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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천진난만의 레이어

Writer: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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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이슬로 작가는 바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려요. 즉흥적인 그림은 그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작업입니다. 평소 마음에 축적했던 일상의 영감을 캔버스 위에 끊임없는 터치로 쌓으면서 구상적으로 표현하죠. 천진난만한 등장인물이 함께 거니는 작업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는데요. 천진난만하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려요. 작가는 완벽주의를 경계합니다. 너무 대단히 잘하려고 신경 쓰면 마음이 편치 않은데 그러면 손까지 어색해져서 작품을 감싸는 경쾌하고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잡아먹거든요.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붓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기도 해요. 그림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인 조화와 균형은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태도에까지 이어진답니다. 이슬로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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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2024, Acrylic on canvas, 40.9 x 31.8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이슬로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전시 및 기업 협업 활동도 하고, ‘슬로코스터’, ‘포코리프렌즈’라는 브랜드를 전개 중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작가 활동과 사업을 병행하는 지금의 모습을 미리 꿈꾼 적은 없어요. 다만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그 과정을 늘 노출하고 소통하며 지내온 습관 덕분에 작은 기회들이 생겼어요. 이를 계기 삼아 지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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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달리기›, 2024, Acrylic on canvas, 80.0 x 10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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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on 2›, 2024, Acrylic on canvas, 60.6 x 72.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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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on 3›, 2024, Acrylic on canvas, 80.0 x 100.0 cm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얼마 전까지 성수동에 위치한 작업실과 회사 사무실, 그리고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작업실까지 총 세 군데를 오가며 작업했는데요. 현재 작업실은 하나로 합쳐서 페인팅 작업을 주로 하고, 회사 일이 있을 때는 성수동 사무실로 출근해 다양한 형태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늘 어렵고 광범위한 질문인데요. 얼마 전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경험’만큼 정확한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주 사소한 일상일 수도, 지금의 시대를 사는 제 삶 자체일 수도 있고요. 작업으로 이어지는 영감에 대해서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제 내부에서 피어난다고 자주 얘기했는데, 결국 모든 건 경험을 토대로 해 다양한 모양으로 제 안에서 버무려져 작품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을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으로 발전시킬지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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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ent», 2024, CDA Gallery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 과정은 사실 굉장히 단순합니다. 작업 공간에 앉아서 바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립니다. 앞서 말한 영감에 대한 것에서 이어 말하자면, 제 안에 쌓인 여러 경험이 영감이 되어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생각했어’ 하고 캔버스 위에 말하듯 서서히 터치를 쌓습니다. ‘즉흥적’이라는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작업 스타일로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과정이야말로 제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려낼 때 가장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열망이 커서 최대한 계획하기보다 지금의 느낌에 집중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즉흥적인 작업의 특성상, ‘완성’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기 때문에, 시작을 쉽게 하는 것에 비해서 작업을 마치고 붓을 내려놓는 순간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그런 완성에 다다른 후, 제가 작업한 결과물을 스스로 감상하면서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헤아리는 게 제가 생각하는 작업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The Present 2 (모든게 완벽할 순 없어)›

늘 고민하지만, 해답이 없는 여러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미지화한 작업이에요. 내면에 뿌리내린 여러 그루의 나무를 다양한 형태로 잘 키우고 싶은 마음, 그 나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더라도 마땅히 사랑할 수 있는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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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ent 2 (모든게 완벽할 순 없어)›, Acrylic on Canvas, 162.2 × 130.3 cm

‹The Present 1 (12주의 시간)›

최근 겪은 임신과 난임치료에 대한 과정을 떠올리며 작업한 작품입니다. 애벌레와 사과는 각각 불완전하고 미숙한 대상, 내가 바라는 이상향과 결실 등을 의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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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ent 1 (12주의 시간)›, Acrylic on Canvas, 130.3 × 162.2 cm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개인전을 준비하며 강조하고 싶던 부분은 작가 스스로 겪고 있는 현재의 삶을 일기 쓰듯 최대한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이었어요. 작품을 통해 굉장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저를 감추거나, 꾸미고, 수식하는 일은 피해야겠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렇게 최대한 본원적인 것에 가닿고 싶다는 갈증을 느낄 때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저와 제가 그린 작품 단둘이 우뚝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요.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하루도 똑같지 않는 매일의 풍경이 있고, 그 안에서 제가 겪는 감각이 모여 이야기가 된 후 다시 손끝을 거쳐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굴레의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런 모습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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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ent», 2024, CDA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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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ent», 2024, CDA Gallery

최근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늘 60% 이상 만족하면 완료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마쳐요. 결론적으로 대중에게 보이는 목표로 작업할 때는 스스로 느끼는 100%의 만족감이 실제 100%가 아닌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생기면 당장 채우기 보다는 다음 성장을 위한 스텝으로 남깁니다. 설치물이나 디지털 미디어 등 처음 기획 단계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여건상 전부 구현하지 못한 점이 아쉽네요. 다행히 그런 아쉬움 덕분에 전시를 마치자마자 다음 작업을 신나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사실 굉장히 평범한 루틴으로 일상을 보내요. 여러 업무와 작업을 하면서 오전,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퇴근하면 스스로에게 보너스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밤과 새벽에 다른 업무의 간섭 없이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집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밤에 라디오 들으며 보낸 시간이 자연스럽게 창작을 위한 시간으로 자리 잡은 이유가 커요.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기도 하지만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하죠. 휴식이 필요하면 작업과 전혀 관련 없이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 게임하기 등이죠. 필름을 끊듯, 완전히 새로운 집중이 필요한 일을 하는 게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이어가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휴식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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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 1›, 2024, Acrylic on canvas, 80.0 x 10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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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 2›, 2024, Acrylic on canvas, 80.0 x 100.0 cm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요즘 동네에 작은 인형뽑기 가게가 생겼는데요.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가격도 저렴하고 인형이 무척 잘 뽑혀요. 짧은 시간에 작은 성취를 겪을 수 있다는 면에서 가장 효과 좋은 휴식 시간이 되고 있어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작업에 저 자신이 굉장히 많이 묻어나는 편이에요. 한 가지를 꼽아 얘기하면, 늘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는 마음을 가져요. 삶도 작업도 지나치게 몰두해서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다 보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듯 그게 굉장히 유쾌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사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일이 대부분인데요. 작업할 때도 너무 대단히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마음을 가볍게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손도 함께 어색해지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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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on 1›, 2024, Acrylic on canvas, 60.6 x 72.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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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24, Acrylic on canvas, 40.9 x 31.8 cm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중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찾은 게 있는데요. 조금이라도 편치 않은 순간이 왔다고 느끼면, 최대한 빨리 멈추는 거예요. 바로 붓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거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저를 둡니다. 잠깐 한눈을 파는 순간 괜찮아지기도 해요. 불편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 거기에 갇혀 시간을 보내고 힘들어하는 것보다 관련 없는 다른 시간을 보낼 때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쉬워집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올해는 제 삶의 큰 전환점을 맞이할 예정이라 걱정도 기대도 많이 하는 중이에요. 제가 출산을 하거든요. 지금까지 겪은 어떤 역할 중 ‘엄마’라는 크고 막중한 임무가 추가되면 과연 제 삶에 어떤 변화가 불어닥칠지 감히 상상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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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안녕›, 2024, Acrylic on canvas, 40.9 x 31.8 cm

(우) ‹마음›, 2024, Acrylic on canvas, 40.9 x 31.8 cm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 작업 중 둘 이상의 캐릭터가 나란히 걷는 ‹FRIENDS FRIENDS› 시리즈가 있는데요. 하나는 저 자신이고, 함께 발맞추어 걷는 상대는 저를 제외한 타인, 사회 등 다양한 주변의 모든 환경을 의미합니다. 발맞추며 걷는 모습에서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는 균형이에요. 우선순위를 따질 때, 저는 순위를 견주는 많은 요소보다 이를 아우르는 조화와 균형이 가장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은 긴밀히 연결돼 있고, 나비효과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업 자체의 본질, 이를 지속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많은 활동들,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삶 또한 균형 있게 유지해 나가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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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NDS FRIENDS 21›, 2024, Acrylic on canvas, 60.6 × 72.7 cm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제게 고민을 전하는 후배들이 있어요. 질문을 들어보면 보통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갖지 못한 작은 결점에 너무 집중하며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작업을 지속하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경험을 쌓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매력을 발견하고 극복할 수 있는데요. 일찍부터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나를 이루는 다양한 감정에 집중해 균형을 찾아가는 훈련을 할 수 있다면, 더 즐거운 창작의 여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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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1›, 2024, Acrylic on canvas, 90.9 x 72.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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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2›, 2024, Acrylic on canvas, 90.9 x 72.7 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지금까지 보여드린 것보다 앞으로가 더 궁금하고 기대되는 작가, 그리고 그 궁금증에 시원하게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작가로서의 미래는 늘 예측할 수 없고 무궁무진하지만, 엄마로서의 미래가 그보다 더 궁금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균형을 맞출 일이 점점 늘어나게 되겠지만, 저만의 새로운 중심을 잘 잡고, 더욱더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탐스러운 열매도, 튼튼한 가지도 알아서 잘 자라주겠죠?

Artist

이슬로YISLOW는 마음에서 피어난 다양하고 무질서한 색채를 겹겹이 쌓아 형태를 구성하는 작가다. 노랫말 없이 흥얼거리다 사라지는 콧노래처럼 정의할 수 없는 무한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이며 즉흥적으로 화폭을 채워 나간다. 전형적인 사각 프레임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완성하는 그의 작품은 작가의 회화적 성격을 뒷받침한다. 어쩌면 천진난만이라는 단어를 시각 미술의 언어로 풀었을 때 그 장면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작가가 지나간 자리에는 천진하게 피어오른 그와 친구들이 있다. 개인전으로 «THE PRESENT»(CDA, 서울, 2024), «SWEET ALONG»(The Stroll gallery, 홍콩, 2023), «FRIENDS FRIENDS»(카린, 부산, 2023), «Ampersand»(PBG, 서울, 2022), «RUN RUN!»(SH Gallery, 도쿄, 2021) 등을 열었고, 다양한 국내외 단체전과 페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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