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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온갖 사연을 넣어 구워낸 인생 케이크

Writer: 미소바케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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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미소바케카케MISOBAKECAKE’의 손규리 디자이너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재료 삼아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케이크를 만드는 주인공입니다. 의뢰인을 인터뷰해 얻은 다양한 정보를 조합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죠. 이런 케이크를 통해 누군가의 소중한 이야기를 혀로, 장으로, 살로 나누고 싶다고 해요. 소외되는 이야기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손규리 디자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바케bake’, ‘카케cake’하는 케이크 디자이너 손규리입니다. 케이크를 소재 삼아 작업을 하면서도 언젠가 나타날 또 다른 소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오늘도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있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했어요. 예술인만 가득한 집단에서 아무 흥미도 없이, 무미건조한 창작을 되풀이하며 생활했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중, 목적 없이 길고 긴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날의 아침이었는데요. 문득 출근 중인 직장인을 보고 ‘나도 H라인 스커트에 구두 신고 출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하던 것을 모두 그만두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5년 동안, 단 한 순간도 예술에 가깝지 않은 시간을 보냈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비로소! 흥미를 잃었던 창작에 대한 욕구가 솟구치는 걸 느꼈고, 그렇게 ‘미소바케카케’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창작자로서의 첫 시작을 떠올려 보면, 누구의 선택으로 그 길을 걷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요. 미소바케카케로 맞이한 두 번째 시작은 ‘하고 싶다!’는 투명한 욕구를 동력으로 삼은 선택에서 비롯한지라 제게 뜻깊어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업실은 주거 공간과 같은 건물에 있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계단을 뛰어올라 잠옷 차림으로 작업에 몰두하곤 해요. 작업용 테이블에 앉으면, 모든 도구와 재료가 팔길이 반경에 쏙 들어와요. 한 사람이 일하기에 딱 좋죠. (사실은 매우 작은…). 이 작업실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며, 커다란 이야기를 작은 케이크에 담아내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타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요. 타인의 삶을 상상하거나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직접 듣는 순간, 마치 제가 겪은 일마냥 푹 빠져들게 되는데요. 기쁨, 슬픔, 무미건조 등 타인의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받을 때 제 안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에 휩싸여요. 이렇게 수집한 이야기에 여러 감정을 더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확장하며 창작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가장 먼저 의뢰인을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답변에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키워드를 추출해요. 다음으로는 사전적 의미나 현상, 다각도의 이미지 등 키워드에 어울리는 여러 자료를 수집합니다. 이때 이야기나 이미지, 소리 등 최대한 정보를 다양하게 얻으려고 노력하죠. 마지막으로, 그때까지 수집한 정보를 바탕 삼아 이미지를 분해, 배열하고 재조합하는 상상의 과정을 거치면 작업이 완성됩니다. 그렇게 의뢰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케이크에 꾹꾹 눌러 담아서 그런지, 여러 정보가 뒤섞이며 암호화된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때로는 직관적이고, 때로는 추상적인 모습으로요.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케이크는 결국 제 손을 떠나 이야기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운명을 타고났어요. 케이크의 주인은 꼭 기억하고 싶던 자신의 이야기로 완성한 케이크와 사진을 찍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죠. 최종적으로 의뢰인은 케이크를 먹으며 예전에 내뱉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삼키게 되는데요. 이때 케이크는 ‘먹힘’으로써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에너지원으로 변해 이야기 주인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영원히 함께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잔치 음식의 대명사인 케이크로 물질화한 특별한 이야기는 축하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언어가 아닌 음식으로 공유되는데요. 그런 면에서 케이크가 이야기의 달짝한 맛을 혀로, 위로, 장으로, 그리고 살로 나눌 수 있는 통로로 변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조소를 전공한 덕에 입체물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색을 사용하는 일은 항상 어려워요. 형태를 완성한 후 색을 칠하지 못해서 오랜 시간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어요. 색을 칠하다 케이크를 망쳐버릴까 봐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과감히 여러 색을 섞어서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덕분에 저만의 색을 조합하는 규칙을 가질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아직도 종종 X 색이 나오긴 하지만…과감히 결심한 덕분에 조색에 대한 두려움을 깰 수 있었습니다. 최근 한 매체에서, ‘마소바케바케의 케이크는 하나의 조형물에 가까운 섬세한 디테일과 과감한 색감이 매력적이다’라고 소개해 주셔서 뿌듯했던 기억이 나네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제 일상은 굉장히 단순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강아지와 산책을 나섭니다. 강아지가 그날그날 골라주시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신 후 집에 돌아와 밥을 먹어요. 그리고 작업실로 들어가 졸면서 작업을 하다가, 마감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각성한 후, 다시 졸기를 반복하며 낮시간을 보내죠. 저녁에는 그날 마무리한 작업을 찍은 사진을 편집하고, 어떤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지 눈알이 빠지게 고민합니다. 그렇게 하루의 마지막을 보내다가 시린 눈을 부여잡고 잠자리에 드는 것 같아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직 미소바케카케를 운영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많아요. 사람들에게 제 작업 방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의뢰인으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유연한 질문은 무엇일지 늘 고민합니다. 새로운 작업 방식과 식용가능한 소재로의 확장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기저기서 정보를 수집 중이에요. 언젠가는 미소바케카케의 전시를 열고 싶은 꿈도 있는데요. 식용 소재를 활용해 전시를 열 때는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하는지 여러 방면으로 상상하고 있답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손규리’로만 살아야 하는 삶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외부로 시선을 돌렸어요. 주변 현상과 타인의 삶을 때로는 얕게, 때로는 깊게 넘나들며 유영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타인의 이야기가 제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에 늘 소중히 여기는데요. 이렇게 타인의 삶을 향한 꾸준한 관심과 호기심 어린 태도가 미소바케카케의 작업을 탄생시키는 원천 같아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사실 하루건너 한 번씩 슬럼프가 찾아와요. 작업이 하기 싫어지거나, 갑자기 아무것도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할 때가 잦죠. 그럴 때일수록 더욱더 작업에 몰두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슬럼프가 찾아오면 또 어쩌겠어요. 의뢰인과 약속한 픽업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는걸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거의 매일 새로운 케이크를 디자인하면서, ‘언젠가 내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어쩌지?’라며 조바심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느긋한 마음을 지니고, 언제나 깨어있는 삶의 태도를 통해 걱정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영감을 얻고, 제 안에 계속 무언가를 채운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깨달은 덕분이죠.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작년 겨울, 다시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고민하다가 케이크로 작업을 해볼까 싶어서 오븐부터 온갖 베이킹 장비를 충동적으로 구매했는데요. 막상 작업실을 세팅하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겁나더라고요. 결국 오븐을 되팔려고 중고 시장을 둘러봤지만 아무래도 제값 받기가 힘들어 보여서 그냥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막상 하다 보니 어느새 최선을 다해 작업하고 있더군요! 그 속에서 목표도 생기고, 작업에 대한 애정도 생겼죠. 이렇듯 결국 그 계기가 뭐든지 간에 일단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저 계속해 나가는 게 창작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시간이 지나 문득 떠올린 장면의 한구석, 장난 가득한 모습으로 웃고 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곁을 맴돌며, 말을 걸고 싶어 꾸준히 아이 컨택을 시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작업도 이런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모두가 서로의 눈길을 주고받으며 눈웃음이 넘치는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품은, 소외되는 이야기가 없는 세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Artist

‘미소바케카케MISO BAKE CAKE’는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손규리가 박사 과정 시작을 그만두고 회사에 다니다가 갑자기 창작자로 복귀해 빵과 크림으로 조각을 시도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주로 특별한 날을 맞은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케이크 작업을 시작하는데, ‘의뢰인의 좋은 날을 망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무거운 마음 반, 즐거운 마음 반으로 작업에 임하는 중이다. 미소바케카케는 «IT’S NICE THAT»,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싱글즈SINGLES», 조말론 코리아 등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었으며, 가수 지올 팍ZIOR PARK의 뮤직비디오, 삼성전자 광고 등 잡지나 영상 구석에서도 포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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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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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손
황형신, Hwang Hyung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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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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