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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움직이면 비로소

Writer: 김예솔
[VP]김예솔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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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예솔의 작품을 ‘관람’하려면 작품을 붙잡고 움직여보고 흔적을 남겨야 해요. 회화를 전공했지만, 설치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해체하며 구성해 온 학습 과정은 고스란히 관람객의 몫이 되죠. 관람객은 흑연이 묻은 동그란 구조물을 굴려 바닥에 흔적을 남기거나 오일파스텔이 묻은 롤러로 쇠구슬을 굴려 벽면에 희미한 드로잉을 남길 수 있어요. 전시가 끝을 향해 갈수록 타인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가고 마침내 완성을 향해 갑니다. 그렇게 처음 모습과 달라진 작품을 통해 타인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하죠.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품인 만큼 일상에서 작가는 몸의 중심을 잡는 일에도 신경 쓰고 있어요. 몸을 움직여야 자유로운 감정 표현과 즐거운 경험이 쌓여가니까요. 더 많은 가능성을 위해서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는 김예솔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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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2026, 나무, 쇠구슬, 스테인리스, 오일파스텔, 오간자, 메쉬망, 참여자의 신체, 가변크기, 사진 이재욱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설치작가 김예솔입니다. 요새는 타인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설치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시를 혼자 완성하는 대신 전시를 보러 온 이들과 작품의 꼭짓점을 찍고 싶어요. 그래서 제 작품은 언제나 열린 상태로 전시장에 들어서게 됩니다. 전시가 종료되면 공간에 남아 있는 관람객의 시간을 수집하여 매듭을 지어서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러다 보니 관람객의 몸이 머문 시간이 저에게는 일종의 방명록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최근에는 이 수집한 시간을 재료 삼아 또 다른 형태의 조형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엄청난 ‘미술 러버’에요. 설치작가로 전시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공간 디렉팅, 디자인, 테크니션, 아트핸들러 등 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역할에도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이든 그림자 같은 위치이든 결국 전시를 만들어 내는 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 방과 후 유치원 미술 수업을 통해 처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상을 받았는데 그때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칭찬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 그 순간부터 막연하게나마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예고와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지금까지 미술을 해왔어요.

하지만 학부 시절에 작품을 한다는 일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어요. 항상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야만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점점 창작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는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문득 평생 해야 할 일을 두려워한 채 작업 생활을 지속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익숙한 회화에서 벗어나 잘 모르는 매체를 선택해, ‘다시 호기심으로 작업을 마주해 보자.’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설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흙장난›, 2019, 흑설탕, 쇠구슬, 손으로 판 나무, 오디오선, 모터, 가변크기

당시에는 지금처럼 챗GPT 같은 매체가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 때문에 몸으로 부딪쳐 가며 하나씩 배워야 했습니다. 원래도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쉽게 납득하지 않는 성격이라 일단 목공실로 달려가 이것저것 만져 보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기성 가구를 부수어 보고 기계도 맘껏 해체했는데, 이 과정에서 고장도 많이 내고 전기도 많이 터뜨렸어요. 붓만 잡던 사람이 목공, 전기, 공간 구조 같은 것을 무작정 만져 보며 익히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쌓인 감각이 지금 직관적인 판단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작업에서는 종종 몸의 감각이 텍스트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제가 그러하듯 관람객 역시 작품 안으로 먼저 들어와서 만지고 움직이고 감각하면 좋겠어요.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딘가에서 뒤늦게 “아!” 하고 각자만의 생각을 떠올리게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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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2026, 나무, 쇠구슬, 스테인리스, 오일파스텔, 오간자, 메쉬망, 참여자의 신체, 가변크기, 사진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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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2026, 나무, 쇠구슬, 스테인리스, 오일파스텔, 오간자, 메쉬망, 참여자의 신체, 가변크기, 사진 이재욱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고가도로 아래에 있는 마당 딸린 단독주택을 집이자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설치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실이 넓어야 했고 공구 소음도 자유로워야 했거든요. 그렇지만 금전적인 이유로 집과 작업실을 분리할 수는 없어서 결국 서울 곳곳의 집을 스무 군데 넘게 돌아다닌 끝에 지금의 공간을 찾게 되었어요.

사실 생활 자체에는 물욕이 별로 없습니다. 짐이라고 해 봐야 옷 정도뿐이에요. 대신 작업 재료에 대한 집착은 큰 편입니다. 모든 작가가 그렇듯 지금 당장 필요 없더라도 언젠가 작품이 될 것 같은 물건은 계속 모아 두게 됩니다. 그래서 제 작업실에는 아직 작품이 되지 못한 오브제가 끝없이 쌓여 있죠.

작업실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조건 1층이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전에 지하 작업실을 써 본 적이 있는데 생활과 병행하기엔 너무 힘들었고 작품의 무게도 꽤 나가는 편이라 계단이 없는 구조가 꼭 필요했어요. 제 작업은 조형물이라기보다 거의 이삿짐에 가까울 때가 많거든요. 진짜 짐을 혼자 한 시간 동안 옮기다가 머리가 팽팽 돌아 버리는 경우도 얼마나 많았던지… 대부분의 작업이 금속이거나 목재인 경우가 많아서 짐 한 번 옮기면 온몸이 멍투성이가 됩니다.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도 작업 도구입니다. 거실 벽면에는 랙 선반이 길게 설치되어 있고 방 두 개 중 하나는 수장고, 다른 하나는 침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식탁은 이미 작업대가 된 지 오래입니다.

가끔은 생활과 작업을 분리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작업대로 걸어갈 수 있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다만 작업이 한창 진행될 때면 제가 작업을 하는 건지 작업이 저를 점령한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뒤엉켜 버릴 때도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주로 제 경험 안에서 영감을 꺼내 오는 편입니다. 특히 시각 작업을 하다 보니 좋은 공간과 풍경을 많이 보려고 노력합니다. 당장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장면은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가 작업을 하며 디테일을 풀어 나갈 때 갑자기 튀어나와 문제를 해결해 주곤 하더라고요.

특히 박물관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박물관은 시간이 압축된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오래된 유물을 보면 단순히 물건 자체보다도 그 표면 위에 쌓여 있는 시간의 색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저 사물은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상상하게 되고 그 감각을 종종 제 작업 안으로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몸을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니 ‘타인의 몸을 움직이게 하려면 우선 내 몸부터 들여다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약 2년 정도 요가와 수영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현대무용 수업도 듣고 있습니다. 집에서 집중이 잘 안될 때는 평균대 위에 올라 한 발로 균형을 잡고 있기도 해요. 생각보다 몸의 중심을 잡는 일이 사고의 중심을 잡는 데에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물론 처음에는 타인 앞에서 몸을 움직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굉장히 어색했는데요, 오히려 몸을 먼저 움직여 보는 경험이 예상보다 자유롭고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도 많은 자극을 받아요. 특히 인문학 책을 좋아하는데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수록 상상력이 개입할 틈이 생겨서 좋더라고요. 책이 말하는 언어와 제가 이해하는 언어 사이의 간극을 제 방식대로 메워 나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생각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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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테이블›, 2025, 철, 우레탄공, 스프링, 참여자의 캐리어, 가변크기, 사진 이예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어떤 상황이나 재료에 강하게 끌리면 일단 그 환경 안에 자신을 밀어 넣고 봅니다. 작업을 명확하게 설계한 뒤 시작하기보다 먼저 재료, 공간, 움직임 속에 몸을 노출하면서 반응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작업 초기에는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려고 하는 편인 거죠. 일단 만들어 보고 쌓아 두고 움직여 보면서 점차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결과와 전혀 다른 형태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아요.

가끔은 거의 완성 단계에서 작업의 구조나 방식을 갑자기 뒤집어 버리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계획을 완벽히 수행하는 타입이라기보다 작업과 계속 반응하며 방향을 찾아가는 방식에 가깝거든요.

그리고 일단 궁금해진 것은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 어찌 되었든 그 과정에서 생긴 질문은 결국 작업의 형태로 나오게 됩니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언젠간 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어떤 형태로든 풀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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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2026, 나무, 쇠구슬, 스테인리스, 오일파스텔, 오간자, 메쉬망, 참여자의 신체, 가변크기, 사진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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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2021, 쇠구슬, 나무, 고무, 참여자의 신체, 흑연, 가변크기, 사진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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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2021, 쇠구슬, 나무, 고무, 참여자의 신체, 흑연, 가변크기, 사진 이재욱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에는 스스로 ‘동그라미 시리즈’라고 부르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조형물이라기보다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나 도구에 가까운 작업이에요. 관람객은 구체를 가진 오브제를 굴리며 자연스럽게 몸을 쓰게 되죠.

그중 하나인 ‹피크›는 구슬을 수직 구조물의 상단 골인 지점까지 굴려 올리는 작업입니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는 벽에 페인트를 칠할 때 사용하는 롤러를 변형한 형태인데 현장 작업을 오래 해 온 제게는 굉장히 익숙한 도구예요.

이 작업에서는 두 개의 ‘굴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관람객이 구슬을 굴려 위로 올리면 동시에 원통형의 롤러 역시 회전하며 움직여요. 이렇게 서로 다른 회전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몸의 움직임이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롤러는 오일파스텔을 녹여 다시 캐스팅한 재료로 제작했어요. 그래서 롤러가 움직일 때마다 벽면에는 계속 색이 묻게 됩니다. 관람객은 구슬을 골인시키는 데 집중하지만 사실 작업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적을 함께 수집하고 있는 셈이죠. 결국 이 작업의 표면적인 목표는 ‘구슬을 골인시키는 것’에 있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남겨지는 몸의 흔적과 시간을 더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벽면 위에는 색의 층이 두꺼워지고 서로 다른 몸의 시간이 안료처럼 켜켜이 쌓여 가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제 작업은 결국 결과보다는 현상의 수집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더불어 현상을 마주한 관람객과 저 그리고 작품 간의 마찰을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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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테이블›, 2025, 철, 우레탄공, 스프링, 참여자의 캐리어, 가변크기, 사진 이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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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테이블›, 2025, 철, 우레탄공, 스프링, 참여자의 캐리어, 가변크기, 사진 이예은

도구의 형식으로 작업을 만들다 보니 때때로 의뢰로 들어오는 이야기가 깃든 가구를 만들기도 합니다. 작년 12월에 열렸던 «의향서Letter of Intent : »라는 전시의 일환으로 책 『의향서들』 출판 기념행사에 가구와 공간 디렉팅으로 참여했어요. 이 과정에서 ‹우정의 테이블›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동식 테이블을 만들었습니다.

‹우정의 테이블›을 만들기에 앞서 저는 참여자에게 각자의 물건을 캐리어 안에 담아 오도록 요청했습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초대 받아 한 저택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함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상황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는 그것이 타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여행을 함께하는 감각과도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캐리어 안의 물건은 단순한 짐이라기보다 각자의 과거와 현재 생활의 일부를 떼어 온 단면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낯선 공간 안에 펼쳐지는 순간 저택은 여러 개의 작은 집 조각이 임시로 겹친 상태가 되는 거죠. 서로 다른 기억과 시간이 뒤섞이며 새로운 형태의 집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작업에서 캐리어는 실제로 테이블의 구조체 역할을 합니다. 내용물이 비워진 캐리어는 비어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공간을 지탱하는 다리가 되고요. 테이블 위에는 참여자가 가져온 텍스트와 책이 뒤섞여 놓이는데 방문한 사람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 자기 손으로 직접 필사하게 됩니다.

저는 이 과정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타인의 기억과 언어가 현재의 몸을 통과해 다시 새로운 종이 위에 옮겨지는 과정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렇게 복제된 텍스트는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우정의 테이블›은 서로 다른 기억과 시간이 잠시 관계를 맺고 다시 흩어져 가는 과정에 대한 작업에 가깝습니다.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전시라는 공간이 관람객 없이 존재할 때 아직 완전히 작동하지 않은 상태라고 간주합니다. 그래서 작업 안에서 관람객을 중요한 행위자로 초대하고 있어요. 관람객이 공간 안으로 들어와 몸을 움직이고 개입하면서 비로소 작업이 완성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관람객이 꼭 제 의도대로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어긋남과 오독 안에서 또 다른 확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인문학 책을 읽을 때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하는데요, 제 작업 역시 관람객에게 있어서 비슷한 것 같아요. 책에서 이해되지 않는 언어와 저 사이의 간극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처럼 관람객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경험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감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특히 ‘본다’라는 개념보다 ‘한다’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작품을 단순히 바라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들어와 움직이고 어떤 행위를 수행한 뒤 다시 빠져나가는 경험 자체에 흥미를 느껴요. 이 경험은 관람객이 그저 작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 작품의 일부, 스위치, 부속품, 심지어 또 다른 도구가 되는 상태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감각은 아직 저에게도 완전히 언어화된 상태는 아닙니다. 오히려 몸이 먼저 이해하고 언어가 뒤늦게 따라오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작업을 이어 가며 제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확인해 가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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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기-산책자›, 2025, 철, 우레탄공, 스프링, 참여자의 신체, 가변크기, 사진 고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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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기-산책자›, 2025, 철, 우레탄공, 스프링, 참여자의 신체, 가변크기, 사진 고정균 (전시 «의향서 Letter of Inte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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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기-산책자›, 2025, 철, 우레탄공, 스프링, 참여자의 신체, 가변크기, 사진 어울아트센터(대구) (전시 «Hyper-Sense 초감각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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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기-산책자›, 2025, 철, 우레탄공, 스프링, 참여자의 신체, 가변크기, 사진 어울아트센터(대구) (전시 «Hyper-Sense 초감각의 세계»)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만족과 불만족은 사실 대부분 같은 지점에서 동시에 발생해요. 저는 작업 안에서 공간이 예상하지 못한 흔적으로 더럽혀지고 여러 사람의 움직임이 뒤섞이는 상태를 좋아합니다. 관람객이 개입할수록 공간이 점점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변해 가는 순간을 관찰하면 꽤 즐겁거든요.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어느 순간 제 예상보다 더 멀리 나아가면 저 역시 불안감을 느낍니다. ‘정말 타인의 움직임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인지 아니면 사실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것인지’를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관람객에게 자유롭게 움직이기를 제안하면서도 동시에 특정한 방식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결국 작업의 구조와 규칙을 설계하는 사람은 저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몸을 적극적으로 쓰지 못하면 참여 자체가 어려운 방식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요즘 저는 “어디까지 제한하고 어디까지 열어둘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되뇝니다. 최근 작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에 가까운 것 같아요. 여전히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혀 가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평소에 일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머리도 쓰다 보니 쉴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습니다. 저는 엉덩이가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편이에요. 멀리 움직일 때는 동선 상관없이 미친 듯이 돌아다니지만 정작 한번 앉아 버리면 일어나기를 너무 귀찮아해요. 그러면서도 운동하는 것을 꽤 좋아합니다. 몸 쓰는 걸 기본적으로 좋아하다 보니 평소에 하는 요가, 수영 외에도 종종 등산이나 러닝, 그냥 무의미한 산책을 즐깁니다.

그리고 ‘아트 러버’인 만큼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이 유일한 취미 생활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참 업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전시를 보면 하루 종일 심장이 두근거려서 집에 돌아와서까지도 감동에 젖어 있기도 하고요.

반면 공간·설치 작업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간혹 미술에서 떨어져 있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본가로 돌아가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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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 _3›, 2024, 유리구슬, 나무, 오일파스텔, 그물망, 가변크기, 사진 어울아트센터(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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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 _3›, 2024, 유리구슬, 나무, 오일파스텔, 그물망, 가변크기, 사진 어울아트센터(대구)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하나의 답을 정해 놓고 움직이는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하는 방향성은 있지만 실제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그 역시 가능한 상태로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작업에서도 삶에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언가를 단정하기보다 오히려 상황과 환경을 만드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어떤 움직임과 반응이 발생하는지를 오래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답이 나오는 순간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타인은 나와 다르다.’라는 사실 자체에 꽤 관심이 많습니다. 작업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저와 다른 방식의 몸, 다른 사고방식, 다른 반응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제 기준 역시 계속 흔들리고 변하며 무너지는데 이때 그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 저를 더 확고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감정 변화를 많이 겪어 봤던 경험으로 인해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합니다.

제 작업 역시 어떤 명확한 답을 전달하기보다 서로 다른 사람이 잠시 같은 공간 안에서 관계를 맺고 반응하게 하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올 땐 적극적으로 도피합니다. 슬럼프는 그 상황에 너무 빠져 버려서 생긴다고 판단하기에 극복하려 노력하지 않고 회피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자연스럽게 돌아와 시작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슬럼프 자체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타입은 아닌데요, 상태의 변화 자체를 크게 비정상적으로 여기지 않는 편이거든요. 세상에는 완전히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환경 안에서 넘어지고 부딪히며 지나가다 보니 슬럼프를 인지하기도 전에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결국 저는 슬럼프를 억지로 해결하기보다 몸이 상황에 적응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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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 _2›, 2024, 유리구슬, 나무, 오일파스텔, 그물망, 가변크기, 사진 양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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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 _2›, 2024, 유리구슬, 나무, 오일파스텔, 그물망, 가변크기, 사진 양진희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작가 생활을 하는 사람의 고민일 수 있는 ‘일과 작업의 균형’입니다. 에너지는 항상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 비중을 늘리면 나머지 파이는 줄어들 수밖에 없죠. 둘 다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어려워요. 이전에는 분리해서 생각하며 우선순위를 두어 1순위를 개인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향으로 기간을 설정하고 매 순간 중요도를 변형하여 생각합니다. 

사실 일 또한 미술 현장과 연결되어 있는 업무를 하다 보니 꼭 제 작품으로 전시를 만나지 않더라도 유의미하기도 하고요. 물론 고생한 바에 비해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간혹 지치긴 합니다. 항상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는 점도 문제네요. 뇌가 더 말랑말랑해질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는 결국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기 자신만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를 제외한 주변의 것, 타인, 환경과 계속 부딪히고 마찰을 일으키면서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창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일단 움직이는 것’입니다. 너무 오래 머릿속에서만 정리하거나 “이게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계산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몸이 굳어 버린다고 느낍니다. 저는 우선 행동하고 그 행동이 만들어 내는 충돌과 반응 속에서 다시 자신을 확인하는 편입니다.

결국 창작도 하나의 마찰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만들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마주하면서 계속 제 위치를 확인하고 재생성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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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 _1›, 2024, 닥종이죽, 나무, 오일파스텔, 스테인리스, 가변크기, 사진 양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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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 _1›, 2024, 닥종이죽, 나무, 오일파스텔, 스테인리스, 가변크기, 사진 양진희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우선 스스로에게 정말 솔직하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걸 정말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어느 순간 의무나 관성처럼 붙잡고 있는 걸까?’하고요. 그 후,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맞다면 그것이 예상만큼 보상이나 결과를 돌려주지 않더라도 계속 좋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건 생각보다 자주 사람을 실망하게 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며 제가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순간도 많으니까요. 저 역시 스스로 이렇게 물어보며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저는 욕망만으로 무언가를 지속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욕망이 너무 커져 버리면 어느 순간 보여 주기 식의 행위가 우선시되어 처음 그 일을 좋아했던 마음이 흐려질 수도 있죠.

결국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은지 계속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계속 움직이는 창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새로운 자극이 계속 들어와 멈추지 않고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VP]김예솔_21

Artist

김예솔(@ysolkkkkk)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작가 스스로의 몸에서 확장되어 타인의 몸을 움직이고 공간 안에 드로잉을 만드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관람객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작업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방식을 연구하며, 최근 TINC에서 열린 «GROUND»를 주최해 놀이적 접근을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했다. 현재는 세화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 전시에서 관람객이 직접 그리기 도구를 작동시키며 드로잉에 참여하는 방식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