K씨 – 기묘한 그 정원»

사운드 아티스트 김익명 씨와 함께 ‘코-테크닠Qootechniq’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작년 하반기에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PCS를 운영하는 유승한 작가와 협업해 «나의 이웃집 K씨 – 기묘한 그 정원»이라는 전시를 서울 엘리펀트 스페이스에서 열었죠  2021년 쯤에 NFT, 메타버스 등 테크놀로지와 연계된 개념 및 콘셉트에 대한 담론으로 세상이 시끌벅적했는데요. 이때 사람들 반응이 참 재밌었어요.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시장에 빠르게 접근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흐름에 질질 끌려가는 사람도 있고, 새로 듣는 콘셉트라며 질겁하는 사람도 있고… 기술의 발전은 늘 우리 곁에 있는데 생각보다 여전히 어렵고 불편하고 두려운 형태를 띠는 점이 흥미로웠죠. 그래서 ‘기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몬스터화했어요. 그리고 이 몬스터를 마주쳤을 때의 군상을 픽션으로 풀어보자고 마음먹은 게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였죠. 전시 기획부터 제작, 참여 및 진행 모두 저와 익명 씨 두 사람이 맡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힘들고) 흥미로웠답니다. 공간 선택부터 심혈을 기울였어요. 창작한 픽션에 어울릴 법한 이질적인 분위기를 뽐내는 장소를 찾으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연남동 가정집과 아기자기한 카페가 있는 골목에 덩그러니 존재하는, 삼면이 통유리인 전시 공간 엘리펀트 스페이스를 선택했어요.

코-테크닠 프로젝트 «나의 이웃집 K씨 기묘한 그 정원» 전시 전경, 2022

코-테크닠 프로젝트 «나의 이웃집 K씨 기묘한 그 정원» 전시 전경, 2022

전시는 갑작스럽게 신기술을 맞닥뜨리게 된 사람, 즉 K씨가 주인공인데요. 이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모두 각기 다른 K씨라 가정하고, 그가 경험하는 기술들의 군집 ‘기묘한 정원’이 가진 내러티브에 집중했어요. 전시를 경험하는 모두가 기묘한 정원을 체험하기를 바라며 초대장을 제작해 주변 사람에게 전했어요. 이름은 알고 있지만, 뚜렷한 친분은 없는 분에게도 보냈답니다. 카드를 받는 행위 역시 알쏭달쏭하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알쏭달쏭함을 담기 위해 초청장에는 저의 아이덴티티가 많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평소에 선망하던 정다슬 디자이너와 협업했습니다. 다슬 씨 목소리와 제 목소리를 한 데 섞어 더욱 희한한 예쁨을 가진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어요. 전시 포스터는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담아냈어요. 포스터 실물은 한국 주택 옥상의 초록 페인트 색을 활용했는데요. 디지털상에서 포스터의 매력 포인트가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포스터 색의 합과 이미지의 찌글찌글한 아웃라인이 디지털 공간에서는 엄청난 픽셀화를 일으키는 게 큰 골칫거리이자 동시에 작업의 매력 포인트라고 느껴요.

코-테크닠 프로젝트 «나의 이웃집 K씨 기묘한 그 정원» 초정장, 2022

전시를 위해 가드닝용 앞치마를 제작했는데, ‘기묘한 정원’이라는 콘셉트가 관객에게 너무 추상적으로 다가갈까 봐 걱정되어 만든 장치였어요. 결과적으로 앞치마를 입고 공간을 거니는 K씨가 된 관객의 모습과, 통유리창을 통해 전시장 밖에서 관객을 촬영하는 행인의 모습을 관찰하는 풍경이 펼쳐졌는데요. 전시를 통해 근본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군상’을 잘 표현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전시 첫날 저녁에는 협업 작가분께서 달뜬 얼굴로 다가와 전시장을 지나치는 한 커플이, “여기 진짜 이상하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알려줬어요. 그 말을 전해 들은 순간, 좋아서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나요. 제일 듣기 원했던 말이었거든요. 전시를 마친 이후에는 전시 공간, 특히나 핵심이었던 오디오 비주얼 작업을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어느 정도 사람들의 아날로그 감각을 만족시키는, 그래서 완벽한 퀄리티를 갖지 못하는 아이템에 ‘기묘한 정원’의 분위기를 담고 싶었죠. 마치 영화 ‹컨져링The Conjuring›에서 악령의 목소리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처럼 음질이 깨끗하지도 않고, 카세트 테이프처럼 어떠한 도구가 없으면 편히 듣기도 어려운 아이템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CD를 만들기로 한 거예요. CD는 저의 최근 작업 중 가장 담백하게 완성한 형태일 것 같아요. 어떤 이상한 일을 겪은 사람이 그 사건을 묘사하는 내용은 색깔이 매우 진해요.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에는 기억이 얼기설기 엮이면서 경험의 농도가 이전보다 훨씬 옅어지죠.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 내용, 그리고 당시에 느낀 감각은 분명 며칠 밤이 지나고 이야기해도 생생하게 전해질 거예요. 그래서 CD 디자인에서도 핵심적인 비주얼만 남겨뒀어요. 외려 이게 작업물을 튀게 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지만요.

코-테크닠 프로젝트 «나의 이웃집 K씨 기묘한 그 정원» CD, 2022

웹진 «손맛연구프로젝트»

웹진 «손맛연구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코-테크닠의 두 번째 기획이었고, 많은 작가분과 협업하고 있어요. 기획의 시작은 궁금증이었어요. 코로나19 이후에 많은 전시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잖아요. 작품들이 3D 스캔화 혹은 이미지화되어 온라인 전시 공간에 걸릴 때 관객이 해당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더군요. 온라인 전시 공간이 물성을 강조하는 작품에게 어떤 의미일지도 알고 싶었고요. 그래서 작년 9월부터 4주 동안 여러 분야의 공예 작가 4분―양수영(목공), 손해원(도자와 석고, 특히 캐스팅), 박혜인(유리), 서수현(섬유)―과 디지털 작업자인 저(비주얼)와 김익명(오디오)이 각자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손맛’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죠. 그리고 디지털 공간에서 이런 손맛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어떤 전시 공간이 손맛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을지 심도 깊게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나누었던 소중한 영감은 워크북으로 제작하고 싶었어요. 작업의 초기 단계로, 중요한 대화를 뭉덩뭉덩 뽑아 웹진 형태로 발표하기로 했어요. 4주 동안 이뤄지는 대화에서는 시간적 순서보다는 키워드로 재구성해 버렸죠. 재구성한 단락은 웹에 흩뿌려, 방문한 각자가 본인들의 웹진을 만들기를 바랐죠. 마치 스크랩북을 만드는 것처럼요. 이때 김동하 디자이너가 아주 ‘멋쁜’ 웹진 디자인의 개발을 맡아주셨어요.

웹진 «손맛연구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디자인에서는 색을 최대한 빼려고 했던 것 같아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서 ‘공부한 것만 같은’ 스크랩북처럼 만들고 싶었거든요. 대신 대화를 하며 짜릿하게 느껴지던 단어와 문장에는 사운드 이펙트와 비주얼 조각을 삽입했어요. 아주 하얗다 못해 못생긴 흰색 A4 용지가 못생겨 보이지 않도록, 형광펜으로 군데군데 마킹을 한 듯한 비주얼을 연출했어요. 올 상반기에는 ‘손맛연구프로그램 워크샵’에서 나온 내용을 다시 정리해 두 번째 프로토타입 전시를 제시했어요. 첫 번째 전시는 텍스트 기반의 웹진이었다면, 두 번째 전시는 아날로그 아이템을 활용해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전시를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듯 발전하고 있어서 마치 해당 전시가 스스로 진화하는 기분이 들어요.

«손맛 연구 프로그램» 웹진, 2022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여러 매체로 작업하지만 최종적인 결과물은 비슷한 포맷으로 귀결하는 편이에요. 최근 제가 고수하던 틀을 깨는 시도를 했달까요, 작업마다 처음에 만드는 ‘내러티브’를 입체적으로 제안했답니다. 이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전시가 «나의 이웃집 K씨 – 기묘한 그 정원»일 것 같아요. 기존의 제 작업 방식을 고수했다면, 하나의 네모난 보이드 안에 모든 요소를 압축하려고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전시에서는 전달하려는 내러티브를 단계적으로, 혹은 다각적인 시선으로 다양하게 시각화했어요. 납작해질 뻔한 이야기를 볼륨감 있게, 그리고 이를 다양한 형태의 시각물로 제시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제일 아쉬운 부분이라면 완결성! 어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작품이, 내일은 가장 미운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검수에 특히 신경을 써요. 삼백 번을 넘어 삼백일 번 정도 검수하려고 하죠.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라면 협업! 티 나게 마음을 드러낸 분에게 용기내어 연락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온라인 미팅을 하는 과정 자체가 좋았어요. 또 좋은 기회가 생기면 직접 만나 커피를 마시며 작업 이야기로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죠. 함께 작업하면서 피드백을 주고받고, 격려하고, 진심 어린 조언을 나누고, 그렇게 만들어 낸 작품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일도 좋았어요. 이후에 다음 작업을 기약하고, 서로의 작업에 또 마음을 찍는, 이 모든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Acoustic Territories volume 0 ‹Fragile Lines› LP 디자인, 2022

«구성원들은 자상하다»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 2022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주중 며칠은 패션 스타트업에 출근해 올라운드 디자이너로 꽤 많은 부분을 커버합니다. 출퇴근 시간을 합쳐 왕복 4시간을 기차에서 보내는데요. 작년에 이북 리더기를 사서 꽤 열나게 읽었어요. 책을 읽지 않을 땐 쪽잠을 자거나 작업을 합니다. 작년 하반기 작업의 절반은 기차에서 해냈답니다! 출근하는 날은 저녁이 소중하기에 최대한 개인 스튜디오 작업은 안 하려 합니다만… 프리랜서의 삶이란 본인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종종 저녁을 급히 먹고 책상에 앉아 작업을 이어가기도 해요. 아, 올해부터는 퇴근 후 주 1회 영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발레 수업도 신청했고요.

회사에 가지 않는 날의 아침은 참 좋아요. 여유를 부리며 느지막이 일어나 스튜디오로 향하곤 해요. 요즘은 포트폴리오 업데이트에 몰두하고 있는데요. 보통 데드라인이 있거나, 개인 작업에 꽂히면 스튜디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요. 그 외의 시간에는 집에 머물고요. 이미지 디깅을 하고, 만화책을 읽고, 낮잠을 즐길 때도 있죠. 그런데 쉬는 날에 잠만 자고 일어났을 때의 몽롱한 상실감이 요샌 버겁더라고요. 이런 마음이 조금 슬프기도 해요. 20대 초반에는 상실감이 덜했는데, 이제는 해가 지는 게 퍽 마음이 아리더군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종종 약속을 만들었어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거나, 친구 집에 가거나, 친구가 되고 싶었던 디자이너분께 연락해 커피 약속을 잡아요. 일요일을 부지런하게 보내면 출근하는 월요일이 덜 두렵더라고요. 요즘 취미가 없어서 고민이에요. 취미로 무엇을 하든 간에 결국 제 작업과 연관이 되어서요. 앞서 말씀드렸던 발레 수업은 또 얼마나 자주 가게 될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새로 읽을 책, 만화부터 노래, 패션 브랜드까지 엄청 찾아보고 있어요. 언젠가는 꼭 하고 싶지만, 하고 난 후 상실감이 너무 클까 봐 시도하지 않고 아껴둔 행위도 있는데요. 『슬램덩크』를 읽는 것도 그중 하나였어요. 최근에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나온 기념으로 원작을 정주행했는데요. 그 이후로 지금 마음이 좀 힘든 상태입니다. 원작을 읽다 보니 아드레날린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와서, 읽지 않고 아껴둔 작품들을 전부 열어보고 마구 즐겨버리고 싶어서요. ‘처음 볼 때의 충격’이라는 굉장히 소중한 감정을 남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아껴둔 행위를 적어둔 리스트가 바닥나기 전에 (물론 그럴 일은 없을 정도로 길지만요), 더 업데이트하려고 해요. 빼곡한 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야 ‘세상은 넓고 맛볼 건 무한하다’는 감각을 든든하게 가질 수 있거든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이것도 슬럼프일까요. 졸업 작업을 준비할 때 3개월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어요. 돌아보면 가장 서글프게 다가오는 시기인 것 같네요. 아무런 트러블이 없던 때라 더욱 당황스럽고 슬픈 시기로 남아있어요. 당시에는 마치 시험 전날, 미루고 미루던 공부를 하기 싫어 책상을 열심히 청소하는 학생의 심정으로 몇 개월을 보냈어요. 그 후에도 짧지만 비슷한 형태의 슬럼프를 겪고 난 후 깨달았어요. 저는 루틴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무너지기 쉬운 타입의 사람이라는 걸요. 불규칙성이 삶에 중심으로 자리 잡을 때, 오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저의 단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거예요 스스로에게 너무 무른 사람이랄까요. 오히려 제 자신에게 어느 정도 강제성을 부여하면 ‘주어진 시간’내에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게 되고, 더욱 창의적으로 작업에 임할 수 있더라고요. 저는 데드라인 자체를 긍정적으로 활용해 슬럼프를 이겨내는 편인 것 같아요. (물론 몸에 무리가 될 정도로 촉박한 데드라인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이전의 질문에 대한 답에서, 작년 하반기 작업을 출퇴근 기찻길에서 마쳤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출퇴근 길에서 쏟아졌어요. 일주일 휴가를 보낼 때보다 더 많이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개인 작업만 하던 학생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요. ’정말 재미있는 작업, 그러나 금전적인 보상이 별로 없다!’ vs ‘재미없는데 금전적 보상이 꽤 된다!?’ 중에서 골라야 한다면, 아직은 ‘둘 다 한다’라는 버저를 누를 거예요. 밤낮을 깎아 저를 태우면서 작업하겠죠.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결국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거예요. 제가 현명하고 소신 있게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면 좋겠어요.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잘 조성하고 싶습니다.

«Transforming Desires», In collaboration with Team Rodina 온라인 전시, 2020

«Transforming Desires», In collaboration with Team Rodina 온라인 전시, 2020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우와! 글쎄요… 누군가의 작품에 우열을 가리는 건 진짜 멋없어 보여요. 별로라는 감정을 넘어 이게 대체 말이 되나 싶어서요. 창작은 취향의 스펙트럼으로 구성된 세계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작업물을 제일 사랑하며 그만큼 다른 작업자의 작업물 또한 누군가에게는 최애 작품일 거라 생각하며 작업에 임하고 있어요. 그리고 귀여운 것은 가장 단단하고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지난주 출퇴근 시간에 기차가 3일 연속 말썽을 일으켰어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역에서 두 시간 반 넘게 시간을 보내야 했죠. (네덜란드는 기차 시스템이 정말 좋지 않아요) 그때 역에 서서 치즈를 추가한 와퍼를 먹었는데요. 그날 퍽 슬프더라고요. ‘내가 욕심이 적었다면, 지금 내 삶에 더 만족하지 않았을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집에 가서 메일 보내고, 외주 작업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아서 집에 도착해도 바로 쉴 수 없고… 이건 너무 슬픈 삶이 아닐까?’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그런데 어떻게든 꾸역꾸역 집에 도착해 메일 보내고, 외주 작업도 잠깐 수정하고, 애니메이션 ‹봇치 더 록!›도 네 편이나 보고 잠들었어요. 다음 날 아침 출근길 기차에서 해가 시뻘겋게 떠오르는 광경을 보면서 생각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30대의 내가 회상할 과거로 오늘이 꼭 꼽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잘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유는 창작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면… 노하우나 팁이 과연 있을까 싶어요. 우리 모두 어찌 되었든 창작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애쓰고 있잖아요. 모두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득 담아 말하고 싶어요. “멋져요 여러분! 정말이에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보는 이가 무의식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작업마다 어느 정도 제 모습이 담겨있지만, 살짝은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난 작업이면 좋겠어요. 처음 작품을 보고는 “엥, 이걸 저 사람이 했어?” 싶다가도, 다시 보면 “아, 그 사람이 약간 보이네” 같은 느낌이랄까요. 낯설지만 계속 보면 묘하게 정감 가고 친절한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개인 프로젝트 «Sandwitch» 게임 일부 장면, 2021

Artist

핸디킴(Handi Kim)은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왕래하며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 활동한다. ‘베리핸디서비스(Very Handy Service)’를 통해 시각 언어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실험적으로 구상하며, 아트 디렉팅, 전시 디자인, 전시 참여, 워크숍 진행 등 폭넓게 활동하는 중이다. 최근 사운드 아티스트 김익명과 탈장르적 아트 듀오 ‘코-테크닠(Qootechniq)’을 구성해 활동 반경을 더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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