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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창작이라는 특권의 의무

Writer: 한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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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한지형 작가는 생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에서 나타나는 몸의 개념에 집중합니다. 개인의 정체성에 비롯하는 다양한 신체성을 회화라는 매체로 표현 중이에요. 특히 그의 작품을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변형입니다. 자본주의의 진화에 따라 변형되는 인류의 신체에 대해 이야기해요. 특히 자기 정체성을 초월하려는 사람, 돌연변이적 존재로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상을 통해 실재하지 않지만 가능할 법한 것을 상상하며 몸을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합니다. 그는 내면과 외면, 은폐와 폭로 사이에 자리 잡은 인간의 의지와 의식이 작품 속 이미지에 깃들고, 이를 발판 삼아 관람자가 타인의 외부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길 바라는데요. 만들고 제작하는 창작의 특권을 통해 본인의 세계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태도를 가지는 게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한답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한지형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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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Essentialism›, 2022, Acrylic on canvas, 100 x 80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가 한지형입니다. 생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에서 나타나는 몸의 개념을 다루고 있어요. 개인의 정체성에서 비롯하는 다양한 신체성을 페인팅이라는 매체로 표현하는 중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는 음악 창작자나 의상 제작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조형예술 쪽으로 더 많은 흥미를 갖고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제법 어린 나이에 블로그를 운영하며 직접 찍은 사진을 공유하고, 콘셉추얼한 사진을 디렉팅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로부터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 영역에 대해 배우고, 감상하러 다니면서 창작자의 길을 자연스레 선택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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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Any Color you like(Random box)›,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우) ‹Bodies on occasion›, 2023, Acrylic on canvas, 60.6 x 72.7 cm

(상) ‹Any Color you like(Random box)›,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하) ‹Bodies on occasion›, 2023, Acrylic on canvas, 60.6 x 72.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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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ies on occasion ii›, 2023, Acrylic on canvas, 100 x 80 cm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얼마 전까지 주거 공간과 스튜디오를 겸해 이태원에 있다가 해방촌 쪽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구했어요. 다른 작가분이 사용하던 공간인데, 업무차 오래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나도 언젠가 이런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싶다’라고 막연히 소망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아서 그분이 쓰던 작업실을 물려받게 되었네요. 건물 자체가 아지트 같은 느낌이고, 주변에 카페와 식당이 다양하게 있어서 분위기가 밝아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가장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곳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막 미술을 시작했던 때에는 존 카펜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테라야마 슈지가 연출한 SF 호러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기이하거나 무서운 이미지, 사이비 존재에 관심을 가지면서 작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최근에는 역사 속 인물이나 오래된 밈, 동영상, 잡지, 인터넷 속 인물처럼 지면에 박제된 인물과 형상을 탐색하며 온라인에서 퍼지는 신체 이미지의 기원과 발전 양상을 살피고 있어요.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과 사회와 관련한 새로운 영역, 자신의 정체성을 초월하려는 사람들, 돌연변이적 존재로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인간상을 통해, ‘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방대한 주제에 관한 답을 찾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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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Parabola of our age i›, 2023,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우) ‹Parabola of our age ii›, 2023,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상) ‹Parabola of our age i›, 2023,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하) ‹Parabola of our age ii›, 2023,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제가 만들어내는 페인팅에는 다양한 글과 이미지, 스톡 이미지, 직접 찍은 사진, 3D 모델링 등이 합쳐져 있어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치기 이전에는 메모장에 긴 소설이나 짧은 시처럼 글을 적고, 작품 제목을 3~4개 정도 짓습니다. 그 후, 글 위로 부유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필요한 이미지를 수집하고 하나둘 쌓아가며 스케치를 진행해요. 몸과 몸 바깥을 가로지르는 것이 한곳에 모이면 디지털 에스키스로 완성한 이미지를 이제 에어브러시로 캔버스에 구현합니다..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최근에는 자본주의 사회가 요청하고 바라는 이미지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젊음과 성 정체성이 지닌 이상(ideal)으로부터 표출된 초현실적 이미지와 가상의 커뮤니티를 함께 보여준 파운드리 서울에서의 개인전 «Them so good»이 대표적인데요.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사회적 아웃사이더의 원형으로부터 만들어진 개체를 다루며, 미래의 펫숍을 상정해 쇼룸 형태로 전시를 기획했어요. 반인반수의 동반자 혹은 가상의 자아를 표현하는 ‘퍼리Furry’의 초상화 이미지를 진열해 새로운 삶, 다/초차원적 경험을 판매하면서 ‘실재하지 않지만 가능한 것(the possible-but-not-real)을 상상하는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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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 so Good», 2024, 바이파운드리 © 파운드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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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 so Good», 2024, 바이파운드리 © 파운드리 서울

‹Rave quotes and wisdom›, ‹Egos slide into one another› 연작은 변장하기, 변신하기와 같은 ‘애너모픽anamorphic’ 개념으로 신체 이미지를 다루면서 내면과 외면, 은폐와 폭로 사이에 존재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변형 또는 변신은 비판과 저항의 형태로서 단순한 욕망의 표출이 아니라 왜곡을 주도하는 인간의 의지와 욕망을 담은 개념입니다. 다양한 판본이 담아내는 관념 또는 본질, 반성적 의식과 형식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초월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면에서 상호의존적으로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며, 세계를 변형시키고 독창적인 반응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돌연변이(mutation)를 향한 의지는 육체성에 대해 재고하고 신체 미학과 이에 내포된 정치, 윤리와 얽힌 관계를 강조하는 도전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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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Today is not your day›, 2024,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우) ‹Rave quotes and wisdom›, 2023,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상) ‹Today is not your day›, 2024,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하) ‹Rave quotes and wisdom›, 2023,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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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s slide into one another›, 2023,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 작업은 사람과 장소가 가질 수 있는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연출된 행위 사이의 순간과 그림에 자리 잡은 인물의 시간을 관람자가 읽어내며 타인의 외부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제 그림이 베일에 얇게 싸인 하나의 공간이라면, 그 문턱을 넘어 존재와 정체성의 과도기적 상태에서 구현되는 가능성을 들여다보길 바라며 작업하고 있어요. 내면과 외면, 은폐와 폭로 사이에 자리 잡은 인간의 의지와 의식이 제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깃들기를 소망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최근 들어 제 분신 같은 여성의 초상화를 많이 그리고 있어요. 작품에 정직하게 감정을 표출하되, 너무 날것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중이죠. 사회 구조의 중재 장치로서의 몸의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주제에 접근하는데요. 제가 좀 더 대담해진다면 더욱더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거친 입자나 표면처럼 재료의 물성을 사용한 표현에도 관심이 많아요. 여기에 대해서는 서서히 더 많은 작품을 만들면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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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ies on Bodies (Pony B)›,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에 쏟습니다. 너무 바쁘지 않으면 주말에 한 번 정도 친구들이 여는 파티에 가고요. 이렇게 빡빡한 일정을 보내다가, 한 번씩 여행을 떠나 기분을 환기하고 좋은 전시를 보고 돌아와서 다시 작업하는 일상을 반복 중입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시각 문화의 미래를 재정의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두고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어요. 좋은 전시 공간을 다니면서 작품을 어떻게 설치했고, 구조물을 어떻게 세웠는지도 면밀히 살펴보는 편입니다. 최근 공간과 사운드, 조명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장소에 자꾸만 관심이 가네요. 얼마 전 다녀온 런던의 ‘폴드FOLD’라는 클럽이 참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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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Bodies on Bodies (Cindy)›,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우) ‹Bodies on Bodies (Noel)›,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상) ‹Bodies on Bodies (Cindy)›,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하) ‹Bodies on Bodies (Noel)›,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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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ies on Bodies (Midori)›,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느끼는 사랑과 상실, 공동체에 대한 태도가 마치 일기처럼 그림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자기 자신에 대해 인지적 관심을 두고 발전하고자 노력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것 같아요. 내면에 존재하는 정신의 도구를 사용해서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고요. 스스로 지닌 결함을 인지하고 불완전한 현재를 기반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면 슬럼프를 겪는 기간을 가뿐히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약속되지 않은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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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ove Language›, 2023, Acrylic on canvas, 100 x 80 cm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창작자는 자신이 선택한 재료를 통해 본인의 세계를 튼튼하게 건설해야 한다고 믿어요. ‘만들고 제작하기’라는 특권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요. 이를 통해 자신을 독해하기도 하고, 그로부터 세계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여주는 게 작가의 의무 아닐까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자신을 받아들이고, 선언하고, 행위하는 모든 것을 기념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창작자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기나긴 여정을 보내야 하니, 지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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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etle eats tree sap›, 2023, Acrylic on canvas, 145.5 x 112 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더 깊이 들어가 이해를 시도해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로 기억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미래.

Artist

한지형은 서울에 거주하며 ‘변형 신체’를 키워드로 자본주의의 진화에 따라 변형되는 인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페인터다. 콜렉티브 그룹 ‘99betaHUD’으로도 활동 중이다. «Them so good»(파운드리 서울, 2023), «Fatty Folders»(드로잉룸, 2022), «identi-kit»(N/A, 2021)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23 종근당예술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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