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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좀 더 열려 있어야 만날 수 있는 것들

Writer: 서이브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서이브 작가는 늘 창작의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요. 동화, 신화뿐 아니라 일상에서 수집한 텍스트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를 조각으로 풀어내거든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만든 여인상 갈라테이아, 아폴론에게 쫓기다 월계수로 변한 다프네의 이야기를 독특한 관점으로 해석해 세라믹 작업으로 다루는 걸 보면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알 수 있어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언제나 천진난만하게 창작에 몰두하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페르세포네의 숨›, 2022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세라믹 작업을 하는 서이브입니다. 고양이와 수영을 좋아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조각가를 꿈꿨어요. 유치원에서 장래 희망을 적을 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던 기억이 나네요. ‘조각가’라는 명칭을 몰랐거든요. (웃음) 사실 ‘화가’라는 명칭은 알고 있었지만, 그림 그리기보다는 손으로 무언가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자연스레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지금은 세라믹에 매료되어 이를 활용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갈라테이아›, 2019

‹나의 갈라테이아›, 2019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실은 마포구 신수동 경의선 숲길 근처에 있어요. 지금의 작업실에 안착하기 전까지 국내외 레지던시부터 셰어 작업실까지 거의 열 번 정도 옮겨 다닌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개인 공간, 특히 개인 가마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단독 작업실을 찾으러 다녔답니다. 이곳은 층고가 높고 통유리가 설치되어 있어서 햇살을 만끽하며 작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작업실에 딸린 작은 테라스에서 동네 고양이와 새가 쉬어가는 모습을 목격할 때는 ‘지금 참 행복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이미지보다는 텍스트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 읽은 동화와 신화부터 요즘 소셜 미디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짧은 글귀까지 다양한 텍스트를 살펴봅니다. 텍스트를 곱씹다 보면, 어느 순간 텍스트에서 저만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내러티브가 생긴답니다. 저는 평소 아이폰에 자주 메모를 남기는 편인데요. 짧은 노트를 모아서 읽다 보면 또 다른 영감으로 작용하곤 해요. 텍스트에서 발견한 걸 이미지화하는 작업은 늘 재밌는 것 같아요. (웃음)

‹Love is blue›, 2023 (좌)

‹Happily ever after›, 2019 (우)

‹Love is blue›, 2023 (상)

‹Happily ever after›, 2019 (하)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평소 적어놓은 글과 수집 자료를 모아 나름의 내러티브를 만들어요. 그리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듯 전시 장소에 놓일 작업의 이미지와 관람객의 동선을 생각합니다. 그다음 간단한 드로잉을 거쳐 흙 작업에 들어가는데요. 한 작품에 집중해서 하나씩 만들기 보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에요. 세라믹 작업의 특성상 건조 기간을 거친 작업을 모아서 가마에 소성을 하기 때문에 이런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이후에는 색화장토나 유약으로 색을 칠하고, 다시 소성을 여러 번 거치며 작품을 완성합니다. 지금도 가마 문을 열 때면 마음이 설레며 두근거리는 데요. 때로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세라믹 작업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Clay Narrative» 전시 전경, 대만 잉거 박물관, 2019

‹Figurehead›, 2021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사이렌›, ‹라미아›, ‹다프네›처럼 신화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에요. ‹다프네›를 만들 당시에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에게 쫓기던 다프네는 강물의 신에게 빌어 월계수로 변하게 되는데요. 많은 사람이 이 장면에서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저는 원하던 바를 이룬 그녀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더라고요. 만약 그녀가 월계수로 바뀌어 춤을 추고 있다면, 모두가 그녀의 변화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춤추는 다프네를 만들게 되었답니다.

‹다프네›, 2022

‹사이렌›, 2021 (좌)


‹라미아›, 2021 (우)

‹사이렌›, 2021 (상)


‹라미아›, 2021 (하)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처음 세라믹을 접했을 때 기술적인 배경지식이 전무했어요. 그래서 되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가마 소성 과정에서 보다 안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강박이 생겼는데요. 기술적인 데이터베이스가 어느 정도 쌓였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도, 거기에 서서히 안주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익숙함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 시점 아닐까 싶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뚜렷한 루틴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바쁘지 않은 낮에는 주로 드로잉을 하거나, 작업 외에 평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다가, 저녁이 되어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면 흙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에요. 혼자 작업하다 보니 영상이나 음악을 틀어놓고 흙을 주무르는 일이 현재 가장 익숙한 제 모습이자 일상인 것 같네요.

‹Baby tear›, 2019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난 9월부터 일본 도쿄 근교의 ‘마루누마 예술의 숲丸沼芸術の森’ 레지던시에 참여 중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일본의 삶과 문화에 대한 작은 동경이 있었는데요. 일본에서 생활하며 작업에 몰두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고 행복했답니다. 여기서 하는 작업을 바탕으로 개인전을 준비하는데, 집중해서 잘 마무리하는 게 지금 가장 큰 목표이자 관심사예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사실 꽤 예민하고 고민이 (매우) 많은 편이에요. 이런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지만, 사사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작업적인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그리고 생각에서만 끝나지 않고 실제 몸을 움직이고 손을 놀리며 작업할 때 일종의 해소감과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이야기가 작업에 전적으로 묻어나는 것 같아요.

‹환상을 사냥하는 방법›, 2021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예전에는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애를 많이 썼죠. 이제는 슬럼프가 찾아오면 다 내려놓고 쉬어요. 쉬는 동안 우연히 좋은 전시나 창작물을 접하면, ‘나도 저렇게 멋진 작업을 하고 싶다’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창작 욕구가 차오릅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일본 생활이 곧 마무리되는 시점이어서요. 3개월 동안 지내며 불어난 짐과 살림살이, 그리고 완성한 도자 작품 여덟 점을 어떻게 하면 야무지고 안전하게 한국으로 가지고 갈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예전에 독일에서 봤던 이름 모를 전시에서 ‘예술가(창작자)에게 일상은 이미 예술이다’라는 문구를 보았던 게 인상적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이 문구처럼 저 역시 일상에서 순간순간 피어나는 영감과 이미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깨어 있는 상태여야 만날 수 있는 것이 많더라고요.

‹Frida›, 2018 (좌)


‹Good boy›, 2022 (우)

‹Frida›, 2018 (상)


‹Good boy›, 2022 (하)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먼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해요. 작업적 고민과 견해를 나눌 수 있는 동료의 존재도 창작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작업을 하다 보면 ‘지금 내가 현실에서 너무 동떨어진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같은 영역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볼 때, 불안이 사라질뿐더러 긍정적인 자극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할머니가 되어도 천진난만하고 싶어요. 자기만의 색을 지닌 작가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진달래›, 2023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세라믹이라는 매체에 흠뻑 빠져 지냈어요. 이제 저와 제 작업을 소개할 때 세라믹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요. 하지만 앞으로는 특정 매체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러 가지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림에 대한 욕구는 늘 있었으니까 회화 작업만 모아서 전시도 해보고 싶고요. 무엇보다, 지금처럼 꾸준히 오래오래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산책을 즐기는 고양이를 만나서 작업실로 함께 출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네요. (웃음)

‹Teddy and Apple›, 2023

Artist

서이브는 서울에 거주하며 세라믹으로 공간을 연출하는 작가다. 2023년 일본 마루누마 예술의 숲, 2020년 인도 첸나이 노마딕 국제 도자 레지던시, 2019년 대만 잉거 도자 박물관, 2019년 김해 클레이아크 등 다수의 국내외 레지던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전으로 «서어른»(2023, 큐아카이브)와 «자발적 표류»(2018, WWW SPACE)를 열었고, «I AM»(2023, 미들맨갤러리), «끝나지 않은 이야기»(2022, 슈페리어 갤러리), «폐기의 기술»(2021, 시청각)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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