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우 작가는 조각,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이 포착한 삶의 모습을 변형해 우리의 삶을 환기하는 생경한 경험을 만들어내죠. 이를 두고 ‘관객이 경험하는 상황을 조각한다’라고 표현한답니다. 아주 멋진 말인 것 같아요. 그래서 겉보기에 작업하지 않는 것 같아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작업을 손으로 직접 마감하고 완성하는 걸 좋아한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그는 기존 논리가 실패하고 부서질 때 발생하는 유머와 아이러니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작업을 보면 현실을 살짝 비트는 기질을 발견할 수 있어요. 자신의 태도가 작업에 얼마나 잘 담겨 나타나는지 중시하는 그가 근래 꾸준히 관심을 보인 주제는 행복이에요.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는데요.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상냥함을 주제로 골똘히 고민 중이라니 어떤 형태로 작업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상황을 조각하는 이원우 작가의 요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이원우입니다. 조각,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상황을 조각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술대학에 다니는 와중에 동료들과 ‘…좋겠다 프로젝트’라는 퍼포먼스 팀으로 활동하면서 처음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4~5년간 팀 활동에 집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 작업에 보다 집중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젊은 시절 모델로 활동했던 경험이 퍼포먼스 작업을 진행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서울 근교에 위치한 작업실은 어느 산자락에 있어요. 계절에 따라 변하는 주변 환경을 살필 수 있고, 다양한 동식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조각, 설치 위주로 작업하다 보니 제작이나 보관에 용이한 공간이 필요했는데, 서울에서는 마땅한 공간을 구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좋은 환경으로 옮겨와서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자연을 접하는 게 정서에 좋다는 말도 실감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삶의 다양한 경험에서 영감을 받는데요. 정해진 주제나 영감이 떠오르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건 아니에요. 어느 순간 딱 감이 잡히는 순간이 있을 뿐이죠. 어떤 영감으로 시작했든 제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오랜 시간 붙잡고 매달리는 주제도 있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순식간에 진행하는 작업도 있어요. 최근에는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지네요.
저는 상황을 조각합니다. 관객이 경험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죠. 제가 포착한 삶의 모습을 조금씩 변형해 우리 삶을 환기할 수 있는 생경한 경험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해요. 작업하지 않을 때도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작업실에 있지 않아도 사실 머릿속으로 계속 작업 중인 셈이에요. ‘만들어야지’라는 작업을 결정하면 빨리 움직이고, 또 손을 직접 움직이며 작품을 만드는 걸 좋아해서 많은 작업은 손으로 마감하고 완성합니다.
작년 가을 전시공간 리플랫에서 «Cloudsmith 구름을 만드는 대장장이»라는 개인전을 진행했어요. ‘클라우드스미스Cloudsmith’는 구름(cloud)과 대장장이(blacksmith)의 합성어인데요. 관객의 행복을 만들어주는 콘셉트로 진행한 전시였죠. “오늘 하루 행복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사전 신청을 통해 관객으로부터 답을 받아 작은 조각 작품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이는 2017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Lost & Found in the Ball 무도장의 분실물 센터»의 연장선이에요. 관객들이 찾고 싶은 분실물을 작업으로 의뢰하면, 즉석에서 작은 조각 작품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처음에는 구체적인 사물을 예상했지만, 많은 분이 사랑, 건강, 정체성, 열정, 행복 등 상당히 추상적인 대상을 찾는 걸 보니 흥미롭더라고요. 이후 뉴욕, 몬트리올, 헬싱키 등지에서 작업을 이어갔는데 유독 한국 관객의 경우, 과거를 물어봤는데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은 마음에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를 주제로 일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의 과거와 미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잃어버린 과거와 꿈꾸는 미래의 모습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렇게 해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행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을 구름에 비유한 건 ‘대장장이가 구름을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행복은 순간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그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순간적인 행복의 속성을 구름에 비유해 보면 어떨지 싶었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구름이란 소재는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 현상이라면서도 일정한 형태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시시각각 변하고 쉽게 흩어지는 하늘 위 거대한 구름 덩어리를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연극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한편 대장장이는 묵묵히 쇠를 두드려 단단한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전혀 다른 두 요소가 만났을 때의 이질적인 느낌이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저는 작업이나 전시에 이름을 붙일 때 내용을 설명하듯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제작 의도를 잘 담을 수 있는 단순한 제목을 선호해요. 그러다 보니 제목에 등장하는 표현이 전시 주제를 함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Trojan X’라는 인공지능 예술가를 만든 작업도 기억에 남습니다. AI vs AI 콘셉트로 인공지능 예술가와 인간 예술가의 대결을 다뤘어요. 실제 전시장에서 인공지능 전문가가 만든 인공지능 아티스트, 그리고 아티스트가 만든 인공지능 아티스트가 서로 예술작품을 만들고, 관객은 누가 더 뛰어난지 평가하는 대결 구도의 작업이었어요. Trojan X는 저의 중추신경을 이용해서 만든 인공지능 로봇인데요. 사실 제가 만든 로봇 안에 직접 들어가 인공지능 연기를 펼친 퍼포먼스 작업이었어요. 전시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관객과 대화를 나눴는데, 많은 분이 실제 로봇이라고 믿었어요. 심지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인공지능 전문가로 일하는 연구원도 인공지능과 대화한 후 경쟁기업이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 같다고 피드백을 남겨서 깜짝 놀랐답니다. 우리 삶이 인공지능을 비롯한 각종 기술이 얼마나 밀접하게 침투했고, 그럴싸한 타이틀을 달고 있을 때 우리를 얼마나 얄팍하게 속일 수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이를 맹신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됐어요. 관객의 반응도 뜨거워서 더욱더 재미있게 진행했어요.
행복에 대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Lost & Found in the Ball 무도장의 분실물 센터» «YOUR BEAUTIFUL FUTURE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 «Cloudsmith 구름을 만드는 대장장이» 전시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1000여 명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며 즉흥적으로 작업했는데, 각기 다른 답에 맞춰 온전히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과거와 미래를 돌아다니니까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지금은 과거, 미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찾아낸 것과 제 이야기를 엮어 책을 내려고 준비 중이에요.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아직 과정 중이긴 한데 만족하고 있어요. 제가 작업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제 태도가 작업에 얼마나 잘 담겨 나타나는지 여부입니다. 작품이 제 손을 떠나게 되면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하거나, 혹은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스스로 힘을 내야 하므로 그런 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현재는 상냥함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어요.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이 상냥함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꼈어요. 저 자신도 그렇고요. 상냥함은 본성에 내재했거나 혹은 학습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일단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고 봐요. 보이지 않는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죠. 타인, 혹은 타 존재, 나아가 자연이나 세계와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이타적인 마음, 혹은 사랑과 유사하지만 또 다른 태도라는 생각으로 상냥함에 대해서 고민 중이에요.
교외로 작업실을 옮긴 후로는 미팅이나 약속도 가능하면 몰아서 잡고, 최대한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오래전부터 일찍 작업실에 출근하는 게 생활이 되니까, 이런 게 제일 편안하고 좋습니다. 걸으면서 생각을 많이 떠올리고 정리도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산책을 많이 하고, 시내를 돌아다닐 때도 걷는 걸 선호해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자연. 좋은 정원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갑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며 생각하거나, 뒤집으려는 기질이 있는 듯해요. 기존 논리가 실패하고 부서질 때 발생하는 유머 코드는 현실을 살짝 비트는 작업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제 작업을 보면 유머와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습니다.
‹Dreamy Gallery›, 2019, Steel, Wood, Suitcase handle, Castors, LED, 109 x 42 x 36 cm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작업실에서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봐요. 낙서, 예전에 만든 작업, 생각하던 작업의 모형 등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아요. 손을 계속 움직입니다. 두뇌 회전이 잘되지 않을 때는 손을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면 다시금 머리가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하는 저만의 스트레칭 같은 거예요.
이원우는 퍼포먼스, 조각, 회화, 사진, 영상, 텍스트 등 예술의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르는 멀티 아티스트이자 팀 ‘…좋겠다 프로젝트’와 다장르 그룹 MLH의 일원이다. 삶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요소를 특유의 위트와 해학으로 비틀어 일상의 체계에 균열을 가하고 익숙한 것을 새롭게 환기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자주 인용되는 거인이 되어 불안감을 떨쳐버린다는 가정, 네잎클로버·별·무지개와 같은 행운의 아이콘, 가볍게 대화하듯 툭 던져진 문구, 형태와 의미가 왜곡된 오브제 등은 자기방어적 농담이자 판에 박힌 외부 세계에 경종을 울리는 생명력으로 작동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선재센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베이징 송주앙미술관 등의 미술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했고, 울리 지그Uli Sigg 컬렉션, 서울시립미술관, 에이스 호텔Ace Hotel 등에서 작품을 소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