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Essay

有印良品 유인양품7-내가 호돌이 때문에 웃는다

Writer: 정우영
[ESSAY]유인양품7_1

«HODORI ROCKS: Uncanny New Wave Sound from the 88 Olympic Land» 바이닐과 스와치 1988 서울 올림픽 스쿠버 와치 1994 모델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우리가 ‘한국적인 것’이라 부르는 풍경에는 이상한 웃음이 남아 있습니다. 호랑이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공포의 대상이자 최상위 포식자로 점철되어 있지만, 한국 민화 속 호랑이는 어딘가 익살스럽습니다. 마치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처럼 말이죠. 1980년대 한국이 빚어낸 풍요 속에서 ‘동질적인 것’으로 각광 받던 음악계의 이면에는 뉴웨이브라는 이름의 ‘저주받은 몫’이 존재했습니다. 그는 한국 뉴웨이브 음악 속에 수립된 느닷없는 괴성이 오히려 역사와 맥락, 지식 그리고 서사가 무용한, 한없이 맑은 재미를 주는 ‘한국적인 것’이 아닌지 되묻습니다. 우리는 너무 깊이 가라앉아 쓸모를 잃어버리지도, 너무 가벼워 쉽게 잊히지도 않는 그것을 오래전부터 ‘흰 그늘’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정우영이 들려주는 ‘호도리 록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셨나요? 여기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SSAY]유인양품7_2

«HODORI ROCKS: Uncanny New Wave Sound from the 88 Olympic Land» 바이닐

한국 민화 속 호랑이를 일관된 소재로 삼아온 타투이스트 아프로 리는, 한국의 호랑이는 서양 회화 속 호랑이와 다르다고 말한다. 위협적이지도, 무섭지도 않고, 사람과 가까이 있으며 심지어 익살스럽다는 점에서.

소설가 황석영은 판소리 이론가 신재효가 제자에게 한 말을 인용해 여러 자리에서 한국의 미학을 말했다.

소리에는 그늘이 있어야 하는데 “그늘이 너무 짙어지고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쓸데없는 소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흰 그늘’이 되어야 한다고 “누군가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겨워 몇 날 몇 밤을 실컷 울고 나서 피시식 저절로 나오는 희미한 웃음 같은 것.”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KTV 아카이브, YouTube

«HODORI ROCKS: Uncanny New Wave Sound from the 88 Olympic Land»(이하 «HODORI ROCKS»)를 들으면 웃음이 난다. 지난 5월 27일에 발매된, 하세가와 요헤이(aka 양평이 형)와 조나산 블루시걸이 함께 고른 80년대 한국의 뉴웨이브 컴필레이션 바이닐이다. 웃기려고 만든 바이닐이 아니다. 1975년 이전까지 감상용이었던 바이닐이 그랜드 위저드 시어도어에게는 스크래치 도구였고, 세상에는 매뉴얼을 초과하는 물건이 있다.

[ESSAY]유인양품7_4

«HODORI ROCKS: Uncanny New Wave Sound from the 88 Olympic Land» 바이닐, 출처 Beatball Music(김밥레코즈 제공)

[ESSAY]유인양품7_5

«HODORI ROCKS: Uncanny New Wave Sound from the 88 Olympic Land» 공식 아트워크

뉴웨이브는 단순하게 말하면, 상업화된 펑크였다. 펑크의 유산 중 탈권위적인 음악적 입장이라거나 제도권에 대한 일상적 저항은 받아들이고, 다다이즘, 시츄에이셔니스트 인터내셔널 같은 반문화, 아방가르드 계보는 거부했다. 하지만 펑크조차도 팝 문화를 비판하며 팝 문화에 속하는 모순적 위치에 있었다. 뉴웨이브를 단지 상업적이었다 비판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다만 한국의 경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3저(저유가, 저물가, 저금리) 호황을 바탕으로 1960년대 통계 작성 이래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비약적으로 시민들의 소비력이 향상한 1980년대에, 투자비용(프로그래머블/미디 프로덕션)이 압도적으로 적은 뉴웨이브(물론 밴드가 주도하는 뉴웨이브도 있었다)는 마치 IT 버블 때처럼, 돈 냄새가 풀풀 나는 소재였다.

실제로 80년대 한국의 뉴웨이브는 번성했다. 어쩌면 지금의 K-pop을 만든 힘이 인터넷 이전 프로그래머블/미디 프로덕션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도 곱씹어 볼 만한 거리다. 이 풍성한 신에서 ‘동질적인 것’과 다른, ‘저주받은 몫(이상 조르주 바타유)’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HODORI ROCKS»에서 만날 수 있는 한 면이다.

코리아 환타지의 ‹서울의 밤›은 이레이저의 초기작들처럼 단순한 멜로디와 단순한 편곡, 드럼 머신 중심의 프로덕션이 세련됐다. 이 앨범으로 처음 접하는 음악 애호가들이라면 큰 충격에 휩싸일, 장혜리의 ‹진실한 사랑›은 크라프트베르크의 ‹Das Model›의 베이스 라인을 비틀어 독특하게도 이탈로 디스코의 형식을 얹었다. 80년대 런던 소호 또한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변에서도 이질감이 없었을 곡들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이 곡들을 모른다. 상업적으로 실패한 곡들이기 때문이다.

코리아 환타지, ‹서울의 밤›, 1989, YouTube

장혜리, ‹진실한 사랑›, 1987, YouTube

한국 사람들은 펑크가 뭔지 모르는 채 포스트 펑크가 뭔지는 더더욱 모르는 채 뉴웨이브를 들었다. 역사도 맥락도 서사도 없었으니 아마도 ‘최신 컴퓨터 사운드’ 수준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물론 음악은 산문이 아니어서 지식이 그 감상을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의 장점이자 단점은 역사, 맥락, 지식, 서사 없이도 당장 시작할 수 있고 당장 좋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HODORI ROCKS»의 ‘저주받은 몫’은 단지 서양 음악의 근사한 재현에 한정되지 않는다.

ESSAY유인양품7_8

«HODORI ROCKS» 수록곡들의 오리지널 바이닐들

[ESSAY]유인양품7_9

«HODORI ROCKS»에 수록된 장혜리의 오리지널 바이닐

이 앨범의 첫 곡 현희의 ‹슬픈 모습 보이기 싫어›는 노래와 그다지 상관없는 괴성이 지배적이다. 이 귀기 어린 고함은 레이니 선이 등장하기까지 한국 대중음악사에 전무했다. 이 곡이 실린 현희의 유일한 앨범 «날 사랑하는 님이여 / 슬픈 모습 보이기 싫어»는 이 괴성이 삭제된 ‘리프레스’가 더 많이 남아 있다. 라디오에 선택을 못 받았다거나 PD의 요청이 있었다거나 하는 상업적인 배경에서 다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말하자면 이 느닷없는 괴성이 한국이고, 이 앨범에서 다루고 있는 한국 뉴웨이브의 또 다른 면이다. 이 괴성 앞에서는 역사, 맥락, 지식, 서사가 다 무용하다. 한없이 맑은 재미다.

현희, ‹슬픈 모습 보이기 싫어›, 1985, YouTube

이어지는 이정우의 ‹이루지는 못했어도›에는 실제로 다양한 웃음소리가 등장한다. 장난스러운 신시사이저와 기타 리프, 보컬의 연극성을 강화하는 선택이었을 텐데, 이 우스운 시도를 당시로써 특권적이었던 앨범 프로덕션에서 아무렇지 않게 해버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신정숙의 ‹놀부 심술가›는 서양식 버스-브릿지-코러스의 1절, 2절 구성이라기보다 판소리에서 고수와 소리꾼이 매기고 받는 듯한 ‘콜 앤 리스펀드’가 뉴웨이브의 음악적 문법 속에서 끝까지 반복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국 음악가를 향해 전통을 잊지 말라는 사회·문화적 압력은 유서 깊고 지금까지 이어지지만, 이제는 이 곡을 들었을 때처럼 좀처럼 웃음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이정우, «사랑은 쓴 약», 1985, YouTube

신정숙, ‹놀부 심술가›, 1987, YouTube

지금 전 세계에 증명하고 있듯, 한국은 어떤 문화를 상업적으로 빠르게 재맥락화하는 재능이 있다.

«HODORI ROCKS»의 뉴웨이브 곡들이 주장하고 증명하는 바인데, 여전히 한국에서 뉴웨이브는 음악평론가들조차 그 용례를 정확히 쓰지 못하는 개념이다. 가소성(장점)과 안정성(단점)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스티븐 그로스버그)하고, 한국은 이 재능을 위해 기꺼이 역사, 맥락, 지식, 서사를 희생해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내내 만면에 돌던 그 웃음기가 가셨을 때야말로 멈춰 생각해볼 때 아닌가? 기록되지 못한 역사, 맥락, 지식, 서사로 파괴되는 것은 박물관만이 아니다. 한국의 미학에 유구했던 웃음이기도 하다.

[ESSAY]유인양품7_13

서울의 밤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 『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