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편집으로 창작하기‘를 연재하는 최혜진 작가의 여덟 번째 에세이가 도착했습니다. 장장 8개월 동안 진행하던 연재를 끝내는 마지막 원고예요. 이번 글에서는 우리에게 에디터십이 갖는 진정한 가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에디터십은 무의미와 공허함으로부터 자기 자신과 독자를 지킬 수 있답니다. 무엇보다 자기 서사의 편집권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믿음만 버리지 않으면 그 어떤 시련과 환경적 제약 속에서도 언제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고치고 갱신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우리 안의 편집자를 깨우자고 외치는 최혜진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가 영화감독이 되기 전, 정확하게는 방송국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입사했을 무렵,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어라.” 소설가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도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독자, 관객, 대중 등 집단을 통칭하는 단어에는 구체적 얼굴이 없다. 누구든 들으라고 공중에 쏘아 올린 이야기는 어디에도 꽂히지 않고 증발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자신을 보자. 수십에서 수백 개의 선택지가 있는 기사, 뉴스레터, 유튜브 영상, 블로그 포스팅 제목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 ‘나랑 상관있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 들어줄 사람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타깃 수용자가 좁아져서 불리할 것 같지만, 정확한 연결고리가 되는 디테일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전달력이 높아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커트 보니것의 에피소드를 마음에 새겨둔 이유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영화감독
‘편집으로 창작하기’를 연재하는 지난 8개월 동안 나는 후배 에디터 한 명을 자주 떠올렸다. 그는 호기심 많고, 트렌드에 밝고, 유행하는 건 한번쯤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며,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떠들 때 에너지가 차오르는 친구다. 전통적인 미디어 회사의 편집부에 속해 본 적이 없고, 독립 매거진을 만들면서 독학으로 일을 배웠다. 그렇게 에디터 직함을 달긴 했지만, 정확히 에디터가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긴 어렵다고 느낀다. 다가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서퍼처럼 매일매일 성실히 업무를 하다가도 문득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에디터로서 나의 전문성은 뭘까?’ 질문하며 아득한 심연을 내려다보는 기분에 시달린다.
언젠가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플루언서도 사진 촬영하고, 베스트 컷을 셀렉하고, 이목을 끄는 글을 쓰잖아요. 누구나 글 쓰고 영상 만드는 시대인데, 제가 그들보다 뭐가 나은지 모르겠어요. 유명한 게 그냥 최고 아닌가 싶어요.”
유명세가 곧 자본이 되는 주목 경제 시대에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회의감이겠지만, 마음이 조금 아팠다. 직업적 자존감의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할지 몰라서 타인의 삶을 기웃거렸던 주니어 시절의 내가 생각나서였다. 한번쯤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에디터로서 배우고 훈련한 ‘에디터십 editorship’이 어떻게 내 삶을 바꾸었는지, 비단 직업적 측면뿐 아니라 자존을 지키며 살고 싶은 한 개인에게 얼마나 단단한 중심축이 되어주었는지, 에디터를 에디터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에디터십의 사전적 의미는 ‘편집자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이나 정신’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편집자 수만큼 에디터십의 정의도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지면은 나에게 할애된 공간이니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내 생각을 실컷 풀어보겠다.
나는 내가 에디터라는 사실이 좋다. ‘이 무슨 앞뒤 맥락 없는 자랑질인가’ 싶은 독자도 계시겠지만, 한 명의 직업인이 19년 동안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도달한 안정감에 대해 한번쯤 이야기 들어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겠냐고 우겨보고 싶다. 게다가 모든 것이 과잉인 동시대에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의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알아보고 맥락에 맞게 재료를 다룰 줄 아는 에디팅 능력이 모든 영역에서 점점 더 필요해진다.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정보를 다루는 능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에디터십을 고민하는 글 읽기가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내가 에디터라는 직업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언제나 타인과 현상 가운데에서 작업의 재료를 얻기 때문이다. 에디터는 혼자 일할 수 없다. 인터뷰 기사를 만들려면 인터뷰이에게 연락해서 만남을 청해야 하고, 공간을 소개하려면 당연히 그곳을 방문해야 한다. 올겨울 유행하는 숏패딩이나 눈에 띄는 디자인 체어를 소개하려 해도 일일이 브랜드 담당자와 소통해야 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 칼럼을 쓰려면 관련 서적을 훑거나 논문을 검색하거나 믿을 만한 전문가에게 전화를 돌려야 한다.
‘만남’과 ‘묻기’를 두려워해서는 좋은 에디터로 성장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나는 이 사실에 자긍심을 느낀다. 타인과 세상 구석구석에 관심을 두면서 무언가 귀한 것이 있으리라 믿으며 귀를 열어두는 태도,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인식을 갱신하는 자세. 에디터십을 가진 사람은 기꺼이 자신을 더 넓은 세계로 보내고, 만나고, 질문할 줄 안다.
이렇게 동시대 한복판에 자신을 던져넣은 에디터는 ‘의미’를 찾는다. 재료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새로 생긴 카페 메뉴판에도 의미가 있고, 서점가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의미가 있다. 우연히 엿들은 택시 기사님의 혼잣말이나 5세 어린이의 엉뚱한 질문에도 의미가 있다. 8월에 나오는 아오리 사과와 10월에 나오는 홍옥의 차이를 감지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설파할 수도 있고, 2022년에 개봉한 한국 독립영화 목록과 2021년의 목록을 비교하면서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에디터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무의미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 내가 생각하는 에디터십의 두 번째 미덕이 있다. 난장판 같은 재료, 정보, 데이터를 마주하고도 ‘의미는 언제나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태도다. 사소하다고, 익숙하다고, 당연하다고 쉽게 넘겨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유의미한 신호를 포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해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나는 이 물건을, 이 현상을, 이 작품을, 이 사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자문자답하는 시간이 에디터를 에디터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해석은 언제나 주관성을 바탕으로 한다. 객관적 해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에디터로 일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주관성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일이다. 오류가 있고, 불완전하고, 시시하게 느껴져도 ‘이것이 내가 보고 이해한 세계에 대한 인식입니다’라고 자기 버전의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에디터십은 결국 보호막을 벗고 자기를 드러낼 용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에디터가 용기 있게 내놓은 해석은 때때로 독자에게로 가서 세상을 이해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마트에서 늘 보던 사과가 버라이어티한 이야깃거리를 품은 재료로, 별 관심 없던 예술가가 중요한 인생 교훈을 주는 존재로, 새로 생긴 카페 메뉴판이 동시대 미감의 보고로 보이는 것이다.
박혜수, ‹꿈의 먼지›, 2011 © www.phsoo.com
그래서 나는 에디터십이 무의미와 공허함으로부터 자기 자신과 독자를 지킨다고 믿는다. 아무리 화려한 성취를 해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질문이 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사람은 의미 없이 살 수 없는 동물이니까. 성실히 이 세계를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의미를 읽어낸 후 배열을 가진 이야기로 바꿔낼 줄 아는 능력이 가치롭다고 믿는 이유다. 이런 에디터적 사고력으로 얼마나 창조적인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인 최애 아티스트 박혜수 작가를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연재를 마치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9» 후보에 오르기도 한 박혜수 작가는 언제나 설문 조사와 취재, 인터뷰로 작업을 시작한다. 타인과 주변의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그가 하는 예술이다. 일례로 공공장소에서 엿들은 방대한 양의 대화를 수십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후 전시의 재료로 쓰거나(‹Dialogue-Archive›, 2009), 온라인 설문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당신이 버린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방대하게 수집한 답변을 활용해 창작의 재료로 사용한다. (‹대화 프로젝트 Vol.1-Dream Dust›, 2011)
2011년 «제10회 금호 영아티스트»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 ‹꿈의 먼지›는 사람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버릴 수밖에 없었던 꿈을 적은 설문지를 분쇄기에 넣어 날리도록 한 작업이다. 2017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do it 2017, 서울»전에서는 관람객이 다른 사람의 조각난 꿈―분쇄한 설문지―에서 자신의 꿈과 관련된 단어나 문장을 찾아 연결 짓도록 했다.
박혜수, ‹꿈의 먼지›, 2017, 출처: 작가 유튜브
7년여 동안 ‹꿈의 먼지› 작업을 이어가며 수천 명의 실패한 꿈을 모아보니 ‘사랑’이 매우 높은 순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작가는 다음 프로젝트로 ‹대화 프로젝트 Vol.2-Goodbye to Love›를 이어간다. 이번에는 헤어진 연인이 남긴 물품과 사연을 수집하는 설문을 기획했다. 사람들이 남긴 답변과 연애편지, 자화상, 목걸이, 속옷, 향수, 옷, 인형 등의 물품은 이후 설치미술, 영상, 음악,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었다.
박혜수, ‹Goodbye to Love I›, 2013 © 최혜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꿈과 사랑을 포기하게 만든 원인이 궁금했고 나는 ‘보통’이라는 기준을 주목했다. 그렇게 자신다움을 다 제거하면서 눈에 띄지 않는 ‘보통’이 되어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란 의문이 이어졌고, 그 끝엔 ‘우리’가 있었다.”
– 박혜수,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돌베개, 42쪽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19»에서 선보인 작품 ‹우리친밀도 검사 – 중산층 300명(모집단) / MMCA 관객›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는 관객 300명이 ‘우리나라’, ‘우리민족’, ‘우리가족’, ‘우리회사/학교’를 얼마나 친밀하게 느끼는지 0~5점의 지표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전시를 보는 관객 누구라도 벽에 걸린 실타래 중 자신의 성별과 나이대에 해당하는 것을 풀어서 작품에 덧댈 수 있다.
박혜수, ‹우리친밀도 검사 – 중산층300명(모집단) / MMCA 관객›, 2019 © 최혜진
박혜수 작가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당신은 어때요?’라고 묻는 목소리와 대면하게 된다. ‘당신은 왜 그 꿈을 버렸나요? 헤어진 연인이 남긴 말과 물건을 왜 여전히 간직하고 있나요? 당신은 보통 사람인가요? 왜 자신을 보통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이 정의하는 ‘우리’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요?’ 등의 질문 앞에서 ‘나는 어떻더라…?’라며 자기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집요하게 주변을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의미를 시각화하는 박혜수 작가의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에디터적 사고력을 배우기 위한 너무나 훌륭한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를 아끼고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관객’을 자기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의 자리로 초대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저는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편은 아니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던지는 주제에 대해서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찾아나갔으면 해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명제화된 메시지를 넘기면 관객이 그냥 그것을 바라보는 존재만 되버리는 게 싫어요. 그 사람의 삶에서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 박혜수, «올해의 작가상 2019» 인터뷰 중
올해의 작가상 인터뷰, 2019, 출처: koreaartistprize
에디터로 일하며 얻은 가장 소중한 삶의 자산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의미의 최종 편집권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이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하고, 뒤죽박죽 난장판 같은 사건과 사실이 끊임없이 들이닥친다. 그중 어디에 주목하고 어떤 가치와 만남과 기억을 소중히 여길지에 따라 인생의 의미와 만족도가 달라진다.
CCTV나 홈비디오로 기록한 무편집 영상이 영화가 될 수 없듯 자신이 살아온 모든 순간을 누락 없이 축적한다 해도 곧장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그려놓은 자아상은 다시 말해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나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편집권을 타인에게 내어주고 주체적인 삶을 살긴 어렵다.
외부에서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내 힘으로 바꾸지 못할 환경적 제약이 있더라도, 자기 서사의 편집권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만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나에 대한 이야기를 고쳐 쓰고 갱신할 수 있다. 그러니 에디터십을 지키자. 우리 안의 편집자를 깨우자.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 지난 8개월 동안 구구절절 긴 편지를 썼다. 그간 ‘편집으로 창작하기’ 연재를 읽어주신 비애티튜드 독자께 깊이 감사드린다.
Writer
최혜진(@writer.choihyejin)은 19년 차 잡지 에디터다. «디렉토리», «1.5°C», «볼드저널» 편집장으로 일했고, 에디터십을 기반으로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우리 각자의 미술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등 일곱 권의 예술서를 썼다. 동료애 기반의 에디터 커뮤니티 ‘Society of Editors’(@society.editors)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