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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루틴이 가장 중요합니다

Writer: 나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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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나혜원 작가는 베를린에서 활동해요. 작업은 불현듯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삶의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라고 믿기 때문에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면서 예민하게 주위를 살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중시해요. 그래서인지 루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매일 작업실에 출근 도장을 찍는데요. 슬럼프 또한 순간의 상태라고 믿기 때문에 뭐라고 계속하다가 결과물이 나오면, 순간 맥락이 맞지 않아 보여도 지나고 나서 결국 맥락을 찾는 경우가 생긴답니다. 그래서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항상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의 중요성과 묘미를 알아버렸어요. 그는 작가라면 자기 방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자신이 꿈꾸는 삶에 대한 고민과 현재의 위치, 그리고 그런 삶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는 거죠. 작가는 자기 삶의 철학을 조형미술로 표현하는 직업이기에 이러한 고민 여하에 따라 장식품을 만드는 일과 작품을 만드는 일이 차이 난다고 믿어요. 규칙성의 힘을 강조하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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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얼굴›, 2023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나혜원입니다. 종종 패브릭으로 더미를 만들어 설치 작업을 하기도 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으로 기억나는 때부터 이미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보모분의 친구가 화가셨는데 아마 그 영향이 아닌가 싶어요.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를 직업으로 연결한 구체적인 계기는 11살부터 14살까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던 시절, 그때 집에서 그린 그림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였어요. 그때 확고하게 직업인으로서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하지만 당시 입시 미술 같은 제도권 교육이나 사교육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로 제도권 미술을 배우지 않았고, 한국에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았어요. 여전히 혼자 그림을 그리다가 21살 때 경험한 유럽 일주 여행을 계기로 독일에서 미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본격적인 미술 공부는 이때가 처음이었는데요.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베를린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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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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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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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Film», 2023, BABYLON Berlin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베를린 동쪽에 위치한 작은 작업실입니다. 8~9평 남짓해요. 공간의 절반은 작업용으로, 나머지 절반은 그림을 보관하는 용으로 사용 중입니다. 다른 작가들과 부엌, 화장실, 복도를 공유하면서 개인 방은 별도로 있는 구조에요. 같은 건물벽 너머로 양로원이 있어서 가끔 어르신들의 왈츠 댄스와 합창 소리가 들린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영감은 결국 제 모든 일상에서 와요. 작업은 갑작스럽게 불현듯 만들어지기보다, 제 삶의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라고 믿어요.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면서 예민하게 주위를 살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이 곧 영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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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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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2023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관심 가는 분야에 대한 책과 다큐멘터리 등을 찾아봐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가능하다면 직접 가서 살펴보고 사진 등으로 저만의 아카이브를 만듭니다. 관련한 글도 틈틈이 쓰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그리고 싶은 것이 구체화되는데요. 그리기로 결정한 대상을 포스트잇에 키워드 정도로만 써놓아 봅니다. 그리고 캔버스나 종이를 준비하죠. 저는 스스로 캔버스 짜는 걸 좋아하는데요. 스트레처에 천을 입히고, 밑칠을 여러 번 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아요. 캔버스 위에 스케치는 하지 않는 편인데요. 가끔 대형 작업을 진행할 때는 아주 간략히 위치 정도만 표시해 둡니다.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작업을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저는 고대, 고전, 혹은 중세미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이를 대상으로 다시 그려내거나, 형태를 차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무대 위-세 연작›이란 작품은 중세 시대 성화 인물화의 틀을 차용했지만, 자세히 보면 주인공이 현대의 가수이거나, 고대 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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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연작›, 2023, 캔버스에 유화, 각 190 x 70 cm, 사진: 양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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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형›, 2023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지금까지는 주로 친밀함 속에 있는 폭력성을 다뤘는데요. 최근 들어서는 성스러움 속의 세속적인 욕망이나 폭력성에 관심을 두고 공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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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성당›, 2023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그 무엇보다, 그림은 육체적인 일이다 보니, 체력부터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루틴을 지키는 편이에요. 오전에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점심 이후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작업실을 지킵니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에도 작업실에 나와서 뭐라고 하는 편이에요. 주말 저녁에는 전시와 공연을 보러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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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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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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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어린이›, 2022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는 순간의 상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뭐라고 계속하다 보면 어떤 결과를 내놓게 됩니다. 그 순간에는 맥락이 안 맞아 보이더라도, 지나고 나면 결국 맥락을 찾는 경우도 생겨요. 그래서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항상 무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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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 Head›, 2023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가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작업을 위해서 꾸준하고 안정적인 일상이 필요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으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에요. 예컨대 다른 도시 혹은 다른 국가에서 열리는 전시나 레지던시 등으로 떠나야 하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불쑥불쑥 일상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불규칙성은 체력이나 경제적인 문제도 야기하지요. 그래서 별다른 일정이 없을 때는 무조건, 어떻게든 제가 만든 루틴을 지키려고 애써요. 다른 곳에 다녀오더라고 최대한 일상에 다시 빠르게 적용해서 루틴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요. 규칙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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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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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so›, 2023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무엇이 내게 좋은 삶인가, 내 삶의 현재 지점은 그에 어느 정도 닿아있나, 그리고 이 삶이 세상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직업으로서 예술가는 자기 삶의 철학을 조형미술로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장식품을 만드는 이와 작품을 만드는 이의 차이가 이런 부분에서 나온다고 봐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작가로 사는 방식은 모든 작가마다 다를 거예요. 어떤 방식이든 자기 방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16_나혜원_Hyewon Na_은암미술관

«소우주-연결Microcosmos-Connect», 2023, 은암미술관

Artist

나혜원은 베를린에 거주하며 친밀함에 내재한 폭력이라는 양가적인 속성을 주제로 작업한다. 대한민국 서울, 광주, 독일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포르투갈 포르토 등에서 개인전을 열고 단체전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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