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밈은 언제 어디서나 급작스럽게 나타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밈으로 등극하는 예가 흔하다는 점에서 밈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리고 네티즌이 끌어올린 우연의 산물이라 부를 만하죠. 그런 면에서 현재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는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가히 올해의 밈 공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밈이 얼마나 쏟아져 나왔는지, 이건 거의 찍어낸 수준입니다. 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진지한 정통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더욱더 신선함으로 가득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밈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백종원, 안성재 두 심사위원의 밈인가요, 아니면 백수저, 흑수저의 밈인가요. ‘밈 원정대’를 연재하는 김경수 님의 최애 밈은 바로 ‘비빔대왕’입니다. 그는 인터넷 밈의 특징인 혼종성을 그대로 품고 있기 때문인데요. 2024년 밈의 제왕 자리에 오른 ‹흑백요리사›의 이모저모를 아티클에서 살펴봅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밈을 본 후로 원고가 안 써진다. 영화평론가 입장에서 리뷰나 비평, 단평에 임할 때는 진지해야 하는데, 원고가 풀릴 만하면 최강록의 ‘나야, 들기름’ 밈이 생각나며 생각이 미끄러진다. 영화의 완성도가 살짝 아쉬울 때는 ‘영화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라는 평이, 편집이 매끄러울 때는 ‘전 편집의 익힘 정도를 중요시하는데, 그 익힘의 정도가 매우 타이트해요’라는 평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된다. 젠장, 나는 시네필cinephile이 되기에 글렀나 보다. 이미 뇌가 인터넷 밈에 BㅣBㅕ진 탓이다.
최강록 셰프는 이미 ‹마스터셰프 코리아 2›에서부터 스타성을 보인 원조 ‘맑눈광’이다.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요리를 시작해 스시 가게를 한 차례 차렸다가 망하고, 일본에 유학 다녀온 이력도 그의 맑눈광스러움을 더한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2›에서 그의 주요리는 ‘조림’이었는데, 조림에 미쳐 있다는 캐릭터 때문에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진즉에 밈도 하나 나왔다. ‘제목은 고추장 닭 날개 조림으로 하겠습니다. 이제 바질을 곁들인’에서 나온 ‘~입니다. 근데 이제 X를 곁들인…’ 밈이다. 이 밈도 잠시 사그라들었다가 ‹흑백요리사›와 함께 재조명되었다. 그의 말투가 주는 어수룩함은 왜인지 중독성이 있다.
‹흑백요리사›는 총 12화로 구성된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지난 9월 17일 공개 당일부터 관련 짤이 무서운 속도로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을 점령했다. 1화에서 2화까지 진행된 ‘흑수저 선발전’에서는 비빔대왕 유비빔과 안성재의 심사평이, 3화와 4화의 ‘블라인드 심사’에서는 백종원이 검정 안대로 눈을 가리고 시식하는 모습과 최강록의 ‘나야, 들기름’이 합성 소스가 되었다. 이후 백종원이 운영하는 더본코리아 산하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가게에 있는 백종원의 홍보용 사진에 검정 안대를 둘러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거의 모든 회차에서 밈이 될 만한 소스가 하나씩 생기는 프로그램을 ‹무한도전› 이후로 오랜만에 보아서일까. 내 기분 또한 한껏 들떴다. 나머지 화가 공개되기 시작하자 비범한 장면이 다시 우후죽순 쏟아졌다. 요리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흑백요리사›의 일본어 더빙판, 선경 롱게스트의 ‘텍스처가 없잖아요’, 에드워드 리의 ‘물고기’, 최강록의 ‘고추 꽁치’, 최현석과 안성재 사이의 묘한 신경전 등이 인터넷 밈의 소스가 되었다.
‹흑백요리사› 밈은 소셜미디어를 강타했다. 코미디언 김해준은 아임 파인 다이닝 ‘모스 부호’의 오너 셰프 안섬재를 연기하는 쇼츠를 올렸다. 그는 꽤 재미를 보았는지 뚱종원, 최강락 등 수많은 부캐 셰프를 초청해 시리즈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밈이란 밈은 다 복사하는 ‹SNL 코리아›에서도 요리하는 돌아이와 백종원, 안성재를 패러디했다. 유튜브 또한 난리였다. 밈 크리에이터 제프프는 최강록의 ‘고추 꽁치’를 인간 악기로 리믹스를 제작했다. 리믹스 밈의 또 다른 장인 정했다일기석도 최강록의 ‘고추 꽁치’를 돌카스의 명곡 ‘고추참치’로 리믹스한 영상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중이다. 장면을 적당히 잘라서 가상의 상황을 만드는 병맛 편집 밈도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영상은 유비빔이 생존하는 상황을 만든 영상이었다. 역재생 편집을 써서 안성재가 흑수저 셰프의 음식을 먹다가 뱉고 전원을 탈락시키는 영상도 재치가 넘쳤다. 최현석은 대파 도둑이 되고, 댓글 창조차 안성재의 심사평을 따라 한 ‘Even하게 익지 않은’이라든지, ‘~의 익힘 정도’. ‘이게 킥이거덩요?’ 등 ‹흑백요리사› 밈으로 도배됐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요리사가 총싸움을 벌이는 괴랄한 AI 연출 영상 시리즈는 굳이 여기에 적지 않겠다.
최준과 태양 등 김해준은 부캐 부자다. 안섬재를 하나 더한다고 어색하지 않다. 예상을 뛰어넘는 싱크로율 덕분에 인기를 누리면서 안성재를 밈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솔직히 재밌는지는 모르겠다. 근 1~2년간 개그가 어떤 대상을 곧바로 (기계적으로) 모사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 내 관심사다.
제프프의 평소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업이다. ‘고추 꽁치~’라고 할 때 ‘치~’에서 뭔가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중심으로 중독성 있는 훅을 만들어냈다. ‘고추 꽁치’뿐 아니라 ‹흑백요리사›에서 유행한 밈이란 밈은 총동원했다. 마지막에는 유비빔의 드럼이 비트를 더한다. 여기서 하나 눈여겨볼 만한 점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오세득이 스치듯이 부른 ‘별이 진다네~’를 쓴다는 점이다. 충분히 웃긴 요소인데 밈이 안 되어서 아쉬울 뿐이다.
일했다정기석은 힙합 뮤지션으로 추정(?)되는 리믹스 유튜버로, 상상치 못한 두 음악을 리믹스한다. 힙합과 EDM을 중심으로 리믹하는 실력이 대단해 모두가 전문 뮤지션으로 여기고 있다. 에미넴과 남진Namjeans, 에미넴과 조항조를 리믹스한 영상은 화제를 몰았다. 최강록 ‘고추꽁치’는 돌카스의 ‘고추참치’와 리믹스한 것으로, 어쩌면 가장 예상가능한 레퍼런스임에도 실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한다. 클리셰가 아니라 어쩌면 약간 고전처럼 보인달까.
‹흑백요리사›가 밈 공장으로 등극한 계기는 무엇일까? 우선 어느 캐릭터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은 연출의 힘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밀폐된 실험실에서 진행하는 사회 실험을 연상시키는 포맷은 되려 인터넷 밈을 찍어내는 이상적인 환경이 되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흑수저 세프와 백수저 셰프 모두 제작진이 공들여 섭외한 고수이므로 그 실력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능 캐릭터로 간주되는 유비빔과 골목식당 1호마저 각자의 가게에서는 엄연한 프로다. 그래서인지 셰프 간 방송 분량에도 큰 편차를 두지 않았다. 물론 흑수저 셰프는 통편집된 경우가 수두룩하지만, 적어도 화면에 잡히면 최대한 동등하게 노출하려고 노력했다. 탈락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과 평소에 하는 음식, 레시피를 상세히 소개했고, 음식에 대한 셰프의 의도 또한 인터뷰했다. 백종원, 안성재 두 심사 위원의 전문적인 심사평을 자세히 전달한다는 점에서 공들여 만든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티가 물씬 난다. 흥미로운 점은 셰프와 음식에 집중한 진지한 연출이 되려 네티즌에게 인터넷 밈을 발굴하는 자유를 무한히 선사했다는 것이다. 아마 ‹무한도전›이었더라면, 최강록이 “나야, 들기름”이라고 말할 때 치렁치렁한 데코를 자막에 달아 내보냈을 테다.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백종원이 블라인드 심사를 하며 음식을 우물거릴 때, ‘우오오?’라는 자막과 함께 BGM을 깔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흑백요리사›는 포맷만으로도 올해 가장 논쟁적인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워낙 다루는 인간 군상이 다양해서 리더십, 계급과 능력주의, 페미니즘, 백종원을 둘러싼 논란 등 논하기에 딱 좋은 숟가락을 하나씩 얹기에 이상적이다. 개인적으로 ‹흑백요리사›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캐스팅 과정이었다. 안유성 등 여러 셰프의 캐스팅 과정을 공개할수록 ‘제작진이 진짜 독기를 품었구나’ 싶었다.
참가자의 개인 서사를 다루지 않은 것도 신의 한 수다. 흑수저가 기라성 같은 백수저에 도전하는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이름 때문에 수많은 사람은 ‹흑백요리사›가 노골적으로 언더독 효과를 노릴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베일을 벗겨 보니 실상은 기대한 바와 전혀 달랐다. 심사위원은 요리를 맛보는 데 집중할 뿐 셰프의 개인적인 사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철가방 출신의 셰프 등은 예외였지만, 그렇다고 억지 눈물을 짜내려 노력하지 않았다. 요리로 진검승부를 펼칠 뿐이다. 백수저 셰프라고 시작부터 금수저일까. 다들 밑바닥에서 올라온 실력자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세미파이널에 가서야 백수저 에드워드 리는 평생 느끼던 이민자의 혼란을 요리에 담았다. 나이프와 포크로 잘라 먹는 참치 비빔밥에서 전해지는 그의 서사에 눈물 흘리지 않은 시청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셰프에게 좀처럼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다. 대신 미션을 마주한 참가자의 반응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마치 리얼리티 예능처럼 매 상황의 부조리함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나락을 감지하고 절대 고기 팀으로 가지 않으려는) 에드워드 리의 “물꼬기”, 선경 롱게스트의 “텍스처가 없잖아요” 등 인간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대목을 보자.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근데 이제 X를 곁들인’을 조심스럽게 말하며 밈으로 등극한 최강록이 편의점 미션에서 “꼬추 꽁치”로 전달하는 너디함은 그야말로 킥이다.
‹흑백요리사›의 선전에는 두 심사위원의 공로도 크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은 포맷 상 심사위원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은 시청자도 참가자의 무대를 함께 감상할 수 있지만, 요리 경연 프로그램은 다르다. 시청자는 참가자의 조리 과정과 플레이팅 등을 보고 요리 맛을 상상해야만 한다. 상상은 그저 상상에 그친다. 결국 진짜를 경험하는 주체는 심사위원이다. 요리를 직접 맛보고 이를 심사평으로 곧장 그려내는 심사위원은 승리의 향방을 결정짓는 절대적 존재다. 백종원의 경우, 이미 ‹골목대장› 등의 예능에 출연하며 ‘조보아 씨 이리 와봐유’, ‘슈가 보이’ 같은 인터넷 밈이 된 전적이 있다. 예능감 넘치는 투박하고 직관적인 심사에 그보다 어울리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의 진정한 킥은 안성재다. 현재 한국 유일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모수의 오너 셰프라는 점에서 이미 커리어는 최정점에 달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안성재는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 “킥이네요” 등 영한 혼용체 심사평을 날리며 강력한 밈이 되었다. 영한 혼용체는 영어로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굳이 영어로 하면서 젠체하는 업계를 비꼬는 밈으로 쓰였다. 그에 비해 안성재 밈은 영어를 적절하게 써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척 찰지게 다가온다. 마치 영화 ‹헤어질 결심›(2022)에서 서래(탕웨이 분)가 쓴 ‘마침내’처럼. ‘드디어’와 ‘결국’보다 자주 쓰이지 않던 부사, 마침내가 ‹헤어질 결심›을 계기로 밈이 된 것처럼, 대중은 언제나 상황에 적합한 언어를 물색하러 다닌다. 안성재 어록의 재미는 거기에 있다.
‹흑백요리사›가 낳은 밈의 최고봉은 비빔대왕 유비빔일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의견이다.) 그는 흑수저가 모인 자리에 곤룡포를 입고 나오며 첫인상부터 역대급 캐릭터가 됐다. “비빔 문자로 만든 진짜 비빔밥”을 요리할 때만 해도 유비빔은 비빔밥만 수십 년간 연구한 무림 고수의 현신 같았다. 특히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카메라의 앵글과 슬로우 모션은 그의 위엄(?)을 돋보이게 했는데, 심벌즈 위에 ‘BㅣBᅟᅵᆷ’이라고 적힌 밥을 올린 플레이팅에서 드러난 비빔밥에 대한 자부심, 비빔밥으로 경쟁하는 장사천재 조사장의 인터뷰까지 더해지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윽고 백종원의 심사가 시작된다. 유비빔은 “음악과 음식을 비빈 음식”이라고 설명하면서 급작스레 스네어드럼을 꺼냈다. “음악에 맞추어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비비면 된다”라며 드럼 스틱을 손에 쥐고, “가사는 비빔입니다” 외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라고 권한다. 한식이니까 ‘아리랑’이라도 부르려나 생각했는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 “비비비 비비빔 비비 비비빔, 더 열정적으로 비벼 주세요! 우리는 세계적이다!” 그에게서 일말의 광기가 보였다. 백종원의 심사평은 단순했다. “탈락입니다! 너무 짜요!” 이때 유비빔의 얼굴은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했는데, 이 낙차가 뻘쭘하게 웃기다. 하지만 이 장면은 안타까울 뿐이지 절대 우스꽝스럽지 않다. 그의 식당, ‘비빔소리’는 전주에서 소문난 맛집이다. 유비빔의 과거가 파헤쳐지면서 네티즌은 그에게 반하기 시작했다.
유비빔의 매력은 ‘맑눈광’에 있다. 그는 원래 밴드 멤버로 음악을 하다가 어느 날 온 세상의 본질이 비빔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쳤다. 비빔에 과몰입한 나머지 비빔밥 가게를 차리고, 비빔 문자를 개발하고, 이름을 유비빔으로 개명하더니 TV 프로그램에 ‘비빔에 미친 남자’로 소개됐다. 우사인 볼트를 ‘세상에서 가장 빨리 비비는 사람’으로 적어둔 그의 괴짜다움은 웃기면서도 경이롭다. 아들에게 BMW 자동차를 사주면서 ‘유융합’으로 개명하도록 독려하는 광기를 감히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지금 이 시대는 나만의 신념과 욕망을 지니기 어려운 시대다. 나다움을 권하는 광고가 넘치지만, 실제 우리는 나다움을 숨겨야 삶이 편하다. 그런데 맑눈광은 나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나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광인처럼 보이지만, 최소한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 그저 혼자 미쳐 있는 무해한 사람이다. 유비빔이 인기를 누리는 이유도 그의 선함 때문이다.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가 방문하자 그는 직접 스네어드럼을 치고, 가게에 손님이 붐비자 다른 가게로 가달라며 인근의 맛집 리스트를 공유했다. ‹흑백요리사›를 관통하는 주제가 요리로 나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유비빔이야말로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첫 등장부터 맑눈광 그 자체다. 곤룡포를 입고 세계를 비비려고 태어난 사람이라니. 심지어 비빔으로 경례까지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싶은데 비빔밥 장인이라서 무언가 설득력이 있다. 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교훈을 마구 날리는 지하철 1호선 빌런 ‘의왕동 깡패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맑눈광은 지하철 빌런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서사를 뽑으라면 에드워드 리의 세미파이널 1차다. 그는 자신을 ‘비빔 인간, 이균’이라고 소개하며, 비빔밥에 튀김옷을 입히고 위에 참치를 올리는 참치 비빔밥을 선보였다. 한국인의 정체성(비빔밥)과 미국인의 정체성(참치)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한 그의 마음이 담긴 음식이다. 그러나 안성재는 반문한다. 이게 비빔밥이냐고. 그에게 비빔밥은 비벼야 하는 규칙이 있는 음식이다. 물론 안성재가 에드워드 리의 의도를 모르진 않았을 테다. 미국으로 이민 간 입장이라 더욱더. 결국은 관점 차이인 셈인데, 안성재의 심사가 논란이 된 후 한 프로그램에서 유비빔에게 에드워드 리의 참치 비빔밥이 비빔밥이 맞냐고 물어봤다. 유비빔은 “당연히 비빔밥”이라며 에드워드 리가 비빔 인간이라는 점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안성재의 심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비빔대왕의 말은 왜인지 따스한 위로로 다가온다.
보이는 것보다 실제 발화할 수 있는 이야기가 훨씬 많다. 우선 안성재가 최현석의 음식을 꺼리는 것으로 보아(둘의 혐관은 진짜 브로맨스에 가깝다), 원본의 룰을 지키지 않은 음식의 재해석에 대한 거부감이 첫 번째이고, 한국인의 것인 비빔밥을 변형하는 행위에 대한 거부감 또한 있지 않을까 싶다. 음식 하나로 문학 작품을 보는 듯한 수많은 해석의 결을 만드는 것. 그게 에드워드 리의 힘 같다.
유비빔이 말하는 비빔은 둘 이상의 문화가 뒤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혼종성의 개념이 담겨 있다. 그의 발명품에는 세계 각국의 문화가 비벼져 있다. 세계 국기를 한데 모은 비빔 기타를 보라. 그래서 그의 비빔 예찬은 단순히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뻔한 국뽕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을 온몸으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한국적인 비빔이 된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이야말로 우리의 본질이라고 알려주는 그의 비빔 정신은 여러 합성 소스를 비빈 혼종의 결과물인 지금의 인터넷 밈과도 닮아있다. 내가 ‹흑백요리사›의 밈 중에서 결국 비빔대왕을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지난 6월 동명의 단행본으로 발행됐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