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Portfolio

우리 사이 둥글게 둥글게

Writer: 방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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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방효빈 작가는 금속 공예에서 연결 요소로 쓰이는 ‘오링O-ring’을 모티브 삼아 작업한답니다. 커다랗게 확대한 오링을 다양한 모습으로 연결하고, 알록달록한 색깔을 더해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시간에 대한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내는데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삶의 태도를 반영했다고 해요. 재밌고 즐거운 상상을 이끌어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방효빈 작가. 호기심과 책임감으로 가득 찬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O-light›, 2022, 250 x 310 x 320 mm, 철에 분체 도장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원과 원을 연결하는 작가 방효빈입니다. 저는 금속 공예를 전공했는데요. 금속 공예를 할 때 연결 요소로 사용하는 ‘오링O-ring’을 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가져왔어요. 오링을 크게 확대한 형태를 활용해 가구와 오브제를 작업하며 연결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 가구 리폼하기, 방에 놓인 가구를 재배치하기 등을 좋아했어요. 말하고 보니까, 지금 제가 좋아하는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작업을 하는 것 같아서 즐겁네요. (웃음) 그림 그리는 게 좋았던 저는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는데요. 금속공예를 전공하며 작업을 해보니 물성을 다루는 일은 또 다른 세계더라고요. 점차 저만 할 수 있는 게 생겨서 좋았고, 만들어 내는 대상의 세계를 넓히고 싶었어요. 그래서 졸업 전시용으로 제작한 오링 시리즈를 그대로 끝내기가 싫더라고요. 곧 다음 시리즈를 만들었고,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작업이 계속 떠올라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답니다.

‹O-ring chair 2›, 2022, 652 x 876 x 780 mm, 철에 분체 도장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원래 대학원 작업실을 이용했는데요. 올해 레지던시에 입주하며 드디어 외부 작업실이 생겼답니다! 신당에 위치한 ‘신당창작아케이드’에요. 여기에 오시면 저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가님이 작업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요. 제 작업실을 소개하자면, 한편에는 아트퍼니처 ‹오링› 시리즈를, 선반에는 오브제 작업과 함께 영감을 주는 재료를 모아놨어요. 처음부터 계획하고 작업실을 꾸민 건 아닌데, 제 작업과 평소 관심을 두던 재료를 한 공간에 모으니 알록달록하고 원에 미쳐있는 사람의 방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다들 방이 꼭 저를 닮았다고 말씀하셔서, 아주 마음에 들어요. (웃음)

선반에 있는 오브제 작업은 ‹hi box›, ‹pet(green)›, ‹skin you› 등인데요. 특히 최근에 작업한 ‹hi box›는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시리즈로 작업할 계획입니다.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6주 정도 작업을 쉴 때 조물조물 신나게 만든 작업인데요. 쇄골뼈가 부러진 덕분(?)에 또 다른 작업이 탄생했으니, 즐거운 기억으로 남겨두기로 했어요. (웃음) 최근에는 ‹오링› 시리즈의 스케치이자 동시에 기록의 일환으로 드로잉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한편으로는 시리즈의 해설본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 레퍼런스로 벽에 걸어놓고 있는데요. 드로잉 작업으로 벽을 빼곡하게 채우는 게 목표입니다.

‹hi box›, 2022 (좌)

‹O-drawing›, 작업 모습 (우)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일상에서 시선이 머무는 특이한 순간에서 영감을 자주 얻어요. 그림자의 형태, 쓰레기 더미 속 장난감, 눈길을 끄는 물건의 종류와 색감, 과일이나 물건이 쌓인 트럭 등을 포착합니다. 대상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 두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편이죠. 예를 들어, 최근 키 차이가 나는 아이 둘이 핑크색 옷과 소품을 맞춰 입고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는데요. 가까이 다가가니 두 아이가 아니라, 아이와 어머니더라고요. 어머니가 아이 짐을 대신 들어주고 계셔서, 멀리서 봤을 때는 아이 둘이 걸어가는 줄 알았던 거죠. 재밌고 특이한 모습이라 갑자기 떠올랐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굉장히 즉흥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인데요. ‹오링› 시리즈를 작업할 때는 계획적으로 변해요. 결정이 필요한 순간을 확신하는 편이죠. 아마도 제 다른 면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발전하는 기회가 됐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오링›의 경우, 가장 먼저 3D 프로그램으로 원과 원을 조형합니다. 원을 연결할 때 생기는 공간에 집중하고, 이리저리 다양한 모습으로 연결해요. 마음에 드는 조형이 나타나면 더 발전시키거나, 따로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사용하는데요. 조형이 신체와 어우러졌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며 만드는 것 같아요. 이후 재료를 주문하기 위해서 실제 사이즈에 맞게 정교하게 조율합니다. 제작 과정에서는 철 파이프를 굽혀 동그랗게 말고, 원을 벌리거나 띠톱으로 반을 컷팅해 원끼리 연결하고 용접해요. 실제 주얼리 등에서 만드는 오링을 확대한 형태라고 보면 돼요. 오링 체인을 만들 때는 긴 금속선을 코일처럼 말고, 윗부분을 실톱으로 자른 후 사포질로 마감하거든요. 제 작업도 근본적인 과정은 같지만, 실톱 대신 띠톱기계를 사용하고, 줄질과 사포 대신 그라인더를 사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작업만으로도 즐거워요. 마치 오링은 커지고, 제 몸은 작아진 것만 같아서요.

‹O-bject›, ‹O-ring chair 2›, ‹O-spring›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3인전 «논-논-논» 전시에서 보여드린 ‹Cosomoso›를 소개하고 싶어요. ‘연결’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공간적인 확장을 시도했어요. 기본 구조인 원과 원을 연결하고, 상단과 하단에 거울을 설치했어요.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원의 이미지를 만들며 연결된 시간 속 현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서 제목도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Cosmos’에서 따왔어요. 그 외에도 ‹미묘한 교류(Untact Contact)›는 연결고리를 통해 관계에 대한 관찰을 표현했고요. 최근 작업한 ‹O-ring chair 3›와 ‹O-ring chair 4›는 조형적으로 전보다 과감하게 접근한 경우예요. 원과 원을 연결할 때 생기는 공간의 형태와 각도에 더욱 신경 썼어요. 이 작품은 한쪽 면만 보지 말고, 다양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살펴볼 때 더욱 흥미롭답니다.

«논 논 논»,2022 전시 전경 © 안팎space

‹Cosomoso›, 2022, 500 x 500 x 2740 mm, 미러스텐, 철에 아크릴 도장 © 안팎space

‹미묘한 교류 Untact Contact›, 2022

최근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 작업의 큰 주제는 ‘연결’이에요. 열쇠고리나 장신구 등 작은 연결 요소였던 오링이 가구가 되고, 공간으로 확장하고, 종국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하는 모습을 작품으로 전개하고 있죠. 갖고 계신 키링이나 목걸이 등에서 오링의 존재를 인식한 후 제 작업을 접하시면 더욱더 재미있는 경험으로 다가갈 거예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처음으로 작업에 사인을 넣어봤어요. 사인을 넣기까지 고민이 엄청 많아져서, 미루고 미루다 해치웠는데요. 막상 넣고 나니까 너무 만족스럽더라고요. 애정도 더욱 솟아나는 것 같았죠. (웃음) 작업에 불만족스러웠던 점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변수와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편이거든요. 오히려 변수와 변화의 탄생을 바라며 계획 없이 작업을 진행할 때도 있어요. 제가 능력이 부족했든, 상황이 좋지 않았든 간에 예기치 않은 변수가 다음 작업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고민할 기회가 생겼다고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특별히 불만족스러운 부분 없이, 매 순간 즐기면서 작업에 임하고 있어요.

‹O-ring chair 3›, 2023, 600 x 580 x 845 mm, 철에 분체 도장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집과 작업실의 반복이에요. 요즘에는 작업실에 출근하면 레지던시에 머무는 다른 작가님과 자주 만나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궁금했던 점을 여쭤보죠. 서로에게 배우면서 교류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쉬는 날에는 주로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 같아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유기견 보호소, 기호학, 관계, 알고리즘, 그리고 르세라핌.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 성격과 삶의 태도는 작업의 동그란 형태,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감에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해요. ‘뭐든 좋은 게 좋은 거지’, ‘둥글게 둥글게’가 삶의 모토예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죠. 전보다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 요즘입니다. 아직 제가 모르는 부분도 많고, 경험하지 못한 걸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평소에는 단순하게 살다가도, 어느 순간 머릿속이 꼬인 털 뭉치가 될 때가 있어요. 모든 상황을 고려하며 복잡하게 생각할 때 그런 순간을 마주치는데요. 하나씩 풀어가면 가장 단순한 본질만 남더라고요. 작업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차근차근 풀어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남은 선택지를 연결하고 작업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O-rings›, 2022, 320 x 320 x 290 mm, 철에 분체 도장

‹O-light›, 2022, 250 x 310 x 320 mm, 철에 분체 도장

‹O-ring chair 1›, 2021, 730 x 880 x 1010 mm, 철에 도장과 탱탱볼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아직 슬럼프가 올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온 적도 없는 것 같고요. 그래도 가끔 온전히 휴식을 취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코로나19에 걸려 합법적으로 쉬게 되었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웃음) 할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실컷 누워서 잠을 자고, 미뤄두었던 게임도 하고, 만화도 실컷 봤거든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 아닐까요. 그래도 지금은 수익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재밌는 작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요. 돈을 아끼기 위해 노동력을 투자하면, 오히려 수련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재료를 다루는 숙련도를 높이는 데 투자한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좋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못하는 일 것 같아요.

‹O-ring chair 4›, 2023, 730 x 1100 x 710 mm,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호기심과 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뭐든 궁금해하고, 상상하며 이야기를 도출할 때 재밌는 작업이 탄생하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한 게 떠오르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변에 물어보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려 합니다. 작업을 진행할 때에는 책임감을 가져야 성실함과 성취감도 따라오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걸 찾는 일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지속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나는 운이 좋고 멋있는 사람이야’라고 주문을 외워요. 그러면 묘한 용기가 피어오르면서, 제게 주어진 작업을 더욱 해내고 싶어져서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재밌고 즐거운 상상을 이끌어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작업을 관람하는 분과 함께 상상하고, 함께 공감하면서 놀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그려온 미래가 있는데요. 제주도에 살면서 조랑말,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강아지, 그리고 염소를 키울 수 있는 큰 집에서 사는 거예요. 넓은 들판에 머무는 동물을 케어하는 체력과 재력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집 한편에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제 작업들로 채운 공간도 만들고 싶어요. 오후 4시 즈음 작업실에 앉아,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여유를 느낀다면 참 좋겠네요.

Artist

금속공예를 전공한 방효빈은 세공 기법을 재해석하고 확대하며 복고적인 조형 언어를 탐구한다. 단순히 연결 요소로 사용하던 ‘오링O-ring’을 작업 모티브로 가져와 특유의 조형 언어와 주제를 장신구, 가구, 나아가 공간까지 확장해 나간다. 단체전 «용도의 쓸모 1장»(을지예술센터, 2022), «모노카픽monocarpic»(wrm spce, 2022), «논-논-논»(안팎space, 2022)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