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Visual Portfolio

친숙한 듯 낯선 세계

Writer: 정수정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정수정 작가의 그림은 누군가의 꿈을 살펴보는 것처럼 생경합니다. 그러다 회화 속 인물의 시선과 그 뒤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살펴보면 이내 낯섦의 장벽이 무너져 버리죠. 일상에서 발견한 크고 작은 사건을 소재 삼아, 작가의 상상을 더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낸 덕분입니다.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은 정수정 작가. 회화의 힘을 믿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Fly›, 2020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서울을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하는 정수정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 이곳저곳에 낙서하고, 만화를 따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교과서 빈 곳마다 그림을 채워 넣었죠. (웃음) 손을 움직이는 일에서 쾌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원래는 자주 가던 만화책방의 분위기, 냄새, 기다림을 동경해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만화가 중 특히 일본의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浦沢直樹)를 존경했죠. 그가 인체를 그리는 방식, 그리고 생명력을 표현하는 걸 보면 항상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시간이 흐르며 유화와 파스텔의 매력에 빠져 지금은 구상 회화를 하고 있습니다.

‹Flash›, 2023, oil on canvas, 193.9 x 112.1cm

‹Scorpio›, 2023, oil on canvas, 193.9 x 112.1cm

‹Flash›, 2023, oil on canvas, 193.9 x 112.1cm

‹Scorpio›, 2023, oil on canvas, 193.9 x 112.1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해 있어요. 작업실 공간이 크진 않지만, 나무가 보이는 창문이 있어 가끔 멍때리기 좋아요. (웃음)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일상에서 발견한 크고 작은 사건과 문자, 영상 매체에서 경험한 생각 및 이미지를 수집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꽤 직관적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지만 회화 안에서 상상의 장면으로 연출되는 지점을 좋아해요.

‹Tennis Court›, 2022

‹Purple Wind›, 2021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다양한 매체에서 받은 영감을 단어나 낱말로 풀어봐요. 그리고 마인드맵을 만들어 상상의 영역을 넓히고, 상상을 이미지로 전환합니다. 때론 인터넷을 통해 고전 회화나 조각 등을 간접적으로 조사한 후 즉각적으로 화면을 구성하기도 해요. 또 영화를 보는 게 취미라서 움직이는 영상 매체를 통해 시각적 영감을 확장하기도 합니다. 2020년 OCI 미술관에서 진행한 개인전 «빌런들의 별»에서는 우리가 문화 속에서 소비하는 악당들의 역할과 이미지에 대한 흥미를 풀어낸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그 과정에서 마블과 DC 코믹스 외에 정치나 신화에 기반한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인간 세계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주인공과 악당의 양가적인 역할과 경쟁 구도, 그에 힘입어 반복되는 클리셰를 회화로 그려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전반적인 작업 과정에서는 최대한 유연한 구상과 낯선 조합, 웃긴 상상을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왠지 점점 진지하게 되어버려서 걱정이에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요즘에는 초상 작업을 다시 시도하고 있어요. 인체의 안광, 숨, 빛의 굴절 등을 따져가며 이전보다 더 집요하게 접근하는 편입니다. 가끔 작업실에서 고전 화가들의 초상화집 속 의기양양한 모델과 작가의 모습에 짓궂은 질문을 던지며 혼자 웃기도 하는데요. 저만의 방식으로 참고해 그려낸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2021년에는 SeMA 창고에서 ‹트로니Tronie› 시리즈를 시도했는데요. 작업이 꽤 재밌어서 앞으로 한동안은 가상 인물의 얼굴을 실험할 것 같아요.

‹트로니 시리즈, Falconry 매사냥›, SeMA 창고, 2021

‹트로니 시리즈, Falconry 매사냥›, SeMA 창고, 2021

2019년 갤러리밈에서 선보인 ‹땀은 바다가 된다› 연작 회화도 소개하고 싶어요. 배경과 세계, 인물과 동식물이 가득한 장면을 앞으로도 제작할 계획이랍니다. 저는 신체 크기 이상의 캔버스에 작업을 할 때 가장 자유롭다고 느껴요. 그래서 앞으로도 ‹땀은 바다가 된다›와 같은 작품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땀은 바다가 된다›, 2019

‹땀은 바다가 된다, A Homing Fish›, 갤러리밈, 2019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그림을 시작한 순간부터 저는 회화의 힘을 믿어왔어요. 화면 안에서 이미지, 서사의 결합 혹은 놀이의 결말을 열어 두고 레이어를 쌓아 완성을 합니다. 회화가 회화로서 읽을 수 있는지, 설득할 수 있는지, 폭넓은 해석을 도출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작업합니다.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저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예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제 목소리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되려 제가 만든 틀에 갇히게 되는 건 아닐까 우려할 때도 있는데요. 친숙하지만 엉뚱하고 생경한 도상, 빛, 색감을 실험하는 유연한 태도를 꼭 가지고 싶은 마음이에요.

‹Fungus›, 2023

‹Bird of Paradise›, 2023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요즘엔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삶의 루틴을 유지하면서, 일상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고 작업에 더욱 몰두하려 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잠시 밖으로 나가 콧바람이라도 쐬고 오는 여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제는 쉬지 않고 하루 10시간 이상을 쏟아야 만족스러운 작업이 나오는 상황이 되어서 기쁘면서도 불안합니다. 작업에 몰입하는 것을 유지하면서도 오랫동안 세월을 함께 보낸 가족, 친구와의 중요한 약속은 꼭 챙기려 해요. 제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 중 하나거든요. 그 외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통제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요. 물론 작업에 대한 고민은 깨어 있는 시간이면 늘 하는 편입니다. 오는 9월에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 참여하고, 12월에는 개인전을 앞두고 있어요. 몸과 마음은 약간 지쳤지만, 저 자신을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새가 지나갔다›, 2020

‹새가 지나갔다›, 2020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실수와 사건을 포용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스스로 계획한 방향으로 설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 회화를 제작하는 방식은 무척 닮은 것 같아요.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물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렇기에 더욱더 결과물을 기대하기도 한답니다. 우연한 실수가 결과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될 때 엄청난 쾌감이 들기도 해요.

‹Airy›, 2022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여건이 된다면 주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려고 노력해요. 이 방법은 낯선 환경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면 보낼수록 효과를 보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이 되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지거든요. (웃음)

‹Blue Sky Effect›, 2023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해 있지만, 아무래도 작업실의 환경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 아닐까요. 큰 캔버스가 통과할 수 있는 사이즈의 문이 있고, 층고가 높은 곳에서 작업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꼭 컨디션이 좋은 작업실을 마련하고 싶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도 노력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창작자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물론 이 두 가지를 챙기는 게 쉽지 않지만, 경험이 쌓이고 자신과 친해지다 보면 작업이 탄생하는 것 같아요. 더불어 작업과 관련한 여러 약속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는 태도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뿔 Horn›, 2023, Oil on canvas, 50x45cm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가끔은 타인의 말을 한쪽 귀로 흘려보낼 필요가 있어요. 결국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거든요. 작업 세계관이 비슷한 동료 작가들과 소통하며, 힘을 얻고 나아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Mating, Falconry 매사냥›, SeMA 창고, 2021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 작업이 곧 저의 정체성이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선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아마 대다수의 작가가 저와 비슷한 미래를 꿈꾸지 않을까 싶은데요. 넓고 안정적인 작업실에서, 건강하고 오래오래 작업하는 게 이상적인 미래입니다. 

Artist

정수정은 서울에 거주하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서사 및 이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상 회화를 실험한다. 회화를 통해 생명력이 가득한 자연에서 함께 영유하는 삶과 관계에 흥미를 느끼며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한다. «봄봄 파우더»(에이라운지 갤러리, 2021), «Falconry 매사냥»(SeMA 창고, 2021), «빌런들의 별»(OCI 미술관, 2020)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Feather»(실린더, 2022), «21세기 회화»(하이트컬렉션, 2021), «나메» (뮤지엄헤드, 2020),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다»(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9) 등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