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초밥이 사람을 잡아먹고, 심지어 나무에 매달려 짝짓기한 뒤 새끼까지 칩니다. 말도 안 되는 한 줄이지만 누군가에겐 바로 이 문장이 극장으로 향할 이유가 되죠. ‹아프리칸 쿵푸 나치스›에 이어 박동수 영화평론가가 두 번째로 소개하는 쿠소영화는 ‹데드 스시›(2012)입니다. 모형 초밥이 저렴한 CGI의 힘을 빌려 두 시간 내내 화면을 날아다니는데, 그 조악함에 화가 나기보다 이상하게 웃음이 먼저 터집니다. 이 황당하고도 유쾌한 에너지는 1990년대 일본 특유의 ‘V시네마’와 ‘특촬물’의 생태계에서 비롯됐죠. 쇠퇴해 가던 장르를 떠받치던 몇몇 영화인이 저예산의 한계를 고어와 스플래터로 돌파하며,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맘껏 펼쳐 낸 결과물인 셈입니다. 팔에 머신건을 장착한 여고생, 엉덩이에서 가타나를 뽑는 로봇 게이샤처럼 황당한 조합을 줄곧 선보여 온 감독 이구치 노보루 역시 이 생태계가 길러 낸 인물이기에 ‹데드 스시›가 탄생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날아다니는 식인 초밥 한 접시를 박동수가 어떻게 맛봤는지, 그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영화 ‹데드 스시› 스틸컷
시외버스로 기숙사와 본가를 오가던 중고등학교 시절, 버스터미널에서 『씨네21』을 사서 읽는 게 하나의 루틴이었다. 『씨네21』은 주요 국제영화제 시즌마다 기자나 평론가들의 추천작을 소개해 준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그중 하나였고, 높은 수위 탓에 쿠소영화가 돼버린 장르영화를 찾던 내게 질 좋은 가이드가 되었다. 2012년 부천에서 상영된 ‹데드 스시デッド寿司›(2012)는 그렇게 접하게 된 작품이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기에 청소년 관람 불가인 이 영화를 영화제에서 볼 수는 없었다. 나중에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관람한 ‹데드 스시›는 그야말로 정신 나간 영화였다. 줄거리부터 범상치 않다. 초밥 장인의 딸 케이코는 여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초밥 요리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가출해 어느 료칸에 취직하지만, 그곳의 요리사는 손님을 봐 가면서 대충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한 제약회사 직원들이 료칸을 찾은 날, 케이코는 요리사가 대충 만든 초밥에 분노한다. 그와 동시에 회사에서 배신당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탄생시킨 식인 초밥이 료칸의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영화 ‹데드 스시›가 상영된 2012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좌)와 ‹데드 스시› 포스터(우)
알고 보니 감독인 이구치 노보루는 이미 일본 장르영화나 쿠소한 영화를 찾아다니던 이들에겐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미 부천에서 상영되었던 히트작들이 있었다. 야쿠자에게 가족을 잃고 팔도 잃은 여고생이 머신 건 팔을 장착하고 복수한다는 ‹머신 걸片腕マシンガール›(2007), 1970년대 방영된 특촬 변신 로봇물에 관한 리메이크이자 애정의 표현인 ‹가라테 로봇電人ザボーガー›(2011) 등이 대표적이다. 두 작품만 봐도 독특하지만, 그의 커리어 전체를 바라보면 더욱 기상천외하다. 그는 나가이 고, 이토 준지, 우메즈 카즈오, 오시미 슈조 등 다양한 만화가의 작품을 영화로 옮겼고, 종종 비주류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삼은 아이돌 영화를 찍었다. 마스무라 야스조가 이미 걸작으로 만들어 낸 다니자키 준이치로 소설 원작의 영화 ‹만지卍›(2006)를 만들었으며, 그 당시 전 세계 호러 신예 감독을 끌어모아 만든 초단편 옴니버스 영화 ‹ABC 오브 데스The ABCs of Death›(2012)에 참여하기도 했다.
도에이의 첫 V시네마 작품인 영화 ‹크라임 헌터 – 불릿 오브 레이지›의 VHS 커버(좌)와 도에이 V시네마 브랜드의 로고 이미지(우)
이 필모그래피가 보여주는 기묘한 궤적은 그의 뿌리인 일본 V시네마에서 기인한다. 1989년 도에이에서 ‹크라임 헌터 – 불릿 오브 레이지クライムハンター 怒りの銃弾›를 출시하며 함께 선보인 비디오용 영화 라인의 이름이었던 V시네마는 빠르게 히트상품이 되었다. 극장용 영화보다 훨씬 저렴한 제작비로 3만 개의 비디오를 판매할 수 있었다. 이후 도호, 다이에이, 닛카쓰, 쇼치쿠 등의 대형 영화사와 여러 소규모·독립 제작사도 비디오용 영화 시장에 뛰어들며, V시네마는 이들 전체를 통칭하는 용어로 여겨진다. V시네마의 주된 관객은 20~30대 남성이었고, 1980~90년대 쇠퇴기를 맞이한 일본 영화는 이들이 필요했다. V시네마의 주된 장르가 야쿠자, 도박물, 찬바라, 섹스, 고어, 스플래터, 특촬물, 학원물 등이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1970~80년대의 닛카쓰 로망 포르노가 그랬던 것처럼 V시네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신예나 일거리가 없던 이들에게 하나의 기회로 다가왔다. 제작비가 저렴했기에 최소한의 요구사항, 이를테면 액션이나 노출 장면 유무, 야쿠자·도박물 등 특정 장르로 연출하기 같은 요구만 충족한다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기회가 제공되는 셈이었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자리 잡은 구로사와 기요시나 아오야마 신지도 V시네마로 출시된 싸구려 장르영화를 통해 초기 경력을 쌓았다. 미이케 다카시, 나카타 히데오, 시미즈 다카시 등 J호러를 이끌었으며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는 장르영화 거장 또한 V시네마로 경력을 시작했다. ‹주온呪怨›(2000) 같은 히트작도 V시네마로 먼저 출시된 뒤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된 사례다.
시계방향대로 ‹고지라›, ‹울트라맨›, ‹가면라이더› 그리고 ‹슈퍼전대› 시리즈의 첫 작품 ‹비밀전대 고레인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1975). 초창기 특촬물은 거대 괴수나 인간 크기의 괴인, 국내에선 ‘전대물’이라고 잘못 통칭하는 일본식 슈퍼히어로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대물은 슈퍼전대 시리즈와 그 아류작을 일컫는다. 가면라이더와 슈퍼전대 시리즈는 도에이 제작인 만큼 V시네마로 외전작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는 OTT 시대인 지금에도 ‘V-시넥스트V-Cinext’라는 이름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V시네마에서 ‘특촬’은 중요한 장르이자 비주얼 요소다. 특촬물이라는 용어가 알려주듯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기도 했다. 혼다 이시로와 츠부라야 에이지의 ‹고지라ゴジラ›(1954)에서 출발한 특촬물은 ‹울트라맨ウルトラマン›(1966~), ‹가면라이더仮面ライダー›(1971~), ‹가메라ガメラ›(1965~), ‹슈퍼전대スーパー戦隊›(1975~2026) 같은 시리즈와 캐릭터로 이어졌다. 물론 일본에서 특촬물이 항상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지라›는 점차 어린이 영화에 가까워지며 힘을 잃었고, ‹울트라맨›이나 ‹슈퍼전대›의 인기도 항상 일정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고지라› 시리즈를 주도했던 도호에서 점차 특촬물 제작을 줄여 나가자 일거리가 필요한 사람들은 V시네마로 향했다.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호러영화는 물론이고 ‹기니어피그ギニーピッグ› 시리즈(1985~1990) 같은 고어·스플래터 영화가 V시네마로 대거 제작되며 특촬물 제작 노하우가 필요해졌다.
위부터 아래로 영화 ‹머신 걸›, ‹로보게이샤›, ‹누이구루마 Z›의 스틸컷. 이구치 노보루의 다른 영화나 언급한 영화 속 다른 장면 스틸컷도 가져오고 싶었지만······ 심히 부적절한 이미지가 대다수라 고르고 골라 가져왔다.
이구치 노보루는 V시네마와 특촬물이라는 자신의 두 뿌리에 기울인 애정을 영화에 담아낸다. 대표작 ‹머신 걸›은 V시네마에서 종종 제작되던 여성액션물과 스플래터의 결합이었고, ‹로보게이샤ロボゲイシャ›(2009)는 거기에 찬바라까지 더한다. 찬바라ちゃんばら는 칼이 부딪히고 피가 흩뿌려지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를 어원으로 삼는 용어로, 사무라이나 자객이 등장해 칼싸움을 벌이는 작품 전반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훈련받은 로봇 게이샤 자객은 엉덩이에서 나온 가타나로 짱구의 엉덩이춤 같은 움직임을 선보이며 칼싸움을 벌인다. 게다가 이 로봇 게이샤는 하반신을 탱크의 무한궤도로 바꿔 도로를 달린다. ‹가라테 로봇›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젖(!)을 먹고 자라며 가라테를 수련해 오토바이와 합체한 로봇이 된다. 미소녀가 곰인형과 합체해 좀비를 찢고 다니는 ‹누이구루마 ZヌイグルマーZ›(2013)는 특촬을 기반으로 한 장르적 잡탕찌개 같은 면모를 확연히 드러낸다. 나름 정통(?) 호러영화인 ‹토미에: 언리미티드富江アンリミテッド›(2011)에선 이토 준지 만화의 기괴한 이미지를 스플래터스러운 특촬로 풀어 낸다. 이구치 노보루의 필모그래피에는 이 밖에도 괴기스러운 영화가 즐비하다. 다만 그것을 풀어 설명하는 일은 과하게 음지스럽기에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궁금한 분은 직접 위키피디아를 찾아보길 권한다.
이런 필모그래피를 지닌 감독이기 때문에 이구치 노보루는 부천영화제의 단골손님이었다. 최근에는 고어·스플래터 영화를 덜 만들기에 초청되지는 않지만, 그는 2010년을 전후로 거의 매년 부천을 방문하는 V시네마 출신 일본 감독 중 하나였다. 그의 여러 작품 중 ‹데드 스시›는 비교적 점잖은(!) 영화에 속한다. 깔깔 웃으며 다음 장면을 기대하기엔 과하게 더럽지 않고, 불필요한 노출이 가득하지 않으며, 특촬물을 비롯한 V시네마 장르에 관한 나름의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담뽀뽀タンポポ›(1985)를 따라 한 날계란 키스나 ‹가면라이더›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가져온 듯한 생선 괴인이 등장하지만, 이런 오마주는 몰라도 그만이다. 물론 ‹데드 스시›에도 잔혹한 장면이 즐비하다. 초밥이 료칸 손님들의 혓바닥을 물어뜯고, 아직 초밥으로 손질되지 않은 원물 오징어가 등장인물의 얼굴 가죽을 잡아당기며, 초밥에 목이 잘리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가득하다.
영화 ‹데드 스시›의 한 장면. 참치 초밥과 새우 초밥이 새끼를 대량으로 낳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대체로 유쾌하다. 물론 고어 자체를 불쾌해하는 관객에겐 어렵겠지만, 식인 초밥이라는 당황스러운 소재와 어딘가 조악해 보이는 특촬물 특유의 비주얼은 잔혹함을 유쾌함으로 탈바꿈시킨다. 초밥집 앞 모형 음식 같은 질감의 초밥이 숨겨둔 송곳니를 꺼내 보이며 료칸 곳곳을 날아다니는 풍경을 보며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이처럼 ‹데드 스시›의 백미는 이런 잔혹한 장면이 아니다. 매미처럼 나무에 매달린 두 초밥이 짝짓기해 수백 마리의 (저렴한 CGI로 표현된) 새끼 초밥을 까는 순간, 군함초밥이 연어알을 대포처럼 발사하는 순간, 해산물이 아니기에 이지메를 당하던 계란초밥이 “케이코······ 간바레······!”라고 속삭이며 (식인 초밥들은 낄낄거리며 웃기도 하고 말도 한다) 다른 식인 초밥을 무찌르라고 응원하는 순간이 ‹데드 스시›의 핵심이다. 게다가 이 응원은 식인 초밥의 등장에 뒷전으로 밀렸던 영화의 진짜 이야기, 쿵후 영화를 방불케 하는 수련을 견뎠음에도 “역시 여자의 냄새가 생선 비린내에 섞이고 있어 초밥을 쥘 수 없다”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듣고 가출한 초밥 장인 지망생 케이코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케이코가 료칸의 엉터리 요리사에게 분노했던 것도, 생선회와 초밥을 식인 괴물로 변형시킨 이에게 분노하는 것도, 모두 결국 초밥에 관한 모욕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욕을 참지 못했다기엔 죽은 식인 초밥을 엮어 초밥 쌍절곤을 만들어 싸우지만······.
영화 ‹데드 스시› 스틸컷
영화 ‹데드 스시› 스틸컷
‹데드 스시›의 엔딩 크레딧에선 짧은 비하인드 영상이 등장한다. 낚싯줄이나 얇은 와이어에 생선회나 초밥 모형을 연결해 펄떡거리게끔 한 연출과 성룡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NG 장면 모음은 이런 영화를 만들 때의 즐거움과 볼 때의 즐거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촬영에 사용한 음식은 촬영 후 스태프가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라는 일본어 자막과 “이 영화 제작 중에는 어떤 스시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라는 영어 자막은 덤이다. ‘무슨 생각으로 식인 초밥 영화를 만든 거지?’가 아니라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도 즐겁고 재밌네!’라는 발상의 전환이랄까. 『미스터 초밥왕』과 특촬물의 괴인을 스플래터 장르로 비벼 낸 ‹데드 스시›는 쿠소영화의 어처구니없는 조합법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영화 ‹데드 스시›의 엔딩 크레딧 이후 나타나는 문구. “촬영에 사용한 음식은 촬영 후 스태프가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라는 내용의 일본어 자막과 “이 영화 제작 중에는 어떤 스시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의 영어 자막이다.
지난 십여 년 사이 장르영화의 트렌드도 변했다. 일본 특촬물의 질감이나 V시네마의 저렴한 스펙터클 수요 자체가 줄었다는 생각도 든다. 부천영화제가 가져오는 영화나 관객이 찾는 영화의 성격도 많이 변했기에 ‹데드 스시› 같은 영화를 발견하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데드 스시›를 비롯한 이구치 노보루의 영화들은 쿠소한 즐거움을 주지만, 속된 말로 ‘빻은’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수십 명의 관객과 함께 만날 때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나는 올해도 부천에 ‹데드 스시› 같은 영화를 찾으러 간다. 마침 이 글이 올라오는 날은 부천영화제가 한창 진행 중일 때다. 올해도 폭염과 폭우를 뚫고 부천에 올 관객이 각자의 쿠소영화를 찾길 바라며······.
Writer
박동수 평론가(@dsp9596)는 제3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비평상과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영화와 게임을 주로 다루지만 종종 미술이나 방송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료 평론가들과 함께 영화비평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크리틱›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명의 비평집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첫 단독 에세이 『쿠소필리아』(2026)를 펴냈다.