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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가 뭔가요. 그냥 살아가야죠.

Writer: 진달래, 박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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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예술공동체 진달래&박우혁은 올해로 결성 20주년을 맞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으로 시작해 자립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작업자의 성향을 키워갔고, 자연스레 미술 쪽도 겸하게 되자 지금은 그래픽,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에요. 이들의 특징을 하나 꼽아보라면 꾸준함 같아요. 반복, 변주, 중첩 등 규칙과 관련된 여러 개념을 오랜 기간 탐구하면서 계속 실험을 지속했거든요.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작업을 열심히 하다 보면 가끔 꿈에서 해답이 보일 정도라니, 이만큼 발전하려면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시도하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작업에는 어떤 기질이 있고, 이를 좀 더 표면화하는 데 힘을 다한다는 진달래&박우혁. 작업자의 소통 방식은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띵언들을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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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박우혁: 코스모스» 포스터, 2023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그래픽,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매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는 예술공동체, 진달래&박우혁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진달래는 디자인 잡지 «디자인네트»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고, 박우혁은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디자인을 하다가 2004년부터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저희 모두 디자이너로 활동했기 때문에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아르코미술관, 일민미술관, 서울문화재단 등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 북 디자인 작업에 집중했는데요. 상수동에 스튜디오를 열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디자인에 개입하던 일종의 ‘작업적’ 성향을 자립 프로젝트로 구현하기 시작했어요.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연구하는 신문 프로젝트 ‹아카이브안녕›이나 출판 프로젝트, 전시 기획 등이 대표적입니다. 비슷한 시기, 예기치 않게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에 입주했는데요, 진달래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던지라 자연스럽게 설치, 영상, 사운드 매체에 접근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래픽 디자인과 미술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을 잡으며 작업을 지속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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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안녕›, 20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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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안녕›, 2011-2023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일상의 경험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발견합니다. 진달래는 주로 책을 읽고, 박우혁은 뭔가 기억해 두려고 노력하죠. 평소에 하던 요가에서 어떤 규칙을 발견해 미술 작업으로 발전시키고, 그 생각을 견고히 하는 이론을 책에 찾습니다. 작업 주제가 ‘규칙’과 관련한 터라 우리 사회 어디서나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우연히 마주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입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디자인이 사회를 해석하는 일이라면, 미술은 의문을 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할 때는 그 대상만을 관찰하고, 미술을 할 때는 이와 반대로 대상의 바깥을 바라봅니다. 구체적인 창작 과정을 묻는다면, 그냥 ‘열심히 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열심히 하다 보면, 가끔 꿈에서 해답이 보이곤 해요.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먼저, 작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극장 Post Media and Site»를 위한 전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했습니다. 리노베이션을 앞둔 미술관이 제 공간을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전시였는데, 저희는 참여 작가이면서 동시에 전시 그래픽 디자이너 역할을 맡았어요. 전시 정보의 타이포그래피적 배열을 통해 실제 전시 공간을 지면 공간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는데요. 보통 이렇게 전시명을 작게 처리한 제안은 채택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최종 작업물로 구현할 수 있어서 만족감이 큰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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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Post Media and Site› 포스터, 2023

진달래&박우혁

‹극장Post Media and Site› 리플렛, 2023

‹극장Post Media and Site› 리플렛, 2023

‹물 마늘 양파 우유 과일›은 2021년 진행한 동명의 개인전에 출품한 영상작업입니다. 보통 저희 작업은 장소 특정적인 특성을 띠기 때문에 전시 공간을 면밀히 해석하고 해당 공간에 적합한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등으로 구현하는데요. 이런 작업은 장소가 변하면 온전히 다시 보여줄 수 없다는 게 단점입니다. 특히나 저희 작업은 대개 규모가 커서 이동하거나 재설치하기가 어려워요. 퍼포먼스는 전시 현장에서 직접 보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고요. 기록 영상의 한계도 분명해서 어려움이 더욱 많습니다. ‹물 마늘 양파 우유 과일›은 앞서 말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설치와 퍼포먼스를 영상화한 첫 시도였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서 저희에게 의미가 큰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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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늘 양파 우유 과일Water Garlic Onion Milk Fruit›, 2021

철학 공부 모임이면서 출판사이기도 한 전기가오리의 『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시리즈를 2021년부터 계속 작업하고 있습니다. 비정기로 간행하는 전집 형태인데요. 여러 주제의 철학 원고를 그래픽으로 해석한 추상적 이미지를 각 권의 표지로 삼습니다. 대개 보이지 않는 모듈을 기초로 만들어지는데요. 그런 기초 없이 자유로운 형태가 탄생할 때도 있어요. ‘각 권의 디자인은 모두 다르게’를 디자인의 기조로 삼고, 매번 새로운 그래픽을 시도합니다. 시리즈를 특별히 선호하는 데다, 절대적인 작업의 자유가 주어지는 터라 열심히, 매우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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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결과주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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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인간 장기 기증』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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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화용론』 표지

작년 서울디자인재단의 초대로 DDP에서 «진달래&박우혁: 코스모스»란 이름의 개인전을 열었어요. 대개 저희 전시는 대부분 어느 미술관에 초대되어 전시 주제에 따라 미술작품을 구성하는 편이에요. 또 미술 작업이 아니라 디자인 전시에 참여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죠. 그래서 DDP에서의 개인전은 그동안의 디자인 작업을 모두 모았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 있는 전시였습니다. 그간의 시간과 노력이 떠올라 남몰래 눈물을…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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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박우혁: 코스모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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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박우혁: 코스모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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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박우혁: 코스모스», 2023

‹아카이브안녕›은 2011년 자립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고 있는 신문 형식의 프로젝트입니다. 이름 그대로 저희 관심을 기록하고 아카이브하는 프로젝트인데요. 때로는 전시 작품으로서 전시장에 전시하기도 하고, 특별히 관심을 두는 이슈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매 신문마다 다른 내용과 디자인으로 만들었어요. 비정기로 간행한 게 현재 21호까지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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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안녕›, 2011-2023

‹의미있는 형식들›은 2022년 플랫폼엘에서 열린 동명의 개인전에서 소개한 작업입니다. 총 여덟 개의 스테이지로 구성한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작업인데요. 동일한 퍼포먼스, 사운드, 무대 구성이 각 스테이지마다 다르게 변주됩니다. 저희가 오랜 기간 탐구한 주제인 반복, 변주, 중첩을 여덟 회 반복하는 병렬식 퍼포먼스로 실험했어요. 어느 한 시점을 재조합, 중첩, 변주하는 과정은 공간을 거대한 무대로 변모케 하고, 새롭게 구축된 체계에서 장면 구성, 대본, 사운드, 움직임, 무대 장치와 조명은 전체의 구성요소로 작동합니다.

‹의미있는 형식들SiGNIFICANT FORM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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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형식들SiGNIFICANT FORMS›, 2022

『TAPAS』는 2022년 발간한 나카가와 히데코의 타파스 요리책인데요. ‘책다운 책이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했습니다. 글과 사진을 배열하고, 무선 제본이나 양장본을 하고, 서점에서 눈에 잘 띄게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이 올바른 북 디자인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용과 책이 이루는 합에 대해서 오래 고민했어요.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책을 지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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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AS』, 2022

‹마스터플랜: 화합과 전진›은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에 참여한 작업입니다. 1988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 우리나라는 사회 전반에 걸쳐 규격화, 선진화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는데요. 특히 당시 건설한 거대한 아파트 단지, 공원, 스타디움 등의 건축물과 공공 디자인 체계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희는 당시 시스템이 남긴 잔상과 건축, 디자인 패턴을 중첩해 시간, 운동, 소리, 구조가 결합된 가상의 무대를 중앙홀에 연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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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플랜: 화합과 전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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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플랜: 화합과 전진›, 2020

2021년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제목을 빌린 전시회를 위해 그래픽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지닌 중첩 및 반복되는 구조적 특성, 시작과 끝이 없는 반복, 비선형 구성, 대칭, 무대, 앞면과 뒷면 등 다양한 내용적 특성을 주제 삼아 디자인했어요. 흥미로운 주제와 소재는 디자인 작업을 흥미진진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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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포스터, 2021

«보이지 않는 도시들», 2021

‹2022 오딧세이-시간의 궤도에서›는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의 커미션 작업입니다. 지난 10년을 통과하며 우리 사회가 직면했던 주목할 만한 현실을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치환한 일종의 기록 설치 영상 작업인데요. 역사적이거나 충격적인 일들은 매번 그 기록을 갱신하고,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던 기억은 금세 소멸하곤 합니다.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본 10년은 낯설고 난해한 형태가 복잡하게 얽힌 가상의 공간으로 재구성되어 미술관으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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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오딧세이-시간의 궤도에서›, 2022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산업으로만 소비되는 디자인이나 작업이 아니라, 무엇인가 기억에 남는 작업,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작업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좋은 작업에는 어떤 기질(?)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기질이 좀 더 표면화되는 데 힘을 다합니다.

해당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꽤 오랫동안 화려한 작업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그런 작업에 약간 피로감을 느껴왔기에, 최근에는 좀 더 힘 있고, 단순하고(?), 또렷한 작업을 시도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반면, 디자인이란 게 늘 그렇듯이, 우리 의도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삐끗하면서 변질되는 경우가 생기니까요.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불만족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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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안녕›, 20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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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안녕›, 2011-2023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10년 동안 뭘 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에요. 미루고 미뤄둔,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에 온전히 매달려 볼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태도와 관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업자는 작업으로 말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소통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작업자의 소통 방식은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작업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작업이고…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그래픽디자인, 2023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뭔가요. 그냥 살아가야죠.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아무거나 꾸준히 하면 아무거나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건, 가장 행복한 일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불행한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도 불행보다는 행복이 조금더 크지 않을까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누구라도 기억해 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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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박우혁: 코스모스», 2023

Artist

예술공동체 진달래&박우혁은 가시적 세계의 보편적 원리와 현상을 정의하는 사회, 문화적 태도를 미시적으로 관찰하고 재구성하는 동시에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낙관적인 직관을 평면, 영상, 설치, 퍼포먼스, 기록물 등 여러 형식을 통해 보여준다. 예측가능한 서사를 배제한 추상적이며 강박적인 장면이 두드러지는 진달래&박우혁의 작업은 경험적이며 상대적인 시간을 매개로 개인의 잠재된 감각과 기억을 자극해 능동적 사유와 인식의 눈으로 세계의 질서와 시공간을 바라보게 돕는다. 진달래는 홍익대학교에서 조소와 디자인을 공부했고, 예술 프로젝트 ‹아카이브안녕›의 기획자이며, 스튜디오 타입페이지의 대표다. 박우혁은 홍익대학교와 바젤디자인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고,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다. 

개인전으로는 «진달래&박우혁: 코스모스»(DDP, 2022), «의미있는 형식들»(플랫폼엘, 2022), «물 마늘 양파 우유 과일»(공간 타이프, 2021), «AA 20 JIN & PARK»(wrm space, 2020), «Crescendo: DOT, DOT, DOT, DOT»(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8), «구체적인 예»(사루비아다방, 2016),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구슬모아당구장, 2015), «SIGNAL»(금천예술공장, 2014)을 열었다. «올해의 작가상 10년의 기록»(국립현대미술관, 2022),  «두비트 사이의 틈»(금천예술공장, 2021), «Circles in a circle»(부천아트벙커, 부천, 2021),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국립현대미술관, 2020), «행복이 나를 찾는다»(세종미술관, 2020), «잠금해제»(민주인권기념관, 2019), «이동하는 예술가들-국제교환편»(국립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월, 2018), «빈 페이지»(금호미술관, 2017), «예기치않은»(국립현대미술관, 2016)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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